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은서 (2)

2023.01.29 08:5601.29

3

 나를 만났을 때 은주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자신의 신체 일부를 모체로 기증한 상태였다. 처음 우리 집에 놀러왔을 때 본 왼쪽 허리의 흉터를 발견한 날이 은주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날이었다. 

 “그냥 이런저런 생명체 만드는 일이야.”

 은주는 그 일을 설명하는 데 지친 듯 보였다. 내가 놀란 한편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손등으로 내 이마를 닦아주면서 

 “모체 기증하는 것도 아무나 못 해. 내 직급이나 돼야 할 수 있는 일이야.”

 라고 덧붙였다. 그때 이 자취방에는 아직 에어컨이 없었다. 은주도 나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로 남은 휴일을 보내고 있었다. 

 “기증받을 수도 있는 거 아냐? 왜 굳이 연구원인 네 몸까지…….”

 은주가 그 부분에 대해 다 얘기해주지 않을까 봐 긴장한 채로 대답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은주는 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설명을 해주었다. 

 “한 번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키우며 지켜봐야 하는걸. 태어나자마자 죽을 수도 있지만 우리의 목표는 인간의 수명에 가까운 생명체를 만드는 거니까. 그리고…….”

 “그리고?”

 “매번 이렇게 기증하는 것도 아니야. 이번이 겨우 두 번째야.”

 그날 은주는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 연구소에 소속된 어떤 사람도 모체를 한 번 이상 기증하지 않았다. 

 

 은주로부터 은서를 받고, 또 은서를 만들어낸 당사자에 대한 정보가 적힌 종이를 받고 나자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이걸 왜 나한테 보냈을까? 왜 하필 나였을까? 그때 우리는 이미 헤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날 만난 은주는 여느 때처럼 늘 바빠 보였으므로 내 쪽에서 먼저 연락하기는 어려웠다. 먼저 연락할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고, 그러는 사이 은서는 몸에 막 생겨난 작은 구멍을 통해 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은서의 자양분이었던 허여멀건한 액체를 붓는 날이면 그 소리는 더 심해졌다. 심장이 뛰는 소리에 비만 남성의 숨소리를 섞은 듯하던 그 소리는 갈수록 아이의 울음을 닮아갔다. 

 소리가 들리는 시간대는 주로 늦은 밤. 그중에서도 내가 대체로 막 잠이 드는 시간인 밤 열한 시부터였다. 나는 딱히 잠을 잘 못자는 편도 아니고 잠귀가 예민한 편도 아니지만 은서의 그 소리를 듣고서는 좀처럼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때 은서는 거실의 정중앙에 놓여있었는데, 은서가 한 번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마치 거실 한복판에서 어린 아이가 우는 듯한 착각이 일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눈을 뜨고 보면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고 또 이어폰을 끼면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이기는 했으나,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은서가 원래의 몸보다 몇 배는 더 크게 느껴졌다. 하루는 인내심이 바닥난 나머지, 

 “그 감자만한 것도 몸이라고 이렇게 크게 울어대다니. 노래를 가르쳐서 블루투스 스피커로 써도 되겠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놀라운 건 그 순간 은서가 일순간 울음을 멈추더니 ‘에?’하는 소리를 냈다는 거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건 내 착각이었을 가능성이 더 컸다. 은서가 성장이 빠르다면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것 정도는 알아들었을 수 있지만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나는 그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에?’하는 소리가 신기해서 다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일주일 정도 더 울어대던 은서는 어느 날 울음을 멈추고 낮에도 밤에도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더니 어느 순간 상자가 부서질 정도로 몸집이 커져 있었다. 

 그 후 나는 은서를 내 방 반대편에 있는, 창고로 쓰던 방에 옮겨 놓았다. 하필 그 무렵 집주인을 포함해 이래저래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서 거실 한복판에 은서를 놓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가까이서 두고 보기가 어려웠다. 은서의 혈관이 매우 도드라져 보였뎐 데다 출혈도 많았던 탓에 더 이상 거실에 두기가 꺼려졌다. 그때는 한때 내가 결혼까지 생각했던⎯그리고 여전히 아내처럼 느껴지는⎯사람의 몸에서 나온 생명체라든가 하는 생각은 뒷전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다만 시선이 갈 때마다 본능적으로 피하게 될 따름이었다. 

 몇 번이고 은서를 방에 옮겨 놓고 거실에 돌려놓기를 반복했던 나는 은서를 창고에 넣어두고 수시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방을 들여다본 횟수는 목표에 한참 못 미쳤지만 말이다. 

 문제는 그런 채로 일주일 째 되던 날 새벽에 일어났다. 

 

 4

 은서의 방에서 뭔가가 방을 빠르게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쥐가 빠르게 천장을 뛰어 다니는 소리 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그 소리가 천장이 아닌 바닥에서 들려왔다는 것이고 소리를 내는 대상의 몸집이 쥐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는 거였다. 소리의 육중함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겁이 났다. 저 방 너머에 마치 즈지스와프 백진스키의 그림 속에서나 볼 법한, 수백 개의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뭉쳐서 만든 듯한 몸통에, 기다랗고 흰 인간의 팔다리가 뻗어져 나온 괴생명체가 있다는 생각이 커졌다. 은주는 생명체를 하나 만들 때마다 얼마나 인간과 닮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설명했을 뿐, 실제로 어떤 외형의 존재가 만들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아이’라던 은주의 말도 백 프로 신뢰할 수는 없었다. 그 기관에서는 암컷 괴물을 여자아이라는 단어로 일컫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집에 찾아왔을 당시 대부분 흘려들었던 유 모 씨의 말을 뒤늦게 떠올려봤다. 그가 아주 중요한 사실인 듯 강조하며 말했던 것들을 되짚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절대로’라든가 ‘꼭’이라고 말하던 그의 목소리가 드문드문 기억날 뿐, 그 뒤에 무슨 말이 이어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제야 은주가 나에게 그걸 맡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마 그것은 배양 과정에서 필수적인 단계를 거치지 못했거나, 정상적인 과정을 밟았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게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완성 단계에 다다르기는 했고 또 자신의 몸 일부로부터 만들어진 생명체이기 때문에 연구소의 폐기물로 처리할 수는 없어, 자신을 여전히 좋아하면서도 함께할 수 없는 나에게 그것을 양도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차마 납득까지 할 수는 없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생명체를 건네받았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시끄러우면 달래고 보기 싫으면 방 안에 넣어버린다고만 생각했던 나는 뒤늦게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머릿속이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냐는 의문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그때까지도 바닥을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거실로 나가 창고에 귀를 댔다. 잠시 잠잠해졌던 방 안에서 다시 한번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방 안에서 들을 땐 미처 몰랐는데 그것은 ‘쾅’도 아니고 ‘쿵’도 아니고 ‘퍽’에 좀 더 가까웠다. 정확히는 ‘퍼, 퍽’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내가 발 달린 살덩어리가 아니라 네 발 달린 기괴한 인간을 떠올린 이유를 알았다. 분명 어린 아이가 맨발로 바닥을 뛰는 소리였으나 은서는 두 발 인간으로는 불가능한 박자를 구사하고 있었다. 그건 숙련된 탭댄스 전문가 혹은 수년 동안 두 발과 두 손으로 뛰는 능력을 갈고닦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저히 낼 수 없는 소리였다. 

 유 모 씨의 전화번호를 받아두었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스쳤다. 명함은 분명 받아뒀다. 일 년이나 산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며 뭔가 작은 종이를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어디 두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엉망인 방에서 어디에 두었는지 알 수 없다는 건 찾을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은주에게 전화를 해도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오랜 시간 불면증을 앓아왔던 사람에게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 내가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명함을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문고리에서 내 움직임과는 무관한 낯선 소리가 들렸다. 문을 잠그는 소리였다.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반팔 밑으로 드러난 살에 소름이 돋았다. 

 만약 창고에 달린 게 주먹 크기의 원형 안에 또 다른 원형 버튼을 누르는 문고리였다면 실수로 버튼을 누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문고리는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돌려야만 잠글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존재가 문을 잠그기 위해서는 꽤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먼저 큰 원형 안의 작은 원형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섬세한 신체 기관이 필요했고, 그에 앞서 그 고리를 돌리면 바깥에 있는 사람이 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했고, 무엇보다, 문밖의 대상과 접촉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필요했다. 

 한참 방문 앞을 지키던 나는 고심 끝에 문을 열기로 마음먹다. 그건 방문에 귀를 기울이던 중 들려왔던 플라스틱 부서지는 소리 때문이었다. 그제야 그 생명체가 아크릴 상자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그 상자를 열어준 적이 없으니, 지금은 맨발로 그것을 밟고 다니는 상태고. 게다가 그 상자의 잔해로 뒤덮인 그 창고는 사방이 오래된 물건으로 가득하고 오래 전에 형광등이 나가버려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상태였다. 그 모든 것들을 연달아 떠올린 끝에 나는 그런 곳에 있으면서도 도움을 요청하기는커녕 방문을 잠가버린 정체불명 척추동물의 심정을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하게 됐고, 결국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이 안에 있는 게 아무리 낯설어 봐야 처음 이 집에 도착했을 때의 모습만큼이나 낯설 리가 없다는 생각을 곱씹으며. 

 

 5

 그날 새벽 먼지로 뒤덮인 창고에서 걸어 나온 건 다섯 살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은주와는 전혀 닮지 않은, 은주의 안에 내재되어 있던 또 다른 여성의 모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닮지 않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주만큼이나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가 다소 화가 난 듯한 얼굴로 창고에서 걸어 나왔다. 나는 그날부터 그 아이를 은서라고 부르기로 했다. 성은 내 것을 따 손은서로 하기로 했다.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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