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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개인적인 생계업무(-_-) 사정으로 들어올 기회가 거의 없다가, 간만에 들어왔더니 아주 재밌는 글이 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대부분 매우 동감하면서 읽었고, 아주 날카로운 지적이라고 생각하며, 제가 느끼던 이쪽계열의 고질적인 문제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요컨데, '감상'과 '비평'은 구분되어야한다. 정도가 되겠군요. 아주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게 이 게시판 카테고리인데 말이죠.
  글을 읽다가 잠깐 여쭤볼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띄우게 되었습니다.
  박가분씨께서 아주 일목요연하게 '감상'과 '비평'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렇다면 여기서 다시 비평의 범주에 대해서 박가분씨의 생각에 호기심이 닿아 타이핑을 하는 거랍니다.
그러니까,

>  여기서 또 하나의 원리를 도출하자면, 방금 전의 원리가 일종의 겸손한 외양을 띠었다면, 이제부터의 원리는 대단히 특권적인 태도이다. 하지만 이는 방금 전의 원리와 불가분의 관련을 맺는다. 즉 비평은 작품에 대한 객관적 독해의 권리를 선점해야 한다. 이 점이 비평을 정치적으로 만드는 것이고, 정치적인 비평이 가장 훌륭한 비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즉 비평을 한다고 나선다면, 그러한 독해의 기준을 소유하고 있어야하며 그것을 관철시켜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  여기서 비평은 다음과 같은 태도에서 벗어나야한다. 즉 스스로르 상대주의적인 견해를 가진 독자로 자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비평가는 작가와도 뚜렷이 구분되어야하지만, 또한 일반 독자의 태도, 혹은 독서 대중으로부터 절연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독자 중의 한명으로서의 감성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라는 연막전술은 비평의 태도에 있어서 가장 해로운 그 무엇이다. 비평을 한다는 것은 "견해"에 대해 가치절하를 하는 속에서,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를 하는 것이다. 비평을 한다는 것은 어떤 견해를 가진다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이 부분에 대한 것인데요, 작품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세밀하게 따지자면 비평이 아니라 '분석'의 영역입니다. 이것은 대개 영미 신비평가와 형식주의자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구조주의의 합류로 굉장히 다채롭게 퍼져나간 일종의 '방법론'입니다. 미학적 차원에서도 이해가 될 수 있겠구요. 분석은 하나의 장르 매체가 장르매체일 수 있는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고, 그런 특징이 얼마나 '조화롭게' 그리고 '특징적으로' 꾸며졌는가를 말 그대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것이 '서사 분석'이 있겠지요. 서사는 '플롯'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플롯의 탄력성과 내연성이 얼마나 긴밀하고 유기적 관계를 가지고 상호 관계를 맺고 있는가, 그것이 서사를 밀어나가는데 얼마나 추진력을 보태는가 따위를 작품 텍스트를 바탕으로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이를테면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처음에 나오는 프랑스 혁명 이야기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과 자살'이라는 테마를 끌어오기 위해서 하나의 역사적 사실, 하나의 화폭에서 '죽음'이라는 이미지만을 잘라내어 언어의 이미지로 빼오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사회와 죽음의 단절적 관계의 '이미지들'은 작품의 서사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의 부모님과 형의 죽음, 애인의 자살에 단절적으로 이어지며 서사적 추진력을 보태주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쉬클롭스키의 <예술의 기술>이나 클라이언스 브룩스의 <소설의 분석>에서 자주 사용되는 방법입니다.

  그러니까 문예(특히 소설)분석은 하나의 텍스트를 외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 간주하고 그 안의 유기적 관계의 긴밀성과 미적 건축성에 대하여 고찰하는 (나름) 과학적인 방법입니다.


  비평은 이보다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집니다. 일차적으로 비평에는 '분석'의 개념이 들어갑니다. 조금 생각이 있는 비평가들은 모두 이런 분석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비평을 이야기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예전에 썼던 영화 <판의 미로>에 대한 비평의 경우, 저는 그 글에서 <판의 미로>를 '불멸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의 우화적 전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영화에는 수많은 원형상징(동화에 등장하는 동심적 세계관과 켈틱 양식의 미로문양같은)이 내포되어있고, 그것이 전쟁중의 현실세계와 충돌하는 것이 작품의 기본 테마이기 때문에 저는 '신화적 관점'에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이는 물론 구조적 분석이 바탕하고 있긴 하지만, 비평의 포커스는 그 보다는 작품 안에 담겨있는 '상징작용들의 역학관계'에 주안점을 두었고, 굳이 분류하자면 제가 쓴 글은 '신화비평'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제가 쓴 <판의 미로>에 대한 비평은 신화적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이 작품을 델토로의 전작 <악마의 등뼈>와 연결하여 그의 B급장르적 취향과 '어보민'등의 색채들과 연관하여 글을 쓸 수 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델토로 감독 자체의 영화적 심미안과 작가적 테마를 바탕으로 <판의 미로>에 대한 글을 풀어나갈 수도 있겠죠. 이런 경우에는 '작가주의 비평'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에서 어스시와 크라바트를 거들먹거리며 작품을 해석하면 '장르비평'이 될 수도 있으며, 하야오의 자연과 문명의 비판-녹색주의성향과 연관하여 이 작품을 '에코 페미니즘 비평'으로 글을 쓸 수도 있는거죠. (실제로 하야오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에코페미니즘 비평글은 제법 됩니다.)

다소 장황하게 써놨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겁니다. '분석'은 문학텍스트를 객관화하려는 과학적 시도인데 반하여, 비평이란 것은 비평가(혹은 독자)가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하나의 핵을 중심으로 하여, 논리정연하고 호소력있게 써가는 '2차텍스트'를 말하는 겁니다. (물론 롤랑 바르트는 이런 의미에서 비평을 '텍스트의 완성자'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술 텍스트의 메타텍스트, 그러니까 비평은 비평가의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서 논지가 전개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그러므로해서 '사회적 칼럼'이나 '공론장'과 마찬가지로 소통의 여지를 열어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날카로운 비평일 수록 더욱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열린 텍스트여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이고, 박가분씨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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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가분 08.03.23 22:36 댓글 수정 삭제
    입대 전이라 시간이 촉박해서 길게 못 다는 거 용서해주세요. 물론 공론의 장으로서의 비평은 저도 환영하고요. 물론 나쁘지 않습니다. 시간이 급한 관계로 제 "주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리 못박아 두어야, 충돌이 일어날 여지가 더 적을테니까요.

    일단 전 남들의 "주관" 같은 거엔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주관을 존중한다, 타인을 존중한다, 개방된 구조를 지향한다, 억압적 동일성을 거부한다, 머 이러면서.......... 공적 영역을 이야기하는데, 전 제발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둘을 좀 분리를 했으면........ 딱히 어느 누구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소위 탈근대 먹물 먹은 분들 경향 전반에 대해 그런 생각이 드네요. 사실 까놓고 말해서, 그런 포스트 모던한 분들의 진짜 지향은 정치적 올바름이 관심사가 아니라, 상기한 공적 영역을, 아이러니와 유희와 패러디로 점철된 살롱으로 만드는 게 진짜 관심사일테니까요. 적어도 저는 롤랑 바르트는 그 부분에서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해서 마음에 듭니다.

    "주관"에 관심없다고 했지만, 정말로, 제가 전범으로 생각하는 비평은 남들 듣기 좋은 사탕발림을 하거나, 최대한 공정한 척을 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게 아니라, 애초에 사람들을 생각하게 강제하는 폭력적인 비평입니다. 그게 비평과 예술 전반을 궤뚫는 모더니즘 정신의 핵심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 전범이고요. 저는 뼛속 깊이 포스트모던을 혐오합니다. 타인의 주관이라는 게 대체 어딨습니까? 주관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성과, 뭐 해석의 열림과,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은 그건 비평이 아니라 그냥 다른 거리두기를 하고 싶은 거겠죠. 저는 그게 성매매가 사람들을 성적관계에서 소외시키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비평이 아니라 인간관계 이야기를 할게요. 그런 식의 탈근대적-상대주의적-타자 관용적 태도가 얼마나 타인의 타자성을 손쉽게 블라인드 처리하는지, 혹은 그것을 자기 멋대로의 향락으로 흡수하는지를 떠올리면 되겠네요. 우리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비슷한 관용적 태도를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여기서 양해의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저는 지젝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할게요. 아마도 현서님이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는 (언급하신 역사적) 비평은, 비유하자면, 제가 보기에는, 실제로는 섹스를 하면서 이면에서는 타인을 자신의 환상의 재료로 삼아 자위를 하는 거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그 환상의 재료가 되는 타인은 에코페미니즘적 타자가 될 수도 있고, 다른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타자가 될 수 있겠죠. 하야오가 에코 페미니즘적으로 읽힐 수 있군요! 와우! 하긴 왜 다른 방식으로 못 보겠습니까? 그런 비평 혹은 섹스는 얼마나 관용적입니까? 혹은 얼마나 폭력적입니까?

    저는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변증법적 유물론자이기 때문에, 현서님이 자명하게 생각하는 이분법들이 전혀 자명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1차 텍스트와 2차 텍스트?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물론 비평은 겸손해야하지만, 그리고 2차 텍스트이건 맞지만, 결코 다르게 얼마든지 해체되고 재조립될 수 있는 레고 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작품이 단순한 비평가의 재치에 의해 재구성된 2차적 텍스트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우리는 작품에 대해 더 편한 거리감을 둘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혹은 달리 말해서, 하야오의 작품을 읽으면서 우리는 논쟁을 하면서도, 작품이 우리 의식의 환상적 배경장치에 주었던 충격은 고스란히 비껴나갈 수 있겠지요. 판의 미로가 제기하는 극단적 평행세계와 도무지 해소될 수 없는 이율배반에 대해, 우리는 그것의 심미적 효과만을 서술하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매우 편한 일이 되겠지요.

    다시 정신분석적 참조점으로 돌아가봅시다. 요약하자면, 현서님이 생각하는 비평은 제가 보기에는 "쾌락원칙" 안에 있지만, 제가 염두에 두는 이상적인 비평은 "쾌락원칙 너머의" 죽음충동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주체와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는 작품이 유의미한 질료를 가지고서 주체의 이런저런 유동적 정체성의 재료롤 공급하고 주조해내며, 주체는 마치 쇼윈도에 비친 자기 모습에 자기가 뻑가는 그런 나르시즘적 비평가/감상자가 되겠지요. 신화적 비평이든 뭐든 말입니다. 이건 정확히 후기자본주의의 소비양상과 다를게 없습니다. 여기서 비평가와 감상자의 역할은 점원과 소비자의 역할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올바르게 생각하는 (특권적) 비평의 기본 방향은, 주체가 작품과 조우할 때 겪는 최초의 임팩트입니다. 작품은 여기서 상품이 되길 멈추고, 비평가는 더 이상 소비자가 되기를 멈추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죠. 여기서 작품은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되고, 오히려 주체가 자기 상실과 분열을 겪을 때, 그러한 최초의 충격을 끝까지 밀고나가 공허에 도달함으로써, 진정한 자기인식에 도달하는 게 되겠지요. 어떤 탈근대적 땜방질도 없이 말입니다. 여기서 비평가가 친절한 종업원 행세를 할 필요는 물론 없습니다. 여기서 비평의 성공 관건은 얼마나 독자에게 그런 파장을 미쳤느냐가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일관되게 지젝이 정말 부럽습니다.

    여기까지는 제 "주관"이었을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길어졌네요. 휴가 나오고 다시 뵈길 바랍니다.^^ 훈련소 입대 하루 전이라 머리가 폭주할 것 같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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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서 08.03.28 05:23 댓글 수정 삭제
    이 글을 박가분씨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위에 상기한 저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은 아닙니다. 일단 저는 박가분씨가 쓴 글에 대한 저의 몇가지 질문을 쓴 것에불과하지, 저의 주장을 쓴 것은 아님을 일단 밝히겠습니다. (물론 비평에 대한 저의 시각은 상당부분 녹아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것이 제가 보는 '예술관'은 아님을 여기서 분명히 밝히겠습니다.)

    저는 제가 한 주장(저 위에 쓴 글은 제가 3년쯤 전에 생각했던 내용들이에요)에 대해 100% 동의하거나 확신하는 편은 아닙니다. (저는 심지어 저의 주장 자체를 회의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박가분씨의 이야기에 어느정도 동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 박가분씨는 예술 텍스트에 대한 비평적 접근이 아니라 미학적 접근을 보여주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비평은 공론장 그 자체를 의미할 수도 있을 뿐더러 비평의 영역은 본질적으로 말씀하신 '권력적' 관계를 상정하기 때문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의 텍스트 읽기와 비평에 대한 시각은 바르트를 따라가면서도 일부 반대하는 이유중 하나가 텍스트를 '조립'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소비적 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가면 무도회같은 놀이에 가깝습니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TRPG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굉장히 길어질거 같은 여기서 잘라내겠습니다.) 이것은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재료로 하여 유희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에 어느정도 나와있으니 그 부분을 참고하시길 바랄게요.

    단, 예술매체와 인간 사이의 1:1 감상관계에 있어서는, 그러니까 박가분씨께서 언급하신 그 '미학적 부분'(제가 볼땐 그 뉘앙스가 매우 강합니다)에서는 매우 동의할 수 밖에 없으며, 이 부분은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박가분씨가 한가지 오해하실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하자면, 저는 절대로, 그리고 결코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도 없는 본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생각이나 주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테오도르 아도르노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저 역시 변증법 적 유물론자와 비슷한 입장이 될 수도 있을법하지만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가까운 주장을 펼친 사람은 어쩌면 노발리스일지도 모르겠군요. ^^
    (뭐 노발리스부터 루카치를 거쳐 벤야민/아도르노까지 모두 같은 계열에서 미학을 다룬 사람들이고, 실제로 사상가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저 넷을 주저없이 꼽는 편입니다.)

    어쨌든 군대에 입대하시니,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뵙고 싶군요. 이건 지면을 통해서 할 수 있는 논의는 아닌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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