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2. 환상문학의 정치적 상상력

  하나의 표본을 확대해석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에는 같은 웹진에 올라온, 분명 기성문단에 대한 명백한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칼럼을 살펴보자.(./zboard/zboard.php?id=event&no=164) 그것의 결론부는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분명 문학판에는 한때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사들의 집단이라는 월계관이 존재했따. 그리고 어떤 이들은 아직도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그 옛날의 이야기를 발굴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모든 문화적 생산물이 그렇듯이, 캐스팅보트를 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이다. (중략) 그리고 문학의 소비자, 즉 독자들이 조금 더 목마르고 조금 더 갈급하고 조금 더 부지런해질 때, 반드시 그들은 새로운 시대의 문학을 간택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가 왔을 때 천하의 대권을 거머쥘 이들은 환상문학의 자유 안에서 작가적 진지함을 고민하는 이들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각종 영화와 만화와 게임을 통해 이미 넓어질 대로 넓어진 소비자들의 취향을 충족시키면서도 10대를 타깃으로 쓰인 대여점용 소설로는 만족할 수 없을만큼 어른이 되어버린 이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작가주의 환상문학 뿐이다." 여기까지는 조영일 씨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만 더 들어보자. "고단하고 피곤하고 힘겨워도 그렇게 대장정의 길을 가다보면 어느새 중원에 다다라 있을 것이다. 홍대앞 인디씬과 만화판의 사례를 보건데, 그 시기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온다. 그때가 되면 여유롭게 돌아보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엔 참 막막하고 캄캄했다고. 내 이야기를 과연 누가 읽어주기나 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고. 이렇게 쓰는 것들이 단돈 몇만원이라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다고. 그저 내 이름이 찍힌 책을 한번 보기나 하는 게 꿈이었다고. 그렇게 말할 때가 곧, 곧 올 것이다. 혹시 아는가.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영화처럼 한국 장르문학도 한반도를 제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 문학판으로 퍼져나가 일찍이 본 적 없었던 유웨이브를 일으킬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지 않은가? 가령, '작가주의 환상소설'을 쓰는 주체가 현재의 빈약한 독자층을 상대하는 막막한 현실은, 다가올 미래 속에서 독자들을 향해 글을 쓰고 있었다는 방식으로 소급적으로, 재의미화되며 자신들의 현재 하고 있는 행위는 바로 그런 식으로 '사후적으로' 구원받을 것이라는 전형적인 상상적 이데올로기의 좌표가 여기서도 식별되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인디음악'이 BGM 음악화되면서, 혹은 대형 엔터테인먼트 자본의 손쉬운 '비정규직 노동자화' 대상이 되면서, 벌어지는 폐해(관련 논의 출처 : http://cafe.naver.com/think2wice/432)에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도 차치하고서라도,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어쩌면 더 큰 문제는 '작가주의 환상문학'으로 스스로를 호명하는 이러한 일군의 정치적/인문학적 '상상력'이 과연 문단문학의 그것과 얼마나 다르냐는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환상문학이라는 것이 어떤 근본적인 '상상력'을 통해 그것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라면, 아직도 이런 영화계나 스포츠계나 연예계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네이션-스테이트 내부의 상상계'에 머물러 있을 때, 거기에는 그다지 큰 미래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쩌면 저들이 조영일 씨의 문단문학 비판을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환상문학이라는 것에는, 조금 더 정확히 말해서는 '대여용 판타지 소설'과 변별되는 '작가주의 환상문학'에는, 희망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볼 때, 표면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칼럼을 쓴 필자의 세계관이나 인식론적 전제는 대동소이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외국 환상문학의 고급 이론과 비평 스킬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들 자신의, '시체로 강을 메우는'(이 섬뜩한 비유는 한국 애니메이션계에서 착상을 얻은 것이다) 치열한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결국 귀결점은 비슷한데, 그것은 '한국' 환상문학의 르네상스를 열기 위한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작가들이 문단문학과 어떤 (정치적) 관계를 맺든 그것은 순전히 부차적인 혹은 비결정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미결정적'이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 조영일 씨가 개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기 위해서라면 '문단문학 대 대중문학(장르문학)'이라는 도식 자체가 포기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가령 조영일 씨가 호명한 독자들의 관심사는 '대중문학'이나 조영일 씨가 강조한 '세계문학'에의 (자신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지향이 아니라, 출판/문학 시장에서 자신들의 특권적인 위치 혹은 헤게모니를 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 1
  • No Profile
    유로스 09.07.12 19:52 댓글 수정 삭제
    글쎄요. 하나의 칼럼을 놓고 너무 속단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예로 드신 폐해에 대한 부분의 문제점은 인디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이와 관련한 제 개인적인 생각은 링크하신 관련 논의를 쓴 분의 블로그에 제가 전에 달았던 답변으로 대신하겠습니다 http://freesty811.egloos.com/1925193 )

    개인적으로 '문단문학vs대중문학(장르문학)'이라는 도식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문학계 내부의 논리와 싸우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그것은 문단문학vs대중문학이라는 도식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지 문단문학의 기득권(의 일부)을 취하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유 게시판

어떤 이야기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스팸성 글은 경고 없이 삭제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자유 거울 글의 저작권과 거울 글을 퍼가는 등의 일에 대한 원칙 mirror 2013.06.04
257 리뷰 구글 베이비 / Google Baby [混沌]Chaos 2009.09.22
256 리뷰 하지은 님의 보이드씨의 기묘한 저택 초록누님 2009.09.10
255 리뷰 싸우는 사람-이수영(다음 연재작) 초록누님 2009.09.10
254 리뷰 하지은 <보이드씨...>, 이수영 <싸우는 사람> 감상3 김열혈 2009.09.07
253 리뷰 19, 41, AKIRA [混沌]Chaos 2009.09.03
252 리뷰 유로스 님의, <장르문학 평론의 허와 실>에 응답하며2 박가분 2009.08.01
251 리뷰 [추천] 별의 계승자2 날개 2009.08.01
250 리뷰 [리뷰] 퍼디도 스트리트 정거장 날개 2009.07.29
249 리뷰 [리뷰] SF소설 -노인의 전쟁-1 네오바람 2009.07.22
248 리뷰 스티븐 킹, [스탠드] 자하 2009.07.14
247 리뷰 요시나가 후미, [오오쿠] 자하 2009.07.14
246 리뷰 샬레인 해리스, [댈러스의 살아 있는 시체들] 자하 2009.07.14
245 리뷰 샬레인 해리스, [어두워지면 일어나라] 자하 2009.07.14
244 리뷰 배명훈, [타워] 자하 2009.07.14
243 리뷰 닐 게이먼, [신들의 전쟁]2 자하 2009.07.14
242 리뷰 환상문학의 이퀼리브리엄, 조영일과 환상문학 3. 박가분 2009.07.12
리뷰 환상문학의 이퀼리브리엄, 조영일과 환상문학 2.1 박가분 2009.07.12
240 리뷰 환상문학의 이퀼리브리엄, 조영일과 환상문학1 박가분 2009.07.12
239 리뷰 노인의 전쟁2 날개 2009.07.10
238 리뷰 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날개 2009.07.1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6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