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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슭곰발

2022.01.25 21:0501.25

  비포장도로 한 가운대 픽업 트럭을 멈춰 세우고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금일 처인구 이동읍 천리에서 곰 탈출 발생. 현재 포획중으로 안전에 유의바라며 곰을 목격하신 분은 즉시 신고바랍니다. (031-324-2247)]

 

  지역별 긴급안내문자가 수신된 것으로 보아 용인통신타워의 신호가 닿는 어느 구역에 들어왔다고 생각되었다. 메시지 함을 닫은 나는 액셀에 발을 가져갔다. 이정표가 하나 없는 산기슭을 깊은 새벽의 어둠 속에서 오르내리며 네비게이션 우측 구석에 있는 좌표만을 의지해 차를 움직였다. 새벽의 오프로드는 자동차 헤드라이트의 밝은 빛을 모조리 흡수 했고 나뭇가지를 이용해 차의 바깥을 연신 긁어댔다. 여러 번 겪어봤지만 여러 갈래로 긁히는 소리는 적응되지 않는다. 차를 움직이는 중간에 피할 수 없이 듣고만 있자면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가렵지 않은 곳을 긁어 가렵게 만든다. 표현하자면 마음이 가려워진달까.

  나는 강원도 춘천의 한 독립영화관의 단골이었다. 상영관이 두 개뿐인 작은 영화관이었다. 그럼에도 보름 정도를 간격으로 상영할 영화를 꾸준히 바꿔 달았다. 이 영화관에서 올리는 독립영화는 상업영화와 달리 대중적인 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이를 판단할 리뷰도 부족했다.) 그렇게 기대 없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음이 가려웠다. 대체적으로 영화가 무슨 의미를 시사하는지 못 알아채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매번 일을 마치고 나면 시간 내서 독립 영화관을 찾곤 했다.

  아내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아내는 티켓부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나중에서야 물어보니 재미없는 독립영화를 매번 보러오는 내가 신기했다고 한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을 했는지 티켓을 발권 하던 중 독립영화가 재미있나요? 하고 물어왔다. 그냥 그래요. 근데 왜 매번 봐요? 그냥 취미입니다. 소개팅의 첫 만남에 올법한 대화를 한 후 영화를 보기 위해 허허 너스레웃음을 보여주며 헤어졌다. 이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자 아내는 나에게 시간이 있는지 물었다. 매번 꾀죄죄한 차림으로 찾는 나에게 왜 만나자고 했는지 궁금했지만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따로 묻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였던 나의 소식을 듣자 시골에 계신 부모는 크게 좋아했다. 부모는 내가 결혼하지 못 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는 아내를 보자마자 고맙다며 연신 인사를 했다. 그리곤 씨암탉까지 잡으며 백숙을 끓였다. 결혼준비는 순조롭게 이뤄질 것 같았다. 돈이 되지 않지만 시골에 논과 밭도 조금 있었고, 서울이나 경기도는 아니지만 등 대고 잘 수 있는 집도 있었다. 걱정할 건 없다 생각했는데, 아내는 이따금 무리에서 떨어진 사슴처럼 날 바라보았다. 내가 일 때문에 핸드폰을 만지고 있거나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연락을 하면 특히나. 알고 보니 아내는 부모님이 없는 천애 고아였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민간 엽사로 멧돼지와 노루 등을 잡아온 나는, 멧돼지 소탕을 지시했던 농림축산식품부의 사무관과 인연이 닿아 사육곰 포획 및 사냥 작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나 이외에도 서른 명 정도를 더 섭외했다 들었다. 그 중 안면이 있는 민간 엽사들이 있어 그들의 베이스캠프를 같이 이용할 수 있었다.

  사육곰은 오후에 사라졌다. 두 마리의 곰이 사라졌는데, 농장 주인이 빈 우리를 발견하여 신고를 했다고 한다. 소방대원들과 엽사들은 일찍이 우리에 다녀갔고 브리핑 파일을 작성해, 공유해주었다. 일반적인 사냥꾼이라면 우리에서 부터 추적을 시작하겠지만 나는 엽사끼리 조를 이루거나 사냥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에 다녀오는 과정이 시간낭비라 생각되었다. 열화상 카메라, 포획트랩과 틀, 엽총, 초코바 몇 개와 손질이 안 된 멧돼지 고기, 냄새 제거제를 간단히 낚시가방에 꾸겨 넣었다. 늦었음에도 행동은 굼떴다. 어제 대낮부터 진통을 시작한 아내가 계속 생각이 났기 때문일까.

  두꺼운 점퍼 위로 가방 스트랩을 끌어매고 수많은 나무 사이로 올라갔다. 산자갈에 습기가 스며 미끄러웠다. 무작정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곰의 습성 따위는 알고 있었다. 다만 우리를 벗어난 적이 없는 사육곰이 일반적인 곰의 습성을 보여줄까 우려됐다. 없어진 사육곰은 우리나라 지리산을 중심으로 서식 했던 아시아 흑곰이다. 몇 번의 복원계획을 통해 익숙히 반달가슴곰이라고 불린다. 설화에서는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으로 버텨낸. 일제시대 해수구제사업 또한 이겨낸 민족 자긍심의 근간이라고. 그런데 도망가기 직전엔 두 평이 채 안되는 공간에서 사육돼 웅담에 살을 찌우고 있었다. 내가 만약 이 곰이라면 최대한 사람 냄새를 피해 도망갔을 거라 생각한다. 바람은 산을 타고 아래에서 불어 위로 올라갔다. 나는 점차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풀과 나무가 무성한 정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어디인지 GPS 신호만이 아는 위치에서 등 뒤로 눈을 돌렸다. 능선이 보였고 그 사이로 해가 떴다. 해는 빠르게 떠올랐다. 날이 밝아 몇 없는 구름 사이로 간지러운 햇살이 비추었다. 낙엽들을 말리기 시작했다. 멋진 경관에 드문드문 드는 여러 생각들을 뒤로하자 졸려왔다. 점차 눈이 감겼는데, 전화 진동소리에 잠에서 깼다. 동료 엽사에게서 온 전화로 위치를 알려달란 전화다. 위치와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 받은 뒤, 곧 태어날 아들을 축복받았다. 그리고 욕도 같이 들었다. 어째서 이번 사냥에 왔냐 묻는 동료 엽사. 왜 왔을까. 출산예정일이 임박 했지만 불규칙한 수입을 탓으로 산을 타고 있다. 아내의 진통은 새벽사이에도 계속 되었을 것이다. 분명 내가 없음에도 무탈이 출산해주리라 믿었다.

  부모는 아내가 고아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결혼을 반대했다. 근본도 없는 애를 데리고 왔냐 하며 경을 쳤다. 근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부모가 걱정하는 이유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아내의 배에는 애가 들어섰고 그 덕에 결혼할 수 있었다. 아내는 내게 미안해했다. 겪지 않아도 될 갈등을 자신 때문에 겪었다고 말했다. 예상되듯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아내만 보면 온몸이 간지러웠다. 왜 간지러운 걸까.

  아내는 내가 자신을 피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한번은 아내가 먼저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를 보자 권했다. 사이가 좋을 때(내가 그녀를 봐도 간지럽지 않았을 때) 아내에게 독립영화를 권했다가 퇴짜를 맞은 적이 있기에 그녀가 독립영화를 싫어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도 한 번쯤은 노력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어렵게 독립영화관에 가 영화를 봤다. 보고나선 여전히 간지러웠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워서, 찾아온 정적이 간지러워 같이 본 영화는 재밌게 봤는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역시나 재미없다, 말했다. 왜 재미없어? 보통 상업영화는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만 하는데, 독립영화는 보통은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 불편한 이야기만 해. 그 이후 난 독립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다.

 

  멧돼지나 노루의 배설물과 흔적은 보았지만 곰의 흔적은 찾지 못 했다. 만약 곰의 배설물을 찾게 되면 사람 몸에서 나는 냄새를, 제거제를 통해 없애고 마땅한 나무 위에 올라가 기다릴 생각이다. 자신의 영역 따위는 갖지 못 한 도망 곰은 지나온 길을 다시 찾을 거라 예상한다. 그 길이 안전할 것이라 믿으며.

  도망친 곰은 좁은 우리에서 모든 습성을 잊었을 것이다. 배설물의 처리가 쉽고 발바닥이 상하지 않게끔 바닥면을 듬성듬성 뚫어 놓은, 사각 철창으로 이뤄진 우리 안에서. 보통의 곰은 배설물과 나무를 이용해 영역표시를 한다. 특히나 나무에 하는 영역표시는 곰의 힘을 보여주는 표식이다. 곰은 큰 앞발을 이용해 나무를 긁는다. 이 때 나무에 남은 상처가 높으면 높을 수 록 자신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도망친 곰에게선 기대할 수 없는 행동이다. 오로지 실수한 배설물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숲에서 헤맨 뒤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이게 곰의 발자국이 맞을까, 역시 도시로 내려가지 않았구나, 다른 엽사들은 어디 있을까, 자리를 잡기 전에 곰을 마주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다른 엽사들이 곰을 찾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우리에서만 살아온 사육곰이 불쌍했다. 불편한 우리를 도망쳐 나왔으니 하루라도 더 자유를 만끽했음 좋겠다 생각했다. 최대한 늦게 발견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곰이 내 앞길에 없길 바라며 풀이 누운 방향을 따라 걸었다.

  정처 없이 걷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곰의 발자국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아내 생각마져도 나지 않았다. 이 길 끝에 곰이 있을까.

  허기가 졌다. 가방에 넣어둔 초코바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시간을 보니 점심 때는 한참 지났다. 겨울의 해는 짧아 금새 해가 질 것이다. 산속에서 하루를 꼬박 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하산 하지 않으면 여러모로 위험하다.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재정비를 해야 될 때다. GPS에 곰이 지나간 길을 마저 표시했다. 내일 해가 뜨기 전에 다시 돌아와 이어 움직일 생각이다.

  그런데, 제기랄. 하산 중 곰을 마딱드렸다. 전체적으로 검고, 가슴에는 흰 줄무니가 꺾여 있는 모양의 곰을. 덩치 또한 여태 잡아온 멧돼지보다 컸다. 들쳐 맨 가방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았다. 하지만 겨울에 바싹 마른 낙엽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지퍼를 갈라 엽총을 조심히 꺼냈다. 조용히 내린다고 내렸지만 지퍼가 벌어지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 엽총의 개머리판을 어깨에 견착하고 목표를 겨눠 노렸다. 한 번에 죽이지 못 하면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시야가 멀어져 초점이 맞지 않고 식은땀이 났다. 한 번에 죽이지 못 하면 어떻게 될까. 온 몸이 간지러웠다. 식은땀이 슈트 안에서 증기를 만들었다. 긁고 싶다. 긁으면 소리가 날 텐데, 참아본다. 곰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 자리에 굳은 채 곰이 떠나간 자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거친 숨을 골랐다. 두어 번쯤, 그리고 혹시나 들릴까 참았다.

  정신을 차리고 곰이 있던 자리로 향했다. 곰이 질펀하게 설사를 해둔 게 아닌가. 곰은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던 것이다. 도망치는 자의 스트레스를 설사가 대변했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곰을 잡을 수 있다. 잡는다 해도 도망간 한 마리가 더 있으니 집에는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주변을 둘러보고 설사와 가깝고 튼튼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밤나무여서 가지가 높게 뻗쳐있었다. 가방이 떨어지지 않도록 큰 가지에 묶고는 냄새 제거제를 꺼내 나와 나무에 뿌렸다. 그리고 총을 꺼내 곰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한참을 겨눴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림자는 길어지고 해는 짧아졌다.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생각할 때 돌아왔다. 계속 그 생각만 했으니까 정확히 몇 시간 만에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여튼 해는 누워 산은 붉어졌다.

  곰은 거친 숨을 내쉬며 돌아왔다. 우리에서 먹기만 한 곰답게 덩치가 컸기에 큰 발자국을 당차게 남기며 걸어왔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쭈뼛거리며, 주변을 경계했다. 그럴 것이다. 곰은 쫓기고 있었으니까. 곰은 사람보다 약하다. 농장 주인이 주는 사료를 받아먹으며 자랐기 때문에 곰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곰은 자신의 설사 아래로 와 냄새를 맡았다. 도망치며 지린 부끄러운 설사 옆에 오랫동안 냄새를 맡았다. 곰의 머리에 총을 겨눴다. 이 거리에서는 빗나갈리 없다. 곰의 숨바람에 하얗게 김이 분사됐다. 머리에 숨구멍을 하나 더 내주겠다, 라고 생각했다. 그 때 곰은 천천히 발을 뗐다. 나무에 스트레칭을 하려는 듯 앞발을 올렸다. 고양이가 스트레칭 하듯 몸이 늘어났다. 아니, 곰은 큰 몸을 더 크게 만들었다. 곰은 큰 발로 나무를 긁었다. 벅벅 소리가 산을 울렸다. 자신이 가장 강한 곰이란 것을 알렸다. 우리 따위는 잊은 듯, 산의 주인인양 그르르 울었다. 거친 나무의 표피는 허무하게 나가떨어졌다. 두꺼운 나무의 허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나는 조용히 곰이 떠나길 기다렸고, 그길로 짐을 싸 아내에게 갔다.

  아내의 출산을 지켜봤다. 아이가 나오는 게 늦어 진통은 길어져만 갔다. 아내는 쉬지 않고 힘을 줬다. 끝내 나를 닮은 자식을 낳았다.

  한 마리의 곰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예상과 달리 곰은 사람 냄새가 나는 주택가를 달려댔고 한 시민의 신고로 소재가 파악 되었다고 한다. 이후 소방대원의 마취총을 맞고 농장으로 인도 되었다고. 한 마리 잡히지 않은 곰은 어디에 있는 걸까? 잡힌 곰이 내가 마주친 곰일까? 어쩌면 동굴에 들어가 있는지 모른다. 쑥과 마늘을 먹으며, 사람이 되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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