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계승자
제임스 P. 호건 지음 / 이동진 옮김 | 오멜라스 펴냄 | 원제 - Inherit the Stars | 2009년 6월
오멜라스에서 출간된 『별의 계승자』는 제임스 P. 호건의 대표작이다 데뷔작이다. 큰 성공을 거둔 출세작이기도 하다. 특히 이 작품은 일본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일본 SF 대회 성운상 해외부문을 수상한 작품이며 『기동전사 Z건담』 극장판의 부제목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마지막 편 제목은 모두 이 책의 일본어판 제목인 '별을 계승하는 자'가 오마쥬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른 SF소설들과도 차별화된 독특한 소설이다. 일단 이 작품은 하드 SF다. ‘하드SF'라는 단어만 듣고 어려울 것이라거나 지루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어디까지나 철저히 과학에 입각한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가 된다는 의미일 뿐, 소설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미덕인 ‘재미’를 빠트리지 않았다. 단언하건대, 이 작품은 재미있다. 올해 국내에 출간된 『멸종』(로버트 J. 소여 지음, 김상훈 옮김, 오멜라스(웅진), 2009년 3월)과 『노인의 전쟁』(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샘터사, 2009년 1월) 모두 빠른 속도감이 특징이며 놀라운 재미를 선사하는 최신 SF소설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1977년 발표된 이 소설이 조금 더 재미있고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이 작품은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로 달에서 우주복을 입은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연대측정을 해보니 무려 5만 년 전에 시체라는 것이다. 과연 이 미스터리는 어떻게 풀릴 것인가? 이 소설은 주인공들이 발로 뛰는 모험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논리적인 사고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쾌감이 아주 뛰어나다. 『노인의 전쟁』이나 『멸종』에서 발로 뛰며 목숨의 위협을 받는 이야기들과 달리 이 소설은 대체로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고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종합하고 분석한다. 이렇게만 들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아니다.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고, 그 가설이 또 부정되고, 새로운 단서가 발견된다. 정보들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구성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달에서 발견된 5만 년 전의 시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수많은 과학자들이 매달린다. 언어학자들은 정체불명의 언어를 분석하고, 수학자들을 수학을 계산하며, 생물학자는 신체연구를 한다. 이렇게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 과학적인 이야기만 나오는 순수한 과학소설인 것이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 다양한 과학적 분석을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론들이 대립되고 사실이 아닌 이론은 가차없이 기각당하고 새로운 이론으로 넘어간다. 끊이없이 새로운 증거와 이론들이 나오면서 이야기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독자는 빠르게 책장을 넘기게 되고 마치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보듯이 새롭게 등장하는 단서들은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액션은 없지만 웬만한 액션소설보다 재미있다. 지적액션물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책이다.
다 읽고 나면 SF 소설의 경이감은 물론이고 묵직한 감동과 전율까지 흐르는 작품이다. 물론 그 뒤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래 전에 발표된 소설이기 때문에 아주 참신한 발상이나 소재라고 할 수는 없다. 개개인에 따라서는 이제는 낡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은 책 속에 빨려들어가는 경험을 할 수 있고, 읽고 나서도 여운이 남는 기분 좋은 독서가 가능한 책이다.
만약, ‘달에서 5만년 전 우주비행사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라는 문장에서 당신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책을 읽을 준비는 다 마친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달 위에 서 있고 앞에는 5만 년 전 달에서 죽은 시체가 놓여 있다. 이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 것인가? 책 속에 답이 있다. 책장을 덮고 난 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새까만 하늘 속 달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의문을 가지는 순간, 당신은 이미 위대한 지적 모험에 뛰어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