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용감함과 자상함>

 

잃어버린 아이들의 마을은 밤이 되어서도 곳곳으로 불을 밝혀주어 곳곳이 환하였다. 두더지 씨는 겁이 많은 아이들을 위해 늘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라고, 심술이 조금 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정말 갈거야?

 

뭐, 다른 수가 있나?

 

왕자님을 만나러 가자.

 

싫어.

 

단번에 거절하였다. 두더지 씨는 대번에 실망한 얼굴을 비쳤다. 어쩐지 그 애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만나고 싶지 않았다. 거리와 광장을 산책하는 우리 둘을 호탕한 웃음소리가 반긴다.

 

아핫핫핫, 이게 다 누구들이신가.

 

용감한 홍감 기사가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하였다. 두 손에는 녹두전이 김을 모락모락 피어내고 있었다. 홍감 기사가 전 하나를 건넨다. 음식과 잡화를 파는 상점이 길게 줄을 이어 아이들을 맞고 있었다. 고소하고 달큰한 냄새가 상점가에서부터 흘러 온다.

 

축제가 되면 더 붐비게 될거야.

 

두더지 씨가 홍감 기사에게서 받은 전을 머리에 이고 지었다. 홍감 기사가 묻는다.

 

그럼 이제 왕자를 만나러 가는 겐가?

 

나는 도리질을 쳤다.

 

검은 숲으로 가려고.

 

두더지 씨가 얼어붙는다. 홍감 기사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었지만 이유를 묻지 않았다. 홍감 기사가 자신이 묵는 여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가 묵는 여관은 고즈넉하고 고풍스러웠다. 장지문으로 툇마루가 널찍이 자리하였고, 마당이 아래에서 얌전히 몸을 누이고 있다. 밤하늘을 구경하기에 더 없는 장소였다.

 

검은 숲으로 가는 건 틀림이 없나?

 

응.

 

홍감 기사는 내 얼굴을 보고는 마당으로 걸어갔다. 그가 목검 하나를 꺼내어 내게로 뻗는다.

 

몸 쓰는 건 흥미 없어.

 

홍감 기사가 마당 중간으로 서서 소리친다.

 

거기로 가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나도 똑같이 소리쳐 답한다.

 

아, 됐다고!

 

물론 짜증도 조금은 섞어서. 갑자기 내 자신이 신경질이 났다. 홍감 기사는 끈질기게 나를 기다려 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투덜거리며 그의 목검을 주워들었다. 반바지와 반팔 셔츠 차림의 신경질적인 여자애를 향해 홍감 기사는 허리를 숙이고서 엄숙하게 말하였다.

 

나의 스무 번째 대기사인 소녀여.

나 그대에게 홍감 기사와의 대련을 허락하노라.

 

고개를 숙였다. 어느 것 하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딱!

 

아악!

 

풀이 죽은 내 머리로 목검이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단단한 목검이 부딪혀 머리가 얼얼했다. 홍감 기사는 웃음기 하나 없이 일러주었다.

 

검은 숲으로 간다며.

정신 차려, 네 몸은 네가 지킬 수 있어야지!

 

성격이 욱 하고 올라왔다. 나는 목검을 꽉 쥐고서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바람을 건드리는 섬뜩한 소리로 나는 신경질을 있는 그대로 부렸다. 상대를 보지 않고 휘도는 바람에 홍감 기사의 팔을 내려치고 만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홍감 기사의 팔이 수풀 사이로 내동댕이 쳐진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이 굳고 말았다. 그가 다가온다.

 

‘그깟 인형 때문에 넌 동생을 버린 거야.’

‘너만 없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네 동생은 너 하나 때문에 사라진 거야.’

‘돌려놔, 되찾아와!’

 

오지 마!

 

몸부림쳤다. 목검이 멀리로 날아가 둔탁한 음을 내며 자취를 감춘다. 홍감 기사가 나를 품으로 꼭 끌어안는다. 그의 몸을 발로 차고 손으로 내리쳤다. 버둥거리고 또 버둥거렸다. 흐느끼며 짜증을 내었다. 나에게서 멀어지도록 나 같은 건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서 울고 또 울었다. 홍감 기사는 그런 나를 안고서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눈으로, 같은 밤으로. 용감한 홍감 기사의 품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딱딱했고 싸구려 풀 냄새가 났다. 진정이 된 나를 옆에 앉히고서 홍감 기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거리의 멀리로 울음소리가 깨어난다. 커지고 번지다 다시 모여든다. 파도가 되어 부서지다 하나로 밀려든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마을이 눈물로 가득 찬다.

 

나는 울지 않네.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태연하게 물으려 애를 썼다. 홍감 기사는 울음들이 갖은 형태로 헤엄을 치는 와중에서도 눈물방울 하나 흘리지 않았다.

 

그럼.

 

홍감 기사의 눈은 얌전하지만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의 주인님은 강하니까.

그 분은 내가 울고 있기를 바라시지 않을 거야.

 

흥.

 

비웃으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뭐랄까. 허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뒤섞여 이상한 소리를 매었다. 그리고 살짝은 질투심도 있었던 것 같다. 대체 뭐가 부러워서 그랬던 걸까.

 

난 주인님을 원망하지 않아.

뭐 지금은 그렇지.

 

그가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자신의 옛 이야기를 해도 되냐며. 하늘이 맑다. 총총총 박힌 별이 훤히 보일 정도로. 이 마을은 늘 이렇게 맑은 하늘만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처음 이 마을로 왔을 때, 주인님을 원망하는 마음만이 가득했었지. 나를 버린 그를 내 손으로 복수하겠노라 다짐하였지. 그리고 검은 숲으로 갔어. 맞아 난 거기서 정말 수많은 아이들과 주인들을 내 손으로 심판했어. 그땐 그게 옳은 일인 줄 알고 있었으니까. 여느 때처럼 바보같이 제 주인을 믿는 멍청한 아이들을 찾아 진실을 알려주려 했었어.

 

거기서 그를 만났지. 깨끗한 옷을 잘 다려 입은 사무라이 인형. 자상한 아오 씨를 말이야. 그는 정말 강했어. 하지만 결국 내 증오심이 그의 다리를 잘라버렸고 나는 그의 검에 팔을 잃고 말았지. 넘어진 그에게로 도끼를 들었어. 그를 죽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제 목숨이 아까운 상황에서 그가 무엇을 하였는지 알고 있나?

 

제 주인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보고 있더군. 앳되어 젖도 떼지 못한 어린 아기의 사진을 말이야. 나는 그에게 절규하듯 물었어.

 

‘그런 바보같은 망상은 버려!’

‘네 주인은 널 버린거야!“

 

내 말을 들은 그가 일어나 내게 다가왔어. 그리고 내 주먹을 펴 주었지. 난 매일 복수라는 망상에 빠져 도끼를 손에 놓지 못했어.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무엇이었는지 몰랐던 거지. 이 마을로 와서 처음으로 펴 본 손바닥에서 내가 보았던 건 작은 글귀였어. 삐뚤빼뚤한 글씨의 문장말이야. 어린 내 주인이 날 위해 남긴 흔적이 지금도 숨 쉬고 있어.

 

‘건강해야 해.’

 

날 떠나보내며 내 주인은 나에게 무엇을 바랐을까. 날 잃어버린 내 주인은 지금도 날 찾고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건 적어도 내 주인만큼은 분명 날 아껴주었던 거야. 아마 내 주인은 날 잊고서 잘 살고 있을 거야. 오히려 난 그게 더 좋아. 그랬으면 좋겠어.

 

용감한 홍감 기사가 조용히 눈을 감는다. 울음들로 파랗게 물이 든 마을이 그리움을 꾹꾹 담아 참고 있다. 홍감 기사가 나에게로 말하여준다.

 

그 분이 날 아껴주긴 만큼,

나도 그 분을 좋아했어.

그거면 된거야, 그거면.

 

홍감 기사가 중얼거린다.

 

그래, 그거면 된거야.

 

홍감 기사와 나는 멀리로 날아간 목검을 줍기 위해 마당의 이곳저곳을 훑고 다녔다. 목검은 옆 마당까지 날아가 있었다. 목검을 주우러 가던 나를 홍감 기사가 붙잡았다. 옆 마당의 마루 위로 자상한 아오 씨가 홀로 앉아있었다. 흐느끼는 소리도, 뒤척임도, 떨림도 없이 조용하게 눈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자상한 아오 씨의 뺨과 무릎으로 방울들이 흠뻑 떨어져 젖어 있었다. 곧은 자세로 울음을 우는 아오 씨에게로 홍감 기사가 천천히 다가간다. 그의 앞으로 무릎을 꿇어 손을 맞잡아 준다. 홍감 기사는 아오 씨를 위해 함께 울어 주었다.

 

검은 숲에 나를 기다리는 아이가 있다. 어렴풋이 인형 하나가 떠오른다. 동생을 잃어버린 그 날, 내 눈을 끈 그 인형. 동생이 실종이 되고 어느샌가 그 인형도 사라져있었다. 혹시 그 인형이 날 기다리고 있는 걸까. 막연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검은 숲이 있을 만한 곳으로 뛰었다. 혹시나, 혹시나 하였다.

 

혹시 내게도,

날 기다리는 존재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나는 바랐다.

 

 

 

 

 

<검은 숲>

 

나는 마을 밖으로 달려갔다. 어두운 밤안개가 달빛을 덮어 발을 딛기가 무서웠다. 고개를 돌렸다. 환한 빛들이 반짝반짝 아이들을 덮어준다. 마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 주인 만큼은 날 아껴주었던 거야.’

 

그래, 겁먹지 말자. 분명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검은 숲에서 그 애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분명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만나고 싶었다. 나를 위해 기도하고 목을 매어 울 그 아이를 나는 바랐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까. 다시 마을을 돌아보았다. 홍감 기사에게 길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해볼까.

 

끼익.

 

마을 변두리에 버려진 옥수수 밭으로 허수아비 하나가 깡총깡총거린다. 몸 사이사이 지푸라기가 빠진 자리에 철근이 박혀있어 갈비뼈가 드러난 것처럼 보였다.

 

끼릭, 끼익.

 

나는 용기를 내었다.

 

저, 저기 검은, 그 검은 숲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니?

 

옥수수 밭으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 탓이었는지, 정체불명의 저 허수아비 짚 사이로 새는 기이한 바람 소리 탓이었는지.

 

끼익.

 

말을 더듬거리고 말았다. 혹시 날 버릇없는 아이로 생각하고 잡아가는 건 아니겠지.

 

끼릭 끼릭.

 

철근이 제멋대로 꽂혀있는 허수아비는 깡충깡충 옥수수밭을 가로 질러 뛰어갔다.

 

기다려!

 

밤안개가 눈 속으로 가득 끼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 팔을 허우적거렸다. 짙은 안개와 독한 수풀 냄새 때문에 평생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옥수수 밭을 빠져 나오자 엘더베리 나무와 너도밤나무가 가지를 뻗어 내 얼굴을 때렸다. 자욱한 안개를 품은 나무들은 전부 보랗게 멍이 들고 파랗게 질려 있었다.

 

끼익, 끼익.

 

뾰족한 철근 가시를 흔들며 허수아비는 쉼 없이 깡총거렸다. 나무의 가느다란 팔들이 내 어깨로 내려와 등을 때린다. 나는 허수아비의 뒤를 좆아 바짝 뛰었다. 숨이 가프고 다리로 쥐가 내린다. 허수아비는 겁을 먹은 나를 커다란 너도밤나무 밑으로 데려다 주었다.온 곳곳이 멍이 든 잎을 늘어뜨리고 있던 나무가 힘겹게 팔을 들어 올렸다.

 

나무의 수십, 수백의 가지 위로 온갖 종류의 아이들이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지를 올라타 있는 아이들은 마을의 아이들처럼 상냥하게 웃지도, 즐겁게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을 쥐고서 무뚝뚝하게 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길을 안내하던 허수아비가 우뚝 멈추어 선다. 몸을 오들오들 떨며 두리번거렸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야?

 

허수아비의 고개가.

 

우두둑.

 

나무 꺾이는 소리를 내며 뒤틀린다. 땅 속에 박혀있던 나무뿌리 하나가 발목을 붙잡는다.

 

꺄악, 뭐야 이거 놔!

 

소리치고 절규했다. 축축한 나무뿌리는 나를 끌고 아래로, 아래로 떨구었다.

 

싫어, 놓아줘!

 

머리를 감쌌다. 비명 소리까지 함께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엉덩방아를 찧어 신음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진흙과 나무뿌리가 지저분하게 얽힌 천장과 썩은 나뭇잎과 곤충 시체들이 덮인 바닥. 깊은 굴로 떨어진 나는 몸을 움츠렸다. 왜 이런 곳으로 온 걸까. 다리를 오므리며 후회하였다. 정말 날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기는 한 걸까.

 

‘검은 숲은 증오와 분노를 간직한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야.’

 

뒤늦게 두더지 씨의 경고가 떠오르자 눈물방울이 썩은 흙바닥을 적시었다. 멀리로 빛 하나가 흔들흔들 다가온다. 잔뜩 주름이 진 개 한 마리가 잎사귀가 잔뜩 묶인 가지를 들어 내게 오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묶인 잎사귀는 불에 온 몸을 태우며 고통스러워했고, 가지를 쥔 개는 얼굴과 몸이 온통 불에 지져진 흉터들이 나있었다.

 

불이 붙은 가지를 굴을 감싼 뿌리로 가져가 지진다. 나무뿌리의 뼈마디 속으로 연기와 함께 불씨가 낙인처럼 새겨진다. 불에 지진 상처가 온 얼굴을 덮은 그 늙은 개는 내 손을 잡아 쥐고서 앞으로 끌고 다녔다. 내 손을 잡아끌며 그녀는 뿌리마다 새로운 불씨와 연기를 흉터처럼 남겼다. 굴이 은은하게 빛으로 밝혀진다.

 

망젤, 참 잘했어요.

 

늙은 개,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서 자리를 떠난다. 굴의 더 안쪽으로 깊숙이 방 하나가 드러난다. 재와 타버린 헝겊조각들, 부서진 작대기들과 빠지고 뒤틀린 털 뭉치들이 지저분하게 얽히고설킨 커다란 방이 입을 벌린다.

 

방의 가운데로 가지와 뿌리, 장난감 조각들이 복잡하게 엉킨 왕좌가 높게 솟아있다. 그 비틀린 왕좌로 여자 인형이 앉아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재 냄새와 독한 연기 탓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콜록.

 

기침이 난다.

 

혹시 날 알아보겠니?

 

간신히 목구멍을 열어 인사하였다.

 

너가, 콜록, 나를, 콜록, 기다렸니?

 

인형은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요, 기억이 나질 않네요.

그랬던가요, 내 주인이 당신이었던가요.

 

여자 인형은 고운 빛깔의 팔을 높이 들어 천장으로 매달린 뿌리 조각 하나를 잡아 꼬집었다. 나무뿌리들이 뒤틀리며 몸을 움츠린다. 방이 조금씩 커진다. 여자 인형이 앉은 왕좌가 조금 높아진다.

 

제가 한때 인기가 좋았던 것은 기억이 나요.

많은 아이들이 너를 가지고 싶어 했죠.

 

여자 인형이 다시 나무뿌리를 꼬집는다. 비명을 지르며 나무뿌리들이 더욱 몸을 움츠린다. 조금 커진 방이 더욱 커진다. 여자 인형의 왕좌도 더욱 높아진다.

 

그래서 제겐 주인이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워낙 매력적이라 손에 넣지 않고는 못 배겼을 테니까.

 

여자 인형이 또 한 번 나무뿌리를 꼬집는다. 세찬 비명으로 뿌리들이 뒤틀린다. 방이 아주 커진다. 왕좌가 아주 높아진다.

 

제 첫 주인은 절 가졌지만 금방 내팽개쳤죠.

제 두 번째 주인은 절 가지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어요.

세 번째 주인은 기사를 시켜 폭력과 피로 절 빼앗았죠.

네 번째 주인은 절 가지고 싶어 전 주인분이 자는 동안,

목숨을 빼앗았죠.

다섯 번째 주인은 조금 맥이 빠져요.

절 훔치고 달아나다 차에 치이고 말았지 뭐예요.

 

나는 고개를 한껏 올려 그녀가 있는 곳을 보려 애를 썼다. 뿌리들이 뒤엉켜 높이 솟은 왕좌에서 그녀의 목소리만이 쏟아지고 내려왔다.

 

여섯 그리고 일곱 째.

그 후에도 정말 수많은 주인들이 저를 손에 넣었어요.

그런 제가 굳이 마을에서 주인들을 일일이 기다려야겠어요?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발치로 내동댕이쳐진다. 바닥으로 떨어진 웃음소리들은 삐뚤어진 가면을 쓰고서 나를 놀리듯 춤을 추고 달아난다.

 

당신이 제 몇 번째 주인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녀가 왕좌의 높은 곳에서 곱고 하얀 손을 살랑거린다.

 

다만 저를 위해 기도하고 목을 매어 주세요.

저를 위해 존재하고 마음 깊이 사랑하도록 하세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뿌리를 잡아 꼬집는다. 커질 대로 커진 방은 몸을 불리지 않는다. 높아질 대로 높아진 왕좌는 고개를 꺾어 더 뻗지 않는다. 그저 아주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무언가를 뱉어 낸다.

 

저를 즐겁게 해주세요.

 

나무뿌리의 벽에서 튀어 나온 것은 작은 공 모양의 우리였다. 나무줄기로 된 우리는 한 꼬마 아이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우리에 갇힌 아이는 눈을 다쳤는지 천을 눈가에 덮어 쓰고 있었고 다 헤진 옷을 입고 있었다. 씻지도, 빛을 보지도, 제대로 먹지조차 못한 그 아이는 동물과 같은 울음 소리를 내며 발을 굴렀다. 나무줄기 우리가 아이를 뱉어낸다. 좁은 감옥에서 풀려난 아이는 괴성을 지르며 땅을 구르고 다녔다.

 

자, 나의 주인 분들이여.

저를 위해 재롱을 떨어주세요.

 

여자 인형이 손뼉을 친다. 짐승처럼 땅을 기던 아이가 고개를 위로 처박고는 코를 킁킁거리며 내 쪽을 본다.

 

시작하세요!

 

아이가 내게로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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