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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빛, 그리고 당신

2022.01.24 15:5401.24

 

 언제부터인지 잘 모르겠다. 미술관에  걸린 그림을 보러 가는 게 아니라 한 여자를 보기 위해 가고 있고, 지금은 다시 찾고 있다. 보고 싶은 한 사람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 함께 찍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다. 가끔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함 전시회가 열리게 되면 말없이 예매하며 그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고백하고 싶다. 첫눈에 반했다고.

***

  이른 아침 상쾌하게 눈을 떠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며 핸드폰 예약이 울린다.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작가인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전시회가 열리는 날이다. 특히 르누아르의 작품의 특징은 인물의 색감과 구성을 섬세하고, 다채롭게 표현해 보는 사람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색감 속 그림자의 모습을 생각하며 검은색 코트와 니트 그리고 와이드로 빠지는 슬렉스를 입고 검정 첼시 부츠를 신고 나갔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전시회가 열리기 때문에 조금은 느긋하게 길을 걸었다. 사람이 모두 다 빠진 버스를 타고 2정거장이 지나 도착한 곳에는 ‘오귀스트 르누아르 특별관’이라는 이름의 문이 정면에 바로 보였다. 설렘과 간지러움 마음을 간직하며 티켓 확인과 출입증을 받아 전시회로 들어갔다. 첫 그림의 나의 시선은 한순간에 빼앗겼다. 작품의 이름은 도시의 무도회로 프랑스 상류사회에서 우아하고 그림 안에 남녀는 서로에게 절제된 모습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이 나에게도 조금씩 묻어나는 기분이었다. 

 “아름답다..”

  주변에 누가 지나가도 그림과 나 둘만이 이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제일 보고 싶은 그림을 보기도 전에 입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그림을 가까이서 보니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림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나를 빨려 들어가게 했다. 르누아르의 따뜻한 색감과 공존하는 곡선은 그 자리에 10분 이상 음미해야지 조금이나마 그림의 느낌이 이해가 갔다. 

 ‘이레느 깡 단베르 양의 초상’

  심장이 살짝 멈췄다. 르누아르의 작품 같지 않게 색감은 어두움과 인물은 누구보다 아름답지만 그 안에 있는 색깔은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한 모습이었다. 마치 한 작품에 두 명의 인물이 공존해 있었다. 특유의 통통함과 곡선은 르누아르의 모습이었지만 대조되는 색감의 모습을 한 부분은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림 전체가 보이게 뒤로 물러나 사진을 찍을 때 너무 그림에만 집중했는지 앞에 사람이 관람하고 있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 죄송해요 보시는데 방해되셨나요?”

 여자는 나에게 물었다.

 나는 손짓과 함께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실례가 된 거는 아닐까요?”

  여자는 미소를 살짝 띠며 말했다.

 “전혀요, 이 그림 많이 좋아하세요? 엄청 행복해 보이세요”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오늘 전시회를 찾아왔어요, 지금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가 없네요”

 나는 대답했고, 여자는 다시 물어봤다.

 “저는 사실 르누아르 작가의 작품이 정확히 어디가 아름다운지를 몰라서 항상 궁금했는데 물어볼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에요, 그래서 정확히 어디가 아름다운 거예요?"

  나는 설명을 길게 했다. 내가 아는 지식을 모두 꺼내 그 여자에게 말해주고 다리가 뻐근해질 때가 되어야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여자에게 물어봤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오래 설명했죠. 저기 작품도 이쁘니 꼭 봐주세요”

 여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저는 너무 좋은데요? 같이 보러 가실래요?”

 그때는 그림에 정신이 팔려 무슨 뜻인지 몰랐다. 1전시장, 2전시장 모든 곳을 다 둘러보고 여성분의 이름을 물어봤다.

 “이름이 뭐예요?”

 “그러게요 우리 아직 이름도 말 안 했네요, 제 이름은 김설화예요 그쪽은 이름이?”

 이름이 이뻤다. 나는 답했다.

 “김지호입니다. 오늘 같이 봐서 너무 좋았어요. 혹시 또 전시회 보러 오세요?”

 “그러게요 언제 올지 모르겠네요 또 본다면 그게 우리 인연이겠죠? 저는 다음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지호 씨”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찍은 사진을 손으로 넘기고 있었다. 모든 사진은 너무 아름다웠고, 다시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품은 것 같았다. 그러다 마지막 사진을 봤을 때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보다 먼저 내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검은색 긴 장발머리에 검은색 코트와 부츠를 신고 얇게 뜬 두 눈에서 그림과 대화를 하는 표정을 하는 여자가 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꾸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핸드폰을 끄고 창문을 열어 얼굴을 환기시켰다. 

  “뭐야.. 되게 이쁘네..”

  그 전시회가 있고 3개월 후에 다시 전시회를 찾았다. 그때랑은 조금 먼 거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설렘의 발걸음으로 시작했다. 점묘 작가와 여유로운 그림의 분위기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특별전이었다. 쇠라 작가의 그림은 내 인생을 위로해 준 그림이기도 했다.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다시 걸렸기에 나는 솜사탕 같은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전시장은 생각보다 컸다.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붐벼있었다. 약간의 답답함이 전시회를 방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전시장의 동선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게 잘 짜여 있었다. 여유로운 그림과 햇빛의 온도가 느껴지는 그림 속 산책을 했다. 우산을 쓰고 있는 여인, 여유롭게 앉아있는 두 남자, 그리고 검은색 긴 장발머리의 여자.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이 맞을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안녕.. 하세요?”

 고개를 돌리며 여자는 나를 봤다. 아마 그 순간이 내가 전시회를 가장 잘 왔다고 느꼈던 순간이었을 거의 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 지호 씨”

 심장은 간질거렸다. 입꼬리는 자꾸만 올라가려는 거를 힘으로 막아내며 말했다.

 “그러게요, 쇠라 작가의 작품도 좋아하세요?”

 사실 작가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이 여자와 다시 만난 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예요, 그림에서 여유로움이 계속 남아있잖아요, 이 작가 잘 아세요?”

  정확히 너무나도 잘 알았다. 그림 한 점만 보고 돌아가려는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아니 무조건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했다.

 “저 아무것도 몰라요”

 그리고 용기 내 한마디 더 답했다.

 “알려주세요”

 “모르는 것도 있으시구나, 그러면은 오늘은 제가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2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미술관 밖에 있는 카페에 앉았다. 하나도 지치지 않았고, 내 눈에 보이는 이 여성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늘은 어떻게 오신 거예요?”

 설화가 말했다.

 “요즘 여유로움이 제 삶에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자꾸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니깐 정신도 못 차리고 참,”

 “뭐야, 나랑 완전 똑같다. 저도 오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지치고 쓰라려서 그림 보러 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깐 저렇게 여유롭게 사는 게 진짜 어려운 건데”

 “그러게요, 여유로운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데 다행히 우리는 지금 여유롭게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어디예요”

 보내고 싶지 않았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설화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다음에 또 전시회 보러 가요 그때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

  “완전 좋아요 저 그날은 시간 다 비워둘게요"

 “고마워요, 그러면은 우리 그때 만나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며 사라질 때쯤 나는 소리 질렀다.

  “맞다 번호!”


***

  “맞다 번호!!!”

  눈을 떠 핸드폰을 보니 아무것도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먼저 보러 가자고 한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내 책상에는 그 남자의 얼굴이 그려진 그림이 작게 그려져있었다. 르누아르 작가 전시장에서 우연찮게 마주쳤지만 그때 그 그림을 보는 모습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아 그림으로 남겼다. 처음 르누아르 특별관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헐레벌떡 뛰어가 머리도, 손톱 정리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그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자리에 몇 분 동안 가만히 있어야지 그나마 공감이 가는 색감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절제된 우아함과 그리고 단호함..”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라고 물어보면 항상 나의 대답은 “르누아르!”로 변함이 없었다. 그만큼 누구보다 잘 알고 또 자부심도 느꼈다. 그 남자가 오기 전까지 말이다. 검정 코트와 첼시 부츠 소리와 함께 내 옆에 서서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표정이 잠깐 보였다. 그 두 눈에는 작품을 사랑하는 게 아닌 융합되고 있었다. 그 사람의 세상에는 지금 작가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뒤로 물러나 남자가 사진을 찍는데 나는 피하지 못해 죄송스러운 마음에 말을 했다.

 “어, 죄송해요 보시는데 방해되셨나요?”

  그 남자의 표정은 다시 현실 속 세상으로 돌아온 표정이었다. 살면서 그림을 이렇게 사랑한 사람을 보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상하게 따뜻함과 그 사람만의 색감이 나를 끌리게 만들었고, 나는 한마디 더 했다.

 “이 그림 많이 좋아하세요? 엄청 행복해 보이세요”

  정말 주책이다. 질문부터 이상하다. 그래도 그 어떤 답변을 할지 속으로 많이 기대했다. 이 그림이 전부라는 남자의 답은 내 안에 훅 들어왔다. 마음을 뺏겼는지 헛소리 같은 말을 했다.


 “저는 사실 르누아르 작가의 작품이 정확히 어디가 아름다운지를 몰라서 항상 궁금했는데 물어볼 사람이 생겨서 다행이에요, 그래서 정확히 어디가 아름다운 거예요?"

  같이 있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저 사람이 세상의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이 들었다. 남자는 나에게 설명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는 특히 더 행복하게 말했다. 그 모습이 5살 어린아이 같았다. 순수하면서 귀여운 어린아이가 내 앞에 커다랗게 서 있었다. 전시장을 같이 둘러보며 서로에 이름을 물었다 이 남자의 이름은 김지호였다. 이름처럼 생겼다는 게 꼭 지금인 것 같았다. 나에게 지호 씨는 언제 전시회에 올 거냐고 물어봤다. 쉬운 여자처럼 보이기는 싫었다.

  “그러게요 언제 올지 모르겠네요 또 본다면 그게 우리 인연이겠죠? 저는 다음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지호 씨”

 단호하며 아주 적절한 대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집에 오니 바보였다. 다음 전시회 아니 그냥 밥이나 같이 먹자고 말하기도 모자랐다.

 “어휴, 이 모질이 언제 또 만나 언제!”

 매번 새로운 작가의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항상 보러 갔다. 정확히는. 김지호를 보기 위해 갔다. 그림보다 그 사람을 먼저 찾고 없는걸 확인하 뒤에야 그림을 보며 중얼거렸다.

 “되게 자주 올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

  실패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 남자의 세상이 어떨지 얼마나 아름다울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런던 날 이메일 보는 시간을 잘못 확인해서 3시간 미리 보내야 할 거를 3시간 후에 보내버렸다. 그날은 처음으로 심하게 깨졌고, 팀원들이 나를 보는 표정은 불쌍한 강아지 사료 주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괜히 울컥했다. 내 잘못은 맞지만 마음은 아직도 억울한가 보다. 열심히 혼나고 자리에 앉아 전시회를 일정을 보다가  조르주 쇠라의 특별전을 한다는 배너광고를 봤다. 나는 홀린 듯 예매하고 퇴근하자마자 멍 때리며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여유로움 속 수많은 그림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괜히 더 무거워지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안녕.. 하세요?”

 익숙하고 내가 기다렸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자 김지호가 서 있었다. 행복했다. 아직도 이 사람의 눈은 어린아이같이 해맑게 보고 있었다.

  “여기서 또 만나네요 지호 씨”

 오늘은 말하고 싶다. 전화번호 달라고, 신기하게 즐거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조르주 쇠라 작가의 작품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 잘 알지도 모르는 작가의 설명을 줄줄이 하며 2시간 가득 채우고 미술관 야외 카페에 앉았다. 2시간이 2분인 마냥 너무 빨리 지나갔지만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오늘은 어떻게 오신 거예요?”

  괜히 궁금해졌다 이 사람은 왜, 오늘, 하필 이 전시회를 보러 온 건지. 이유는 나랑 같았다 여유로움을 느끼기 위해서 왔다는 것. 더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당신의 세상의 들어갈 수 있을지. 다음을 위해 나는 말했다.

  “우리 다음에 또 전시회 보러 가요 그때는 제가 먼저 연락할게요”

말까지 하고 그 자리에서 나왔지만 전화번호는 물어보지 않았다. 망했다.


***

  설화 씨를 만나고 6개월이 지났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은 없었다. 요즘 일이 바빠 전시회를 못 가고 있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책을 쓰느라 밤낮이 바뀌어 버렸다. 습관을 고치지 않는 이상 앞으로는 다시 못 볼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둠 속 세상에 사는 나는 사람을 만난 적도 누구랑 대화한 적도 없다. 사실상 말수는 하루에 5마디 이상을 넘지도 못했다. 글과 나 그리고 내 세상에 아무도 빛이 되는 존재는 없었다. 


  이상했다. 매번 전시회를 가지만 근래 6개월은 한 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사람은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요즘은 전시회도 가지 않는다. 괜히 기대감을 품은 것도 싫지만 그냥 좋은 생각으로 남기는 게 그림과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쩌면 이미 그 사람은 나를 잊은 거라고 생각도 했다.

***

  1년 만에 책이 완성됐다. 길고 끈질긴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무사히 마무리가 되어 정확히 저녁 12시에 잠을 자기 위해 준비를 했다. 다음 주는 출판사를 통해 책이 서점으로 나오기 때문에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면은 안된다. 잠자기 전 책상에 있는 설화 씨의 사진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가장 좋은 작품, 가장 좋아했던 사람”

 그 사람은 나를 잊어버렸다 해도 나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죽기 전까지는 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했다.

  5월 3일 따뜻한 햇살이 하늘을 비집고 나오는 날 내 책은 서점에서 나쁘지 않은 인기를 얻어 가며 소문이 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나는 전시회를 둘러보려 한다.

***

  어느 정도 자리에 올라서서 더 이상 회사에서는 스트레스 받지는 않았다. 단지 밑에서 배우는 후배들이 불쌍하게 배울 때는 너무 웃겼다.

“또 혼나?”

 어느 날 인터넷 서점에 키워드 추천 알림이 떴다.‘화가의 세계에 대해’제목 배너 알림이 울렸다. 작가는 김지호라는 사람이었다. 익숙했지만 한편으로 낯설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은 첫 목차에서 느꼈다. ‘조르주 쇠라의 인생에 대해’그 사람은 절대 이 주제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넘겨보다 마지막 장 마지막 줄은 내 호기심을 다시 자극했다. 7월 8일 빛이 시작하는 곳으로.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그런 전시는 예정도 없었다. 

“미국 전시장인가?”

 아무 소리 없이 나는 핸드폰을 끄고 잠을 자러 갔다. 빛이 시작하는 곳이 뭔지는 몰랐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거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체.


***

  그녀가 내 마지막 문장을 봤을지는 모르지만‘빛과 당신’전시회를 보러 가고 있었다. 전시회 문이 열리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새 건물의 냄새가 예전에 소년이었던 나를 다시 설레게 만들었다. 이번 전시는 총 4층의 전시로 어둡게 시작해서 제일 밝게 끝난다. 그래서 그 분위기에 따라 여러 가지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빛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빛이 들어오는 기분을 받기 위해 4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미쳤다. 내가 그 문장만 보고 지금‘빛과 당신’이라는 전시관으로 향하고 있다. 4층의 전시회 콘셉트로 어둠에서 빛으로 변하는 전시회였다. 항상 느꼈던 옅은 나무냄새가 코끝을 찌르고 있었다. 빛으로 시작해 어둠으로 끝나는 세상이 어떨지 궁금해하며 1층부터 관람을 시작했다.

  한 계단식 내려가며
  한 계단식 올라가며

  어둠이 점점 밝아지며
  빛이 점점 어두워지며

  한 층씩 내려가며
  한 층씩 올라가며

  그 사람이 보였다.
  빛이 보였다.
  그 사람의 세상이 보였다.

  우리가 마주한 곳은

  어둠이 빛으로 변하기 전에
  빛이 어둠으로 변하기 전에

  중간지점이었다.

  내가 다가갔다.
  그가 다가온다.

  빛이 쏟아지며 그녀의 눈동자의 갈색은 더욱 찬란하게 나를 보고 있었다.
  어둠이 걷히며 소년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빛과 어둠 그 사이 속 서로를 계단 하나 간격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입 맞췄다. 서로에 세상에 깊게 빠진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랑했다.

  빛, 그리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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