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처음에는 알파에 대한 감상을 오로지 알파를 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번이고 감상문을 새로 쓰는동안 그런 감상을 쓴다는건 무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글은 작가와 같다. 같이 지내고, 같이 성장하고, 때로는 같이 퇴보한다. 해서 적잖은 시간의 인연을 보내며 지켜본 알파의 작자가 그간 썼던 글들에 대한 느낌까지 엮어서 감상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알파의 작자가 누구인지, 무슨 글을 써왔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할 수 없다. 그건 프라이버시이고, 알파의 감상문에 필요없는 부분이니까.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이런 형식으로 쓰여지는 글은 아주 간단히도 알파의 작자와 필자 간의 일대일 통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지만, 어디까지나 감상문의 용도란 작가에서 나는 이렇게 글을 읽고 있습니다...라고 알리는 글이라 생각하는 바. 이 점에 있어서도 감히 안심하고 싶다.


마치 공개 직전의 프로그램 버전에 붙이는 기호처럼, 이 소설의 제목은 'alpha'다. 물론 작가의 의도가 정말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을 읽은 한 사람의 독자로써 이 '알파'라는 기호는 세상과 사람에게 붙이는 식별 기호가 아닌가 싶다. 길고 긴 역사를 지내왔고, 여러가지 제도를 세우고, 수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아온 인류와 인류가 만든 세상에 대해 간단히 '알파'라는 식별 기호를 붙인다. 살아가면서 현실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다지 틀렸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반만년, 인류는 우주에 시범 공개(베타)를 하기 초라할 정도로 아직 설익고 설익은 존재일뿐이다.
아직 스토리 진행이 겨우 초반일뿐이라 설정에 대한 공개는 극히 적을 뿐이지만,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기호'며 '능력자', '이능' 외에도 수많은 국가의 이름을 접할 수 있다. 게다가 스치듯 언급되는 인종,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적잖은 바탕이 알파 아래 숨겨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작가로써 이미 한 번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는 그 설정들을, 고뇌 끝에 쥐어짜낸 결과물을 가지고, 작가는 어째서 냉정하게 '알파'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과연 무엇을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걸까?

알파의 중심점에는 사람이 있다. 현재 주된 시점인 '존', '서린'을 비롯하여 수많은 군상이 스스로가 알파 버전임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과 인간 사이, 아무리 노력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그 쓰라린 관계와 거기에 한층 지독함을 곁들이는 사회와 제도, 편견. 어떻게 동작은 하고 있지만 결코 좋은 상황은 아니고, 어디가 문제인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손을 대야 할런지 막연할만큼 알 수 없는 곳- '알파'. 읽는 도중, 소설 인물들에 대하여 '그딴 고민을 해서 뭐해?' 라고 생각하다가도, 잠시 스스로에게 섬뜩함을 느낀다면 아마도 독자 스스로 매일 '그딴 고민' 속에 살아가는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이전에 다시 없을 정도로 이 '알파'의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가끔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을만큼, 집요하게 집요하게 그 부분을 파고 든다. 이제와서 뭘 어쩌겠냐고- 세상을 향한 포기와 권태가 만연한 세상에 들러붙어있는 느낌이 든다. 더군다나 알파의 세계는 현실을 훌쩍 떠난 이세계다. 그곳에는 유전자를 통한 복제품을 만들만큼 발달한 의학 기술과 과학 기술, 능력자라 불리우는 기이한 인종들이 있지만, 현실 세계와 별다를 바 없는 '알파' 버전의 인간들이 살고 있다. 그렇다고 작가가 이 알파 버전의 세계를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런지를 탐구하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술에 취한 한숨이나, 타령도 하지 않는다. 다만 살 뿐이다. 현실의 우리가 그렇듯이 그냥 살 뿐이다. 여러가지 문제에 부딪혀서 이겨내거나, 지거나, 혹은 버티거나, 아니면 도망치면서 말이다.

우려되는 것은 인물에 대한 밀도가 짙어질수록, 그에 대한 답안은 단순해진다는 점이다. 마치 어느 JPOP의 가사처럼 '우리의 미래란, 시작도 끝도 없이, 거기에 너와 내가 있으면 그만이지.'- 간단히 좋은게 좋은거지가 아니더라도, 산다는게 다 그런거지가 아니더라도, 쉽게 현실에서 그러듯이 알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려버릴 위험 수위가 크다. 알파 속에서는 '기호'에 연관된 사건들이 그 위험을 걷어낼 키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침잔하고 짙어지는 알파의 농도가 자칫 소설의 한축을 비틀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그 '기호'란 것이 현실의 우리가 품고있는 '희망'같은 존재라면, 조금쯤은 그 청사진을 흐릿하게나마 확신으로 안겨줘야하지 않을까. 아니면, 스쳐지나가는 권두 기사같은 느낌으로라도 말이다. 현실의 우리도 흐릿한 희망을 가진체, 어느사이 살지 못하고 살아지고 만다. 지친 독자와 지친 소설속의 인물들- 거기에는 확실한 공명이 일어나지만, 자칫하면 공멸로 이어질 위험성도 갖고 있다.

나머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래전부터 쭉 이어져온 작가만의 전통(?)같은 것이다. 동양풍의 국가(마)와 아는 것이 많으면서도 적고, 제멋대로이면서 그렇지 않고어른스러우면서도 어린아이같은 아이(서린)의 등장, 기우로 만나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두 인물의 구도(준과 서린, 스테어와 기리엔등)등은 언제나 나름대로의 설득력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오랜 독자라면 조금은 식상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동양풍의 국가-는 아무래도 좋지 않았나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을 이어주는 주도구인 '연민'이란 감정은 잘 드러나는 반면, '연민'을 실행시키게끔 하는, 세상과 다른 감정에 대해서는 너무 피해가는 느낌도 든다. '연민'과 '연민'간의 갈등 또한 다채로울 수 있겠지만, 알파 세상에는 오로지 그만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좀 더 차가운 감정,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질만큼 두렵고 짜증나는 부분에 대해 주인공의 성격상-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가끔은 그것에 정면 돌진할 필요도 있지 않을런지.


이제 겨우 10화를 넘어간, 그야말로 연재 초반에 불과한 장편 소설에 대한 감상문 치고는 너무 길고, 지리멸렬하게 말이 많았던 듯 싶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알파에대한 필자의 기대이고, 또한 좋은 작품으로 남기를 바라는 기원임을 밝혀두고 싶다. 마지막으로 충심을 다해 작가분의 건필을 빌면서. 이만 어리숙하고 졸렬한 감상문을 맺는다.

* mirror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4-01-30 21:27)
댕!
댓글 1
  • No Profile
    갈원경 03.08.17 22:48 댓글 수정 삭제
    찔리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군요...;; Alpha의 제목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초반밖에 되지 않는 글에 이렇게 감상 주셔서 고맙습니다. ^_^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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