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리뷰 [영화]셜록 홈즈

2010.01.10 14:3601.10

#0.

의식하지 못한 미리니름이 있을지 모릅니다.



#1. "셜록 홈즈"

2년 만에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무척 좋아한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지.

영화는 음, 괜찮았다. 마지막으로 코난 도일의 소설을 읽은 것이 고등학교 때였는지 대학 초였는지 기억이 안 났다. 먼저 보았던 오빠가 '블랙우드 경'을 아냐고 물었는데,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리아티 교수는 아는데, 이런 스토리가 있었나.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영화만 봤다. 할리우드인지 무협인지 이젠 구분도 안되는 액션과 홈즈역을 연기하는 배우가 괜찮았다. "아이린"도 좋았다.


그런데 이런 홈즈, 이런 분위기였나 싶었다. 적어도 이런 왓슨은 아니었어..(그 왓슨이 싫은 건 또 아니지만) 라고 팬인척하는 (과거)일반독자가 슬쩍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래도 음, 영화는 괜찮았다. 그냥 패러럴 월드를 본 것 같아서 그렇지. 어차피 "주홍빛 연구"도 아니고 "바스커빌가의 사냥개"도 아니잖아. 그냥 "셜록 홈즈"지.

해설편이 참 친절해서 좋았다. 난 그닥 의문도 안 가졌는데(이래서 추리소설을 눈으로만 보나 싶지만) 홈즈가 블랙우드에게, 왓슨에게 이건 이래서 그런거지 하고 꼬박꼬박 다 얘기해줬다. 다만 왜 그렇게 열심히 설명해줬나 이해가 안됐다. 어차피 복선 다 줬잖아. 예전에 2010 로스트 메모리즈를 보고 나서 오라비와 그러한 시간 이동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꽤 열심히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이건 그럴 여지가 없다. 깔끔해서 이상하다.

#3 문화적 자산?

보기 전에 아바타라는 영화를 볼까, 이걸 볼까 하고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아바타는 영화관에서 볼만한 영화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영화는 다 영화관에서 봐야 하게 만들잖아, 라는 생각도 들고 광고에 나오는 푸르딩딩한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엑스맨에 나오는 변신녀 같아) 그냥 이걸 봤다. 영화를 보기 전날 "아바타는 포카혼타스(의 업그레이드버전)"이라는 요지의 글을 읽고 이걸 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보는 영화는 큰 화면이네하는 정도지 딱, 때리고 펑, 터지는데는 더 이상 감회가 들지 않아서, 오히려 아바타와 비교하여 배경에 생각이 미쳤다. 미국은 기원을 쥐어짜야 그런 스토리가 나오는데 영국은 이런 영화를 뚝딱 잘도 만들어 내는구나. 아, 만든건 딴나라지만. 영국의 분위기와 영국의 작가와 영국의 소설을 딴나라 사람들이 돈 투자해서 세계로  팔아치운다. 새삼 역사의 깊이란게 다르구나, 그게 자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역사 깊은데. 어쩐지 써먹지 못하고 있는게 아까웠다.

자신의 나라의 역사를 안다, 이미지를 만든다, 나라를 알리다. 그런건 의식하며 하기는 어렵지만 의식해서 해야 할 필요성도 있겠다. 나중에 해외여행을 하게 되면 예쁜 열쇠고리라도 몇만원어치 사고 나가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차피 한번 나가150백만원은 쓰는데(잘모르지만) 그중 10만원을 밖에서 안쓰고 우리나라에서 쓰고 나간다는데 뭐 어때.


#4. 생각이 힘들어?

나오면서 이런걸 같이 간 지인에게 조금 얘기했는데, 자긴 영화를 보고 나면 아 재미있었다 하지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즐기려고 영화를 보는거지. 그것도 맞긴 맞다. 하지만 그것에 동의하진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그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게 왜 힘들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나는 게 있으면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사람들은 2시간(요즘에는 길어졌는지 2시간반, 3시간도 하더라) 동안 영화를 보고 나오지만 그 영화는 몇백억씩 몇백명의 사람들이 몇 년의 기간을 들여 만든다. 그만큼 계획적이며 다수의 손이 간 결과물이다. 100%로 다 의도했다 할 수 없고 80% 의도했다 쳐도, 2시간 반 영화본 게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고 얘기해도, 나는 그 영화의 장면들이 보이는 것 이상으로 의도한 것이 있으며 2시간 반 동안 "집중하여" 본 영화가 몇 편씩 쌓여 그 사람의 사고와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다.

나는 이런 다수의 결과물에 민감하다. 짧지만 자주 접하는 TV의 광고( 제3금융권의 캐릭터라던지), 애니메이션, 캐릭터, 대기업(혹은 정당의)의 브랜드 이미지같은 것. 누가 어떤 목소리를 내는가도 민감하다. 하나의 의도, 하나의 주장, 하나의 이익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가 중첩되고 복합적인 것들. 그런 것들은 절대로 이유없이 그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건 합리적인 행동도 아니고, 피곤하고, 그것 때문에 내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한 내게는 생각할 자유가 있고, 내게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들을 검수할 권리가 있다.

예전에 어떤 동료 교사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이들을 보육하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돌본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서 아이들이 접하게 될 그 모든 위험한 것들-대표적으로 TV도 있지 않은가-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세상에 대한 지각력은 낮고 흡수력이 높은 아이들은 그만큼 대중매체나 음식 선택 등에 에 있어서 취약하므로, 교사는 그들이 적절한 때에 적절하게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그 여과창이 되어야한다고. 나는 그 동료교사의 말에 동감했다. 그런데 나는 궁금하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른인 나는 과연 그렇게 자주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그래서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다.

+ 아,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영화 봤다고 좀 힘줘서 본 것 같기는 하다. 영화는 설렁 보고 생각을 힘줘서 했구나, 나...


#4. 셜록 홈즈 같은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어떨 것 같아?

... 생각하는 것을 멈출 생각은 없지만, 그걸 얘기하고 다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내 생활까지니까.

셜록 홈즈 같은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어떨 것 같아, 하고 오빠한테 물었더니, 피곤할 것 같아, 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대답이 나왔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좀 그러고 다니는 것 같아서. 난 홈즈처럼 배짱 있지도 않고 닥터 하우스처럼 강박적이지도 않단 말이지.


덧. 알고 있으면 더 재미있는 지식 몇 가지. (그러나 다들 알 것 같다..)

1. 영화를 보면 블랙우드가 국회의사당에 의원들 모아놓고 혼란스럽고 무능한 의회를 어쩌고저쩌고  장면이 나오는데 이당시 의회는 정말 무능했다. 영국이 의원내각제인 것을 아시는 분은 많겠지만, 의회가 내각불신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혹시 아시는지.

이 때의 영국 의회는 자기파 내각을 세우고자 일년에 30차례도 넘게 내각을 갈아치우며(이 주일에 1회 꼴) 다수파-소수파간 지지리콩가루쇼를 연출했고, 미국의 시민혁명과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 선언은 그러한 정쟁에 정신줄 놓은 것을 안 미국의 야심찬 카운터 일격이었다. 자기들이 내야하는 세액을 자기네 대표가 참여하지 않은 영국 의회에서 결정하게 둘 수없다고 뒤짚어 엎은게 버지니아 권리장전. 우리나라는 적어도 대통령을 갈아치우진 않잖아. 물론 그럴 권리가 있었다면 진작에 했겠지만 말이지.

2.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게 큰 일인것처럼(큰일이기는 하지만) 경관이 법석을 떨며, 왓슨과 홈즈가 참 열심히 과학적인 수사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국의회가 소매치기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법을 폐지한 것이 불과 1802년이며 탐정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842년(대부분 전과자 출신), 영국법정에서 최초로 "지문"이 유죄로 사용되는 증거로 쓰여진 것이 1902년이다. <지문>이라는 책에서 읽은 건데 읽을 때는 뭐 이런 junk info책이 다 있나 하며 덮었지만 의외로 "과학적 수사"에 대한 상식을 깨준다. 코난 도일의 소설이 1887년 쯤 쓰여졌다니, 대충 중간 쯤 될 것 같다.

진서
댓글 2
  • No Profile
    날개 10.01.10 23:18 댓글 수정 삭제
    블랙우드 경은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죠. 영화는 원작에 없는 새로운 이야기더군요. 덧은 모르는 내용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No Profile
    진서 10.01.26 23:39 댓글 수정 삭제
    아, 그렇군요... 말씀 감사합니다. 덧 1은 대충 머리속에서 뽑아낸 거라 좀 다를 수도 있어요. 2는 책을 다시 뒤적거린 거지만요.

자유 게시판

어떤 이야기든지 자유롭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 자유 게시판입니다. 스팸성 글은 경고 없이 삭제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자유 거울 글의 저작권과 거울 글을 퍼가는 등의 일에 대한 원칙 mirror 2013.06.04
277 리뷰 에릭 드러커의 그래픽 노블 , 『대홍수!』1 현서/푸른꽃 2010.09.30
276 리뷰 화성 연대기 날개 2010.09.15
275 리뷰 [단상] 퇴마록 이우혁의 신작 『바이퍼케이션』5 날개 2010.08.13
274 리뷰 [추천] 유령 여단2 날개 2010.07.09
273 리뷰 제15종 근접조우 매미 2010.07.07
272 리뷰 시오리와 시미코 시리즈 보라 2010.06.18
271 리뷰 <이웃집 신화>, 배명훈2 김원 2010.02.26
270 리뷰 뮤지컬《판타스틱스》 아프락사스 2010.02.13
269 리뷰 <아바타>, 진정한 할리웃 좌파인가 비뚤어진 포스트모던 물신인가? (2)1 박가분 2010.01.10
268 리뷰 <아바타>, 진정한 할리웃 좌파? (1) 박가분 2010.01.10
리뷰 [영화]셜록 홈즈2 진서 2010.01.10
266 리뷰 바이오 스피어 2 인간실험 2년 20분2 진아 2009.12.25
265 리뷰 가족에 관한 일본 추리소설 두 개 보라 2009.10.13
264 리뷰 나의 친애하는 적 / My Best Fiend [混沌]Chaos 2009.09.28
263 리뷰 아귀레, 신의 분노 / Aguirre, the Wrath of God [混沌]Chaos 2009.09.27
262 리뷰 죽은 자와의 약속, 그리고 나는 경제 저격수였다 [混沌]Chaos 2009.09.26
261 리뷰 바시르와 왈츠를 / Waltz with Bashir1 [混沌]Chaos 2009.09.25
260 리뷰 찢어라! 리믹스 선언 / RiP: A Remix Manifesto [混沌]Chaos 2009.09.24
259 리뷰 얼굴 : 그웬델린 이야기 / About Face: The Story of Gwendelli [混沌]Chaos 2009.09.24
258 리뷰 '환생을 찾아서'와 '타폴로고' [混沌]Chaos 2009.09.23
Prev 1 2 3 4 5 6 7 8 9 10 ... 16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