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 : 赤魚 김주영
진행자 : 라키난
이 인터뷰는 <보름달 징크스> 출간 기념으로 거울에서 진행한 적어(김주영) 특집입니다. SF도서관에서 진행한 작가와의 만남 이전에 인터뷰를 했기에 그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단편집 <보름달 징크스>는 출판사 ‘기적의책’에서 내는 ‘작가와의 만남’ 시리즈의 첫 책으로, 김주영 님의 10년치 단편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거리 상의 문제로 인해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인터뷰에는 라키난 님이 수고해주셨습니다.
1. <보름달 징크스> 출간에 대해
라 보름달 징크스가 첫 정식 개인 단편집인데요. 느낌이 어떤가요?
적 첫 개인 단편집이다보니 거의 10년치 단편이 실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이어져온 연애를 되짚어 보는 기분 같네요.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설렘도 기억나고
라 수록작 뒤져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오랜만에 꺼내본 글도 있을 테고. 수록작 중 특별히 남다르게 느껴진 글이라든가, 애착이 가는 글이 있나요?
적 그랬죠. 예전에 이런 글을 썼던가 싶기도 하고, 그 당시에 나는 어땠나 기억도 나고요. 오래된 앨범을 처음부터 보는 기분 같더라고요. 애착이 가는 글은 아무래도 <걸어다니는 화석>과 <신의 정원>인 것 같아요.
<걸어다니는 화석> 같은 경우는 존재의 소멸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뜻함이 담겨서 애착이 가요. 매일 부대끼며 온기를 느끼던 사람도 끝내 사라지고 잊히는 것, 또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이 나의 운명임을 따뜻하게 수용하는 따이푸의 시선이 좋았거든요. <신의 정원>은 신의 피조물인 인간이 망쳐놓은 지구를 인간의 피조물인 로봇이 복원해서 지킨다는 역설이 마음에 들었어요. 인류에겐 대재앙인 결말이 나긴 합니다만, 당시 마음에 품었던 주제를 제대로 잘 표현해낸 것 같아서 애착이 갑니다.
라 어떤 주제였어요?
적 인간의 존재 자체가 지구에는 대재앙이기에, 인간이 소멸되면 지구가 구원될 것이라는 주제였어요.
라 그거 어디서 많이 보던, 그러니까 대충 세기말 때쯤... 음... 네. 익숙하네요. 지금은 어떻게 생각해요?
적 세기말. 그렇죠. (웃음) 인류는 자연에 정말 못할 짓을 너무 많이 해요. 지금도 자연만 두고 본다면 인간이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너무 냉혹한가요. 전 최근 본 <설국열차>에서도 인류가 살아남아서 안타까웠는데.
라 (웃음) 이분이! 네. 그럼. <보름달 징크스>는 단편집이잖아요. 단편과 장편은 쓸 때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차이가 있다면?
적 이전에 거울 합평회에서 김상현 작가님이 하셨던 말씀으로 기억합니다만, 단편은 너무 많은 것들을 담으면 산만해지는데, 장편은 도리어 많은 것을 담을수록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야기 길이의 차이가 있다 보니 호흡이랄까, 그런 것이 다르게도 느껴지고요. 아무래도 단편은 압축이 되어야 하니까 장편보다 상징 같은 것도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초기에 단편을 주로 많이 썼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서 장편을 쓰는 게 힘들더라고요. 반대로 장편을 또 한참 쓸 때는 이야기를 압축해서 단편을 쓰는 것에 또 애를 먹었고요.
라 수록작은 어떻게 선정한 건가요?
적 예전에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데카메론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그 때 제법 단편을 많이 썼거든요. 그 중에서 선택하고 나머지는 이후에 작업한 글들을 추가했어요. e-book 단편집인 <노래하는 늪>에 실렸던 글들도 몇 개 다시 추렸고요.
라 앗. e-book에 실렸던 건 어떤 건가요.
적 <마지막 티타임>, <신의 정원>, <붓끝 한 방울>, <다시 쓰는 선녀와 나무꾼>. 이 네 작품입니다.
라 데카메론 프로젝트에서 나온 글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요. 그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인 건가요? 아니면 그만큼 많아서?
적 둘 다죠. 아무래도 작가들과 같이 교류하면서 즐겁게 썼던 글이라서 애착도 많이 가고요, 다양한 소재로 많은 글을 쓰기도 했으니 양도 많지요.
라 네.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표제작은 어떻게 고른 거예요?
적 고민을 오래 했어요. 사실 <다른 방식의 진화>나 <걸어다니는 화석>도 후보로 생각했는데, 꼭 과학서적 제목 같더라고요. 그래서 좀 환상성이 있는 제목을 고르다 보니 <보름달 징크스>가 되었죠. 기억하기도 쉬울 것 같기도 했고요.
라 넵. 그리고 그걸로 이번에 거울에서 이벤트 하기로!
적 예이~!
라 출간하면서 뭐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적 계약한 후에 출간까지 거의 1년 반이 걸렸는데,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어요. 작업이 좀 천천히 진행이 된 편이어서. 게다가 <보름달 징크스> 이전에 계약하고 출간이 못 된 책이 2권이나 있어서, <보름달 징크스>도 그렇게 되면 어쩌나 마음을 졸였죠.
라 어. 그건 어떤 거였어요?
적 하나는 잡지 <판타스틱>에 폐간까지 연재됐던 <용선 파미르>고 또 하나는 모 출판사와 계약했던 라이트노벨이에요. 여전히 아쉽긴 한데, 인연이 안 닿았다 생각해요. 시간이 갈수록 글이 부끄러워져서. (웃음)
라 아. 맞다. <파미르>는 어떻게 됐어요?
적 음. <파미르>는 출간 보류 상태고요. 라노베 같은 경우는 완성한 원고를 두고 출판사랑 출간이 불발됐어요. 편집자랑 계속 조율하면서 썼던 글인데 그렇게 되고 보니 출판사가 야속하긴 하더군요. 결국 인연의 문제겠지만.
라 근데 라이트노벨로 출간됐던 <이카, 루즈>나 <여우와 둔갑설계도>를 보면, 요즘의 분위기랑은 좀 어긋나지 않나 싶기도 해요.
적 출간하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사실 출간 당시에는 라노베가 뭔지 잘 몰랐어요. 출간을 제안한 서울문화사 편집장님도 라키난 님처럼 <이카, 루즈>가 일반적인 라노베와는 좀 다르다는 말씀을 하긴 하셨는데 당시엔 무슨 뜻인지 몰랐죠. 다양한 라노베를 내어보고 싶어서 제안하시는 거라고 해서 덥석 그러겠다고 했어요. 덕분에 <여우와 둔갑설계도>까지 내게 되었으니까 좋은 기회를 잡았던 것 같아요.
라 그러네요. <이카, 루즈>가 먼저였죠?
적 네. 불행히도 완간하지 못하고 결국 거울에서 연재로 완결을 봤었죠.
라 완간은 어쩌다가.
적 별 이유가 있겠습니까. 다음 권을 낼 만큼 판매량이 안 나와서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웃음) 하지만 2권에서 끝나지 않고 3권까지 출간했으니 나름 선전했다고 여기고 있어요. <이카, 루즈>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다른 판형으로 완결까지 제대로 출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라 그렇군요. <여우와 둔갑설계도>는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에요.
2. 글쓰기에 대해
라 단편은 언제부터 썼어요?
적 단편은, 온라인에 처음 게재한 것이 1997년이었던 것 같군요. 하이텔 과학소설 동호회에요. 처음 글은 SF는 아니었고요. <백 마리째의 양>이라는 제목의 살인자 이야기였어요. 주인공이 권태로움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살인누명을 쓰고 사형 당하는 길을 택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라 장편은 언제였어요?
적 완결된 장편은 <나호 이야기>가 처음인데요. 이것이 연작형태임을 생각하면, 첫 장편은 <열 번째 세계>네요.
라 그럼 장편은 연재하는 대로 출간이 됐던 거네요.
적 운이 좋게도 그랬네요. 당시에 활동하던 작가가 적고 연재 작품도 그리 많지 않을 때여서 지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출간이 쉬웠던 덕분입니다. 시대를 잘 만난 탓입니다. (웃음)
라 글은 주로 어떤 때 쓰나요?
적 제가 전업작가가 아니다 보니 시간이 생기면 무조건 씁니다. 예전엔 12시부터 새벽 2시를 글 쓰는 시간으로 정해두기도 했는데, 나이를 먹으니 체력이 따라주지를 않네요.
라 글쓰기의 어떤 점이 좋은가요?
적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왜 그 사람을 사랑하니?” 이런 질문 같은데요. 마냥 좋습니다. 다 좋습니다.
라 글을 쓰면서 가장 보람찬 때는 언제인가요.
적 글에서 보람을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음. 글을 쓰는 게, 그냥 저한테는 오랜 연애를 이어가는 것 같아서.
라 오랜 연애의 안 좋은 점들은 없어요?
적 있겠죠?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는 소재나 주제가 식상해지는 느낌이 오기도 하고. 권태로워서 쳐다보기 싫을 때도 있고요. 계속 이렇게 글 써야 하나, 고민해 볼 때도 있고.
라 그만 둘까 한 적은 없고요?
적 그만 둘까 고민은 해 본적이 아직 없는데, 내 생활에서 비중을 좀 낮춰야 하지 않나 고민은 심각하게 해본 적이 있어요.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 다른 것들에도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런데 다 손에 잡을 수는 없고 뭔가 포기하긴 해야 하니까.
라 판타지와 SF 같은 장르에 걸친 글이 많은데요. 본인은 이런 걸 의식하나요? 음. 질문이 애매한데. 장르는 장르 문법이 있고 특징이 있잖아요. 그런 걸 참고하는지.
적 특별히 의식하는 것은 아닌데, 판타지와 SF는 많이 읽어왔으니까 자연스럽게 그 장르의 문법에 어울리게 흘러가는 경향은 있는 것 같아요. 이건 판타지니까, 이건 SF니까 이렇게 써야지, 하는 편은 아니에요.
라 네. 그런 것 같아요. 라이트노벨로 출간할 때는 어땠어요?
적 라노베가 정확히 뭔지도 모르고 출간하는 바람에, 출간한 뒤에야 이런 것이 라노베구나 하고 알아갔어요. 특히, 캐릭터 만드는 법을 많이 공부하게 되었어요. 라이트노벨에는 캐릭터 설정서라는 게 있어요. 성별, 나이, 키, 머리모양, 눈 색깔, 성격, 옷 스타일 등을 전부 기재하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디테일하게 인물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정말 공부가 많이 됐어요.
라 이후로 활용한 적은?
적 다음 장편 쓸 때 활용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설정에 연연해서 정작 본편 쓰는 것이 늦어지는 단점도 있네요.
라 그럼 다음 장편 홍보도 해주세요.
적 쓰려고 메모해 놓은 것은 여러 개 있는데 뭐가 먼저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언제 나오든, 다음에는 환상성을 최소화한 글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나네요. 지금까지는 우리 삶에 가까운 사람을 다루는 게 참 어려웠어요. 뭔가 삶에 가까우면 조심스러워져서. 근데 이번에 보름달 징크스를 쭉 훑어보니까 이제 그런 글을 써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경과 인물이 점점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더라고요.
라 <웃음소리> 생각이 나네요.
적 그러네요. 그런데 <웃음소리>도 읽어보면 너무 현실을 모르고 쓰지 않았나 여전히 반성이 들어요.
라 글을 쓰는 데 있어서 거울은 어떤 존재인가요.
적 든든한 울타리 같아요. 언제든 글을 발표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렇게 특집도 해주시고! 사랑합니다, 거울!
라 하는 김에 데카메론 프로젝트에도 한 마디하고 자세히 소개해 주시면?
적 즐거웠어요, 데카메론!
데카메론은 하이텔 판타지 동호회에서 200년부터 2003년까지 만 3년간 진행된 프로젝트입니다. 달마다 하나의 소재가 주어지고, 작가들이 그 소재로 단편을 창작해서 게시판에 올리는 식으로 진행되었어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서로가 작가이고 독자니까 다들 신나서 재미있게 참가했던 것 같아요.
글 쓰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일단 많이 쓰게 되었으니까요. 데카메론 프로젝트 시기에 써놓은 글이 많아서 같은 소재로 다시 써보기도 하고, 글 쓰는 감각이 무뎌지면 그 때는 어땠나 돌이켜 읽어보기도 했어요. 글은 많이 써볼수록 얻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3. 작가 자신에 대해.
라 닉네임이 왜 적어인가요?
적 제 하이텔 아이디가 REDfish였어요. 하이텔 과소동 분들이 언젠가부터 적어님, 적어님 하고 부르니까 적어가 됐고요. 제가 대학 다닐 때 영국문화원에 몇 년간 공부하러 다녔거든요. 가끔 영국인 강사들과 맥주 마시곤 했는데, 맥주 잘 마신다고 'fish'(술고래?)라고 놀림을 받곤 했어요. 아이디 정할 때 그 생각이 나서, 음, 그래 술고래는 얼굴이 빨간 색이니까 red를 붙여서 REDfish가 됐어요. 지금은 술 잘 안 마십니다!
라 작가와의 만남 할 때 마셔요.
적 푸하핫
라 네. 지금 직장인이시라고 들었는데요. 일하면서 같이 하기 힘들지 않나요?
적 아, 정말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느껴요. 나이가 드니까 어릴 때와는 달리 직장에서 요구하는 역할도 커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도 늘고요. 그런데 체력은 점점 딸리니. (한숨)
라 지금 글 말고 다른 하고 싶은 건 뭐예요?
적 지금은 글을 제일 쓰고 싶어요. 지난 몇 년간은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 지냈습니다만(…).
라 그래서 현재는 글을 계속 쓰는 쪽으로? 아니면 비중을 낮추는 쪽으로?
적 계속 써야죠. 갖고 싶은 일보다 행복한 일에 충실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몇 년을 생각했는데 역시 글쓰기만큼 저를 설레게, 행복하게, 충만하게 하는 일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라 오오. 독자에겐 좋은 일이네요.
적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해요.
라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그리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적 우선은 독자들이 읽고 싶어지는 글을 쓰고 싶고요.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독자들이 책을 덮어도 여운이 남는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작가로서는,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보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내 틀 안에 안주하지 않고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라 읽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적 책 선전을 부탁해도 될까요? 보름달 징크스를 널리 홍보해주시면 보름달이 뜰 때마다 소원이 하나씩 이루어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