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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칭 포 슈가맨 (Searching for Sugar Man) : 삶은, 때론 기적이 될 수도, 영화가 될 수도 있다.

다큐멘터리| 스웨덴, 영국|86분 |2011감독 : 말릭 벤젤룰|출연 : 말릭 벤젤룰, 로드리게즈

 

 

 

  ※ 감상이므로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를 안 본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그러나 나는 어떤 학문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 움베르트 에코, 『젊은 소설가의 고백』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은 한 사람을 찾는 보고서 같은 영화다.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지루한 구석은 거의 없다. 그것은 왜일까? 영화 속 기사 제목으로도 언급되어 있듯이, 잊힌 가수를 찾는 이 여정은 어딘가 숭고함을 지녀 ‘예수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초반은 이렇다. 사실을 단순하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아마츄어 탐정들이 한 인물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으로 플롯을 구성했다. 추리 서사를 다큐멘터리에 녹여 넣음으로써 상당히 흥미로운 구조를 취한 것이다.
  ‘서칭 포 슈가맨’. 로드리게스라는 가수는 과연 누구일까.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 정책이 심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시위를 이끌어낸 자유의 상징 같은 노래가 있었다. 그건 로드리게스라는 이름만 알려진 한 가수의 음반이었다. 콜드 팩트. 차가운 사실이라는 이 음반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백 만장이 넘게 팔리는 기록을 세운다. 그런데 누구도 로드리게스가 누구인지 모른다. 미국에서 발매된 음반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유명한 가수일거란 짐작만 하고, 그 뒤에 음반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콘서트를 한 뒤에 총으로 자살했다는 추정이 정설처럼 떠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비틀즈만큼 유명한 음반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떻게 맞이했는지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아무도 그것을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고 소문만 무성하게 오랜 세월이 흐른다. 그런데, 한 음악 칼럼니스트가 왜 로드리게스에 대해 찾으려는 사람이 없느냐는 글을 쓰고, 그것을 계기로 두 음악 칼럼니스트가 힘을 합쳐 로드리게스를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에 음반 사진과 가사를 토대로 추리를 하고, 인터넷 페이지를 만들어 로드리게스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
  한 나라의 자유의 상징 중 하나였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 예술가를 찾는 이 이야기는 마치 구원자를 찾아 떠나는 모험 같이 보인다. 도대체 누구일까. 음반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는 왜 이런 가사를 썼을까.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이 예언자는 과연 누구인가.
  초반에 감독은 로드리게스를 추억하는 미국 음반 제작자의 인터뷰를 삽입해서 그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추리의 끝은, 로드리게스의 무덤을 발견하는 것으로 귀결될 것만 같다. 관객은 이 교묘한 플롯으로 인해 초반에는 로드리게스의 무한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실패했으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본인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무명 가수로 죽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이건 모두 감독의 함정이었고, 이야기는 놀라운 반전을 맞는다. 로드리게스는 미국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전설의 가수는 아직도 지구상에 살아서 노동자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소름이 돋는 국면 전환이었다. 이야기는 이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이건 마치 예수의 흔적을 좇던 이들이 실제로 예수를 맞닥뜨린 것과 마찬가지다. 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전설이 되어버린 사나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죽은 줄 안 전설의 뮤지션과 실제로 통화를 하게 된 사람의 심정은 어떨까. 영화는 추적의 과정 끝에 그들이 마주한 놀라운 진실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관객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전달되도록.
  이제 로드리게스의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놀라운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가수를 접고 노동자로써 지금까지 삶을 살아냈다. 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천재 예술가와 어울릴 법한 소문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 매일 매일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인생을 견뎌내었다는 것, 자기 자리에서 세상의 부조리와, 수많은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우고, 세상과 마주보기 위해 시의원에 출마하고 그러면서 끝끝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노래 부르는 것으로 살아가지 못했지만, 가사 속에서 비치는, 읽을 수 있는 그 자신으로 계속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진정 놀라운 전설이었고 경이였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꿈은 얼마든지 접힐 수 있고, 세상은 뜻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결정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는 것이다.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을 움직였고 뇌리에 큰 인상을 남긴 부분이었다. 로드리게스는 결코 예술에 잡아먹히지 않았다. 그는 가수이자 노동자였고, 아버지였으며, 꿋꿋이 삶을 이어나갔다. 단편적이지만 그가 더 이상 음반을 발표하지 못한 채 살아간 그 삶에서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죽음보다 경의로운 것은 삶이기에.
  그 뒤로는 행복감이 충만한 기적이 이어진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넘어가서 인터뷰를 하고 콘서트를 연다. 수십 명이 올 것 같은 그 콘서트는 몇 만명으로 매진되고 사람들은 모두 로드리게스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여기서는 단순한 감동이 물밀 듯이 느껴진다. 미국에서 몇 장 팔리지도 않았던 음반이 다른 나라에서 백 만 장이 넘게 팔리고 사람들이 셀 수도 없이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가수 본인이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의 열렬한 팬들과 콘서트를 하게 되었을 때, 그 벅찬 감동은 관객에게도 곧장 전달된다. 몇 장의 그림을 팔지도 못하고 죽은 반 고흐가 지금 이 시대에 자신의 그림이 전시된 미술관을 보는 것과 동일한 감격이 영화 내내 현실로 벌어진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당시 녹화된 영상들이 실제로 흐르는 동안 전율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렇게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이 마법 같은 현실에 안주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돈을 버는데 집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드리게스는 기적이 일어난 뒤에도 자신의 음악을 들어준 이들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미국으로 돌아간다. 돈에 연연하지 않는다. 삶을 지속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음악 영화인 만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전체가 한 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음악은 끊임없이 나온다. 영화 속에 흐르는 로드리게스의 음악들은 왜 그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사랑받았는지 느껴질 만큼 좋게 다가온다. 초반에 미리 등장한 음악들 때문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이 음악들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알기 때문에, 미국 음반 제작자의 인터뷰를 통해 그 음악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콘서트에서 흘러나오는 라이브 음악은 그 당시 콘서트를 직접 본 관객들뿐만 아니라 이제 영화로 듣는 관객들까지 아름답게 들린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세상이 한층 아름답게 보인다. 행복감에 젖게 된다. 반전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정말 동화 같은 기적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얽힌 놀라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플롯이 잘 짜여서 흥미진진했고, 로드리게스의 삶은 그 자체로 빛났으며, 음악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귓가에 맴돈다.■

 

 

P.S 인터넷 검색을 하자, 신중현과 로드리게스가 작년에 함께 '라이트 인 디 애틱(Light In The Attic)'의 10주년 기념 스페셜 콘서트에서 공연을 펼쳤다. 기적은 현재 진행형이다. 밥 딜런보다 더 뛰어난 평가를 받았지만, 음악인의 삶을 살아갈 수 없었던 그가 영화 개봉을 통해 두 번째 기적을 맞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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