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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배명훈님 자작 인터뷰

2007.03.31 01:3303.31

 이 인터뷰는 배명훈님이 개인 홈페이지에 업데이트 한 외에 [누군가를 만났어](배명훈 외, 행복한책읽기, 2007년 1월)의 다른 두 분(김보영, 박애진)에게만 개인적으로 보낸 것인데, 몇 명이서만 보기 아까워 배명훈님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다. 아무런 편집도 가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이다. ――― 편집자 주

 Q. 제목이 끌렸다는 의견들이 있는데. 심혈을 기울여 지은 제목인 것 같다.

 A. 제목이 좋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글을 실은 세 명중 내 글 제목이 표지 제목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제목은 내 순수 창작물이 아니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책 표지를 자세히 보면 놀랍게도 Koi Mil Gaya라는 힌디어 제목이 그대로 달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정말이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거듭 말하지만 내가 창작해낸 제목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났어"라는 제목은 인영사모의 "한글로" 아저씨가 Koi Mil Gaya라는 인도 영화 제목을 기가 막히게 번역해 둔 것을 내가 단편소설의 제목으로 빌린 것인데, 이 영화에서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 내용이나 노래가 아니라 바로 이 제목이었던 것 같다. (그 다음은 여자 주인공 쁘리띠 진따. 그 다음은 보라색 외계인 "자두")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했지만, 그야말로 영감을 주는 제목이었다. 얼마 전에 책도 한 권 드렸다.

 Q. 첫 책을 개인 작품집으로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A. 같이 페이지를 채운 두 사람은, 내가 과학기술창작문예 당선 이후에 글쓰기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사람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글이 마음에 들고 인간적으로 끌리고 그런 것들을 떠나서, 소설을 쓰다가 느끼는 이런 저런 감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동료들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사람들이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글을 써내는 사람들이고, 어떤 때는 내가 글을 쓴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만들어주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이왕 내는 책, 혼자 한 권을 다 채우는 게 좋은 거겠지만, 이렇게 셋이서 하나를 묶어 낸 데 대해 전혀 불만이 없는 것도 그런 이유다.

 Q. 이번에 수록된 작품들을 골라 낸 기준이 있었는지? 어떤 일관된 키워드가 있었는가?

 A. 그렇게 골라낼만한 여건은 되지 못했다. 출판사 측에서 다른 인쇄물로 나오지 않은 글이 좋지 않겠느냐는 정도의 선을 제시했고, 나도 거기에 동의했다. {스윙 바이}나 {모} 같은 글들은 스스로 최고라고 생각하는 글들이지 만 이미 다른 데 실린 적이 있어서 빠졌고 다른 곳에는 공개한 적 없는 {누알}은 당시에 다른 곳에 묶여 있어서 빠졌다. 그 외에는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글들을 실었다.

 Q. SF 에로물들을 실었던데.

 A. 하하. 그게 컨셉이라면 컨셉일 수 있겠다. 누구 말마따나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지만, 대중성은 야한 장면에서 나오는 것 같다. 덕분에 가족들한테 읽으라는 말을 잘 못하겠다.

 그렇다고 야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두 편을 실었다고만은 할 수 없다. 두 편 다 가장 자신 있는 글에 속하기 때문에 실었다.

 나도 나중에야 느낀 거지만 내 글들을 쭉 보다보니 뭔가 흐름이 있기는 있었다. "폭발"이라는 테마는 꽤 오래 심취해 있던 주제인 것 같고, 땅을 파는 일 도 꽤 오래 매달려 있던 주제다. 물론 내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몰입했던 주제다. 하지만 이번 책만 봐서는 그런 흐름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Q. 독자들의 반응을 모니터했는지? 반응에 민감한 편인가? 

 A. 열심히 찾아봤다. 책이 나오는 시점에 인도 여행 중이었는데, 그 나라 느릿느릿한 컴퓨터로 국내 독자들의 반응을 열심히 체크했었다. 첫 책인데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호평이나 혹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는 것 같다. 예전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는 귀가 예전처럼 얇지는 않아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잘 흘린다.

 Q. 호평은 새겨듣고 혹평은 흘려버리는 게 사이버 스페이스를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 아닌가?

 A. 글쓰기에는 호평도 방해가 될 때가 있다. {테러리스트}로 대학문학상 수상하고 나서 한동안 다음 글을 못 썼다. 혹평 때문이 아니라 인정받았다는 생 각 때문에 들떠서였던 것 같다. 더 잘 써야 한다는 부담도 있고. 하지만 이 책 나오고 나서는, 아주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글이 나왔다.

 Q. 책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좀 있다. 일단 {355 서가}를 실은 게 좀 후회가 된다. 원래는 네 작 품만 실을 생각이었는데 출판사 쪽에서 나중에 이 글도 포함시켰다. 다른 글들에 비해서 좀 힘이 딸린다는 평도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이 글은 독자들의 평가가 확 갈리게 되어 있는 글이다. 그 글의 감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재미의 크기가 차이가 많이 난다. 쉽게 말해서 대학원 생 활의 세부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써 놓은 것들을 소소한 것까지 발견해 내고 재미 있어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좀 아쉬워하는 편이다. 개를 먹는 사람이 있고 안 먹는 사람이 있는데 일괄적으로 보신탕을 내 놓는 건 실수일 텐데, 이 책에서 도 그런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글이 분명하지만.

 Q. 본인이 쓴 부분 말고 다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지.

 A. 다른 두 분의 글에 대해서라면 아쉬움이 없다. 왜냐고 묻는다면 일단 한 번 읽어보라고 대답하겠다.

 띠지의 "기발하다"라는 문구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사람들이 SF나 판타지 소설에서 기대하는 것을 그대로 써 놓은 것 같아서 낯간지러운 느낌이 있다. "당신들이 원하던 바로 그 기발한 것"이라고 써 놓은 것 같다고나 할까. 게다가 기발 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고른 말이 그냥 "기발하다"라는 말이라니, 아이러니다.

 물론 잘못 고른 홍보 문구라는 말은 아니다. 시장에서 우리 글이 딱 그런 위치 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 위치에 있다는 건 역시 낯간지러운 일 아닌가. 이건 우리가 시간을 두고 해결할 문제다.

 아, 그리고 박 모 님의 사진이 험상궂게 나왔는데,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다.

 Q. 세 명의 글을 묶을 때 통일성 문제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았는가?

 A. 그런 걸 생각하고 묶었다기보다는, 각자의 글을 출판사로 보내는 정도였다 . 나중에 전체적인 색깔을 고려해서 넣고빼고 하기는 했지만 어떤 색깔을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추는 식은 아니었다.

 문제라면, 독자들의 리뷰에서 나타난다. "3인3색"의 의도 자체가 그렇겠지만, 독자들이 책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책 전체를 통째로 받아들이는 식이 아니다. 리뷰들을 보면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나머지 부분은 그 만큼 꽉 채워져 있지 않은 것들이 많다. 각자가 생각하는 이 책의 색깔은 어디를 집중적으로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3인3색의 장점이자 단점일 것이다 .

 Q. 책을 구성하는 데서 생긴 문제라는 뜻인가?

 A. 하하. 유도심문이다. 독자 문제다. 다 안 읽어서 그렇다. 비난할 생각은 없다. 비싼 돈 주고 책을 샀으니, 다 안 읽어도 된다. 하하.

 하지만 박 모 님의 글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평가를 위해 구사할 구체적인 단어들을 집어내지 못하고 있어서 아쉽다. 두고두고 천천히 읽어보면 서서히 뭔가가 느껴진다는 식인데, 그건 아직까지 잘 못 읽어내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에 그 서평자들이 책임 있는 평론가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비난받을 수도 있을 만큼, 그런 유보적인 태도가 모든 것을 다 덮어 주지는 않는다.

 Q. 독자들은 오독할 권리가 있다고 하지 않나?

 A. 그렇게들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대학원 다니면서 상상력을 동원해서 읽되 오독만은 하지 않도록 훈련받았기 때문인지 오독할 권리가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 책이 글 한 편 한 편을 다 읽어야만 그 의미가 드러날 만큼 정교하게 선별된 글들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니까, 띄엄띄엄 읽어도 할 말이 없다.

 Q. 끝으로 할 말은? 앞으로의 계획이라든지?

 A. 벌써 끝인가? 하하.

 앞으로도 그냥 이 페이스대로 글을 쓸 것 같다. 책이 나와서 좋지만 뭔가 글쓰기에 거대한 전기를 가져올만한 일은 아니었던지 페이스가 변하지는 않았다.

 알라딘 리뷰를 보면 평점이 전부 만점이다. 그렇게 써 주신 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책이 나온 것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보고 기분 좋아하다가 생각해 본다. 만점짜리 책? 셋 중에 한 명은 혹은 두세 명은 언젠가는 진짜로 그런 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쉽게 대답할 수 있고 평소에 많이 생각해 보던 그런 질문이 아니라 가슴 뜨끔한 날카로운 질문 그런 날카로운 지적이 필요할 때가 있다.

 Q. 익명성을 지닌 인터넷 매체의 특성상 그런 일은 예의 없어 보일까 수 있어서 망설이게 된다.

 A. 그럴 것이다. 그런 예의에도 감사한다. 진짜로.

 하지만 비평가라면 가장 뜨끔한 곳을 "읽어냄으로써" 작가에게 예의를 표할 수도 있다. 그런 장단과 추임새, 그 시너지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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