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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절영이 읽은 거울 2

2006.03.31 21:2803.31

M. 절영 ( m e l c h i z e d e k @ n a v e r . c o 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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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기반 환상단편이 항상 친숙한 것은 아니다. 콜린의 [커피잔을 들고 재채기]는 외려 현실을 더 낯설게 만들어 버리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라고 물어보고 싶어지는 소설이었다.(여러가지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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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신화]
비현실을 만들려면 이 정도는 되야지. 라고 생각하게 만든 작품. 어떻게 끝날까 궁금해, 다리가 덜덜 떨렸다. 결말이 나기까지 소설은 추리, 호러, 스릴러, SF를 넘나든다. 사실은, 우리의 일상사일 뿐인데. 결론적으로 말해도 아무것도 아니었지 않은가. [다이어트]에서 접했던 스타일이기에 참신성은 떨어지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웃집 신화'라는 제목이 [밀리터리!판타스틱!]을 떠올리게 해서 풋, 웃음이 나왔다. 남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읽었을까가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조금 더 호러였을까, 환상이었을까.
이건 일종의 실험작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과 비슷한 다른 작(비슷하지만 또 다른 느낌의, 혹은 더 나은 느낌의?)을 위한. 장르를 아우르는 유쾌한 이야기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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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발로 성큼성큼]
어쩌면, 현실을 글로 풀어낸다는 모든 행위가 환상소설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발로 성큼성큼]은 사진과 글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론 이번 호의 베스트로 뽑고 싶을 만치의 철학이요, 귀여움(사실은 이 쪽을 더 강조하고 싶은)이었다. 마지막 사진의 글들은 마지막 사진을 의미 있게 만든다. 애완(愛玩)에 대해, 정작 우리는 당사자의 입장은 하나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이 그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면, 그리고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나쁘지만은 않겠지. 사실 서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도 인간 개인의 자만일 뿐이요, 우리는 서로를 자신에게 비춰가며 알고 있을 거라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삶 자체가 거대한 개인의 환상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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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주가 왜 그랬을까?]
이런 작품이 하나쯤 나와 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귀여니가 아니라 무한슬픔님이었다는 게 재미있고 반가웠다.
최근엔 인터넷 문화가 외려 획일성을 부추기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을 통해 많은 독특함과 다양성이 표출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네이버 댓글들이라는 점은 재미있는 일이다. 귀여니 시집 사건이나 일종의 스포츠 파문 시리즈, 최근 WBC와 슬램덩크의 비교 댓글 등등... 넷의 역사만큼 댓글족들이 이룩한 여러 위트있는 댓글문화는 참 다양하다. 촌철살인의 위트를 담은 댓글은 분명 문학이라 할 말 하다. 한 줄 소설도 있는 세상인데, 뭐.
댓글을 이어붙인 [최민주가 왜 그랬을까?]라는 소설은 촌철살인 댓글들을 이어붙인 내용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대화(?)를 통해 하나의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도이다. 게다가 그 내용 하나하나가 정말 그럴듯한 댓글족의 행태를 보여 주고 있어, 작가분의 전직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다. 게다가 최민주라는 연예인의 최근사진이라는 익명의 네티즌의 제보 사진은 너무 얼토당토 없기에 여러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 번째, 진짜로 최민주는 외계인이었다. 이건 일반적인 댓글 이어붙이기로 보였던 소설을 SF로 둔갑시킨다. 진짜로 외계인은 있었고 지구는 침공당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전작의 이야기를 오버랩시키면서 어쩐지 독자를 설득력 있게 밀어붙인다. 아! 그래, 그 때 여자친구는 역시 외계인이었군.
두 번째 가능성. 네티즌들의 한 사람 바보 만들기 프로젝트였다. 이건 이 소설을 유쾌한 풍자로 읽게 만든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 연예인 성형 전 사진의 어떤 부분들은 전혀 얼토당토않은, 이름만 같은 일반인 사진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럴 때 댓글족들의 반응은? 진실을 살피기보다는 그 빈약한 증거를 가지고 한 사람을 (일명) 다구리 하기를 즐긴다. 어차피 그들에게 피해는 없으니. 긴 글줄들은 이상한 사진에 낚인 거다. 아니면 그들 스스로 최민주를 낚았거나. 어쨌든 의미 없는 대화들 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바보로 만들고 바보가 되었다.
이 소설을 어떻게 읽는가는 독자에게 맡겨지는 바일 것이다. 아마도 작가의 의미는 첫 번째에 있었겠지만, 어떤가. 소설이 공개되는 순간 그건 작가를 떠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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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니에게]
이 소설에 대해 코멘트를 할까를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가는 것도 이상한 일일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작가분의 글에 코멘트를 하기 전에, 이 작가분의 글의 대한 이전의 감평을 먼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읽었다. 그리고 몇 마디 적는다.
작가분은 하나의 글쓰기 방향성에 있어서 일가를 이루었다 보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 방향성은 상당히 완고하고 완숙해서 아마 잘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꺾일 필요도 없다.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하는 문제도 있지 않을까. [바지니에게]는 깊은 철학적 사유를 가지고, 나름대로 이야기가 나아가고자 하는 것, 말하고자 하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미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었다면 이제는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읽고자 하는 의지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다. jxk160님의 글은 길지만 길어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 길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길다는 것을 독자가 인지하게 되는가이다. 나는 [바지니에게]의 첫 몇 부분을 무척 곤혹스럽게 읽었다. 시제의 문제도 밟히고 의식과 현실과 자꾸 겹치는 서술 방향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반 정도 읽어나가기 시작하면서 이야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좋은 이야기였으니까. 그런데도 도중에 자꾸 튕겨 나왔다. 마치 만든 지 얼마 안 된 스프링이 양 옆에 장착된 길을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 쓰면 한 번쯤 읽어서 스프링의 어떤 부분만 완화시킬 수 있다면 훨씬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이 소설을 '더'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오해를 줄이기 위해. 읽기는 다 읽었으되 아직 모든 속살을 벗기지 못했다는 말이다.) 프린트까지 했건만 녹록치 않은 소설이었다. 다시 한 번 읽고 또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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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단편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의 기인 장편소설로 입문해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라도 독백에 빠져 허우적거린다고 일컬어지는 일반문학의 경우, 나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매력적인 단편을 만나곤 한다. 제반 배경지식 없이 첫 문단부터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그와 비례해, 남들에게 베스트란 일반장편에서 지루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환상문학은 작가의 환상에 독자가 빠져들어야 한다는-일차적인 장애가 있는 탓에 작가도, 그리고 독자가 많은 생각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자유롭다고 자부하는 환상문학에겐, 곤란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완전한 비현실에 기반을 둔 소설보다는 '오늘의' 현실에 한 쪽 발을 담근 환상단편에 좀 더 매력을 느끼곤 한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실기반 소설이 쉽게 몰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대부분 가지기는 한다. 33호의 독자단편 [그림자용]이 훌륭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 읽히지 않은 이유가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분위기만은 매력적이다 자부할 만한 그 소설에서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관을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벅찼다. 여러 번 읽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일지 모르나 그 전에 지쳐버린다면 무슨 소용일까...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소설에서 그 아름다운 설정들을 제해버린다면 무엇이 남을까... 곤혼스러운 일이다. 어차피 무지의 장애를 뛰어넘어야 하는 것은 독자인 것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작가들이 물갈이(?) 되었기 때문일까. 환상기반 세계관의 작품이 적어졌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웠던 이야기들이 그리워지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 늘어나 즐겁기도 하다. 현실기반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야 하기에 좀 더 많은 역량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과연 개연성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는 작가의 역량이다. 과연 재미있게 현실/환상을 풀이할 수 있겠는가는 작가의 역량이다. 환상에 대한 너무 큰 부담감만 줄인다면 [킹콩이 떨어진 다음에] 같은 소설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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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하 06.03.31 22:48 댓글 수정 삭제
    놀랐어요. 취미로 사진을 찍은지 한 3년이 넘었지만 뭐낙 소소한것만 찍어서 비평??을 받아본적은 없거든요. 기분이 좋아졌어요. 헤..^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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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6.04.13 15:43 댓글 수정 삭제
    솔직히 가끔은 현실 세계의 디테일을 쓰려면 무지하게 많이 조사하고 공부해서 그것에 대해 잘 알아야 된다는 부담 때문에 얼렁뚱땅 만들어버리기 좋은 환상세계를 택하기도 합니다. "가까운 미래" 라는 식으로. "세상에 대한 내 가정이 틀려도 뭐라 그러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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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영 06.04.19 14:21 댓글 수정 삭제
    아르하님 사진은 따뜻한 느낌이 베어나와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계속 좋은 사진 부탁드려요.^^

    배명훈님/그렇죠... 저 자신도 그런 적 없다고 할 수 없구요....;;; 하지만 때론, 그렇기 때문에 생각지 못한-조사만으론 도달할 수 없는- 좋은 글이 나올 수도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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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전 현실기반 소설을 쓰는 분들이 부럽습니다...이 얼마나 멋진 세상입니까. 얼마든지 셰익스피어를 인용할 수 있고, 완벽하게 현실적인(...)지형지물, 그리고 문화를 활용할 수 있으니까요.

    ...전 아직까지 '새로운 세상'을 '대충'설명하고 넘어가거나 현실을 모사하는 식으로 버티고 있습니다만...(예를 들면 '북부는 춥다'-_-)...나중엔 지리학이나 인류학을 좀 배워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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