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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뽀뽀할 상대가 없어

2007.12.20 23:0512.20

01demian@hanmail.net크리스마스 이브였지만 뽀뽀할 상대가 아무도 없었다. 엊저녁에 그 녀석과 대판 싸우고 헤어진 탓이다. 누구라도 만나고 싶어 하루 종일 서너 개의 약속을 돌았는데 번번이 바람맞고 말았다. 내내 빈 카페와 빈 술집과 빈 밥집에 덩그러니 앉아 있다가 텅 빈 밤거리를 혼자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도 다 어디로 숨었는지 휑한 거리에는 쓰레기만 휭휭 날리고 있었다. 길가는 들고양이라도 있으면 잡아다 키스를 날려 줄 생각이었는데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불을 펴고 자리에 누웠다. 수면등을 켜지도 않았고 약도 먹지 않았다. 모로 눕는 대신 편하게 대자로 누웠고 잠이 덮쳐 올 때까지 책을 보며 버티지도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평상시에 하는 ‘보지 않기 위한 노력’을 오늘은 집어 치웠다. 나는 매일 온 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공간을 지나간다. ……‘틈’을.

최근 저승은 ‘제 때 입국하지 않은 사망인’ 입국금지를 선언했다. 저승도 인구폭발로 대책이 없다. 45억년 간 죽은 것들이 꾸역꾸역 쌓인 데다 이승에 역사상 유례없는 생물대멸종이 진행 중인 탓이다. 덕분에 이승을 떠도는 난민의 숫자는 이미 수용한계선을 넘어섰다.

나는 ‘틈’을 응시했다. 3차원적으로 보았을 때엔 지구의 크기와 같고 4차원적으로 보았을 때엔 현실과 꿈 사이에 놓인 종잇장처럼 얇은 공간을. 잡귀들이 온 사방에 퍼즐처럼 맞물려 천장부터 바닥까지 동벽에서 서벽까지 북벽에서 남벽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옷장 위 서랍 속 책장 사이 책상 밑 내 가랑이 사이에 고니 해오라기 장수하늘소 수달 여우 참수리 도요새 가마우지 장어 제비꽃 틈틈이 사람. 우글우글 북적북적 시끌시끌 바글바글 수군수군 복작복작. 나는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놈과 진하게 뽀뽀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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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7.12.21 10:39 댓글 수정 삭제
    어머나. 제목이 눈에 확!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들 중에 '가마우지'를 발견했어요. 혹시 작년 이맘때쯤에 우주로 날아갔다는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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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12.21 14:25 댓글 수정 삭제
    크리스마스이브에는 뽀뽀를 안하면 큰일나나봐요! 저도 얼른 '틈'을 찾아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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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a 07.12.22 04:20 댓글 수정 삭제
    배명훈 : 제목을 짓는 연습중임 ^^;; / 예, 그 가마우지. (사실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권 : 믿으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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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연 08.01.29 01:46 댓글 수정 삭제
    제목부터가 취향이야요. 좋아요, 이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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