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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국내소서 란에 <밤 너머에> 리뷰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글이 어렵다는 건 괜찮습니다.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문제의식이 무위로 돌아갔다는 걸 확인하는 건 사실 좀 힘든 일입니다. 제 문제의식은 별 거 아닙니다.

원래 작가든 평자든 글에 대한 "저항"에 마주치는 건 당연합니다. 애초에 제 리뷰 대상에 대해서 분명 목격했던 것도 일종의 저항이었습니다. 저항이라는 말을 할 때 정신분석가가  분석 와중에서 마주치는 저항을 말하는 것입니다. 전 여기서 그리 어려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군가 환자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할 때, 그리고 그게 단순히 말해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느낄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대상이 우리가 기존에 즐기던 방식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의 고유성을 애써 덮어버린다든가 얼버무리려 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주 근본적인 것이 내기에 걸려있습니다. 여기서 비평가와 분석가의 목표는 일치합니다. 그 저항을 일으키는 지점을 장확히 가격하는 것입니다. 목표란, 그 대상이 무엇인지 밝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저항은 원래는 무의식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일종의 "보증"을 요구하는 심리입니다. 그걸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 횡설수설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것은 상기했듯이 정확히 대상을 비껴나가려는 것, 말하자면 대충 커버하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평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는 건 실례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분류를 하자면, 그냥 어렵다는 단순한 감상과, 어떤 장르적 규칙을 염두에 두고 작품의 수용자측 효용에 대해 이야기한다든가, 작품 비평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학적 현상을 말하고 맙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런 기존의 평의 대상은 <밤 너머에>가 아니여도 좋습니다. 결국 대상을 비껴가는 것이죠. 사실 아무래도 좋은 정도의 범용한 작품이라면 그런 취급을 받아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인상을 말하자면 그런 것 치고는 <밤 너머에>는 그것보다 강하게 "의식되고" 있었습니다. 아니라면 작품에 대해 단순한 덕담을 나눈 것이겠고요. 전 사람들의 진정성을 믿었기 때문에 단순한 덕담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제 글마저도 "저항"을 받는 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저항은 대체로 제가 어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혐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문제제기를 중립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좋은 일은 아니죠. 작품이 어떻게든 "처리되길" 고대하던 기대심리 자체보다는, 여전히 대상은 정면으로 다루어지지 않은 채 향유되고 있으니까요. 제 평에 대해 지적된 모든 악덕들을 감안하고서라도, 저에게 걸어졌던 어떤 낯선 기대를 대면한다는 것은 당황스러운 일입니다.(<--이것이 가장 저를 당황스럽게 만드렀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모종의 기대를 걸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독자들이 대상(jxk님의 작품)을 가지고 즐기는 방식을 규정하는 "큰타자"인 것처럼 어느새 이카루스처럼 높이 비상했다가, 최종 순간에 본의 아니게 풍덩 빠져버리는 양상인 것 같습니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최종 순간 자체를 위해서인 양.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저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믿습니다. 게다가 그런 진정성에 덧붙여, 고전적인 분석 단계를 따른다면, 그 기대를 보다 철저하게 배신하는 게 정답인 듯 합니다. 배신이란, 저 자신과 작품 자체를 보다 내려놓는 일이 되겠지요.

해서, 거창하게 되어버렸지만, 큰 시간 투자하지 않고(이렇게 된 것은 저 자신의 즐김을 홀로 향유했기 때문이고 이것이 야유의 이유가 되겠습니다) 제 자신이 생각한 jxk님 소설의 고유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장 소박한 차원에서, 다이제스티브하게 제시하겠습니다. 제 자신의 개인적 사유와 아무런 관련 없이. 왜냐하면 그 고유성을 건너뛴다는 게 제 불만의 요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역시나, 큰 기대는 금물입니다.
댓글 2
  • No Profile
    as 08.03.04 16:03 댓글 수정 삭제
    멋대로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했다는 부분에 상당히 당황하신 모양이네요. 그렇게 말한 사람으로서 죄송해지네요 :)

    요약판 기대하겠습니다. 깨달음의 빛이 내려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니 그 점은 부담갖지 마시고, 요약본은 조금 덜 즐겁더라도 독자를 생각하고 써주소서.
  • No Profile
    박가분 08.03.06 00:43 댓글 수정 삭제
    죄송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문제제기이든지 그 나름의 긴장을 함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필연이지요...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 "중립적인"견지의 문제제기는 없으니까요.
    저의 그것도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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