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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편의점과 커피와 선배

2023.02.28 18:0902.28

월요일, 오빠가 죽었다. 사인은 심장마비. 흔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동맥경화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했다. 동맥경화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전화를 끊자마자 노트북으로 검색해보았다. 혈관이 굳어서 심장마비를 일으키는 것. 심장마비는 허약한 사람이 걸리는 병인 줄 알았다. 몸집이 크고 어깨와 팔다리가 튼튼했던 오빠와는 어울리지 않는 병명이었다. 비만 때문에 병이 생겼나 싶었다. 아버지는 목요일쯤에 오라고 했다. 오빠의 장례식을 해야 한다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면 어머니가 우는 소리를 낼 테니 가겠다고 했다. 인터넷으로 본가가 있는 인천까지 어떻게 갈지 검색했다. 나는 먼 거리를 갈 때 고속버스를 타고 가지만 서울에서 인천까지 고속버스가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적당히 탈만 한 대중교통을 찾다가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복정역에 가서 지하철을 탄 뒤 두 시간은 열차에 있어야지 인천에 도착한다. 자동차를 일찍 사놓을걸. 예전에 자동차 대리점에 가서 국산 준중형 세단을 계약했지만, 차를 받으려면 적어도 1년은 기다려야 했다. 받으려면 일주일 남았다. 장례식은 목요일부터 시작이니 자동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보겠다는 꿈을 미뤘다. 어차피 자동차가 있어도 오빠를 만나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싶지는 않았겠다. 운동화를 신고 집 밖으로 나섰다. 회사에 갈 때는 항상 굽이 조금 있는 구두를 신는다. 나에게 운동화는 더 쉽게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였다. 인터넷 지도에서는 걸어서 30분이 걸린다고 했지만, 걸음이 빨랐는지 지도가 잘못되었는지 20분 동안 걸어서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원래라면 택시를 타고 갔겠지만, 택시비를 아끼고 싶었고 오빠의 장례식에 가는데, 굳이 돈을 쓰기 싫었다. 지하철역 개표구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복정역에서 송도역까지 가는 일회용 교통카드를 샀다. 카드를 개표구 위에 가져다 대니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막대기처럼 생긴 문이 열렸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지하철에 타게 되었다. 지하철을 처음 탔을 때는 중학교 때였다. 가족끼리 용인시에 있는 목장에 여행을 가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겸사겸사 서울도 가자고 했었다. 자동차 주차 자리를 겨우 얻고 남산타워에 가려고 지하철에 잠깐 탔었다. 그때는 피곤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빠가 무거운 머리를 나의 어깨에 올려놓고 반쯤 잠들었던 기억이 났다. 기분 나쁜 기억이었지만 지하철 안은 멋있었다. 어린 학생의 눈에 지하철은 크고 대단한 장소였다. 그때의 모습이 남아있길 바라면서 기대가 섞인 채로 개표구 너머로 들어갔다. 열차 입구 앞으로 내려가는 계단 옆에 편의점이 있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물건 가운데 무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 편의점을 둘러보았다. 생리대 하나를 집었다. 나는 아마 일요일에 월경할 것이다. 원래 금요일에 돌아갈 예정이지만,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까지 있게 할지 몰랐다. 어머니는 폐경한 지 몇 년 되어서 생리대가 없었다. 생리대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려는데 계산대 옆에 신문과 잡지가 있었다. 직원에게 저것들은 얼마냐고 물었다. 잡지는 3,000원이고 신문은 1,000원이라고 했다. 재고라서 가격은 다 같다고 했다.

생리대와 함께 신문 하나를 샀다. 그 신문은 다른 신문사에서 만든 신문과 달리 글씨가 촘촘했고 종이가 매끈했다. 만년필로 글씨를 써도 찌꺼기가 생기거나 잉크가 퍼지지 않겠다. 덕분에 기분 좋게 신문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겠다. 신문을 펼치려고 했는데 열차를 놓칠까 봐 그냥 팔과 옆구리 사이에 끼고 기다렸다. ‘수인분당선’이라는 안내음이 울렸다. 스마트폰을 켜서 내가 지금 제대로 된 방향의 열차를 타는 건지 여러 번 확인했다. 열린 열차의 문으로 걸어 들어갔다.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온 건 나쁘지 않았다. 다리가 아팠지만, 사람이 생각보다 없어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앉으면서 다리에 뭉쳐있던 근육과 피가 풀렸다. 오랜만에 열차에 탔지만, 기분이 새롭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에 탄 열차보다 훨씬 낡아 보였다. 과거의 열차는 벽과 바닥에 새하얀 페인트칠이 되어있었다. 잡티가 하나도 없었고 좌석은 깔끔한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자였다. 지금 탄 열차는 페인트칠은커녕 단단한 금속을 대충 휘감아서 만들었고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었다. 천장에 매달려있는 손잡이는 사람들이 많이 만져서인지 지저분했다. 생각보다 지하철이 멋있지 않아서 실망했다. 지하철이 낡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낡았었는데 나의 부실한 기억력이 과거의 지하철을 미화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신문은 좋은 방패였다. 지하철에 나타나는 온갖 신기한 것들을 힐끗힐끗 보아도 신문을 들고 있으면 아무도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지하철은 뉴스와 인터넷에서 본대로였다. 파란색 상자를 수레로 끌고 온 한 잡상인이 새카만 담요를 팔았다. 평범한 담요였는데 잡상인은 마치 담요가 특별한 방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최대한 잡상인을 무시했다.

상상했던 것과 다른 것도 있었다. 오전의 지하철은 출근하기 위한 직장인들로 북적일 줄 알았는데,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대신 교복을 입은 학생 네 명이 내 앞에 섰다.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두 명이었다. 여학생 한 명은 내 옆에 앉았는데 키가 크고 피부가 반들반들한 남학생과 수다를 떨었다.

“내가 봐서 아는데 공부 잘하는 애들이 더 늦게까지 공부하더라.”

“그러니까 성적이 높게 나오겠지.”

아마 11월쯤에 있었던 기말고사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았다. 얼마 전 수능이 있었다는 뉴스를 봤었다. 네 사람은 외모나 교복으로 봐서 고등학생 같았고 3학년은 아닌 듯했다. 그들은 공부를 좀 더 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수능이 무조건 중요한 건 아니더라. 대학 안 가도 공무원 시험 보거나 국가전문자격증 하나 따서 적당한 회사 들어가면 돼. 만약 내가 학생들의 대화에 끼어든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대학교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와 회계사 준비를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담임에게 회계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담임은 그럼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되지만, 사람 키만큼 책을 쌓아두고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무모한 방법을 썼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번 아르바이트비로 회계사 교재를 내 키만큼 쌓을 수 있을 정도로 샀다. 어머니는 택배로 온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보고 놀랐지만, 내가 종일 회계사 공부를 하자 딱히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나는 25살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22살에 1차 합격했지만 2차는 좀처럼 되지 않다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공부하는 시간을 늘렸더니 합격했다.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합격한 나를 사람들이 주목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합격한 사람이 있어서인지 딱히 나를 대단하게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법인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해도 상사는 그저 나를 회계사 실습생으로 여겼다. 1년 동안 실무를 해야 공인회계사라는 이름을 쓸 수 있다고 했다. 거기서 월급 420만 원을 받았다. 실무가 끝난 다음에는 대형 유통회사 회계부에 취직했는데 월급은 500만 원 정도였다.

나는 출근할 때, 정장 치마를 입고 반투명 스타킹을 자주 신었다. 그게 나에게 어울리는 단정하고 멋있는 옷차림이라는 취향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는 남들보다 다리가 가는 편이었다. 편의점에서 파는 스타킹을 신었다고 답답하거나 피가 뭉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자리에서 회계표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한 남자 상사가 내가 앉아있던 의자 뒤로 오더니 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상사는 종이컵에 든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보더니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나는 그때 뭔가 불쾌했다. 상사가 나를 욕하거나 해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가 내 모든 피부를 잡아당기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고 식은땀도 났다. 1분 정도 생각에 잠겼고 내가 왜 상사를 불쾌해했는지 기억해냈다. 상사가 내 친오빠를 닮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이었을 때였다. 오빠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후로부터 중학생이 될 때까지 나를 자주 때렸다. 이유는 많았다. 언제는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때렸고 언제는 충전기가 없어졌다고 때렸다. 나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지 내가 왜 그걸 찾아야 했는지 몰랐지만, 일단 오빠가 못 찾으면 패겠다고 해서 빨리 찾아야 했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말하는 건 소용없었다. 오빠는 어머니, 아버지가 없을 때 나를 때렸고 어쩌다가 고자질해도 혼내는 걸로 끝났다. 물론 고자질했다간 나중에 훨씬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졌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인생에서 있었던 시간 중에 가장 괴로웠던 때를 뽑으라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이다. 그 지옥 같던 시간이 끝나긴 했다. 오빠가 중학생이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때 아끼던 머리띠를 잃어버려서 집에 가방을 놔두고 학교와 집까지의 길을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하지만 머리띠는 찾지 못했고 한숨을 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었을 때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오빠가 말했다.

“머리띠 찾았냐?”

“오빠는 신경 쓰지 마.”

오빠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때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림을 그려보라거나 어떤 상황이었는지 말해보라고 하면 단 하나의 차이도 없이 그때를 설명할 수 있다. 오빠는 자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들고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십수 초 지났을 때, 집 바닥은 피로 흥건했다. 나는 의식을 잃지는 않았지만, 눈을 뜨기 무서워서 감고 있었다. 오빠가 피를 밟았을 때, 자기가 이성을 잃었다고 깨달았는지 119를 불렀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 갔다. 오빠는 만 14세를 넘지 않아서인지 소년보호처분을 받아 보호관찰소에 잠깐 있게 되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어머니와 대화했다. 거기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는데 어머니는 오빠가 나를 때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동안 멈추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어머니는 울었다. 왜 그동안 안 말렸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대답할 거 같지 않아서였다. 오빠가 집으로 돌아온 날, 오빠는 아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패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많이 맞았다. 어머니가 말릴 정도였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오빠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가 이때까지 맞은 것만큼 몰아서 맞았다면 오빠는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오빠는 키와 덩치가 점점 커졌다. 오빠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두들겨 맞았다면 정말 살해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오빠는 친구가 많고 운동을 좋아했으며 먹는 양이 많은 건장한 학생이었다. 하지만 화를 못 참는 성격은 고치지 못했는지 같은 반 학생과 주먹을 주고받아서 어머니가 학교에 불려가기도 했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시선은 신문지를 향해있었다. 정신을 차린 건 옆에 있던 여학생이 말을 걸어서였다.

“저기 언니, 언니는 직업이 뭐예요?”

“나는 회계사야.”

“역시 그럴 거 같았어.”

내 손목시계에 ‘공인회계사회’라고 적혀있었다. 이걸 보았나 보다. 정장을 입고 있는 것도 회계사라고 짐작한 이유다. 여학생은 뭔가 신기한 보석을 본 것처럼 시계를 바라보았다.

“회계사 되기 어렵나요?”

“회계사 되기 엄청 어려워. 근데 막상 되면 좋아.”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학생들은 열차에서 내렸다. 다시 신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자 신문에는 재미있는 기사가 없었다. 대부분 환율이 낮아졌다. 국민 부채가 쌓였다.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기사뿐이었다. 기사는 어려웠지만, 신문지를 한 장씩 넘기다 보니 신문의 마지막 장이 보였다. 은행을 광고하는 포스터가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을 덮자 송도역이라는 안내음이 나왔다. 열차에서 내렸다. 역에 있는 기둥 옆 쓰레기통에 신문지를 버렸다. 송도역에서 나가자 바로 택시 승강장이 보였다. 신호등을 하나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가 내 키만큼 밖에 되지 않아서 신호등을 왜 굳이 만든 건지 궁금했다. 신호를 지키면서 건넜다. 택시 하나를 세워서 탔고 장례식장 주소를 말했다. 기사는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출발했다. 인천은 생각보다 컸다. 강남보다는 아니었지만, 꽤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놓여있었다. 특히 장례식장까지 가는데 유리창이 촘촘히 박혀있는 빌딩이 연달아 나왔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어디다 채워 넣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유리 사이에 빈틈이 없었다. 건물을 구경하자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승강장과 꽤 거리가 있는 장례식장 근처에서 내렸다. 택시비는 12,000원이었는데 나에게는 큰돈이 아니었다.

장례식장 건물에 들어갔다. 장례식장 건물의 출입문을 열자마자 복도가 나왔다. 출입문에서 가장 가까운 빈소가 오빠의 장례식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영정사진 옆에 주저앉아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의 눈은 누가 봐도 펑펑 운 사람처럼 부어있었다. 조용히 신발을 벗고 어머니에게 다가갔다.

“너희 오빠 죽었어.”

“괜찮아요. 괜찮을 거야, 엄마.”

어머니의 목소리는 이미 쉬어있었다.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곡소리가 짐승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들었다. 곡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어머니는 정말 짐승 소리를 냈다. 목소리는 인간의 느낌이 하나도 없고 걸걸했다. 아버지와 전화할 때 목소리가 덤덤해서 어머니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버지는 출입구 바로 옆에서 조문객들과 인사하고 있었다. 들어올 때 어머니가 먼저 눈에 보여서 아버지가 빈소에 있는지도 몰랐다. 아버지는 딱히 울고 있지는 않았다. 눈은 반쯤 풀려있었다.

정장을 입고 오길 잘했다. 원래 정장을 입을 때 치마를 입지만 오늘은 바지를 입고 왔다. 그게 더 편할 것 같아서였다. 가만히 어머니 옆에 서 있었다. 그렇게 종일 조문객들이 오고 갔다. 해가 질 때까지 지루하고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어렸을 때 어른을 따라서 장례식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수육 몇 점을 집어먹은 것 말고는 즐거운 기억이 없었다. 장례식은 항상 지루한 경험이었다. 날이 어두워졌고 오늘의 조문이 끝났다. 나와 어머니, 아버지는 방으로 들어갔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이 3일 동안 자는 곳. 이곳이 상주실인가 휴게실인가 숙소인가.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 아버지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방에 나란히 누워 잠들었다. 두 사람이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렸다. 새벽 내내 울다 지쳐 잠드는 갓난아기 같았다.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잠을 자는 대신 장례식장 건물을 빠져나왔다.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자고 싶지 않았다. 커피 한 병을 마시면 하루쯤은 자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에 걸어갔다. 장례식장과 병원은 생각보다 컸다. 기역 자 길로 한참 걸어서 작은 편의점 하나를 발견했다. 노란색으로 빛나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유리로 된 문을 열자 문 위에 달아놓은 종이 울렸다. 종소리가 났는데도 편의점 주인은 나를 보지 않고 드라마를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었다. 나는 음료수가 진열되어있는 냉장고를 바라보았다. 마시는 커피는 정해져 있다. 스타벅스에서 만든 프라푸치노다.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에 보이지 않았다.

“사장님, 여기 스타벅스 커피 안 팔아요?”

“뭐 파냐고요?”

“스타벅스 커피요.”

“그런 건 스타벅스 가서 찾으셔야지. 여기에는 없어요.”

“팔던데. 네모난 유리병에 들어있는 거 있잖아요.”

“여기는 안 들어올걸요. CU나 GS25에서만 팔아요.”

편의점의 유리로 된 벽과 문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 너머에 보이는 길가에 다른 편의점이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커피가 없다고 해서 충격이었다. 회계사가 된 이후로 그 커피만 마셨다. 다른 편의점에는 그 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내가 실무를 끝내고 처음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선배가 내게 준 커피가 바로 그 커피였다. 신입사원이니 수고하라고 줬다. 선배는 나보다 나이가 더 많았지만, 피부가 매끈했고 말아서 올린 머리카락이 멋있었다. 일도 그럭저럭 잘했고 성격도 사글사글했다. 그 선배가 꽤 마음에 들었지만, 얼마 못 가 그 선배는 폐렴에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다. 선배는 결국 퇴사하겠다고 통보했다. 원래 잠깐 쉬었다가 다시 출근하려고 했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아파서 언제 다시 일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고 했다. 나는 그 선배에게 데이트 신청은커녕 커피 한 잔도 같이 마시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다. 그 선배가 사준 커피를 기억하고 있다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그 커피를 사서 마셨다. 선배는 퇴사했지만, 그 커피를 마시면 선배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것 같아서였다. 유능했던 선배가 신입사원마다 커피를 사주는 걸 보면 그 커피에 특별한 힘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커피가 맛있어서 계속 마신 것이기도 했다.

그 커피는 없었지만 나는 1,200원짜리 다른 커피 두 캔을 샀다. 보온기 안에 들어있는 따끈한 커피였다. 편의점 밖으로 나가서 커피를 마셨다. 추운 곳일수록 커피가 맛있었다. 커피가 차갑든 따듯하든.

밤에 혼자 나오니까 옛날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항상 통금 시간을 정했다. 오빠는 통금 시간이 없었지만 나는 저녁 7시 반까지 집에 들어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용돈을 깎는다던가 외출을 못 하게 한다던가 불이익을 준다고 했는데 통금을 어긴 적이 거의 없어서 진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동생이기 때문에 오빠는 통금이 없고 나만 통금이 있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오빠는 19살에도 20살에도 통금이 없었다.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왜 그런 건지 이유를 알아냈다. 내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딸이니까, 내가 혼자 밤에 나가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그건 성차별 아닌가. 그래도 여자가 밤에 더 위험한 건 사실인가. 혼자서 온갖 자문자답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 되고 장례식장으로 돌아온 나는 집으로 가려 했다. 어머니는 오빠의 장례식인데 왜 벌써 가냐고 성질을 냈다. 생리가 시작돼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생리통이 다소 있었다. 어머니는 나와 오빠가 거의 의절한 사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나를 막지 못했다. 택시를 불러서 지하철역으로 갔다. 열차를 기다렸다. 한 번 해봐서, 표를 사는 것도 열차 출입구로 가는 것도 쉬었다. 올 때는 그냥 지나쳤지만, 송도역은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고 있었다. 잡지는 남성지가 많았고 여성지는 거의 없었다. 날짜를 보니 발행한 지 오래된 재고 같았다. 계산대에 앉아있던 남자는 컴퓨터로 온갖 흰 알파벳이 적힌 검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것은 해킹 같기도 했고 프로그래밍 같기도 했으며 암호화폐 같기도 했다.

오늘 자 신문과 함께 다른 신문사의 신문도 하나 샀다. 더 최근에 세워진 신문사였고 글도 꽤 쉬운 편이었다. 남자는 2,000원이라고 말했다. 눈은 여전히 모니터를 향해있었다. 현금을 내고 시간에 맞춰 열차에 탔다. 다행히 이번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나는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신문을 읽기 위해 폈는데 옆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장례식장으로 갈 때 만났던 그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이 먼저 아는 척을 했다. 낮인데 학교에 안 있냐고 물었다. 여학생은 자퇴하기로 했다고 했다.

여학생은 내 옆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자기도 공인회계사나 공인중개사처럼 국가전문자격을 따고 싶었다고 했다. 학교생활은 그런 걸 허락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회계사가 나오는 건 좋아했지만, 오로지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능만을 위해 공부하게 했으며 단체생활을 강요했다. 두발 규정, 복장 규정은 왜 그렇게 엄격한지. 선배들 말에 따르면 수련회에 가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신청서를 쓰게 했다고 했다. 여학생은 말하는 내내 목소리가 낮아졌다. 검정고시를 보고 남는 시간은 수능 공부와 회계사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 여학생은 금방 내렸다. 나는 응원한다고 말하고 여학생을 떠나보냈다. 여학생은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마치 반가운 친구와 인사하는 것 같았다. 여학생이 내린 후 열차 문이 닫혔다.

“언니, 안녕히 가세요. 이야기 즐거웠어요.”

“조심히 가.”

문이 닫히고 다시 열차는 강남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전화로 생리휴가를 내고 싶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했다. 원래 전날 미리 전화하고 싶었지만, 일요일은 업무일이 아니니 전화하면 민폐 같았다. 상사는 아프면 조심히 있으라고 말했다. 대신 휴가가 끝나면 와서 열심히 일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집에 온 후로 어머니, 아버지와 전화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전화를 한 달에 두 번 정도 한다. 한 번은 내가 걸고 한 번은 부모님이 건다. 간단한 안부 인사만 하고 전화를 끊는다. 이번 주말에는 전화가 아예 오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아들은 죽고 딸은 급하게 떠났으니 굳이 전화를 걸고 싶지 않을 것이다.

원래 자주 씻는 편이지만, 화요일은 회사에 가기 전에 평소보다 깨끗이 씻었다. 장례식장의 향냄새를 몸에 묻히기 싫었다. 평소대로 스타킹과 정장을 입고 집을 나섰다. 5일 동안 버스를 타지 않았더니 뭔가 색다르게 느껴졌다. 버스에는 혼자 탄 어린이도 있었고 학교에 가려는 듯한 고등학생도 있었다. 등산할 때 입는 바람막이를 입은 어르신도 한 명 있었다. 도시와는 어울리지 않은 차림이라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스마트폰도 신문도 보지 않은 채 오로지 버스에 탄 사람들과 바깥 풍경을 관찰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운전석 위에 달린 전광판에서 내가 내려야 할 버스정류장의 이름이 떴다. 버스에 오래 있지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하고 내렸다. 걸어서 회사까지 걸어가는 동안 편의점이 하나 보였다. 내가 매번 커피를 사는 곳이었다. 들어가서 커피 두 병을 사고 핸드백에 넣은 뒤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은 이미 선배 몇몇이 와서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출근 시간은 꽤 남았지만, 미리 일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내 뒤로 상사가 다가왔다. 저번에 내 회계표를 훑어보고 가버린 그 상사였다. 오빠와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와서인지 오빠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상사는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저번에 회계표를 잠깐 훑어봤는데 내가 기분 나빠 보였다고 했다. 나는 그때 몸살이 조금 있었다고 둘러댔다. 그제야 상사는 안심이 되었는지 굳은 얼굴이 풀어졌다.

나는 핸드백에 넣어놓은 커피 하나를 건넸다. 상사는 고맙다면서 커피를 두 손으로 받았다. 공손해 보이는 자세였다. 격식 차리지 말라고 하려다가 이것도 개인의 방식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대꾸하지 않았다. 상사는 자리로 돌아가더니 커피의 뚜껑을 따서 그걸 단숨에 마셨다. 빈 병은 사무실의 정수기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나도 커피를 따서 마셨다. 카페인을 무기 삼아서 다시 일에 집중했다. 생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어서 의자에 오래 앉았더니 아랫배에 플라스틱 막대기가 붙은 것처럼, 개운치 않았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컴퓨터 창을 켜서 쌓여있던 업무를 모두 받고 정리했다. 특히 이메일함에는 검토하라고 보낸 문서가 가득 있었다. 먼저 온 이메일부터 차근차근 열어서 해결했다. 답장을 일일이 보냈다. 사정 때문에, 휴가를 써서 늦었으니 양해해달라는 문구도 잊지 않았다. 일하다 보니 출근 시간이 되고 사무실에는 많은 직원이 모였다. 대부분 남자 직원이라서 그런지 생리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나의 휴가를 이야기할 때면 ‘생리휴가’가 아니라 ‘휴가’라고 돌려 말했다. 아무튼 휴가를 이유로 몇 시간 연장근무를 했다. 누가 시킨 건 아니었지만 그냥 하고 싶었다. 덕분에 저녁 8시에 가까워져서 퇴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이라 하늘은 금방 새카맣게 변했다. 퇴근해보겠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동료들이 모두 퇴근해버려서 말없이 가방과 겉옷을 챙겼다. 1층 입구에 앉아있던 경비가 어서 나가라며 손짓했다. 경비가 8시에 건물 문 잠그는 거 잊었냐고 물었다. 8시를 넘겼으면 큰일 날 뻔했다.

겨울밤은 추웠는데 블레이저 하나만 입고 온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바람이 꼬챙이처럼 블레이저와 와이셔츠를 뚫고 맨살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회사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에 앉아 기다렸다. 정류장 옆에 세워진 전자 시간표를 보았다. 버스가 오려면 8분 정도 남았는데 뭔가 설렜다. 버스 안은 히터를 틀어서 따뜻할 테고 또 버스에 신기한 사람들이 있을까 봐 기대되었다. 의자가 차가워서 엉덩이가 시렸다. 차가운 공기는 금세 뜨거워졌다. 내 앞을 쏜살처럼 지나간 한 자동차가 미끄러져 사거리에서 한 유조차와 부딪혔다. 커다란 불기둥이 솟구쳤다. 나는 불기둥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치지 않았다. 대신 그렇게 뜨거운 공기를 처음 느꼈다. 곧 여러 소방차가 와서 호스로 물을 뿌렸다. 불을 끄기보다는 불이 꺼지기를 기다리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소방관이 멀리 떨어지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버스는 못 탔다. 회사 옆에 있는 기숙사에 들어가서 여자 동료 한 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했다.

다음 날 일어나니 화재가 멈춰 있었다. 회사 건물에는 딱히 피해가 없었고 직원 가운데 다친 사람도 없었다. 며칠 동안 회사에는 자동차가 왜 유조차와 부딪혔는지 소문이 돌았다. 브레이크가 고장 났다. 운전자가 테러한 거다. 이야기가 많았다. 운전자는 즉사했고 차도 형태조차 남지 않은 채 불타서 당장 원인을 알지 못했다.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그 소문은 금방 사그라들었고 다른 이야기가 돌았다. 나에게 커피를 줬던 선배가 다음 주 토요일에 퇴원한다는 것이었다. 폐렴은 많이 나았다고 했다. 상사 하나가 병문안을 가면 좋겠다고 했다. 누구 갈 사람이 있냐고 물어서 손을 들었다. 선배를 마중하러 가는 시간은 9시였지만 나는 8시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 선배를 혼자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토요일까지 저번에 계약한 자동차를 받을 수 있었다. 직접 세단을 몰고 선배를 보러 갔다. 왜 빨리 왔냐고 하면 어쩌다 보니 빨리 왔다고 둘러대면 된다. 자동차는 만족스러웠다. 가격이 저렴하고 배기량도 시원찮았지만 날렵한 헤드라이트가 달린 디자인이 멋있었고 액셀을 밟으면 시원하게 자동차가 나갔다.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면 조용히 차가 멈췄다. 다만 차를 몰고 처음 도로로 갔을 때, 유조차가 폭발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저번에 봤던 그 교통사고가 다시 날까 걱정되기도 했다. 창문을 열고 시원함을 느끼면서 걱정을 감췄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도착한 병원은 생각과 달랐다. 폐 질환을 치료해주는 고급 병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아무런 무늬도 장식도 없는 흰색 상자 같은 건물에 정사각형 창문을 듬성듬성 붙였다. 건물 벽에 파랗고 각진 글씨로 병원 이름만 적혀있었다. 게다가 주변에는 도로 몇몇 말고는 갈색 황무지밖에 없었다. 바람이 강하면 모래가 공중으로 흩뿌려질 듯했다. 설마 폐가 안 좋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서 건물을 외진 곳에 지었나 싶다가도. 왜 식물 하나 심지 않은 건지 궁금해졌다.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인가. 병원 건물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뒀다. 선물로 가져온 과일과 꽃바구니를 들고 내렸다. 폐가 안 좋은 사람들이 입원하는 병원이니 진짜 꽃이 아니라 비누를 가공해서 만든 가짜 꽃을 들고 왔다. 1층에 안내소가 있었다. 직원에게 퇴원하는 사람 마중하러 왔는데 다른 사람들 올 때까지 병실에서 기다려도 되냐고 물었다. 안내소 직원은 그러라고 했다. 3층으로 올라가서 병실 문을 두들겼다. 들어오라는 말이 들렸다. 병실에는 네 명이 있었는데 가장 안쪽에 있던 침대를 쓰는 사람이 선배였다. 환자복이 개어져 침대에 올려져 있었다. 선배는 검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과일과 꽃바구니를 침대 옆 서랍에 올려놓고 짐을 가방에 넣고 있는 선배를 불렀다. 선배는 가방의 지퍼를 잠그고 뒤를 돌아봤다.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빙긋 웃었다. 선배는 서랍 옆에 있던 원통처럼 생긴 의자를 옮기더니 앉으라고 했다. 선배는 침대에 앉았다. 선배는 생각보다 얼굴빛이 좋아 보였다. 간단한 안부 인사를 나누고 병원에서 퇴원하면 무엇을 할 건지 물었다.

“회사에 복직 신청서 넣을 거야. 된다고 하면 다시 일하고 안 된다면 다른 일 알아보지.”

선배가 말했다. 아파서 회사를 그만둔 사람 같지 않았다. 선배도 회계사 자격증이 있었고 나이가 많지 않았으니 다른 일자리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나는 핸드백에서 커피를 꺼냈다.

“피곤하면 마셔요.”

“내가 이 커피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구나.”

선배는 그 자리에서 뚜껑을 열더니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동료들이 곧 온다는 문자가 왔다. 선배는 내가 선물한 두 바구니를 들고 내려가자고 했다. 1층으로 내려가고 접수대에서 카드로 결제하더니 퇴원 서류로 보이는 종이를 냈다. 9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동료 두 명이 병원에 와있었다. 선배가 바구니를 들고 오자 두 사람은 손을 들어 선배를 반겼다. 우리는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인 설렁탕집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설렁탕집으로 오라고 했다. 네 사람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나는 앉아있다가 밖에서 전화 하나만 하고 오겠다고 했다. 식당 출입구로 나가서 왼쪽으로 꺾었다. 조금 걸었더니 사람들이 거의 없는 주차장이 나왔다. 도로 너머를 바라보니 아직 다른 차가 오고 있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켰다. 주소록에 들어간 뒤 어머니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연결음이 세 번 울리고 어머니가 받았다.

“엄마, 요즘 어때요?”

“엄마는 항상 괜찮지.”

“그냥 생각나서 전화했어.”

“엄마는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어머니가 정말 괜찮은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게 어머니를 도와주는 거였다. 전화가 끝나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로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자동차가 점처럼 보였다. 나는 식당으로 돌아갔다. 다행히 아무도 누구와 전화했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예상대로 다른 동료들이 금방 도착했고 설렁탕이 나왔다. 우리는 밥과 반찬과 설렁탕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물론 핸드백 안에 후식으로 먹을 커피도 잊지 않았다. 동료들은 내가 건넨 커피를 맛있게 먹었다. 커피를 잘 안 마시는데 이 커피는 맛도 좋고 양도 꽤 많다고 선배가 좋아했다.

식사가 끝난 후 선배를 차로 태워다주기로 했다. 자동차 앞 유리창에 선배의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얼굴을 직접 볼 때 선배는 괜찮아 보였지만, 그 희미한 모습을 보니 선배는 살도 많이 빠졌고 피곤해 보였다. 방금 설렁탕을 먹고 나온 사람이지만 더욱 무언가 먹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다음 토요일에 시간 되면 레스토랑에 둘이서 가자고 했다. 선배는 손바닥으로 인중과 입술을 문지르면서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을 짓다가 좋다고 했다. 그렇게 데이트 약속이 잡혔다. 선배가 사는 아파트 앞에서 차를 멈췄다. 선배는 내렸고 나에게 손 인사를 하고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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