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노인은 마을의 경찰서로 걸어가 그 소녀에 대해 물었다.

 

(글쎄요, 영감님.)

(제 생각엔 난민 같은 데요.)

 

(입양 보호국이라도 연락해봐!)

 

(거기도 연락을 넣어봤죠.)

(하지만 실종된 동남아 여자아이는 없답니다.)

 

(말도 안 돼!)

(그럼 그 애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했다는 거야!)

 

경찰관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럴지도 모르죠.)

 

노인은 경찰서를 나오며 성질을 부렸다. 그런 어거지도 안 될 말을 경찰이 꾸민다고 역정을 낸 것이다. 노인은 고민에 빠졌다. 저 아이를 어쩐다 말인가.

 

노인은 연을 불러 집안에서 햇볕이 가장 잘 드는 부엌으로 가 마주 앉았다.

 

(이름이 무어냐.)

 

연은 대답하지 못한다.

 

(나이는 어떻게 되는데?)

 

연은 대답하지 못한다.

 

(그럼 여기 어떻게 오게 된 거냐.)

 

대답하지 못한다.

 

(이런.)

 

연은 독일인이 아니다. 그런 사실이 노인에게는 조금 버겁게 다가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노인은 얼굴을 쓸었다.

 

(됐다, 가 보거라.)

 

노인은 연을 두고서 서재 문을 열었다. 따각거리는 낡은 문틀이 뒤뚱거리는 문으로 말이다. 노인은 방문을 꼭 닫고서 의자로 몸을 묻었다. 다시 저 애를 경찰서로 넘겨야 하나. 밭을 망친 불량배인 줄 알았던 아이는 이름도, 정체도 모르는 소녀가 되어 있었다. 노인은 경찰관의 말을 떠올렸다. 정말 난민인 걸까. 그의 서랍이 상자를 하나 토한다. 두꺼운 종이 상자는 세월이 묻어 얼룩덜룩했고, 겉면이 찌그러져 너덜거렸다.

 

그 안으로 노인은 푹 빠지고 말았다. 사진과 몇의 종이. 우편도 있고 편지도 있다. 다 낡은 생일 선물이 누워있고, 학교 상장이 닳은 기침을 하였다.

 

‘레아’

 

노인은 이름을 쓸었다. 온통 그 이름으로 가득한 상자의 세월에 노인은 그만 푹 빠지고 만다.

 

 

 

낯선 곳에서. 꼭 같은 밤하늘이 있지만 코끝으로 다른 내음들이 나는. 그러한 곳에서. 연은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은 자신을 이루지 못했다. 텅 빈 느낌이 들었고,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언제고 해야 했을 일을 연이 하려 한다. 가족. 그 두 글자가 아파. 연은 그만 하려 한다. 이빨 사이로 호박 수프의 찌꺼기가 남아 있다. 노인에게 묵독의 감사를 드린다. 식탁보와 옷걸이. 연이 발판을 오른다.

 

노인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오래도록 자신을 괴롭힌 염증 때문이었다. 뼈 사이의 연골이 닳았고, 그 부위로 염증이 났다. 특히 비가 올 때면 더 심해졌다.

 

비가 오겠군.

 

달이 드는 창으로 커튼을 젖혔다. 밤으로 먹먹한 하늘이 드리운다. 구름이 짙게 끼어 별과 달이 깜깜하였다.

 

이런.

 

비가 오면 집안이 추워질 것이다. 아래층에서 혼자 누워있을 아이가 걱정되었다. 장작이라도 때기 위해 침대 가를 짚었다. 삐걱이는 나무 침대. 덜컥이는 마루. 조금씩 찰랑이는 창틀. 빗방울이 창유리로 점점이 부딪힌다. 노인은 추위에 떨고 있을 아이를 위해 서둘러 층계참으로 다리를 끌었다.

 

끼익.

 

그리고 그 모습을 노인은 보지 말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연은 보이지 말아야 했다. 아주, 아주 신이라도 잠깐 세상을 꺼두는 게. 아주 잠깐은 두 사람에게 좋지 않았을까. 그렇기엔 마침 드는 바깥 차량의 헤드라이트는 밝았고, 마침 운전자는 차를 세워 전화를 해야 했다. 하얀 전조등의 빛이 노인의 집을 채웠고, 연의 목이 식탁보에 감겨 있었다. 옷걸이가 삐걱이고 식탁보는 억세게 접혀 있다. 연이 알아챌 수도 없이 노인이 뛰쳐 든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이게 뭐냐고!)

 

노인이 연의 손을 뿌리치며 식탁보를 빼앗았다. 그가 난리를 피우며 거세게 소리쳤다. 연은 바닥으로 고꾸라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노인이 식탁보를 쥐고서 집 마당으로 나갔다. 추적추적 비가 내렸고 노인의 무릎 연골로 물이 차오른다.

 

(네가 뭔 짓을 한 줄 알아!)

(네가 뭔 짓을 한 지 아냐고!)

 

넘어진 연에게로, 문가에서 서로 세 발짝씩 떨어진 곳으로.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아느냐 말이야!)

 

그러고 연은 울고 마는 것이다. 빗줄기가 노인의 어깨를 적시고, 머리 위로 수 십 가지의 물줄기가 흐른다. 연은 울고 노인은 비를 맞았다. 전화를 하던 운전자가 고개를 내밀어 경찰에게 신고한다. 연은 울고 노인은 비를 맞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비극은 아니어서 그만, 그만. 두 사람으로 빛이 덮이었고 비는 늦여름의 것으로 내려와 흙 위를 따듯하게 덮어주었다. 내리는 것이 비가 되어 밤새 그치지 않는다.

 

 

 

 

 

‘레아 레베르크’

 

비행기 표가 달랑거린다. 수속은 끝났다. 비행기도 무사히 착륙하였고 날씨도 맑다. 하지만 두근대는 심장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도로 가장 앞에 있는 택시를 잡았고 기사가 고개를 넘겨 도착할 주소를 물어온다.

 

(그게.)

 

입을 달싹인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다. 고향의 이름. 그곳은 좁고 외곽에 있는 쓸쓸한 곳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발음이 맞는지 신경을 쓰며 떠듬떠듬 주소를 말한다.

 

(츠바흐 거리요.)

(그곳에서 6번 가요.)

 

택시가 출발한다. 레아는 집을 나온 지 40년 만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레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처음 만난 것은 마을의 경찰관이었다. 그는 젊었으며, 장대가 높았고, 사려 깊고 여유 있는 인물이었다.

 

(한스 씨는 독감에 걸리셨습니다.)

 

(네?)

 

(고열이 있어 누워있으시죠.)

 

(병원에 있나요?)

 

(아니요, 병원에 가셔야 하는데, 그게.)

 

경관이 입을 찡그리고 눈동자를 굴린다. 그는 한스 씨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 노인이라면 집에서 떨어진 순간 누구든지 찾아내 응징을 하고야 말 것이다.

 

(성격 아시죠?)

 

레아는 눈을 부릅뜨고서 고개를 저었다. 한스 씨의 딸이 아니랄 까봐, 아버지를 닮아 성격이 드세게 드러나 있었다. 경관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

 

(걱정 마세요, 응급실에 가 있으니.)

 

(정말인가요?)

 

(재미없는 농담이었네요, 죄송합니다.)

 

경관은 빠르게 사과하였다. 레아는 병원 주소를 받아 적으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독감에 걸리신 거죠?)

 

경관은 우물쭈물해 하며 대답을 마지못하여 해주었다.

 

(비를 맞았어요. 그것도 오랫동안.)

 

레아가 고개를 든다. 그녀는 이해를 하지 못한, 아니 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는 짐작이라도 가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아마 울타리 수리하느라 그런 건가요?)

 

그리고 경관은 의외의 대답을 꺼내 놓는다.

 

(아니요, 그건 아닙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경관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간밤에 소동이 있었거든요.)

 

(소동이라뇨, 강도라도 든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그게.)

 

경관은 병원 환자실에 한스 노인 말고 또 한명의 사람이 더 있을 거라 주의를 주었다.

 

(아빠에게 다른 사람이요?)

 

그 괴팍한 노인의 곁에 사람이라니. 경관 역시 그녀의 의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경관은 그간 짧은 날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설명하여 주었다. 이름도, 출생도 모르는, 어쩌면 난민일지도 모르는 아이 하나가 노인의 밭에 침입한 일. 그녀를 노인이 데리고 갔고, 그 아이가 그만.

 

(그 애는 그 병원에 있나요?)

 

(네, 아마 그럴 겁니다.)

 

짐 가방을 챙기고 레아는 서둘러 대기하여놓은 택시로 몸을 실었다. 그녀가 병원 주소를 말한다.

 

레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있을 병원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리가 부셨고, 늦 노을이 닿은 대리석 바닥이 반짝거린다. 병동을 가로질러 입원실로 닿는다. 레아가 문을 연다. 반듯이 누워있는 자신의 아빠가 보인다. 늙은 몸과 굽은 팔과 다리. 피부는 햇살에 그을려 까맸고 주름은 노을 져 한참을 너울거린다. 그리고 옆으로 소녀 하나가 병상에 엎드려 있다. 이름도, 출생도 불명 투성이인 아이 하나. 소녀의 등을 쓴다. 레아의 손에 소녀는 깜짝 놀라 등허리를 편다. 그녀가 소녀에게로 말한다.

 

(당신이 제 아빠를 구한건가요?)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머뭇거린다.

 

(아니면 제 아버지를 다치시게 하신건가요.)

 

소녀의 손이 꼼지락 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소녀는 독일어를 할 줄 모르는 듯 보였다. 레아는 소녀의 손을 잡고 끌었다.

 

(먼저, 집으로 가죠.)

(점심은 먹었나요?)

 

레아의 자동차로 소녀가 탄다. 두 사람은 다정히 집으로 돌아갔다. 레아와 함께 돌아온 소녀는 여전히 말 한마디 하지 못하였다. 소녀는 부엌 식탁으로 빛을 맞았고, 오래전의 집은 기억으로 덮이어 꽤나 옛적의 모습을 남기고 있었다. 아빠와 함께 책을 읽던 서재도 그대로였고, 모닥불을 받으며 산타 이야기를 듣던 거실 마루도 그대로이다. 스무 살로 들어서며 미래로 인해 망가진 자신의 방도 그대로였다. 소리를 지르고, 부딪히고, 악을 지르며 서로에게 고성을 집어던지던 그 모습 역시 그대로이다. 집은 자신의 모든 모습을 담고서 이제까지 버텨온 듯 싶었다.

 

(이야기 들었어요.)

 

밭을 망치는 줄 알았던 아이. 말도 못하고, 자신의 소개도 들려주지 못하는 아이. 노인의 밤으로 몰래 식탁보를 쥐던 아이. 부엌 식탁으로 보가 치워져 발가벗겨져 있었다. 레아는 식탁을 쓸었다. 나무의 결이 손가락 끝으로 느껴진다. 마치 숨을 내쉬듯이 나무가 내는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

 

(왜 그랬어요?)

(왜 자살을 하려 했나요.)

 

레아의 물음이 그 소녀에게로 닿았을까. 아니면 닿지 못하였을까. 레아가 어찌되었든 소녀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레아는 소녀의 그러한 반응에도 짐작이 가는 듯 저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었어요.)

(고집불통에, 다혈질이셨고, 손이 자주 올라가는 분이셨죠.)

 

그녀가 제 뺨을 때리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요, 그런 밤에는 정말 수도 없이 울었답니다.)

(제가 막 성인이 되었을 때,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어요.)

(정확히는 그에게서 떠나고 싶었죠.)

(하지만 그는, 제 아버지는 그걸 원하시지 않으셨어요.)

 

집이 그녀의 말로 천천히 눈을 감는다. 집은 과거를 떠올렸고, 추억을 상기하였다. 뺨이 불그스레지듯 마루로 흐르는 햇살이 붉게 물든다. 저녁이 된다. 집은 잠을 자려는 듯 보인다.

 

(우리는 싸웠어요.)

(한 쪽이 파괴되고, 좌초를 할 때까지요.)

(집은 고성과 악다구니로 가득 찼고.)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도 많은 상처를 주었었죠.)

(저와 아버지 둘 모두 각자의 목소리에 눈이 멀었어요.)

(어느 한 쪽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 누구도 먼저 항복하지 않았죠.)

(집은 전쟁터였고, 싸움은 끈질기게 계속되었어요.)

 

그녀가 소녀를 본다. 소녀 역시 그녀를 보았다. 서로 다른 두 나잇대의 소녀와 여인이 마주 본다. 여인은 얌전히 웃어 보였다. 그리웠지만, 아픔은 남아 있다. 웃음은 꼭 그녀를 위한 것 같아, 다른 누구의 틈은 끼어들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죠.)

 

그녀가 자신의 목덜미를 들어 상처를 보인다. 얕지만 길게 목덜미를 따라 붉은 줄이 이어져있다. 그녀가 말한다.

 

(제가 목을 매달았어요.)

 

상기된 추억이 식어 땅거미가 진다. 붉게 오르던 마루는 차게 식혀있었고 밖으로 밤하늘이 차오른다.

 

저는 밤중으로 몰래 노끈을 챙겼어요. 마켓에서 파는 걸 들키지 않으려 가방 속에 깊숙이 숨기고 다녔죠.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몰랐고, 저는 제 자신을 몰랐어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 그땐 그저 서로에 대한 분노만이 남아있지 않았죠. 저는 죽기를 바랐어요. 아니, 제가 죽은 모습을 그가 보길 원했죠. 그땐 그게 복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소리가 나게 의자를 걷어차며 목을 매달았고, 생각한 대로 그가 내 방으로 올라와 문을 열어젖혔죠. 당시 저는 노끈을 너무 세게 묶었고, 의자를 걷어차며 중심을 잃고 말았어요. 그가 소리를 지르자 저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 버렸죠. 안타깝게도 죽지는 못하였어요, 대신. 여기 이 상처를 얻게 되었죠. 목으로 감긴 줄이 당겨지며 목과 척추를 다친 거예요. 2년여 간을 식물인간으로 살았고, 간신히 기적이 일어났죠. 사실 그때에 저는 사망선고가 내려진 거나 다름이 없었거든요. 하나님이 보아주신건지, 아님 운이 좋았던 건지. 재활 훈련은 순조로웠고, 건강 회복도 빨랐어요. 의사 선생님이 저를 보며 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놀릴 정도로요. 그리고 아버지는, 그 분은.

 

무어라 말을 해야 할까요. 그 분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고, 달라지신 건 별로 없었죠. 저는 결국 그 분의 곁을 떠나 도시로 나갔고, 아버지는 집에 혼자 남겨지셨어요. 그래도 단 하나 기억하는 건 제 아버지가 혼자 남겨지셨을 적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셨다는 거예요. 보넷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였죠. 그가 그 고양이에게는 잘 대해줬을 까요. 아님 결국 저처럼 떠나버렸을까요. 그 분은 절 어떻게 생각하실 까요. 집을 떠난 무정한 자식이라고 생각하실까요, 아님 그저 그 상처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었을까요. 그 분이 저에게 상처를 준 것처럼, 저도 그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그를 용서한다거나, 제가 그에게 용서를 구한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에요. 이건, 용서가 아니에요.

 

그녀가 소녀를 본다. 소녀의 묵묵한 입으로 여인의 말이 다가온다. 똑똑 두드리며 들어가기를 기다린다. 그래 기다린다.

 

(이건, 용서가 아니에요.)

(바로 기다림이죠.)

(저를 위해서, 그를 위해서, 우리 서로를 위한 기다림 말이에요.)

 

레아의 말이 마친다.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아주 또렷이 달빛이 들어 두 사람의 주위를 밝히었다. 두 사람은 오래전의 기억들이 얕게 가라앉은 마루에 있었다. 달과 별이 드는 그런 창공으로 있었다.

 

끼익.

 

문이 열린다. 노인의 집으로 누군가 문을 열어 소녀를 부른다.

 

(어머.)

 

레아가 고개를 들어 반갑게 맞는다.

 

(손님이군요.)

 

레아가 소녀의, 연의 어깨로 손을 올린다. 짧지만 따스하게 말이다.

 

(당신을 찾는 것 같아요, 그렇죠?)

 

문간으로 연이 고개를 든다. 그곳으로 소년이 서있다. 아이가 하나 서있다. 왜 그곳으로 서있을까. 그렇게 밀어내어 상처를 주고 말았는데, 도망치고 말았는데. 왜 그런 자신을 찾아와 주었을까. 레아가 밝게 웃으며 자리를 비켜준다. 소년이 다가온다. 연에게로 다가간다. 소년이, 오래전 잃어버린 동생이, 장난감 왕국으로 떨어져 가족을 기억조차 못하는 왕자가, 그런 그의 사이에서 광장에서 잡았던 누나의 손길만은 꼭 기억에 남긴 아이가.

 

(집으로 가요, 함께 가족에게로 가요.)

(아버지께는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레아가 등을 떠밀고 연은 동생의 손을 맞잡았다. 6분의 1로. 중력이 먼 행성의 표면으로. 발자욱이 옅게 피어오르다 꺼지는 달의 표면으로. 아득히 까만 곳이 별과 달로 밝혀져 끝내는 서로를 찾게 되는 그런 곳에서. 그런 집에서.

 

누나, 이제 집으로 가자.

 

그래 집으로. 연이 동생의 손을 잡고서 노인의 집을 나선다. 처음 떨어지게 된 노인의 정원으로 걸어갔고, 적양파 밭을 지난다. 자취를 감추었던 포도나무 넝쿨 다리는 수풀 사이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이 뒤를 돌아본다. 여자는 집에 있기로 한 듯 하였다. 가만히 그녀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듯이. 연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걸어갔다. 동생에게로, 다리에게로, 자신의 고향에게로, 마을과 거리 혹은 전봇대에 앉은 새들에게 까지. 연은 눈을 감아 자신의 숨을 들이마셨다. 꽉 잡은 온기가 그녀의 등을 안아 아주 조금은 편안함을 느낀다. 왕자와 소녀가, 아니 누나와 동생이 마침내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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