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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만드는 일의 어려움 ===

다음 질문. 이번에 나오는 게 여덟 번째 책인데, 책이 나올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는지요. 그리고 <<제15종 근접조우>>를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특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요?

진아 거울에서 책을 만들 때, 가장 자잘하게 어려운 점은, 진짜 쪼잔한 건데(웃음), 필진들마다 원고를 보내는 문서 형식이 달라서 합치고 통일하는 거예요. 한글이냐, 워드냐, 텍스트냐, 이게 다 천차만별이에요. 그래서 제가 거울 운영하면서 문서 프로그램 중 안 깐 게 없어요. ^^;
다양한 형태의 문서들을 합쳐서 모양 맞추고, 폰트 맞추고, 따옴표 모양 통일하고, 여백 맞추고, 이런 작업들이 힘들죠. ^^;;
두 번째로는 필진들이 많다 보니까, 권당 열 명에서 스무 명이 넘을 때도 있잖아요. 연락하기가 힘들어요. ^^;; 일일이 연락해서 마감 날짜 맞추고, 원고 받는 게 가끔 힘들 때가 있어요. ^^
은림 진아님이 젤 힘들 거예요. 저야 원고 넘어온 거 받으면 되는 거니까.
진아 실질적으로 문서를 합치는 건 은림님 일이라는 거. ㅋ
유서하 제가 제일 편한 것 같아요. ^^;
진아 아니죠. 일러스트가 얼마나 중요한대요.
은림 그럼요. 우리 작업이야 물 밑에서 이루어지는 거지만, 책이 나왔을 때 이걸 사겠다, 말겠다를 결정하게 만드는 건 표지 그림이 되기도 해요.
진아 표지가 눈에 띄는 게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책은 예뻐야지 잘 팔려요.
은림 책이 촌스럽냐, 예쁘냐, 그거 정말 책 팔리는데 영향 많이 줘요.
진아 거울 책이 대부분 만 원이 넘는데, 딱 보는 순간 만 원이 넘는 값을 해 보여야 하니까...
문학전집 같은 거면 모를까... (웃음)
진아 요새는 그런 세계문학전집도 예쁘게 내는 곳도 있던데요.
은림 나는 제일 놀란 게, 애들 자습서, 문제집 표지가 끝내주게 예쁘게 된 거. 아, 이제 정말 판이 달라졌구나. 이미지로 승부해야 하는구나.
요새 문제지 화려찬란해요.
은림 (문제지를) 딱 보고, 와, 나 이거 갖고 싶어, 했는데 문제집이고. (웃음)
진아 사서 풀어. ㅋ
유서하 문제집이 예뻐지기 시작했을 때쯤, 문제집이 예뻐서 뭐하냐, 종이는 왜 이렇게 고급지를 쓰냐, 그런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은림 그래도 애들은 좋아하지 않을까요.
문제집 사서 푸는 건 애들이니까.
유서하 잡지도 갱지 쓰지 왜 돈아깝게 아트지를 쓰냐,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결국 디자인은 있건 없건 별 상관없다는, 컨텐츠만 중요하다는 이야기예요. 디자인도 컨텐츠인데 말이예요.
그런 이야기를 교수님들께 하면 화내신단 말이예요. 표현의 폭이 좁아진다는 이야기니까.
은림 잡지야말로 다양한 여러가지를 보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그걸 왜 갱지로 해요.

그 동안 책 나오면서 어려웠던 점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고요. <<제15종 근접조우>>만의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요.
은림 아직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는 모르겠어요. 앞으로 남은 3주가 고비가 아닐까. 어디선가 펑크가 날 거야, 어디선가 페이지가 빠지거나, 그게 과연 어디가 될까. 언제든 나오기만 해. 바로잡아 줄 테니, 하며 벼르고 있어요. (웃음)
진아 <<혈중...>>보다 후보작이 적었어요. 그래서 작품을 선별하는 게 좀 어려웠어요. 특히 모호한 글들이 좀 있었어요. 거울은 후보작이 거의 공개되어 있으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어, 저 글이 더 나은데, 라는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거울의 기준이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요. 그런 부분들 때문에 마지막까지 작품 선정이 제일 큰 관건이었어요.
은림 네, 그래서 작가분에게 연락해서 다른 글 있으면 줘 봐라, 라거나 이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보내줄 수 있겠느냐, 부탁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실은 것도 있고, 못 실은 것도 있고 그래요.
진아 공개적인 후보작으로 올라오지 않은 글도 찾아보고, 추천이나 소개도 받고요.
은림 내놓으라고 협박도 하고.
진아 써! 뭐, 이런. ㅋ
은림 그래서 발표도 늦어졌고요. 발표는 정말 제 날짜에 하고 싶었는데... 그래도 뭐, 우린 일주일 이상은 안 늦었으니까요. 출판사 같은 경우에는 가을에 낸다고 해놓고 다음에 봄에 나오기도 하잖아요.
진아 그 쪽은 기다리는 독자가 많다는 거.... ㅋ 우리는 신용이라도 있어야 해. (웃음)
판타스틱도 2, 3개월 정도 늦게 나왔잖아요.
은림 맞아요. 가끔 나와 주기만 해도 기쁜 책들을 보며, 이상하다, 우린 소비잔데... (웃음)
진아 판타스틱이 잘 되서 장르문학 잡지가 한두 개 정도 더 생기면 좋을 텐데요. 약간 다른 성격으로...
은림 하나가 잘 된다고 다른 것도 다 잘 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유서하 판타스틱보다 좀더 가벼운 작품도 실릴 수 있는 잡지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진아 처음에는 제작진이 전액 사비를 털어 만들었는데, 이제는 예약 받으면 그럭저럭 사비를 너무 많이 안 털어도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에도 감사하고 있어요. 개인의 경제적인 사정하고 상관없이, 책은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거.
매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거.
은림 예약은 40명만 해도, 큰 출혈 없이 계속 제작할 수 있어요. <<혈중...>>이 40명이었고, 세 명이 출자금 좀 내서 했었죠.

=== 거울 책은 강하다! ===

거울 책만의 장점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은림 누군가는 내야 할 것 같은 책이라는 거죠. 그걸 거울에서 하는 거구요.
진아 출판사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못할 지라도, 거울에서는 장르 문학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서하 제가 거울 필진으로 합류하기 전에 생각했던 거울 책의 장점은, 다른 웹사이트들에서도 단편집을 출간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개는 사이트 안에서, 책에 글을 실은 사람들에게만 소화되거든요. 웹사이트 내부에서 내는 단편집들 중 거울 책이 유일하게 사이트 외부 독자들에게까지 팔리고 읽히는 것 같아요.
진아 .............. 아. (조금 감동. ^^;)
유서하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쓴 글이 읽히기를 바라는 욕망이 있잖아요. 책을 묶었다면 그 책이 팔려야 읽힐 수 있을 텐데, 외부 독자들도 사는 건 아마 거울 책뿐인 것 같아요.
은림 저는 뿌듯했던 게 <<혈중환상농도 13%>>를 선물한 다른 작가분이 댁에 들어가시는 길에 서점에 들렀는데, 서점주인이 그 책 어디서 나온 거냐고, 우리 서점엔 안 들어왔는데... 했다는 거예요. 보통 일반 서점에 깔아놔도 퀄리티 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거울은 그 분야의 프로들이 많으니까요. 디자인 과 출신이라거나... 출판사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거나... 이번 앤솔 교정은 전문가가 한 건 아니지만...;
교정 제대로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은림 배우세요. 공짜로 부려먹을게요. (웃음)
밥만 사주세요.
진아 그 쯤이야... (웃음)
언제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해보고 싶긴 해요.
진아 기억해둘 거야요.

// 이 인터뷰를 읽게 되는 모든 분들, 기억해 둡시다. ^^ //

거울이 이렇게 꾸준히 책을 내면, 한 10년 쯤 지나면 초기 책들은 희귀본으로 대접을 받을 지도 몰라요. (웃음)
진아 사실 거울에서 책을 찍으면서 했던 생각이... 우리가 몇 년만 하면 국내 모든 출판사에서 낸 국내 창작 장르 단편집을 다 합쳐도 거울 한 곳에서 낸 게 권수로는 더 많을 것이다, 였어요. (웃음)
이미 많아요.
진아 아니에요. ^^; 요새 많이 나와서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기뻐요. ^^
공포단편집 2권 나올 거라고 하고...
진아 진산님 무협 단편집도 나왔고요. 이가서에서 몇 권 냈고요. 아, 그리고 뱀파이어 걸작선도 있었죠.
은림 우리가 먼저야.

// 간발의 차이긴 했지만 <<혈중환상농도 13%>> 출간이 빠릅니다. ^^ //

유서하 그리고 그건 번역이잖아요.
진아 아, 맞다. 고딕 호러 좋아해서 사보려고 했었는데... 참, <<누군가를 만났어>>도 있네요. (웃음)
은림 그래도 3, 4년만 있으면 우리가 능가하게 되는 거 아냐?
진아 능가하게 된다고 꼭 기뻐할 일은 아니라는 거........ (웃음)

<<제15종 근접조우>>만의 자랑거리라면요? 외계인 소재만 모은 책은 처음이라거나? (웃음)
진아 그거 흡혈귀 때 (홍보에) 한 번 써먹어서... (웃음)
은림 우리가 이걸 어떤 이해득실을 따져서 하는 프로젝트가 아니고, 이걸 정말 해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만든 거라서, 그런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 지 좀 힘드네요. (웃음)
진아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난 게 아니라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것. 그리고 골수 장르 팬들을 보면 해외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우리나라 작가가 쓴 글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면이 있는데...
사대주의적인 면이 없지 않죠.
진아 아니, 그렇게 볼 순 없는데, 훌륭한 작품이 많은 게 사실이거든요. 역사도 길고, 작가도 많고. 좋은 작품 정말 많아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 작품들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물론 읽어서 재밌으면 그만이지, 우리나라 작품이냐 외국 작품이냐가 뭐 그리 중요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뭐 하러 힘들게 구하기도 쉽지 않은 걸 찾아봐야 하느냐고 말하면, 그거 타당해요. 모든 독자에게 그래도 가능성을 열고 봐 달라고, 그런 식의 강요를 할 수도 없는 거구요.
안 읽어도 할 수 없는 거지만, 이번 <<제15종 근접조우>>를 하면서 특히 느낀 건, 계속 작가를 발굴해 낼 수 있다는 거, 계속 성장해나가는 예비 작가들이 있다는 거. <<혈중...>>에 응모하신 분들이랑 <<15종...>>에도 응모한 분들이 좀 겹치는데... <<혈중...>> 때는 고민하다가 선정하지 못했던 분이, <<15종...>>에서는 1년 간 글이 발전해서 수록된 분들이 있거든요. 그렇게 노력하고, 실력이 향상되는 작가들이 있고, 그런 작가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는 거. 소재별 앤솔러지는 응모 형식으로 만드니까, 계속해서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그건 <<제15종 근접조우>>만의 장점이라기보다는 거울의 장점이기도 하네요. 거울이 있으니까 <<제15종...>>같은 책들도 나올 수 있었던 거잖아요.
진아 그럴 수도 있고요. 위에 말한 것과 비슷한 이유로 저는 거울에서 낸 모든 책들과 작가진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은림 처음에 진아를 알게 되었을 때는 이메일로만 연락했었어요. 작품을 달라는 말을 듣고, 준다고 약속한거니 주기는 줬는데 한 번도 사이트에는 와보지 않았었어요. (웃음)
그런데 1, 2년 사이에 없어지면 작품을 내놓을 곳이 없는데, 버텨주고 있으니까, 언제 써도 거울은 받아주겠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최후의 보류인가요!
진아 지금은 아까 명훈님의 질문에도 있었지만 지면 제공의 느낌이 강한데, 꾸준히 해서 언젠가는 발표의 장만이 아니라 다만 얼마라도 고료를 지급한다거나, 지면 제공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은림 이러이러한 작가들이 있습니다, 라고 출판사에서 작가진이 필요할 때 찾아올 수도 있는 그런 곳이 되면 좋구요.
그거 매우 좋네요. ^^
은림 글마다 작가 이메일을 붙이잖아요. 어디서든 그 사람 글이 마음에 들면 연락할 수 있길 바라는 거죠. 이번 <<제15종...>>에는 작가 프로필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서, 어디서든 포트폴리오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려구요.
유서하 예전에 이매진에서는 기사 밑에 작가 프로필이랑 사진이나 이미지 같은 거 넣었었거든요.
진아 리뉴얼 때 최대한 반영하겠습니다. ^^

앞으로 출간예정인 거울책에는 어떤 것이 있고 언제 즈음 출간하실 예정이신가요?
진아 현재 <<2007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제작 준비중이고요. 개인지도 생각 중인 분들이 있는데, 이 쪽은 확정되면 말씀드릴게요. 내년에 <<고양이 앤솔러지>> 나올 거구요. 이미 네 번째 소재별 앤솔러지의 소재도 거의 확정 되었는데 이건 확정되면 다시 말씀드릴게요.

=== Coming Soon 기대하시라! ===

<<제15종 근접조우>>에서 추천하고 싶은 글이라면요?
은림 저는 <우주화>랑 <옆집의 영희 씨>. <우주화>는 처음에는 좀 심심했는데, 교정이니 뭐니 해서 반복해서 읽을수록 느낌이 오고 좋더라고요. 마지막엔, 이거다. 싶었죠.
진아 저는 배명훈님의 <석기창비록>이요. 명훈님이 그 글을 거울 업데이트 때 주셔서 처음 읽은 다음에, 아, 명훈님, 이 사람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하고 감탄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기분이었느냐면 슬램덩크에서 북산이 능남과 첫 연습경기를 했을 때 말이에요. 그 때 서태웅이 맹활약을 하다가 멀리서 3점 슛을 넣잖아요. 능남 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야, 저 놈, 밖에서도 쏠 줄 아는구나!”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딱 그 기분이었어요. 외계인을 소재로 이런 글도 나올 수 있구나, 라는 최고의 글인 것 같아요.
명훈님 잘 쓰시지요.
유서하 전 <옆집의 영희 씨>요. 개인적으로 생각이 달라질 즈음에 읽은 글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이전까지 제가 듣고 보고 읽는 것들은 암울한 것들이 많았거든요. 좋아하는 음악도 포스트락(post-rock)이었는데, 그 장르에 속하는 음악은 듣다 보면 꼭 가사가 그런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 시궁창 같은 세상에서 오직 너만이 나의 구원이야, 그런 정서가 있어요. 그렇다 보니 제가 쓰는 글들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후관계가 어느 쪽이든. 아마 양쪽 다겠지만.
그런 생각이 바뀔 때쯤 <영희 씨...>를 읽었어요. 한 달만 전에 읽었어도, 이게 뭐야, <<좋은생각>>도 아니고, 그랬을 텐데... 저는 <영희 씨...>는 사실 이수완님의 소설 중 범작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독자가 변화하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동의할 순 없는데, 아직은 그럴 순 없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동의할 수 있을 것도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요.

끝으로 이글을 여기까지 성실하게 읽은 독자분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은림 꼭 사세요. ^^
유서하 열심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
진아 피드백이 필요해요. 책에 실린 작품들에 대한 리뷰만이 아니라, 표지, 디자인, 편집 등등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아요. 칭찬해주고픈 부분은 칭찬해주시고, 질책한 부분은 질책도 해주시고, 그런 거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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