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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아자르의 <책.어린이.어른>을 통해 본 어린이문학의 개념과 J.R.R 톨킨의 <<On Fairy Stories>>의 비교



1. 어린이, 어린이책

  어린이문학이란 무엇인가, 어린이문학은 왜 존재하며, 어떤 당위성을 가지며, 그 매체적 특성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가장 명확한 족적을 남긴 프랑스 문예사가인 폴 아자르는 본서에서 어린이 문학의 여러 질문들에 대한 몇가지 '답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 한국 아동문학에서 잘못 걸어왔던 오류들을 그대로 지적하고 있으며, 현재 활발히 진행되는 한국 아동문학계의 새로운 지침에 굉장히 시사적인 시금석들을 던져주고 있다.

  우선 아자르는 문학-사회사적 측면에서 어린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어른의 학문적 파시즘에 눌려 상상적 자유를 억압당한 존재로 상정한다. 이는 계몽주의 시대의 착오적 산물로 여기는데, 그에 의하면 루소의 교육방침도 이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점에서 어린이라는 단어는 계몽주의 시대에 '발명'된 것이며, 이는 어린이라는 단어가 발생시기부터 '어른의 지배를 받는' 가족 권위적 관계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아자르는 본서에서 어린이문학은 억압되었다고 주장한다. 원래 어린이책이 가지게 되는 본연의 '상상력'이 작가집단이었던 어른들에 의해 제단되면서 '교훈적 가치'를 준거로 재편되고, 그러므로 어린이책 본연의 특성과 매력들이 모두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역사적/사료적 텍스트에 근거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실제로 근대 이전에는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어린이 문학'도 당연히 존재하지 않았다. 작품 텍스트는 매체의 여하를 막론하고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공유되어왔다. 민담과 중세문학은 그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아자르가 지적한 '어린이책'의 개념은 근대 이후에 등장하는 '어린이에게 읽힐 목적으로 출간되는 책'으로 일차적 정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데, 이 점에서 어른들은 계몽주의적인 관점에서 '어린이에게 읽히는 책은 사회에 때묻지 않으면서 동시에 교훈적이어야한다'는 의미가 강압적으로 주입되었다고 비판한다. 사실 이는 어린이책의 '탄생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린이 책은 '어린이'라는 개념이 발견되면서, 즉 '기존의 고전문학과 다른 교조적 내용과 어린이의 수준에 맞는' 텍스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어린이에게 지극히 해로웠다는 것이다. 아자르는 그러면서 어린이들이 가진 감수성과 직관에 주목하면서, 어린이책이 가질 수 있는 독자적 매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린이란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창조적인 존재이며, 좋은 어린이책이란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펼쳐놓은 책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지적은 재밌게도 J.R.R 톨킨이 지적한 '요정이야기'의 매력과 거의 일치한다. 톨킨은 <<On Fairy Storie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창조적인 환상은 우리의 창고문을 열고 새장의 새처럼 가둬놓았던 일상의 모든 것을 날아가 버리게 할 것이다. ......진부하며 친근한 것들을 우리들은 합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억의 창고에 묶어두지만 그 순간 그런것은 우리의 시야를 벗어나며 환상은 그것을 모두 진부성으로부터 해방시켜 버린다."
  아자르와 톨킨의 주장의 가장 중요하고 공통된 점은 바로 기존 문학이론에서 가지는 교조적/미학적 관점에서 빠져나와 환상(아자르의 표현으로는 상상력)이 가지는 긍정적인 에너지에 주목하였다는 점이다. 단지 아자르는 이 환상의 향유대상을 '어린이'에 한정시키고, 톨킨은 이것을 '어른'에게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톨킨이 훨씬 더 진보적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아자르는 어린이문학의 가장 핵심적인 쟁점들을 꺼낸 최초의 이론가로 기록되어 있으며, 어린이문학계의 고전텍스트로 남아있다.


  2. 어린이문학의 장르적 경계

  위에서 언급한대로, 아자르는 어린이문학의 개념을 계몽주의시대의 산물이라 가정하고,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어린이를 위해 쓰여지는 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아자르는 본서에서 그 일례로 조나단 스위프트와 다니엘 디포를 예로 들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두작품은 어린이문학으로 쓰여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들이 자체적으로 흡수하면서 어린이문학의 멤버가 된 경우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루는 어린이문학의 기본 정의, 그러니까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를 독자대상으로 하여 쓰여지는 제반의 텍스트를 일컫는다"는 가정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쓰여지는 '교조적 작품들'은 오히려 어린이들에게 지극히 해로울 뿐이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해야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린이문학'이라는 것은 어떤 독자적인 문학-언어적 문법체계를 바탕으로 구축된 추리,SF,판타지,우화문학과는 달리, 특정 집단의 '자의적으로 만든 고전색인The Great Classic Index'의 개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아자르가 정의내린 '훌륭한 어린이문학의 개념'은 톨킨이 지적한 '환상문학의 가장 훌륭한 매력'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자르의 '어린이문학의 훌륭한 점'은 톨킨이 지적한 의미에서 '가장 훌륭한 환상문학의 의의'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아자르는 '독자적 문학'으로서 어린이문학을 말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가 향유할 수 있는 어린이책'으로서 어린이책과 어린이문학을 고찰하였기 때문에, 이에 기반한 어린이문학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어린이문학의 개념과 완전히 상반되고 있다.

  첫째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동문학은 크게 두가지로, 즉 환상성이 가미된 작품과, 현실적인 작품으로 나눈다. 이 카테고리에서 '아동문학'의 명제는 '어린이들을 독자층으로 쓰여진'이라는 가정으로 상정한 매우 모호한 장르개념이다. 여기에는 어떤 장르문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독자적 특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청소년의 시기에 읽기 적합한 작품'이라는 자의적 구분으로 작품을 '골라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동문학 작품을 나누는 이 두가지 기준은 실제 문학텍스트를 '환상성'과 '리얼리즘'으로 구분하는 문단의 분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뇌스트링거의 성장소설인 <언니가 가출했다>의 경우, 이 작품을 아동청소년문학이라는 장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권장도서'의 수준에서 해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이지, 문학적 접근은 아니다. 장르를 가르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예학적 특징은 그 미학적/형식적 구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일상적으로 인식되는 어린이 문학은 어떠한 장르적 특성과 독자적 카테고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점은 어린이문학을 고찰하기에 앞서 반드시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다.
  반대로 어린이 문학의 전반적인 (절대다수가 차지하는) 환상성에 비중을 둔다면 아자르와 톨킨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줄 수가 있다. 이는 톨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재적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는 복음적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작품내의 환상적 2차세계가 독자의 시야를 회복시키는 효과에 대해서는 아자르 역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예로 들면서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p.129) 어린이문학의 특징이 교훈적이 아니라 '복음적'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전반적인 어린이문학이 일정한 문학적 '경향'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톨킨과 아자르가 지적한 '내재적 리얼리티'와 '환상적 감수성'에 기반한 것이지, '어린이 독자층을 대상으로 한 작품텍스트'가 아님은 분명할 것이다. (이 목적으로 쓰여진 텍스트의 결말이 얼마나 비극적인 것인지 본서에서 아자르는 아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3. 비판적 검토

  물론 톨킨은 아자르보다 훨씬 후대의 작가였기 때문에 아자르보다 훨씬 진보적인 주장을 펼친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아자르의 '어린이문학'에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존재하는건 당연하다. 우선 아자르는 톨킨처럼 '문학의 멤버로서 어린이문학'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 명백한 증거는 아자르가 '고전 요약본'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입장을 취했다고 하는 것이다. 즉, 어린이에게 책이란 것은 '상상력을 즐기기 위한 장'이 될 뿐 문학적 즐거움과는 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안데르센과 콜로디를 예로 들면서 미학적 특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어린이책은 '어린이의 상상력 유희'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어린이책을 문학의 멤버로서 인정하고 고찰하려는 시도는 거의 보여지지 않는다. (사실 간과했다기보다는, 그 입장에 대해서 전혀 쓰여져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점은 릴리언 스미스의 <아동문학론>에서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 아자르는 이러한 '문예적 비판'을 상당수 놓치고 있다. 어린이책의 이러한 '상상력의 창' 역할이 어린이문학의 일차적 특징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현대에 도저체 깔려있는 수많은 유희적 매체들 (게임, 만화영화, 비디오 등)이 모두 어린이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해야할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톨킨의 이론이 진보적이라는 유추를 끌어낼 수 있다. 톨킨은 어린이문학이 가지는 특징들이 어린이의 전유물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의 어른들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라고 역설하면서 이런 경향의 문학적 특성을 '복음적'이라고 결론짓는다.

  또한 지나치게 북유럽적 정서에 기대고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물론 문예사가라는 그의 천성이 여기에 기반하고 있겠지만 어린이문학의 성질을 '상상력'과 '민족적 정서'라는 단일적 관점으로만 해석하므로써, 알퐁스 도데나 에리히 케스트너 등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환상성과 아름다움으로 놓치고 있고, 아시아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어린이문학의 특성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가 될 것이다. (물론 아자르가 본서를 저술할 당시 아시아에는 아동문학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이 당시가 민족주의를 부르짖을 수 밖에없었던 시기였던것은 참작해야할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어린이문학, 혹은 '환상텍스트'에 대한 매우 뛰어난 시각을 가지고 고찰한 의미있는 저서이며, 어린이문학을 연구하거나 고찰할 때 반드시 가장 먼저 읽어봐야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어린이문학의 가장 커다란 매력을 매우 명쾌하게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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