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나는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특별하고 싶었다. 특별해야만 했다. 수많은 사람 중 그저 하나로 산다는 건 의미 없었다. 유일한 한 사람. 그게 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다면 당장 죽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평범한 사람, 그저 하나일 뿐이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되겠지 싶었다. 부단히 노력하면 되겠지 싶었다. 처음엔 공부를 했다. 그런데 나는 공부엔 영 소질이 없었다. 정확히 말해 의지가 없었다. 마음먹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안 한 이유? 재미없었다. 지루하고, 졸립고.

그래서 예술 분야로 방향을 틀었다.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림이야말로 소질이 없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소질의 문제. 그래서 관두었다. 그 다음으로 하게 된 게 사진이었다. 사진은 할 만한 것 같았다. 일단 손재주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셔터만 누르면 되었으니까. 물론 감각이 필요했다. 남들과는 다른 감각. 그래서 남들이 찍지 않는 것을 찍었다. 남들과는 달라야 하니까, 그런 걸 찍다 보면 나름의 감각이 생기겠지 했다. 적어도 남들과는 다르겠지.

그래서 쓰레기를 찍었고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내 친구의 얼굴을 프레임 한가득 채워서 찍었다. 우리 집 강아지의 하트 모양 엉덩이를 찍었고 먹던 파스타를 맛없어 보이게 찍었다.

모두 볼품없는 사진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사진 찍기마저 관두지 않았다. 나는 벌써 스무 살이었고―맙소사! 위인들은 스무 살에 뭐든 이루어 놓는데!―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데 다소 질린 상태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자니 용납이 되지 않았고. 그래서 계속 사진을 찍었다.

나도 알았다. 내가 가망 없다는 사실을.

자살을 하는 건 어떨까 생각도 해 보았다. 애초에 마음먹은 대로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할 바엔 콱 죽어 버리는 거다. 그런데 죽기엔 뭔가 아까웠다. 아니, 무서웠다. 『자살백과사전』이란 책을 사 읽었는데, 너무 끔찍했다. 많이 아플 게 분명했다.

이런 내 속사정을 나는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친구에게만 말할 수 있었다. 해마는 내 얘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은 잘 들어 주었다.

“그냥 평범하게 사는 게 뭐 어때서?”

여드름 가득한 얼굴을 찌푸리며 해마가 묻곤 했다.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걸.”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해마의 얼굴을 한가득 프레임에 담고, 일부로 노출을 두세 스탑 낮춰 셔터를 눌렀다.

“난 좀 평범했으면 좋겠다. 이 얼굴로 살면서 남자랑 데이트 한번 해 볼 수 있을까.”

“평범한 남자애랑 평범한 연애를 하는 게 뭐가 좋아? 그건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어.”

나는 작년 어느 평범한 남자애와 평범하고 지루한 연애를 했다. 내 인생 유일한 연애 경험인데, 그 이후로 연애는 질색이 되었다. 영화관 가서 두 시간 동안 별 시답잖은 영화를 보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은 밥집에서 밥 먹고 사진 찍고 역시나 좋아요를 많이 받은 카페에서 맛도 모르는 커피를 맛있다 하며 마셔야 하고. 딱 한 달 만나고 헤어졌다. 내가 눈이 삐었지 내 머리가 어떻게 됐었지 생각하면서.

내 연애에 관해서는 언니가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언니는 정말로 호기심에 가득 차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고 싶어 했다. 손잡아 봤어? 손잡으면 어떤 느낌 들어? 사랑한다는 말도 들어 봤어? 기분이 어땠어? 남친 얼굴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아아. 그러지 말고 더 얘기해 줘.

나는 언니의 그런 관심이 정말로, 아주 정말로 대단히 불쾌했다. 나를 깔보는 건가. 그 따위 연애를 한다고. 그런 평범하고 허접한 연애 따위나 하면서 시간이나 허비한다고. 이미 위대한 자신과는 다르게.

언니가 볼 때 난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겠지.

나는 언니가 싫었다. 곧 죽을 언니가 가끔은 불쌍하기도 했지만, 언니에 대한 나의 감정은 대체적으로 증오와 혐오, 아아, 그래 솔직히 말해 질투와 분노였다. 언니는 내가 걸렸어야 할 지능 비대증에 걸렸으니까.

 

 

 

스물다섯 살이 된 언니는 은퇴했다. 수많은 만류가 있었다. 정부 고위 간부쯤 된다는 사람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설득해 달라고 아빠 엄마 그리고 나까지 설득을 했다. 아빠와 엄마는 언니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계약 기간은 다 채웠고, 이제 쉬고 싶다고.

언니는 우주선을 만들었다. 언니가 좋아하는 분야는 생물학이었으나 그걸 할 수는 없었다. 정부는 우주 사업을 원했다. 우주선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언니는 우주니 우주선이니 딱 질색이라고 했다. 흥미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해 놓고 뚝딱 우주선을 만들었다. 우주선 제작까지 삼 년 정도 더 걸린다니 어쩌면 언니가 살아 있을 적에 우주선이 우주로 나갈지 모르겠다. 우주선은 관례에 따라 언니의 이름을 따서 ‘애리 호’가 될 것이다. 언니는 그렇게 우주선이 될 것이다. 지구에서 가장 뛰어난 우주선이 되는 것이다.

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언니를 싫어하긴 하지만 내가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언니를 사랑한다. 그래서 슬프다.

우리 집은 매일 파티를 벌였다. 언니는 별 감동 없어 보이지만 아빠와 엄마가 온갖 서프라이즈 파티를 벌였다. 이런 파티는 결국 끝에 가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물론 나도 몇 번 울고 말았다. 그래도, 언니니까.

우리 집은 곧 이런 소모적이고 감정적인 파티를 그만두게 되었다. 언니가 싫다고 했다. 그냥 조용히 지내자고 했다.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평범하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걸 원한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애써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려고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가 되었다. 언니는 만족했다.

그렇지만 엄마와 아빠가 발칵 눈물을 터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가 벌써 삼분의 이쯤 쪼그라들었으니까.

그래서 언니는 내 방에 주로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울지 않았으니까. 갑자기 이마에다가 볼에다가 뽀뽀 세례를 하지 않았으니까. 언니는 내 사진을 보는 걸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앨범집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넘겨주었다. 언니는 진작 두 팔이 쪼그라들어 손을 쓰기 어려웠다.

“재밌다, 네 사진.”

언니가 담백한 말투로 말했다.

“재밌기만 하지. 이상해. 그치? 그 어떤 프로 작가도 먹다만 컵라면 같은 걸 찍지는 않잖아.”

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난 네 사진이 좋아.”

“언니는 이상한 사람이니까, 이상한 걸 좋아하나 봐.”

그렇게 말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특별한 사람은 못 되었지만 특별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거였으니까. 어느 정도, 특별하단 거니까. 물론 딱 어느 정도에만 그치겠지만. 뭔가 심술이 났지만 그런대로 내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언니의 눈빛이 좋았다.

가끔은 언니에게 말하고 싶었다. 나도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솔직히 아직도 그러고 싶어. 내가 아무리 심술궂고 천성이 좀스러운 인간이라지만 언니에게 그런 상처를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언니는 내 언니였고 나는 언니를 미워하지만 또 그만큼 사랑했다.

 

 

 

언니가 지능 비대증 환자라는 사실이 밝혀진 날을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삼 학년 때였고 언니가 중학교 이 학년일 때였다. 어릴 때부터 있던 언니의 두통이 그때쯤 꽤 심해져서 엄마가 종합병원에 데리고 갔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날 언니는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울었다. 엄마도 거실 소파에 앉아 코를 휑 풀면서 울어 댔다. 퇴근하고 들어온 아빠도 울었다. 지능 비대증이 뭔지 몰랐던 나만 안 울었다. 엄마도 아빠도 그게 뭔지 알려주지 않아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언니 방문을 두드렸다.

“지능 비대증이 뭐야?”

내가 묻자 언니의 울음소리가 조금 잦아졌다.

“아 뭐야. 왜 나한테만 비밀이야.”

몇 번 내가 투정을 부리자 언니가 입을 열었다.

“뇌 기능이 좋아지는 병이야.”

“뇌가 좋아지면 좋은 거 아냐?”

“뇌 기능이 좋아질수록 몸이 망가지거든. 뇌가 몸을 잡아먹게 된대.”

“잡아먹어? 어떻게?”

“몸이 쪼그라들어. 머리 쪽으로 쪼그라들어 가. 뇌 쪽으로 모든 에너지가 쏠려서 그렇게 되는 거래.”

“그럼 몸이 작아지겠네?”

“그리고 죽지.”

“죽어?”

“응. 죽어.”

다음날 정부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와 매우 공손한 태도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정부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은 인류를 위한 일입니다, 따님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겁니다, 원하는 만큼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따위의 말을 해서 엄마 아빠를 슬프게 했다. 안 하면 안 돼요? 언니의 말에 정부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애리야 너에게 주어진 능력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 돼, 넌 이 세상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거야,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고 저는 죽잖아요.”

언니의 말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언니는 아무도 꺼내지 않은 말을 꺼냈다.

“알아요. 그거 안 해도 저는 죽는 거죠?”

계속된 침묵. 이윽고 정부 관계자 중 가장 우두머리로 보이는 원형탈모 아저씨가 고개를 지그시 끄덕였다.

다음날 언니는 짐을 싸서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떠났다.

 

 

 

언니 덕분에 우리 집은 늘 풍족하게 살았다. 틈만 나면 정부 관계자 아저씨들이 우르르 몰려와 이것저것 놓고 갔다. 온갖 과일과 고기들이며, 대통령의 친필편지와 돈 봉투들. 내가 카메라를 만지기 시작한 이후로는 늘 새로 출시된 카메라가 딸려 왔다. 티브이나 냉장고가 새로 나온다 하면 늘 우리 집에 배송이 되었다. 아빠와 엄마는 한사코 이런 거 가져오지 말라고 필요 없다고 했으나 속수무책이었다. 별것 아닙니다요!

과일과 고기와 냉장고 때문일 것이다. 몸에 좋고 맛도 좋다는 음식들과 최신형 오디오플레이어에 둘러싸여 나 따위는 바라볼 세가 없었던 것이다. 아빠와 엄마는 나한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내가 모르고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무관심 속에서 나는 애정결핍과 우울증에 걸려버렸고 지독한 사춘기에 약간 머리가 돌아버려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하게 된 걸 거다.

나는 못난 딸 못난 동생일 뿐이다.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눈물과 콧물을 쏟던 밤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그런데 그건 싫었다. 언니가 죽는 거. 그건 이상하게 너무 싫었다. 모든 원흉이라고 할 수 있는, 지능 비대증에 걸려버린 언니가 죽는 건 원치 않았다. 만약에 그런 바람을 가졌더라면 요즘 같은 날에 언니와 이렇게 한 데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의 나는 언니를 웃기기 위해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언니가 먹다 남긴 사과의 단면을 찍거나 한다.

“내가 언니라면 내 시답잖은 연애 따위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어서 그 높으신 공무원 나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근육질에 잘생긴 남자들을 한 트럭 실어다가 보내달라고 할 거야. 언니는 그 정도 할 수 있잖아. 맘에 안 드는 남자는 나 줘.”

그러면 언니가 킬킬거리다가 이내 진지하게 답을 했다.

“그런 건 싫어. 날 진심으로 좋아해줄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남자는…… 없을 거야.”

이내 침울해지는 언니.

“아이고 속 터져!”

내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해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이건 해마가 멍 때릴 때를 흉내 낸 표정이다. 해마는 참 못생기고 참 웃기게 생겼다― 흥 하면서 말하자 언니의 얼굴에서 바로 웃음이 인다.

“그런데 유리야. 내가 궁금한 게 있는데…….”

언니가 뜸을 들였다. 이거, 뭔가가 있는데.

“뭔데 빨리 말해봐.”

내가 재촉하자 언니가 입을 열었다.

“왜 넌 나를 찍지 않아?”

언니의 말에 담긴 건 이거다. 아빠도 엄마도 찍고 해마도 찍고 모든 걸 마구마구 찍는데 왜 자신은 찍지 않는지. 혹 내가 이상하게 끔찍하게 생겨서 그런 건 아닌지. 이렇게 팔다리가 나뭇가지마냥 메말라 버리고, 몸통은 락앤락 반찬통만큼 작아진, 자기 자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하고 못나서 찍지 않는 건지. 외계인의 시체마냥 머리만 커다란 이 육체가 혹 카메라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혐오스러운지.

이 바보야.

“너무 슬퍼서 그래. 알잖아 언니도.”

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가만히 언니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는데 익숙한 눈빛이 떠오른다. 장난기, 자신이 이 말을 꺼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기대감, 그리고 성취감이 적절히 섞인 눈빛. 이거 뭔가 있는데. 언니는 자신의 시나리오대로 대화가 흘러간 데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언니가 말했다.

“나 안 죽을 수 있는데. 유리 네가 나를 찍어주기만 한다면.”

 

 

 

언니의 장례식장은 의외로 눈물바다가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는 담담하게 조문객들을 받았고 가끔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는데 그들은 대체로 담담하게 언니를 배웅했다. 물론 아예 눈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내 옆에 있던 해마가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고―“야, 너 왜 울어?”, “언니가…… 나 보고 해준 말이…… 끙, 떠올라서.”, “뭐라고 했는데?”, “마음도 얼굴도…… 예쁘댔어. 남들이 뭐라고 하던 참 예쁘니까…… 흑, 밝게 웃으라구.”―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엄마가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았다.

조문객들은 정중하게 언니를 조문했고 그들은 육개장과 소주를 후루룩 하면서 언니가 이뤄낸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수다를 떨었다. 살짝 들어보니, 언니가 해놓은 게 내가 알던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았다. 우주선은 진작 만들어놓고 다른 것도 많이 했더랬다.

“지능 비대증이 아니었어도, 애리 박사님은 뭐라도 했을 위인이야.”

“암, 그러고 말고!”

“무엇보다, 그분은 단순히 지능만으로 평가받을 수 없는 분이야. 사람도 얼마나 좋으셨다구.”

대통령도 왔고 온갖 장관들도 다 왔다 갔다. 이름과 직급을 알 수 없는 박사들도 많이 왔다. 갑자기 어느 출판사 사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자서전을 내자며 영업을 하는 바람에 다소 소란스러워진 경우도 있었다. 그런 뜨내기도 좀 왔고, 그런데, 언니 친구는 없었다. 그게 나는 슬펐다.

그래도 뭐, 곧 친구도 많이 만들지 않을까. 아니지. 그런 몸으론 힘들지 않을까. 아냐. 그래도 언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파도 같았다.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가니까, 파도가 지나간 자리 같았다. 흘린 육개장과 소주 때문에 바닥이 조금 축축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통속적인 표현이다. 파도 같다, 라는 거.

어쨌든 모두가 떠나고, 이제 나는 언니의 영정사진 앞에 서 있다. 열아홉의 언니. 몸이 쪼그라들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육체와 얼굴이 망가지기 전이었던 때, 그나마 가장 나았을 때의 언니.

꽤 예뻤네.

그때 누군가 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늦은 밤에 누구지, 철통보안이라고 아무나 못 들어온다고 정부 관계자 아저씨가 아주 자신 있게 말했었는데, 누구지, 생각하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젊은 남자였다. 키가 꽤 컸고 눈썹이 짙었다.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아 저는 조문하러…….”

“우리 언니 어떻게 아시는데요?”

“아, 동생분이시구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닮았네요.”

닮았다고 하는 걸 보니, 언니가 스무 살이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언니와 또래로 보이는 저 남자도 스무 살이 되기 전 혹은 스무 살 즈음에 언니를 만난 건가 싶었다.

“어떻게 우리 언니를 아셨어요?”

“언니분의…… 제자였습니다. 학교 다닐 적에 언니분의 강의를 들었었죠.”

“언니가 대학 교수도 했었어요?”

“네. 대학교에서 만났죠.”

“와. 진짜 잘도 굴려먹었네.”

아무렇게나 뱉은 말에 남자가 웃었다.

“맞아요. 힘들어했죠. 너무 뽕을 뽑으려고 한다고 힘들다고. 온갖 연구란 연구는 다 시키고 남는 시간엔 강의까지 뛰게 한다구.”

남자가 언니의 영정사진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웠다. 그러고 나서 나와 맞절을 나눴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뭔데요?”

“이 꽃을 언니께 바쳐도 될까요?”

그러면서 남자가 재킷 앞섶에서 빨간색 장미꽃 한 송이를 꺼냈다.

“이건 무슨 상황이죠?”

또 내가 아무렇게나 말을 뱉었다.

남자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했습니다. 고백도 했죠. 그런데 차였어요, 언니 분께. 저를 의심했죠. 뭐 재산이나 유명세 같은 걸 원하나. 그러다 의심이 풀리니까, 그냥 안 된다고 저를 밀어냈죠. 나 곧 죽습니다 영주 학생, 하면서 말이죠.”

나는 배시시 웃었다. 맙소사, 언니 이런 남자를 숨겨두고 있었던 거야? 그래놓고 순진한 척은 다 했네! 내 시답잖은 전남친이나 궁금해 하고!

나는 남자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떠나는 남자를 붙잡고 물어보았다.

“영주 학생은 지금 뭐 하고 살아요?”

“네?”

“어디서 뭐 하고 사냐구요. 언니 동생으로써 알아둬야 해요.”

남자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벌린 채 생각에 잠기다가 말했다.

“대학원생으로 살고 있어요.”

오케이.

 

 

 

나는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 일단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가 별로 없었다. 갈 마음도 별로 안 들었다. 어마어마한 미래가 기다려야 하는데, 대학교에서 기대해볼 미래는 작고 하찮았다. 그런 미래를 맞이할 바엔 집에서 뒹구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 생각은 해봤다. 일단 대학교에 입학한 다음 한 일주일 다니다가 자퇴하자! 스티브 잡스도 빌 게이츠도 대학교를 자퇴했다고 하니까. 내가 나중에 유명해진다면 자퇴가 나름의 이력이 되지 않을까.

여하튼 대학교 교정은 처음 밟아보았다. 한밤의 교정은 좀 으스스하기도 했고 뭔가 낭만스럽기도 했다. 바람이 쌀쌀했다. 카디건을 챙겨올걸.

곧 겨울이 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즈음 ‘애리 호’가 날아오른다고 했다.

나는 가로등 아래 벤치에 앉아 가방을 열었다. 이거 들고 오느라 진짜 고생 많았다. 김치통만 한 크기에 무게도 제법 나갔다. 이것은 카메라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카메라다. 언니가 만들었고 나는 이제 언니를 위해 찍는다.

일단 받쳐 드는 게 문제인데, 생각보다 안정감 있게 받쳐 들 수 있었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했나 보다. 뭐, 이런 거 하나 생각 못하면 세계적인 천재가 아닌 거지. 정사각형의 카메라는 양 손바닥에 잘 들어왔고 나는 두 팔을 들어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댔다.

별다른 건 없었다. 대강 초점을 맞추고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초점 맞추는 데 신경을 써달라고 언니가 말했다. 나중에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지만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나 뭐라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카메라를 사흘 만에 뚝딱 만들어낸 언니가 미워 괜스레 초점을 엉망으로 맞출까 했다.

초점 잘 맞추고, 셔터를 누른다.

찰칵.

길 건너편 벤치에서 언니가 나타났다. 열아홉 살의 언니. 서서히 뇌가 몸을 빨아들이는 게 느껴지지만, 육체와 얼굴이 망가지기 전의 언니. 언니가 스스로 ‘마지막 나’라고 일컫던 그때의 언니.

빛의 입자로 구성된 언니가 밝게 웃으며 입을 연다. 뭐, 반갑다는 말이겠지. 무슨 말을 하는 듯한데 들리지는 않는다. 오디오 시스템까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었으나 그렇게까지 하면 장비가 필요할 테고,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누비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특정 장비를 빌리면 말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인터넷 접속이 되는, 스피커가 달린 어떤 기기로든. 이를테면 핸드폰 같은 것.

핸드폰 볼륨을 높이자 언니의 음성이 커졌다.

“뭐라고?”

“반갑다고, 유리야.”

난 눈물 따위 흘리지 않아. 생각은 그런데 괜히 울컥한다.

“그래. 나도 반가워. 이제 생명도 영혼도 없는, 그저 홀로그램일 뿐이 존재로 다시금 태어난 거네.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

“짓궂게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좋다고 하니까 짓궂게 말해야겠어. 이건 언니가 아니야. 그치?”

카메라를 만드는 언니의 귀에다가 대고 수십 번은 넘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나인걸. 나의 모든 데이터가 담겨 있는걸.”

여기서 철학적인 논쟁을 나눌 수도 있지만 이미 수십 번 해본 거다. 됐다. 이미 난 언니한테 수십 번 졌다. 아는 게 많은 게 참 좋더라.

어쨌든 언니는 자유롭게 걷고 떠돌며 만끽하고 싶다고 했다. 남들처럼 이곳저곳 다녀보고 싶다고 했다.

“들키면 안 되는 거 알지?”

내가 말하자 갑자기 언니가 어두워졌다. 핸드폰 화면 밝기를 낮춘 것처럼.

“절대 안 들켜. 아예 사라질 수도 있는걸.”

그 말과 함께 언니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러고는 이제야 언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근사한 데 데려다달라고 했는데, 왜 학교야?”

이 질문을 기다렸다.

“친구 좀 만들라고. 언니 장례식 때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거 알아?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알잖아. 난 친구를 만들 수 없어.”

그렇지. 그저 홀로그램 형태일 뿐인데 어떻게 친구를 사귀겠어. 손을 쭉 뻗으면 손이 언니의 몸통을 관통할 것이다. 언니는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많이 받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이런 존재와 누가 친구를 하겠는가. 귀신이라고 여기지 않는 게 이상하다.

그래도 그런 사람이 한 사람쯤 있다.

“이참에 연애도 해봐. 십 분 뒤에 영주 학생이 올 거야. 난 간다.”

난 참 쿨한 동생. 그대로 언니를 두고 갔다. 언니는 당황해하며 무언가 말을 했지만 난 이미 핸드폰 볼륨을 낮춰버렸다.

언니가 만든 카메라는 피사체를 담는 카메라가 아니다. 피사체를 뱉어내는 카메라다. 나의 피사체는, 카메라 인생 최초로 언니였다.

카메라에서 뱉어진 언니는 어디든 갈 수 있다. 다만 버스나 지하철 같은 건 못 탄다고 한다. 타봤자 소용없는 게, 차는 떠나고 차를 관통해 그 자리에 남아 있는다고.

언니는 일주일 동안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최대 일주일이지, 나흘 뒤에 에너지를 다 쓰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 에너지만을 담을 수 있다. 사라지기 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이 요망한 언니는 그간의 데이터를 업로드할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여수 밤바다 앞에서 나는 언니를 찍을 것이고, 일주일 혹은 나흘 간 영주 학생과 풋풋한 썸을 타고 온 언니의 얘기를 들을 것이다.

우리의 사진 찍기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정부 관계자 아저씨한테 들키지 않기. 그러면 다시 끌려가 일하게 될 게 분명하다. 그건 진짜 끔찍하다고 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두 번째, 엄마 아빠한테도 들키지 않기. 엄마 아빠는 이제 언니를 보내줘야 한다. 이런 형태로 계속 곁에 머문다면, 그분들은 무너질 것이다. 그분들은 언니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서른여섯 번을 찍으면 카메라가 방전될 것인데, 어디다 묻어버리든 망치로 때려 부수든 하기. 그렇게, 언니의 인생을 진짜로 끝내주기.

 

 

 

겨울은 추웠다. 겨울이니까 추운 게 아니라 진짜 너무하다 싶을 만큼 추웠다. 추워서 춥다 춥다 말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런지, 엄마와 아빠는 썩 빠르게 언니를 보내주고 있었다. 나는 이번 겨울이 진짜 추웠다. 겨울 한밤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으니까. 해마가 나 보고 물었다. 이번엔 여행 작가가 꿈이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즈음 ‘애리 호’가 발사되었다. 그리고 그즈음 언니의 인생도 진짜로 끝났다.

마지막 서른여섯 번째 언니는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가 있을 때는 모습을 감춰 눈에 보이지 않았고, 이어폰을 낀 내 귀에는 들렸다.

“마지막으로 영주한테 이메일 보냈어.”

“뭐라고?”

“고맙다고.”

“울어?”

“난 눈물을 흘릴 수 없어.”

“꼭 눈으로만 울어? 언니 마음은 어때. 마음이 우는 거 같아?”

“아니.”

“재수 없네.”

우리는 티브이를 통해서 ‘애리 호’가 발사되는 걸 함께 보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될 만큼 시시껄렁한 농담을 지껄였다. 그러다가 문득, 모습도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다. 이제 좀 놓았는데, 그래도 가끔씩 너무 분해서 자다가도 일어나 허공을 노려보며 화를 낸다. 특별한 존재인 적이 단 하루도 없었다는 생각에 나를 이렇게 낳은 엄마와 아빠를 원망하고 지나치게 특별했던 언니를 원망하고 신을 원망하고, 그러다 원망할 게 없으면 나를 원망한다. 그리고 떠올린다. 평범한 삶을 너무도 동경했던 언니에 대해.

이것 하나만은 자신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자존심을 지켰다. 언니에게 어떠한 교훈도 얻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언니의 동생인 것이다. 세상 어느 동생이 언니에게 교훈 따위를 얻겠나. 그건 평범한 언니 동생 사이가 아니다.

나는 사진을 관두었고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했다. 엄마와 아빠가 드디어 쟤가 사람 구실하려고 한다고 기뻐했는데, 그 자리에서 내가 당차게 말했다. 일주일 뒤에 자퇴할 거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퇴하지 않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못생기고 잘생긴 친구들과 사귀게 되었고, 가끔씩 주말마다 언니와 함께 다녔던 경주와 통영과 강화도를 홀로 간다. 언젠가 내가 평범하디 평범한 인생을 살다가 나이가 들어 흉하게 주름지고 흰머리도 그득그득 차오를 때쯤, 세 번째 규칙을 어길지 모르겠다. 장롱 속에 고이 모셔둔 그 카메라를 충전시켜, 다시금 언니를 찍을지 모르겠다. 들려줄 얘기가 참 많을 것 같다. 결국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기쁨과 슬픔과 삶의 시련과 행복을 누린 동생이 들려주는 사람 사는 얘기. 여전히 열아홉 살로 남아 있는 언니는 웃다가 ‘마음으로’ 울기도 하며 내 인생 얘기를 들을 것이다. 다 늙어 허리 굽은 할머니가 된 나는 빛으로 얽어진 열아홉 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볼 것이고, 물 한 모금 마셔 마른 입술을 적시고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댓글 2
  • No Profile
    scholasty 23.04.03 22:01 댓글

    마음이 찡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 scholasty님께
    No Profile
    글쓴이 박낙타 23.04.04 00:30 댓글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814 단편 필연적 작가 라미 2023.04.01 0
단편 아주 조금 특별한, 나의 언니2 박낙타 2023.03.31 0
2812 단편 사탄실직 지야 2023.03.30 2
2811 단편 어느 영화감독의 매너리즘 탈출기 킥더드림 2023.03.27 0
2810 단편 김성호 2023.03.25 0
2809 단편 네 동생은 어디에 있냐? 성훈 2023.03.14 1
2808 단편 환각 반신 2023.02.28 0
2807 단편 편의점과 커피와 선배 반신 2023.02.28 0
2806 단편 네크로멘서.ai 라그린네 2023.02.27 0
2805 단편 유서 혹은 참회록 진정현 2023.02.24 1
2804 단편 아메리칸 드리머 성훈 2023.02.24 1
2803 단편 식물 반신 2023.02.22 0
2802 장편 은서 (2) 조우 2023.01.29 0
2801 장편 은서 (1) 조우 2023.01.29 0
2800 단편 루시99 천가연 2023.01.27 2
2799 단편 하찮은 초능력자들의 모임 천가연 2023.01.26 0
2798 단편 [공고] 2023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23.01.24 4
2797 장편 잃어버린 아이들의 왕국(현실편) - 당신에게 해줄 말들 (에필로그) 키미기미 2023.01.14 0
2796 장편 잃어버린 아이들의 왕국(현실편) - 91 키미기미 2023.01.14 0
2795 장편 잃어버린 아이들의 왕국(현실편) - 8 키미기미 2023.01.14 0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