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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금까지 비평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오고 있었지만, 거울에서 행해진 일련의, 그러나 많지는 않은 이런 저런 평가 감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본 적은 없고,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정확히 바로 그것이다.

  내가 비평에서, 지켜져야 할 원칙들로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다음과 같다는 것이다. 우선 비평은 창작과 별개의 영역이다. 그 점을 혼동해서는 안되며, 비평을 제2의 창작이라 말하는 세간의 소문을 믿고 행하는 월권행위들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건"은 창작에서 일어난다. 비평은 무에서 유가 창출되는 그러한 "사건"(이런 부분은 굳이 문학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의 증인이 되는 것에 그 역할이 있다. 이런 점에 의거하여 나는 해체주의라고 불리는 어떤 조어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원리를 도출하자면, 방금 전의 원리가 일종의 겸손한 외양을 띠었다면, 이제부터의 원리는 대단히 특권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이는 방금 전의 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즉 비평은 작품에 대한 객관적 독해의 권리를 선점해야 한다. 이 점이 비평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정치적인 비평이 가장 훌륭한 비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즉 비평을 한다고 나선다면, 그러한 독해의 기준을 소유하고 있어야하며 그것을 관철시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여기서 비평은 다음과 같은 태도에서 벗어나야한다. 즉 스스로르 상대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독자로 자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비평가는 작가와도 뚜렷이 구분되어야하지만, 또한 일반 독자의 태도, 혹은 독서 대중으로부터 절연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독자 중의 한명으로서의 감성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라는 연막전술은 비평의 태도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그 무엇이다. 비평을 한다는 것은 "견해"에 대해 가치절하를 하는 속에서,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는 것이다. 비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견해를 가진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여기서 일련의 비평들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겠다.

  jxk160라는 작가의, <밤 너머에>에 대한 일련의 반응들이, 그것도 비평/감상이라는 외양으로 독자의 입장의 넋두리나, 독서 와중의 고충, 오락성 여부로 한정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그의 글이 상대적으로 많은 리뷰를 낳았다는 것은 그의 글이 그만한 비평가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되며, 따라서 내가 올릴 어떤 졸글이 과대망상증적인 견해가 될 가능성을 한결 덜어주었다는 것에서는 기쁘다.

  어찌됬든, 내가 그의 글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비평하는 입장에서 "읽기 힘들었다." "어렵다"라는 것"만"을 굳이 반복해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비평하기 졸라 귀찮다"(나는 이게 사태의 외설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말은 굳이 선의의 표현으로 에둘러 말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아닐까?" "jxk님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닐까?"라는 식의 폭로의 제스처는 상대가 이미 임금님이라는 어떤 전제에서 출발하여서, jxk라는 골치아픈 작가가 일으킨 소동과 관련하여, 작가에 대한 기분 좋은 화해의 무드를 조성하지만, 이 역시 충분히 철저하지 못하다. 상대는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그런 소망은 비평 본연의 욕망이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여러분들이 jxk의 소설이 여럽다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은 비평의 이유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모든 텍스트에 대한 비평의 출발은 그것이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는 점, 독자 입장에서 걸려넘어지는 텍스트라는 점, 목에 가시처럼 걸린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텍스트가 읽는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평의 동기가 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비평을 할 때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은 "독해력"이지 감수성이 아닌 것이다. 고로 어떤 글이 어렵다는 것은 비평이 내세울 어떤 변명이 아니다. 어떤 텍스트가 자신의 감수성에 들어맞지 않고 혼란을 일으키는가? 그럼 그 때는 당신의 감수성을 재점검하고, 당신의 오성과 상상력의 인식범주들을 조율할 시간이다. 당신의 취미의 기준을 다시 짜맞추는 것,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판단의 척도롤 날카롭게 벼리는 것, 바로 비평의 시간인 것이다.

  여러분들이 걸려 넘어간 함정은, 어떤 대단한 작품과 심오한 상징적 세계가 어딘가에 따로 존재할 것이라는, 상대주의적 사고관이 항상 전제하는 일종의 '쥐구멍'이다. 그런 생각을 버린다면, 애초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식의 폭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jxk160의 소설에 대한 나의 양보할 수 없는 판단은 다음과 같다.
  - 그의 소설은 여러분들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텍스트를 읽는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텍스트에서 그 이상의 유추를 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안 읽히는 텍스트가 어디 있는가? 반대로 여러분들이 쉽게 읽어나가는 텍스트들은 또한 얼마나 평이한가? 반대로 그것 또한 충분히 "어렵게" 읽힐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이것은 상대적인 문제이므로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고등학생들에게 인터넷 판타지 소설만큼 쉬운 소설도 없겠지만, 그것이 수능지문으로 나온다면 그것만큼 어려운 것은 또 무엇인가? 텍스트의 난이도는 그것에서 무엇을 발견하려 하느냐 하는 의도와 독서의 맥락, 그리고 독서행위의 코드에 좌우되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유의미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의 소설에 심오하거나 상징적인 것(텍스트를 텍스트 이상으로 만드는 것, 가령 종교적 경전이나 명상록 대표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조심스러운 결론이 아니라, 애초에 자명한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게 함정에 빠지지 않을 유일한 길이다. 소설에 나오는 명상적 단상, 상징적 장면, 회상, 맥락이 단절된 세계, 이런 것들은 일종의 소설 내적 '장치'(혹은 나는 함정이라 부르겠다)로서 취급되어야 한다.
  -그의 소설은 '축자적'으로 읽어야 한다. 가령 카프카를 읽을 때 많은 비평가들이 함정에 빠진 이유는 카프카의 무미건조한 관료세계에서 그 이상의 함의와 상징 그리고 유대교적 신비들을, 카프카의 세계에 정확히 부재하는 그러한 것들을 발견하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 작가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그의 소설은 환상문학이 아니다. 혹은 환상문학에 대한 패러디나 조롱이 될지는 몰라도, 그 이상은 아니다. 왜냐하면 장르적 쾌감을 부여하는 "총체적"이고 "완결된" "세계관"이 정확히 그의 소설에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서는 세계관조차, 낭만적 대리경험의 지평이 아닌, 일종의 정밀한 부품들의 연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소설에 대한히 파편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작가는 그런 잡동사니 부품들을 가지고 "신화"를 만드는 데, 이것은 상당히 재치 있는 시도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세계는 유머러스하다. 결코 고행처럼 읽어나가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내가 내기를 하나 하자면, 만약 그의 소설(날개의 피)을 가지고 공중 앞에서 낭독회를 연다면, 그 자리는 아마 웃음 바다가 될 것이다. 혹은 그렇지 않다면 그 공중은 센스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러한 내 견해가 얼마든지 반론 가능하다는 것을 나 자신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양보 할 수 없는 부분은, 이 책이 "읽히지 않는다면" 비평하는 입장으로서는 이런 저런 장치를 고안해서 "읽히게 만들어야"한다는 점이다. 혹은 다른 독해의 "전제"를 자신의 사유 속에서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독서 가능한 전제들을 사유하는 것, 그런 장치들을 고안하는 것, 어떤 독해의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창출하는 것, 이것이 비평의 활동이 일반 독서대중의 활동과 다른 부분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최악의 비평이다.  
박가분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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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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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의 피를 보면서 웃지는 않았던 지라.. 저는 센스없는 공중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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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8.02.27 14:08 댓글 수정 삭제
    제 말은, "낭독"을 할 때 모두가 웃게 될 거란 말이지, 웃지 않는 사람들은 센스가 없다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머랄까 우리가 웃지 못하는 건, 독자로서 한 작품을 대면하는 고독한 상황에서 각을 잡게 되기 때문이랄까요? 하지만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다면 저는 분명 굉장히 웃긴 내용으로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것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크게 웃지는 않았습니다ㅎㅎ 비록 이 소설에도 일종의 실험적인 로맨스가 성립하는 구나^^ 작가의 로맨스 개념은 참 기괴하면서 뭐랄까 원초적이구나... 하며 언뜻언뜻 미소만 지었을 뿐.

    아마 맨 마지막 부분이 압권이 아닐까요?? 그때만큼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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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하 08.02.27 15:16 댓글 수정 삭제
    ‘나의 양보할 수 없는 판단’들 중 특히 첫번째에 동의합니다. jxk160님의 작품들에 대한 감상들은 정도의 차이일 뿐 “이해할 수 없었다” 내지 “이해했다고 생각해서 감상했지만 나도 확신할 수 없다”고 고백해왔다고 생각해요. jxk160님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비평이 있어야 할 자리를 대신했던 방어적인 태도의 감상들은 제 할 일 대신, 거칠게 말해서, jxk160님을 박제하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jxk160님의 작품들에 대한 독서는 단지 프로토콜의 문제일 수 있는데, 그것을 지적한 사람이 없다는 것은 jxk160님의 독자들이 단 하나의 프로토콜만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일까요?
    그런데 이 글은 왠지 서문처럼 느껴져요. 혹시 이번 호 국내소설 꼭지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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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skalai 08.02.27 15:19 댓글 수정 삭제
    으악 이건 반칙이어요! 박가분님이 이번에 리뷰 쓰신다길래 그나마 같이 올라가면 몰라도 그 후에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서둘러 썼더니 며칠 전에 이런...... 써놓은 리뷰를 폐기하고 싶어지잖습니까 어헝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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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서하 08.02.27 22:42 댓글 수정 삭제
    와, 57호가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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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3.02 23:40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일련의 비평들이라고 하셨을 때, 범위를 명확히 하셨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분명한 쪽이 오해의 여지를 없애고 하고자 하는 말의 요지를 더 뚜렷하게 나타나게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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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08.03.04 22:25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입에서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난 것이라 하였는데 어째서 홍시맛이 나냐고 하시면..."
    '벌거벗은 임금님'이야기가 나온 걸 보면 지난 호 제 리뷰와도 관계가 있을 듯 하여 몇 자 적고 갑니다. 토론할 만큼의 의지를 불어넣게 하지는 못했지만 흥미로운 글이네요. 지난호의 절영독경은 <밤너머에>라는 하나의 책이 아니라 작가 자체에 대한 단상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정도의 글이지요.(끄덕) 그래도 몇 자 용기있게 적은 덕분에 여러가지 반응이 터져나와 저는 배부른 기분입니다. 앞으로 박가분님의 비평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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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8.03.06 00:46 댓글 수정 삭제
    절영님이 느낀 것에 제 경험을 덧붙인다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 거라면 저 역시 마찬가지인데, 사람들은 난해한 홍시맛이라고 하더군요... OTL
  • No Profile
    as 08.03.06 11:41 댓글 수정 삭제
    어라. 전 난해한 홍시맛이라고 한 게 아닌데요. 그게 홍시맛인지가 전달이 안된다는 거죠 ㅁㅅㅁ;

    (아, 그리고 지금 댓글다는 이 글 쪽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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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8.03.06 15:20 댓글 수정 삭제
    농담으로 받아들여주셍(...)
  • No Profile
    as 08.03.06 18:05 댓글 수정 삭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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