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엄마는 TV를 향해 넷플릭스! 라고 소리친다. 얼마 전 삼촌이 구입한 스마트TV는 곧바로 넷플릭스를 실행한다. 나는 왼팔을 죽 편 채 오른손으로 긁는다. 점심식사 중이다. 손톱은 엄마가 다 잘라버린 탓에 거의 없다. 선풍기 바람이 온 몸을 휘감지만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왜 에어컨을 사지 않고 TV를 샀느냐고 따지고 싶지만 지친다. 6월의 더위는 7월 전초전의 달아오르는 열기를 한가득 발산하고 있다. 엄마에겐 에어컨보다 넷플릭스를 볼 수 있는 스마트TV가 더 중요하다. 삼촌도 그걸 안다. 에어컨 대신 50인치 스마트TV를 선택한 건 그 때문이다.

엄마는 외로워, 함주야.

아이들에게 눈사람이라 불리는 나는 내 이름이 어색하다. 함주라고 부르지 말라고 대꾸할 때마다 삼촌은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잊어선 결코 안 된다며 놀리듯 함주야, 함주야, 함주야, 부르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의 말이 그리 와 닿지 않았다. 그러는 자신도 눈사람이면서. 삼촌은 티 나게 긁지 않는다. 다시 말해 엄마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에 반해 나는 연신 엄마에게 긁어달라고 칭얼댄다. 가려울 땐 시원할 정도로 벅벅 긁는다. 희디흰 각질이 진눈깨비 마냥 흩날리고 검붉게 응어리진 딱지가 소리 없이 떨어진다. 살갗이 벗겨지며 붉은 속살을 틔운다. 진물이 옷에 배어난다. 맺힌 핏방울은 녹지 않고 옷 섬유 한 가닥 한 가닥에 성기게 얽힌다.

넷플릭스 또 안 되네.

엄마가 짜증을 부린다. 나는 김칫국에 만 밥을 마저 떠먹은 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삼촌은 학원 면접을 보러 가고 없다. 드디어 TV에 넷플릭스 로고가 두둥, 낯익은 효과음과 함께 등장한다. 천천히 엄마 옆으로 가 앉는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팔을 뻗을 거리를 어림짐작해 옆으로 한 자리 물러앉는다.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천재 외과의사가 주인공인 <굿 닥터>라는 영국드라마가 재생된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그 어린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에 요즘 푹 빠져 있는 그녀는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팔을 굽혀 내 등을 긁기 시작한다. 손끝이 닿자마자 간질간질하던 곳이 금세 홧홧해진다.

저 주인공은 좋겠네. 천재라서.

드라마니까 좋아 보이는 거야.

내 말에 엄마는 힐끗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좀 더 위, 가운데, 가운데, 왼쪽, 아래, 나는 조이스틱을 조종하듯 엄마의 손을 움직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빠져나간다. 나는 누군가와 살결을 맞대고 있던 사이 느꼈던 온기를 찾아 몸을 이리저리 뒤튼다. 다시 긁어달라고 말하려던 찰나 상을 치워야겠다며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러면서도 눈길은 TV에 둔 채다. 나는 어느 새 하얗게 대설의 잔흔처럼 쌓인 갈색 인조가죽 소파 위 각질들을 바라본다. 점점이 흩어진 그것들은 녹지도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처럼 내가 청소기로 빨아들이지 않는 이상. 나는 청소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다. 민소매와 팬티만 입은 탓에 드러난 몸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의 상처, 딱지들, 손톱에 살이 팬 자국들, 생채기 등이 차례차례 시야를 건너간다. 핸드폰을 들고 소파에 몸을 누인다. 운동을 나간 삼촌에게 언제 오느냐고 문자를 보내려던 참이다.

-아이스크림 사갈까?

삼촌이 먼저 선수를 친다.

나는 베스킨라빈스, 한 마디를 답장에 적어 보낸다.

답장이 없다. 사오는 모양이다. 내가 좋아하는 맛, 자신이 좋아하는 맛,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맛, 모두가 좋아하는 맛 네 가지를 합쳐 쿼터 사이즈를 사올 것이다. 먹으면 또 가렵겠지만, 여름에 이 정도는 엄마도 눈감아줄 것이다. 나는 눈을 감는다. 눈사람이 되는 꿈을 꾼다. 녹지 않는다.

 

지난 봄 한동안 별명은 눈사람이 아니라 컨저링이었다. 아토피를 치료하기 위해 엄마가 무당을 불러 집 한복판에서 굿을 벌인 때문이다. 무당은 정체 모를 조상의 악귀가 붙어 피부병이 낫질 않는 거라고 했다. 굿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천만 원을 요구했는데, 엄마는 망설임 없이 어디선가 천만 원을 구해와 굿판을 벌였다. 돼지머리와 각종 화려한 음식들, 시뻘건 옷과 오방색 천을 두르고 날뛰던 무당이 지금도 꿈속에 가끔 등장한다. 그는 나를 향해 소리친다.

이 천벌을 받을 놈!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듣고 본다. 그렇게라도 아토피가 나을 수 있다면 상관없으니. 그러나 굿을 하고 남은 건 막대한 빚뿐이었고, 무당이 하루에 몇 번씩 바르고 먹으라고 주고 간 것들 때문에 아토피는 더 악화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악령이 손톱에 깃들었다며 손톱을 항상 짧게 유지할 것을 당부했다. 엄마가 손톱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처럼 손톱을 기른다고 버텼고, 엄마는 무당의 말이든 병원 의사 말이든 간에 아토피 환자는 손톱이 짧아야 했다고 윽박질렀다. 나는 매번 지는 쪽에 속했다.

그 사실이 어떻게 새어나갔는지 소문이 나 나는 아이들에게 또 다시 시달려야 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그럴 때마다 삼촌은 나를 대신해 아이들을 욕하며 성질을 냈다. 약자를 괴롭히는 나쁜 것들이라면서. 나는 되묻곤 했다. 내가 왜 약자냐고. 삼촌은 움찔하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야,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차별과 혐오를 받으니까.

지방거점국립대 문예창작과를 나온 그가 쥐어짜낸 답이었다.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어리고 어린 애처럼 자꾸 왜냐고 물었다. 왜 차별과 혐오를 받아야 해? 삼촌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한숨인지 느릿한 들숨날숨인지 구분 못할 호흡을 가다듬는 그는 그건 자신도 모르겠다며 끝내 패배를 인정했다. 패배자들. 나는 그때마다 그 단어를 칼끝으로 새기듯 몰래 기른 손톱으로 피부에 거칠게 새겨 넣었다.

아이들은 쉽게 귀신에 질렸다. 다시 나는 눈사람이 되었고, 그건 6월로 접어들면서 더 명확해졌다. 나는 반팔과 반바지를 입는 계절에 긴 팔과 긴 바지를 고수했다. 목도리도 둘렀다. 모자도 썼다. 아이들은 인형 꾸미기를 하듯 오늘은 내가 무슨 옷을 어떻게 입고 왔나, 살피는 데 재미를 느꼈다. 2분단 마지막 줄, 쓸데없이 키가 크고 눈이 좋아 매번 끝줄에 앉는 나는 수업 시간의 오갈 데 없는 무인도, 무명도나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한 애가 물었다. 딴엔 용기를 낸 듯 보였는데, 내 눈엔 그저 수많은 멍청이들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왜 긴 옷을 입어? 아토피 때문이야? 그리고는 쭈뼛거리더니 징그러워서? 라고 덧붙였다. 징그럽다고 생각해, 스스로를? 그렇게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꺼지라고 했다. 전날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느라 졸린 탓이었다. 아바다케다브라 살인저주로 그 애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나는 있지도 않은 손톱을 뜯으려 손끝을 입가에 가져갔다. 그럼에도 그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다짐을 받아내려는 양 말을 이었다.

눈사람은 언젠가는 녹아. 걱정 마.

그러고선 가버리는 아이. 다른 반 애다. 듣기로 게이라고 전교에 소문이 난 애. 나는 짝꿍을 힐끗 돌아본다. 평소 나를 보듯 그 애의 뒷모습을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눈사람은 언젠가는 녹는다는 말은 잠시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지만 파문으로 끝난다. 대책 없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기만에 가깝다. 뒤이어 찾아온 패배감에 나는 몸이 시동을 거는 것을 느꼈다. 곧 미친 듯이 가려워질 것이다. 두 팔로 온 몸을 감싼다. 나는 내가 왜 아토피에 걸렸는지 알고 있다. 교실의 에어컨이 윙윙 거리며 냉기를 내뿜는다. 그것은 잠시 열기와 가려움을 가라앉게 만드는 모르핀 같은 진통제와도 같다. 그러나 진통제는 일시적이다. 나는 한시적인 동시에 영원한 존재다. 값이 맞지 않는다.

 

삼촌이 우리 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수년 전이다. 기억난다. 나의 초등학교 졸업식 때였다. 그땐 아토피를 앓기 전이었다. 졸업식을 마친 뒤 치킨과 피자를 시켜먹고 게임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잠시 집에 혼자 있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연하지, 하면서 최대한 그녀가 늦게 오기를 바랐다. 나는 장을 보거나 새로 진학할 중학교 학부모모임에 가는 줄 알았다. 그녀는 내가 저녁으로 짜장면을 시켜먹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돌아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삼촌이라는 남자와 함께였다. 그는 싯누런 피부에 굽고 왜소한 몸을 가졌는데 말투가 어눌했다. 나는 처음에 장애인이야? 라고 물을 뻔 했다.

삼촌이라 부르면 돼. 당분간 집에 있을 거고.

엄마가 말했다. 마치 돼지에게 이름을 붙이듯 삼촌, 이라고 나는 부르기 시작했다. 그 ‘당분간’이란 표현의 셈이 서로 달랐음을 깨달은 건 다음 해 여름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갑자기 이유를 알 수 없는 가려움증을 느꼈고, 엄마를 따라 간 병원의 의사는 아토피피부염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집에 돌아온 엄마는 한동안 삼촌과 말을 하지 않았다. 이따금 큰소릴 내며 싸우는 게 전부였다. 그때마다 삼촌은 눈치를 보며, 굽실거리는 태도로 나와 엄마를 대했다. 나는 삼촌이 불쌍했다. 피부염이 삼촌만큼 심해지기 전까지는. 피부가 급속도로 건조해지고 자꾸 긁어 상처가 낫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탓에 보기 흉한 주름이 온 몸을 옭아맸다. 어느 날, 나는 밤에 삼촌 방을 피해 엄마가 있는 안방으로 가 말했다.

엄마는 왜 손톱이 길어?

나는 순진무구하게 물었다.

엄마는 안 외롭거든.

엄마는 싱긋 미소를 내보였다. 어둠 속이라 이목구비가 희미하게 번지는 윤곽만 보였다.

난 외로운데. 애들이 놀려. 나 왕따인 거, 알아? 왕따라고. 왕따!

나는 소리를 질렀다. 이내 문이 벌컥 열리고 삼촌이 나타났다. 그는 비몽사몽인 채로 무슨 일이냐고 다급히 물었다. 그 꼴이 볼썽사나워 고개를 돌렸다. 엄마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함주가 악몽을 꾼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자 삼촌은 웃음을 터뜨리며 무슨 악몽을 꾸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나도 악몽 꿨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가 히죽 웃으며 말을 꺼냈다.

빨간 마스크. 하도 긁어서 온 마스크가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가득한.

그러고선 방으로 돌아가는 나를 따라 들어왔다. 또 악몽을 꾸지 않게 잠들 때까지 옆에서 지켜주겠다고 했다. 그는 부스럼과 딱지가 군데군데 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함주야. 너 뭐 반려동물 같은 거 키우고 싶지 않아?

아토피 때문에 안 된대.

되는 거 있어.

뭔데?

내가 관심을 보이자 삼촌은 재빨리 대꾸했다.

손톱.

그게 무슨 동물이야.

성장하잖아. 자라잖아. 그러면 동물이지.

과학시간에 배운 동물의 정의와 딱히 부합하지 않아 나는 망설였다. 나는 양 손을 활짝 펼쳐 삼촌 앞에 내보였다. 그리고 각각의 손톱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여긴 등 가운데, 여긴 어깻죽지, 여긴 꼬리뼈 쪽, 저긴 목 근처에서 자라는 애들이야.

뭘 먹고 자라는데?

그는 팔을 몇 번 긁더니 손톱에 낀 각질과 딱지를 긁어 빼내어 보여주었다.

이거.

나는 깔깔댔다.

이름은 붙여주지 마.

왜냐고 물었다.

정 들어.

무심코 나는 삼촌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침마다 씻는 것도 고통이다. 샤워를 마치고 나면 엄마는 문을 열어 안의 열기와 수증기 유무를 확인한다. 내가 뜨거운 물로 씻었는지 아닌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그녀는 더운 물이 몸의 수분을 빼앗아간다며, 찬물로 샤워하기를 강요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매일매일 물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다. 물이 환부나 껍질이 벗겨진 자리, 살이 팬 자리에 닿는 순간 따가운 극심한 통증이 피부의 모공마다 거꾸로 솟치는 것 같다. 온 정신이 고통에 눈을 돌리고 있을 때 가려움이 살금살금 내 등 뒤를 기어오른다. 그러면 나는 손끝으로 가려운 곳을 문지른다. 최대한 날이 서게 손끝을 세워서, 어떻게든 가려움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물에 불은 딱지와 거푸 뜬 껍질을 살살 손톱으로 긁어 뗀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무언가의 흔적을 내 몸에서 떼어낸다는 것, 제거한다는 것은 그것을 과거로 묻어두자는 암묵적인 약속이다. 찰나, 엉덩이로 수도꼭지를 건드린 탓에 뜨거운 물이 왈칵 쏟아진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줄기 방향을 튼다.

괜찮아? 뭔 일 있어?

문 너머에서 삼촌이 물어온다. 나는 신경 쓰지 말라고 외친다.

알았어.

삼촌이 떠나는 발소리도, 기척도 느낄 수 없다.

문 앞에 몸을 바싹 붙이고 흐느끼고 있을 삼촌을 떠올린다. 그는 아빠가 아니다. 그런데 어떨 때면 그가 아빠 행세를 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 문고리를 잡고 홱 열어젖힌다. 아무도 없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죽었다고 언젠가 엄마가 지나가듯 말했다. 나는 그 불의의 사고가 뭔지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해선 안 되었다. 그 문을 열면 수십 개의 문들이 나타날 것이고, 수백, 수천 개의 궁금증들이 밀려들 것이었다. 나는 수건으로 톡톡 뺨에 파운데이션을 묻히듯 물기를 닦아낸다. 샤워가운을 걸친다.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향한다. 방문을 닫으려는 틈새로 삼촌이 보였다.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선풍기를 제 쪽으로 틀어놓고 잠에 취해 있다. 여전히 한 손은 옷 속에서 어딘가를 긁는 채. 문을 닫는다. 나와 똑같은 존재가 더 있다는 게 거슬린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삼촌이 여자친구가 있느냐, 결혼은 언제 하고 싶냐, 물어볼 때면 늘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난 애 절대 안 낳아. 이 고통을 또 겪는 걸 지켜보라고? 안 물려줄 거야.

아토피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인, 유일한 유산일 될까봐 두려워서였다.

나한테 이걸 물려준 새끼도 죽여 버릴 거야.

나는 말했다. 삼촌이 움찔거리며 무섭다고, 그런 험한 말은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험한 말은 하면 안 되고, 험하게 낳은 건 되고?

엄마가 들으면 속상해하겠다, 함주야.

이건....... 아빠 때문이야.

처음으로 삼촌 앞에서 아빠, 라는 단어를 꺼냈다. 후회하지 않는다.

교복 대신 얼마 전 바뀐 캐주얼한 체육복으로 갈아입는다. 종일 수업 대신 체력 측정을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부터 두렵다. 분명 단체로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그러겠지. 나는 따로 일정에서 빼달라고 담임선생님에게 말했다. 그러나 담임은 단체 행동이라 빠질 수 없다며,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라는 듯 ‘자율권’을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정도로 만족했다. 엄마는 아침을 차려준 뒤 TV를 향해서 넷플릭스! 하고 외치고는 소파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굿 닥터>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옆엔 삼촌도 있었다.

복도는 이 반, 저 반 아이들 할 것 없이 뒤섞여 북적거렸다. 공기의 결마다 입혀진 열기가 살갗에 덧씌워진다. 나는 제자리에 서서 미친 듯이 온 몸을 긁기 시작한다.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으면 또 다시 핏자국과 진물 자국이 바둑이의 점 마냥 가득할 것이다. 문득 옷을 벗자마자 그대로 흘러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유연성 검사도, 멀리뛰기, 제자리 뛰기, 팔굽혀펴기도 모두 평균 미달이다. 하나, 오래 달리기는 상위권에 속했다. 측정을 하던 체육선생님이 3등으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의왼데? 중얼거리며 눈썹을 누그러뜨린다. 그건 아이들 말마따나 내가 빌어먹을 눈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힘을 비축한 뒤 한 번에 뛰고 다시 다음 계절을 기다리는 일. 나는 그것을 제일 잘한다. 내 삶에 시간의 족적은 없다. 그 이후로 내내 혼자 있었다. 벤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앉아 몸 이곳저곳을 긁적인다. 확연히 티가 난다. 다른 아이들이 짧게 재단한 체육복을 입고 있을 때 혼자 동복차림이므로.

강당에서 먼 별관 쪽 화장실에 가는데 한 아이가 나를 따라온다. 눈사람은 언젠가 녹는다는 얘기를 지껄인 아이다. 희고 말끔한 피부에 반반한 얼굴을 가진 그 애는 계속 따라오면서 나에게 너무 덥지 않느냐고 계속 말을 걸어온다.

끝나고 목욕탕 갈래? 여기서 가까운데. 식혜가 맛있거든.

왜, 그것도 나랑. 묻고 싶다. 아니면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그러냐고.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아이는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나는 싫다고 대답했다. 그 애는 왜 싫으냐고 한다. 남에게 맨 몸을 보여주기 싫은 것도 있고, 서로 맨 몸을 공유할 만큼 너와 내가 친하지 않다는 여러 의미를 어떻게 전해야할지 몰라 멀뚱거릴 때, 그 애가 다가온다.

너 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 저번부터 왜 그러는 건데?

나는 잇새로 빠져나가는 발음을 붙잡으려는 것처럼 입술을 달싹인다.

나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보는 건데.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

널 이해할 수 있어. 나도 어떤 면에선....... 그렇거든. 네가 좋기도 하고.

나는 빳빳하게 몸이 굳는 느낌이다. 그 애의 여자애들처럼 긴 손톱이 눈에 들어온다.

게이 새끼.

그 애는 당황한다. 나는 뒤돌아 걷는다. 네 음절의 단어를 한동안 입에 물고 질겅질겅 씹는다. 양 눈과 코와 윗입술을 질끈 깨문 아랫입술이 굽이치는 파도처럼 마음 한쪽으로 쓸려 나간다. 말은 발음되지 못하고 이전의 메아리로 되돌아가 팽팽히 성대를 잡아당기며 울려 퍼진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 그 근원이 나라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희열이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무디게 만든다.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그 애가 있던 곳을 건너다본다.

아무도 없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삼촌이 중고차를 샀다. 엄마는 여자친구가 생긴 모양이라고 내 손톱을 잘라주며 말한다. 그 말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직접 보지 않는 이상. 문예창작 입시 학원에 비정규직 강사로 들어간 지 한 달만의 일이다. 나는 삼촌더러 진짜냐고 물었다. 그는 딱히 부정하지 않고 어긋버긋 고개를 놀렸다. 나는 삼촌이 자신의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는 걸 상상해본다. 잤을까, 안 잤을까. 잤다면 삼촌의 그 몸을 봤을까. 괜찮은 걸까. 삼촌의 아토피가 요즈음 들어 나아진 걸 생각하면 그럴 법도 하지만. 또한 그는 운전연습을 한답시고 어디든 나와 엄마를 자주 차에 태우고 다닌다. 학교나 학원은 물론이고, 주말이면 유원지나 공원으로 향했다. 엄마는 삼촌이 젊었을 때에도 운전을 잘했다고 했다. 나를 태우고 전국을 돌아다녔어. 그때가 재밌었는데.

방학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토요일, 삼촌은 집에 여자친구를 불러들이겠다고 공포한다. 인사를 시킨다는 얘기다. 나는 나까지 있어야 하냐고 따졌지만 삼촌은 문상을 준다는 핑계로 있어달라고 애원한다. 마치 결혼이라도 할 것처럼 구는 게 나는 못마땅하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결혼이라도 약속했니? 엄마가 삐딱한 투로 묻는다. 삼촌은 가타부타 말을 못하고 그날 꼭 있어줘, 라는 말만 반복한다. 여자친구가 온다는 날이 가까워질수록 엄마는 삼촌에게 더 자주 신경질을 부리고 짜증과 화를 낸다. 별 것 아닌 이유 때문이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전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를 못 잊고 질투하는 것 같다. 남매란 때로 그러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배웠다.

너 그런 거 걔는 아니?

여자친구가 오기로 한 지 하루 전 날이다. TV를 보다 말고 엄마가 느닷없이 묻는다.

삼촌은 약점이라도 깊숙이 찔린 양 몸을 움츠린 채 느릿느릿 당연하지, 라고 대꾸한다.

그런데 왜 그런대?

.......그래도 너보단 나아.

엄마는 순간 일어서 삼촌의 뺨을 때린다. 짝 소리가 넷플릭스 드라마 주인공들이 떠드는 대화 사이를 가른다. 삼촌은 돌아간 고개를 구태여 제자리로 돌리지 않고 시선을 그대로 둔 채 자리를 피한다.

넷플릭스!

엄마가 한 번 더 소리치자 넷플릭스가 종료된다. 그녀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는 가만히 소파에 홀로 남아 일련의 상황을 정리해보려 애를 쓴다. ‘그런 거’, ‘왜 그런대’, ‘너보단 나아’, 라는 표현들이 낳은 의문의 불씨들은 머릿속에서 의문을 땔감으로 태우며 서서히 타올랐다. 잠시 후 부엌에 앉아 냉수로 목을 축이던 삼촌이 내 옆으로 다가와 가려운 곳을 좀 긁어줄 수 있겠느냐고 말을 건넨다. 조심스레 묻는 그의 말에 위압감이 느껴져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한다. 조금 더 아래, 아니 옆에, 왼쪽, 오른쪽, 가운데, 그는 내 손을 이리저리 조종한다.

좀 세워서 긁어봐.

나는 손톱이 없어.

왜? 그동안 길렀을 거 아냐.

엄마가 어제 짧게 잘라버렸어.

삼촌은 한동안 말이 없다. 한숨으로 호흡을 짧게 잇는 그다.

내가 잘 기르라고 했잖아.

나는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근데 삼촌. 진짜 여자친구 내일 와?

당연하지.

근데 엄마는 왜 저래?

부러운가봐. 엄마는 남자친구가 없잖아.

근데 삼촌. 삼촌은 왜 손톱이 없어? 나더러는 기르라고 하더니.

삼촌은 실소를 터뜨리고는 대답했다.

오래 전에 죽었거든.

다?

다.

 

삼촌의 여자친구는 끝내 오지 않았다. 방학이 끝날 때 즈음 그는 헤어졌다고 말했다. 그럼 그렇지, 엄마는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우거지국을 끓여 아침으로 내놓았다. 나는 뭐라고 삼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내게 고백했던 그 아이가 다시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방학 내내 내가 떠올라 불편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은 게이가 맞는다고, 하지만 더 이상 너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뒤이어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 이제 가라고 말을 돌렸다. 왜 날 좋아했느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그러면 정말 그 애더러 가라고 하지 못할 것 같았으므로. 그러다 나는 마지막으로 그 애를 불렀다.

넌 손톱 어떻게 길러?

그 애는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었다.

아니, 왜 길러? 게이라서?

나 기타 치는데.

그 애는 다른 쪽 손을 내민다. 오른손 손톱은 나만큼이나 짧았다.

 

이제 나갈 때가 됐어.

삼촌은 이 말을 서두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다. 아이스크림을 먹던 나와 엄마는 조금은 놀란 눈으로, 조금은 의심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그는 돈을 모았다고 했다. 지방에서 다시 시작할 거라고 했다. 자그마한 오피스텔 하나를 얻어 살 것이라고. 전남 나주라고 했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엄마는 딱히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때가 됐지. 이 정도면 충분해.

돈이 충분하다는 건가, 나는 아리송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는 이사 날짜가 일주일 뒤라고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빨리 가느냐고 타박하듯 말했다. 그럼 나는 이제 완전히 혼자네, 라고 뒷말을 웅얼대면서. 삼촌은 왜 혼자냐고 반문했다. 엄마가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할까봐 나는 미리 선수를 치려는데, 예상치 못한 훅이 들어왔다.

손톱을 길러. 그러면 긁기도 편하고 외롭지도 않을 거야.

그거야 어렸을 때 얘기지. 아직도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부모의 어릴 적 동화 얘기는 커서도 믿음을 준대. 영향을 준다나 뭐라나.

나는 그 말을 곱씹을 틈도 없이 삼촌의 등을 마지막으로 긁어주어야 했다.

달빛이 한 꺼풀 벗겨졌을 무렵, 나는 깼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꿈을 꾸었다. 그럴수록 몸 곳곳이 가려워 고통스러웠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향하는데 거실에서 회색빛의 희미한 형체가 움직인다. 깜짝 놀라 절로 사지가 동작 그대로 멎는다. 엄마다. 엄마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두 팔을 기괴하게 비튼 채 몸을 긁고 있다. 가려운 데가 손이 닿지 않는지 자꾸만 어딘가를 향해 안 그래도 뻣뻣한 몸을 억지로 허공이 어딘가에 욱여넣듯 구부린다. 그 모습에 내 팔도 덩달아 가려워져 나는 물을 마시려던 것도 까먹고 그녀를 따라 긁는 것에 열중한다. 나는 천천히 엄마에게로 다가선다. 등의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이 그녀를 미치도록 가렵게 하는 게 틀림없다. 나는 그곳으로 천천히 손끝을 갖다 댄다. 어제 엄마가 삼촌이 짐 싸는 걸 도와준다고 미처 자르지 못한 약지를 세운다. 손끝에 힘을 주어 긁는다. 엄마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온다. 나는 너무 세게도, 약하게도 말고 적당히 힘을 실어 그곳을 긁는다. 어느 새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위가 어긋난 음계로 일그러져 지나가던 바람마저 쉬쉬 샌다. 내가 손을 뗐을 때, 엄마는 등을 구부리고 웅크려 앉았다.

그때서야 나는 목이 마르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넷플릭스!

엄마가 외친다. 삼촌은 늦잠을 자고 있다. 나는 미적지근한 감자국을 떠먹으며 고등어조림 가시를 발라낸다. 여름의 끝물, 어느 새 에어컨보다 스마트TV가 더 쓸모 있을 시간이 도래했다. 엄마는 <굿 닥터>를 끝내고 <기묘한 이야기>를 처음부터 한 화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 학교에선 이제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들어선 순간부터 너희들은 고3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쉬는 시간을 제하고 점심시간에도 자율학습을 할 것을 종용했다. 그 말을 전하니 엄마나 삼촌은 내색 없이 그럴 때가 됐지, 입을 모았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내가 말했지만 아무도 들은 것 같지 않다.

뒤늦게 일어난 삼촌이 소파로 조르르 달려가 앉는다. 그러더니 엄마에게 등을 들이밀며 긁어달라고 청했다. 엄마는 삼촌이 난줄 알았는지, 그만 긁어 좀 함석아, 이름을 틀리면서까지 넷플릭스 드라마에 열중했다. 내일이면 삼촌이 떠난다. 나는 손톱깎이를 찾아 TV 옆 협탁을 뒤적거린다.

가만있어, 내가 잘라줄 테니까.

엄마가 불쑥 입을 연다.

내가 자를 수 있어. 학교도 늦었고.

그럼 네가 잘라. 어머, 저거 어떡하니!

나는 가만히 두 손을 모아 살핀다.

삼촌의 이름을 왼다. 함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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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훈 22.06.22 23:54 댓글

    잘 읽었습니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변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표현하는 글재주가 좋지 못해 어렴풋이 받은 느낌만 적자면, 아토피를 사용해서 사회에서 받게되는 시선을 상징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떨쳐내기 위해 <굿 닥터>를 보고 무당을 부르고 샤워를 하면서 기른 손톱으로 스스로 살점을 떼어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 꼭 시선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가 닮은만큼 주제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 글을 몰입해서 읽었습니다.

    다만 그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에서 '게이'를 사용한 것에 저는 탄식했습니다. 이를 사용하신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는 지인이 없으니 물어볼 수도 없고, 검색해서 알아낼 수도 없습니다. 왜 '게이'였는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아니기에 그런 것이었을까요? 

  • 정상훈님께
    No Profile
    글쓴이 김성호 22.06.23 17:27 댓글

    안녕하세요, 정상훈 님. 먼저 글을 읽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질문에 답을 드리자면, 사실 저도 많은 고민을 했고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이 아토피로 인해 차별과 혐오를 받는 것처럼, '게이'라는 소수자성(역시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받고 있는)을 가진 상대적 인물이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 역시 이 부분이 글에서 가장 아쉽다고 생각합니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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