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찬이라고 불린 날들

2022.09.12 13:0809.12

무석은 아이를 찬, 이라고 불렀다.

빛날 찬(燦) 자를 썼다. 일산에 위치한 유명 철학관의 사주, 명리학 박사에게 직접 가서 지은 이름이다. 한자 뜻 그대로 찬란하게 빛나는 인생을 살라는 의미였다. 박사는 네다섯 개의 이름들을 후보로 추천했다. 하지만 그는 ‘찬’을 고집했다. 자신도 작명을 조금 배웠다는 말을 덧붙이려다 말았다. 그는 그 이름대로 좋은 한자를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박사는 약간 당황한 듯했다. 여태까지 자신이 지어준 이름이라면 두말 않고 넘어가던 고객들과 무석은 분명 달랐다. 네다섯 개의 후보 이름들은 그렇게 다른 누군가의 이름으로 밀려났다. 박사는 빛날 찬이 가장 낫다고 하였다. 가장 ‘좋은’ 것도 아니고 가장 ‘낫’다니. 왠지 무석은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가장 좋은 이름이 아니라 가장 나은 이름을 추천해주는 거요. 둘은 엄연히 다른데.

그가 따졌다. 박사는 더 좋은 이름이 있는데도 굳이 ‘찬’자를 쓰겠다니 하는 말일 뿐이라고 답했다. 무석은 그보다 더 나은, ‘가장 좋은’ 뜻은 없소? 라고 외로 꼬아 물었다. 철학관 박사는 믿지 못하겠으면 관두라는 식이었다. 흥분한 어투였다. 자신의 작명 인생을 걸고 외자 이름에,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에 따른 사주를 더했을 때 그보다 더 좋은 뜻을 찾을 순 없을 거라고 말을 이었다. 그제야 무석은 돈을 지불했고, 그렇게 찬란하게 빛날 찬을 작명소에서부터 데리고 왔다.

무석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딸 희조에게 전화를 걸었다. 딸애는 공립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었는데, 여름방학을 앞둔 이번 1학기를 마치고 육아휴직을 낼 참이었다. 무석의 아내가 곧 태어날 아이를 봐주기로 했다. 적어도 100일을 넘기기까지는. 딸인지 아들인지는 임신 4개월 만에 알았다. 무석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딸, 여자아이였다. 사위는 처음부터 내심 딸을 바랐으므로 좋아했고, 그건 희조도 마찬가지였다. 무석은 그때부터 찬, 이라는 이름을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 이전부터였다. 그러니까 딸애 희조가 태어난 순간 때부터 생각해오던 이름이었다. 아이의 이름을 지어왔다는 무석의 말에 휴대폰 너머의 희조는 불안한 목소리로 뭔데요? 라고 물었다. 무석은 마른 침을 그러모아 연신 삼켰다.

“찬이다. 찬. 빛날 찬. 찬란하게 빛나라는 뜻이다. 박사가 가장 ‘좋은’ 이름이랬어.”

그는 말을 조금 고쳐 전했다.

“싫어요. 이름은 이미 오빠하고 상의해뒀어. 예진으로 할 거야. 공예진.”

그는 벌컥 화를 내기에 앞서 예진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희조는 ‘좋은 뜻’이라고만 대답했다. 무석은 누구에게랄 것 없이 고개를 내저으며 안 되지, 안 돼, 중얼거렸다. 그냥 좋은 뜻 갖고는 안 되고, 가장 좋은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에 부합하는 이름이 바로 빛날 찬이라는 얘기도 빼먹지 않았다. 적막이 흐르고, 이번엔 화를 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희조가 먼저 선수를 쳤다. 딸애의 목소리 끝이 거칠게 갈라졌다. 산모 스트레스가 심한 모양이었다. 남편, 그러니까 사위와 싸우기라도 한 걸까. 이놈의 자식을 그냥. 거기에 생각이 다다른 찰나, 희조가 다시 말을 꺼냈다.

“아빠, 이제 그만해. 이름 우리가 지을 거야. 아빠가 더 잘 알잖아.”

“뭘 말이냐? 글쎄, 내가 삼십 만원이나 주고 명리학 박사한테 가서 받아온 건데.”

“아침이나 드세요.”

전화가 끊겼다. 무석은 뭐라 투덜거리며 출근 준비를 했다. 찬. 빛날 찬. 그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입에서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조끼를 걸치던 무석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고, 아이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아이는 손녀이기도 했다가 딸애이기도 했다. 둘이 겹쳐 보인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의 무의식 속 기억과 염원이 발현된 것이리라. 뒤늦게 안방에서 아내가 나왔다. 미리 아침에 일어나 싸둔 도시락을 그는 건네받았다.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는 그녀 왼손의 빈자리가 오늘따라 유독 눈에 띄었다.

“오늘 몇 시에 들어와?”

아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물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저녁 먹기 전에 일찍 들어오지.”

“애 이름은 뭐로 정했다는데? 당신이랑 전화하느라 얘기를 할 수가 있어야지.”

“찬.”

무석이 빙글 웃었다.

“찬이라고 짓는대. 빛날 찬이야. 꼭 기억해둬. 당신 건망증 심하잖아.”

그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아내는 혼잣말을 하며 그를 배웅했다.

 

무석은 사위가 생일선물로 사준 자전거를 타고 일산 마두역에 위치한 주유소로 내달렸다. 한여름 오전의 열기는 막 달아오를 듯 한창 달아올랐다. 무딘 칼날 같은 바람에 살갗에 움푹한 흉터가 생기는 듯했다. 하늘은 저만치 달아나있었고, 구름들은 군데군데 먹을 피운 채 빗방울을 품고 옹송그린 모습이었다. 정렬한 도로의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흔들었다. 무언가를 부정하는 징조 같았다. 부정 탈라. 그는 앞만 바라보았다. 찬이라는 이름은 옳았다. 틀리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커다란 돌멩이에 자전거 바퀴가 걸려 요동쳤다. 그는 들썩거리는 몸을 가라앉히며 욕설을 지껄였다. 흐르는 땀을 훔치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때 여의도에 있는 커다란 증권회사 화이트칼라였던 자신이 그리웠다. 하나 그건 다 옛날 일이다. 희조를 낳기도 전의 일. IMF 구조조정으로 인해 해고되기 전의 머나먼 과거. 지금은 주유소에 다니고 있었고, 그건 그 나름대로 적응해 살만 했다.

주유소에서 그가 하는 일은 손세차와 기름 주유였다. 나머지 시간엔 사무실에서 쉬었는데, 사실 쉴 짬은 거의 나지 않았다. 비가 올 것 같은데도, 비가 올 것이 틀림없는데도 굳이 손세차를 하러 오는 인간들이 많았다. 아둔한 건지, 아니면 자기를 고생시키려고 작정한 건지 도통 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가지각색의 걸레와 세제로 차를 힘껏 문질러 닦았다. “자동세차보단 손세차가 낫지, 안 그래?” 차 안의 한 남자 목소리가 닫힌 창틈으로 흘러나왔다. 지랄하고 있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손세차야, 무석은 속으로 불평하면서도 티를 내진 않았다. 손세차를 없애고 주유도 셀프주유로 일괄 교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직원이 물었더랬다. 그럼 우리는 이제 뭘 합니까? 사장은 흐응, 하며 그건 지켜봐야겠다는 듯 즉답을 피했다. 그때 가서 알겠지, 얼버무렸을 뿐이다.

무석은 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장 딸도 마찬가지였다. 제 잇속만 챙길 줄 아는 돼지새끼들. 커피를 사와도 제 것만 사오고, 더운 땡볕에 시원한 탄산음료 하나 주지 않는 이기적인 인간들. 반드시 손녀는 저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매번 거듭하는 그였다. 물론 희조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그는 희조를 그런 사람으로 키우지 않았고, 희조도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 그러니 아이들을 가르치는 거겠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그렇게 키우지 않았음을 무석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기본 인성은 된 인간으로 키우자. 좋은 대학을 가지 않아도 좋다. 제 밥 벌어먹고 살 정도로만 배우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행복해하면 된다, 는 게 그의 신조였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지만.

허구한 날 술을 먹고 들어와 깽판을 치는 아버지가 일찍 떠난 뒤로 그의 모친은 독수공방으로 지냈다. 재혼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의 누나들인 딸들의 보살핌을 받았다. 그 시대 사람으로선 독특한 사람이었다. 남아선호사상이 강하지도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독이 돼 무석은 사랑 같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컸다. 모친의 관심은 늘 딸들이었으며, 무석은 알아서 잘 크겠지, 내버려두었다. 지난날 자신이 크게 아파 대수술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친과 누나들은 수술이 다 끝나고 거의 회복될 즈음에야 밥이나 한 번 먹자며 나타났다. 그때 무석은 깨달았다. 아, 저들은 사람이 아니구나. 자식이 아픈데 얼굴 한 번 비추지 않고 퇴원할 즈음 나타나 놀러오듯 와 밥 한 번 먹자고 오는 게 사람인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친가와 연을 끊다시피 하고 지냈다. 딸이 임용고시에 합격해도, 결혼을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합격 기념 인사, 결혼 기념 인사를 오지 않았다고 화를 낸 것은 모친과 누나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딸 희조는 뭐 저런 인간들이 다 있어, 하며 연락처의 제 친할머니와 고모들 번호를 차단한 뒤 삭제했다.

‘잘했다, 잘했어. 역시 내 딸이야.’

무석의 머릿속에 절로 떠오른 혼잣말이었다. 그는 뒤늦게 당황하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민망했다. 고개를 돌리니 동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차가운 커피캔 하나를 건넸다. 무석은 고맙다고 말하며 받아들자마자 들이켰다.

“그래서, 내가 추천해준 곳은 가봤나? 그 분 말이야. 박사님.”

“음, 가봤지.”

그는 빈 캔을 쭈그러뜨린 채 발끝에 힘을 실어 주유소 사무실 방향으로 깡 차버렸다.

“예쁘고 좋은 이름 많이 추천해주디? 딸이라며.”

“음, 음, 내가 이름을 정해놓고 가서, 맞춰달라고 했어.”

“뭔데? 아, 내 딸은 언제 결혼하고 손주를 낳으려나.”

“아직 못 알려줘. 애한테 지어주기도 전에 남한테 말하고 다니면 복 달아나.”

동료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그럴 수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무석 혼자만이 믿는 미신 같은 거였으니까. 명리학 박사도, 무속인도, 스님도 아무 상관없다고 했지만 괜히 그는 보물인 양 꽁꽁 감추고 간직하여 남에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무석은 빙긋 웃어 보이며 그만 가서 일이나 하라고 핀잔을 주었다. 동료는 나중에 음식이라도 돌릴 거지? 기대하는 투의 말을 남겼다. 점심때였던 것이다. 무석은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갖고 사무실로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다.

 

찬이라는 이름은 사실 두 살 때 개명하기 전 딸의 이름이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무석의 장인어른은 목사에게서 지어온 이름인 ‘희조’를 고집했다. 결국 사위인 그가 지는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희조라는 이름도 기독교 색채가 강하지 않고 독특하고 예쁘다며 제 아버지를 거들었다. 내 자식 이름만큼은 자신이 지어주고 싶다는 결혼 전의 결연한 약속을 아내는 잊은 모양이었다. 그는 아내를 만나고 나서 어려웠던 생계를 대학 때 선배에게 어설프게 배웠던 관상과 사주, 작명, 명리학으로 간신히 이어나갔던 것을 떠올렸다. ‘찬’은 그 유산이었다.

마음에 들어. 꼭 그 이름으로 짓기로 해. 알았지?

아내도 분명 그렇게 말했고, 무석은 힘주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는 청혼을 했다.

그때 그는 구효서라는 소설가의 작품 <명두>를 읽고 한껏 감명 받은 상태였다. 이름과 생멸에 관한 이야기. 문예창작과를 나온 아내가 글을 한창 쓸 때 사두었던 책이었다. 무당이니, 살해되어 죽은 아기니, 하는 얘기가 나와 막 희조를 낳기 직전이었던 그 즈음, 아내는 그 소설 얘기가 나올 때마다 화를 냈다. 애가 잘못되길 바라기라도 하냐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딸은 누구보다 잘 태어나고 잘 자랄 건데.

그러니 그런 끔찍한 소설 얘긴 집어치워. 그게 뱃속의 애 앞에서 할 말이야?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무석은 그날 이후로 <명두>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자신의 생일에 한정식 집에서 딸과 사위 아내를 비롯해 넷이 모인 적이 있었다. 그는 거기서 소설 얘기를 꺼냈다가 한동안 가족들의 눈치를 봐야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는 이름에 무슨 한이라도 맺혔냐고, 조상 중에 무당이라도 있었느냐고 역정을 냈다.

어느 날, 그는 사위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히 긴장해 헛말이 나오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가 오가다 그는 애 이름을 ‘찬’이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말을 흘렸다. 사위는 아, 하며 머뭇거리더니 저희가 정해놓긴 했지만 그것도 좋네요, 좋습니다, 맞장구를 쳐주었다. 찬이 원래 딸의 이름이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괜히 자식에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까봐서.

“희조 아빠, 희조 아빠!”

깜빡 잠이 든 그가 정신을 차렸다. 종합병원 산부인과 앞이었다. 일을 막 마치고 급히 들러 고단한 탓이었다. 저쪽에서 아내가 달려왔다. 환희로 가득 찬 표정의 그녀는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그녀는 드디어 아이가 나왔다고 외쳤다. 건강하게 잘 태어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시름 놓아 긴장이 풀린 얼굴로 아내는 무석의 손을 잡아 분만실과 회복실 근처로 이끌었다. 사위가 울먹거리며 예진이가 태어났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사위의 손을 잡고 고생했네, 위해주며 회복실로 간 딸에게로 향했다. 땀에 젖어 이마가 반짝이는 딸을 그는 내려다보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한 번 짚고, 손을 잡아주었다. 수고했고, 푹 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다소 무뚝뚝한 어조였지만 그는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찬아, 라고 한 번 불렀을 따름이다. 간호사가 막 아이를 안고 들어왔다. 그는 손녀를 조금 멀리서 바라보았다. 입을 살짝 벌린 채였다.

“찬아.”

누구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였다.

 

‘찬’은 잘 자랐다. 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예진, 또는 예진아씨라고 불렀지만 그는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부를 뿐, 혼자 있거나 사람이 몇 없을 때는 꿋꿋하게 찬이라고 불렀다. 딸은 불만스러워했다. 왜 남의 자식 이름을 제멋대로 부르냐고 하루 이틀 성화가 아니었다. 그때마다 무석은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찬이라는 이름이 더 예쁘고 뜻도 의미도 사주도 좋다고. 희조는 자신은 사주팔자 따위 믿지 않는다고, 이름은 부모가 지어주어야 하는 거고, 거기다 자신도 유명한 작명소에 가서 받아온 이름인데 무슨 소리냐고 따졌다. 그 말에 무석은 원래 네 이름이 찬이었다고 밭은 숨과 함께 가까스로 내뱉었다. 딸은 그게 뭐 어쨌다는 투로 따졌다.

“나는 희조야, 희조. 찬은 어렸을 때 개명하기 전 이름이고. 기억도 안나고, 다른 사람 이름 같아. 대체 왜 그래요, 아빠? 그 이름에 뭐 빚진 거라도 있어?”

“네 이름은 네 엄마하고 장인어른 때문에 양보했지만, 이젠 달라.”

“뭐가 다른데요, 이름을 지어줄 권한이라도 있어? 아빠가?”

“그게 무슨 소리니. 왜 없어, 내가 할아버진데.......”

더 이상 그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희조가 갑작스레 눈물을 보인 때문이었다. 그 애는 돌아서서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섰다. 무석은 제 집으로 가버린 딸애의 뒷모습을 놓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나마 부여잡았다. 그는 딸을 키웠을 적을 떠올렸다. 찬이 아닌 희조라 불린 그 애는 어쩐지 자꾸만 그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어긋났다. 낳을 때부터도 힘들었다. 제왕절개를 해야 했지만 그의 장인어른은 제 아내가 딸을 낳을 때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인지 자연분만을 고집했다. ‘희조’만큼은 ‘모자람 없이’ 태어나야 한다면서. 아내의 새끼손가락이 하나 없는 왼손을 이르는 것이었다. 그때 아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을 못했다. 장인의 무통주사를 맞아서도 안 된다는 외고집을 겨우 무석이 비틀었다. 아내는 다행히 아기를 잘 낳았고, 건강하게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무석은 남모르게 살아생전의 장인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원망했다. 얼굴만 봐도 분노가 치밀었다. 딸이란 이유로 자식을 저렇게 천대하다니. ‘희조’는 그런 장인의 삶이 담긴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자란 거야. 나하고도 관계가 이런 이유도, 그 이름 때문이야. 내 뜻대로 찬이라고 지었어야 하는데.’

자기 부모도 그렇고, 부모란 인간들이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모르겠다고 그는 분노에 찼다. 그래서 자신만큼은 희조를 모자람 없이, 가 아니라 잘, 키워야 한다고, 누구에게 임무라도 부여받은 양 굴었다.

“희조한테 아무 말 하지 마. 당신은 그럴 자격 없는 거 알잖아.”

어느 새 다가온 아내가 속삭이듯 말을 꺼냈다.

무석은 그녀를 돌아보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반문했다.

“걘 아직도 자기가 당신한텐 ‘망나니’라고 생각해. 벌써 잊었어?”

“망나니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그는 가슴 한 쪽이 선뜩했다. 그는 언제 일인데 아직도 그러느냐고 얼버무렸다. 서재로 자리를 피했다. 문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뒤로 몸을 젖히며 두 손으로 얼굴을 비벼댔다. 창문을 열었다. 데워진 공기 한 움큼을 들이마셨다.

망나니.

어렸을 적 희조의 첫 할로윈 때였다. 돈이 없어 영어 학원을 보내지 못했다. 그는 대신 약속해주었다. 집에서 할로윈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대형마트 캐셔로 일을 나간 아내를 대신해 딸과 함께 동네 문구점을 찾았다. 완구, 파티용품 코너에 가서 고르라고 했다. 희조는 장바구니 가득 담아왔다. 그것도 비싼 것들로. 얼핏 봐도 다 합치면 5만원이 훌쩍 넘을 듯했다. 그는 그중에서 딱 세 가지만 고르자고 했고, 계속된 실랑이 끝에 결국 희조가 울음을 터뜨렸다. 집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잘 때도, 집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할 때도 계속 옆에서 사달라고 칭얼대며 방해했다. 그중 가장 갖고 싶은 건 바로 불이 들어오는 해리포터 지팡이였다. 회사에서 돌아와 반주를 걸치던 그는 벌컥 화를 냈다.

“김찬, 그만해. 휴, 내가 어쩌다 너 같은 망나니를 낳았는지. 키우질 말았어야 했어. 손가락만 멀쩡하면 뭐하나, 망나니인걸.”

칭얼대던 그 애의 얼굴에서 한순간 핏기가 가셨다. 창백했다. 사망선고를 ‘들은’ 시체 같았다. 그때의 적막을 무석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다. 딸애를 희조가 아니라 찬이라고 불렀던 것도 기억한다. 무의식중에 자기 뜻대로, 찬이라는 이름대로 태어나지 않고 자라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데 품은 실망이나 불만 따위가 터져 나온 것이었다. 희조는 눈물도 흐르지 않는 눈길로, 텅 빈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더니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일주일 내내 입을 열지 않았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아내는 미쳤느냐고 역정을 냈다. 그는 할 말이 없어 그녀가 던지는 화장품을 그대로 맞았다.

“용서해달라고 빌어. 적어도 자기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내의 말대로 그는 사과했다. 희조의 방에 들어가 할 말이 있다고 한 뒤,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잘못을 했으니 뉘우치겠다고 말했다. 그건 그의 말마따나 정말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희조는 아무 말 없이 책상으로 가 학교 숙제를 마저 끝내고 침대로 기어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그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아침 식탁에 앉았다. 딸애가 말을 걸었다. 아빠 국 먹을 거냐고, 먹지 않을 거냐고. 그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제 골치 아픈 일은 끝났구나, 하고 여겼다. 그게 아닌 것임을, 이십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알아차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딸애는 그의 사과에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구나, 넘어갔구나, 싶었는데 아닌 것이었다. 무석은 제 장인을 닮지 않으려다 닮은꼴이 되었다. 그의 시선이 마룻바닥으로 떨어졌다. 희조가 아닌 찬이라 불렸다면, 찬이로 자랐으면 달랐을까. 자신과 딸의 관계가. 달랐을 것이다. 달랐을 거라고 그는 확신한다. 나지막이 손녀 예진을 찬이라고 끊임없이 되뇌는 무석이었다.

 

찬은, 그러니까 예진아씨는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나는 것 같았다. 어느 새 돌이 지나 두 살, 세 살 먹더니,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무석은 주유소를 나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급식 재료를 납품하는 물류기사로 일자리를 옮겼다. 그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 앞에선 예진아씨, 예진아, 라고 불렀지만 혼자 있거나 친한 사람 몇이 있을 땐 찬아, 찬아, 라고 손녀를 불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는 반응을 보였다. 검갈색의 눈동자를 빛내며 작달막한 머리를 홱 돌려 무석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아장아장 걸어와 그의 품에 안길 듯이 주변에서 맴을 돌다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게 자신이 찬이라는 것을 알아서였는지, 아니면 그냥 낯선 이름에 보인 반응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찬이라고 부르다 희조에게 들키는 날엔 고역을 치러야 했다. 왜 자꾸 찬이라 부르냐, 이름에 뭔 짓을 한 게 아니냐, 제발 나처럼 손녀 키울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말라는 말까지. 그도 지지 않았다. 내가 못해준 게 뭐가 있다고 너한테서 그런 소릴 들어야 하냐고 되받아쳤다.

“정말 몰라요? 아버지란 사람이, 어떻게 그걸 몰라. 참 속편하시겠어, 다 그럴 수 있지, 하면서 넘길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자기가 아니라 남한테 쓰는 말이야. 본디 양심이 아직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그는 화가 나 딸애의 손목을 붙잡았다. 한순간 손끝으로 느껴졌던, 이질감. 매끈한 피부에 길게 솟은 흉터. 주저흔이었다. 생각은 생각을 낳는다. 기억은 기억을 스친다. 딸애는 황급히 내게서 손을 빼내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돌아갔다. 안에서 다신 친정에 오지 않겠다고, 앞으론 엄마만 저희 집에 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끝에 남은 이질적인 감각이 무석으로 하여금 머릿속에 지난날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희조가 고등학생 때였다. 그 애는 성적 때문에 괴로워했다. 걸핏하면 그가 그따위로 할 거면 다 때려치우고 가서 공장에나 취직하라고 타박했기 때문이었다. 왜 인문계를 가서 돈을 축내느냐고, 상고를 가서 일찍 취직하고 일찍 시집이나 가면 네 팔자도 그럭저럭 펴질 않겠느냐고. 그것도 매번 밥상 앞에서였다. 희조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반도 비우지 않은 밥그릇 옆에 수저를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가 숨죽여 울분을 삭혔다. 딸애의 자해행위와 자살시도는 그때부터 이어졌다. 발견한 건 같이 목욕탕을 갔던 아내였고, 그녀의 분노와 고성, 울음에 지친 무석은 집을 나갈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되는 게 없었다. 확 죽어버릴까, 싶었다. 그 즈음 자식을 살해한 뒤 자살하는 부모들이 유행처럼 많았다. 대개 생계 비관이었다. 마침 일자리를 잃고 헤맸으므로,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고 그는 생각했다.

“김 씨, 얼른 이거 안 옮기고 뭐해. 이러다 제 시간에 도착 못하겠어.”

팀장이 무석을 재촉했다. 그는 마저 짐을 실은 뒤 운전석에 올라탔다. 장장 두 시간을 달려 일산에 위치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급식 재료를 배달해야 했다. 도로는 아직 열기로 채 달궈지기 전이었다. 새벽 여섯 시. 아직 출근길이 아니라 차가 막히진 않았다. 그는 라디오를 켰다. 흘러나오는 찬송가 리듬에 제멋대로 가사를 붙여 노래를 흥얼거렸다. 딸애가 할로윈 때 장바구니를 가득 들고 온 이후로, 딱 한 번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바로 결혼식 전 양가 상견례 때였다. 손목의 흉터제거술을 받게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였다. 그는 비용을 알아보지 않고 선뜻 빌려주었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돌려받은 건 농담이 아니었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식당 주방으로 짐을 옮겼다. 이 쪼그만 애기들이 먹을 게 왜 이리 많고 무거운지. 이 애들도 곧 커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겠지. 아니, 대학가지 진학하겠지. 요즘에 대학 안 나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희조는 정말 그의 말대로 대학을 가지 않으려 했다. 원하던 학교에 떨어진 게 이유였다. 무석은 아내와 합심하여 지방 국립 사범대를 보내려 무진 애를 썼다. 거기도 쉬운 대학이 아니다, 지방이지만 국립에다 사범대이니 미래도 보장되어있고 얼마나 좋으냐. 그런 것이 이유였다. 그 애는 사흘 밤낮을 내리 울었다. 그 애가 재수 통보를 하기 전, 그는 몰래 합격 예치금을 넣었다.

“라면을 끓였는데 드시고 가겠어요? 마침 저희 먹던 라면이 좀 많이 남아서요.”

어린이집 교사가 그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무석은 어휴, 감사하죠, 마침 아침도 못 먹었는데, 하면서 식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라면을 받아들었다. 겉보기엔 그럴싸했다. 나무젓가락으로 한가득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면은 너무 오래 삶아 흐물흐물 불어있었다. 이로 끊기도 전에 혀끝에 면발이 흩어졌다. 그는 어딘가 익숙한 맛이라고 생각하며 아무 말 없이, 배만 채울 요량으로 그릇을 빠르게 비웠다. 어느 틈엔가 그는 면발의 기억을 되살렸다. 언젠가 아내가 병원에 입원한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어른을 간병하기 위해 잠시 집을 비웠을 때였다. 밥을 차리는 건 희조의 몫이었다. 지금에서야 사위가 들으면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부엌일은 당연히 여자가 해야 하고, 엄마가 없으니 딸이 아내 노릇을 해야 한다는 사고를 가진 가부장이었다. 어느 날 점심이었던가. 딸이 쌀이 떨어졌다며 저녁으로 비빔면을 끓였다. 점심도 아니고 저녁에 무슨 비빔면이냐, 따지며 그는 젓가락으로 면을 들어올렸다. 너무 늦게 불을 끈 탓에 면발이 흐느적거리고 물을 적당히 덜어내지 못해 양념은 싱거웠다. 그는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이게 뭐냐고,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럼 어떡해요? 밥이 없는데.

네 엄마 올 때까지 굶어야지. 갖다 버려.

딸의 말에 그는 거실로 향하며 툭 던지듯 대답했다.

희조는 더 이상 아무 말을 않고는 자기 몫의 비빔면을 묵묵히 먹고 깨끗이 비웠다. 나중에 아내가 집으로 와 누가 비밈면을 먹지도 않고 통째로 음식물쓰레기봉지에 버렸느냐고 물었을 때, 희조는 자신이 그랬다고 말했다. 그가 뭐라고 변명을 꺼내기도 전이었다. 딸애는 꼭 상대하기 싫다는 것 같았다. 그런 뒤 여느 때처럼 학교로 출근했다.

그는 시큰한 코를 감싸며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을 훔치고 있었다. 눈두덩이 벌겠고 뺨은 움푹 패었다. 불거진 광대가 들썩거렸다. 튀어나온 목울대가 넘실거리며 울음을 토해냈다. 다행히 주방에 그런 그의 모습을 볼 사람은 없었다. 그는 서둘러 빈 그릇을 개수대에 놓고 어린이집을 빠져나왔다. 어느 새 굵은 빗방울이 요란하게 땅을 두드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바람에 휘청거리며 사선으로 허공을 할퀴었다. 도망치듯 무석은 어린이집에서 트럭을 몰고 나갔다.

 

찬이, 그러니까 예진이의 생일이 찾아왔다. 그들 가족 모두는 작은 놀이공원이 딸린 서해안 바닷가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신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을 만큼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저 저 할 말만 떠들며 먹고, 자고, 놀이기구를 타고, 바다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차에 올라탔는데 예진이가 오줌이 마렵다며 칭얼댔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예진이와 놀아주느라 탈진한 기색이었다. 무석은 자신이 예진이를 데리고 휴게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그때 예진이는 혼자 볼일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자라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예진이의 손을 꽉 잡고 휴게소로 향했다.

“찬아.”

그는 예진의 ‘이름’을 불렀다. 아기였을 때처럼 예진은 찬이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할아버지랑 노니까 좋아?”

“응, 좋아요. 내일도 할아버지랑 놀고 싶어요.”

“내일은 뭐 먹을까? 먹고 싶은 거 있니?”

무석은 여느 때와 달리 웃음을 입가에 한가득 머금고 말했다.

“근데 할아버지, 나 쉬 쌀 거 같아요.”

“얼른 가자. 화장실 저쪽이다.”

무석은 여자화장실에 바투 서서 찬을 들여보냈다. 사람들로 복잡한 화장실 입구를 예의주시하며 기다렸다. 문득, 가슴 한 쪽에 깊숙이 잠들어있던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언젠가 희조의 생일에 에버랜드를 다녀오는 날이었다. 그 혼자밖에 연차를 쓸 수 없어 단둘이 갔다. 그는 가끔 가다 놀이기구를 타는 딸의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었을 뿐, 같이 놀이기구를 타거나 하진 않았다. 멀미와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핑계였다. 그는 놀이기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적 자신도 놀이공원을 엄마아빠 손잡고 한 번도 가지 못했으며, 기껏해야 누나들 생일에 따라간 것이 다였다. 그 외엔 엄마 몰래 아빠가 건네주는 술과 안주를 집어먹던 기억만이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그때였다. 사진을 찍기 위해 놀이기구를 바라보는데 희조의 모습이 보이질 않은 것은.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작은 키의 딸이 눈에 띌 리 만무했다. 한참동안 그는 헤맸다. 먼저 놀이공원 운영팀에 신고해야한다는 것도 깜박 잊은 채, 무작정 찾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희조라고 부르며 찾다가 어느 순간부턴 자신도 모르게 찬아, 찬아! 하고 소리쳐 불렀다.

“할아버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았다. 웬 낯선 아이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가 놓으며 죄송합니다, 하고는 멀어져갔다. 그는 화장실 입구로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무리 기다려도 예진은, ‘찬’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슬슬 걱정되어 여자화장실을 나서는 사람들을 붙잡고 찬의 행색을 설명하며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몇 사람이 남자화장실 쪽 골목으로 나가는 여자아이를 보았다고 말해주었다. 무석은 무작정 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골목으로 가 휴게소 뒤편 공원으로 향해 정신없이 뛰어다녔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딸애를 찾을 때처럼 찬의 이름을 핏대 세워 부르짖었다. 드문드문 찬의 모습이 희조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사방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무석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조금이라도 닮거나 작은 키의 아이들을 붙잡았으나, 어디에도 찬은 없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훑고 흘러내렸다. 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는 희조에게 전화를 걸어 찬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더듬더듬 말했다. 희조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했다.

“예진이 내 옆에 있는데? 아빠, 지금 어디 있는데요?”

“그, 그러냐. 지금 간다. 호두과자, 사갈까?”

무석은 안도하는 한편 자신에 대한 분노를 억누를 수 없어 소리를 질렀다. 무릎에 두 손을 짚고 고개를 숙였다. 이내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뭐하는 건지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왜 찬이라고 불렀을까. 예진이라고 불렀으면 바로 대답했을 텐데. 그날, 에버랜드에서 희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근처 시내의 버스 정류장에서 경찰에 의해 발견되어 집으로 인도되었다. 아내는 대체 자식이라고 생각은 하는 거냐고 난리를 피웠다. 그는 그날 이후로 찬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쥐약을 삼킨 듯 그 이름 앞에선 죽은 척 조용해졌다.

차로 돌아온 그는 한동안 치매 노인 취급을 받으며 시달렸다.

“할아버지. 찬이가 누구야? 내 이름은 예진인데, 예진아씨.”

그 애가 깔깔대며 물었다.

“미안해요, 예진아씨. 내가 잠깐 착각했나봐.”

차는 곧바로 휴게소를 나가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무석은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자신에겐 희조와 예진만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점차 뚜렷해졌다.

“찬이는 이제 갔나. 갔네.”

가족들은 무석의 중얼거림을 잠꼬대로 오해했다.

희조와 예진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무석의 귓가에 희끄무레한 형체로 부풀었다.

댓글 2
  • No Profile
    정상훈 23.01.23 22:16 댓글

    그동안 바빴어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자식에 대한 기대와 모습을 이름으로 표현한 것이 재밌네요.

  • 정상훈님께
    No Profile
    글쓴이 김성호 23.01.30 15:13 댓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771 단편 슈타겔의 남자들 김성호 2022.11.08 0
2770 단편 사람의 얼굴 해리쓴 2022.11.07 0
2769 단편 카페 플루이드1 쟁뉴 2022.10.27 0
2768 단편 카페 르상티망2 scholasty 2022.10.18 0
2767 단편 최종악마의 최후 니그라토 2022.10.13 0
2766 단편 CHARACTER1 푸른발 2022.09.30 1
2765 단편 토끼와 가짜 달 거지깽깽이 2022.09.19 0
2764 단편 수박 거지깽깽이 2022.09.19 0
2763 단편 위(胃)의 붕괴 배추13잔 2022.09.17 0
2762 단편 모험은 영원히 헤이나 2022.09.13 0
단편 찬이라고 불린 날들2 김성호 2022.09.12 1
2760 단편 어느 Z의 사랑4 사피엔스 2022.09.07 2
2759 단편 천하에 소용없는 노력과 망한 인생 대혐수 2022.09.03 4
2758 단편 언니 푸른발 2022.08.31 0
2757 단편 목마의 뱃가죽을 가르면 사피엔스 2022.08.29 0
2756 단편 여전히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 헤이나 2022.08.28 0
2755 단편 네버마인드, 지구2 헤이나 2022.08.28 0
2754 단편 만다린 치킨1 도우너 2022.08.25 0
2753 단편 취소선 둘째5 서애라자도 2022.08.24 1
2752 단편 모의 꿈 김성호 2022.08.17 0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