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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려 하였다. 하얀 병실로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서 다가온다. 남자가 소년의 곁으로 섰고 간호사가 소년이 입은 부상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녀가 웃으며 사탕을 건네어준다. 남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고 소년은 제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다리가 나타나지 않았던 걸까. 간호사가 안내해준 카운터로 남자가 걸어갔고 소년은 잠시 혼자 남겨졌다. 오른쪽 다리로 붕대가 감겨있다. 석고로 굳은 다리는 딱딱했고 희미하게 약품 냄새가 났다. 남자가 병원에서 받은 목발을 들고 온다. 그가 소년에게 목발을 건네어 준다.

 

가자꾸나.

 

소년과 남자가 함께 자동차로 오른다. 두 사람을 싣고서 쥐색 자동차는 어색하게, 그렇지만 오버하지 않고서 잔잔히 덜컹인다. 남자가 입을 떼지 않고서 소년에게로 묻는다.

 

‘왜 그랬니.’

 

뒷좌석으로 태운 목발이 덜컹인다.

 

‘혹시 너도 우리가 싫어진 거니?’

 

조수석과 운전석의 머리 두 개가 함께 좌우로 흔들린다.

 

‘왜 뛰어내린 거니.’

 

좌석과 좌석으로 두꺼운 벽이 존재한다. 남자는 그 두꺼운 벽을 더듬었다. 막막했다. 그 사실 자체가 암담하다. 남자의 손이 번들거린다. 땀이 났고 핸들이 미끈거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니?’

 

저기.

 

남자의 옆으로 소년이 먼저 입을 연다.

 

저는 돌아가야 해요.

 

‘어디로 말이니?’

 

아이들이 절 기다리고 있어요.

 

‘아이들이 기다린다니. 우리도 널 기다렸단다.’

 

그 애들이 절 기다려요.

 

‘우리도 널 기다렸어.’

‘이제야, 이제야.’

 

그동안 감사했어요.

 

‘안 돼.’

 

이제야 두 분을 뵙게 되었네요.

 

‘이제야 널 만나게 되었는데.’

 

남자가 눈가를 닦으며 묻는다.

 

어디로 간다는 거니.

 

소년이 담담이 이야기한다.

 

아이들의 왕국이요.

 

그곳이 너의 집이니?

 

네.

 

눈가를 찌푸리며 꼭 감는다. 남자의 눈앞이 캄캄해지다 다시 밝아진다. 그의 입가가 무언가를 묻고 있지만 단어가 되지 못한다. 문장이 채 되지 못하여 길을 잃은 것들이 자꾸만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그가 핸들을 돌린다. 차는 집으로 가지 않았고, 길들은 제 모습을 감추어 둘을 가려주었다. 갖은 빛이 비치는 세상의 틈에서 둘만은 꼭 가려주었다. 남자의 쥐색 자동차는 근처의 패스트푸드 점에서 멈추었다. 남자가 그를 부축하여준다.

 

잠시 배 좀 채우고 가자꾸나.

 

잠시, 아주 잠시만. 남자가 소년에게 절박하게 말한다. 그에게 잠시 시간을 달라고 간절하게 말한다. 소년이 답한다.

 

알겠어요.

 

남자는 버거 하나와 주스 두 잔을 주문하였다. 그가 소년의 옆으로 가 앉았고, 소년은 얌전히 그가 옆에 앉기를 기다려주었다. 옆으로 나란히 앉는다. 어물어물. 입가가 자꾸만 갈피를 잡지 못해 암울거린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

 

사실 말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남자는 소년을 위해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주었다. 소년이 신기한 듯 버거를 이리저리 굴려본다.

 

사실은 네 엄마랑 말이다.

 

소년이 버거를 입에 문다. 소스와 빵이 혀 위로 녹아 내려 마구 번진다.

 

널 포기하려고 했단다.

널 찾는 데에 너무 지쳐있었거든.

 

우물우물. 소년의 입이 음식물을 씹는다. 남자는 그런 그에게로 그저 말을 붙이고, 오리고, 다시 붙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힘이 들었단다.

널 처음 잃어버렸을 때, 그 때가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우리가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누나랑 살아요.

 

소년이 주스를 한 모금 쪽 빤다.

 

누나랑 함께 살아요.

제가 없지만 누나가 있잖아요.

 

남자는 묵묵해졌다. 말을 붙이지 못했고, 오려야할 단어도 찾지 못하였다.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아주 몰라, 남자는 그만 아뜩해졌다. 그런 그에게 소년은 천진하고도, 담백하게만 답을 하였다. 자신이 없는 자리에서 누나를 놓으라 한다. 자신이 없는 그곳에서 그 아이, 연을 잡아두라 한다. 남자가 창을 본다. 매장으로 환히 들어오는 구름떼로 시선을 올린다.

 

맞아, 그래 네 말이 맞다.

그게 우린, 우리는 말이다.

 

남자가 아프게 말한다.

 

우리는 정말 못된 사람이었단다.

정한아 우리는 아주 몹쓸 사람들이란다.

 

남자가 말한다.

 

너무 무서웠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무서웠어.

 

네가 없는데, 네 엄마는 울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네 누나는 미안하다면서 빌고 있고

그런데도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어.

난 말이다.

 

남자로 비가 내린다. 이슬이 아주 내려 그곳만 잔뜩 먹구름이 졌다. 매장의 음악이 큰 덕에 다행히 누구하나 그를 보지 않았다.

 

난 너무 무서웠단다.

 

그러고는 울음 터뜨리는 것이다. 아이처럼. 꼬마처럼. 잔뜩 겁을 먹어 엄마를 찾는 유년의 놀이터에서처럼.

 

그 애를 그렇게 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그 애라도 지켰어야 했는데.

그냥 그렇게 버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으아아아앙. 봄비가 내린다. 너무도 내려 그만 가을이 오려는 계절에서 남자의 뺨이 꽃을 터뜨린다. 밝게, 발갛게. 아득히도 내린다.

 

그 아이를 그렇게 버려두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나도 무서웠단다, 너무 무서웠단다.

 

소년이 남자의 옷깃을 붙잡는다. 터진 방울방울들이 자꾸만 흐른다. 터진 것을 메울 수가 없어. 남자는 그저 담겨있던 제 전부를 털어놓기로 하였다.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니.

네가 다시 떠나면 난 어떻게 해야 하니.

정말 모르겠단다, 정말, 정말.

 

남자가 바닥으로 쓰러진다. 매장으로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점원들이 그를 부축하려 한다. 남자는 소년의 바짓가랑이를 잡고서 보채고, 눈물을 터뜨렸다.

 

정한아, 나는 이 아빠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니.

 

자꾸만 우는 그를 안으며 소년이 이야기한다.

 

누나를 만나러 가요.

함께 집으로 가요.

 

그러고 둘은 비가 되었다. 한 토막 지나는 계절이 되었고, 창으로 지나는 삶이 되었다. 숨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그 둘은 여전히 살아있다. 살아있기에 잡을 수 있어. 둘은, 남자와 소년은, 아니 아빠와 아들은 함께 누나를 만나러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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