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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네 동생은 어디에 있냐?

2023.03.14 16:5503.14

 

일 년 전, 블로그의 이웃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평소 나의 창작 활동과 포스팅을 인상적으로 봐온 터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그가 안부를 묻기에, 나는 감기로 며칠 앓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내가 안되었다며 걱정해 주었다. 이런 식의 접근은 빤한 돈 이야기나 작가 지망생의 탄식의 전주로 흐르는 게 일반이지만, 그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그 어투에서는 은밀한 이야기를 지닌 사람 특유의 서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거나, 삶을 받드는 기백이 기울어버린, 그런 까닭만은 아닐 거예요. 태어날 때부터 음울한 인간도 있을까요? 정말 그렇습니다. 진실로 음울한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 사이는 연민 정도로는 건너기 힘든 벼랑이 존재합니다.

어머니가 혈액 암으로 돌아가시고, 초등학생인 저는 아버지의 손에 끌려 할머니 댁으로 옮겨졌습니다. 마을은 경상남도 충무(지금은 통영으로 지명이 바뀌었지만)에 있었습니다. 달동네라 하던가요, 들쥐가 유난하고 비가 내릴 때면 천장 아래 양동이를 받쳐야 하는 그런 가난한 언덕이었지요. 즐겨보던 케이블 채널 역시 송출되지 않았기에, 저의 유일한 즐거움은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 바닷물과 하늘이 맞닿는 선을 언제까지고 바라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있자면 나는 혼자가 아니라, 단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런 시절이 일 년, 오랜만에 뵌 아버지의 옆엔 웬 남자아이가 하나 쭈뼛 서있었습니다.

인사해야지, 이제부터 네 동생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동생이 생길 수 있담, 어머니가 저 하얗고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아이로 환생이라도 한 걸까?

끝내 그 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길로 다시 집을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할머니께서도 별말씀이 없으셨습니다. 배다른 형제란 말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악보도 없이 곧잘 모차르트를 연주해 내는 신동처럼, 제 동생은 음울함에 있어서 영재였습니다. 어두움이라는 단어의 뜻을 배우기도 전부터 그 아이는 이미 어두웠거든요. 차츰 뻗어가는 유년의 손발을 따라 애처로움이 타고 올랐고, 말과 행동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불길함이 옮아 있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어디로 가?

어린 나이부터 그런 울적한 주제에만 몰두했던 거예요. 하지만 할머니께선 어쩔 수 없는 까막눈이었고, 학교에서도 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다룰 리 없었습니다.

동생은 날마다 산에 올라 모종삽으로 땅을 파고 다녔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간혹 호박돌 같은 것을 노을빛에 비춰볼 때를 제외하곤 쉬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끈질기게 파고든 자리에는 어른 무릎 높이의 구덩이가 생겨 서느런 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비누로 깎은 인형, 버려진 장난감, 매미의 허물 그리고 뭐가 적혀있는지 모르겠는 공책 따위를 열심히도 묻었습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때 다시 파보는 거야.

돌이켜 보면 그 뚱딴지같은 행위는 잘만 다듬어졌더라면 어떤 창조적인 영감으로 표출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추측도 해봅니다만, 그것도 작가 님처럼 팔자가 맞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빈정거리는 것은 아닙니다.

무언가를 파묻는 시간 외에는 동생은 항상 시름에 잠겨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살펴보고 있자면, 벌써부터 명이 그리 길지 않으리라는 께름칙한 예감을 누구라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상냥한 선생님이라도 그런 아이와 정을 통하기란 영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폐적인 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없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동생이 창피했습니다. 고양이의 시체 같은 것을 떠들러보다가 동네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얻어맞기 일쑤였으니까요. 아이들은 제 동생을 마귀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동생을 마주쳐도 모른체해야 했습니다. 동생은 사 학년쯤부터 더 이상 등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동생은 침대 밑이나 장롱 속에 들어간 채 잠에 들어있곤 했습니다. 잠든 얼굴만큼은 정말로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저는 엉망이 된 동생의 속옷을 벗기고 몸을 닦아준 뒤에 깨끗한 속옷으로 갈아입혀 주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모자란 동생을 보살피는 형의 모습이었지만, 그 내실은 부모 없이 자라 혼란스럽기만 하던 제 자아를 다독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도리어 스스로 파내려 간 미궁 속에 빠진 동생을 관찰하면서, 저 하나만큼은 그 함정을 피해 갈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한들, 삶은 결국 각자의 몫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등 뒤에 낭떠러지가 있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명문 고교 진학을 위해 경기도로 홀로 이사 갔고, 할머니와 동생만이 통영에 남겨졌습니다. 말을 잃은 노파와 불가해한 이복동생, 그리고 지극히 평범한 삶을 꿈꾸는 저. 단박에 이해하시겠지요? 저의 연락은 점점 뜸해져 갔습니다.

저의 결혼식 때도 할머니는 병환으로 참석할 수 없다고 둘러대두었고, 어릴 적처럼 동생 같은 건 없는 척하며 얼렁뚱땅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동생의 연락처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저는 직감했습니다. 할머니가 죽었구나.

가을바람처럼 건조한 동생의 목소리. 할머니는 겨울날, 경로당에서 나오다가 지팡이가 부러지면서 갈비뼈에 낙상을 입었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닐곱 해 만에 통영에 내려갔습니다. 영정사진을 붙잡고 죄책감에 무너져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빈궁한 환경 속에서 두 사내아이를 거두어 먹인다는 것의 무게를 저도 어느 정도 깨친 나이였습니다.

조문객도 별로 없이 비좁은 집에서 치른 쓸쓸한 장례였습니다. 신세를 한탄하던 동네 어르신 둘이 떠나가고 마침내 저는 동생과 단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거실에 앉아 소반을 가운데 두고, 미적지근한 정종과 기름 바른 김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동생의 코끝까지 덮은 치렁치렁한 머리칼과 볕을 쬐지 않아 투명할 정도로 창백한 피붓결, 묵은 바둑알 같은 윤기 없이 탁한 눈동자에 제 마음은 수년 만에 한없이 미어졌습니다. 실없는 농담이라도 내뱉어준다면 좋으련만. 침묵 속에 술잔만 바삐 오갔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느 어지러운 악몽 속보다도 뜻밖이었습니다.

키스해 줘, 내게 키스해 줘. 나를 품어줘. 입김을 불어넣어 줘. 그날처럼.

맞습니다. 앞서 이야기하지 않았나요? 어릴 적에 장롱 속에서 동생과 저는 입맞춤을 나누곤 했어요. 경우에 따라선 조금 더 나아갈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2차 성징적 호기심이었죠. 하지만 아직도 동생이 그 일을 마음에 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변명을 하자면, 당시 저는 술기운이 꽤 올라 있었고, 할머니의 장례로 온전한 정신도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저의 몸은 반응했습니다. 그랬기에 외면해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이건 슬픈 인간을 위안하는 일이야. 선행이야.

상처에 연고를 발라주듯 저는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였습니다. 동생의 그것은 가엾도록 여리고 부드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때, 동생이 제 손목을 잡고 자신의 허벅지 안쪽으로 밀어 넣기 시작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동생을 밀쳐냈습니다. 제가 방심한 사이에 동생은 마귀처럼 달라붙어 저와 같이 불행의 미궁 속으로 빠지려 했던 것입니다. 방바닥에 소반과 술병이 나뒹굴었습니다.

서둘러 구두를 구겨 신으며 문밖을 나서는데 어깨너머에서,

비겁한 새끼, 네가 한 짓을 벌써 잊었을 거라 생각했어? 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제 가족 이야기까지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것을 듣자, 저는 일순 살의에 휩싸였습니다. 저는 참지 못하고 동생의 목을 졸랐습니다. 얼굴을 반쯤 덮은 머리칼 너머에 충혈된 눈동자는 기쁘다는 듯이 웃고 있더군요. 네, 그것은 마귀였습니다. 저는 난생처음 느끼는 뜨겁고도 공포스러운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일단 자리를 벗어나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 싶어 자리를 박차고 달아났습니다.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제 머릿속을 울려댔습니다. 저런 마귀와 비역질을 치렀다는 생각에 연민은 온데간데없고 혐오스럽기만 한량없어서,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다시는 찾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액셀러레이터만 밟아댔습니다.

그런데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걸까요? 귀신이 와서 멱살을 잡아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제가 직접 털어놓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장롱 속에서 동생과 애정을 나누었습니다. 다른 해코지는 없었습니다. 미숙한 성애는 죄악입니까? 그렇다 쳐도 이제 와서 무얼 어쩌자는 겁니까? 저는 아내가 있고, 그 아내는 제 아들을 낳아 주었으며, 우리 가족은 노력 끝에 경기도의 목 좋은 곳에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해냈습니다. 동시에 저는 아리따운 신입사원의 뒷모습을 보면 곁눈질할 줄 아는 지극히 보통의 사내입니다. 그것은 증표입니다. 남자 따위, 게다가 그게 이복동생이라면 정욕 따위 이제 느낄 리 없습니다. 저희 배다른 형제에겐 정욕의 처리법을 올바르게 지도해 줄 부모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뒤틀린 성 충동의 구간을 홀로 통과해냈습니다. 기특하게도 사회인이 된 것이지요. 동생은 아직도 미숙함에 머물러 있던 것일까요? 그 녀석은 망령이 들린 게 틀림없습니다. 작가 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얼마 뒤에, 제 아들의 손에 못 보던 물건이 들려있는 것을 보고 저는 놀라서 따져 물었습니다.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 로봇 장난감이었습니다.

저 아저씨가 줬어.

저는 인형을 빼앗아 든 채 아들이 가리키는 길목을 꼼꼼히 살펴보았지만, 수상한 낌새는 없었습니다. 그 후에도 제 아내의 직장에 익명의 엉망으로 시들어버린 꽃다발이 배달된다든가, 한밤에 전화를 걸어 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든가, 주차장에서 정체 모를 픽업트럭이 코앞까지 들이닥친다거나, 하는 불쾌하고 위험한 일들이 이어졌습니다. 경찰 쪽에서는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시큰둥하기만 했습니다. 이렇다 할 동기가 없다는 것이지요. 범죄란 것은 대개 금품 갈취나 개인적인 원한에서 비롯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그 개인적인 원한이라는 것의 내막을 도저히 형사에게 털어놓을 자신이 없어 그만 포기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제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간다던 아들의 뒷모습이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입니다. 경찰은 우선 가출로 접수하더군요. 고작 초등학교 2학년이 가출이라니요. 이틀이 더 지나서야 경찰은 심각성을 인지했지만, 이미 때가 늦어도 너무 늦은 것입니다. 제 아들은 기어이 묻혀버렸을까요? 어쩌면 할머니의 죽음 역시 그 녀석의 짓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많은 수사관들과 함께 탐침봉을 들고 통영 소재의 야산이란 야산은 모두 뒤지고 다녔습니다. 산에선 어린 날에 동생이 부단히도 파댄 수백 개의 구덩이가 발견됐고 그 안에서 온갖 뜻 모를 폐기물들이 수집되었습니다. 로봇의 한쪽 팔도 발견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아이의 손에 들려있던 그 장난감 로봇과 절단면이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흔적은 증발이라도 해버린 듯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년이라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현재까지.

결국 그 휑하고 음울한 눈동자가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순간까지 침입해 가장 소중한 것을 앗아가버린 것입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괴롭습니다. 그날 그 녀석의 숨통을 끝까지 졸라 해치워버리지 못한 것이 끝내 살과 피와 뼛속까지 한으로 사무치는 것입니다.

 

*

 

이 글은 우리가 주고받은 이메일을 소설적으로 가공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이다. 인물도 장소도 사건도 모두 허위이다. 다만 내가 느꼈던 소회만큼은 되도록 원형 그대로 담기 위해 애썼다.

마침내 그와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누기로 한 약속 날에 그는 나오지 않았고, 나는 커피를 서너 잔을 비우며 반나절을 멍하니 보내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음울한 인간은 실은 당신이 아닙니까, 하는 의구심이 나의 마음 한곳을 예리하게 긋고 지나갔다. 그 틈새로 밤의 빌딩 숲이 내쉬는 차가운 한숨이 통과해 지나갔다. 겨울이 가까이에 있다.

그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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