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평회는 계속 되어야 한다 ; 14년 2월 23일 거울 합평회 기록
참여 : 가는달, 박애진, 세뇰, 정보라
기록 : 박애진, 세뇰
정리 : 박애진
삽화 : 박애진
2014년 2월 23일 일요일, 오랜만에 합평회가 열렸다. 참여 작가는 가는달, 박애진, 세뇰, 정도경 네 명으로, 모두 합평작을 가지고 나왔다.
합평회 담당자인 앤윈의 개인 사정상 이번 합평회만 박애진이 진행을 맡았다. 세뇰은 합평회 기록을 함께 해주었다.
세뇰의 [고요한 전쟁]은 미발표작이나 박애진의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 이전 버전은 {누군가를 만났어}에 수정 버전은 {원초적 본능feat. 미소년}에서 읽을 수 있다. 정도경의 [파도]는 거울 122호에 게재되어 있고, 가는달의 [거울바라기]는 거울 119호와 {여행가-2013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에 수록되어 있어 합평작의 내용은 달리 정리하지 않는다.
합평회 장소는 늘 그렇듯 홍대에 있는 SF판타지 도서관이었다. 회의실이 따로 있고, 콘센트 구멍도 많아 모이기에 좋다. 해서 거울 합평회도 여러 번 했고, 첫 장편 “지우전 ; 모두 칼이라 했다”와 두 번째 장편 “부엉이 소녀 욜란드” 독자 만남까지 한 곳인데, 도서관 건물 바로 앞에서 갑자기 여기가 맞나 혼란이 왔다. 코앞에서 헤매느라 합평작이 총 네 편이라 늦으면 안 된다는 엄포 공지를 올려놓고 늦었다. 이런 안 좋은 선례를 만들면 안 되는데;; 역시 몇 번 온 적 있던 정도경은 버스를 거꾸로 탔다고;; 이런 날이 있다;;;
도서관에서 주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30~40분 정도 근황, 최근 사회에서 일어나는 어이없고, 가슴 아픈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합평회에 들어갔다.
거울 합평회는 딱히 시간이나 순서를 정하지 않고, 합평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때 작가는 발언권이 없다. 이야기를 할 만큼 한 후 작가의 변 시간을 갖고, 그 때 다시 질문이나 토론이 오간다. 이번 합평작 순서는 볼펜을 돌려 정했다.
첫 번째는 가는달의 [거울바라기]였다. [거울 바라기]는 거울 10주년 기념호인 119호에 올라온 단편이자, {여행가 - 2013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수록작이기도 하다.}
[여행가 - 2013 환상문학웹진 거울 중단편선] 거울 3기 편집장인 pena의 첫 거울 대표 중단편선 기획작으로
다방면 능력자 양원영님이 부기획자 및 표지 디자이너로 참여했다.
오래도록 묵묵히 글을 써 온 11작가들의 빛나는 11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가는달은 글을 능청스럽게 풀어가는 재주가 있는 필진으로, 거울 초기부터 참여했다. 사이에 공백이 있다가 2012년부터 다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거울바라기는 순간순간 장면 연출들이 멋지고 실감났다. 청룡보살이라는 이름도, 갑작스레 살벌하게 바뀌는 장면전환도, 악을 품고 죽이려 드는 장면도 실감나며 좋았는데 전체 그림이 안 잡혔다. 억지로 끼워 맞춘 퍼즐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결말에서 10년을 기다려온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설명해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에 대한 실존적인 설명이 아쉬웠고, 살기등등하게 덤비던 경호가 문제의 그것이 사라진 후 너무 갑작스레 태도를 바꾸는 것 같았다. 이런 점으로 인해 인물이 일관성이 없어보였다.
합평회 참가자 중 경호는 호랑이, 구복은 거북, 미라는 주작, 용녀는 청룡, 사방신에 대응해 만든 인물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이후 작가의 변이 이어졌다.
“[거울바라기]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모르겠다는 평을 들었다. 꺄삐한 인도영화풍의 액션물을 쓰려 했고, 쓰는 입장에서는 쉽게 썼는데, 읽는 사람은 어렵고 힘들게 받아들여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혔는지 듣고 싶어 가져왔다.”
이 말에 대해 독자들이 쉽게 읽으려면 작가가 힘들게 써야 가능하다는 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거울바라기]는 거울 10주년 기념호인 119호에 맞춰 썼다. 그래서 제목도 [거울바라기]이며, 10년 동안 거울을 봐야 했고, 거울을 보기 시작한 시간도 1시 19분이었다. 미라는 mirror로, 작은 거울을 큰 거울(63빌딩)로, 나아가 드넓은 하늘로 옮기는 역을 맡는다. 다른 인물들처럼 미라를 미주(주작)라고 할까 하다가 미라라고 했다.
거울 100호 기념호에서 거울에서 백호(白虎)가 튀어나오는 이야기를 쓰려다가 못 써서 사방신을 다 넣었다.”
가는달의 말을 듣자 거울 중단편선에 이 이야기가 편집자 주로 들어갔으면 좋았겠다거나 글은 못 썼더라도, 거울 100호 기념 로고에서 백호/흰호랑이가 튀어나오는 그림이 있어도 재밌었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가는달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기서 구복이 제일 나쁜 놈이다. 경호가 빡친 것도 구복 때문이다. 10년 간 꼼짝도 않고 거울을 봤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걸 더 해보라고 한 것에 분노했다. 결말에서 경호는 자기가 10년을 해온 일이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제일 불쌍하고 나쁜 일을 당한 건 용녀 아줌마가 아닌가 싶다.”
작가의 변을 듣고 본문에서 미라의 시점으로 흐르는 걸로 보이는데 미라가 아닌 경호가 납득하며 끝나는 결말은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미라 입장에서는 해결된 게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거대한 63빌딩에 그 무엇이 비친 모습을 서술했다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고,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으로 이야기구조의 정합성을 보여주지 않아도, 좀 더 독자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걸 보았다는 걸로 충분해지는 설득력을 주지 않았을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게 뭔지 좀 더 풀어써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이야기가 오갔다.
“어디를 고치면 좋을지 감을 얻었다. 63빌딩에서 경호는 10년의 세월을 들인 노력이 의미가 있었음을 확인하기 때문에 좋지만 확인의 과정까지 직접 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쁘고, 미라는 거울 간을 이어주는 매개자로 관여하게 되지만 10년간 직접 노력을 들이지 않았기에 당사자처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없다.
대충 (경호가) 작가라고 치면 10년 동안 쓴 글을 보겠다고 친구가 가져갔는데 어쩌다 오해가 생겨서 그 글이 가져간 녀석이 쓴 것처럼 알려져, 저 자식을 죽여버리겠어! 라며 드잡이질을 하는데, 친구가 출판사 여러 곳에서 계약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고, 영화랑 드라마도 만들고 싶다 하고 외국에서도 관심을 보이는데? 라고 상황을 정리하는 그런.. 그런... 그런 느낌일 것 같다.
역시 더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는달의 말을 마지막으로 두 번째 합평작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로 넘어갔다.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가 실린 작품집 {원초적 욕망 feat.미소년}
만화가 일월님이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를 만화화해 온우주 소식지에 수록되어 있다.
박애진의 글은 이성적인 부분이 아니라 감성/본능적인 부분을 건드리며 후려치는 게 있다.
초고와 {누군가를 만났어} 수록 버전은 국적불명의 이름을 썼는데, 평범한 한국식 이름으로 하자 현실감이 들며 환상성도 더 산다.
여자아이들은 인형에 자기 자신, 자기와 타인의 관계를 투사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자아이들은 다르기에, 남자아이나 부모에 대해서도 그렸다면 세계가 더 확장되었으리라는 이야기와 이 세계는 여자들의 세계로 남자들이 배제된 게 더 어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네므의 세계는 폭력적이다. 모두 자기가 아주 어릴 때 깊은 관계를 맺은 인형을 파괴/죽이는 폭력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보기에는 주인공과 윤아의 관계가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남자 독자들도 이해시키려면 두 사람의 관계에 더해 더 깊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금을 만들려고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생명을 창조하려던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생각나기도 했다.
인형이 무엇을 상징하느냐, 는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진짜 여자애였을 때의 정서가 묻어나는 글은 정말 오랜만이다. 왜 인형을 죽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정도경은 일장석 이미지를 찾아보기도 했다고.
작가의 변 시간이 되었다.
“왜 네므를 죽여야 했는지 이해가지 않았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 거울에서 출간했던 {신체의 조합-가연 단편선}에 수록한 [나의 사랑스러웠던 인형 네므]는, 지금 버전과 다른 초기 모습이긴 한데, 당시 절영님이 거울에 게재한 서평에 ‘인형을 가짐으로 생기는 이해자, 인간 친구를 바랐기에, 결과적으로 그것이 좌절 되었을 때 인형을 가지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앞에 나온 말처럼 인형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굳이 의식하지 않으며 썼던 것처럼 왜 네므를 죽여야만 했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사람과 관계를 끊고 인형과 행복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 싶어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의견과 인형을 부수며 자기가 기댈 곳을 없앤, 일종의 배수진이라는 해석, [나의... 네므]의 화자는 자기를 세상에게 확인 받고 싶고, 외부와 소통하려는 욕구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행복하다는 걸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고, 그래서 도입부에 인형에 대한 글을 써서 발표하는 모습 등을 보인다. 그러다 나를 빼고 소통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려 인형을 죽였다는 이야기 등이 나왔다.
“약 10년 후 쓴 단편인 [나만의 연인]은 다른 결말을 취한다. 처음엔 이건 그냥 허구였어, 라며 처박아버렸다가 다시 함께 한다.생각의 흐름이 나선형으로 오다보니 같은 듯 다른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굳이 네므를 가져온 건, 작품집에 수록하며 가장 많이 고친 글 중 하나이면서 만화화하기도 해 이 작품집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화에서는 네므 머리가 길다. 그런데 글을 읽을 때는 네므 머리가 짧고, 화자의 머리가 길 줄 알았다. 네므가 머리가 길다보니 중성/무성이 아니라 여자처럼 보인다. 화자가 여성스러운 외모, 네므가 좀 더 소년 같을 줄 알았다.
“글에 딱히 인물들의 외모 묘사가 없다. 쓸 때 인물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각기 다른 모습을 상상했을 것 같다. 만화화 이전에 딱히 인물들의 머리 모양에 대해 생각한 적은 없지만, 만화가인 일월 작가님이 그려 준 네므의 머리가 길고 화자가 짧은 게 마음에 들었다. 만화에서 여자 주인공 머리가 짧은 경우도 드물고, 여성스러운 외모인 윤아와 대조되는 느낌도 좋았다.
이 무렵 쓴 글들을 성장소설로 읽히기도 하는데, 나는 성장소설 같지 않다.”
성장소설로 보기 어려울 수 있다. 성장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인물의 정서나 행동이 자기 파괴적이다.
“그런 것 같다. 사춘기 감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이 시절을 돌아보며, 남 이야기처럼 하자면, 이 때 나는 세상은 폭력적이고 사는 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합평회에 굳이 이 글을 가져온 건, 다들 짐작했다시피 글에 대한 평을 받고 싶다는 내적인 동기보다, 이 글을 통해 {원초적 본능feat.미소년}에 대해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원초적 본능 feat.미소년}은 특히 오래된 글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데, 때문에 이 책이 작가에게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본디 작품집이라는 게 긴 시간 써 발표해 온 글을 모은 걸 말하는 데도, 신작이 아니라는 게 문제가 되는 것처럼. 장르 문학에서 단편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네므만이 아니라 이번에 작품집으로 모으며, 글들을 보수했다. ‘완전한 결합’도 인물 이름을 우리나라 이름으로 바꿨고, 이름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라 이름에 어울리게 이야기도 손봤으며, 내가 바뀐 만큼 새롭게 보게 된 눈으로 글을 다듬고, 미흡한 부분을 보강했다.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쓴 글이라 말하진 않더라도, 그러니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 바라’는 ‘오만한 선언’까지는 아닐 지라도,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모은 작품집으로, 의도에 맞게 순서대로 글을 읽어야 한다.
좌뇌는 던져두고 우뇌로 글을 써 온 인간인지라, 나조차 교정본을 받아 순서대로 글을 읽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내 경향성이 있었고, 그로 인해 또 다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출판사에서 홍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세상에 나온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건 해야 했다.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거울은 언제나 고마운 곳이다.”
세 번째 작품인 세뇰의 [고요한 전쟁]으로 넘어갔다. 현재 미공개작이다.
도입부는 인상적이고 재밌었다. 뒤를 이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배경과 상황 설명만 나온다. 말 그대로 배경은 배경으로, 그걸 토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하는데 이야기가 없다.
집중해서 읽기가 어렵고,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멋있을 것 같은 설정 속에서 멋있는 일이 일어나거나 인물이 멋있는 상황에 빠지면 좋겠는데, 멋있는 배경만 있고 액션이 없다. 배경 자체가 주인공 같다.
현실을 토대로 만든 세계라 현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읽어낼 수도 있는데, 독자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이 있는지 의문이다. 바탕이 된 현실에 대해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볼 때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고, 소설만으로 읽기엔 현실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바탕이 된 현실을 넘어, 글 자체만으로 설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차라리 배경이 되는 나라나 인물 이름을 다 가상으로, 모호하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뻔한 설정을 계속 읽고 있기 부담스럽고, 설정에 오류가 있다.
집중해서 읽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서술에 강약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강약중간약 식으로 조절을 하며 절정을 향해 가야 하는데 강만 나온다.
SF로 읽힐 수 있는데 장르가 주는 즐거움이 오지 않는다. 경이감이 없다. 인물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데 위험도, 스릴도 느껴지지 않는다.
문장의 밀도가 높다. 글쓰기 훈련을 많이 했고, 심혈을 기울여 썼다는 걸 알게 해준다. 배경을 그리기 위해 많이 연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지식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것 같다. 배경 지식을 작가가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말 그대로 ‘배경’으로 작용하고 이야기가 더 확고해야 했다. 배경만이 아니라 이야기에도 이 밀도를 보여줬다면 하는 점이 아쉽다.
작가의 변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가 부재 한다는 건 동의한다.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게 써야 할 외부적인 이유가 있었다. 공모전에 내려는데 기한이 촉박했고, 이 글을 쓰고 해야 할 일이 있어 억지로라도 끝내야 했다. 이야기를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이야기의 중심소재가 된 아이디어를 선점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없어서 글을 끝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작가가 해서는 안 되는 변명 같다. 인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은 건 다른 말로 이 인물들에 대해 작가가 제대로 장악하거나 이해하지 못했다는 뜻을 수도 있다. 작가가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모른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된다.
“이반은 이상은 있지만 현실에 눌리는 인물이고, 존은 의구심이 들어도 자기 합리화를 하고 진실을 외면하는 인물이다. 여자는 존이라는 캐릭터가 자기 합리화도 하고 욕망도 챙길 수 있는 편리한 대상이다.”
여자 인물이 너무 상투적이다. 보편성을 가진 인물과 상투적인 인물은 종이 한 장 차이인 듯 하지만 완전히 다르다. 존에게 입맞 맞는 말만 해주는, 완전히 텅 빈 인물이었다면 어땠을까. 더 강하게 색을 입혔어야 한다. 글이 007 패러디나 술 이름 등 장식에 치우친 점도 아쉽다.
“수정안이 있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
세뇰의 수정안은 매력적이었다. 수정한 원고로 볼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 합평작은 정도경의 [파도]로, 거울 122호에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본 푸른 게 무엇인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생활감과 푸른 것의 대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정도경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생활력이 넘친다. 어떻게든 살아남는다. 마지막에도 어쨌든 비싼 안드로이드값을 물어낼 위기를 벗어난다. 살아간다는 선언이 처절했고, 지금 현실에서 (생존은) 굉장히 밀접하게 느끼는 문제이다.
앞뒤에 선보는 이야기가 꼭 필요했을까 싶다. 잠수함에서 벌어지는 일은 알 수 없는 미래나 혹은 작가가 만든 설정 속 이야기인데, 선보는 장면은 2014년 대한민국 서울 같다. 여자가 관계와 삶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것인가, 삶에 종속되는 것인가, 로도 한 작품을 쓸 수 있는데, 서술만 되고 지나친다. 출산이 삶의 질을 명확하게 갈라놓는다면, 생존이 걸려있다면 결혼과 출산에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너무 관심이 없어 보인다.
푸른 것의 이미지가 너무 아름다웠다. 인간은 끊임없이 지구를 훼손하고 있지만, 대자연은 어떻게든 복구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아직 알지 못하는 존재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정도경의 작가의 변 시간이 되었다.
“이 여자는 고아이고, 그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서술이 작품 안에 있었다.”
이 이야기는 앞에 여자가 결혼과 출산에 무관심한 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에 대한 반론이었다. 정도경은 이야기를 이었다.
“(작가 말고 다른) 직업도 안정적이지 않다. 나이도 어리지 않아 분명 앞날이 불안하긴 하다. 그렇다고 결혼에 목을 매지 않는데,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 멋대로 내가 결혼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서 급하게 덤벼들 것이라고 상정하고,결혼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나는 이미 아는 사실을) 나한테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해서 한참 훈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적이 있다.
작가는 분명 다른 직업과 다르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불확실하지만 이게 나고, 나는 이게 좋다.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이런 생각과 상황들이 섞이며 이 이야기가 나왔다.”
작가의 말을 듣자, 물 아래와 물 위가 확 다른 세계처럼 위화감이 들었던 게 작가의 의도였던 게 아닌가 싶다. 물 아래는, 남들이 보기엔 위험하고 위태롭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이지만, 이 인물에게는 자기 자신이며, 자기 삶인 것이다. 물밖은 보통 사람들에겐 편안한 공간이지만, 인물은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낯선 곳이다.
푸른 것 역시, 인간이 망친 자연 속에서도 자기 생명력을 이어가는 자연이라는 해석보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 때로 애먼 일에 휘말려 목숨이 위태로울 지라도, 그 일을 천형으로, 자기 삶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 삶을 계속하게 하는 빛나는 한 순간으로 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과 글을 쓰지 않는 사람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있다. 작가로 글을 쓰는 건 내 개인적인 일인데 요새 무슨 글을 쓰느냐 라든가, 검색해보니 나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옷 색깔 뭔지 물어보는 것처럼 불쾌하다. 때로 어처구니없이 무례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거기서 착상을 얻기도 하니 계속 선을 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합평회는 여기서 정리하고, 가는달의 인도로 홍대에 있는 끝내주게 맛있는 차돌박이 된장찌개를 먹으러 갔다. 최근 춤과 연애 중인 가는달은 춤 이야기를, 꾸준히 검도를 하는 정도경은 검도 이야기를, 차돌박이에게 잠시 영혼을 내준 박애진은 밥을 흡입하고, 세뇰은 이야기와 차돌박이와 소고기뚝배기까지 멀티플레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