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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주년 수필] 먼지 기둥

2023.07.15 00:0207.15

   ------  거울 20주년 기념 수필  ------    

먼지 기둥

김산하

 

지구로부터 7,000광년 떨어져 있는 천체 ‘수리 성운’은 내부에 대단히 독특한 구조물을 품고 있다. ‘창조의 기둥’이라 명명된 이 구조물의 정체는 성간 물질이 뭉쳐 이뤄진 일종의 우주 구름으로 그 이름처럼 내부에선 별이 활발하게 생성되고 있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1995년 허블우주망원경에 의해 촬영된 사진으로 이 구조물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나 역시 그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 창조의 기둥을 접하게 되었다. 사진 속 기둥의 모습은 마치 공중을 향해 뻗은 모래 거인의 흘러내리는 손처럼 보이기도 하고 지금 막 지층에서 출토된 관 형태의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천문학상의 분류를 따르자면 창조의 기둥은 ‘성간 티끌Dust’에 해당하니 먼지 기둥 형태라 정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어째서인지 항간에 이 기둥은 ‘우주에서 발견된 신에 제일 가까운 존재’로 알려져 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한 천문학자의 인터뷰 내용이 인터넷상에 떠돌고 있기 때문일 거라 나는 짐작하고 있다. 진위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이것이 신에 가까운 존재라는 의견에는 선뜻 동의할 수 있다. 매 시시각각 새로운 항성과 행성을 창조해내는 우주적 힘은 내 사고로는 감히 상상조차 해보기 어려운 영역이다. 인간이 만약 이 기둥에 닿는다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한 뼘의 땅조차 스스로 생성해낼 수 없어 무수한 전쟁과 학살과 파괴를 자행해온 우리가.

 

 

다시 말하자면 창조의 기둥은 지구로부터 7,000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고 인간이 그것에 닿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다. 두 번째 항성은 우리의 세대에서는 허락되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두 번째 행성은 어떨까. 스페이스X의 창립자인 일론 머스크는 스페이스X의 설립 단계에서 2050년까지 100만 명의 인간을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공언했지만 나는 그 계획의 달성 여부에 대해서 몹시 회의적이다. 일론 머스크는 계획 초기 2022년까지 인류의 첫 화성 이주가 가능할 것이라 낙관했으나1) 이 약속은 2026년으로 미뤄졌고, 최근엔 한 번 더 미뤄져 2029년까지 유예되었다.2) 앞으로도 얼마든지 미뤄질 수 있는 것이다. 화성 이주 계획이 세상에 처음 알려졌을 때만 해도 그는 일각에서 인류의 구원자로 추앙받았으나 계속된 테슬라의 경영 부진과 개인적인 기행 논란이 겹치며 2022년 12월 말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으로부터 "기업 경영은 고사하고 내 고양이 밥 주는 일조차 맡기지 못할" 사람이라는 비판을 듣게 되었다.3) 인류를 구원하는 일부터 고양이 밥 주는 일까지는 너무나도 큰 간극이 있어 나로서는 일론 머스크의 진정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도리가 없다. 어쨌든 내가 가장 최근에 확인한 일론 머스크의 근황은 페이스북의 창립자이자 현 메타의 수장인 마크 저커버그와 일대일 격투기 대결을 벌인다는 소식이었다.4) 당연하게도 나는 이 결투의 결과가 궁금하지 않다.

인간은 한정된 대지 위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요즘 들어 나는 이것을 격하게 실감한다. 2023년 4월 17일 나의 하루는 20대 청년의 비극적 죽음을 전해 듣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2022년 겨울부터 언론에 보도되어 수도권 일대를 덮친 조직적 전세 사기 범죄 사태, 이른바 ‘빌라왕 사태’의 피해자였던 청년 임씨는 인천 미추홀 구에서 한 악성 임차인으로부터 전세 사기를 당했고 9,000여만 원의 보증금 중 대다수를 하루아침에 잃게 되었다.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임씨의 삶 막바지는 수도요금을 내지 못해 단수를 겪을 만큼 힘겨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임씨의 어머니는 임씨 사후 이뤄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임씨와 한 마지막 통화 내용을 세상에 알렸다. “미안해요 엄마, 2만 원만”5) 그 통화를 마지막으로 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끝없이 슬프다.

여론은 입법 불비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국회와 피해자 구제에 소극적인 정부를 매양 질타하고 있지만 나는 이 글에서만큼은 그보다 앞선 원인을 지목해보고 싶다. 이 나라를 수십 년간 지배해온 부동산 불패 신화와 그 뿌리에 깊게 박힌 물신주의 성향을 말이다. 이번 사태로 ‘깡통 전세’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 뿐, 전세 시장에서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세금으로 무리한 투자를 해온 관행은 이전부터 있었다. 소위 ‘갭투자’라는 이름으로 행해져 온 이 관행은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 무자본, 혹은 소자본을 지닌 개인이 억대 자산가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관문처럼 일반인들에게 방송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6)

부동산 불패 신화는 일종의 투기적 수요를 통해 지탱된다. "이곳이 고점이다"란 말은 과거사부터 꾸준히 있어 왔으니 지금도 고점이 아닐 것이라는 논리가 여전히 시장에 팽배하다. 한때 고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을 묻는 설문 조사에서 ‘건물주’가 2순위를 차지했다는 사실7)은 내게 복잡한 심경을 안긴다. 나는 설문에 응답한 학생들이 건축물에 대한 특별한 심미적 애호가 있어 건물주를 장래희망으로 꼽았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소유를 원했을 것이다. 돈. 타인으로부터 부러움을 살 정도의 많은 돈.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가 17개국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행한 설문에서 이러한 한국사회의 물신주의 성향은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오로지 한국만이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다른 14개의 국가에선 ‘가족’을 1위로 꼽았다.8)

 

 

행복이 곧 물질적 풍요로 치환되고 다시 물질적 풍요는 부동산 소유로 치환되는 사회란 어떤 곳일까. 한정된 대지와 그 위에 쌓아 올린 건물을 소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삶의 행복도가 결정되는 세계란. 그 세계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무한한 경쟁 속으로 내몰 것이다. 한정한 자원을 가지고 다투어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불행한 삶을 살게 되리란 공포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잠식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사로잡힌 개인은 일대일의 결투나 다름없는 자본 경쟁에 나설 것을 늘 부추김당한다. 합리도 도덕도 잊은 그야말로 투기鬪技적 투기 상태에 말이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어른들을 오늘날 한국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이 아이들을 위한 가르침이라고 말한다. 감상을 배제한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이 조언이 결과적으로는 이 사회의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그러나 스스로 사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주장이 조금도 이성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심각한 모순덩어리에 불과함을 끝내 깨닫게 될 것이다. 빈부는 상대적 속성이다. 만일 한 사회에서 행복이 타인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는 일에 좌지우지된다면 그 사회는 절반 이상의 구성원이 행복한 삶을 경험할 수 없는 사회다. 절반의 부유한 이들의 발밑에서 언제나 절반의 빈자들이 신음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 그 사회는 절반의 구성원들에게조차 완전한 행복을 약속할 수 없다. 가진 이들 중에서도 끝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더하여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게 되어 아래 계층으로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에 늘 시달려야 할 것이다. 위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다음과 같이 썼다.

 

오늘날 대다수 갑남을녀의 일상에서 공포는 희망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만들어낼 기쁨보다는 자신이 소유한 것을 남에게 뻬앗길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사로잡혀 있다.

삶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중략)

소유보다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삶에는 근원적 행복이 존재한다. 이러한 행복은 적대적인 환경이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복음서가 권하는 삶의 방식이자 세상의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권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찍이 이러한 삶의 방식을 찾은 이들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외부의 권력에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버트런드 러셀 <자유로 가는 길> 240p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은 우주와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부터 온갖 괴짜 발명가, 자신의 일상과 그 주변에서 매일 기쁨을 만들어내려 노력하는 선한 시민 들을 모두 아우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창작자들이 포함될 것이다. 새로움을 만드는 예술가. 세속적 성공이 아닌 창작 활동 그 자체에서 행복을 느끼는 예술가는 누구 못지않게 소유보다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을 가진 존재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서 이러한 예술가들이 겪는 수난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명성과 재산을 얻을 수 없는 예술을 한다는 이유로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나 또한 상업 소설 쓰기를 관두고 플랫폼과 출판사를 연달아 떠났을 때 주위의 몇몇 사람들로부터 우려가 섞인 질타를 받았다. 그들은 내가 수입도 적고 보는 사람도 적은 소설을 쓰느라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제 나는 웹진 거울에 소속되어 있고 내가 거울에 쓰는 소설들, 거울을 통해 만나게 되는 글들은 분명 명성이나 물질적 풍요로부터 거리가 있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쯤 전철을 탄 채 한강의 교량을 건너고 거기서 양 기슭을 바라볼 때 보이는 강철색 마천루에 종종 압도되고는 한다. 그 건물들에 비하면 이곳의 글들이 세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먼지나 다름없을 것이라 느끼곤 한다. 그 또한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먼지는, 진실로 창조된 먼지들이다.

유한한 대지를 두고 다툼을 벌이는 대신 새로운 공리를 늘리고자 노력한 이들이 만들어낸 사랑의 산물이다. 이 먼지는 그 누구도 밟고 올라서지 않는다. 다만 기둥으로 한 톨 한 톨씩 쌓아 올려질 뿐이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9) 이들에 의해 세워지는 자본의 기둥은 '문제 투성이인 내부를 가졌으며'10) 때때로 '무너져 근로자들을 죽게 만들고'11) '죄없는 사람들을 길거리로 내몰지만'12), 창조를 추구하는 정신들이 쌓아 올린 먼지의 기둥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세계를 향해서 세워진다. 인간을 위한 마음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능성이 모두 거기 모여있다. 이 먼지 기둥 위에서야 우리는 비로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상처받거나 패배를 견디지 않아도 되는 세계에 대한 꿈을. 그러니 사소한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늘 되묻고 싶다.

왜 의미가 없겠는가.

여기 먼지를 닮은 아름다운 글들이.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들이 충만한 세상에서는 아무도 행복한 삶을 위해 다투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세상을 상상해본다. 언제고 내가 살아서 그것을 볼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빛의 속도로 7000년, 그만큼의 거리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순간 그 세계를 위해 삶을 쓰고 있다. 역사 속의 거인들이 남긴 발자취만큼이 아니더라도 그를 위해 애쓰는 삶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고결한 의미가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거울에도 그런 세계를 위해 먼지를 빚는 손들이 있다. 거울이 지나온 20년의 작은 역사는 경제적 성공과 무관하게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 애써온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사회의 모습은 이와 정반대인 듯하다. "최하층에서부터 최상층에 이르는 모든 계층에서 경제적 두려움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밤에는 꿈까지 지배한다."버트런드 러셀<게으름에 대한 찬양> 187p 인용. 문학에 요구되는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를 꼽아본다면, 이런 세상으로부터 탈출구를 보여주는 일일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시인이자 수필가인 크리스앙 보뱅은 글쓰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환희의 인간> 서두 ‘상상하기’는 거울의 가장 강력한 힘이며, 그러므로 문 그리기의 결정적인 몫은 어쩌면 거울에 있을 지도 모른다. 단지 타인을 억압하지 않는 자족적인 삶을 넘어, 공동체를 위해 항해하는 7000광년의 여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거울은 지금껏 가 왔고, 또 갈 것이다.

창조되는 별들로 무리 이룬 먼지 기둥에 닿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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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스페이스X, "2022년부터 화성에 인류 이주 시작" / YTN (Yes! Top News). https://www.youtube.com/watch?v=Hsg_l9dx9WE

2)2026년→2029년"…일론 머스크, 화성 이주계획 '슬쩍' 연기. https://www.etnews.com/20220318000063

3)노벨상 수상자 “머스크에 고양이 밥 주는 일도 못 맡겨” https://m.kmib.co.kr/view.asp?arcid=0017816518

4)세기의 억만장자 대결, ‘머스크VS저커버그’ 진짜 격투기로 맞붙나 https://economist.co.kr/article/view/ecn202307020014

5)"미안해요 엄마, 2만원만"…전세사기 당한 20대 마지막 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5441#home

6)EBS 다큐프라임 - Docuprime_경제대기획 빚 1부- 부채사회 박xx 출연자. 이후 박씨는 불법 대부업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었다. (JTBC News 빚내서 집 사라던 '갭투자 큰손' 검찰 송치…대부업 위반 혐의 https://www.youtube.com/watch?v=c5WY7eT2S0c)

7)[탐사플러스] 공무원·건물주가 '꿈'…청소년들의 현주소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1183269

8)'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한국 유일하게 '물질적 풍요' 1위 꼽아
https://www.khan.co.kr/world/world-general/article/202111220600031

9)“평등하지 않은 세상 꿈꾸는 당신에게”···대놓고 내세운 아파트 광고
 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6041504001#c2b

10)기둥 곳곳에 누락된 철근...‘주차장 붕괴’ 검단아파트 총체적 부실 https://www.mk.co.kr/news/realestate/10776993

11)'6명 사망' 광주 화정아이파크 시공중 붕괴…돈이 초래한 인재 https://www.fnnews.com/news/202212210602574034

12)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액 2000억원…“2000가구 길거리로 쫒겨날판”
https://m.khan.co.kr/economy/real_estate/article/202211291509001#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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