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포고>

 

나는 가만히 앉아 그 무드등의 말을 곱씹었다. 홍감 기사가 몸을 빼꼼 내밀어 묻는다.

 

괜찮아?

 

응.

 

무언가 진정이 되었다. 정리도 되는 기분이다. 하지만 내가 그 애를 볼 수 있을까. 침대의 가로 홍감 기사가 다가와 곁으로 앉는다.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산책을 하고 싶어.

 

홍감 기사는 잠이 든 두더지 씨를 건네받으며 부축하여주었다.

 

그래, 갖다와.

 

밤이었다. 마을 곳곳으로 불이 밝혀지고 작은 촛불들이 아이들을 감싼다.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내 발소리를 들은 작은 불씨들이 아장아장 걸어온다. 검은 숲의 지하굴에서 만난 꼬마 불씨들이 한데로 모여 나를 반긴다. 나는 아이들을 안아들고서 갑옷을 입고 모여 있는 기사들에게로 갔다. 그들이 나를 막아선다. 나는 고개를 들고서 또박또박 말하였다.

 

왕자를 만나야겠어요.

 

장난감과 강아지 기사들이 서로를 본다. 이내 코웃음을 친다. 그들은 내 말에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더욱 목소리를 키운다.

 

왕자는 어디 있나요, 여기 있나요?

 

투구를 쓴 장난감 기차가 내 몸을 뒤로 밀친다. 그들은 나를 상대도 해주려 하지 않았다. 나는 성이 났다. 윽박을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더 이상 화를 내서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믿고 싶었다. 내게 찾아온 그 무드등의 말을 믿고 싶었다. 어쩌면, 나도 어쩌면.

 

딴짓을 하던 기사들이 갑자기 일어나 열을 맞추어 선다. 그들은 경례를 붙이었고 여관의 입구로 길을 틔웠다. 어안이 벙벙한 내 앞으로 하얀 고양이 하나가 계단을 내려온다. 그녀는 작대기를 이리저리 짚으며 허리를 곧게 펴 걸어왔다. 눈을 감고 있던 그 고양이는 어쩐지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그녀의 지팡이가 내 다리에 걸린다.

 

뭐지?

 

기사 하나가 얼른 나를 들어 올려 옆으로 치우려 한다.

 

이거 놔!

 

이런, 단장 님, 그게.

 

아우성치는 나에게로 하얀 고양이가 손을 들어 보인다. 복슬거리는 하얀 털 사이로 분홍색 발바닥이 드러난다.

 

잠깐.

 

고양이가 나에게로 허리를 숙인다.

 

누구시죠?

 

저는.

 

코를 킁킁거린다.

 

인간, 주인님이십니까?

 

맞아요!

 

얼른 대답했다. 고양이가 단정히 웃으며 묻는다.

 

그런데 이곳에 무슨 일이시죠?

 

나는 자신 있게 소리쳤다.

 

왕자를 보러 왔어요!

 

고양이의 얼굴이, 처음 계단을 내려올 때 얼굴처럼, 구겨진다. 예감이 좋지 않다. 나는 고양이의 심기가 더 거칠어지기 전에 말을 덧붙였다.

 

난 그 애의, 아니 왕자의 가족이에요.

 

고양이의 눈썹이 한 쪽 올라간다.

 

그러십니까?

 

네!

 

그녀는 턱을 쓸며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웃으며 답하였다.

 

주인 분을 의심하기는 싫지만

쉽사리 믿기는 힘들군요.

 

전...!

 

내가 말을 더 하려 하자, 고양이가 내 말을 막았다.

 

그러지 말고, 주인님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시지요.

 

나는 지지 않고 한껏 몸을 펼쳐 그 고양이의 눈앞으로 목소리를 드높였다.

 

그 애가 절 불렀어요!

바로 그 애가 저의 아이라구요!

 

그녀가 내게로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 붙인다. 그 탓에 그녀의 하얀 털과 수염들이 내 뺨을 간질였다. 그녀가 주의를 준다.

 

헛소리!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맞받아쳤다.

 

진짜예요, 그 애는 내 동생이야!

 

그녀는 내 말을 더 들어볼 것도 없다는 거 마냥 일어나 손가락만을 까딱였다. 기사들이 정중히 내 팔을 잡아 번쩍 들어올린다.

 

이거 놔!

 

소리를 질렀다. 기사들 사이에서 버둥거리고 있자, 꼬마 불씨들도 나서서 기사들의 얼굴에 날아들어 함께 맞서 싸워주었다. 우리는 한데 뒤엉켜 난장판이 되었다. 몸을 비틀고 다리를 허공으로 힘껏 찬다. 하얀 고양이는 그런 우리들의 위로 우뚝 서서 물끄러미 관망만을 하였다. 이내 그 고양이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기사들을 물리었다. 진이 빠진 기사들이 내 몸에서 떨어져 두 손을 들었다. 하얀 고양이가 다리를 수구려 나를 본다. 코를 찡긋거리며 상냥하게 말한다.

 

좋아요, 주인님의 말대로 해드리죠.

 

나는 눈이 크게 떠졌다. 어쩌면 맑게 빛도 나지 않았을까.

 

단!

 

그녀가 앙칼진 손을 들어 내 면전에 들이댄다. 나는 긴장한 채 몸을 뒤로 밀었다. 엉덩방아 찧고 만다. 하얀 고양이의 말이 귀로 와 박힌다.

 

지금 왕자님은 외출 중이라서 이곳에 없답니다.

그런데 왕성이 숲의 아이들에게 점령당했지 뭐예요.

 

고양이가 내 손을 찾아 덥석 잡는다. 푹신하다.

 

당신이 가서 그 불쌍한 아이들에게

이 말만 전해주세요.

 

고양이가 웃는다.

 

그럼 왕자님을 보게 해드리죠.

 

어떤 말이요?

 

고양이가 꼿꼿하게 몸을 펴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인다.

 

‘너희들은 그 성에서 절대 살아서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 고양이의 말은 선전포고였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전하려는 걸까. 마을과 동떨어진 곳으로 성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사과나무가 길게 이어지고 둘레로 낮은 돌담이 죽 이어져있다. 낙엽이 진다. 사과나무들에 둘러쌓인 성은 조금 크지만 아이들을 위해 푹신한 발판과 솜이불들로 몸을 덮고 있었다.

 

부드러운 겉옷을 껴입은 성의 머리 위로 밤이 드리우고, 불하나 들지 않는다. 숲의 아이들이 숨을 죽이고서 이 모든 일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저 아이들에게 그 고양이의 말을 전할 수 있을까. 나는 손을 꼭 쥐었다. 정말 그 애가 날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을까. 혹여 마을의 밤으로 울어주지는 않았을까.

 

나는 그 애가, 옛적의 동생이 보고팠다. 그 애를 만나면 먼저 어떤 말을 건네야할까. 그 애한테 해줄 여러 말과 인사들을 세며 돌담길을 따라 걸어갔다. 마을 집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성은 멀리서 본 것보다도 더 폭신하고, 아늑해보였다. 나는 숲의 아이들이 숨어 있는 성문으로 다가갔다. 문은 두 짝이었고 제법 두꺼운 나무로 만들어져있다. 내 키보다 머리 하나가 더 높은 높이에서 문의 고리를 쥐었다.

 

멈춰!

 

성으로 새된 비명이 질러 나온다. 내가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들자 성의 창들로 잔뜩 숲의 아이들이 눈을 번뜩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겁에 질린 채 말하였다.

 

우리는 숲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두 눈을 내리깔고 숨을 골랐다. 검은 숲. 나무덩쿨들과 불씨. 뿌리 감옥과 납치된 아이들. 그리고 주인들을 장난감 취급이나 하던 여왕. 버려진 아이들의 여왕. 그녀도 여기 있을까. 목소리를 내보려 허파로 공기를 가득 쓸어 담는다. 난 만나야할 사람이 있어. 그 애를 만나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어쩌면 집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냥 나도 여기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애가 날 기다리고, 날 그리워하고 있었다면. 그렇다면.

 

너희들이 숲의 아이들이니?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은 지하 굴에서 보았던, 전의 아이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 여왕을 따르던 이들은 더 험악하고, 무뚝뚝하였었다. 하지만 성으로 숨어든 숲의 아이들은 그저 겁을 먹고 벌벌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말했다.

 

너희들의 여왕은 어디로 갔니?

 

나에게 바늘을 찔러 넣고 불씨들에게 둘러싸여 타들어가던 그녀. 그 여자인형. 숲의 아이들이 웅성거린다. 그들은 우물쭈물하며 말하기를 꺼려한다. 빨간 눈동자들은 무섭게 번뜩이다가도 웅성거리며 서로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말해, 말하지 마. 서로 다투고 있다. 마구 넘실대던 그들의 틈으로 한 아이가 말한다.

 

여왕의 아이들은 숲으로 갔어!

 

맞아, 숲으로 돌아갔어!

 

바보들아 죽고 싶은 거야?

 

그녀가 알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나는 그들의 어리숙한 모습으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아주 약간은 용기를 얻고서 다시 물었다.

 

그럼 너희들은 누구니?

 

우리는 숲의 아이들이야!

우리를 숲으로 보내줘!

 

간곡히 부탁을 한다. 그들 자신의 절박한 부탁에 스스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더욱 용기를 내어 물었다.

 

너희들도 아이들과 주인들을 다치게 했지?

 

나는 홍감 기사 이야기를 꺼내었다. 저 아이들이 여왕을 따르지 않는다 한들, 저들 역시 숲의 아이들인 건 분명했다. 그들은 정말 그리워할 존재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은 걸까. 머리가 깨진 무드등이 말하였다. 숲의 아이들 중 몇몇은 그저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도 있다고. 내가, 아니 마을이 뭔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은 저 숲의 아이들도.

 

맞아.

 

누군가 성의 문을 열어 달빛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다. 흉측한 화상자국의 강아지. 검은 여왕과 함께 있던 아이였다. 그녀, 망젤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나에게 똑바로 말하였다.

 

네 말이 맞아.

우린 마을에 있던 아이들을 다치게 했어.

그건 우리 잘못이야.

변명할 여지도 없이 말이야.

 

나는 망젤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니야, 그건 너희들의 탓이. 내가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어두운 하늘로 아우성들이 일어난다. 서로 부딪히고, 앞장 서 다가온다.

 

미웠으니까, 우리는 주인들이 미워!

그 애들은 좋은 주인을 만났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어!

증오해, 난 주인을 증오해!

어째서 인간들을 그리워하는 거야!

난 그에게 상처만을 받았어.

마을 녀석들은 꼴불견이라고!

 

아우성이 점점 더 커져 떨어진 마을에 까지 닿으려 한다. 망젤은 그들의 앞에서 묵묵히 서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는 인간을 미워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왜 그녀는 여왕의 곁에 있었던 걸까.

 

넌 왜 숲에 사는 거야?

 

망젤은 까만 눈을 들어 달빛을 받았다.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아웅다웅을 등에 이고서 대답한다.

 

내겐 이제 그리워할 것이 남아 있지 않으니까.

 

그 무드등과 같은 말이다. 망젤은 그저 그렇게만 말하였다. 나는 하얀 고양이의 전언을 접어두었다. 대신 이 말을 전하였다.

 

그렇다면 약속해줘!

 

아이들의 분노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나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얘들아 내게 약속해줘!

 

수런거림이 멈춘다. 고개와 허리를 빳빳이 피고서 외치었다.

 

더 이상, 아이들과 싸우지 않는다면 숲으로 돌려보내줄게.

 

악을 쓰던 아우성들이 저들끼리의 숙덕거림으로 바뀐다. 옆 아이들과 말을 나누는 그들은 콧방귀나 비웃음을 흘리었다. 망젤도 그들을 따라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 할 거야.

 

망젤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저 아이들의 상처는 생각보다 깊어.

함부로 치유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야.

 

창으로 숲의 아이들은 빨간 도끼눈을 뜨고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같은 말을 합창하듯 소리치고 있다.

 

우리는 버림받았어!

우리는 잊혀졌어!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아!

 

아니야, 아니야. 언젠가 무드등이 남긴 말이 발치로 맴돈다.

 

‘이미 이 세계에 온 것부터가 누군가 너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증거야.’

 

입을 열었다. 나의 말들이 번진다. 숲의 아이들이 치뜬 날카로운 도끼눈의 위로 번진다. 내가 말한다.

 

너희들이 이 세계에 온 것부터가,

누군가 너희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증거야!

 

아이들의 도끼눈이 누그러진다. 아이들이 내 말을 믿어주기를 바랐다. 내가 그 무드등의 말을 믿기로 하였듯이.

 

둥, 둥.

 

북소리가 먼 언저리에서부터 들려온다. 숲의 아이들이 다시 몸을 떤다. 돌담길을 따라, 낙엽이 지는 사과나무를 따라 병사들이 행진하고 있다. 행렬의 앞으로 그 하얀 고양이가 발을 절며 오고 있었다. 나는 다급하게 말하였다.

 

일단 모두들 도망쳐야해요!

여기에 있으면.....

 

내가 팔을 들어 허우적거리자 병사들이 활을 쏘고 돌멩이를 던지어 대었다. 성을 두드리고 창들이 박살난다. 유리조각들이 쏟아져 바닥 위로 흩어진다.

 

안 돼!

 

비명소리가 묻힌다. 숲의 아이들이 성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소리에, 그들이 내는 고성과 소란에. 망젤 역시 겁을 먹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행진을 하던 병사들이 뛰쳐나와 도망을 치는 아이들을 붙잡는다. 횃불이 아이들을 때리고, 판금 갑옷이 아이들을 막아 세운다. 그 하얀 고양이는 도도한 자세로 앞장서서 나와 내게로 향하였다. 그녀가 손을 드ᅟᅳᆯ어 단칼에 명령한다.

 

저들을 붙잡고 묶어 놓도록!

 

예!

 

고양이의 말을 들은 병사들이 숲의 아이들을 잡고 짓눌러 밧줄로 묶는다. 나는 망젤에게로 달려드는 병사들을 막으며 소리 질렀다.

 

그만둬!

 

하얀 고양이가 다시 손을 들어 병사들을 멈추어 세운다. 얕은 비명들이 꺼지며 침묵이 가라 앉는다. 그녀가 먼발치에서 날카롭게 말한다.

 

당신은 방해만 되는군요.

잠시만 비켜주시겠습니까, 주인님?

 

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줘.

 

나는 부탁하였다. 하지만 그 하얀 고양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병사들을 시켜 아이들을 붙잡는다. 그녀는 내 부탁을 들어줄 마음 따위 있지도 않은 것이었다.

 

저기, 보넷경?

 

내 말은 듣지도 않은 채 하얀 고양이가 병사들을 움직이려는 찰나, 천 무더기를 뒤집어 쓴 무언가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었다. 병사들은 그를 보자 차렷 자세를 취하기 바빴다. 하얀 고양이 역시 놀란 표정을 짓고서 그를 맞았다.

 

왕자님?

어째서 이런 곳에.

 

그녀의 말과 함께 천 무더기 사이로 얼굴이 드러난다. 갖가지 색의 베일을 벗으며 소년이 나타나 나와 눈을 맞춘다. 나는 그의,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나에게로 말한다.

 

어떻게 당신의 말을 믿죠?

 

나는 손을 꼭 쥐었다. 숨을 몰아쉬며 당당히 말하려 애쓴다.

 

저 아이들에게 증명할게.

 

숲의 아이들과 병사들이 한데 귀를 쫑긋거린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하였다.

 

주인분들이 너희들을 잊지 않았다는 걸.

내가 보여줄게.

 

왕자라 불리는 소년이, 나의 옛적 동생이 나를 지나쳐 쓰러져 떨고 있는 숲의 아이들의 편으로 선다. 그가 하얀 고양이에게로 말하였다.

 

보넷 경, 오늘은 물러나도록 해요.

 

하얀 고양이가 분에 이기지 못하고 악다구니를 쓴다.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저들을 보세요, 숲의 아이들입니다!

우리를 죽이려 했다고요!

 

소년이 내 곁으로 선다. 옆에서 정중한 말투로 나를 가리켜 보인다.

 

이 분의 말을 한 번 믿어 봐요, 보넷 경.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고 부푸는 하얀 고양이는 검을 팽개치며 등을 돌리고 만다.

 

젠장!

 

신경질을 부리며 그녀는 병사들과 함께 마을로 돌아간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다가 나는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소년의 얼굴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 격식을 차리며 이리 말을 건네었다.

 

이제 어쩔 셈이죠?

 

정말 어찌해야 좋을까. 그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숲의 아이들을 위한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숲의 아이들이 발치로, 주위로, 나를 감싸 모여든다. 아이들 중 작은 크기의 곰인형이 손을 들어 내게 뻗는다. 아이가 말한다.

 

정말 그 애가 날 그리워해줄까.

 

털이 빠지고 먼지바람들에 헤져 눈알이 바랜 인형이었다. 내가 그 아이에게 무어라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나는, 내 주인은?

잠깐, 나도 궁금해!

 

그 작은 아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아이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커다란 여름용 파라솔과 깨진 스노우볼, 팔이 하나 없는 병정 인형이 다가온다. 나는 난처한 얼굴이 되어 고개를 들었다.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왕자이자, 잃어버렸던 나의 동생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아이들과 함께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지르듯, 크게 입을 열었다.

 

알았어, 잠깐만!

 

아이들이 일순 조용해져 나만을 본다. 나는 상황을 넘겨야만 했다. 이 아이들에게, 친구를 그리워하는 이 추억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어야할까. 변명거리를 찾으려는 나의 앞으로 그 작고 헤진 곰인형이 손에서 손으로 돌돌말린 잎사귀 하나를 건넨다. 그 아이가 말한다.

 

그 애에게 전해줄 거야.

 

돌돌말린 잎사귀를 열자 그 속으로 자갈들이 옹기종기 모여 달그락거린다.

 

정말 고마웠다고 말해줄 거야.

 

눈이 번쩍 뜨인다. 바로 그거야. 나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선언하였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편지를 전해줄게.

그리고 주인분들의 답장을 들고 올게.

 

내 말에 아이들은 놀라 모두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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