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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처음과 끝

2022.11.24 22:1511.24

처음과 끝

 

우리의 행성 밖에 외계 문명이 실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아니다. 사실 외계문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꽤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기원전 4세기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론(De caelo)》에 ‘신체가 공기로 만들어진 하늘의 사람들’이 달에 살고 있다고 적었으며, 그 이전에는 천문학의 창시자인 아낙시만드로스가 달에는 우리보다 지혜로운 외부 지성체가 거주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달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대한 믿음이 얼마나 강했던지, 소포클레스는 연극 《안티고네》에 달에 남아있는 그 무늬가 신들이 기거했던 저택의 무너진 폐허라는 요지의 대사를 넣기까지 했다.

 

크레온 : 그런데 보라. 또다시 무례한 말을 하는 구나.

사내의 머리 위에 설 수 있는 여인은 헤카테와 셀레네가 기거했던 저택, 우리의 머리 위에 있는 무너진 하늘의 궁전 아르테미스뿐이니.

만약 안티고네가 승리를 즐기며 편히 쉴 뿐,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면 정녕 내가 여인이 되고 그녀가 사내가 될 것이다.

 

또한 서구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본다면, 이집트 신왕국 시기의 아문 신전에는 바람을 타고 달에서 내려오는 작은 인간의 형상들을 새긴 부조가 발굴된 바 있고 심지어 삼국사기가 정리한 신라 시기 천문관측기록에도 ‘월인(月人)’들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사견이 첨부되어 있다. 하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과학사에서 차지하는 그 독특하고도 막대한 위상 때문에, 많은 관련 서적들이 이런 문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최초의 학자였다.’

그러나 이 문장은 틀렸다.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이렇게 정정해야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외계 문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증적 근거에 기반하여 주장한 최초의 학자였다.’

가장 정확한 주장은 아니었다. 물론.

가장 정답에 가까웠던 것은 사실 소포클레스였다.

 

문제는 달에 무늬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지적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진, 직선과 직각으로 장식된 인위적인 무늬였다. 그 무늬는 너무나 커서 어느 시대에서건 별다른 장비 없이 맨눈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니 흥미로운 점은 기록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수많은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농경 시대 이전에는 달에 대해 언급한 기록이 전혀 없다는 점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한 유력한 가설은 다음과 같다. 수렵과 채집 생활을 이어나가며 동굴 벽에 예술과 종교를 발전시켜나가던 초기 인류는, 달의 무늬가 인공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는 것이다. 농경 시대 이전까지 달의 무늬는 나무의 나이테나 새 날개깃의 얼룩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초의 도시가 생겨나고 자신의 손으로 집과 도시의 블록, 관개수로를 만들어가면서 사람들은 달의 무늬가 신의 손이 아닌 지성과 이성이 있는 생명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만약 진흙 벽돌을 구워 집을 지은 청동기인들과 은하를 아우르는 초거대 문명 사이에 정말 공통점이 있는지 의심이 된다면 최초의 우주왕복선의 로켓 너비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생각해 보라.

2007년 엔데버호가 발사될 때 로켓 과학자들은 우주왕복선의 로켓을 설계해야 했다. 그들은 최대한 큰 로켓을 원했다. 큰 로켓은 많은 연료량을 의미했고, 많은 연료량은 선체를 좀 더 수월하게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로켓이 만들어지는 곳과 발사지는 같은 장소가 아니었다. 로켓은 철도로 운반되어야 했으며 그사이에는 터널이 있었다. 결국 로켓 과학자들은 로켓을 무사히 옮기기 위해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크기로 만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터널은 철로의 폭에, 정확하게는 로마 제국 시절 정해진, 말 두 마리의 엉덩이 폭에 맞춰 지어졌다. 로켓 과학이라 할지라도 결국 말 엉덩이 두 개를 쫓아 달리고 있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우주 문명의 폐허가 초기 도시의 패턴과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 신석기 시대 이후 달에 남은 무늬가 인공 구조물이라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고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누가’ 그것을 남겼나는 것이었다.

 

달 문명에 대해 남아있는 가장 흥미로운 기록은 1018년 북송시대에 거대한 횃불과 화약을 이용해 달과 소통하려고 한 사건이다. 지방관리 장청의 지시에 따라 300여 명의 사람들이 공터에 모여 달의 관심을 끌고자 했다. 여성들은 횃불을 들고 빙빙 돌며 십수 초에 한 번씩 화약을 터뜨렸고 장정들은 큰 북을 두드리며 목청이 터지도록 소리를 질렀다.

전근대 기준으로는 기록적이고, 어찌 보면 참신하기까지 한 시도였지만 이 퍼스트 컨택트는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보름에 걸친 ‘신호’에도 달에서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자 장청은 달의 인간들이 무심하거나 멍청하거나, 둘 중 하나라 결론을 내렸다. ‘월인’들의 누명이 풀리기 위해서는 그 후로도 5세기를 더 기다려야 했다.

1609년 갈릴레오가 개량한 망원경으로 천체 관측을 시작한 일은 천문학계에 있어서 일대의 사건이었다. 망원경으로 그는 토성을 관찰했으며 목성의 위성들을 4개나 발견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먼저 망원경의 렌즈를 돌린 곳은 다름 아닌 달이었다. 그러나 그가 달을 관측한 것은 역사에 길이 남을 발견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갈릴레이의 후원자는 메디치 가문이었으며 그들의 후원 덕분에 갈릴레이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의 천문학은 그런 식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후대의 천문학자들이 선대에게 배워야 할 점은 뛰어난 도전정신이나 기민한 사고력 따위가 아니라 효과적으로 후원자를 찾아내고 유지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천문학자들이여 연구를 지원해줄 관대한 후원자를 찾아라. 아니면 그대들은 영영 대학 강단을 벗어나지 못하리라.

2007년 쇼더비 경매에 공개된 갈릴레이의 노트는 첫 달 관측의 목표가 메디치의 관심을 끌기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당시 갈릴레이는 달 표면에 하나의 문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개량된 망원경은 그동안 가설로만 머물렀던 그들의 존재를 분명히 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발견한 것은 장대한 문명의 건축물이 아니라, 부서지고 무너진 흔적이 가득한 폐허 자국이었다. 한 문명이 몰락한 흔적이었다.

그것은 분명 대단한 발견이었지만 유럽의 왕가에 바칠 공물로는 너무나 적절치 못했다. 갈릴레이는 고민 끝에 메디치에게 이 발견을 헌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대신 달의 폐허가 지구와 별개로 발전한 외계 문명의 흔적이라는 오래된 주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데 그쳤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천문학 영웅은 바로 같은 해에 목성의 위성을 발견했고 그것을 메디치가의 별로 만듦으로써 코시모 2세의 후원을 성공적으로 따낼 수 있었다.

갈릴레이의 달 관측은 대중의 관심도, 메디치의 관심도 끌지 못했지만 학계의 관심은 확실히 끌었다. 갈릴레이의 발표 이후 오랫동안 천문학의 관심사는 달이었다. 달에 남은 폐허는 누구의 것인가? 왜 달에 저 흔적이 남아있는가? 그들은 아직도 살아 있는가?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수백 년이 흘렀고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 지친 천문학자들은 서서히 지구와 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광대한 우주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1907년,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는 하버드의 교정을 가로지르며 헨리에타 리비트는 청교도다운 단정한 블라우스를 입고 하버드 천문대로 출근하고 있었다. 평생 ‘미스 리버트’로, 심지어 그녀 자신이 저술한, 천문학의 시야를 통째로 바꿔버릴 논문에서조차 그렇게 불릴 예정인 그녀는 하버드 천문대의 컴퓨터였다.

당시 천문학은 모든 과학의 분야 중에서 여성이 진출하기 가장 쉬운 영역이었다. 보람 있는 성취가 보장되지 않는 단순 계산, 막노동에 가까운 수백 장의 사진을 분석하고 비교하는 일과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남성 천문학자들은 여성들이 천문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를 바랐으며 대부분의 여성 천문학자들은 소장, 혹은 책임자 자리를 달고 있는 남성 천문학자들 밑에서 일했으며 ‘조수’, 혹은 ‘컴퓨터’로 불리곤 했다. 헨리에타 리버트가 하버드에서 하는 작업 역시 이 궤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당 30센트를 받으며 하버드 천문대에서 정규직으로 일했다.

연구실에 도착한 헨리에타는 사진 건판 수백 장이 쌓여있는 마호가니 책상에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천문대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가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한 두 개의 연구실에는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막대한 양의 자료가 쌓여있었다. 사진에 찍힌 희미한 밝은 점들은 하나하나가 전부 하늘의 별이었고 그녀의 작업은 그것들의 밝기를 일일이 대조하며 밝기의 기준을 잡는 수식을 세우는 것이었다. 주변에는 이미 동료 여성 천문학자들이 확대경을 들이대고 밝기의 정도를 기록하며 이전 기록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헨리에타는 손을 뻗어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날, 그 다음날, 그리고 그 후 수개월에 걸쳐 헨리에타가 분석할 이 별은 우리가 우주를 보는 시야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3일에서 15일 주기로 밝기가 바뀌는 이 셰페이드 변광성은 우리 우주 끝자락에 있지만, 워낙 밝아 아마추어 천문학자들도 무리 없이 관측할 수 있었다. 헨리에타는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가 변하는 주기와 그것의 절대 밝기 사이에 일종의 비례관계가 성립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발견의 함의를 요약한다면 이 세페이드 변광성의 밝기를 기준 삼아 다른 모든 별의 절대 밝기를 측정할 수 있다는 뜻이었고, 더 간단히 요약하자면 하늘에 드문드문 펼쳐져 있는 별과 지구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도 와닿지 않는가? 극적으로 말하자면, 헨리에타 리버트는 우주의 크기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리고 헨리에타가 알아낸 방식을 토대로 측정한 우리 우주의 지름은 대략 20만 광년이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크기와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는 정적인 우주론을 세웠다. 캘리포니아의 젊은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헨리에타의 발견을 토대로 우주의 모든 별이 20만 광년 안에 있다고 주장한 할로 섀플리의 가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아인슈타인의 우주론이 옳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우리 우주에 있는 몇 안 되는 별들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은 채 가만히 정지해 있었다. 우리의 우주는 거대한 유리공 안에 든 아름다운 성운이었으며 신의 코르크 보드에 가만히 못 박힌 가지각색의 압정들이었다. 그것들은 언제까지나 이 모양이었고 이 모양일 것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에 반론이 제기되었다. 정적인 우주론 부분이 아니라, ‘몇 안 되는 별’ 부분에. 하지만 그 전에 우리는 잠시 달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보고자 한다.

 

천문학자들이 달에 남은 폐허의 답을 전혀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 말 두 마리 엉덩이를 쫓아 달리던 로켓 과학자들이 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그 배경엔 물론 냉전이 크나큰 역할을 했다.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어마어마한 우주쇼, 그 절정은 아폴로-루나 계획이었고 가엾은 천문학자들이 망원경의 크기를 늘려가며 애처롭게 달을 올려다보는 동안 미국과 소련의 2천 2백만 달러짜리 선외 우주복의 발은 가볍게 월면을 밟았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학계는 달 표면의 폐허에 대해 서로 다른 이론을 지지하고 있었다. 자유세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던 학설은 달의 폐허가 독자적으로 달에서 발생한 생명체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소련은 달에 남아있는 것이 다른 모행성에서 이주한 전혀 다른 문명의 잔해라는 파격적인 가설을 지지했다. 당시 경쟁에 있어 후발주자였던 소련은 이론에서라도 그 급진성으로 우위를 점해야 했기 때문이다. 달 탐사 경쟁은 미국이 승리했지만 결국 이론은 소련이 지지한 것이 옳은 것으로 밝혀졌다. 오랜 연구 끝에 달은 한 번도 생명을 탄생시킬 만큼의 액체 물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결론 지어졌다.

이 사실을 몰랐던 아폴로 11호는 1969년 7월 고요의 바다 북서쪽에 착륙했고 폐허 속에 이미 무너진 문명과 미국 사이의 조심스러운 친교를 상징하는 의미로 동판에 새긴 성조기와 리처드 닉슨이 친필로 서명한 서안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달의 유적에서 여러 알 수 없는 유물들과 건물의 시료, 그리고 월석의 샘플을 실을 수 있는 만큼 실어 지구로 가져왔다. 아폴로 계획의 성공 이후 유인 달 탐사에 대한 소련의 기세는 한풀 꺾였으나 루나 계획은 그대로 진행되어 아폴로 11호 이후 7년 뒤, 소련도 드디어 달에 인간의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아폴로보다 우주비행사 한 명을 더 태운 위험한 도박을 한 그들은 대신 사람 몸무게만큼의 유적들을 더 가지고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1960년대, 사람들은 지직거리는 브라운관 TV를 통해 달의 유적들을 똑똑히 보았고 그것은 대단한 파급을 가져왔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에 적힌 몇 줄의 서술을 읽는 것과 10억 명의 사람들이 몰려 앉은 TV에 그 모습이 생생하게 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고, 달의 문명은 우리가 발견한 최초의 외계 문명이 되었다. 달 문명이 ‘헤카테 문명’이라는 공식적인 명칭을 얻게 된 것도 이때쯤이다. 이는 1959년 나사 내부 보고서에서 최초로 제시된 이름인데, 헤카테와 아르테미스, 그리고 셀레네라는 달의 삼위일체 여신 중 헤카테가 저무는 그믐달과 지하세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당시 헤카테 문명의 성격을 거의 모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명명을 해냈다는 점에 소름이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까지도 헤카테 문명에 대해 알아낸 것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진보한 문명이라는 것이다. 많은 증거들이 달의 표면 4분지 1을 차지하고 있는 헤카테 문명의 건축물이 오직 한 종류의 기계만으로 건축되었다는 사실을 가리키고 있다. 러시아의 천문학자 블라지미르 베르나드스키는 헤카테 문명이 무인(無人) 문명이었음을 강력하게 주장한 학자 중 한 명이다. 그의 가설에 따르면 헤카테 문명의 모문명은 여러 개의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 문명이었으며 행성의 식민지화를 위해 자동으로 시설을 건축하고 지표를 테라포밍할 기계를 보냈으나 모종의 이유로 테라포밍에 실패했다. 모문명은 단순히 프로그램 된 기계만으로 행성(이 경우 위성이지만) 하나를 테라포밍하려 시도할 정도로 방대한 문명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문명이 오래 전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단히 허무맹랑한 가설처럼 들리나, 현재 헤카테 문명의 유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가설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베르나드스키의 가설을 완전히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한 오늘날의 음모론자들은 달에 헤카테가 남긴 기계들이 아직 살아 숨 쉬고 있으며 이들이 우리를 침략해 올 것이니 선제 핵공격으로 파괴해야 한다거나, 그들의 기계를 가져와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 유, 무인으로 탐사된 달의 모든 지역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장치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완전히 무시한 주장이며, 후자의 경우는 그것이 이미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비전문가들의 발언이라고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헤카테 문명은 적어도 40억년에서 45억년 전에 달에 건축되었다. 이 시기는 지구와 달이 막 탄생했을 시기로, 수많은 소행성이 날아다니고 대부분의 행성이 식지 않은, 생명체에 그리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헤카테의 모문명은 대단히 발전된 문명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과 우리의 격차를 생각해 보았을 때, 우주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아폴로와 루나의 경쟁에서 레이건의 스타워즈를 거치는 동안 유물에 대한 조사가 수십 년에 걸쳐 느리게나마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경탄을 받을만 한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플로피 디스크를 가진 원숭이들’이나 다름없었고 사실 이 비유도 인류를 아주 좋게 봐준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토록 발전된 기술의 잔해나마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의 진보는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헤카테의 언어와 수리체계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정보 매체를 읽을 수 있는 방법부터 발명해야 했다. 자연히 가이아의 기술 발전은 헤카테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졌으며 오늘날 작동하는 기본적인 공학 계산기부터 양자 컴퓨터, 심지어 아마존의 킨들까지 헤카테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자성체에서 플래시 메모리로, 메모리에서 양자 배열로 허겁지겁 건너뛴 저장매체 기술의 발전도 순전히 헤카테의 자료를 효율적으로 읽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전 세계의 모든 메모리 단자가 완벽한 원형의 모습으로 통일된 것 역시 메모리 기술 자체가 유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혹시 읽고 있는 동안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렇다, 그게 맞다. 헤카테의 모든 메모리 단자는 보름달만큼이나 둥글었다.

결과적으로 헤카테는 인류에게 큰 기술적 진보를 이루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들 문명과 접촉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문명이 어떻게 발전했을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헤카테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냉전은 1990년보다 더 빨리 끝났을까? 스마트폰이라는 기계를 아예 갖지 못했을까?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민담과 전설들에서 달이 그렇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게 되었을까? 이는 어디까지나 진지한 가설이 아니라 그저 ‘만약…’을 가정해보는 젊고 어리석은 천문학도의 질문일 따름이지만 말이다.

 

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밤하늘을 올려다보라. 몇 개의 희미한 점들이 보일 것이다. 역사상 눈으로 관측할 수 있는 하늘의 별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따라서 별에 대한 이야기는 달만큼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인해 별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허블 망원경은 대기권 위에 존재하는 거대한 망원경으로, 1985년 디스커버리호를 통해 궤도에 올라갔다. 허블 망원경은 당시 모든 기술력의 집합체인 동시에 천체 관측의 가장 큰 적이었던 대기를 벗어남으로써 그 누구보다 선명한 우주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궤도에 올라간 허블 우주 망원경은 현재 관측된 별이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십수일에 걸쳐 찍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수히 많은 백색성과 적색성들이 새로 발견된 것이다.

현재 허블 망원경의 발견으로 인해 추산된 결과는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별의 90% 이상이 백색성이라는 것이다. 우리 태양 역시 백억 년 뒤에는 적색거성 단계를 거쳐 이러한 백색성으로 생을 마감할 것이다. 대부분의 주계열성이 같은 단계를 밟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 역시 우리 태양과 비슷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러나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되었다. 단 한 장의 사진. 헤카테의 유적들 속에서 우리가 분별할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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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복사는 전기를 띈 모든 종류의 입자에서 방출되며 그 입자의 수가 일정량 이상일 경우 이는 열평형 상태의 물체가 내뿜는 빛, 흑체복사로 바뀌게 된다. 이는 물체의 종류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동일한 빛을 발산한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 발견을 생각해 보라.

아폴로-루나 이후 하나의 밀레니얼이 바뀐 뒤, 우리는 헤카테의 수리 체계를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들의 데이터를 일부 해독하는 데 성공했는데, 그것은 특정한 형태의 전자기복사 관측 결과를 시각화한 사진이었다. 그것은 3K 온도의 불균형한 흑체복사로,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관측 가능한 우주의 크기보다 더 거대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 우리의 우주보다 거대하고 뜨거운 것이 과거에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또한 그 정도로 뜨거우려면, 밀도 역시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우주는 절대영도에 가까우며, 거의 텅 비어있다. 이 데이터의 해석은 믿기 힘든 하나의 가설로 이어진다.

 

한때 우주는 극도로 작은 크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팽창하여 우리의 우주보다 거대한 크기가 되었다. 이 때 발생한 한순간의 불균형한 밀도는 수많은 물질의 창조를 가능하게 했고,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어려운 젊은 별들이 빈 공간에 가득 존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의 확보는 언제나 실패했다. 어떠한 관측도, 어떠한 전파망원경도, 어떠한 영민한 천문학자도 헤카테의 흑체복사 데이터와 같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헤카테의 자료가 틀린 것일까? 고도의 문명, 우리가 감히 쫓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극도로 발달한, 만약 우리 눈앞에 있다면, 마치 올림포스의 신들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헤카테의 모문명이 우주를 잘못 이해한 것일까? 혹은 이것은 유적을 발견할 먼 미래의 미개한 생명체들에게 헤카테가 남겨놓은 일종의 농담, 창작물일까?

가능은 하다. 어쩌면 그 무엇보다 이 데이터를 깔끔하게 해명해주는 설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편안한 설명보다는 복잡한 진실을 탐구해야 한다. 흑체복사 데이터가 진실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무리 오래 우주를 들여다보아도 이를 관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주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거대하며 또 오래되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만약 태초의 우주가 한 점이었고, 이것이 급속도로 팽창하며 전자기파를 사방에 쏘아댔다면, 이것을 관측할 수 있는 시간은 유한하다. 우리 같은 필멸자들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든, 수천억의 수천억 년의 시간일 테지만 그 끝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 이 데이터는 흐리고 희미해져, 진리탐구의 욕망을 가지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성체들에게 관찰될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여기서 받아들이기 힘든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 가정한다면 우리의 우주는 적색과 백색성으로 가득 찬 20만 광년의 공간이 아닌, 수천억 개의 우주가 우리가 관측 가능한 범위 너머에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상상해보라. 탄생 이후 수천억 년이 흘러 이미 죽어버린 작은 흑색과 청색 별들로 가득한 검은 우주들이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대한 공간에 흩뿌려져 있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 우리가 어떤 수를 쓰더라도, 설령 헤카테 이상의 문명이 되더라도 도달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헤카테의 모문명이 멸망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급속도의 팽창으로 멀어져버린 다른 우주에 있고, 이미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배가 되었다.

 

이 하나의 데이터에 의해, 우리가 바라보는 우주는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된다. 우주는 결코 신의 유리공에 든 잔잔한 바다가 아니며 물질의 중력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범위 너머는 영원히 멀어지고만 있다. 그 크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으며 그 끝도 우리에게 주어진 지식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유일하게 해독해 낸 데이터에 따르면 헤카테의 모문명은 45억년 전보다 훨씬 더 이전에 존재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이 데이터를 관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와 다른 시간에 살았던 그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우주의 처음과 끝을 보았던 것이다.

상상해보라, 수천억 년 전의 그들을. 어떻게 생겼는지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와 같은 물질계에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다른 하늘을 바라보았고, 전혀 다른 결론에 도출했다. 만약 우리가 수천억 년 전에 탄생한 문명이었다면, 그들과 같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고, 같은 결론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한참 이후에 태어났고, 헤카테가 이루어낸 결과물을 보며 그들이 그리는 이미지를 흘끗흘끗 훔쳐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는 우주의 청사진, 세계의 처음과 끝은 그들과 다르다. 만약 우리가 다른 시간대에 탄생했다면 우리의 세계는 전혀 달라졌을까? 그건 나로서도 진심으로 궁금하지만 결코 답할 수 없는 질문이며, 어쩌면 완전히 무의미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의 영역 안에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nasa.gov/multimedia/imagegallery/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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