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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요정의 선물

2007.12.20 23:0812.20

yuyu9999@hanmail.net        굵은 팔, 두터운 허리, 수염 성풍한 어떤 요정은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고 잘생긴 어떤 요정은 노래하며 실 잣는다. 모두 뚜들기는 소리에 맞춰 윤대 돌아간다. 작업의 마무리를 서두르고 있었다. 서울의 시민들에게 보낼 선물 : 착한 물고기들에게 갑옷을! 착한 물고기들에게 장갑을, 귀마개를, 그리고 사탕을……예쁜 요정의 손가락은 허공에서 금성의 소리를 끌어내 정교한 금속 세공품으로 바꾼다. 쇠사슬 장식이 설탕인형 위에 서린다, 강철을 녹여 지은 몽우리와 개구리밥, 방금 뜯어낸 천사의 날개, 뾰족한 수탉 부리, 연인들의 침대에 둘 구리 배게, 황야에서 죽은 망령을 위한 쇠막대사탕!

        언제나 사람이 못 보는 곳에서 그런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말하자면 덕수궁 돌담길 아래에서. 대학로로 이어지는 음산한 도로라든가 또는 새벽이 오면 유령들 조조히 도망치는 마로니에 광장, 물고기 눈들이 끊임없이 도살당하는 이대 거리……성탄절의 첫 번째 징조가 띵땅거리는 골목을 요정들은 뛰어다닌다.

        말하자면, 부조리극을 연출하는 시청 납골당 어느 켠.

        그녀가 그 골목에 첫발을 딛었을 때에도 요정들은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우뚝 솟은 서울의 등골에 얽힌 혈관이 사파이어와 루비 빛으로 반짝이는 곳, 빛깔에 아스팔트 길바닥이 아름답게, 붉게, 비치거나 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파랗게, 아름답게, 신선한 내장처럼 귀엽게 꿈틀대는 바로 그 골목에서. 그녀는 요정들을 찾아냈다. 그녀는 능란하게 요정을 사냥했고 요정들은, 그녀의 내장을 빼내기 위해 신중하게, 칼을 디밀었다 푸욱! 그 칼은 그녀의 가슴에 꽂혀 십이월이 끝장날 때까지 그대로 곧추선 채로 그렇게, 허옇게 식어 갈 테다. 왜냐하면 그 상처는 이제 막 회복되기 시작한 상처 위에 덧찔러졌으니까. 그녀는 막다른 골목을 향해 엉금엉금 헤엄쳐 간 것이다. 서울에서, 지독한 냄새나 풍기는 맹독 덩어리처럼 썩고 있는 시꺼멓고 흉악한 일상을 다 삼키곤 알 더미에 묻혀 죽는다. 그녀의 어두운 내장 속에는 서울의 친절한 악덕, 시민에게 있어서는 사랑보다 우월한 실재가 싹튼다, 그건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며 요정의 식량이며, 가장 효과적인 약재다. 그녀는 서울이 잠시 빌려 준 독 묻은 손톱으로 얼굴을 긁는다. 아직 죽지 않았어! 아직, 죽지 않았어! 허리 굵은 요정이 조그맣고 뾰족한 끌을 들이대며 그녀 눈을 희롱한다. 잘생긴 요정이 다가와 그녀 손톱을 오독오독 씹는다. 귀여운 요정은 한층 비열한 고문을 가할 테다. 갈비뼈가 드러나고 심장이 파헤쳐진다. 그녀는 이빨을 갈며 이 불행한 사랑을 감수한다 ……조금만 기다리면, 요정들이 달겨들어 그녀를 짓씹을 테다, 그 순간 그녀는 요정 하나를 씹어먹을 테다, 그녀의 살과 뼈가 산산이 흩어질 때 그녀는 또 한 명의 요정을 씹어 삼켰다!

        그녀는 지나치게 이른 성탄절 선물을 받았다. 그녀는 몇 번이나, 요정들이 선사한 서울을 되씹어야 할 테다. 그 순간 그녀, 나를 떠올려 줄까?

        대학로에서, 내가 그녀의 지갑을 주워 주던 그 순간을 그녀는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서둘러 돌아서던 그녀를 붙잡으며 핸드폰 번호를 묻던 것도, 또 한참 후에 우리 서로 사랑하던 그 날들에,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가 만난 바로 그 자리! 우리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바로 그 장소, 라고 외쳤던 것도. 한낮의 서울이 스러지고 등골 치솟는 밤이면 우리들 헤매여도, 그 자리만은 여전할 거라고 말했던 것도 이제 그녀는 기억 못할 테다. 어느 날 기괴한 예감과 우울한 일상에 시달리며 대학로를 뛰고 있을 때 별안간 밤이 닥쳐 들었고, 처절하리만큼 선명하게 달 솟았고, 나는 달 따라 달을 향해 솟구친 새로운 등골 보곤 소스라쳐 그녀를 이끌었다 당신 여기 있으면 안 돼! 그녀 매몰차게, 내 손 뿌리치며 외쳤다. 왜 나에게는 그 서울을 보여 주지 않아?

        당신이 말했던 그 서울 말야!

        명확하게 구별 지어져 있는 서울, 우리들의 살음과 그녀의 갈망 그 경계로 갈린 서울을. 우리들의 도시는 명확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토록 서울은 기괴한 곳이다. 그녀는 결코, 결코 우리들의 서울에 들어설 수 없다. 그녀의 서울은 암처럼 그녀 내부에 도사리곤 천천히 침노하여 파먹어 들어가, 한 덩어리의 꿈으로 변용해 종내 우리들에게 삼켜진다. 그녀를 위한 약품이며 개구리들을 위한 식량이며, 우리의 살음이다. 서울. 서울, 어느 거리든 천천히 녹아 한 덩이 꿈으로 엉겁한다. 괴로운 영양분이다.

        당신도 다른 개구리들이랑 똑같아! 당신은 그저, 달이 흘러내리기만 기다리고 있어.

        그녀는 계속 달려갔다. 비밀은 새로운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등골이 종로 한가운데 치솟았다. 우리들은 그 뜻을 다 몰라 당황한다, 완전히 새로운 등골 그 아래 냉정하거나 치열한 들러리로 남겨진다, 돌연 모든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서울이 미친 사냥터로 드러났다! 그녀는 요정들에게 짓씹히고 요정은 먹바퀴에게 파먹힌다, 멀리서, 물고기 눈들이 무관심한 얼굴로 걸어간다. 달이, 흘러내린다 반려들의 울음소리 멀리서 번져 왔다. 규칙이 무너지고 규율이 뭉그러지고, 비린내 묻은 칼이 번뜩인다! 경계를 나타낼 아무 것도 없다, 죽음과 죽음, 사냥과 포식 외의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들은 산산이 흩어져 피난처로 기어든다. 어느 겨울날 밤을 뛰었다.

        십이월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크리스마스는 아직도 멀었다.

        나는 이런 추상으로 쑤시는 머리를 움키며 대학로를 걸으면서, 서울에서 도저히 용납받지 못하는 어떤 종류의 악덕을, 어떤 종류의 물고기들을, 기묘한 서울을 생각한다. 종로까지 계속, 걸으면서, 나는 그녀와 둘이서 대학로 KFC 로 놀러갈 수 있는 날이 다시 올 것인지를 마흔두 번이나 생각했다. 이 서울의 진정한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끝없이, 자신을 기만해야 한다, 현명하고 올바른 규칙에 따라 공허한 이기심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리고 또?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진심을 뭉텅 뭉텅 내쏟으며 거만한 척 겸손한 척 버텨야 한다. 무아지경의 또는 혼란의 살덩이로서, 눈먼 물고기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나 갈망의 빛을. 영혼으로부터 솟구쳐 날아오른 그 눈을 이 음침하고 기괴한 도시로 치뜨리곤 했다. 나는 오늘도 그녀의 일상과 허락받지 못한 갈망이 깊이 배어든 서울 밤거리를 떠돈다. 둘이서 한낮의 종로를 걷던 그날, 그녀가 일상 어디에도 마음 두지 못하고 생활 전반에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경계 너머의 서울은 그녀 일상의 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을까? 그녀의 실재보다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녀는 완전히, 잘못 알았다. 완전히 착각했다.

        물고기 눈들은 갈망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야 산다. 사랑이라 착각할 약품 한 병, 훌륭한 물고기 알 한 자루, 또 필요불가결한 선도자들의 정성으로 그들은 완전하게 살아간다. 출처불명의 갈망, 그 잔해를 엿본 그녀는 스스로의 환상을, 서울의 일상을 모두 잃어버렸고 현실에 내팽겨쳐져선 악다구니 치다 요정들에게 뜯어먹혔다, 출처분명한 잔해가 조금, 남았다. 악취 맴도는 자궁이나 피묻은 갈비뼈, 애처로운 가죽이 남겨졌다. 막다른 골목 끄트머리에 요정들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나는 경미한 강박신경증에 걸렸다. 서울의 물고기 눈만 봐도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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