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melchizedek@naver.com노래하는 숲/은림

***나는 한 번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혹은 모든 세상을 위해  노래하는 환상을 품은 적이 있는가?***

이 작가의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읽고 싶다. 아니, 길면 길수록 기쁠 것 같다. 스크롤의 압박을 느끼지 않게 하는 작가다. 이 작가의 끈질긴 식물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대가의 집념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욱 신뢰깊고 아름답다.

우리가 아닌 자연의 일부를 우리처럼 표현하는 것, 흔해진 문학 양식 중 하나다. 그러나 벅스라이프나 앤트같은 애니에서 느낄 수 없는 삶의 성찰을, 글에서는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소설을 계속 명맥이 이어지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굳이 비교하자면 마야의 모험류지만, 식물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더욱더 환상성을 더한 현실의 대칭점 같은 내용이 우리 발 밑에 펼쳐진다. 토란의 이야기는 워터십 다운의 파이버와 겹치면서도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과 가능성을 가진 주인공으로서의 결단력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명사들이 고유명사화 되어 내 현실, 또는 환상을 투영해 주는 뜻깊은 경험을 할 수 있다.



거울애/ida

***나를 마주하는 환상. 그것은 소름끼치게 격정적인 스릴러다.***

미스테리물 같은 스릴이 느껴진다. 화자의 정보마저도 제한된 상황은 읽는 사람을 점점 감질나게 만들고 앞일을 예상할 수 없게 한다. 그러면서도 독자에겐 제목이라는 하나의 단서가 더 주어져 있기에 화자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 그래서 반쯤은 전지적이면서도, 화자의 시점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마우스를 바들바들 떨면서 스크롤을 내리는 것이다.

이야기의 주제를 들어다보기에 앞서 이렇게 스토리 자체를 따라가기만도 재미있는 소설은 흔치 않다. 그리고 이야기의 바깥을 벗겨내었을 때 이렇게 적나라하게 인간들의 내면을 까발리기도 쉽지 않다.



달팽이와 다슬기/곽재식

***사람들은 달팽이와 다슬기를 고마워 하게 되었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을은 잘 사는 마을로 이름이 높았다…***

가정의 달 특선이라는 작가의 말이 진짜일 것 같은, 꽤나 차분하고 있을 법한 삶의 조합이다. 아이의 시선치고는 굉장히 어른스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이 이야기가 감정기복없이 깔끔하고 정갈하게 읽혀 마음에 들었다. 자칫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을 이야기를, 야단장이나 교훈 및 깨달음 없이 무자르듯 깨끗히 끝내서 분위기 일관성 면에서도 좋았다. 이야기 속 이야기 구조 속(;)의 달팽이와 다슬기 이야기가 꼭 현실에서도 실현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불량애완용/askalai

***어린 시절 추억, 환상이 되어 날아오르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 것 같다. 아마 다른 곳에서 보았었던 듯 싶다.

그 때도 느꼈지만 왠지 마무리 되지 않은 이야기의 단편을 보는 듯한, 그것도 절정이나 전개부가 아닌 고즈넉한 쇠퇴기의 결말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러한 면이 별 특징 없는 이 이야기를 빛나게 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어디서부터가 화자의 환상이고 현실인지 분명치 않은 어린시절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판타지 독자가 아니라도 쉽게 빠져들 수 있게 하는 힘을 지닌다. 마치 나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꼬마 시절의 나의 무용담마냥.



도넛/정대영

***환상 끝에 도달한 인간들***

디스토피아일까 유토피아일까. 아마도 먼 미래라고 말해도 좋을 시간에서 그럴듯한 거시적 배경 설명 없이 처음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당혹스럽게 끝을 맺는다. 그의 이야기는 대부분 내용 자체보다 글줄 하나하나가 의미하고 꼬아 내는 이미지 자체에 현혹되어 있다. 그래서 초반부 어휘의 소용돌이는 상당히 감명깊게 소설 전체를 휘어잡는다.



논문공장/배명훈

***환상일까 현실일까***

이 이야기에 긴 글줄을 쓸 필요가 있을까. 이 작가를 좋아할 사람은 이미 충분할 테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읽지 않을 텐데. 전작들의 유물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이 글은 어쩌면 나른하고 어찌보면 임팩트있다. 언제나 현실감 넘치는, 그의 디테일에는 역시나 감탄하게 된다.







***

여행은,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모퉁이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재충전을 좋아하고 휴가를 좋아하는 것일 게다. 항상 시간을 재어 일상을 영위하면서도 언젠가 그 생활에서 일탈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 때야 말로 자신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가장 낯선 곳에 섰을 때야말로 사람들은 가장 지루했던 자신의 하루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문학을 읽는 것이 바로 그 작은 여행지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곤 한다. 그 낯선 꿈의 세계는 가장 단시간에 우리를 현실에서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환상에 마주 섰을 때 우리는 그 거울 반대편에 선 일상을 투명한 시선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댓글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