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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시간여행자의 아내

2007.10.05 00:0510.05

묘하게도 사야지 사야지 하다가 타이밍을 놓쳐서 못 사고 계속 못 읽게 되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 중 하나다. 사야지 사야지 했는데 인터넷 서점 할인기간을 놓치고, 다른 살 책이 생각 안 나고 어쩌고 하다가 한참 뒤로 밀렸다. 이번에 도서관 들렀다 책이 있길래 운좋게 집어왔는데.

음, 보는 사람의 시점 나름이지만, SF라고 보기보다는 역시 길고 슬프면서 해피엔딩인 사랑이야기라고 보는 게 나의 관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해서 시간을 따라 왔다갔다 움직이는 헨리, 그리고 그런 헨리의 옆에서 마치 닻처럼 그를 지켜주는 클레어. 두 사람의 기나긴 사랑이야기를 그린, 어디까지나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맞다니까요!)

작가는 시간 퍼즐을 상당히 잘 짜놓았다. 이야기는 클레어의 시간을 기준으로 흘러간다. 헨리의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에는 너무 복잡다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도, 클레어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당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헨리는 모른다. 그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시간여행을 하는 쪽은 헨리이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 남아 있는 클레어 (그리고 독자)인 것이다.

클레어가 여섯 살에 시작된 이들의 사랑이야기는 무려 그녀가 여든 살이 넘을 때까지 계속된다. 헨리는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눈앞에서 모두가 보았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해서 나타나고 그 역시 나름 즐거운 삶을 살았다.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도 보았고, 마침내는 사랑하는 아내의 마지막까지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이런 게 작가의 처녀작이란 말이지. 가까운 덩치 좋은 나무를 찾아 질 좋은 끈을 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우울함에 젖어들게 된다. 이런 @#$$##@... 그런데 작가는 이걸 어떤 장르라고 생각하고 썼을까? (그런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은 처녀작이라고는 해도 작가 나이가 꽤 많다는 것. 85년에 학사학위를 받았다고 하고 책 출간은 2003년이니까 최소한 나이 마흔 가까이 되어서 쓴 거니까... 연륜, 연륜인 거야! (그렇게 우겨본다.)

이공학 박사 출신 SF 작가들도 있지만, 내가 재미있게 본 SF의 작가들은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다. 이공계 출신들은 각성해야 한다! 물론 아는 쪽이 오히려 더 어렵다고, 이공계들이 그 지식을 갖고 글을 쓰려니 도저히 상상력이 안 뻗어나가는 것도 이해는 하는데, 그래도 노력하자 공돌이들!

여하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상당히 슬펐다. 나름 해피엔딩인데도 슬프다니, 뭔가 참... 어쨌든 소재도 훌륭했고, 짜임새도 좋았고, 여러 모로 멋진 소설이었다. 혼자 이불 뒤집어쓰고 징징거리며 읽는 것도 나름 오랜만.
sandmeer
댓글 2
  • No Profile
    가루 07.10.07 14:32 댓글 수정 삭제
    호기심이 동해 찾아보니 품절이네요. 저도 도서관에 가야할 듯...
  • No Profile
    ida 07.11.08 03:36 댓글 수정 삭제
    으흠... 분당 이마트에서 페이퍼백 버전으로 팔고 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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