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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싸움

2022.06.22 02:1306.22

박 선생의 얘기는 시시했다. 그는 딸이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한 얘기를 대단한 유적을 발견한 고고학자 마냥 떠들어댔다. 현주가 트랜스젠더라니, 술을 진탕 마신 상태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박 선생이었다. 그는 좌중에 스며든 침묵에 구덩이를 홀로 파고 들어갔다. 우리가 뭐라 덧붙여 물을 것도 없이 그의 입은 세세한 가족사까지 다 나불거렸다. 몇몇이 분위기를 전환해 보려는 말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 바싹 붙어 앉은 이 선생에게 어느 치킨 브랜드가 더 맛있느냐는 주제로 논쟁을 부추겼다. 이 선생은 삐죽 곁가지처럼 튀어나온 잔머리를 자꾸 매만지며 내 말에 대답을 하는 듯 안하는 듯 침묵에 동조하고 있었다. 그 침묵은 분명 불편하고 견디기 어려웠지만 동시에 모두가 기대하는 수다였다. 딸이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눈치를 챈 시점에서부터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 지까지. 간간이 누군가가 긍정적인 말을 던졌고, 박 선생도 그리 암담하지는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그래도 요즘은 다르니까.

누군가 낮게 내뱉었다. ‘요즘’의 기준이 무엇인지, 누가 정한 것인지 모두가 모르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굴었다. 항정살 기름방울이 불판에서 식어가는 불꽃 아래로 타닥 소릴 내며 떨어졌다. 박 선생은 이제 마구잡이로 물음을 던졌다. 방향은 대게 내 쪽이었다. 사서교사이자 상담교사인 나는 분명 여기 모인 다른 과목 교사들보단 더 많이 알게 분명하다면서. 이럴 때 자신이 아버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퍼부었다. 순간 나는 박 선생이 무언갈 알고 이러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진실이 문득 고개를 들었지만 그럴 리도 있다는 의심이 그림자로 드리워졌다.

저는 책도 그런 쪽은 잘 안 들여서요. 잘 읽지도 않았고, 관심이 없어서. 상담도 그렇고.

홍희 쌤, 한 번 생각해봐, 홍희 쌤 딸이, 아들일 수도 있지만, 아직 모르나? 어쨌거나 자식이 그런 거면 어떡할 건데? 나처럼 이렇게 당황하지 말고 미리미리 대비해야지. 그래서 임신 몇 주차지, 우리 홍희 쌤?

나는 몰라요, 라고 답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걸 감지하곤 황급히 12주요, 말을 덧댔다. 나는 이 선생에게 물었다. 그래서 60계 치킨은 뭐가 맛있는데? 이 선생은 당황한, 그러나 호기심이 짙은 얼굴로 호랑이치킨이요, 얼버무렸다. 무슨 치킨 이름이 그래? 내가 되묻자 올해가 호랑이띠잖아요, 그녀는 대꾸했다. 그렇구나, 올해가 호랑이 띠면, 올해 출산을 하면 석준이하고 같은 띠네, 나는 머릿속으로 천천히 생각을 가다듬었다. 석준이는 내 남동생이었다. 남편이 선물해준 손목시계를 힐끔거렸다. 지금쯤이면 문예창작과 입시 과외를 하는 그 애는가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일 것이었다. 저녁은 남편이 차려주거나 혼자 알아서 차려먹겠지. 그런 지 꽤 오래 됐다. 그러니까 석준이 트위터를 시작하고 자신은 퀴어 페미니스트라고 천명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전까진 누나나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고 집안일 하나 손 까딱하지 않던 아이였다. 나는 트위터가 좋은 영향도 있구나, 말을 비꼬았다.

박 선생은 이제 우리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다. 갑자기 여태껏 가만히 졸고 있던 나 쌤이 젖 두 쪽 떼고 불알 달면 되는 거죠, 뭐, 제가 빌려드릴까요? 하하, 입을 열었다. 야 이 새끼야, 이게 재미있냐? 박 선생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흘러나오자 그때서야 멍청히 관망하고 있던 선생들이 사태가 심각해졌음을 깨달았다. 너 같은 새끼한테 젖 타령 들으려고 얘기 꺼낸 줄 알아? 선생 같지도 않은 게, 여자애들 치마나 훔쳐보고 말이야! 분위기는 갑자기 SNS로 공론화당한 김 쌤의 성추행 미투로 번져갔다. 1년 전의 일이었고, 학교에선 가벼운 징계 처분을 내렸다.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모른 척 이 선생과 함께 바깥으로 나왔다.

우리는 한참동안이나 걸었다. 이 선생은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올망졸망한 얼굴을 갈색의 긴 생머리로 감싸고 있었다. 지나치게 얇은 윗입술이 도톰한 아랫입술을 건드리는 와중에 튀어나오는 말 하나하나에 나는 집중했다. 귀여웠다. 예쁘기도 했고, 아무튼 살면서 못생겼다거나 평범하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듯싶었다. 내 눈에도 이런 걸 보면. 나는 속으로 웅얼거렸다. 조금 부른 배를 안고 대화역을 중심으로 한 바퀴 빙 돌기 시작했다. 눈은 멎었고 바람만 약하게 목 언저리를 스쳐갔다. 시푸른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엔 뻗어나간 나뭇가지처럼 실금이 가있었다. 자세히 보니 기다란 구름이었다. 하마터면 전봇대에 부딪힐 뻔한 걸 이 선생이 팔로 막아주었다. 고마워. 절로 튀어나온 내 말에 이 선생은 딴 얘기만 했다. 박 선생 딸의 커밍아웃 얘기에 뒤늦게 관심이 생겼는지 그녀의 말은 내내 그 얘기 언저리만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있잖아요, 우리 반 준서 있잖아요.

준서? 걔 착하고 인기 많은 애?

걔도 게이라는 소문이 돌더라고요. 진짜면 재밌겠다.

그녀의 말에 나는 두 발을 멈춰 세웠다.

걔 여친도 몇 번 사귀었잖아.

에이, 그래도 모르죠, 위장연애나 그런 거일 수도. 그런 애들 많잖아요. 홍희 쌤은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 책도 많이 읽으시고, 더군다나 상담교사니까.

상담교사를 요새 누가 믿어. 다 새어나가는 줄 알 텐데.

홍희 쌤은 믿음직해요. 그런 거 말하고 다닐 사람 아니란 거 내가 알아요.

이 선생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가. 나 그런 사람 아닌데. 어쨌든 이 선생 웃기다. 왜 이렇게 나 칭찬을 많이 해?

나는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물었다.

멋있잖아요. 솔직히 홍희 쌤 남편 분 부러워요, 뺐고 싶어. 카하하.

머뭇거리던 그녀의 웃음소리는 얽어있었다. 나는 괜히 고개를 돌려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박 선생의 딸, 현주는 어떻게 되는 걸까. 만나본 적도 말을 한 적도 없지만 괜히 신경이 쓰였다. 나는 트랜스젠더를 잘 몰랐다. 그저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 남자가 되고 싶은 여자라는 것만 알았다. 그것도 석준이가 자세히 설명해준 끝에 터득한 사실이었다. 집에 가면 석준이한테 물어봐야겠다. 나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이 선생과 헤어졌다. 콜택시 안심번호를 무심코 이 선생에게 먼저 보내려는 순간이었다. 멈칫했다. 번호를 다시 찍었다.

 

석준은 빨래를 한가득 했더니 허리가 아프다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국어교사인 남편은 제 방에 들어가 한창 생활기록부 작성을 하고 있었다. 석준이 우리 집에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징역살이를 마친 직후였다. 2년여 간의 복역기간 동안 우리는 드디어 30평대 방 세 개짜리 자가를 구할 돈을 마련했고, 계약을 맺고 이사를 얼마 남기지 않은 날 석준이 다시금 사회로 나왔다. 나는 석준의 죄명을 떠올린다. 강간. 남편은 처남이 세 들어 사는 걸 반대했다. 정확히 말하면 처남이 아니라 ‘강간범’과 한집에 사는 걸 반대했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딱 2년만이라고 남편에게 간청했다. 석준이가 거기서 살다온 시간만큼만, 다시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줘. 남편은 왜 그 적응할 곳이 여기냐고 따졌다. 그럼 돈도 없고 부모도 친지도 없는 애한테 어디서 살라고 해? 내가 되레 물었다. 일찍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들먹이자 남편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냥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 그냥 철 안 든 처남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2년만. 그리고 애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아무런 영향도 없고. 어쨌거나 내 동생이잖아. 불쌍하지 않아? 쟤가 어디 가서 정을 다시 붙이겠어? 나는 몇날 며칠을 설득했고 남편은 없는 사람인 셈 치고 살겠다며 두 손을 들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누나, 치킨 시켜 먹을래? 내가 살게.

석준이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 고기 실컷 먹고 왔어. 느끼해, 파인애플이나 먹고 싶다.

내가 사다줘?

이 밤중에 어디 가서 파인애플을 사온다구.

매형은 바쁘니까.

사오든가, 그럼.

석준은 대충 외투를 걸친 뒤 집을 나섰다. 나는 남편의 방으로 향했다. 아직은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남편은 생활기록부 작성을 마치고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었다. 태교에 관한 거였는데, 가까이 그의 어깨를 주무르며 본 바로 ‘아이가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로 태어나지 않게 하는 태교’ 따위의 의미로 읽을 수 있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태교로 유명한 이안섭이라는 남성 산부인과 의사의 채널을 남편은 구독 중이었다.

앞으로 매일 이거 봐봐. 영상이 좀 많긴 한데 태교할 때 꼭 필요한 거래.

그는 영상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자세히 보란 듯 비켜 앉은 자세였다.

이런 걸 꼭 봐야 해? 아이가 동성애자가 되지 않는 법이라니.

요즘 아무리 변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나도 그런 사람들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런 거 보느니 박보검 얼굴이나 더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처남을 생각해봐.

나는 점점 가빠지는 호흡을 다독이려 애썼다. 아직 남편은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 거야. 나도 당한 피해자라니까? 저번에 말해줬잖아.

그는 재차 이야기를 되풀이했다. 어렸을 때 엄마랑 친한 아줌마의 아들, 그러니까 이웃집 아는 형에게 성추행을 당한 얘기를. 나중에 보니 무슨 퀴어 인권활동가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그는 말을 이었다. 폭로하려고 해도 같은 부류 애들이 다 감싸 돈다고.

그런 새끼들 다 변태고 잠재적 성범죄자야. 나도 당했고, 더구나 처남이란 당신 동생은 가해자야.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그런 사람이 아니라하더라도, 나는 이런 세상에서 내 자식이 퀴어니 성소수자니 뭔가로 살아가는 거 두 눈 뜨고 못 봐. 그건 재앙이나 마찬가지야.

남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를 의자에 앉혔다. 그렇게 석준이 올 때까지 나는 이안섭이라는 의사가 설명하는 반동성애 태교 영상을 시청했다. 그는 몰입도 있는 화술과 수없는 자료제시, 알아듣지 못할 어려운 용어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영상 밑엔 내 새끼만큼은 지키고 싶네요, 와 같은 댓글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벨이 울렸다. 남편이 나갔다. 나는 그 틈을 타 재빨리 댓글을 달았다. 이런 거 올리지 마세요.

나는 거실로 나갔다. 양 쪽 가득 과일 봉지를 든 석준이 낑낑거리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물건을 나눠든 뒤 부엌 식탁에 올려놓았다. 많이도 사왔네. 내가 말하자 남편은 이제 독립할 때 다 됐네, 웃으면서 동생을 돌아보았다. 나는 자랑할 겸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곧이어 이 선생의 댓글이 달렸다. 절로 미소가 입가에 그려졌다. 누가 사줬어요? 맛있겠다. 나는 남동생, 이라고 적으려다 남편, 이라고 고쳐 달았다.

달달하네요, 신혼. 이런 거 보면 저도 결혼하고 싶어져요.

나랑 해, 뒤에 ‘ㅋ’을 두 개 연달아 붙여 대답했다.

몇 분 뒤에 다시 답글이 달렸다.

홍희 쌤 이미 결혼했잖아요.

이혼하면 되지 뭐, 라고 자판을 치다 나는 지웠다. 너무 가벼운 말이었다.

몰래 사귀면 되지.

더 이상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ㅋ’을 붙일 걸, 나는 후회했다.

 

남편을 처음 만난 건 친구가 동기를 소개시켜준답시고 끌고 나온 때문이었다. 그의 첫 인상은 깔끔하게 잘생긴, 또 행동은 나름 어설퍼 그게 매력으로 작용하는 남자였다. 그는 농담이랍시고 성소수자나 장애인, 여성을 희화화하거나 조롱하는 얘기를 주로 했다. 처음엔 불편했으나 웃긴 건 사실이었고, 그래서 어느 새 웃어넘기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살아생전 부모님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사지 멀쩡하고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이기만 하면 된다, 는 대쪽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극우 성향이고 전통적 보수 가치를 따르는 부모와 예비 사위는 죽이 잘 맞았다. 석준과 부모님은 커밍아웃 이후로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는데, 오죽하면 아버지는 없는 아들 하나 생겼다며 좋아할 정도였다. 그렇게 잘만 진행되던 혼사가 한 번 난관에 봉착한 일이 있었는데, 석준이 상견례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얘기를 꺼낸 때문이었다. 시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석준이 다니는 기독교 대학교에 간간이 발전기금을 내고 있었다.

우리 학교, 교수라고 부르기도 뭣한 사람들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고 성명 냈잖아요.

차별금지법 그거 악법 아닌가? 허허, 우린 그렇게 알고 있는데.

아닌데요. 잘못 알고 계시네요. 제가 당장 게이인걸요.

게이라는 단어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영어단어인 양 그들은 반응했다. 뒤늦게 그 말이 그 말이구나, 그 뜻이 그 뜻이구나, 이해한 양가 부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상견례가 끝나고 나서 우리는 전에 없이 심하게 다투었다. 왜 진즉에 동생이 동성애자인지 뭔지 말하지 않았느냐고, 거기서 그런 얘길 또 왜 꺼내느냐고 그는 소리쳤다. 좀만 대들면 금방이라도 칠 기세였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몰랐다고, 그 자리에서 알았다고. 그것이 나의 사과와 변명의 적합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석준이 커밍아웃한 것은 내가 임용고시에 막 합격했을 때 고양시의 한 고등학교에 사서교사로 발령이 났을 때였다. 그 애는 할 말이 있다면서, 내게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말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고 총으로 다 쏴죽여야지, 장난치며 대답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누나?

뭔 말을 하려고 그래?

그 애로부터 커밍아웃을 받은 뒤 한동안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나는 두려웠다. 그 커밍아웃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언젠가 나도 동생과 같은 자리에 서서 그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겁박해왔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친구도 있고 결혼까지 약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었다. 일시적인 혼란, 누구나 겪는 성장통, 이러나저러나 이성애자 여성이라는 현실에 나는 지탱했다. 지금 보고 있는 이 태교 영상에서 이안섭은 대개 동성애는 잘못된 태교의 결과로, 실패한 태교의 결과의 일종이라고 보인다며 ‘올바른’ 태교의 중요성을 목청껏 부르짖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사이비 교주 같기도, 어떻게 보면 열정적인 의사 같기도 한 그는 단 한 번도 예수님이나 하느님을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은 기독교 아니라면서, 싫어한다는 얘기가 한층 더 그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먹는 것도 가려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댓글에 동성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음식들을 죽 나열했다. 몇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정신이상자의 개소리라고 치부하는 반면, 30만 명의 구독자들은 고맙다고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거기에 파인애플이 있었다. 나는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으며 부엌 쪽으로 눈길을 던졌다. 말도 안 돼. 나는 뒤이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개소리일 뿐이야, 그만 봐야지, 태블릿을 소파 한 구석으로 던져두었다.

그리고 잠시 뒤 썰어놓은 파인애플을 음식물쓰레기 봉투에 버렸다. 속이 불편했다.

 

상담실엔 성적이 좋지 않거나 학업에 태만한 아이들이 주로 온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따로 수업을 운영하는데, 이 선생 반 아이인 준서가 왔다. 나는 갸우뚱했다. 정말로 상담을 하려고 오는 아이는 거의 전무했으므로. 준서는 가타부타 말을 않곤 건네준 차를 홀짝이고 비스킷만 우물거렸다. 정적이 턱밑까지 차올라 너 게이라서 왔지, 라는 말이 혀뿌리를 건드리는 찰나였다. 준서는 애들이 자꾸 게이 같다고 놀려요, 라고 운을 뗐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느낌에 나는 한 차례 숨을 훅 들이켰다 내쉬었다. 나는 일의 맥락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겠느냐고 느릿하게 말을 건넸다. 말인즉슨, 자신이 여자애들하고 잘 논다는 이유로, 그리고 남자애들과 스킨십을 편히 한다는 이유로 몇몇 애들이 장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게이라는 소문을 퍼뜨린다는 게 고민의 내용이었다.

정말 맞으면, 선생님한테 말해도 돼. 비밀은 다 지켜지니까.

아니라니까요?

나는 그 애가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너 맞지, 너 맞잖아, 라는 강한 의혹을 넘어선 확신에 사로잡혔다. 꼭 준서가 나이고, ‘나’가 다른 누군가인 것처럼. 너 여자 좋아하잖아, 레즈비언 맞지. 다시 자리 잡은 적막에 나는 동생의 이야기를 동생이 아닌 척 해주었다. 그 애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불편한 기색이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니까.

아니라는데 왜 그러세요? 전 여자가 좋다고요, 시발. 가끔 쌤 보면 따먹고 싶다는 생각도 할 정도라고요.

나는 멍한 얼굴로 그 애를 건너다보았다. 그 애는 죄송하다고 한 뒤 욕설을 지껄이며 상담실을 나섰다. 나는 의식 없이 일어나 문을 잠그고 자리로 돌아왔다. 꺼진 화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준서가 방금 한 말은 고스란히 기억의 편린을 밟고 수년 전 검사와 판사의 목소리로 이어졌다. 군 법정이었다. 피고인석에 앉은 동생 석준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다. 한 소위의 동성 성관계 적발 이후 불법 성소수자 색출이 이루어진 기간의 일이었다. 동생은 군부대 밖에서 동성의 동기 상병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강간죄’로 기소되었다. 검사와 판사의 말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이었다. 여성에 성적으로 끌리느냐는 물음을 그렇게 저속하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 배려와 법리적 양심이라곤 개나 준 발언들을 방청석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 대신 남편과 함께 듣고 있자니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피고에게 징역 2년형을 선고합니다.

항소를 포기했다. 아무리 인권단체와 진보언론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도 이길 역량이 없다고, 아니 솔직히 그때까지 자기가 살아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석준은 말했다. 나는 그때 울면서 소리쳤다. 야, 미친 새끼, 그러면 너 평생 강간범으로 사는 거야. 알긴 아니? 그 애가 안다고 대답했다. 어차피 나는 취업할 생각도 없고, 평생 글만 쓰면서 살 거야.

그는 숨을 고르더니 울음을 참으면서 말을 마디마디 이으려 노력했다.

중요한 건 있잖아, 누나, 내가 강간을 저지른 게 아니라는 거야.

몸에 한 차례 파도가 굽이쳐갔다. 목젖이 들썩이며 고일대로 고여 썩은 숨이 인과 없는 음계에 실려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코는 누가 잡아 쥐어 떼어갈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아프고 시큰거렸다. 머리가 조각난 장면들로 들끓어 제대로 앞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두 손은 차분하게 무릎 위에 얹혀 있었다. 홀로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듯, 절단 나 분리된 신체부위처럼 굴었다. 나는 손을 움직여보려 했다. 일부러 떨었다. 어색했다. 진실의 경계를 이미 벗어난 두 손은 낯선 이처럼 나를 맞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커터칼이나 가위를 찾아 필통을 뒤졌다.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을, 다른 손에 쥐고 한 손을 찔렀다.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 진 부연 장막 뒤에 숨어 나는 점차 붉게 물들어가는 두 손을 미친 사람 마냥 움직였다. 얼마나 나는 이 엿 같은 세상에 익숙해진 걸까. 얼마나 타인의 차별에 절여진 걸까.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문을 따고 들어온 이 선생이 119를 부를 때까지 두 손을 내버려두었다.

 

남편이 교과연수를 갔다. 퀴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평론 연수를 듣는다고 했다.

기분 나쁘지, 당연히. 할 일도 그렇게 없나, 그 시간에 술이나 마시면 좋겠다.

그가 현관문을 밀치며 중얼댔다. 나는 병가를 낸 상태였다. 석준이 나를 돌봤다. 나는 이따금씩 석준을 멀거니 응시했다. 기분 나쁘게 왜 쳐다보냐고 장난기 어린 투로 되묻는 석준에 할 말이 없었다. 태블릿 좀 줘봐. 그 애가 건네준 태블릿으로 이안섭이라는 의사의 영상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지도 않았다. 볼륨을 키웠다. 석준이 듣거나 말거나, 그 의사가 떠들어대는 말을 온 천지에 들리게끔 했다. 석준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내 발을 주무르며 읽고 있는 책에 열중했다.

두 시간 넘게 보았음에도 시청해야 할 영상이 열 개 정도 남아있었다. 나는 골이 아파 태블릿을 저리 치웠다. 석준은 어느 새 책을 앞에 두고 졸았다. 궁금했다. 왜 이 영상을 보지 말라고 하지 않는지. 상견례 자리에서처럼 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지. 그새 이 세상에 길들여진 건지, 하지도 않은 잘못들에 익숙해진 건지. 나는 몸을 움직여 석준의 어깨에 담요를 둘러주었다. 아직은 무력해질 때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무력해지기엔 이 세상이 우리보다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으면, 좋겠다.

눈을 감았다. 머릿속 장면으로 정제된 세계들이 연이어 겹치며 다른 세계로 내 의식을 이끌고 갔다. 거기서 나는 집에서 웬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곧 내가 낳을 아이였다. 아이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다. 여자애들하고 더 놀기가 좋고, 남자애들은 사나워서 싫다고 했다. 나는 물었다. 그러면 어떤 친구하고 결혼하고 싶어? 아이는 뭣도 모르게 익숙한 별명을 댔다. 그와 유일하게 어울려 다니는 다른 반 남자아이의 이름이 뒤따라 떠올랐다. 나는 걔는 남자애잖아. 웃으면서 다른 여자애 이름을 대보라고 했다. 아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없어. 그때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지. 순간 장면이 전환되며 석준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결혼식장이었다. 그 애는 웅장한 축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낯선 여자와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의식 없이 사람들을 따라 박수치던 두 손을 다급히 내려놓았다.

그래서, 태영이는 찾았어?

갑자기 나타난 죽은 엄마가 옆에서 한복을 빼입고 물었다.

태영이가 왜요?

내가 놀랄 틈도 없이 되물었다. 태영인 내 아들의 이름인 모양이었다.

같은 사내새끼하고 결혼하겠다고 집 나갔잖아. 너는 어미가 돼서 그것도 모르니?

저 아직 애 안 낳았어요. 봐요, 아직 배도 많이 안 불렀는데.

그러나 배는 결혼 전처럼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엄마가 비릿한 실소를 터뜨리며 말을 뱉었다.

너 애 찾겠다고 성소수자가족모임인가 어디에도 들어갔다며?

제가 그런 곳에 들어갈 리가.......

엄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석준이 준서의 얼굴을 한 남자와 손을 잡고 있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눈을 떴다. 석준이 옆에서 손의 붕대를 풀고 소독을 하고 있었다.

졸린 것 같던데 가서 자.

여기 소독만 하고.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공기의 흐름을 의식적으로 느끼려는 찰나 석준이 물었다.

왜 그랬어?

뭘?

왜 손 찔렀냐고.

모르고 찔렸다니까. 내가 너처럼 미쳤어, 내 손 찌르게.......

앞으론 조심해.

알았다니까.

근데 파인애플 어디 있어? 그새 다 먹은 거야?

석준이 새 붕대를 감으며 말했다.

나는 뭐라 얼버무릴지 몰라 머뭇거렸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사과도, 석류도, 한라봉도, 귤도.

그 애가 말한 과일 모두 이안섭이 영상에서 태교에 좋지 않다며 먹지 말란 것들이었다.

다른 과일 사올게. 그리고 태블릿 충전해놨어. 아까 보던 거 마저 보든가.

그리고 석준은 빨래를 한답시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꿈에서처럼, 누가 볼 걱정 없이 울었다.

 

복직기념 회식자리였다. 정발산역의 한 이자카야 음식점으로, 나는 이 선생과 함께 조금 늦게 참석했다. 이미 술자리가 무르익은 뒤였다. 우리가 참석한 것을 본 박 선생은 음식과 술을 더 주문하고는 직원이 다녀가는 사이 다시금 딸 얘기를 꺼냈다.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현주에서 현성으로. 그 사이 성전환수술을 했다고 했다. 멋쩍게 얘기하는 그를 보며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좋은 부모인지, 아닌지 판가름이 나질 않았다. 그러고서 박 선생은 내 쪽으로 몸을 틀고 앉았다.

홍희쌤도 나중에 애가 자라서 자기가 트랜스젠더니, 동성애자니 하면 어떡해? 어쩔 거야?

젖 두 쪽 운운했던 나 쌤은 가만히 안주만 집어먹으며 옆의 신입교사에게 집적대고 있었다. 나는 희미한 웃음만 지을 뿐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이 선생과 함께 합류하기 전 진로 수업 때 복도에서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난 뒤라 감정이 절제되지 않았다. 먹지 말란 과일과 음식들을 먹었다는 게 싸움의 원인이었다. 파인애플하고 서류, 무지개떡, 맛동산 과자 누가 사왔어? 처남이야? 그 말에 나는 내가 사오라 했어, 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고 석준이가 사왔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런 거 먹으면 안 되는 거 모르느냐며, 또 어제 넷플릭스 기록을 보니 이상한 영화들-<티탄>, <콜미바이유어네임>, <호수의 이방인> 같은 영화들-만 잔뜩 봤던데 태교에 좋지 않다고 몇 번을 말하느냐고 따지는 것이었다. 그것도 석준이가 본 거야. 나는 우물쭈물 대답했다. 남편은 한숨을 내쉬며 처남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몇 번의 설득 끝에 통화를 끊을 수가 있었다.

글쎄요. 딱히 생각해본 적 없어서.

아니 홍희 쌤, 나는 뭐 생각해본 적이 있어서 이런 일 당한 줄 알아?

차차 생각해볼게요.

에휴. 그래도 뭐, 그리 달라지는 건 없더라. 자식이 자식이지 뭐 달라지는 거 있겠어.

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쌤은 그럼요, 자식은 자식이죠, 맞장구를 쳤다.

자리가 파하고 나는 이 선생하고 먼저 빠져나왔다. 이 선생은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보여 달라고 했고, 잘생겼네, 우리 남편보다,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이 선생은 까르르 갓난아기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정말요? 괜히 반문했다. 그때 양 볼에 패였던 이 선생의 보조개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어느 새 내리는 눈이 내려앉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은 얼마나 영화배우 같은지. 춥다고 말하면서 손을 넣은 내 주머니에 제 손을 욱여넣는 건 또 얼마나 귀엽고 설레는, 일인지. 맞닿은 이 선생의 손은 마음에 난 모도 닳아 없앨 수 있을 만큼 부드럽고 따듯했다.

결혼을 꼭 했어야 했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에 이 선생이 깔깔댔다.

왜요 쌤, 남편분하고 싸우셨어요?

응, 싸웠지.

왜요?

파인애플이 먹고 싶은데, 무지개떡이 먹고 싶다는데 안 사오는 거 있지.

너무했다, 와이프가 임신하면 남편은 별도 따다준다던데.

비유가 너무 올드한데?

나와 이 선생은 시선을 부딪치며 웃음을 나누었다.

오늘은 꼭 사다달라고 할 거야. 먹고 싶은 거 먹어야지.

홍희쌤은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 나, 좋은 사람 아니야.

그래도 나름 잘 싸우고 계신다고 생각이 들어요.

싸워? 누구하고? 애들하고?

아뇨.

이 선생은 한동안 말이 없다 덧붙였다.

남편분하고요. 아주 잘 싸우고 계세요.

아. 아하. 다행이네, 그럼.

콜택시를 불렀다. 나는 이 선생에게 손을 흔들었다.

택시 번호를 보냈다. 석준에게, 그리고 이 선생에게. 남편에겐 도착할 즈음에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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