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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re] 몇가지 변명들

2007.09.07 14:3709.07

   이런 허접한 글에 이렇게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져오시니 되려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실 이 글이 완벽한 전개를 가지고 있는 날선 글도 아닐뿐더러, 보충이 필요한 굉장히 부족한 글이기때문에, 저는 사실 이 텍스트가 철학적 테제를 가지고 있다고는 별로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박가분씨가 올린 몇가지 답변에 대한 간단한 첨언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아서 타이프를 두드립니다. 어렵지는 않지만, 이 글을 읽어가는데는 조금 필요한 대목입니다.


  첫째로, 박가분씨가 지적한 이 글의 애매성입니다. 네, 이글의 문맥은 굉장한 '애매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단어사용과 문장은 명징하지 않습니다. 서로 상충되어보이는, 납득이 잘 안될 문장들도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도 그런 맥락주의적 문장을 전적으로 노리고 쓴 글입니다.

  사실 이 글의 첫번째 기획은 자크 데리다의 '해체'로부터 연원합니다. 데리다의 해체적 글쓰기를 한번 흉내내보자는 저의 시덥잖은 기획이 제가 3년전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거든요. 뭐 성공했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서로 반대되는 문장의 병렬과, 동어반복, 언어유희, 서로 상충되는 언어 배치, 일상적인 어휘의 기의들이 어느순간 비상식적으로 전회되는 여러가지 글의 요소들은 다분히 '데리다적 글쓰기'를 시도해보고자 했던 당시의 어줍잖은 필자의 시도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철학적으로 굉장히 논리정연하게 이 글을 이끌어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비트겐슈타인이나 데리다나, 니체나 모두 글들이 은유적이고 함축적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소위 말하는 '철학적 테제'가 본질적으로 논리적일 수 없다는 자기모순을 변증적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얻은 문필가이자 후기 구조주의 철학자인 파스칼 키냐르 같은 경우는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이란 저서에서 자신의 철학이나 구조주의 언어이론을 '동화Ma:rchen'로 써내어 발표하고 그 텍스트에 대한 자신의 해제를 '수필'로 써넣는 등 굉장히 해체적 글쓰기를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일단 글의 명징하지 못함, 갑자기 전회되는 단어의 낯선 사용 등의 문제들은 이런 데리다적 맥락에서 이해를 해주십사 부탁하는것이 필자의 작은 핑계라고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이 글이 이끌고 나가는 '정신사적 맥락'입니다. 답글 마지막 부분에 박가분씨는 이 '정신의 내적 개념이 철학사적 내적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첨언하셨는데요, 이런 '정신의 의미의 혼동적 사용'과 '다의적 의미확장'은 문맥적으로 위에서 언급한것과 비슷한 목적으로 일부러 그렇게 혼동스럽게 사용했음을 밝힙니다만, 무엇보다도,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는 정신이라는 용어의 주된 의미 사용은 철학에서 말하는 정신에 대한 테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연금술'적 혹은 낭만주의 미학적 총체성 개념으로서의 '정신'을 아우르는 의미입니다. 사실 이것이 이 글의 가장 중심적인 논의이기도 한데요, 제가 이 글에서 계속 '마음'과 '정신'을 양쪽에 놓고 싸움을 붙이는 식의 내용을 기술 한것은 다분히 연금술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예술 철학과 정신에 관하여>에서 보여지는 정신과 마음에 대한 테제는 철학적 테제가 아니라 바로 연금술적 테제라는 겁니다. 이 점이 데리다, 비트겐슈타인, 바르트의 입장과는 전적으로 다른 이 글의 독창성이라면 독창성일까요, (우하하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어쨌든 이 부분은 일상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간단히 몇가지 설명을 달아드리겠습니다.


  우선, 왜 하필이면 기존 형이상학에 대한 예술철학 (미학, 혹은 비평)적 비판을 하였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으로부터 시작해서 아도르노의 <미학이론>까지 맥을 잇는 미학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는데, 그것은 형이상학의 철학적 왕국의 완성은 예술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칸트와 아도르노의 이론에 제가 일부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두 책들을 읽어보시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가 동의를 할 수 밖에 없는 미학적 접근은 바로 노발리스가 제시한 낭만주의 미학이론입니다. 여기서 노발리스는 예술의 미적 근대성이 가지는 총체적이고도 '화학적'인 움직임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통합시키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며 예술 텍스트의 미학적 테제에 가장 핵심으로 작용하는 바로 그것이 에로스Eros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초기에 말한 자연변증법에서의 '에로스Eros'와도 연상이 되며, 무엇보다도 이 에로스의 에너지는 우리가 말하는 '사랑' 그 자체도 되면서, 연금철학적으로 물질계와 현상계 양 대극을 하나로 이어주는 제3의 물질 (마법적 에너지 - 에테르라고도 부릅니다)로서 에로스 그 자체를 말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노발리스는 죽기 직전까지 중세 영지주의자인 야콥 뵈메에 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야콥 뵈메는 카발리즘과 기타 신비주의에 정통한 자였고, 신비적 체험을 통해서 신지의 영역을 구축해야한다는 독일 영지주의의 마지막 불꽃이었죠. 노발리스는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예술의 미적 기능 (미학적 차원)에 있어서 에로스라는 프시케(숨결)을 불어넣어주면서 예술을 뵈메가 지적한 영지적 차원과 비슷한 차원으로 끌어올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발리스의 미학이론 - 그러니까 낭만주의 미학은 본질적으로 연금술적 대극요소를 기본 개념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금술에서 '에로스'와 양 대극(大極)적 요소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정신'이며, 그의 더 깊은 곳에 숨겨진 심연의 상태를 '마음'이라고 언급합니다. 저는 낭만주의 미학적 정신 바로 위에서 바로 후기구조주의의 해체적 접근으로 미학을 다시 쌓아보려는 다름대로 야심찬 프로젝트로 이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지금 보면 엉터리인 곳이 한두군데는 아니지만. 웃음)

하여튼, 이런 연금술적 의미로서 이 글에 등장하는 <프뉴마, 프시케, 에테르> 같은 전문적 용어는 철학적 어휘로 읽힐수 있지만, 동시에 본질적으로는 에테르적 아우라Aura를 동시에 내재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연금철학적으로 읽는다면, 헤겔주의가 말하는 변증법적 사유는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말한것처럼, 그 '방법론적인 탁월함은 인정하나, 그것을 전혀 다르게 써먹었다'고 선언하므로써, 연금술적 변증법으로 미학체계를 접근하려는 필자의 의도가 담겨있었다고 보시면 될듯 싶네요. (이걸 해체적 텍스트로 쓴다는게 이 글의 취지였기도 하고요)

연금술에 대한 이 글에서 두드러지는 내용들은 안드레이 아로마티코의 <연금술>(아마도 시공디스커버리 총서일겁니다)을 참조하면 될것 같네요. 그 밖에도 잡다한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베이스로 깔리긴 했습니다만.. (웃음)

  끝으로 이 정신과 마음을 '타자'로서 무의식으로 상정하는 저의 태도인데요, 이 부분은 굉장히 많은 의미가 복합되어있습니다. 주지하다 시피 현대의 모든 텍스트는 '언어의 덫'에 빠져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본문에서 언급한 바르트의 비평이론을 끌어다 쓴 이유가 있습니다. 바르트가 지적한 '공시의미' 즉 '비어있는 텍스트'라는 것은 하나의 표상Emblem으로 작용하는 기표에 지나지 않음을 지적하려 한 것입니다. 사실 바르트는 이 점에 있어서 "모든 것은 텍스트이고, 동시에 공시적이다"라고 선언을 내리므로써, 해체주의에 결정적인 방점을 찍어버렸지만, 그 기표가 가지는 상징적 교호작용 (그러니까 상징과 독자가 소통하는 교호적이고 아우라Aura적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지 알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는 텍스트, 언어에 대한 이론은 비트겐슈타인과 롤랑 바르트에서 가져왔지만, 그 '언어'를 소쉬르나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분절적 속성의 제단으로 파악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분명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모든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자들이 지적했습니다.) 언어가 하나의 '공시된 기표'라는 가정하에, 언어를 하나의 상징적 표상Symbolic Emblem으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예술텍스트의 모든 '기호' 혹은 '언어'라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일상어나 과학어처럼 분절적 지시적 속성을 가진 언어가 아니라, 완전히, 그러면서도 특히나 '공시적'이면서 '상징적 표상'이 되는 텍스트의 기표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칼 구스타프 융의 설명에 따라서 '상징'이란 것은 <리비도를 내포한> 상태이고 역동적 리비도로서 읽히는 자에게 교호작용을 유발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후기 구조주의 언어학의 입장에서 아주 이상하게도(?) 벤야민과 칼 융의 이론으로서 기표와 표상에 관한 입장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자면, 엄청나게 길어질 것 같기 때문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봐야 할 것 같네요. ^^

  아, 답글이라는 건 거의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달다보니 많이 횡설수설하고 어줍잖은 감이 있습니다. 조금 성의없이 쓰여졌으리라고 생각되는 부분들 (덜 다듬어져있고 구체적이지 못한)에 대해서는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좀더 구체적인 것은 따로 만남의 자리를 가지든지 쪽지를 통해서 해결해 Boa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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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7.09.08 01:59 댓글 수정 삭제
    ㅎㅎㅎ 그런 야심찬 기획이 숨어있다니요!!! 다만, 제 입장에서는 좀 힘들어 보입니다. 분절적 언어에 입각한 해체주의와 영묘한 에테르의 결합이라는 것은, 철학적 돌파라기보다는 후퇴에 가까워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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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7.09.08 02:12 댓글 수정 삭제
    차라리 해체주의에 입각한 후기구조주의적 저술을 좀 더 충실히 읽어나가면서, 그것이 마주친 한계를 보다 자세히 해명하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요. 데리다 역시 결국 해체의 막다른 골목에서 '해체불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의 친애하는 데리다는 유대교적 부정신학으로 퇴행합니다. 다른 이가 보기에, 해체는 그 절정에 이르러서, 본질적으로 순수한 타자성의 메시아적 형식만을 남기게 됩니다. 아무 것도 믿지 않고, 모든 것을 반성하고 회의하고, 모든 형이상학을 배격하다 보면, 끝에 남는 것은.... 완전히 불가해한, 완전히 신비스러운, 순수 타자적 형상 뿐입니다. 결국 후기에 데리다는 이것이야말로 해체주의적 윤리나 정치의 '정의'라 부르며 또한 그것을 '해체불가능성'으로도 간주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타자와 마주치는 결정적 순간의 끝없는 지연입니다. 이것을 '선택'해야 올바른 것이라 말하고요. 해체주의는 이런 빈 자리를 남기게 되는데, 저는 누가 거기에, 융을 집어넣든, 영지주의를 집어넣든, 카발라를 집어넣든, 아무런 해결책도 되지 못합니다. 그건 오히려 문제 상황 이전으로 초침을 돌려놓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의문이 아니라 비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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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7.09.08 02:28 댓글 수정 삭제
    물론 시도되지 못한 지평으로 훌쩍 뛰어넘는 모험도 좋지만, 그렇게 뛰어넘는 과정에 그만 놓쳐버리거나 충분히 해명-반성되지 못한 지점을 돌아보는 과정 역시 필요할 듯 싶습니다. 저 역시 공부가 더 필요한 대목이겠네요^^ 철학이라는 것도 어차피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인 동시에, 그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가능조건을 면밀히 탐사하는, 길고 지루한,(언뜻 보기에는 너무나 신선하고 기발한 철학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난삽하고 지루한 논의가 전개되었겠느냐는..뉴_뉴)작업이기 때문에, 현서님이 시도하시는 두 계열 간의 접합을 시도하기 전에,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해명의 작업이 별도로 필요한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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