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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괴물

2022.07.31 20:2907.31

영일은 소리를 죽이며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에 면한 방문 틈으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왔다. 집은 고요하게 잠겨 있어, 키보드 소리만이 청명하게 울렸다. 영일은 방문 가까이 다가갔다. 진석의 한숨과 탄식이 섞여 들렸다.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도 들렸다. 영일은 안쓰러운 눈으로 방문을 바라봤다. 한타싸움에서 졌다는 둥, 다음번 용은 꼭 먹어야 한다는 둥 따위의 소리가 들렸다. 늦은 밤까지 게임이나 하고 있다니! 영일은 술김에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이 되어가는 데도 진석은 취직을 못 했다. 문을 열고 정신 차리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 사내자식이 책임감도 없이 허송세월이나 보내냐고 다그치면서. 술에 취했다는 핑계로 한 대 갈기고 싶었다. 문고리를 잡았지만, 이내 혜선의 따가운 눈초리를 생각하자 마음을 접었다. 혜선은 소란 때문에 분명 잠에서 깰 것이다. 자정이 넘어서 들어온 자신에게 혜선은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이다. 감정은 격해질 거고, 혜선은 예전에 영일이 저지른 잘못들을 열거해 나갈 것이다. 젊은 시절에 피웠던 바람 같은 것 말이다. 영일은 우두커니 서서 안방을 바라보았다. 영일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발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 안방 옆 서재로 들어갔다. 사실 잔소리보다 더 피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발기되지 않은 자신을 대면하는 것. 술에 취할 때면 영일은 욕정에 휩싸였지만, 수년 전부터 발기가 되지 않았다. 비뇨기과도 찾아가고 한의원도 찾아가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비아그라를 먹으면 잠깐 뜨거워지는가 싶기도 했지만,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성기는 볼품없이 쪼그라들고 말았다. 그 뒤로 영일은 술을 마신 날이면 여지없이 서재로 들어가 혼자 잠을 청했다.

 

혜선은 모로 누웠다가 바로 누웠다가를 반복하며 뒤척였다. 저녁에 있었던 일 때문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나를 생각하며 시를 썼다는 게 무슨 의미지? 또 그 시구는 또 뭘 뜻하는 걸까? 나를 좋아한다는 소리인가? 혜선은 시를 마음속으로 읽었다. ‘당신의 의자가 되고 싶어.’ ‘당신의 온기가 나의 낡은 의자를 생동하게 해.’ 유치하기도 짝에 없는 시였다. 너무나도 선정적이었다. 하지만 혜선은 불쾌하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교사로 임용되자마자, 부모가 점 찍어놓은 영일과 여남은 만나고 결혼했다. 영일은 첫 번째 남자였다. 당연히 마지막 남자라고도 생각했다. 그게 의무라고 생각했던 시절에 살았으니까. 영일과의 첫날밤은 로맨틱한 감정 따위는 없었다. 그저 시커먼 사내가 내 안으로 들어온다는 두려움이 컸을 뿐이다. 영일이 인상을 쓰며 얼굴을 흔들 때, 혜선은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맹수와 같다고 느꼈다. 그냥 자신을 잡아먹고 빨리 끝내주길 바랄 뿐이었다. 성관계에 실패하고 어깨가 축 처진 채 침대에 걸터앉은 영일의 뒷모습을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상쾌한 마음이 들었다. 드디어 해방이다, 하고 혜선은 생각했다. 고요 속에서 거칠게 뛰는 가슴소리를 혜선은 느낄 수 있었다. 불빛이 하나 없는 어두운 방에서 러브레터에 가까운 시를 생각하자 온전히 세상에 그 시구들과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써 내려가는 가느다란 손가락. 빛을 옅게 반사하는 맑은 손톱. 그 손톱이 몸을 긁어 내려갔다. 혜선은 자신도 모르게 묘한 흥분에 사로잡혔다. 그러고는 아랫도리 안으로 손을 넣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묘한 감촉이었다. 혜선은 뜨거움에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꺼져.”

서재에서 영일이 소리를 질렀다. 혜선은 깜짝 놀라며 바지 속에 집어넣었던 손을 꺼냈다.

“조용히 자.”

혜선은 서재를 향해 소리쳤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혜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그때 다시 영일이 비명을 질렀다. 혜선은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서재에서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뱀이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영일은 울부짖으며 서재에서 나왔다. 시커먼 괴물체가 형광의 눈을 번쩍거리며 영일에 등에 달라붙어 있었다. 영일은 하얗게 질린 채로 혜선 쪽으로 다가왔다. 혜선은 뒷걸음치다가 넘어졌다. 혜선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불을 꺼놓은 채, 유영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롯데타워 불빛이 천장에 머물렀다. 강변북로를 달리는 둔중한 차 소리가 유영의 귓가에 맴돌았다. 계장은 유영에게 재계약이 불가하다고 했다. 유영은 국책 연구기관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먼저 들어온 계약직들이 몇 달 전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기에 유영은 내심 다음은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했다. 조사관들의 보고서를 복사하거나, 탕비실 다과를 채우는 따위의 허드렛일이었지만, 유영은 불평하지 않고 일했다. 간혹 세미나 준비 때문에 야근해야 할 때면, 군말하지 않고 회사에 남았다. 물론 자신이 남아야 하는 걸, 유영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무기계약직인 선배들이 말없이 유영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밤늦게 세미나 자료를 복사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 몇몇 선배들은 운동복 차림으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컴퓨터 앞에 잠깐 앉아 있다가 쌩하고 사라졌다. 유영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그만큼 유영에게 이 자리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유영은 막막했다. 계장은 한 달 뒤에 연구보조원 중 하나가 육아휴직이 예정되어있어 대체 근무자를 뽑을 거라 했다. 아무래도 경력직을 우대하다 보니,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유영이 뽑힐 거라고. 유영은 얼마나 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최소 일 년이라고 했다. 육아휴직을 연장하면, 삼 년까지도 가능하다고 했다. 삼 년 뒤면 몇 살일까, 하고 유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서른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밖에 유영은 할 수 없었다. 서른둘. 서른둘. 서른둘. 붉어진 천장이 그대로 자신에게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천장의 잔해에서 웅크리고 있겠지. 그때 거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30년 가까이 부부로 살면서 어떻게 저렇게 맨날 싸울까? 영일과 혜선의 모습을 보면, 결혼에 대한 환상은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유영은 비혼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유영은 눈물을 훔치며 창문 쪽으로 돌아누웠다. 밖에서는 무언가가 세게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혜선이 비명을 질렀다. 유영은 또렷이 기억했다. 유영이 열세 살 때, 영일이 혜선을 향해 홧김에 거실에 있던 수석을 던진 일을. 혜선은 피하려 했지만, 수석에 발등이 찍혔다. 한동안 혜선은 깁스를 한 채로 출근했다. 주위에는 지나가는 차에 밟혔다고 둘러대고는. 생생하게 그 장면이 떠오르자, 화가 났다. ‘한남 새끼. 또 때리는 거야?’ 유영은 방문을 열었다.

영일은 넘어져 있었고, 시커먼 것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영일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혓바닥을 내밀고는 영일의 목을 핥았다. 따가워, 라고 영일은 연신 비명을 질렀다.

“허진석, 허진석”

유영은 문지방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진석을 불렀다. 진석은 짜증을 내면서 거실로 나왔다. 영일은 고개를 들어 진석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긴 혓바닥이 다시 목에 닿자, 영일은 몸을 비틀며 자지러졌다. 진석은 깜짝 놀라며 영일 쪽으로 뛰어갔다. 괴물체의 등이 번들거려 진석은 순간 몸이 굳었다. 영일이 울부짖으며 뭐하냐고 다그쳤다. 진석은 눈을 질끈 감고는 괴물체의 몸에 손을 댔다. 괴물체의 몸은 기름칠한 것처럼 미끄덩했다. 손이 계속 미끄러졌다. 진석은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괴물체의 배를 손으로 감았다. 드라이아이스를 만진 것처럼 손이 차가워졌다. 예전에 동물원에서 뱀을 만져봤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냉기였다. 생물체의 온기가 아니었다.

“너무 차가워요.”

“무슨 소리야? 뜨거워 죽겠어.”

영일의 목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석은 괴물체를 끌어내려 했지만, 점점 잃어가는 손의 감각 때문에 지쳐갔다. 진석은 고개를 돌려, 유영을 향해 외쳤다.

“어떡해 하지만 말고, 좀 도와줘.”

유영은 사색이 된 채로 울먹거리고 있었다. 진석은 욕설을 뱉으며 베란다로 뛰어갔다. 골프채를 꺼내 돌아와 괴물체를 내리쳤다. 괴물체는 형광의 눈으로 진석을 노려봤다. 진석은 다시 골프채를 휘둘렀지만, 괴물체는 영일에게서 떨어지며 피했다. 괴물체는 우두커니 서서 가족들을 훑어보았다. 형광의 눈은 빨간색으로 바뀌어 깜빡거렸다. 마치 울고 있는 거 같았다. 진석은 당황한 채 가만히 있었다. 영일은 재빠르게 진석의 골프채를 낚아채고는 괴물체를 향해 달렸다. 그러고는 마구 괴물체를 향해 갈겼다. 영일의 얼굴에 괴물체에서 터져 나온 진액들이 묻었다.

“악. 따가워.”

영일의 얼굴은 습진이 올라온 것처럼 뻘겋게 달아올랐다. 괴물체는 숨을 몰아쉬면서 가족들을 둘러보고는 유유히 서재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서재의 문을 잠가버렸다.

 

밤사이 경찰이 서재를 수색했다. 괴물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집을 나갔다. 경찰이 사라지자, 문이 저절로 닫혔다. 철컥 소리를 내며 서재가 잠겼다. 다시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듯한 소리가 집안을 채웠다. 유영은 경찰에 다시 전화하고, 괴물의 소리를 들려줬다. 경찰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밤늦게 계속 이런 식으로 장난치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메마른 목소리로 경찰이 말했다. 유영은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은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러고 서로 부둥켜안은 채로 공포에 떨며 밤을 지새웠다.

 

괴물과 동거도 한 달이 다 되어갔다. 처음 며칠은 공포에 질린 채로 안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선잠으로 밤을 보냈지만, 시간이 흐르자 익숙해져 갔다. 이제는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잤다. 물론 밤중에 울려 퍼지는 괴물의 울음 때문에 잠에서 깨고는 했다. 적응할 수 없는 소리였다. 유영은 괴물의 울음을 녹음하여 방송국에 제보했지만, 그들은 항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가족들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한 달 가까이 서재에 틀어박혀서 간헐적으로 소리만 낼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일의 얼굴에 난 상처가 아물어가듯 이 상황에 적응해갔다.

 

영일은 침대에 누워 화장대 앞에서 출근 준비하고 있는 혜선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혜선은 립스틱을 바르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어차피 마스크를 쓰면 보이지도 않을 텐데 왜 저러나 싶었다. 시쓰기 모임을 나가는 날에만 유독 화장하는 데 혜선은 공을 들였다. 혹시 바람을 피우나? 영일을 의심의 눈초리로 혜선을 아래부터 훑고 지나갔다. 치마를 입은 거부터 목걸이를 한 거까지. 혜선의 겉치장 모두가 의심스러웠다. 화장을 끝낸 혜선은 손거울로 뒷머리를 보고는 매만졌다. 정수리 쪽이 허옇게 텅 비어 있었다. 혜선은 정수리 쪽으로 머리카락을 말아 올렸지만, 이내 머리칼을 힘없이 흘러내렸다. 한숨을 내쉬며, 혜선은 다시 빗질했다. 그럼 그렇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는 혜선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반찬은 뭐야?”

“백수 남편 아침까지 챙겨줘야 해? 내가 이 집 식순이니?”

혜선은 날카롭게 쏘아붙이면서 말했다. 영일은 순간 어이가 없었다.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누가 밥 차려달래? 반찬 뭐 있나 싶어서 물어본 거지.”

“알아서 차려 먹어.”

혜선은 쌩하고 나가버렸다. 저 여편네랑은 평생 안 맞아, 하고 영일 혀를 차며 부엌으로 가 주섬주섬 냉장고에서 밑반찬들을 꺼냈다.

영일은 홀로 남은 집에서, 물론 괴물이 떡하니 서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티브이를 켜놓은 채 빈둥거리고 있었다. 간혹 종편에서 패널들이 정부가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비난해대면 그들을 향해 욕하기도 했다. 빨래통에는 옷가지들로 가득했지만, 세탁기를 돌리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아침에 먹다 남은 반찬들이 그대로 놓여있었다. 아침에 자신을 쏘아붙인 혜선이 괘씸했기 때문에, 집안일을 하지 않았다. 번듯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자식들 때문에 혜선은 남들처럼 명예퇴직을 하지 못했다. 예순이 다 돼가는 나이에 평교사로 일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영일은 잘 알았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아내를 위해 집안일 도와줬다. 부부 동반 모임에서 혜선은 남편을 치켜세워주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해져 갔다. 술 약속 때문에 간혹 설거지 안 한 채로 나갔다 들어오면, 혜선은 짜증을 쏟아냈다. 날이 갈수록 혜선의 무시는 심해졌다. 아침처럼 백수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자신은 백수가 아니라 엄연히 정년퇴직자였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 영일은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학자금 대출도 없이 자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넉넉지는 않지만, 자식들한테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연금도 나왔다. 비록 1주택자지만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를 대출금 없이 보유 중이었다. 이 정도면 누구나 부러워할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허 사장, 뭐 하시나?”

“그냥 있는 거지 뭐. 그럼 김 사장은?”

“난 백신 맞고 오는 길이야. 하도 언론에서 떠들어대서 불안했는데, 별거 없구먼.”

“한국 언론들이 다 그렇지 뭐. 여하튼 썩어 빠진 언론이나 검찰이나 싹 다 개혁해야 해.”

“암. 그래야지. 아무튼 허 사장도 얼른 백신 맞으라고. 그래야 동남아로 골프 치러 가지. 동남아 애들이랑 재미 좀 봐야지 않겠나?”

서재에서 괴물이 다시 울어댔다. 영일은 탐탁지 않다는 듯이 미간을 찡그렸다.

“이 소리 들려?”

“무슨 소리? 자네 숨소리?”

“아니네.” 영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남아 좋지. 근데 내 처지가…. 자식들 때문에 어디 아파트 경비라도 해야 할 판인데.”

“지금 자네 집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데, 어디서 앓는 소리를 하시나.”

“팔아야 돈이 되지.”

그때 영일의 머릿속에 어느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영일은 서재를 일별하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김 사장. 내가 급한 일이 있어서. 나중에 스크린 골프라도 한판 치자고.”

영일은 전화를 끊고는 부동산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던 유영은 알람이 울리자 물기 묻은 손을 닦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라폴리오에서 누군가 유영이 올린 그림에 라이크를 누른 것이었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유영은 자신의 그림을 바라봤다. 거칠고 어둡게 색칠한 배경에 덩그러니 놓인 빨간 두 눈. 어두운 배경 때문에 윤곽이 희미해, 확대해야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아기. 미술을 전공한 유영은 연구보조원이 돼서도 틈틈이 그림을 그려 그라폴리오에 올리고 있었다. 백여 개의 그림을 게시했는데, 모두 빨간 눈의 아기 그림이었다. 어느 때는 그림 속 아기가 그 눈으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어딘가를 응시하기도 했다. 간혹 꽃들이 만발한 들판에 아기가 놓여있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아기의 눈은 언제나 충혈된 것처럼 붉었다. 몇 년 전 자신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걸 혜선으로부터 들은 뒤, 아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3개월도 안 돼서 혜선은 임신했다.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는 것조차 실감이 되지 않던 시기였다. 혜선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아기가 없어졌으면 했다. 배는 점점 부풀어 올랐다. 아기는 몸속에서 뒤척거렸다. 아기는 어느새 혜선과 함께하고 있었다. 혜선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때부터 혜선의 모든 생활은 아기에게 맞춰졌다. 수업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내려 마시던 커피도 끊었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간다고 혜선은 생각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지우자고 했다. 전세로 사는 형편에 아기를 낳는 건 부담이라고 했다. 게다가 딸이지 않으냐고 했다. 낚싯바늘에 꿰어진 지렁이 수만 마리가 뱃속에서 꿈틀거리는 거 같았다. 혜선은 역한 기운이 올라왔다. 게워내고 게워냈다.

“유영씨, 뭐해?”

무기계약직 선배가 세면대 옆으로 와 마스크를 벗으며 물었다. 유영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별거 아니란 듯이 미소를 짓고는 몸을 돌려 화장실을 나가려 했다.

“그림 잘 그리더라?”

순간 유영은 온몸이 뻣뻣해져 자리에 멈췄다.

“그런데 그림들이 너무 음침해. 자긴 좀 밝을 필요가 있어.”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유영은 속으로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물었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지.”

“네?”

“아니야. 됐어.”

입술을 실룩거리며 웃는 그녀의 얼굴이 거울 속에 비쳤다. 걱정돼서 짓는 웃음일까? 아니면 경멸의 웃음일까? 그 얼굴에 묻고 싶었다. 어떻게 내 그림들을 아냐고? 연락처가 연동된 SNS에는 일절 올리지 않았던 그림들인데. 선배만 아는 거냐고. 아니면 너희 무기계약직들끼리 내 그림들을 돌려보며 숙덕거렸냐고. 유영은 아무 말도 묻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나와 옥상까지 뛰어 올라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구부리고 무릎에 손을 댔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유영 쪽을 쳐다봤다. 유영은 남자들의 얼굴들을 훑었다. 너희들도 알고 있었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학살로부터 살아남은 자’라고 게시물마다 시그니처처럼 적었던 문구를. 그래서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거냐고.

 

“요즘 그 애가 나오는 꿈을 계속 꿔. 꿈속의 나는 겁에 질린 채로 부풀어 오르는 배를 바라봐. 배가 터질까 봐 두려워해. 식은땀으로 옷은 다 젖어있어. 부풀어 오르지 말라고 손으로 배를 만져. 배는 서늘해. 갑자기 아이가 걱정되는 거야. 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생각해보니 이름을 지어준 적이 없던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영이라고 불러. 아마 태어났다면 유영이라는 이름을 먼저 가졌을 테니까. 오직 하나의 꽃이라는 뜻. 내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 더욱 애틋한 감정이 드는 그 이름을. 유영아. 유영아. 서늘한 배를 쓰다듬으며 불러. 몇 분을 문질렀을까. 손이 뜨거워지는 걸 느껴. 유영이가 다시 살아난 걸까, 하는 생각에 배를 봐. 붉은 피로 손이 물들어 있어. 배를 칼로 가르고 유영이가 나왔던 거야.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봐. 날 원망하는 걸까. 얼마나 안에서 울고 또 울었을까. 왜 나는 못 들었던 걸까. 가여운 아이. 아이가 무어라고 중얼거려. 꿈속의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어.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사라져버려. 그러고 꿈에서 깨. 엄마라고 했을까?”

혜선은 얼굴을 붉히며 맞은편에 앉은 지은을 바라봤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지은은 테이블 위 혜선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언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어. 울지 마.”

혜선은 코를 훌쩍이면서 지은을 바라봤다. 지은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그럼 넌 왜 우니?”

지은은 그런 자신이 부끄러운지 잡고 있던 손을 떼고는 눈물을 닦았다.

“내가 몰 울었다고 그래?”

지은은 얼굴을 붉혔다. 그런 모습이 혜선은 왠지 모르게 귀엽게 느껴졌다.

“지은아, 우리 좀 걸을까?”

혜선과 지은은 카페에서 나와 걸었다. 10시가 넘어 상점들 곳곳이 불이 꺼져있었다. 거리는 술집에서 나와 떠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혜선과 지은은 자연스럽게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방향을 틀었다. 골목길은 길게 뻗어 있어, 둘만이 골목길에 놓여있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마스크를 벗었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을 맞으며, 둘은 나란히 걸었다. 문득 카페에서 자신의 두 손을 살포시 덮었던 그 온기를 혜선은 떠올렸다. 혜선은 어느 순간부터 남편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지은에게 스스럼이 없이 털어놓곤 했다. 지은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가슴 아픈 이야기들까지 공감하며 들어주었다. 그렇게 털어놓고 나면, 혜선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깊숙한 곳에 지은이 자리하고 있단 걸 알아차렸다. 혜선은 지은의 손이 그리워졌다. 혜선은 지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우리 길에서 손잡은 건 처음인 거 알아?”

지은은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로등에 반사된 지은의 눈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저 눈에 자신만이 담겨있었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오롯한 자기 자신이. 혜선은 조심스럽게 지은에게 키스했다. 지은은 눈을 감으며, 혜선의 허리를 감쌌다. 혜선도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따뜻함을 그려보았다.

 

영일은 주말 아침에 가족들을 소집했다. 아일랜드 식탁에 손을 짚고, 앉아 있던 가족들을 영일은 죽 훑어보았다. 혜선은 귀찮은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유영과 진석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대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부엌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던 아버지 때가 그립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의 손찌검 때문에 부엌에서 울던 어머니의 눈물을 영일은 똑똑히 기억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주말이면 한강 둔치에 나가 아들과 캐치볼을 하곤 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던 딸의 고백을 경청하고 그 꿈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줬다. 물론 몇 번의 실수들이 있었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이렇게 냉대받을 만큼 큰 실수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 두어 명의 여자와 몸을 섞었을 뿐이고, 다그치던 아내에게 홧김에 수석을 한 번 던졌을 뿐이었다. 하늘에 맹세코 아내가 맞을 줄은 몰랐다. 잘못했다고 아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아내와 딸은 십여 년이 넘도록 이야기했다. 너희들은 결백하게 살았냐고 반문하고 싶었다. 왜 항상 이 집안의 악당은 나냐고 묻고 싶었다.

괴물은 징그러운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책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책장이 넘어가는지 쿵 소리가 들렸다. 가족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서재를 바라봤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너희들이 악당이라고 부르는 나일 것이다. 영일은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동산에 집 내놨어.”

“괴물이 저렇게 날뛰는데 누가 사?”

“당신은 보면 항상 생각이 짧아.”

“또 깔보면서 말한다. 지는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혜선은 영일을 흘겨봤다.

“자식들 앞에서 항상 이런 식으로 대하니, 아버지 알기를 우습게 알지.”

영일의 얼굴은 어느새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유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둘 사이에 섰다. 그러고 영일을 진정시켰다. 영일은 혜선을 보고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저기 서재에 있는 녀석은 우리만 있을 때 나타난다는 거야.”

“그래서요?”

“집을 사려는 사람도 당연히 볼 수 없겠지? 녀석은 숨어있을 테니까. 비겁한 녀석은 계속 숨어있으라고 해. 우리는 팔고 여길 뜨면 되니까”

“이사 간 집까지 저 녀석이 따라온다면요?”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자고. 저 녀석이 우리한테 원한이 있어서 나타난 거라면 우리를 따라올 테지만, 이 집에 사연이 있는 거라면, 계속 여기에 머물지 않겠어?”

“이 집을 산 사람들이 나중에 따지면요?”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그들한테만 보일 테니까. 어때? 이게 내 계획이야.”

영일은 눈썹을 올리며 혜선에게 동의를 구한다는 듯이 내려다보며 말했다. 혜선은 콧방귀를 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럴듯하네. 그런데 이 집의 반은 내 몫이야. 명심해줬으면 좋겠어.”

“무슨 소리야? 집 사고, 남은 돈으로 애들 시집, 장가보내야지.”

“당신 계획에 잘못된 게 하나 있어. 이 집 팔리면, 당신이랑 같이 안 살 생각이야.”

혜영은 쌩하고 그대로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일은 벙벙한 표정으로 유영과 진석을 바라봤다.

“저도 좀 빼주세요. 전 결혼 안 할 거니까.” 유영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어깨를 들썩 올렸다.

“미투.”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던 진석이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도대체 이 집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영일은 자문했다. 영일은 빨리 대화를 마치고,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김 사장과 스크린 골프나 치고 싶어졌다.

“여하튼, 허진석, 내일 부동산에서 집 보러 온다니까 어디 나가지 말고 있어. 혹시나 녀석이 나타나면 큰일이 나니까 말이야. 물론 예상대로라면 안 나타나겠지만, 혹시라는 게 있는 거니까. 알았어?”

“왜 또 저예요? 저번에 경찰이 왔을 때도 서재로 등 떠밀더니….”

“남자인 네가 하지. 누가 하니?”

“그놈의 남자. 남자. 남자.” 진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하튼 전 못해요. 월요일부터 안성에 있는 공장으로 일 나가요. 거기서 먹고 자고 할 거예요. 누나가 하면 되겠네요. 뭐든지 할 수 있잖아? 안 그래?”

진석은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유영을 올려다봤다. 마치 우월한 존재라도 된 거처럼 깔보는 저 표정. 숱하게 봐왔던 남자들의 한결같은 표정. 불쾌해져서 진석에게 무슨 뜻이냐고 따지려고 했다. 그때 괴물이 무언가를 먹는 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하고 유영은 속으로 물었다. 진석은 골프채를 찾으러 거실 쪽으로 뛰어갔다. 영일은 겁에 질린 채로 서재 쪽을 바라봤다.

“연차 쓸게요.”

 

유영은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그림들을 내려다보았다. 곳곳에 흩뿌려진 빨간 점들. 점들이 자신을 원망하고 쳐다보는 것 같아서, 유영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말처럼 내가 어두워서 그런 걸까? 밝은 마음을 가지면, 내 그림들도 빛을 볼 수 있을까? 그러면 무기계약직이 될 수 있었을까? 하지만 붉은 눈의 아기는? 나의 언니는? 유영은 문득 언니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물음이 들었다. 같이 고민해주고 같이 싸워줬을까? 6년이나 더 오래 살아서, 이미 지쳐버린 얼굴로, 나 때는 더 했지,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벨이 울렸다. 영일이 유영을 불렀다. 유영은 그림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갔다.

부동산 사장과 같이 온 부부가 생각보다 젊어서 유영은 놀랐다. 자신보다 많아야 두어 살 많은 정도였다. 유영은 애써 초라해진 마음을 감추려고 억지로 밝게 웃으며 집을 소개했다. 젊은 부부라 그런지 꼼꼼하게 집을 살펴보았다. 영일은 거실에서 팔짱을 낀 채 한쪽 다리를 흔들며 부부와 서재를 번갈아 쳐다봤다.

“사장님, 작은 방에는 누가 계세요?”

안방을 둘러보고 나온 부동산 사장이 영일을 향해 물었다.

“네? 아, 아니요.”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인데 꼭꼭 숨겨놓으시면 어떡해요? 들어가도 되죠?”

부동산 사장은 문고리를 잡고 젊은 부부를 보며 말했다.

“이 방이 뷰가 끝내줘요. 한강이 쫙 펼쳐져서, 롯데타워부터 무역센터까지 한눈에 들어와요. 발코니에 작은 테이블 놓고 커피 한잔 마시면…. 잠겼네요?”

부동산 사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지만, 영일은 긴장해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누수가 있거나 그런 거 아니죠? 숨기시면 곤란해요.”

부동산 사장과 부부는 영일을 빤히 쳐다보았다.

“방이 어수선해서 잠가놨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열어드릴게요.”

유영은 현관 쪽 선반으로 뛰어갔다. 영일은 침을 삼키고는 벽에 기대어 놓은 골프채를 집었다. 그러고는 괜히 스윙 연습하는 척하면서 허리를 돌렸다. 열쇠를 가지고 온 유영은 방문 앞에 섰다. 유영은 눈을 질끈 감고는 열쇠를 돌렸다. 두려운 표정으로 영일은 서재로 걸어갔다.

“와, 이 방에 지진 났어요?”

방은 전쟁터처럼 어지럽혀져 있었다. 책장과 책상 모두 넘어져 있었고, 책들은 무덤처럼 쌓여있었다. 사진들이 찢겨서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다. 유영과 진석이 어렸을 때 찍었던 가족사진들이었다. 부동산 사장과 부부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까치발로 발코니 쪽으로 갔다. 자기네들끼리 귓속말로 숙덕거리며, 발코니에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유영은 찢어진 가족사진들을 주워 빤히 바라봤다. 유독 할머니와 아빠의 사진만 얼굴이 잘려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유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얀색 벽지는 바닥과 달리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시계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똑바로 벽에 걸려있었다. 시계는 한 시를 가리켰다. 햇빛은 한강에 반사되어 서재 쪽으로 들어왔다. 유영은 눈이 부셔 얼굴을 찡그리고는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은 심해처럼 먹색을 띠었다. 유영은 당황했다. 천장이 숨 쉬는 거처럼 울렁출렁했다. 천장으로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형광 눈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깜빡. 깜빡. 빨간 눈. 천장에서 눈물이 쏟아지는지 유영의 얼굴이 서늘해졌다. 유영은 저 눈을 알고 있다. 그림 속 아기의 눈. 언니의 눈.

“뭐하니?”

영일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유영을 흔들었다.

“아아아악”

눈이 붉게 변한 채로 유영은 소리를 질렀다. 영일은 겁에 질려 뒷걸음쳤다. 유영은 괴성을 지르며 영일에게 다가갔다. 발코니에 있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면서 쳐다봤다.

“왜…왜 그래? 유영아….”

유영은 시뻘게진 눈으로 영일을 노려봤다. 얼굴은 점점 일그러져가면서 검게 변하고 있었다. 괴물의 얼굴이었다. 유영은 영일을 벽으로 밀치고는 두 손으로 영일의 목을 짓눌렀다. 영일은 숨이 막혀, 살려달란 소리조차 하지 못했다. 부동산 사장과 부부는 뛰어와 유영을 잡았다. 유영을 끌어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영일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유영의 눈동자가 아득하게 보였다. 유영은 손을 꽉 쥔 채로 영일의 얼굴을 흔들었다.

“잘못했다고 말하라고.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무엇이 이토록 딸아이를 화나게 했을까? 영일은 알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자신이 당해야 할 잘못이 무엇인지를. 다시 유영이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영일은 미안하다고 말하려 했다. 하지만 울대뼈가 눌려 음절들이 목에서 막혔다. 온몸에 힘이 빠져갔다. 영일은 희미해지는 정신에서도 아랫도리가 따뜻해져 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영은 축 처진 채로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

“이제 좀 정신이 드니?”

유영은 천천히 눈을 떠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링거 주사기가 꽂힌 손등이 보였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창밖에서 들리는 걸 봐선 낮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으로 유영을 내려다보는 혜선이 보였다. 얼마나 이곳에서 잔 것일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유영은 기억을 떠올리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송곳이 머리를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소용돌이처럼 도는 먹색의 천장에서 노려보던 빨간 눈. 빨간 눈을 떠올리면, 가슴이 죄어왔다. 그러고 다시 블랙아웃.

“엄마. 눈을 봤어요. 그 빨간 눈.”

“꿈에서?”

“아뇨. 모르겠어요.”

유영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참았다. 정확하지 않은 것을 말해서, 혜선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퇴원해야겠다고 유영은 생각했다. 괴물에게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집에 가야겠어요.”

“괜찮겠어? 걸을 수는 있겠어?”

유영은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몸을 좌우로 흔들어보았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운 정도였지만, 걷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거 같았다. 유영은 다리를 살며시 흔들더니, 괜찮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엄마가 집 앞까지 태워다 줄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올리며 혜선을 바라봤다. 혜선은 유영 옆에 앉은 후, 침대 위에 놓인 유영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엄마는 이제 따로 살려고. 네 아빠한테도 통보했어. 너도 평생을 지켜봐서 알잖니. 네 아빠랑 내가 얼마나 안 맞는지.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어. 언젠가 너한테도….”

유영은 혜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가슴이 혜선의 눈물로 뜨거워졌다. 유영은 깍지를 끼고 세게 그녀를 안았다. 주삿바늘이 꽂힌 팔을 무리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손목이 욱신거렸다. 그래도 그 따뜻함이 좋았다. 오랫동안 껴안고 싶었다.

 

모든 불은 꺼져있고, 거실 티브이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빛만이 번쩍거렸다. 티브이 속 기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집 안을 울렸다. 기자가 말을 멈출 때마다, 괴물이 우는 소리가 고막을 찢을 것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티브이 소리에 자신의 목소리가 묻힐까 봐,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티브이 앞에서 영일은 속옷만 입은 채로 누워서 자고 있었다. 술 냄새가 지독해서, 유영은 코를 막았다. 소주 서너 병이 널브러져 있었다. 유영은 서재 쪽으로 걸어가다가, 깨진 유리를 모르고 밟아버렸다. 낮은 신음을 내며, 유영은 바닥을 내려다봤다. 깨진 소주잔들이었다. 유영은 발에 박힌 유리를 빼서, 영일 쪽으로 던졌다. 유리에 맞은 영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잠꼬대를 해댔다. 당신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된다는 둥, 괴물이 내 집을 망쳐버렸다는 둥, 태국보다는 베트남 애들이 괜찮다는 둥. 유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조심스럽게 노크했다. 괴물은 울음을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는 문이 스르륵 열렸다. 유영은 침을 삼키고는 서재로 들어갔다. 바람에 문이 쾅 닫혔다. 사위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커튼이 휘날리는 소리만 들렸다. 유영은 당황해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 어둠 속에서 빨간 눈이 반딧불처럼 깜빡였다. 사이렌 소리와 비슷한 고음의 소리로 괴물은 울었다. 유영은 눈을 감았다. 소리에 리듬이 있는 거 같았다. 음절이 있는 거처럼 소리가 또박또박 들렸다. 이제야 유영은 알아차렸다. 저기 어둠 속 존재는 유영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유영은 무슨 말인지 해독하려고 집중했다. 고음의 목소리가 유영을 휘감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떤 기운에 상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지를 딛고 도약하는 듯했다. 대기를 돌파해서 우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으로 벅차올랐다. 저 목소리가 자신에게 가닿으려 한다는 걸, 자신이 저 존재로 달려가고 있다는 걸, 유연은 느꼈다. 낯익은 목소리. 자신을 빼닮은 목소리.

“언니!”

유영은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저기 있는 존재가 외쳤다. 존재에게서 터진 소리는 귓가에서 맴돌더니, 인간의 언어로 바뀌었다.

“그래. 유영아.”

“언니가 내 앞에 있다니. 실감이 안 돼. 혹시 이거 꿈 아니지?”

“꿈 아니야. 아빠, 엄마 꿈속에 몇 번 나타난 적은 있지만.”

“진짜 언니 맞아? 너무 어두워서 보이질 눈밖에 보이질 않아. 울었어? 엄청 빨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 빨간 눈이 움직였다. 커튼이 걷히는 소리가 들렸다. 푸르스름한 밤하늘의 빛에 반사된 채로, 언니가 서 있었다. 미끌미끌한 액체로 덮인 언니. 머리는 깨져 선홍빛 대뇌가 삐져나와 있었다. 언니가 입을 열고 말을 하려 했다. 입에서 내장 같은 기다란 무언가가 나왔다. 순간 유영은 징그러워 눈을 감으려고 했지만, 그러면 언니가 상처받을 거 같아 참았다. 피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자고 다짐했다. 언니가 빵끗하자 혀가 움직였다.

“흉측하지? 지구에서 죽을 때 모습 그대로라서 그래.”

자세히 보니 내장이 아니라 탯줄이라는 걸 유영은 알아차렸다.

“의사 새끼가 변태였나 봐. 왜 입에다가 탯줄을 넣고 버려서. 내가 사는 별에 몇몇은 나처럼 혀가 탯줄로 되어있어. 물어보니까, 나랑 같은 산부인과였더라.”

언니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유영은 뱃속에서 난도질당했을 언니를 떠올렸다. 집게가 언니의 머리를 잡고 당겼을 것이다. 언니는 탯줄을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외쳤을 것이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의 눈도 더욱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유영은 그녀에게 다가가 갔다. 갈라진 머리 틈 사이로 삐져나온 뇌를 내려다봤다. 손을 내밀어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이 화상을 입은 것처럼 뜨거웠다. 참혹했던, 그날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둘은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서 밖을 바라봤다. 초승달이 무역센터 너머에 옅게 떠 있었다. 오늘따라 별들이 쏟아질 듯이 많네, 하고 유영은 생각했다.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처럼, 끝없을 이야기가 둘 사이에 놓여있었다. 언니가 별 중에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자신이 온 별이라고 했다. 지구의 법칙에 따르면 20억 광년 떨어진 곳. 언니는 1초면 올 수 있다고 했다. 정신에서 정신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그 별에서는 안다고. 지구에서 언니처럼 학살당한 태아들은 언니가 사는 별에서 다시 태어난다고 했다. 하지만 지구에서 죽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태어났다. 존재의 부정성이라는 저주를 받았으니까, 언니 또래의 한국 여자애들이 수십만 명이 넘는다고 했다. 이 저주를 푸는 방법은 단 하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 자들의 사죄를 받으면, 흉측한 육체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 존재가 된다. 그래서 언니도 몇 번 아빠의 꿈속으로 정신 이동을 했었다. 언니는 꿈속에서 흐느껴 울었다. 노려보기도 했고, 원망하기도 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언니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기로 결심했다. 지구에 오기 전까지는 유영을 질투했다고 했다. 자신보다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지구에 있다는 것. 언니는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동생들의 모습을 보자, 슬펐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를 죽이고 싶을 만큼 분노했다고. 그래서 서재에서 소란을 피웠다고. 언니는 유영의 슬픔을 느꼈다. 지구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아픔들. 언니는 유영을 껴안았다. 언니의 살갗을 덮은 액체에서 비릿한 냄새가 올라왔다. 하지만 유영은 역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 미끄덩하는 살갗은 엄마의 양수였으니까. 회사에서 당한 일들을 감사원이나 권익위원회에 고발하기로 유영은 결심했다. 그 방법이 소용이 없다면, 트위터든 커뮤니티든 어디에 글을 게재해 공론화시킬 것이다. 언니의 살갗을 느끼며, 유영은 그런 용기가 솟아올랐다.

“나가자. 사과받아야지.”

“가능할까? 죄책감이라는 게 있기나 할까?”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지.”

결연한 표정으로 유영은 언니의 손을 잡고 서재를 나왔다. 영일은 사타구니를 긁으며 코를 골고 있었다. 일어나라고, 그리고 언니 앞에 무릎 꿇으라고, 유영은 외치려 했다. 티브이에서 앵커가 건조한 목소리로 속보를 읽었다.

“오후 8시경, 안성의 공장에서 유독가스가 유출되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구조대원은 화재 현장에서 의식을 잃은 이십 대 가량의 직원 두 명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두 명 중 한 명은 응급실로 향하던 도중 사망했습니다. 나머지 한 명도 중태에 빠져 치료 중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후속 보도를 통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다음 뉴스입니다.”

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유영은 놀라서 언니를 바라봤다. 붉었던 언니의 눈은 어느새 형광으로 바뀌었다. 언니의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탯줄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날름거렸다. 그러더니 날카롭게 영일 쪽으로 날아가 영일의 목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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