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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번 거울에 올린 유로스님의 조영일 비판에 대해 필자가 느낀 불만들을 정리해서 올린 글이 74호 거울 기획란에 게재되었다. (http://blog.naver.com/paxwonik/40077746875) 내용인즉슨, 판타스틱 2009년 여름호에 실린 조영일 씨의 평론 <한국에서 장르문학은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유로스 님이 내세운 반론들은 사실상, 그의 이론적 비평에 대한 심각한 오독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로스 님이 조영일 씨를 비판하는 근거는 모종의 상상적인 이상적 허구에 기초해 있다고 보였으며, 따라서 바로 거기서 seereal님의 <작가 지망생들이여, 홍대 앞을 보라>라는 글에 엿보이는 장르문학의 '스포츠적 상상력'에 유로스 님이 합류하고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 바 있다.

  여기에 대해 고맙게도 유로스 님이 자신의 입장에 대한 추가적인 해명과 필자의 졸고에 대한 반론들을 실어 주었다. (http://phantasist.egloos.com/1933663) 이것은 거울 기획란의 동일 호수에 필자의 글과 나란히 실리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필자가 옹호하는 조영일 씨의 이론적 포지션은 여전히 모순적이며, 따라서 필자가 제 아무리 칸트를 들먹여도 조영일 씨의 평론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본인의 모순과도 연결된다. 여전히 장르문학의 독자적인 미의식을 도외시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따지는 이론적 질문은 결국 그러한 미의식을 사전에 틀짓는 지적 폭력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서 이론비평은 외국의 사상에 대한 학습(조영일 씨의 글에 넘쳐나는 프로이트에 대한 참조들을 보라!)을 기계적 적용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며, 그것은 단순히 장르문학에 외부적인 위치에서 그것을 계도하겠다는 허위의식에 불과하다는 것. 더 나아가 유로스 님 자신의 입장은 (필자가 우려했듯) 결코 장르문학의 협소한 자의식에 매몰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의 시스템과 검증에 더욱 단련되길를 희망한다는 것이다.(필자는 이 점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그런 점에서 가령 조영일 씨가 문단문학의 '검증'능력의 부재를 거세게 비판하면서, 정작 장르문학에서 그러한 문제를 생각하지도 않는 것은, 생색내기이자 본인의 말로 '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필자는 유로스 님의 반론에 대해 더 이상 본인의 논점(조영일 씨 비평을 수용하는 데서 여전히 엿보이는 장르계(?)의 반지성주의적 행보에 대한 우려)을 다시 강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각자의 고민영역이 다르다는 말로 이번의 논의들을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간의 역할분담을 배분하면서 기분 좋게 논의를 끝내고 싶은 불가항력적인 욕망조차 몇 가지 첨예한 문제들이 눈에 걸리는 것을 막지 못했다.

  유로스 님은 논의는 시종일관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이라는 암묵적 이항대립에 기초하고 있다. 단순히 장르문학의 모호한 사회적 가능조건들을 따지는 이론비평에 맞서, 실제비평은 가능조건의 지평에서 장르문학 자체를 '발현'시키는 미의식과 창작론 그리고 유통방식 전반을 종합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이론비평보다 더 적실하게 장르문학의 발전방향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영일 씨나 필자나 그들의 비판적 질문은 오직 '관념'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필자가 느끼는 한 가지 곤란함이란, 이러한 실제비평에 대한 풍부한 사례들과 유로스님 자신의 원용(진화과정과 목회자의 설교말씀까지 동원되는)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제비평의 가능성을 정초하는 유로스님 자신의 제스처가 지나치게 '이론적'이라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조영일 씨의 비평이 '관념적'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념에 머무는 게 있다면, 여전히 장르문학의 자족적인 미의식이 무엇인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의 가능성의 조건과 필요성만을 정립하는 유로스님 자신의 몸짓이다. 물론 그러한 것을 본격적으로 논할 '물적 토대'가 없긴 하다. 그리고 조영일 씨의 문제의식은 그러한 토대가 가령 국고의 지원을 독점하는 문단문학에 의해 잠식되어 있다는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더 '관념적'이라는 것인가?(필자는 몇가지 모호한 지점에도 불구하고 조영일 씨의 제스처는 철저하게 '마르크스적'(유물론적)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유로스님 자신이 필사적으로 독자적 위상을 부여하는 장르문학의 미의식은, 그 자체로 문단 이데올로기 자체에서 파생되어온 '물신'에 불과하지 않은가? 말하자면 문단에 대한 일정한 '거리두기'(유로스님은 아마 비판적-선별적 수용이라 말하겠지만)를 통해서만, 말하자면 그것에 대한 부정의 부정을 통해서만, 자신을 정립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유로스님의 글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는 점이야말로, 장르문학은 여전히 문단문학의 하위종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유로스님이 예증하는 외국의 몇몇 사례들조차, 더더욱 한국 장르문학의 '토대-없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모순은 이론비평/실제비평이라는 구분 자체에 대해, 혹은 그러한 구분을 가능케 하는 지평에 대해 충분히 유로스님 자신이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탓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음미하는 건 보다 근본적인 비판적 접근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필자의 실수는 이것을 굳이 '이론비평'이라는 말로 지칭하면서, 잘못된 이분법을 더욱 고착시킨 것에 있다. 여튼 조영일 씨 비평에서 보여지듯 그러한 접근이 비판적 차원에만 머물더라도 반드시 관념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관념적인' 구분을 자명하게 만드는 물적 토대가 무엇인지를 해명하는 게 그러한 비판의 소임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필자와 조영일 씨가 '문화'(관념)를 '산업'(물질)으로 치환하는 논리에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이다. 가령 필자의 글에서도 인디음악의 문제를 문화자본에 의해 관리되는 일정한 소비자 군의 경제적 문제로 치환하면서 중심이 되어야 할 인디음악 자체는 소외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반응인데, 필자가 보기에 그러한 비판은 마치 나쁜 소식을 알려주는 전령을 살해했던 고대 그리스의 비극적 풍습(이것이 한국 장르문학의 '상상력'의 한계인가?)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관념론'으로 조영일 씨를 매도한 것에 비춘다면 이것은 다소 일관성을 잃은 처사로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제기는 본인의 분류에 따른다면 '실제비평'이 적극적으로 제기해야할 문제가 아닌가? 필자는 이러한 문제가 상당히 복잡한 쟁점과 견해차이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오히려 이러한 '문화'를 '산업'으로 치환하는 논리는 개인의 책임으로 귀속되기에는 너무나 거대한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산업'으로의 이행을 극복하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단언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특수한 장르공동체들이 직면한 진정한 '문제'가 아닌가? 그러한 산업논리로의 이행을 단순히 '거부'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분명한 건 이것이 단순히 조영일 씨 말대로 문단을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자신의 가치를 외국의 사례에 기대어 단언하는 것으로도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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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2 03:24 댓글 수정 삭제
    박가분 님의 지적은 제게도 반가우면서 동시에 매우 뼈아픈 것입니다. '실제비평'에 대한 '물적 토대'가 없다는 것(그것이 자본주의적 토대이든 미학적 토대이든 실제 비평대상의 유무이든)은 저와 같은 장르문학 향유자가 쌓아올려가야 할 것임에도,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논의조차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은 장르문학계의 모든 사람들이 반성하고 앞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써왔던, 그리고 쓰고 있는 글들은 이러한 장르문학의 '결핍'을 채우려는 제 나름의 '기반 쌓기'라는 점을 밝힙니다.

    문단문학의 '권력'에 대한 조영일 씨의 비판이 유효하고, 이 작업이 현재 필요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저 또한 이것의 '지향점'이 명확히 보이지 않는다는데서 저는 조영일씨와 '거리두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문단문학에 대해서도, (조영일씨와 비슷하게 표현하자면)하나의 미학적 관점만이 통용되는 좁은 장르라는 사실에 대해 비판하고 이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는, 먼저 장르문학이 미학적 '다양성'의 확보를 통해 장르문학 자신의 '결핍'을 채우는 작업이 있어야 문단문학에 대한 비판이 비로소 유효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74호 기획기사에서도 밝힌 바 있습니다) 제가 조영일씨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것은, '장르문학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마당에 남의 대안씩이나 되어줄 여유가 있는가' 하는 의문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저와 SeeReal님의 관점은 분리됩니다. 제가 보기에 SeeReal님의 글은 '정면대결' 자체를 회피하는, 박가분님식대로 이야기하자면 '오타쿠화'라는 지적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박가분님과 저는 실제비평에 대한 이해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결국 제가 말한 미학적 다양성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평자가 문화산업이라는 것을 다루고자 할 때, 그 전제로서 평자의 미학적 지향점을 먼저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고, 독자는 평자의 지향점에 대한 나름의 태도를 통해서 문화산업에 대한 평론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조영일씨의 평론에서 이러한 부분이 적확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관념(이론)'과 '물적 토대(실제)'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로 인해 '물적 토대'에 대한 해석을 자신의 '관념'에 맞게 끼워맞추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이는 조영일씨 뿐 아니라 다른 비평가에게서도 자주 보이고, SeeReal님을 비롯한 많은 평자들이 장기하 신드롬, 오지은 현상에 대해 표피적으로 접근하는데서도 공통되게 드러나는데, 인디음악의 수용구조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자신의 미학적 지향과 함께 판단하여야만 이 부분을 보다 명확히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이와 관련하여 장기하 신드롬에 대한 기사 하나를 링크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09094727§ion=04 )
    단순하게 물적 토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현상이 물적 토대의 모순점을 (어떻게든)건드린다는 이유로 이를 긍정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순점을 건드리는 것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가능했는지, 그 구조가 자신의 미학적 견지에서 타당한 구조인지, 지속 가능하고 구조 자체를 움직일 만큼 유효한지 등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문화산업'의 실체적 측면에 유효한 비평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장기하와 오지은은 몇만 장을 팔면서 아이돌 스타를 제치고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라올 수 있었는데, 왜 장르문학에서는 몇만 부를 팔 수 없을까요? 과연 장기하와 오지은은 구조에서 탈피하는 인디의 모범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 이런 문제는 조영일씨와 SeeReal님과 같은 문제의식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점이 많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박가분님이 말씀하신 "문단 이데올로기 자체에서 파생되어온 '물신'"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쓴 글들을 통해 어느 정도 이 부분을 이야기하려 노력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구조의 문제에 대한 얘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지향점에 따라 다르게 마련입니다. 이런 부분들을 자신의 미학적 지향과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서로의 미학적 기반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다양성을 키워나가며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성 속에서 진정한 문화가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제 글을 인용하자면, 이론/비평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보다는, 비문단문학과 문단문학 양측이 모두 "'실제'와 '이론'을 엮어내며 발전해나가지 못하는 절름발이 상황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조영일씨가 '문외한' 혹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쓴 평론이 실제적으로 유효하지는 않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논의를 이끌어낸 계기가 되었듯이, '외부'의 충격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한국문학뿐만 아니라 장르문학 또한 이러한 외부적 자극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고 봅니다. 거울만 해도, 저는 이대로라면 자족적 세계관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거든요. 만약 박가분님이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 장르문학(거울을 포함하여)은 여전히 문단문학의 하위종'이라고 말한다면, 저는 그 현실판단을 부정할 근거를 제시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이에 대해 실제적으로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 저는 장르문학과 인디음악의 '결핍'을 채우고자 실제적인 비평을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나갈 생각입니다. 이와 더불어, 외부적 충격을 던져줄 만한 의미 있는 해외의 비평이 소개되기를 희망하고 있고요.(제 글에서 해외 비평과 사례 연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계속 걸리는데, 이 부분은 다양한 방법론 중 하나이고 한국문학이 간과해왔던 부분 중 하나라는 측면에서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보지만, 당연히 꼭 그것만 유효한 방법이라고 볼 수야 없겠지요. 결국 제 글에서 말하는 '주체'는 장르문학을 쓰고 읽는 사람들 자신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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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스 09.08.02 04:13 댓글 수정 삭제
    현상적인 한국 장르문학에 대해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제가 거울에서 비평을 통해 하고자 하는 작업은, 제 미학적 지향점에서 거울의 소설들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대안'이니 하는 말로 사탕발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과장되어 평가하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실제비평을 통해 미학적 지향점이 명백한 평론을 보여줌으로써 '과잉'이나 '가능성'의 영역이 아닌, 작품이 지닌 미학적 가치의 판단 그 자체를 뚜렷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론'과 '실제'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가 현재 가장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장르문학의 가능성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장르문학의 현실적 결핍들을 은폐하고, 내실을 다지기보다 외연을 넓힘으로써 헤게모니 싸움에 섣불리 뛰어들고 싶어하는 일각의 그릇된 움직임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현재 한국 장르문학이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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