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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The Illustrated London News: ILN, 이하 일른)은 가상의 런던을 배경으로 한 공동 창작 프로젝트이다. 편집장인 아밀을 중심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네 명이 함께 진행하고 있다.
   그 중 아밀의 [그려지지 않은 그림]과 추선비의 [업스탠딩 레이디]가 거울 초청장편 꼭지에서 연재되고 있다. 일른 공식 홈페이지 주소는 lunabell.net/iln이다. 해당 사이트를 방문하면 먼여행의 [공작가 이야기], 박가분의 [런던 로너], 아밀의 또 다른 장편 [런던 행복록] 외에도 외전 및 다양한 일러스트 들을 감상할 수 있다.
   현재 아밀 님은 런던에서 어학연수중이시며, 먼여행 님은 일본에, 박가분 님은 군대에 계시는 관계로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1> 일른에 대한 일반적인 질문들입니다.
   이하 편집장 아밀이 다른 구성원들을 대표하여 답변했습니다.

   1. 언제, 어떻게 결성하게 되었나요?

   2006년 가을 때쯤이었어요.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한창 RPG나 가상세계같은 걸 달리다가 다 일단락이 되어가던 시점이었는데요. 그때 절감한 것이, 뭔가 다 같이 창조적인 ‘놀이’를 하는 건 즐겁긴 하지만,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다 같이 놀며 즐기는 ‘창조’ 같은 걸 해보면 더 보람되고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었어요. 빅토리안은 제 개인적인 로망이었기에 그걸 배경으로 써볼까 싶었구요. 그걸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다가, 지금 멤버이신 추선비님이랑 카페에서 놀다가 꺅꺅 이런 거 해볼까 하고 기어이 말을 꺼냈던 게 만악의 시초였달까요...
   그러고는 겨울때쯤 제가 거울 필진분들을 중심으로 수소문해서 멤버들을 모으게 되었어요. 그러고보니 결성한 지 벌써 1년 반이 넘었군요, 어머나... 아무튼 뭐랄까 처음엔 RPG나 가상세계의 반동으로 생긴 글 쓰는 취미집단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지금은 진지하게 하나의 창작물을 다 같이 제작하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스튜디오에 가깝게 되었습니다. 다들 생업 다음으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프로젝트가 되었네요.

   2. 공동창작이라고 들었어요. 공동창작 형태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네, 공동창작. 이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거 같아요.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나 만화만 공동창작이냐, 소설도 공동으로 만들 수 있다! 고 생각하고 임했던 건데요, 물론 경우가 좀 다르긴 해요. 왜냐면 애니나 영화나 만화는 다수의 스탭이 덤벼서 한 개의 작품을 일궈내는 거지만, 소설은 애초에 일인작업체제일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네 명의 작가 모두가 각자만의 소설을 쓸 수 있는 것을 모토로 삼았어요.  예를 들어 지금 거울에 연재되는 제 작품인 [그려지지 않은 그림] 한 편만 읽더라도, 충분히 독립되고 완결된 장편소설 한 편으로 재미있게 읽힐 수 있어야만 하는 거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 각각의 독립된 소설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점도 중요해요. 단순히 공간적 시간적 배경이 겹치거나, 서로의 캐릭터가 조역이나 찬조로 출연해주는 그런 산발적 이벤트성 연출에 그친다면 그건 공동창작이라고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핵심적인 ‘플롯’ 자체가 얽혀있어야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ILN의 세계는 모자이크처럼, 하나하나가 개별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멀리서 한꺼번에 보면 그 자체로도 하나의 멋진 그림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그런 것을 목표로 삼았어요.
   이걸 이루기 위한 과정은 섬세할 수밖에 없었지요. 첫 단계인 캐릭터 메이킹(character making)에서는, 모든 멤버들이 1890년 런던이라는 조건 하에 각자가 쓰고싶은 주인공을 먼저 설정했어요. 그 주인공의 성장 배경, 신분, 특징, 인상, 성격 같은 간단한 프로필이요. 그리고 그 주인공을 통해서 쓰고 싶은 대략적인 자기 소설의 분위기나 목적이나 방향성 같은 것을 명시하게끔 했어요.
   이 다음 단계는 ‘아웃라이닝(outlining)’인데요. 첫 단계에서는 인물이나 그 인물의 과거나 각자가 쓰고자 하는 소설의 대략적 방향성만 제시되었지,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공백이었잖아요? 이제 이 단계에서 서로가 각자의 초안을 살펴보고, 그걸 고려하면서 전체 이야기의 아웃라인을 만드는 거예요. 각자의 주인공이 서로 연관될 여지가 있는지를 검토하고 상의하기 시작하구요. 이 단계에서 굉장히 다양한 상상력이 전개되었죠.
   이 다음 단계는 ‘플로팅(plotting)’이에요. 러프한 아웃라인이 만들어지면, 각자가 자기 소설의 플롯을 짜서 제출하는 거예요. 그리고 서로의 플롯을 참고해서 구체적이고 미세한 사항들을 조절하고 수정하는 거죠. 이 과정이 사실 품이 굉장히 많이 드는데, 짜면 짤수록 고려할 게 점점 많아지거든요. 그래서 1차, 2차, 3차, 4차, 거듭거듭 재플로팅이 필요해져요.
   모두의 플롯이 한 차례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을 때는 마스터인 제가 ‘연대표’를 작성해서, ILN 세계 전체의 거시적 이야기의 맥락의 흐름을 멤버들이 한 번에 알아보고 참고할 수 있게끔 합니다.

   여기까지가 설정단계였구요. (...)
   집필은 ‘텀’이라는 단위로 진행됩니다. 한 텀은 2주일 정도이구요. 한 텀 당 서로가 써야만 할 분배량이 연대표로 할당이 됩니다. 이 분배량은 되도록이면 같은 시간대에 일어나는 사건들로 플롯 진행의 속도가 맞춰져 있어서, 작가들은 한 세계 속에서 같이 호흡하면서 살아가고, 작업해야만 하게 되지요. 이 텀 개념은 프로젝트 전체에 지속성과 탄력을 주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서로가 각자의 텀 분량을 쓰고 나면, 우선 내부 블로그에 먼저 올려서 확인하고 설정 상의 오류가 없는지를 검토하고 퇴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 이후에나 ILN 공식 홈페이지나 거울 초청장편란에 공식적으로 업로드를 하게 되지요. 이것을 ‘발행’이라고 합니다.
뭐 이리 길지요? -_-
  
   ▲ 거울에 연재중인 [업스탠딩 레이디]와 [그려지지 않은 그림]의 두 주인공인 페이션스 호프와 세실 브랜윈의 그림입니다. 일른 전속 일러스트레이터이신 미미르님의 작품입니다.

   3. 예전에 PC 통신 시절에 가상세계라는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글을 쓰는 모임이 유행했던 적이 있어요. 일른에서 말하는 공동 창작과 PC 통신 시절의 가상세계와 차이점이 있다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사실 ILN의 결성 자체가 제가 가상세계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커요. 요즘은 또 웹상에서 비툴 커뮤니티나 소설 커뮤니티가 많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런 커뮤니티들이 가세의 맥을 이어받은 게 아닐까 싶네요.
   첫 번째 질문에서도 답변드렸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가세와 다른 점은, 가세는 궁극적으로 ‘놀이’라면, 공동창작은 ‘창작’이라는 거예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저는 가상세계는 놀이와 창작의 중간 형태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인 창작능력과 글쓰기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는 놀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비록 본격적인 룰이나 게임적 요소가 없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성’이 존재한다면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의 ‘소설 창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흐름, 인물의 성격과 역사와 갈등의 모든 것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완결성 있고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가상세계는 일단 세계관과 배경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그때그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가세의 형태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마스터의 지령에 따른 ‘선언’을 통해 글이 전개되며, 세계 전체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는 작가 자신은 모르는, 그런 상태에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흔히 가상세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이 ‘플레이어’라고 불리는 것도 그런 이유고요(일른에서는 ‘필진’ 혹은 ‘작가’라고 합니다). 가상세계는 이런 모종의 놀이성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상상력이 무척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이루면서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부푸는 것이 굉장히 흥미진진해요. 그런데 그만큼 그 예상치 못한 방향이라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곳으로 흐를 수도 있고, 글쓰기라는 작업 자체가 힘들어서 흐지부지되어버릴 수도 있죠.
   하지만 일른은 철저히 모든 것을 다 같이 기획하고 시작해요. 눈에 띄는 가장 현저한 차이라면, 가상세계와 달리 일른에서는 각자의 이야기의 전체 ‘플롯’을 미리 만들고 제출한다는 점에 있을 거예요. 작가들은 서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질지, 캐릭터들이 어떤 배경과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두 서로 상의하고, 모두 같이 결정하고, 모두 알고있는거죠. 흐지부지는 없어요.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거고 살면 다 같이 사는 거예요. (웃음)
   또한, 가상세계는 외부의 독자가 개별 소설들을 따로 떼어놓고 읽으면 그다지 재미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요. 요즘만 해도 소설 커뮤니티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죠. 거기에 참여하는 멤버는 물론 컴퓨터만 켜면 일종의 가상세계 속에서 24시간을 살아가며 가상의 이야기를 쓰고 주민들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어요. 하지만 커뮤니티 밖의 사람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않지요. 하지만 일른은 그와는 달리, 정말로 일른의 소설을 출판했을 때 독자에게 정말 진지한 창작물로서 ‘읽힐 수 있는’ 것을 지향하고 있어요.
   간혹 가상세계에서 만들어진 소설이 독자성을 띠고 완결성 있는 글이 되는 경우도 종종 보긴 했어요. 하지만 이런 경우는 으레, 다른 플레이어들과 이야기가 많이 겹치지 않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인물들이 해당 소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조연이나 엑스트라에 머물거나, 다른 플레이어들의 이야기가 사실상 연재 중단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당 소설의 흐름에 맞게 임의대로 움직여져도 상관없는 경우들이더라구요. 하지만 일른은 서로의 이야기가 정말로 깊게 얽혀 있어요. ‘B라는 이야기가 없이는 A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을 정도로 깊이요.
   이건 정말이지 힘들 수밖에 없어요. ^^; 사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하기에는 굉장히 무거운 작업인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제가 처음에 필진을 모집할 때 경고한 바 있어요. ‘가상세계를 생각하고 계신다면, 그것보다는 훨씬 덜 즐겁고 훨씬 더 힘들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라구요.

   4. 처음 세계관은 누가, 어떻게 짰나요?

   일단 세계관이라면 어차피 1890년의 런던이니까, 역사적 현장을 그대로 빌려온 거죠. 말씀드렸다시피 빅토리안조의 런던은 제 로망이기도 해서(웃음) 차용을 해온 거고... 이 런던 속을 살아가는 다양한 신분과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뭔가 공통적으로 얽힐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건 역시 그 당시에 한창 전성기였던 신문잡지출판업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당시 실존했던 삽화중심 잡지였던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를 모델로 해서 주요 설정은 제가 마련을 했네요.
   이 이후로는 모두 설정과 고증의 적층과 연속과도 같아요. (웃음) 그때그때 필요한 세계관이 있을 때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혹은 새로 발견한 역사적 사실이 있을 때마다, 멤버들은 내부 블로그에 그걸 포스팅해서 공유하고 적용하려고 노력하지요.

  

   ▲ 일른의 세계관, 1890년의 런던을 엿볼 수 있는 사진. 1890년대 당시 상류계급 가정집의 방의 정경입니다. 제프리 박물관(Geffrey Museum)의 전시실입니다.

   5. 회원은 모두 몇 분이시고, 각각 어떤 글을 쓰세요?

   회원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네 명이에요. 모두 기존 거울 필진이구요. (웃음)
   저 아밀(루나벨)은 [런던 행복론]과 [그려지지 않은 그림] 두 편을 쓰고 있어요. [런던 행복론]은 ILN이라는 잡지사를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는 한 영국 신사와 그 정치적 갈등, 주변의 여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고요. [그려지지 않은 그림]은 그 잡지사에서 삽화를 청탁받고 있는 청년 화가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입니다.
   추선비님은 [업스탠딩 레이디]를 쓰고 계시는데요, 인도에서 유년기를 보내다가 런던으로 온 한 아가씨가 돌연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자신도 살해위협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겪는 이야기가 되겠구요.
   [그려지지 않은 그림]과 [업스탠딩 레이디]가 거울에서 연재되고 있지요. 두 이야기 모두 살인 사건을 추적하고 있지만, 각각 다른 각도에서 다른 방법으로 사건에 접근하고 있어요. 쌍으로 읽으시면 전체 그림을 짜맞춰가는 재미가 있으실 거 같아, 이 두 편을 거울에 게재하게 되었네요.
   먼여행(갈원경)님은 [공작가 이야기]를 연재하고 계십니다. 고명한 공작 가문의 후계자인 드링코트 백작, 그 가문의 피후원자로 들어온 평민 청년인 닉스, 공작가 소관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고 있는 멸문한 귀족 가문의 딸 릴리아. 이 세 사람이, 런던 전체를 떠들썩하게 하는 연쇄살인사건과 얽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박가분님은 [런던 로너]를 쓰고 계세요. 시골에서 고아로 자라났지만 비정상적으로 총명한 한 소녀가, 런던의 명망 높은 자선가이자 정치가인 귀부인에게 발탁되어 후원받기 시작하면서 성장해가는 이야기입니다.
   모두 매력적인 이야기들이에요. ^^

   6. 일른의 세계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일른은 1890년의 런던을 배경으로 합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Illustrated London News’는 당시 실존했던 삽화중심의 주간지로, 가장 인기 있던 잡지 중 하나였습니다. 줄여서 ILN이라고 불리웠으며, 저희 팀 명칭인 일른(ILN) 역시 저 약자를 따라갑니다. 일른의 모든 인물들이 ILN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일종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되겠네요.
   빅토리아 여왕 재위기의 영국은 산업적으로 번영하고 제국적으로 팽창하던 황금기였습니다. 그리고 1890년은 그러한 번영의, 그리고 20세기라는 한 시대의 끝말에 닿아있던 때였구요. 발전과 모순, 이성과 광기가 혼재하던 시기. 신사숙녀와 귀족과 계급과 드레스와 여왕과 예절과 신앙이 남아있으면서도, 철도와 시장 경제와 출판인쇄와 공장과 사회주의가 동시에 자리잡고 있던, 근대와 현대가 한 데 섞인 장소가 바로 런던이었습니다.
   일른의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런던의 한 단면을 조망합니다. 일른에는 매우 다양한 신분과 직업과 성품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듯한 매력적인 이중성과 갈등과 소망을 껴안은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과 사회적 입지에 따라 거미줄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리고 런던을 떠들썩하게 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일른의 세계는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지요. 죽인 사람, 죽임당한 사람, 앞으로의 죽음을 막으려는 사람, 죽임당할 사람, 죽음을 이용하려는 사람, 죽음에 이용당하는 사람, 그들 중 하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들 중 하나를 미워하는 사람...
   일른은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들이 정교하게 어우러지면서, 어떤 역사와 사회의 한 지점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종래의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필연적으로 전경에 의해 축출되거나 추상화될 수밖에 없는 배경적 요소들이 발생하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이나 지표에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다고 한다면, 공동창작으로 구성되는 ‘일른’은 마치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의 종이 위에 옮겨놓은 입체파처럼 다각도의 삶과 사회를 깊이 있게 보여줍니다.
   전 지금 현재 런던에서 살고 있는데요. 종종 정말 118년 전 이곳의 어느 거리 어느 펍에, 저 인물 중 하나가 바에 기대서서 에일을 마시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생한 입체감이 들어서 선득해지곤 한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비슷한 걸 느끼실 거예요. 일른을 읽는 경험은, 정말 하나의 살아움직이는 세계 그 자체를 읽는 경험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

  

   ▲ 1890년의 런던을 엿볼 수 있는 사진 한 장 더. 당시 중상류층 신사들이 홍차를 마시거나 구두를 닦거나 모자를 맞추던, 레든홀 마켓(Leadenhall Market)의 풍경입니다. 19세기식 정취가 그대로 살아 있지요.



   <2> 편집장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1. 일른 내에서 편집장은 어떤 역할을 맡나요?

   설정과 진행과 텀 배분의 전체 과정을 관리 감독합니다. 발행 및 업데이트와 메일링 서비스를 책임집니다. 뭐 현재 런던에 직접 출장...이 아니라 어학연수를 와서 모두의 고증과 자료조사를 위해 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응? (...)

   2. 운영을 하시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할 게 너무 많아요!!!
   아니 진짜로... 너무 많아요orz 뭐 세세하고 미묘하게 어려운 점이 있다기보다, 그냥 무엇보다도 물리적으로 시간과 노력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지요. 그 외의 힘든 점은 운영자로서의 고충이라기보다 그냥 공동창작 자체의 고충이라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거 같아요. 훌쩍.



   <3> 공동 질문입니다.

   1. 공동창작의 매력이라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아밀   아,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글쓰기라는 게 천성이 고독한 작업인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일른은 결코 그럴 새가 없어요. 솔직히 말이죠, 소설가들이 어떤 공동의 목적으로 모이는 경우는 많지만요, 워낙 소설 쓴다는 게 개인성이 강한 작업이고 그걸 쓰는 사람들 역시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보니까, 으레 낱알처럼 흩어곤 하잖아요? 글을 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누구보다도 서로가 잘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각자의 세계를 지켜야 하니까 궁극적으로는 타인인거예요.
   이런 점에서 일른은 일종의, 소설창작 세계에 있어서의 공산주의와도 같은 이상성이 잠재해있는 거 같아요. (웃음) 분명 서로가 독립적인 작업을 하고 있고 그걸 존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플롯이나 구상이나 작품 자체가 좋지 않으면 곧 자신의 세계도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동의 선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곧 개인적인 성취와도 직결되는 거죠. 가장 멋진 점은, 서로의 작품과 세계가 곧 내 작품과 세계인 것처럼 중요해진다는 거예요.
   ‘글쓰기’라는 속성을 차치하더라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그 결실을 공유하며 함께 기뻐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실 무척 보람되는 거죠.
   글쓰는 사람으로서 배우는 것도 참 많아요. 말씀드렸다시피 각 작품의 플롯들이 서로 매우 깊게 연관되어있으면서도 독립성을 유지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걸 논의하고 맞춰나가는 과정에서 좋은 영향력을 많이 주고받게 되죠. 사소한 씬을 짜는 것에서부터 전체적인 사건의 전개 방식을 설정하는 데에까지, 서로 다른 창작관과 창작 방식의 깊은 데까지 마주보고 부딪혀야만 하는 과정이 수반됩니다. 그러면서 발전하고 얻어가는 일이 참 많아요.

   추선비   역시 절대 외롭지 않다는 거죠.
   힘들 때에도 함께 고민할 동료, 충실한 피드백을 돌려줄 독자가 바로 옆에 있어요! 이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에요. 플롯이 막혔을 때에도, 세계관이 막혔을 때에도,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내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같은 주제로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고 이야기에 깊게 공감할 동료가 있어요. 이건 굉장한 놀라움이에요. “첫사랑으로 끙끙 앓으며 간신히 고백했는데 마침 상대도 나를 좋아하고 있었대요!” 급의 기적 같아요. 물론 현재 함께하는 ILN의 구성원들이 특별한 덕분도 있어요. 아밀님, 먼여행님, 박가분님, 모두 특별하고도 특출난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현재 구성원들과 함께 ILN을 하게 된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공동으로 하는 작업이 마음과 취향을 깊게 이해하고 서로를 가능한한 맞추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구성원들과 함께하게 된다는 건 놀라운 행운이죠.
   장점을 하나 더 들자면, 서로의 단점을 서로가 커버해줄 수 있어요. 플로팅 단계에서 ILN의 구성원들은 모두 서로의 플로팅을 깊게 이야기합니다. 물론 서로 연관된 사건과 연관된 캐릭터들이 있을 때 더 깊게 이야기하게 되는 점은 있는데... ILN은 구성원들이 한 장편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모두가 다함께 ILN이라는 거대한 장편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단계에서 터놓고 이야기해요. 서로의 플롯이 가진 단점, 캐릭터가 가진 모순들... 이야기할 것은 한없이 많고, 보완해갈 가능성은 한없이 크죠.

   박가분   제 개인적인 부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전 작가로서의 경험이 일천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있습니다. 어떤 멋진 장면과 매혹적인 인물, 그리고 긴박하고 스릴 있는 대화와 액션들, 이런 것들은 영화나 소설 어디선가 주워담은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개인적으로 품었던 환상과도 같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나마, 이런 것들을 구체화시키는 시도들을 해보곤 합니다. 이런 초보적인 ‘창작’ 행위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에서 출발해서, 어느새 팀원들과 의기투합하여, 실제로 많은 것들을 보다 치밀하게 자기 손으로 짜야하는 현실적인 책임을 맡게되었습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입니다. 최초로 어떤 달콤한 구상을 착안하는 데에서 오는 즉흥적 즐거움을 완결시키는 데에는 그런 현실감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 부분, 실제로 퇴고까지 마쳐야 온전한 한 편의 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어떤 마련된 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았다 싶은 저로서는 마스터와 팀원으로부터 많은 도움과 조력을 얻어, 첫 경험이라는 데에서 오는 어려움들을 많이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공동창작이라는 것에 제 개인적으로 느끼는 고유한 매력이라 하겠습니다.

   먼여행   기본적으로 독자가 생긴다는 게 좋죠. 그것도 이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골수 독자구요. 스토리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 있는 상태에다 멤버들 사이엔 그런 설정들이 서로 공유되어 있어서, 아직 글에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의 뒷배경이라든가 설정들도 멤버들은 알고 있으니까, 멤버들은 가장 골수 독자라고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 부분도 있죠. 같은 시간대에 같은 도시 안의 사람들이니까, 참고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캐릭터는 제 글 안에서 ‘완성되어 있는 조연’이 됩니다. 이게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글에서는 다들 주연이기 때문에 잘못 묘사하거나 언급하지 않을까 긴장되는 면도 있지만, 그 사람들의 글을 보고 그 인물들을 이해하는데 보탬이 되기 때문에 내 글에서 등장시키는 데 편리한 점도 있어요. 어느 정도 ‘팬픽’을 쓰는 점과도 닮았을지도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편안함과 불편함은.

  

   ▲ 차 한잔 하실래요? :3 왕실 납품 홍차 브랜드인 포트넘 앤 메이슨(Fortnum & Mason)의 티룸에서 보실 수 있는 테이블 셋팅입니다.

   2. 공동창작에서 힘든 점이라면 어떤 점이 있나요? 다른 작가와 이야기를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처음 생각한 플롯을 바꿔야 한다거나...

   추선비   사실 다른 작가와 이야기를 맞추려고 처음 생각한 플롯을 바꾸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아요. 저항감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저는 그런 편인데, 왜냐하면, 제 플롯과 다른 작가의 플롯이 같은 위치에 있으니까요. 제 플롯이 움직이면 다른 작가의 플롯도 움직이고, 다른 작가의 플롯이 움직이면 제 플롯도 움직이는 것이 당연하거든요. 플롯들이 뭉쳐서 전체 플롯을 이루니까요.
   단지 힘든 거라면, 하나의 작은 사건이 일으키는 반향이 크다는 것.
   추리물을 택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긴 하겠지만, 무언가 하나를 하고자 할 때 구성원이 혼자만이 아니므로 반향이 대단히 커요. 후폭풍이 크죠. 이건 플롯과 깊게 얽혀있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 중요한 의미가 있는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사건을 설정하고 싶으면 이쪽에선 그 의미가 왜 생겼고 왜 도둑맞으면 곤란하고 언제 어디서 도둑맞았고 도둑맞아서 어떻게 변해갈지를 설정해야 하죠. 얽혀있는 다른 작가의 플롯에선 그걸 왜 훔쳤는지 훔쳐서 어다 쓸 건지 훔친 일로 어떻게 되는지를 부드럽게 녹아들도록 설정해야 하는 거고요. 그래서 하나의 사건이 일으키는 반향이, 커지는 거죠. 하하;;
   그리고 스케줄.
   현재 ILN은 국제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데(하하;) 위치 뿐만이 아니라 각자 다들 생업과 본분이 있기 때문에 플로팅 밑작업만 근 반년을 넘게 끌었던 기초작업 당시 서로의 일정을 맞춰서 이야기하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참 힘들었어요.
   이것만 끝나면 될 거야, 하고 생각하며 버텼는데 텀이 진행중인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 스케줄 문제가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죠... 하하;;

   먼여행   아무래도 같이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때문에 처음 생각과 달라지는 면이 있겠죠. 다른 사람들의 글에 등장하는 내 캐릭터를 주의해서 보게 되고요. 멤버들의 캐릭터들과 서로 얽히는 사건들이 많은데, 별 거 아니겠다 싶은 것이 큰 문제를 일으켜서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나비 효과 같아요. 딱 한줄로 언급하고 넘어간 내용들이 다른 사람들의 설정과 대대적으로 충돌해버리기도 하고, 캐릭터의 설정을 꽤 많이 바뀌기도 하고.
   지금 일른은 업데이트 전에 며칠간 멤버 홈페이지에서 멤버들끼리 점검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에서 꽤 내용들이 수정되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한 화를 쓰고 나서도 끝나지 않고, 공개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나서야 아아 이제 끝났구나 하고 안심하게 되네요. 그런 긴장감이 좀 있고...
   저같은 경우엔 처음엔 두 명의 이야기였던 게 세 명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였네요. 생각했던 스토리와 초반부에 상당히 많이 바뀌어서, 지금 처음의 설정을 보면 조금 웃음이 나올 정도랄까.
   혼자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는 게 아니다보니, 다른 사람들의 글이 진행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부분도 있긴 하네요. 동시간대에 진행되는 게 가장 서로 협조하기 좋으니까, 누구 하나 빨라져도 늦어져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어려움일까요.

   아밀   다들 언급하신 부분이지만, 역시 하나의 사건이나 설정이 끼치는 반향이 굉장히 크다는 걸까요. 작은 설정 하나가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로 돌아와서 플롯 전체를 조정해야만 할 때는, 정말이지 내가 직접 만든 창작물이라고 해서 내가 전부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절망감을 느끼게 돼요. 하하. ^^;
   기본적으로 다른 작가와 어떤 요소를 공유하기로 합의를 하면, 그게 예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해지곤 해요. 내 인물이랑 네 인물이랑 연애하기로 하자, 고 설정을 했다 치면, 그거 자체로 어떤 ‘로맨스’라는 기승전결의 플롯이 소설 전체에 적용되어야 하면서 이미 결정된 다른 이야기구조와도 잘 맞물려야 하는 거잖아요. 그걸 잘 다듬으려다보면, 다른 걸 덜어낼 수는 없으니까 (다른 것들도 으레 다른 작가들과 합의를 본 사항이기 때문에 내 멋대로 할 수는 없죠) 결국은 플롯이 왕창 불어나게 돼요.
   또 하나 힘든 점은, 플롯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고 세심하게 짜야 한다는 거예요. 사실 굳이 공동창작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플롯을 최대한 충실하고 자세하게 짜는 게 소설쓰기의 성실함이라고 믿는 사람이긴 합니다만-_-; 근데 공동창작은, 이를테면 나는 굳이 세세하게 짤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그 장면을 공유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는 중요한 부분일 수가 있잖아요? 그런걸 다 고려해야 하다 보니까 무척 신중하고 까다로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더라구요.

   박가분   공동창작 프로젝트 일른은 개별 작가들의 지향점이 모자이크를 이루는 총체입니다. 그만큼 플롯과 텀 진행에 있어서, 사소한 버그에서부터, 중대한 설정들을 조정하고 합의하는 일들이 어찌 보면 지난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힘든 것이라기보다는 1.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 개인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자산으로 자산으로 다가왔습니다.
   좀 더 큰 문제는 역시 고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일른 프로젝트는 1890년 런던이라는 배경의, 구체적인 역사적 국면에서 출발합니다만, 큰 틀에서 세기말 런던이라는 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에서 각자 창작 역량을 발휘하는 데 큰 제약을 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시대에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고, 누가 당대를 살아갔지에 대한 치밀한 고증을 차치하고서라도, 역시 어떤 역사적 배경을 다룬다는 것의 묘미는 실제로 존재했거나 존재했을 법한 어떤 구체적인 결들을 인물과 배경에 입히는 것이기에, 아무래도 그런 쪽에 자꾸 더 손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인터넷으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각기 팀원이 발품을 팔아 자료를 얻어야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3. 공동창작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고 싶은 게 있다면요?

   먼여행   같이 쓰게 되면 중간에 그만두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네요. 지금 한 사람이 만약 빠지게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꽤 치명적인 영향이 가버려요. 전체적인 스토리도 수정되어야 하고... 지금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었으니까 아예 스토리 수정이 불가할지도요. 한 사람이 빠진다는 게 프로젝트 전체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니 책임감이 커져서... 어떻게든 쓰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은, 엔딩을 보고 싶어요. 처음 시작할 때 1년 정도로 예상했었는데 생각보다 무지 많이 길어졌죠. 처음 생각했을 때보다 더 충실해지고 좋아진 부분도 있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든 부분도 있고... 지금은 어떻게든 엔딩까지 가자는 게 큰 목표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세 사람이 다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 그 부분을 어떻게 소화해 내는가가 개인적인 목표점이네요.

   박가분   큰 것은 없고, 사람들을 울리고 싶습니다. 정말로. 저는 개인적으로 눈물이 많습니다. 알기 쉬운 키취한 감수성에도 쉽게 눈물샘을 내어주기도 합니다. 예, 사실 신파를 싫어하지 않습니다. 동정심을 들게하는 것들, 연약한 작은 것들, 사라져가는 작고 여린 것들, 지켜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만으로 의지하는 허장성세에 가까운 용기둘, 보통 사람들, 저는 이런 것들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어떨까요? 가령 그렇습니다. 브레히트의 연극의 인물과 제스처들은 다소 간에 위악적이고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어떤 것들은 신파조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은 어떤 아이러니한 ‘인식’으로까지 나아갑니다. 단순히 반어나 풍자로 그치는 게 아닌, 그 자체로 피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로서 말입니다. 장기적으로는 그런 경지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웃음)

   추선비   이미 많은 걸 얻었어요. 작업하는 타인의 시각과 가치관 등을 경험할 좋은 기회였죠. 기실 작가들은 홀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걸 같이 경험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공동창작을 통해서 딱히 얻고 싶은 것은 이미 얻고 있으니 이제 남은 과제는 완결을 향해 달리는 거예요. 업스탠딩 레이디는 성장하는, 성장해야만 하는 소녀들의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결말에 이를 즈음의 이 아가씨들은 저와 함께 다른 지점에 서 있겠죠. 그 지점이 어디일지 현재의 저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니 얼른 골인하고 싶어요.

   아밀   저도 끝을 보고 싶다는 게 가장 큰 소망이에요. 장편소설 완결내본 적이 평생 한 번도 없어서, 이번에는 완결을 내보고 싶습니다. (...) 당장 다른 건 생각나지도 않네요...
   사실 공동창작이라는 걸 차치하고서도 말이죠, 장편 두 편을 동시연재하는 것, 둘 다 주인공이 남자라는 것, 19세기 말 영국이라는 타지를 배경으로 삼은 것, 두 작품 중 하나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로맨스라는 것(...)까지, 정말 하나하나가 모두 도전이에요. 이걸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면 정말 저로서는 한 단계 나아가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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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08.06.04 00:38 댓글 수정 삭제
    공동창작이라는 게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오고 대단한 프로젝트로 보이네요. 특히 일른 같은 경우 플롯부터 맞춰나가는 게 힘들어 보이는 한편 놀랍기도 하고요. 여러 작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처음보는 것 같아요.(마침 이번에 올라온 오멜라스 인터뷰에서 지은님이 작가들이 모여 있으니 어떤 공동의 프로젝트를 해보면 좋지 않을까, 라는 의견이 떠오르기도 하군요. 이런 게 그런 의미로 볼 수 있는 프로젝트 중에 하나이기도 하겠죠.^^) 아무튼 간에, 시간이 나면 차근차근 이 멋진 세계를 탐독하고 싶습니다. 곧 기회가 닿겠지요. 그때까지 다들 건필하시고 꼭 근사한 결말 맺으시길!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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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밀 08.06.05 22:36 댓글 수정 삭제
    감사합니다. ^^ 의미있는 작업이니만큼 멋진 결실을 맺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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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T 08.06.05 22:38 댓글 수정 삭제
    멋진 결실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