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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9, 41, AKIRA

2009.09.03 22:3909.03





AKIRA - Katsuhiro Otomo

http://akachaos.textcube.com/84



한 독특한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다. 대전격투게임의 캐릭터인데, 성질은 더럽게 생긴 놈이 기술 커맨드는 요상한데다가 필살기가 팔에서 무슨 살덩어리같은 게 뻗어나오더라. 좀 미친 놈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개성이 있어보여 좋아라 했는데 훗날 리메이크한 작품에서는 다른 캐릭터는 다 있는데 그 캐릭터만 쏙 빠져있었다. 알고보니 그 캐릭터가 어떤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를 오마쥬한 것이었는데, 저작권문제때문에 출연을 못 시켰다고 하더라. 애니메이션 비교그림을 보니 이게 이렇게 똑같을수도 없는거다. 그러자 이 캐릭을 노숙자로 만들어버린 녀석의 정체가 뭔지 궁금해졌고, 이 만화를 보게 되었다. AKIRA, 원작의 이름이었다.

웃기는 말이지만, 난 에반게리온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면서 에반게리온을 싫어한다. 사골게리온이라 불리는 지나친 우려먹기나 빠들의 열광, 혹은 설정놀이때문일지도 모르고 주류와 유명한 것을 부정하는 성격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을 받은 대개의 작품들이 지나친 설정과 허세짓으로 작품성보다는 캐릭터 하나를 팔아먹기 급급한 요즘 시대에 AKIRA를 보고 느낀 것은, 과하지 않은 명작이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대작. 나보다 먼저 존재했던 이 작품은 그 만큼의 역사적 평가를 쌓아오고 있었다.


보통 리뷰를 쓸 때 다른 리뷰를 많이 참고하는 편이었으나, 그로 인해 글 자체가 다른 곳에서 퍼온 것들을 짜집은 누더기 형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명작은 명성이 알려져 있는 만큼 평가도 해석도 다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 이 리뷰만큼은 타인의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려 한다. 의도하는 것은 작품에 대한 내 주관적인 해석이다. 얼마나 공감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약 좀 팔아보자.


참고한 자료는 위키디피아의 이 자료 뿐이다.
http://ko.wikipedia.org/wiki/AKIRA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치않으시는 분은 작품을 먼저 보신 후에 이 글을 읽어주세요




198X년 동경은 신형 폭탄에 의해 붕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발전하여, 세계는 황폐되어 가고 있었다.

2019년. 동경만에 떠오르는, 동경 23구를 본뜬 인공 도시 네오동경의 어둠에 유기된 하이웨이. 폭주족 소년들이 들어와서 질주한다. 그 중 한 멤버인 테츠오는 백발의 소년과 접촉 사고를 일으켜 중상을 입는다. 백발의 소년은, 정부의 초능력 연구 기관에서, 반정부 게릴라(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빠져 나오게 된 초능력자 타카시였다.

테츠오는 타카시와 함께 연구 기관에 끌려가, 거기서 초능력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네오 도쿄는 사이버 펑크의 비관적 세계관이 물씬 드러나는 장소이다. 북두의 권만큼은 아니지만, 망가진 도시에서 맛이 간 폭주족들이 약을 먹고 도심을 질주한다. 생체 실험을 주로 삼는 과학자와 그를 무기화시키려는 군인, 반란군과 반쯤 맛 간 사람들까지 도시가 뿜어내는 냄새는 상당히 어둡다. 만화 초반부의, 그리고 영화판의 AKIRA 세계는 이 네오 도쿄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 영화의 제한된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합리적인 결정이었겠지만, 이 선택으로 인해 테츠오는 고질라나 외계 생명체와 같은 단순한 도심의 파괴자가 되었고, 아키라는 그 괴물을 저지할 최종병기 내지는 희망의 씨앗 정도로 묘사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나는 이 세계를 벗어나려고 한다. 몇가지를 간추려서 아주 간단하게만 이야기하자.

'아키라'란 네오 도쿄의 군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테츠오는 사고 이후 군시설에서 검사를 받게 되고, 그에게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한 대령은 그를 아키라 프로젝트의 실험체로 사용한다. 극심한 두통 끝에 힘을 가지게 된 테츠오. 그는 그것을 이용해 군시설에서 탈출하고, 폭주족 지역을 점령하며 카네다와의 교전에서 그가 훔친 캡슐을 먹고 각성한다. 힘은 힘을 부르게 되는 법, 더 큰 힘을 원하는 테츠오는 소문의 아키라를 직접 보기 위해 봉인된 지역으로 향한다.

봉인시설을 뚫고 들어가 아키라를 끄집어내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군의 위성 빔 공격으로 한쪽 팔을 잃고 패닉에 빠진다. 뒤따라온 카네다 일행이 정신을 잃은 테츠오를 피해 아키라를 데려간다. 소년을 둘러싸고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이 벌어지고, 결국 지역을 점거한 군부대에 의해 사태는 종결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아키라를 군이 회수하는 도중 실권을 잡으려던 정치가가 쏜 총알에 타카시가 저격당한다. 눈 앞에서 친구가 죽는 것을 목격한 아키라, 일그러진 감정에서 그의 힘은 엄청난 위력을 일으킨다.


세계는, 네오 동경은 멸망한다.



이 지점은 영화에 있어서는 한계점이지만 만화에 있어서는 전환점이라고 볼 수 있다. 결정적인 차이는 이 곳에서 드러난다. 영화가 세상 안에서 타협한 부분을 원작 만화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 말하자면 전자는 파괴와 멸망을 극한의 순간까지 담아낸 종말론적 이야기라면 후자는 일단의 파괴 후 새로운 것이 태어나 국가와 종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창조적 이야기가 된다. 내가 영화판보다 만화판에 더 열광했던 이유는, 세계의 재창조와 그에 따른 갈등과 문제를 다룬 원작이 '재창조'가 빠지면서 그저 킬링타임용 영화로 전락해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내 리뷰는 이 '재창조'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우선, 세계의 파괴에서 다시 시작한다. 나는 이것을 위에서 말했다시피 세계의 파멸 및 재창조의 모습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는 엄연히 홍수신화와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힘으로 인해 파괴된 것은 '세계'가 아닌 네오 도쿄라는 한 '국가'일 뿐이다. 이 괴리감은 다른 세력이 들어올 여지를 만들어주는데, 실제로도 미국이란 세력이 이들의 세계 혹은 국가에 한없이 간섭한다. 처음의 구조물자를 건네주는 이들과 세계의 평화를 걱정하고 그들의 힘을 분석하며 견제하고 처치하려는 이들은 같은 이이다. 세계에 있어서는 외부인이며 침략자일수도 있고 그 정체가 제 3의 신일수도 있다. 허나 그들이 직접적으로 내용을 휘두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진입과정에서도 테츠오가 박살내버렸으며, 위성을 이용한 공격 또한 무산되었다. 작가는 이들을 끝까지 외부의 존재로 놔두기로 한 모양이다.

오히려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재건한다. 종교는 국가를 만든다. 믿는 것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회의 삶의 방식을 결정짓고 문화를 만들어내며, AKIRA 후반부의 세기말 모습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한 쪽에서는 미야코의 제단에서 구조, 혹은 구원을 기다리는 신자가 가득하며 그를 중심으로 각종 교역소와 구조센터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테츠오의 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을 배급받고 구호물자를 강탈하며 약에 의한 환각과 강대한 힘에 노출되어있다. 폭발 직후, 구조물자를 실은 헬기를 점령하고 '대동경제국'을 새겨넣은 테츠오의 백성들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 쪽에서는 19호 미야코와 반대편의 41호 테츠오, 그리고 그가 섬기는 신 28호, 아키라.

아키라는 이 작품의 핵심을 쥔 인물이니만큼 재건 후에도 그의 위치는 남다르다. 세기말 배경에서 테츠오의 강대한 힘은 실존하는 기적을 보여주고, 그로써 사람들을 굴복시켜 추종자를 만들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키라는 그저 존재하는 신이었고 실세이자 왕은 테츠오였을 것이다. 그러나 테츠오 또한 아키라의 힘을 체험하게 되면서 그를 숭배한 국민들처럼 아키라를 따르게 된다. 왕이 아닌 신이 중심이 된 것이다.

오히려 강대한 힘을 얻었지만, 테츠오는 여전히 불안정한 인간이며 어릴 적의 트라우마가 그를 괴롭힌다. 세계의 지도자가 되었음에도 잊을 수 없는 카네다를 향한 질투, 카오리의 품에 안겨 괴로워하는 모습, 무엇보다 힘을 가졌으면서 신을 믿는다는 그 자체가 나약한 인간으로써의 증거이다. 오히려 그가 두려워하는 카네다가 영웅적 성격을 가진 인물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능청스러우면서도 용감하며, 힘을 가진 테츠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고 때려팬다. 이와 비슷한 위치에 서 있는게 대령이겠지만, 이는 사정이 좀 다를 것이다. 그를 짓누르는 것은 과거 자신의 업보, 전직 대령으로써의 책임감이며 자신의 지휘로 만들어낸 괴물을 자신의 손으로 처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때문에 절망적 상황에서도 상대를 찌를 무기를 쉬이 놓지 못하는 것이다.

대동경제국의 축제 이후, 테츠오는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제어하려는 면이 보인다. 괴로워하면서 약을 끊고, 카오리의 품에서 그것을 제어하려 애쓴다.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는 안정적이었으나 역시 힘을 향한 그의 갈망은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결말부, 테츠오의 폭주와 그로 인해 생긴 갓난아이 형상의 파괴자를 주목해본다. 어린 아이의 형상은 순수해 보인다. 이는 순수한 의미의 파괴, 혹은 그 크기를 보건대 원초의 거인등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힘을 향한 그의 갈망도 어떤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순수한 욕망과 더불어 카네다를 향한 질투가 조금 가미되었을 뿐이다.

이를 제어하는 케이와 카네다의 경우, 테츠오가 자신의 힘에 폭주해있을 때, 케이는 그를 대적하기 위해 같은 아키라 프로젝트의 힘을 가진 미야코와 키요코, 마사루의 능력을 모으는 신체로 쓰였다. 폭주한 테츠오가 아키라의 힘에 빨려들어갈 때, 카네다를 구하기 위해 케이의 환영은 아키라의 힘 안으로 들어간다. 카네다는 테츠오의 기억과 그의 과거를 마주한다. 파괴 이전에도 종종 그려낸 케이와 카네다의 불타는 환영은 이를 위한 떡밥이었다. 이 결말부에서 AKIRA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어떤 목소리는 카네다에게 인간의 진화, 그리고 과학문명에 대한 경고를 인식시킨다. 카네다가 케이의 환영의 손을 잡았을 때, 파괴 때와 똑같은 대폭발이 다시 일어났다.



잠시 위에서 이것을 과하지 않은 명작이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담은 대작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AKIRA의 세계관과 주제의식도 있지만 캐릭터를 이끌어내는 능력에 감탄했던 탓도 있다. AKIRA의 캐릭터는 어느것 하나 쉬이 버려지는 일이 없다. 물론 극적 긴장감을 위해 버려진 캐릭터 몇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파괴 이후에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았고 또 목적을 위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고민에는 인간성이 엿보이나 제 3세계와 대령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각잡고 세계의 위기를 읊조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몇천년 지난 신화 찌끄러기를 읊조리는 어떤 것들보다 이들은 직접 신화의 배경을 만들고,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생각해보면 이 작품에서 아키라의 위치는 독특하다. 테츠오를 괴물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카네다 일행에게 아키라는 용의 마수에서 구해야 할 공주님이다. 그러나 괴물인 테츠오는 아키라를 숭배하고 있다. 또한 아키라는 파괴자이자 정화자이다. 오히려 카네다의 능청스런 성격때문에 아키라의 상징이 희석된 것일 수도 있다. (아마 그에게는 눈 찢어진 꼬맹이로밖에 보이지 않나보다)

그러나 여전히 아키라는 하나의 거대한 힘이었고 그들이 두려워하여 지하에 봉인해둔 파괴자였다. 네오 동경을 무너뜨린 파괴는 이 의미대로 쓰였다. 허나 다른 파괴자가 나타나자 그의 파괴는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아키라의 두번 파괴는 심판, 혹은 균형을 맞추는 데 쓰였다. 그 잔해 속에서 영웅들은 나라를 재건한다. 또 다른 창조가 이루어진 셈이다.



종교적 세계관 이외에도 아키라에 흐르는 하나의 문화는 위키디피아에도 써진 드럭 컬쳐다. 위에서는 언급만 하고 넘어갔지만 이 모든 사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카네다의 '캡슐'이었고, 테츠오가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약 성분이 담긴 수프, 혹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약이며 애초에 폭주족 시절 카네다의 자켓에도 등에 알약 그림이 큼지막하게 나 있다. 작품 내에서도 회상씬이나 중간중간에 눈을 압도하는 엄청난 화면이 나오게 되는데, 이 또한 환각 상태에서 보는 환영을(생각해보니 케이와 카네다의 불타는 영혼도 약먹고 몸이 붕 뜬 느낌을 표현한 것일지도) 표현하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위키디피아에는 이 작품을 '만화계의 두번째 혁명'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아마 애니메이션쪽 이야기겠지만 (88년도임에도 연출이 좋다, 내가 봐서 암 ㅇㅇ) 제한된 분량에 이런 의미들을 담지 못한 영화 AKIRA도 나쁘지 않지만, 역시 원작만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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