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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가난한 죽음

2016.12.16 01:0712.16

[가난한 죽음]


당신이 이 글을 볼 때 저는 이미 죽었을 거예요. 이야기의 끝에서 자살하거든요. 제가 국문과를 다닐 적에 늙은 교수가 말했어요. 제 머리 속에 남은 건 그것 뿐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언제부터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우리는 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까? 미셸푸코는 태어날 때 자살을 생각했데요. 그의 뇌는 유전적 변이나 일종의 뇌종양 같은 걸로 억눌려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어떻게 태어나자마자 자살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그의 부모님이 문제가 있던지 하겠지요. 가정교육 측면에서 말이에요. 짧은 제 인생을 돌이켜보면 저는 20살부터 자살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또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활개를 치고 있는지 느끼곤 말이에요. 세상은 저 같은 사람도 평범한 사람으로 보거든요. 아무튼 자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저는 지극히 평범한 소설가에요. 가난한 편에 속하죠. 그래요... 어제 밤 여자 친구와 헤어졌어요. 가난해서요. 게다가 소설가거든요. 끔찍하네요제가 얼마나 로맨틱한 감성을 가진 남자친구였는지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그녀가 저를 찼어요. 이제 여러분도 제 이야기 궁금하신가요? 새벽 두시 포장마차였어요. 한강 둔치 가로등 아래 분위기 좋은 포장마차 아시죠. 오뎅 국물 연기가 그렇게 운치 있을 순 없겠죠. 아무튼 그녀와 저는 말없이 소주를 마셨어요. 그녀의 25번째 생일이었죠. 원고비만 제때 나왔다면, 저는 그녀를 전망 좋은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갈 거였어요. 외제차도 빌리고, 미리 주문한 꽃다발도 뒷좌석에 놓았겠죠. 그녀는 꽃다발을 보고 웃었을 테고, 그녀는 저를 차지 않았을 거예요. 말없이 국물을 먹는 그녀를 보며 저는 취했어요. 소주를 한잔 두잔 목구멍에 흘렸어요. 그녀가 제게 말하더군요. 그녀는 맨 정신 이였어요. 지쳤대요. 사실 저도 지쳤거든요. 취기가 확 올라와보니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더군요. 다시 생각해보니까 저였어요. 숙취 때문이에요. 저는 소주병을 한 손에 들고 멀리 사라지는 여자 친구를 보며 소리 질렀어요. 손에서 미끄러져서 소주병이 원을 그리며 날아갔죠. 한강 물에 풍덩 작은 소리를 냈다가 이내 잠겨버렸어요. 저는 집으로 돌아왔죠. 제가 쓴 소설들을 몽땅 지웠어요. jazz를 틀고 오징어에 맥주를 조금 더 먹다가 컴퓨터 앞으로 갔어요. 귓가에 잠시 타자치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클릭, 업로드. 저는 잠들어버렸어요.

 

다음날 저녁.

쾅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어요. 1970년대도 아닌데 말이죠. 초인종을 보지 못하고 문을 두드리다니 다혈질이 분명해요. , 제 여자 친구는 다혈질이 아니에요. 문을 열자, 카페인 중독에 다크 서클이 길게 내려온 얼굴 긴 남자가 서있어요. 겨드랑이에 신문을 끼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네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짐작컨대 망하기 직전의 신문사가 밖으로 내쫓은 불쌍한 사람이겠죠. 불쌍한 사람은 카메라를 제 얼굴 가까이 들이댔어요. 플래시가 터지고, 저는 눈이 부셔서 문을 닫아버렸죠. 이보다 최악일 수 있을 까요. 번쩍이는 섬광이 제 뇌에 화학적 작용 같은 강렬한 충격을 가했나 봐요. 어제 여자 친구에게 던진 반짝이던 초록색 소주병이 떠올랐어요. 지금도 한강에서 가라앉고 있겠죠. 인터넷 뉴스에선 짧은 소설이 대박 났대요. 더 이상 남 잘되는 일에 관심주기 싫어요. 어제 그 포장마차에 가봐야겠어요. 제가 놓쳤거나, 잃어버린 기억 같은 게 생각날지도 모르죠. 어제와는 달리 한강이 정말 초라하고 볼품없네요. 뚝섬의 새도 외톨이처럼 홀로 날아요. 저는 다리 위에 섰어요. 한강 대교에요. 단지 세상이 얼마나 볼품없는지 보려고요. 멀리서 보니 고층타워들이 작게 보이네요. 그 안에 더 작은 와이셔츠를 입은 사람들. 그보다 더 작은 서류들. 더 자세히 보니 소설이네요. 젠장. 소설가 아니라고 죽기 직전까지 출판사 직원을 보다니. 참 한심한 놈이죠. 이제 뛰어내려야 할 것 같아요.

 

하나,

 

,

 

...

 

, 누가 절 부르네요. 여자 친구는 아니에요. 여러분 기대 말아요. 그 남자에요. 현관 앞에 신문을 옆구리에 꽂고 서있던 그 남자요. 죽기 전에 제게 스토커가 나타나다니요. 홀로 죽지 않아 외롭진 않겠네요. 시련 당한 남자에겐 더없는 행운이죠. 핸드폰이 울려요. 그녀의 번호에요. 부재중 전화도 27통이나 와있네요. 그녀가 다시 사귀자고 할 일은 없겠죠. 스토커가 고급 카메라를 들고 저를 찍어요. 아주 열성적인 또라이네요.

 

찰칵, 하나,

 

찰칵, ,

 

찰칵, ...

 

저는 뛰어내렸어요. 처음엔 짧은 한숨 같이 바람이 제 몸을 감싸더니, 이윽고 차가운 물이 휩쓸었어요. 기적은 없었어요. 저는 이윽고 큰 물살에 휩쓸렸고 사라졌어요.

다음날,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이 제 죽음을 알고 슬퍼했어요. 난생처음 뉴스에도 출연했죠. 꽤 예술적인 방식으로 말이에요. 인생은 참 아이러니해요. 기분은 좋은걸요. 죽어보니까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알겠어요. 살아있을 때보단. 정의할 순 없지만, 비유정도는 할 수 있어요. 죽음은 인생 같은 거예요. 언제, 어떻게, 왜 죽을 진 아무도 몰라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거예요. 행복하든 비참하든 죽음은 그저 죽음이거든요. 누구에게나 인생이 그저 인생인 것처럼 말이에요. , 그 스토커는 부자가 됐어요. 다음날 사진 한 장이 신문 일면에 실렸거든요.

 

                                                                            “전도 유명한 단편소설가의 가난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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