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melchizedek@naver.com세상 어딘가에 천재가 있다면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같은 종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 동네에 천재가 있다면 축하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내 바로 옆에 그가 있다면 나는 죽여 버릴 것이다.

이 작가를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닉네임부터 이해를 거부하는 이 작가의 글은 표면적인 해석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전지적 작가 시점인데도 설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서술에 이르면 기운이 빠진다. 우리와 같은 언어로 말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초반의 벽은 넘어서기엔 좀 높다.
왜 쉽게 쓰지 않느냐고 다그칠 수도 없는데 그건 이 이야기가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세상의 모든 이야기란 결국 이해받고 동감하기 위한 인간들의 몸부림이 아닌가. 하지만 이 작가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인간이 아닌 이야기를 인간들의 것 인냥 하고 있다는 것이 그 낯설음의 원인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다.

비평가로서의 나는 자꾸 이 글에 짜증을 부리게 된다. 이 부분을 이렇게 썼다면 좀 더 친절해졌을 텐데.(이 글은 그럴 듯하게, 있어 보이게 해석할 수가 없어.) 독자로서의 나는 자꾸 나태해 진다. 이 이야기는 나를 불편하게 해.(재미가 없잖아?)
작가로서의 나는 도망가고 싶어진다. 이거, 별 거 아니잖아?
톨킨이나, 적어도 스티븐 킹 정도만 되었어도 나는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작가. 그랬다면 독자로서의 나만 그를 접했을 것이고 벽을 넘지 않고 애둘러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멀리 하기엔 너무 가까이 있었다. 읽으면 불편한 이 글을 끝까지 잡게 했던 것은 작가로서의 나였다. 질투, 이 언어는 너무 소심한 표현이다. 동경, 절대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존경, 그는 사후 작가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들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그의 글을 읽고 글로써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의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을 불편하게 한다. 특히나 글쟁이를. 아름다운 노을녘에 황홀한 표정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다른 예술가들과 달리 단어와 문장을 이용해 그 감동을 재조합해야 하는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선다.
jxk160의 이야기들은 내가 제3자로서 글을 해석해서 그 해석한 내용을 보며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할 수 없는 날 것의 글 자체에 내 자신을 부딪치게 해서, 지성과 지성이 직접 맞서게 한다. 이것은 흔하지 않은 경험으로 아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으로 마치 벗은 채 마주선 것 같은 꺼림칙함과 해방감을 동시에 맞보게 한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해하는 척 하기 위해서 말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유사 이래로 모두가 창조자요, 작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신이라는 물건을 남에게 그럴 듯하게 치장하여 보여주는 창조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jxk160의 글들은 읽는 모든 자를 색다른 대면장으로 이끄는 재주를 가졌다 하겠다.

jxk160,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이 작가가 어떻게 발전할지.
거울에서 당신의 글을 만날 수 있어서 참 행운이었다.
댓글 19
  • No Profile
    yunn 08.01.25 23:02 댓글 수정 삭제
    아아. jxk160님 글을 읽고 댓글 달기 어려운 만큼이나 평에 감상을 덧붙이기가 어렵군요. 탄복하고 갑니다.
  • No Profile
    가연 08.01.26 01:02 댓글 수정 삭제
    저 역시 jxk160님의 글을 정말로 좋아해요. 정말로 끝까지 파고드는, 흔치 않은 힘이 있는 작가라서요. 그 집요함, 집요함이 만들어낸 세계관, 절대로 타협하려 하지 않는 것.
  • No Profile
    배명훈 08.01.26 06:28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집요함이라기보다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세계관을 갖다가 원석 그대로 풀어 놓는다는 느낌이었어요. 가공 안하고 내 놓는 것과 타협을 안하는것은 좀 다른 것 같아요. 다른 제약 요인에도 불구하고 집요하게 이런 식의 글쓰기를 의도적으로 한 것인가. 아니면 원래 이런 글을 덜 다듬고 내 놓은 것인가. 그런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결국, 안 읽힌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잖아요.
  • No Profile
    yunn 08.01.26 09:07 댓글 수정 삭제
    동감입니다.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어요. 저도 그렇고 절영님도 좋아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jxk160님의 글에 탄복하는 건 독자로서의 입장이 아니라 글쓰는 사람의 입장에 서게 되기 때문일지도요...
  • No Profile
    가연 08.01.26 18:01 댓글 수정 삭제
    어느 순간부터 모든 책을 정독하지는 않게 되더라구요. 휘리릭 넘겨버리는 책들이 있어요. 설사 정독한다고 해도 모든 단어에 다 집중하지는 않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에 한계가 있기도 하지만.
    아무리 멋진 작가라도 연달아 읽으면 질려요. jxk160의 글은 질리기도, 휘리릭 넘기기도 힘들어요. 이제 알 것 같아, 하면 새로운 도전거리를 내밀죠. 모든 문장, 모든 단어에 집중하기를, 지금까지 살면서 책을 읽다보니 몸에 밴 습관들을 버리기를 강요해요. 모든 이야기에 맞대면 하길 요구하죠. 대충 읽어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독자가 편리하게 읽도록 하는 것, 전 그것도 타협의 일종이라고 봐요. 그래서 타협하지 않는다고 한 거고요.
    그래서 jxk160의 글이 좋아요. 타성에 젖지 말라고 하니까.
  • No Profile
    yunn 08.01.26 21:29 댓글 수정 삭제
    왜 jxk160님의 글이 좋은가, 하는 부분에 의견이 다른 게 아니에요. 장점과 단점은 어차피 등을 지고 있는 것이고. 게다가 jxk160님의 글만 놓고 봤을 때 그게 긍정적이니 부정적이니 타협하는 게 좋니 어쩌니 하는 말은 할 수 없다는 생각. 어차피 어떤 길을 나아가는가는 어떤 글을 쓰고 싶냐에 달린 것일 테고.

    그렇지만 아무리 멋진 작가라도 연달아 읽으면 질린다는 것도 모든 독자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고, 연달아 읽자면 먼저 그 작가에게 반해야 한다는 것, 그 작가에게 반하자면 먼저 끝까지 읽게 만들어야 하며, 그 전에 그 글을 읽어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는 얘깁니다. '긍적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은... 이건 어차피 작가 본인의 입장을 생각하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보니 열심히 쓰다가 맥이 빠져버리긴 하지만.

    그나저나 독자가 편리하게 읽도록 하는 것이 타협의 일종이라는 건, 작가 입장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 아닐까요? 독자 입장에서 이야기가 질리는 건 매너리즘이나 안이함 탓이지 읽기 쉬워서 질리지는 않던데요.
  • No Profile
    가연 08.01.27 01:53 댓글 수정 삭제
    제가 썼는데 당연히 제 입장이지 모든 독자의 입장이 아니죠.
    jxk160의 글은 난해하고, 접근이 힘든 면이 있지만, 그렇게 써야만 하는 이유를 글 속에서 분명히 부여하고 있다고 봐요. 찾기는 힘들지만, 머리 싸매고 집중할 만한 가치가 있어요. 때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지만, 그래도 이 책 저 책 들여다보는 건, 다른 책과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기 때문이에요. jxk160의 글은 읽는 이에게 능동적인 독서를 강요하죠. 그런 강요가 좋아요.

    그리고.. yunn님이 제게 반론을 펼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yunn님이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No Profile
    yunn 08.01.27 09:47 댓글 수정 삭제
    그러네요. 제가 쓴 것고 위에 있는 덧글에 대한 반론이라기보다는, 제가 혼자 하던 생각의 연장선이라서요. 가연님 덧글도 위에 있는 제 덧글과 아무 상관없는 얘기였는데 제가 오해하는 바람이 뒤섞인 거죠.
  • No Profile
    yunn 08.01.27 10:47 댓글 수정 삭제
    일단은 생각이 모호한 상태에서 덧글로 자문자답하고 있었던 것이 문제. 이단은 혼잣말과 대화를 혼동해버린 탓...이랄까요.

    아마도... '그렇지만 (내 경우엔) 좋아한다고 하기엔 걸리는 게 있어...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읽기 힘들다고 말하는데, 그걸로 괜찮은 걸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가연님이 반복해서 강한 어조로 '(난) 이래서 좋아!'라고 말씀하시자 그걸 설득조로 받아들이고 만 거죠.

    그래서 실제로는 계속 혼자 자문자답 중이었음에도, 다음 덧글은 껑충 뛰어넘어서 진행중인 생각+반론(혹은 반론처럼 보이는 말투)이 섞인 거고요.
  • No Profile
    배명훈 08.01.27 17:41 댓글 수정 삭제
    논쟁의 플롯이 움직여 버려서, 두 분이 예상치 못한 논쟁에 들어가셨네요. 어느 지점에서 플롯이 발동했는지 알 것 같아요. 저는 플롯이 실제세계를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고 믿고 있는데요, 그렇게 생각하면 글쓰기가 굉장히 무게 있는 일로 여겨지기도 해요.
    다시 jxk160 님의 글로 돌아오면, 흠... 사실 이분 글 가지고는 아직 논쟁이라는 걸 할 수 없는 단계가 아닐까 싶어요. 글을 말로 집어내서 리뷰를 쓰기도 힘든 상황이라... 지금은 이분 글을 언어로 포착해 줄 사람이 절실한 단계가 아닐지. 그때 딱 부딪치는 문제가 그거예요. 도저히 언어로 포착이 안 되는 글이라는 거. 근데 언어로 포착이 안 되면 리뷰도 쓸 수 없고, 댓글 하나도 달 수 없고, 책 홍보 문구를 써 주줄 수도 없는 상황이 돼서, 이 굉장한 원형의 플롯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가 없잖아요. 그게 참 힘들더라구요.
    물론 원석 그대로 놔 두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쪽이 오히려 작가 본인에게 너무나 기나긴 싸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도 강요할 수 없는 길을 계속해서 걸어갈 의지가 있으시다면 참 감사할 따름이지만, 지켜보는 우리 쪽에서는 그렇게 외롭게 놔둘 수만은 없는 입장이...
  • No Profile
    가연 08.01.27 18:30 댓글 수정 삭제
    yunn/ 논쟁(혹은 토론 혹은 그냥 대화, 뭐가 됐든 간에)이 어떤 경로로 시작되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반드시 합의된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yunn님의 생각을 좀 더 들을 수 있길 바라고요.

    명훈/ 명훈님이 바로 위에 쓰신 댓글은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 No Profile
    yunn 08.01.27 20:27 댓글 수정 삭제
    가연/댓글이 어떤 경로로 이렇게 흘러왔는가를 나름대로 정리해본 것은, 지금 이걸로 토론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명훈/오. 역시 명쾌하게 정리해주시는 명훈님... 표현력이 부족하다보니 말씀하신 내용에 빌붙게 됩니다만;; 제가 자꾸만 쓰다가 맥이 빠지고 마는 것은, 1. 어차피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은 jxk160님의 몫이고 2. 이 분 글을 언어로 포착해줄 만한 사람도 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면 남는 게 뭐가 있을까요?
  • No Profile
    가연 08.01.28 01:47 댓글 수정 삭제
    명훈 님의 댓글을 곱씹어본 결과.

    jxk160의 글은 읽기 쉽지 않죠. 글인데 읽기 쉽지 않다면, 갈 길이 순탄하진 않겠죠. 근데 뭐, 읽기 쉬운 글이라고 앞날이 평탄하다는 보장 있나요.
    평탄하든 평탄하지 않든, 자기 길은 자기가 가는 거고.
    전 jxk160에게 그저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계속 써, 밀고 나가, 당신의 방법대로. 난 당신 글이 정말 좋거든.
  • No Profile
    배명훈 08.01.28 17:04 댓글 수정 삭제
    역시, 벼랑에서 떨어뜨린 다음 기어 올라오는 작가만 키우...
    저도 그분이 계속 써 나가기를 바랍니다.
    근데 사실 좀 더 가면, 못 잡을지도... ㅎ
  • No Profile
    jxk 08.02.02 00:32 댓글 수정 삭제
    아... 댓글을 계속 달고 싶었는데 이제야...
    절영님 글 잘 읽었습니다. 흑. ㅠㅜ 넘넘 잘 읽었어요. 절영님 리뷰를 내심 기대하면서, 예전에 다른 소설 올릴 때도 절영님 리뷰 받을 타이밍을 맞춰보려고(절영독경이 올라오지 않는 달에 올리면 다음 달에는 내 글 리뷰가 올라오겠지! 이라든가...) 노력했으나 몇번 실패하고 포기했는데... 이번엔 아예 잊고있었는데 요렇게!

    댓글들도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글에 대한 리뷰나 감상 등을 읽으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무엇보다도 제 글을 '어렵다'고, 어떤 면에서 어렵다고 언급해주시는 분들의 얘기를 들을 때면 역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냥... 역시 저는 별 생각이 없어요.

    ...라고 하면 뭘 쓸 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건 아니고. 하지만 특별히 어렵게 쓰려고 하는 건 아니죠, 당근... 그냥 좋을대로 쓰는 듯...

    ...모르겠어요. 생각 안 할래요. 미안...ㅠㅜ 관심 가져주셔서 왕 고마워요. 계속 읽어주세연. 어렵더라도 열심히 읽을테니 감상도 가끔 남겨주세연. 저는 거울에 현재 제 글 관련 게시물이 올라온 데다가 댓글이 10개 넘게 달려서 완전 만족 흐뭇이예요. 남들의 관심을 안 바랄 리가 없잖아요? 흑흑...
  • No Profile
    가연 08.02.03 18:49 댓글 수정 삭제
    푸하...
  • No Profile
    yunn 08.02.03 22:25 댓글 수정 삭제
    일부러 어려운 생각을 하고 어렵게 쓰려고 한다면 그건 변태...(쿨럭) 안그래도 이야기하다보니 여기에서 '어렵다'는 건 대체 뭘까 싶어지긴 했는데... 그건 다음 기회에...슈릅...
  • No Profile
    절영 08.02.04 21:15 댓글 수정 삭제
    오오, 저도 제 글에 댓글이 이렇게 많이 달리다니, 완전 만족 흐뭇이에요2
    역시 글쓰는 사람에게 반응만큼 좋은 거 없는 거겠죠.

    jxk160님의 소설 리뷰를 쓸려다가 몇 번씩 포기하고 말았는데(제가 쓴 글들에 그런 흔적들이 쬐끔 있죠... 한 번 읽어봐라, 생각할 거리를 줄 거다, 라는 식의 두루뭉수리~) 제가 가장 두려워한 건 그거였어요. 벌거벗은 임금님. 도저히 이해가 안 되니까, 대단한 거다라고 추켜 세우는 건 아닐까. 내가 모르는 세계라, 나는 할 수 없는 거니까 저 허풍선이의 옷을 세상최고라고 따라하는 게 아닐까... 이번에 밤 너머에를 읽고서야 이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딱, 그 수준에서 멈춰버린 거에요. 이게 진짜 물건이란 건 알겠는데, 표현할 수가 없는 거죠. 적어도 초등학생 그림은 아니구나, 아니 초등학생 그림이라도 그 초등학생이 굉장한 천재성을 가진 아이라는 건 알겠는 것 정도.

    근데 댓글 달아주신 분들이 이 부족한 리뷰를 꽉 채워주셨네요. 감사드려요.
    앞으로도 부탁드려요. _(__)_
  • No Profile
    가연 08.02.20 01:38 댓글 수정 삭제
    절영님과 jxk160님의 댓글을 보고 나니 마음이 아파지는 이유가 뭘까요. ....

    아아, 거울이여, 거울이여... (먼산을 바라봐야 할꺼나, 앞발을 내려다봐야 할꺼나~)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2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