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윤이형이라고, 아세요? 한 번 읽어보세요.”
   그 말과 함께 배명훈님에게 한 권의 책을 받았다. 송경아님도 MSN을 통해 거울에 소개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다. 명훈님에게 받은 책은 [셋을 위한 왈츠]라는 단편집이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사람, 욕심이 났다. 모처에서 만난 윤이형님에게 말했다.
   “거울 필진 안 하실래요?”
   이형님이 대답했다.
   “거울을 짝사랑해왔어요.”


* * *

   적당히 따뜻하던 어느 저녁, 오랜만에 인터뷰나 합평회 때 녹음하는 용도로만 쓰는 mp3 플레이어를 들고 이대에 있는 한 인도 식당에서 명훈님과 함께 이형님을 만났다.
   이형님은 2005년 중앙 신인문학상에 {검은 불가사리}로 당선되셨으며 첫 번째 소설집 [셋을 위한 왈츠](문학과지성사, 2007년 10월)를 묶어내신 바 있다.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이며 본격적인 SF 창작을 하고 싶어 한다.

   명훈님은 이형님의 [셋을 위한 왈츠]를 꺼내고 이형님은 [누군가를 만났어]를 꺼내 잠시 수줍은 사인회(?)가 있었다.

  

   ▲[셋을 위한 왈츠](왼쪽), [누군가를 만났어]

   박상준님과 송경아님이 강사를 맡으셨던 과학소설 강좌를 들으셨던 터라 과학소설 강좌에 대해서 물었다. 박상준님은 SF, 송경아님은 판타지 부문을 맡아 기본적인 소설 작법 강의를 하고, 합평을 한다고. (2기도 열린다고 합니다.)


   명훈   이름이 몇 개세요?
   이형   본명은 이슬, 필명은 윤이형이에요. 본명은 회사 다닐 때 많이 써서, 가급적 안 쓰려고요.
   진아   그럼 거울에서도 필명은 이형으로 하실 건가요?

   이형님은 당황한 듯 웃었다.

   이형   지금 거울 필진이 될 거라는 생각을 못하고 나와서요.
   진아   아... 필진이 되어달라고 한 건데요.
   이형   잠시 담배 좀... ^^;
   진아   저두... (도망갈라, 냉큼... ^^)

   둘이 나가려니 가게 사장님이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몇 번 왔으나 금연인 줄 알았던 이 식당은 흡연 가능이었다. 재떨이가 왔다. (다행이다. ^^)

   명훈   (주섬주섬 마스크를 꺼내 쓰며) 아, 그럼 이야기가 제대로 안 된 거구나. (거울 필진이 되실) 의향은 있으세요?
   이형   저야 너무 영광이고, 의향은 있는데... 제가 작품을 그렇게 많이 써보질 않아서... 장르 쪽은 써 본 것도 없고... 쓴다면 지금부터 써야 하는데... (거울) 글을 읽다 보면, 나는 여기 와서 쓸 수는 없겠구나...
   명훈   설마요. 저희도 이형님 글 읽었거든요. 읽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진아   매달 글을 주셔야 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언제든 쓰시면 주시면 됩니다. ^^
   이형   다들 (장르 쪽에서) 오래 글을 쓰셨잖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에는... 그냥... 저는... 사실은 장르 쪽을 더 좋아하지만, 감히 내가! 이런 생각이...
   진아   시작한 시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거울은 언제나 새로운 글, 새로운 사람에 목말라요.
   명훈   저도 거울 들어오기 전까지는 (장르 쪽에서) 전혀 활동을 안했었어요.
   진아   부담 갖지 마시고요. 같이 글 쓰면서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시고...

   얼렁뚱땅 후다닥.

   진아   (명훈님이 만들어 오신 질문지를 흘끔 보며) 용기가 없는 편이세요?
   이형   음... 부담을... 장르라는... 뭐랄까... 그런 것에 경외심을 너무 많이 갖고 있어요. ^^;
   명훈   경외심을 갖고 있어요?
   이형   나는 못 쓸 것 같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장르가 될까... 그런 생각이요.
   명훈   우리가 가르쳐 드릴까요? 필진 특가로... (웃음)

   이형   거울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글을 읽기 시작한 건 사실은 얼마 안 됐어요. 있던 건 옛날부터 알았는데 주소를 몰라서...
   명훈   인상이 어땠어요?
   이형   인상이... 자리를 확고히 잡은 곳이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이 최근에 리뉴얼된 거죠?
   명훈   네.
   이형   예전 홈은 뭔가 회원제다, 그런 느낌이 있었는데...
   진아   에... 거울은 회원가입 안 해도 글 다 보고 쓸 수 있는데... ^^;
   이형   그렇더라구요(웃음). 나중에 알았어요. 리뉴얼 화면이 너무 예쁜 것 같아요. 글들은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데 매번 감탄하고 있어요. 다들 너무 재밌게 잘 쓰셔서.

   명훈   사실 우리도... 이형님을 늦게 알았어요(웃음). 윤이형이라는 필명은 직접 지으셨나요?
   이형   아는 분이 지어주셨는데... 어감이 좋아서... 남잔지 여잔지 모르게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명훈   남자 같아요. (웃음)

   명훈   저도 필명을 사용할 수도 있었는데 이미 늦은 것 같아요. 가끔 인터넷 검색 해 보면 옛날에 다른 일 했던 흔적이 막 튀어 나와서요. 대학원에서 조교하면서 “숙제는 언제까지 어디로 내세요” 이런 거 쓴 것도 걸리고... 민망하더라구요.
   이형   하나 만드세요.
   명훈   (이제 와서) 그러기는 좀... 지금까지 쌓아 놓은 거 처음부터 다시 하기는 좀 아깝죠. ^^;

   명훈   거울 인터뷰 보신 적 있으세요? 인터뷰라는 게 뭐 거창한 건 아니고, 우리끼리 이야기하고 논 거 글로 옮겨 놓은 건데요. 거울 기획 꼭지를 보시면 인터뷰 카테고리가 있어요. [누군가를 만났어] 인터뷰도 있구요, 제 자작인터뷰도 있어요(웃음).
   진아   저두 인터뷰 몇 개 있죠. [누군가를 만났어], [제15종 근접조우] 편집진 인터뷰 등등...
   명훈   마땅히 할 사람이 없을 땐 바로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대타 뛰게 되니까(웃음)...
   진아   사실은 편집장이 아니라 대타.; 책 팔 때는 홍보도 필요하고.
   이형   많이 팔렸어요?
   명훈   그런 건... 가르쳐주는 거 아니라면서요(웃음)... [누군가를 만났어]는 많이 안 나갔을 거예요.

   진아   등단은 순문학쪽에서 하셨는데 장르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랄까, 그런 게 있다면요? 수업까지 들으실 정도면 굉장히 적극적이신 거잖아요.
   이형   소설쓰기에 관심을 둔 것 자체가 얼마 안 됐고... 제가 뭘 쓰고 싶은 지도 모르고 시작을 했고요... 그런 분들도... 있겠죠? ^^; 쓰다가 보니까... 옛날부터 오랫동안 장르문학을 좋아했던 건 아니고... 5, 6년 전에 [드래곤 라자] 등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고요. 자연스럽게 ‘독자’로서 장르문학을 좋아하게 되었죠. 작가는 젤라즈니와 하인라인과 르 귄과 테드 창, 뭐 두루두루 좋아해요. 그런데 아직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들만 읽었고 원서를 막 찾아가며 읽는다거나, 그런 수준은 못돼요. 이런 걸 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처음부터 더 준비를 하고 방향을 정해서 장르문학 쪽으로 등단을 하거나 그랬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명훈   장르문학 쪽으로는 등단할 방법이 없잖아요. 심지어 저는 장르 쪽으로 등단을 했는데도, 한 1, 2년 동안 나 작가 맞아? 그러고 있었는데... ^^;
   진아   장르 쪽은 등단할 수 있는 길이 있다 없다 하니까요. 3회 넘긴 공모전이 거의 없고... 과학기술 창작문예도 더 안 열리고...
   명훈   작가를 만들 루트 자체가 없죠. 이제 거울이 그 루트일지도 몰라요. 루트가 전혀 없으니까, 거울에서 하고 있는 그런 최소한의 역할이 유일한 등단 루트처럼 돼 버릴지도.  

   음식이 나와서 잠시 대화가 끊겼다. 커리 두 종류, 샐러드 하나, 난 세 개. 신나게 먹다가 이형님에게 질문을 받았다.

   이형   거울에서 책 나오는 건... 자본은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진아   선입금으로 예약을 받고요. 앞권 판 거랑 선입금 새로 받는 거랑 합해서 만들어요. 음... 이윤이 남거나 하진 않아도, 돌아는 가더라구요.
   거울 편집진에서 수록할 글을 선정하고, 그 글을 쓴 분에게 의향을 묻고,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고, 거울은 기본적으로 재간하지 않고, 등등을 메일로 보내 동의하는지 물어보고... 좋다고 하시면 책에 싣는 거죠. 고료 대신 책 한 권 주고요. 더 갖고 싶으면... 수록 필진일지라도 사야 해요. ^^ 필진 할인은 있어요. 500원(웃음).

   가게 주인이 와서 맛있는지, 괜찮은지 서툰 한국어로 물었다. 맛있었으니, 맛있다고 대답. 이 날 거의 가게 문 닫을 시간까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 외에는 딱 한 테이블만 왔다 갔을 뿐, 한산했다.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오래 죽쳐도 마음 편하고, 흡연까지 가능하니 인터뷰하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명훈   이형님을 알게 된 게... 올해 초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봤거든요, 인터넷에서. 그 기사에서 눈에 띈 게, 윤이형님이 SF를 비롯한 장르문학, 다종한 대중음악에 심취한 이유가 “서브컬처의 취급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전통과 역사를 굳건히 해온 이들에 대한 경의”라고 했다고 써 있는 부분이었어요.
   이형   그런 뉘앙스로 말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나와버렸더라고요. 제가 말을 제대로 못해서, 인터뷰를 잘 못해서 그런 거죠, 뭐. 생각이 평소에 잘 정리돼 있으면 말을 잘 할 텐데 저는 질문을 받으면 그때부터 생각을 해서 대답하곤 해서, 가끔 잘못 말하고 집에 와서 괴로워해요.
   명훈   그래서 실제로는 어떤 이야기가 나왔는지 궁금했어요. 기사대로 말씀하셨을 것 같진 않아서요.
   이형   뒷부분은 맞고요. 이를테면 순문학 쪽에서 볼 때는 서브컬처에 불과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를 전하려고 한 건데 제가 표현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요. 작가들은 관심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텐데 윗세대 분들이나, 언론 쪽에서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오해를 하는 일이 많아요. 장르문학 쪽에 어떤 작가가 있는지도 모르고. SF랑 판타지를 좋아한다, 왜 좋아하냐, 그럼... 음... 뭐라고 해야 할지... ^^;
   명훈   인터뷰할 때 그런 이야기 많이 하셨어요? 나는 장르를 좋아한다, 뭐 그런?
   이형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어떤 작가를 좋아하세요, 그러면... 사실대로 (장르문학 작가들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신기하고, 누군지는 모르고...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 사실 자체를 되게 궁금해 하는 거예요, 왜 좋아하는지. 왜 좋아하는지를 한두 마디로 어떻게 설명해요, 읽어봐야 알지.
   명훈   그런 이야기를 막 했는데, 기사에 실릴 때는 그렇게 안 실린 거군요.
   이형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 때마다 다른 이유를 댔던 것 같아요.
   명훈   저도 어떤 작가 좋아하는지 물으면 절대 대답 못해요.
   진아   왜요?
   명훈   계속 바뀌고...
   진아   전 똑같은데... 배명훈님, 김보영님... (오래된 농담... ^^;―――편집장 주)
   명훈   근데... 기자들은 그분들이 누군지 잘 모른다는... ^^; (사이) 아무튼 그 기사의 그 부분을 보고 액면 그대로 믿은 건 아닌데요, 이 작가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명훈   맨 처음에 본 게 {피의 일요일}이라는 단편이었는데, 그거 보고 나서 아, 이 글은 진아님께서 보셔야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진아   (명훈님은) 와우를 안하셨거든요. ^^;
   명훈   그렇기도 하고, 이 글을 제대로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진아님이 아닐까 해서요.
   진아   저도 와우를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그 글에 대해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다른 사람의 창작물로 글을 쓰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는 거였어요. 와우를 해 본 입장에서 제가 {피의 일요일}을 봤을 때...
   이형   솔직히 말하면 거의 설정이랑 세계관을... 그대로 갖다 썼죠. 소설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 쓴 거였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싶었는데... 그 순간에 쓸 이야기는 그것밖에 생각나지 않아서... 마감이 늦어서... 낼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죠. 내가 만든 게 별로 없으니까. 너무 안이했던 것 같고.
   명훈   평은 좋던데요.
   이형   그건 순문학 쪽에서는 와우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낯선 소재니까 신기해하는 거죠. 그런데 와우를 하는 분들이 보면 웃기잖아요, 되게. 이건 글을 그냥 날로 먹으려고 하네,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할 테고, 근데 이러저러해서 그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명훈   저는 평을 먼저 보고 그 글을 찾아본 경우인데... 글을 본 느낌은 평이랑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우리 쪽과 통하는 글이라고 느꼈음!―――편집중 부연설명)
   이형   장르든 뭐든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해버린 거죠.
   진아   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도 와우를 소재로 글을 쓴 적이 있고... 세상에 있는 걸 가지고 글을 쓰지, 세상에 없는 걸 가지고 글을 쓰진 않잖아요. 물론 애매한 부분이 있죠. 이 글에서 몇 퍼센트가 와우에서 왔고, 몇 퍼센트가 내 것이냐 하는 거. 엄정하게 정의내리긴 힘들겠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그걸 판단할 수 있는 건, 글을 썼을 때 작가 자신만이 아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형   앞으로는 내 것인 부분이 많은 글을 쓰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사실은 진아님이 이런 얘기를 해주셔서 굉장히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에 많이 걸려서, 넌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해주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명훈   판타지 강좌를 들으셨을 때, 강좌에서는 판타지가 뭐라고 하던가요?
   이형   음... SF와 판타지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는 하셨는데...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 감으로 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서... 뭐 다들 아시는 이야기대로, SF는 이계를 과학적으로 접근해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거고 판타지는 꼭 과학적이지는 않아도 되는 거고, 이 정도?

   명훈   이형님 글 평을 보면 장르적 기법으로 썼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글들을 읽어 보니까, 장르적 기법을 활용해서 쓴 글이 아니라 그냥 장르문학으로 읽혔는데, 쓰실 때 그런 경계를 생각한 적이 있나요?
   이형   SF를 쓰고 싶기는 한데... 단지 SF적인 소재를 차용하는 게 아니라... 주제도 과학적이어야 하고, 그 신기한 설정이나 기술 자체가 주제와 맞닿는... 근데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아직까지는 쓰면 소재나 배경 정도로만 그런 게 나오는 수준이에요. 엄밀히 말하면 SF가 아닌 거죠.  
   명훈   어려워서 다행이에요. 아무나 못 써야 우리도 좀 먹고 살지(웃음). 장르에 대한 느낌이랄까, 감이랄까, 그런 것만 잡으시면 잘 쓰실 것 같아요.
   이형   같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도 만나보자, 해서 (강좌를) 들었어요. 물리학 강좌도 들었고요. 내가 원하는 게 아닐까 해서. 근데 이런저런 이론들이 있다는 소개랑...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상대성 이론이 어쩌구저쩌구, 그런 정도의 이야기만 남았어요.
   진아   영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수업이 안 되셨다는...?
   이형   어려우면서도 이론 중심이어서요. 제가 얻고자 했던 건 뭐랄까... 실제적인 기술이라고 해야 하나. 이를테면... 좀 더 구체적인 걸 바랐어요. 이론보다는 실제로 물리적 법칙이 낯선 공간에서 어떻게 적용되느냐 같은... 뭐, 너무 쉽게 얻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지요, 그런 건.
   명훈   영어는 잘 하세요?
   이형   학교는 영문과를 나왔는데, 영어는 잘 못해요.
   명훈   영어로 된 논문을 찾아볼 수 있으면, 자료는 한없이 많은데...
   진아   추천을 받아서 읽은 것 중에서 [스타트렉의 물리학]이 재밌었어요. [우주에서는 귀가 멍해지나요]도 재밌구...
   명훈   그런 건 위키피디아만 뒤져도 웬만큼 나와요. SF를 쓰려면 공부를 하기는 해야 되는데, 남들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만 공부하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처음에는 개론서로 시작해야겠지만 개론서도 읽다 보면 영감이 떠오르는 부분이 있어요. 딱 그 부분을 파고 들어가야 뭔가 남들은 못 쓰는 걸 쓸 수 있는데.
   자료가 없지는 않아요. 예를 들면 화성 궤도에 재진입하는 우주선의 우주 파편 충돌 모델 평가에 관한 논문처럼 구체적인 것도 있어요. 요새는 대학 도서관 웹 데이터베이스 같은 곳에서도 검색해 보면 그런 게 쭉 나와요. 읽어 보다가 더 깊이 들어가고, 그런 식으로 들어가다 보면 자기 것이 되는 거죠.
   진아   과학적인 지식이 밑바탕이 되고 거기서 뻗어나가는... 굳이 말하자면 하드 SF를 쓰고 싶으시다면... 결국은 공부를... ^^;
   명훈   전 하드 SF 못 쓸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공부도 못했고...
   이형   그러니까 저는 한 50년 후에는 하드 SF도 쓰고 싶다는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그냥 SF도 작가로서는 너무너무 잘 모르겠고 어려워하는, 그런데 독자로서는 좋아하는, 꿈만 큰 청춘인 겁니다. ㅠㅠ
   진아   꼭 SF만이 공부가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다 못해 대학생을 소재로 쓰려고 해도, 요즘 대학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카드로 출석체크하는 데도 있다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지... 요즘도 술 먹이면서 노래 부르는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뭐, 공짜가 없더라고요. ^^;
   명훈   SF를 쓸 때는 뭔가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 같은 게 있어요. 제가 거울에 제일 처음 올린 단편이 {다이어트}니까, 올린 지 한참 된 셈인데요, 최근에 누군가 덧글을 달아주셨는데, 어떤 부분이 이래서 틀렸잖아요, 그렇게 달았더라고요.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저는 과학적으로는 틀렸어도 이 글에서는 이게 꼭 필요해서 썼다고 그랬어요. ^^;
   그런 거 하나도 안 틀리는 작가가 되려면 물리학 쪽 박사학위 정도는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아서 클라크도 그렇고.

   이형   3월호 [판타스틱]에 실린 작가(코드웨이너 스미스)도 이력이 너무 화려해서... 전... 뭐... ^^; 앞으로 공부해야 되는 게 상당히 많구나, 하는 생각만...

   직업으로서의 글쓰기, 그리고 직장을 가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이형   직장을 그만 둔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글만 한 번 써보고 싶어서도 있어요. 직장 다니면서 글 쓰시는 분들도 있지만...
   명훈   저는 (일하면서는) 장편을 못 쓰겠어요. 단편은 쓰겠는데...

   이형   순문학 쪽은 책으로 묶기 전에 잡지에 한 번 발표해야 해요. 책 뒤에 발표지면을 써야 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관행으로 굳어진 것 같아요. 등단을 하고, 러브콜(?)이 올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하고, 또 기다리고... (청탁이) 올지 안 올지 보장도 못하고. 해마다 신춘문예가 열 몇 개에...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더 되는데...
   명훈   (이형님은) 살아남으신 거 아니에요?
   이형   그런... 편이에요. 운이 좋았죠. ^^;
   진아   운도 실력이에요. ^^

   직장에 대한 이야기, 대학을 들어간 후나 취직을 한 후 글에서 멀어지게 되는 경우에 대한 이야기 들이 오갔다. 반짝이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건 늘 슬프다. 생계를 이어야 하는 때도 있지만, 글에만 전력투구해야만 더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명훈   저도 과학기술 창작문예에 당선되지 않았으면 글 쓴다고 앉아 있는 걸 집에서 한심하게 봤을 거예요. 근데 이제는 최소한 글 쓰고 앉아 있어도 옆에서 별 말을 안 하던데요.
   이형   아, 그런데 두 분은 어떤 직장 다니세요?
   명훈   (명함을 내민다. 매우 복잡한 직함. ^^;)

   다시 거울 이야기로...

   진아   거울에서 함께 하자고 말했을 때, 좀 놀랐다고 하시긴 했지만... 음... 거울에서 얻어가고 싶은 게 있다거나, 이를테면 그런 게 있다면요?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던 거라던가, 이런 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도 좋고... 뭐든지요. 거울에서 함께 하자고 말하는 건, 실질적으로는 이형님 이름으로 된 게시판을 하나 내드린다는 거예요.
   이형   저는... 같은 관심사랑 지향성을 갖고 있는 또래 사람이 목말랐어요. 그거면 대만족이에요. ^^;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고, 가끔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제가 여러 가지로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명훈   재밌어요. 이런 자리도 재밌고... 은근히 거울에서 하는 일들이 많거든요. 카피 문구도 작성하고.
   진아   진아 V호는 히트작 중 하나. ^^;

   거울에 언제쯤 합류가 가능하실까...

   이형   (글이) 다 여기저기 (책이나 기타 매체들에) 묶여 있어서... 글을 써야 드릴 텐데 4월까지 마감이 세 개나 걸려 있는데... 하나도 안 썼어요. ^^;
   명훈   글 쓰는 속도는 얼마나 되세요?
   이형   계속 놀다가... ^^; 닥쳐야... ^^; 아무 것도 안할 때 부지런히 쓰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타입은 아니에요.

   진아   (명훈님께서 써오신 질문지를 읽으며) 찾아보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뭔가 취미생활을 가져보기 위해서 3개월간 소설 창작 강좌를 들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쓰지 않을 수 없어서라고도 하는데, 양쪽이 사뭇 다른 어조예요. 진실은 어느 쪽인지, 복합적인지(교과서 읽듯이)?
   명훈   아, 읽으면 저렇게 되는구나.
   진아   괜찮아요, 전 목소리가 예쁘잖아요. (왕뻔뻔;;;)
   명훈   아, 맞다! 한때 거울을 미모의 편집장이 운영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마디 해주세요.
   이형   (한참 웃다가) 맞는 말이네요.
   명훈   진실은 다 어딜 간 거야!
   진아   진실은 이 자리에 있네요. 큭큭큭...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형   둘 다 같은 말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했고, 소설 읽는 걸 좋아했으니까... 잡지사에 다니면서 기자로 일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정해져 있는 길을 따라가는 게 싫어져서... 소설을 써 본적이 없으니까, 저는...
   진아   어릴 때도 없었어요?
   이형   어릴 때는 누구나 쓰긴 하지만... ^^; 만화도 그리고. ^^; 그런 거 말고 써 본 적이 없었어요.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굉장히 우울했을 때이기도 하고. 뭐든지... 해 보자. 뭘 어떻게 해 봐야 할지, 생각을 해 봤는데,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예요.
   진아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두 가지가 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 취미활동을 갖고 싶다는 건, 내 삶에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삶을 위한 것, 생계를 위한 활동 이상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그런 열망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가볍게 말하면 취미를 갖고 싶다고 말하는 거고, 그 열망이 분출한 후로 말하자면 쓰지 않을 수 없어서, 가 되는 거고.
   이형   우울하긴 했어요. 뭐든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진아   왜 우울하셨어요?
   이형   그때 여러 가지로... 내가 다 소모되어 버렸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뭘 해도 안 풀리고. 안 되면 말고, 그런 마음으로 보내나 보자, 하고 보냈는데...
   진아   처음 보내신 글이 당선이 되신 거예요?
   이형   네. 여덟 편인가... 그 결심을 한 후에 쓴 글을 다 보냈는데... (당선이) 된 거죠.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명훈   신문기사들에서는, 이형님 본인은 늘 나는 글 쓸 줄 모른다,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기자들은 또 완전히 다르게 쓰더라구요. 호들갑을...
   이형   호들갑을. ^^;
   명훈   기사들을 읽어보니, 이 사람은 이런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구나, 그런 느낌이 드는데, 기자들은 자꾸 다른 데 포인트를 맞추더라구요. 그런 것 중 하나가 (윤이형님은) 다작을 하시는데 글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다양하다는 이야기...
   이형   기사들은... 기삿거리가 필요하니까... 이를테면 뭔가 ‘꺼리’를 만들어서 이 사람을 얘기해야 하는데, 아직 저는 뚜렷한 경향도 안 보이고 평범한 상태니까, 스타일이 다양하다, 뭐 그렇게 표현하는 것 같아요. (사이) 저는 문창과도 가고 싶었고, 문학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어서. 취직을 위해서 영문과에 가고... 좀 더 글쓰기 공부를 해보고 싶었고... 쓰는 방법을 잘 모르니까, 모른다고 하는데...
   명훈   공감해요. 저도 다작한다고는 하지만, 쓸 때마다 내가 예전에는 어떻게 썼지? 여기서 스토리를 어떻게 풀지? 하나도 모르는 거예요.
   이형   저는 솔직하게 말하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해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다 옮겨 적지 못한 대화들을 포함해 이형님과 함께 있는 자리는 즐거웠다. 글에 대한 이야기, 사사로운 이야기, 그날 나온 모든 이야기들.

   진아   게시판은 천천히 여시게 되더라도, 종종 만나서 놀아요. ^^
   이형   저에게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진아님이나 명훈님은)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명훈   저희도 기뻐요. ^^

   차 시간이 아슬아슬해져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갈 줄이야! 다음에는 인도 영화를 함께 보러 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며칠 후 명훈님에게 영화를 예매했다는 메일이 왔다. 거울에서는 다시 봐요, 라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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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08.03.29 01:09 댓글 수정 삭제
    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 한 분이 새로 들어오시는 순간을 생생하게 같이 경험한 기분입니다.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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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unn 08.03.29 01:36 댓글 수정 삭제
    재미있는 인터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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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하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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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kholic 08.03.29 18:14 댓글 수정 삭제
    세 분 다 면식이 있어서..............인터뷰에 얼굴이 오버랩되는 현상이! 재밌었습니다.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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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반향 08.03.30 08:22 댓글 수정 삭제
    와!! 셋을위한왈츠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요=_=//
    하긴, 장르문학적인 요소가 많았어요, 어떤 작품은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뭐지? 라는 의문을 품게 될 정도로요. 히히, 윤이형님 덕분에 거울 드나들고 있었는데, 여기서 윤이형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네요. 잘 봤습니다아-!!
    어서 빨리 필진에 합류하셔서 이형님의 글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하하하, 사실 저는 셋을위한왈츠에 실린 것 외에 전혀 못 봤으니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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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3.30 21:00 댓글 수정 삭제
    어, 윤이형님 덕분에 거울에 오셨어요? 호오.

    인터뷰 날 재미있었어요. 제가 목소리가 작아서 진아님이 이거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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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반향 08.03.31 00:05 댓글 수정 삭제
    HappySF였는지, 판타스틱이었는지 여튼, 어디선가 보긴 했는데 들어가보진 않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윤이형 님께서 요즘 거울의 글들을 많이 읽고 계시다길래, 그 다음부터 좀 드나들었어요. 하하하-
    글을 읽어보아도- 확실히,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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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8.03.31 12:38 댓글 수정 삭제
    명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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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 08.03.31 15:02 댓글 수정 삭제
    ida님/ 반갑습니다. 무척 만나뵙고 싶었답니다!
    yunn님/ 인터뷰어들이 재미있게 이끌어 주셔서요. ^^
    아이디어맨님, Inkholic님, 존재반향님/ 여기서 다시 뵙네요. 앞으로 여기서도 자주 뵈었으면 좋겠어요! ^^
    명훈님/ 말씀드린 대로, 주변 분들에게 열심히 알리고 있다는... ^^;
    진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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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3.31 19:51 댓글 수정 삭제
    훌륭하세요. 이제 아홉 분만 더!

    (친구 열 명 데려오면 필진 시켜준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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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8.04.03 22:23 댓글 수정 삭제
    이형님/ 오셨군요. 갸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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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개 08.04.04 19:35 댓글 수정 삭제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예전에 중앙신인문학상에서 작가분의 글을 읽고, 이야, 딱딱한 인상의 신춘문예에서 이런 글이! 하고 놀랐다가 <2007 젊은 소설>을 읽고, 아 필명이 바뀌었네, 하다가 오늘의 문예비평에서 어떤 분이 <아이반> 비평 쓴 걸 보고 오호 SF도 쓰네, 하다가 이번에 창비에서는 '큰 파랑 늑대'를 읽고 이런 상상력이! 하면서 재미있게 읽었었죠. 장르적 소재를 활용한 자유로운 상상력이 거울에서 보던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거울에서도 멋진 글 읽을 수 있게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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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 08.04.07 17:49 댓글 수정 삭제
    진아님/ 일요일날 못 뵈어 아쉬웠어요. 그날 꽤 재미있었는데요. ^^;
    날개님/ 고맙습니다. 인터뷰가 재미있는 건 제가 좀 어리버리해서가 아닐지... ^^;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앞으로 거울에서도 열심히 써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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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8.04.07 21:49 댓글 수정 삭제
    이형/ 에고... 몸살이 떨어지질 않네요. 다른 날 다시 뵈어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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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 08.04.07 22:53 댓글 수정 삭제
    아이고, 어서 나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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