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세상은 어둡다 원래 그랬다. 아니 우리는 이미 눈을 뜨지 않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누구를 바라보고 편견을 갖지 않는다. 외모를 보고 비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시각’은 낡은 열쇠처럼 더 이상 사용하지도, 찾지도 않는다. 눈을 떠서 본다는 것은 어쩌면 추억 속 그림 같다. 생각은 나지만 선명하지 않은 기억들, 어쩌면 우리는 못 보는 게 아닌 안 보는 게 아닐까.

                                                                            ***

 시끄러운 기상 소리 그리고 방안에 울려 퍼지는 인공지능 스피커 '소리'의 아침인사

  “형식님 8시 기상시간입니다”

 달콤한 토요일 아침 어제 소리의 알람을 끄는 거를 깜빡한 모양이다.

  “소리야 내일까지 알람 다 꺼”

 정신은 비몽사몽하지만 이미 잠은 달아났다. 뻐근한 몸을 안고 미세한 구를 밟아 화장실로 향한다. 거실로 나와 소파가 푹 꺼지게 엉덩이를 쑤셔 넣고 선선한 바람이 집안을 감싸 앉는 기분을 느낀다. 자연은 어떤 모습일지 항상 궁금해했다 오로지 자연은 바람의 온도와 냄새 그리고 수많은 소리로만 알고 있을 뿐

  '띠리링 띠리링'

 소파 밑에서 나를 받아달라는 듯 전화벨이 소란스럽게 울린다. 왜 저기 있지 생각이 들지만 곧장 허리를 숙여 전화를 받았다.

  “형, 언제 와요 오늘 우리 연구회 1차 테스트 단계예요”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이자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된 호준이었다.

  “아 오늘이야? 나 지금 옷 입고 바로 갈게”

 전화를 끊자마자 한숨과 함께 탄식이 터져 나온다.

  “몇 년 동안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지”

 9년 동안 ‘온도 스펙트럼’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는 나는 너무 지쳐버렸다. 누군가의 꼭두각시 인형인 양 문을 열고 바닥에 붙어있는 미세한 구를 밟고 15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전광판을 소리로 들으며 계단을 걸어간다. 그나마 따스한 위로를 주는 것은 차를 타는 동안 못다 한 단잠을 더 잘 수 있다는 거다.

  “소리야 연구실까지 부탁해”

 초초한 마음으로 호준은 새끼손가락을 얼음 물로 가득 찬 컵 속에 넣어두고 있다.

  “진짜 온도를 통해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이번 프로젝트에서 제일 중요한 목표는 차가움과 따듯함 그 사이에 무한한 온도의 영역을 찾고 실생활에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의 인류는 소리와 감각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새부터 감각이 극도로 진화하여 공기의 흐름, 표면의 느낌만으로 물체까지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신의 영역인 ‘온도’를 통해 초인류로 진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유는 거창하지만 현실은 버려진 폐가이다. 더 이상의 지원도 기부도 심지어 연구실 비용도 사비로 헐떡이며 내고 있다. 그럼에도 연구를 포기하지는 않고 있는 이유는 형식이 형은 실제로 빛을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한 국제 연구실 도착 5분 전입니다"

 헛웃음이 나오며 슬금슬금 기지개를 켜며 말한다.

"이름만 더럽게 거창하네"

 ‘대한 국제 연구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벽면을 만질 때마다 서서히 금이 가는 느낌은 곧 무너질 것 같은 기분이다. 형식은 문 앞에 서서 허리 위치에 놓인 지문검사 위에 손을 올려 검사를 시작한다. 이제는 아무도 들어오지는 않지만 연구원의 느낌은 보안이라고 생각해 지문검사는 여전히 신제품으로 설치해둔다.

 차가운 바람이 밀려들어오고 꼬질꼬질한 냄새가 나지만 형식은 콧물을 훌쩍 거리며 따듯한 바람이 부는 제일 끝방인 스펙트럼 연구실로 들어간다. 호준은 컵 속에 있는 손을 빼며 스트레칭을 피고 있었다.

  “형 왜 이렇게 늦게 와요”

 형식은 호준이 말하기도 전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오늘도 실패하면 나 이거 접는다”

  “형 그 말만 100번 했어요 빨리 시작이나 해요”

 연구실 중앙에는 원형 테이블이 놓여있다. 그 위에는 수많은 온도를 품고 있는 다양한 '구'들이 나열되여 있다. 구의 존재란 쉽게 말해서 동그란 돌이다. 이 구는 인간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어떤 장소라도 이 구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그곳의 온도를 흡수하고 짧게나마 구조물과 장소를 2차원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호준아 빛 한번 창조해 보자"

  연구를 시작하기 9년 전 내 동생은 행방불명되었다.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 없고, 연구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되어버린 날이 되었다. 나는 그날도 어김 없이 국제 연구실 인턴으로 야근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었다. 야근하는 저녁이면 책상 위 조그마한 서랍 속에서 날 좋은 공원의 온도를 머금고 있는 구를 느끼며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조금이나마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는 했다. 문제는 그날따라 동생이 하는 말이 머릿속에서 끊어지지 않는 실처럼 맴돌고 있었다.

 “구를 통해 빛을 볼 수 있다고? 누가 그런 미친 소리를 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도저히 이 고민은 내 머릿속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는다.

 “어이가 없네, 전화라도 해봐서 나도 보고 싶다고 말이나 해야겠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마지막 벨소리

“뭐야, 벌써 자?”

 별일 아닌 듯 꽉 쥔 구를 내려놓고 새로운 구를 만드는 기획안을 작성했다.

                                                                     ***

 수많은 구들이 부딪힌다. 온도와 온도가 서로를 감싸안는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는 통로가 없는 미로같이 두 개의 온도가 감싸다 못해 복잡하게, 알아볼 수 없게 엉킨다. 연구실 내부에서 입구까지 한 방향으로만 구의 본연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추억 속 한편의 미쳐 숨기지 못한 자연적인 냄새, 마침내 그 냄새를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 순간 구는 죽었다. 서로의 온도를 집어삼킨 채, 반복적으로 나오는 현상이지만 과정은 매 순간이 다르다 어이가 없듯이 형식은 말했다.

 “오늘은 따뜻하다 이거지?”

 구의 온도가 만져도 느껴지지 않는다. 

 “형 진짜 빛을 본 적이 있다고요? 요즘 구도 비싼데 이러다가 우리 진짜 길바닥에 앉아야 해요.”

 차가운 바람이 연구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봤다고 새끼야, 오늘은 돼야 해야 했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이 썩을 구가 문제야”

 연구실에 놓인 찬기운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온도가 비슷한 구에서 반대인 구 까지 심지어 온도가 동일한 구까지 수백 번을 비비고, 붙여두고, 서로 깨보고, 구에서 빛을 봤다  는 게 맞기는 해요 형?”

 목소리는 낮았지만 답답하고 화난 감정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모든 순간들이 멈춘 듯 호준과 형식 또한 하나의 돌이 된 것처럼 묵묵히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저 먼저 갈게요 형”

 “그래”

 들어올 때 가벼웠던 문이 나를 뭉개듯이 무거워졌다.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그 마음 하나도 연구실의 벽처럼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소리야 집으로 가자”

 고정된 몸을 인간의 힘으로 끌어당기면서 물렁뼈라도 된 듯이 힘겹게 14층을 누르고 벽에 기대어 있다. 14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은 길어야 1분 조금 넘는다. 그 시간이 오늘따라 더 길게 느껴진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삐걱거리는 소리 외에는 고요하고, 죽어있었다. 증오했던 구들이 오늘도 나를 집까지 안내해주고 있다.

  “행운인지 저주인지”

 미세한 바람들이 나를 반겨준다. 아침에 있었던 자연의 냄새, 빈 공간을 메워주던 새집 냄새. 모든 짐을 내려놓고 침대에 몸을 날린다. 오늘 하루만큼은 침대가 나를 삼켜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베개 옆 책상에는 희미하게 나를 반겨주는 냄새가 존재했다. 동생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간직하고 있는 구이다.

 “너 때문에 내가 9년이란 시간을 달려왔는데 너는 어디 있는 거야”

                                                                    ***

 동생의 냄새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싹함이 온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사람이 죽으면 냄새는 없어진다. 고유의 소리 또한 사라진다. 집안 베란다, 침대 밑 심지어 세탁기 안까지 바람이 안고 간 듯 갑자기 사라졌었다. 그 순간 내 책상 위에 미세한 동생의 냄새가 담긴 핸드폰이 있었다.

  “형 현실은 우리랑 멀리 있지 않아 다가가야지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그때서야 볼 수 있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보고 있는데 뭘 본다는 뜻인 건지. 하지만 마지막 한마디에 내 인생은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

  “구는 사실 우리 그 자체인 거야, 서랍 안에 있는 온도도 냄새도 없는 구를 밖을 향해 세게 부딪혀봐.”

 두 번째 서랍을 열어보니 동그란 구가 굴러오는 소리 외에는 어떤 냄새도 온도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 구를 잡아 거실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향해 한번, 두 번, 세 번 깨질 듯이, 가루가 되고 더 이상 부딪힐 면적이 없어지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다’의 의미를 생각할 때 한줄기 반짝임이 내 몸을 뚫는 기분을 받았다.

 무언가 벗겨지는 기분이 들었다. 빛이 내 몸안에서 춤을 추며 나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화려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늬와, 곡선과 직선 그 사이에 파생된 다양한 선들이 이루고 있는 형태적 모습은 나를 압도시켰다. 앞을 향해 걸어갈 때마다 온몸은 꿈틀거리며 나를 흥분시켰다. 햇살의 온도가 내 손을 뜨겁게 달구고 있고, 심장이 튀어나갈 듯 뛰고 있었고, 내 얼굴에는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황홀하다”

 어제 들어오자마자 바로 잠들었나 보다. 온몸이 벽에 눌린 듯 뻐근하고 결려있다. 곤욕을 당한 뒤라 그런지 정신도 흐릿했다.

 “형식님 오늘 오후 1시 연구 보고 날입니다”

 기다리지 않았지만 항상 이렇게 일찍 찾아오곤 한다.

 “그래 오늘은 또 어떤 욕을 먹을까 기대되네”

 반년마다 한 번씩 각 연구실에서 연구한 결과와 성과들을 가지고 한자리에 모여 보고하는 날이다. 당연하게도 스펙트럼 연구소의 성과는 매년 저조하다. 저번 보고회에는 구를 이용한 향수와 소리를 촉감으로 표현하는 사운드 모션이 큰 성과를 거뒀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만 관절 구석구석은 삐걱거린다 그래도 이번 연도에는 처음 경험해 본 냄새와 온도를 발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어떤 구를 가져가야 할까”

 매번 만지는 구였지만 만질 때마다 새로움이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의 온기를 받고 있다는 생각도 종종 하곤 했다. 보고회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매년마다 갔지만 갈 때마다 치욕스러운 느낌은 피할 수 없다.

 “자, 대한 통합부로 가볼까나”

 잠은 오지 않았다. 정확히는 밀려오는 잠을 내가 막고 있다. 수많은 바람의 냄새가 심장을 쪼이고, 수많은 생각들이 내 머리를 어지럽힐 때, 소리의 한마디가 정신의 동아줄을 잡게 했다.

 “정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쉽사리 문이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 나의 몸을 묶고 있는 듯 온몸이 긴장하고 젖었다. 뿌리치고 나오는 데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밀려 들어오는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대한통합부 건물의 벽은 매끈했고, 아무런 가공이 없이 자연적으로 생긴 모습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죽이네”

 건물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듯 나를 보고실로 이끌었다. 30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그런지 10개의 연구팀 중 4팀만 먼저 착석해 있었다. 에너지 효율 팀장인 강미래가 먼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형식 팀장님 어서 오세요 오늘도 역시 일찍 오셨네요”

 반년마다 만나지만 아직도 낯선 기운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 네 안녕하세요 미래 팀장님”

 미래 팀장 옆에는 작년 사운드 모션을 기획한 한효승 팀장이 앉아있었다. 떠오르는 샛별, 묶여있지 않은 영혼, 연구실에서도 영재라는 소리를 종종 들어서 그런지 동기, 선배에게 예의란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년도에는 볼 게 있기는 하려나”

 나지막하게 말했지만 내 귀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앞으로 달려가 뺨이라도 때리고 싶지만, 떠오르는 영혼을 때렸다가는 이번 보고회에서는 내가 해고될 수도 있다. 재수 없는 놈 냄새도 맡기 싫어서 제일 멀리 떨어진 자리에 막막한 숨을 뱉으며 엉덩이를 붙였다. 보고회 10분 전으로 다가왔고, 찬 공기와 따듯한 공기가 융합한 듯 한 명씩 들어오고 있었다. 미래연구실 팀장 강찬, 아동 구 연구 팀장 이지아, 환경 보안부 김인정, 보안 실무팀 박찬. 하나둘씩 자리를 앉고 나서야 떨리고 흥분되는 보고회 자리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미래연구실 팀장 강찬이라고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번 미래연구실에서 맡게 된 내용은 촉감의 새로움입니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이미 흥분을 가득 뛰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조건은 촉감은 물체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 사고를 조금 비틀어서 생각한 게 바로 촉감 비물체 공유입니다”

 박찬이 말도 안 된단 듯이 약간의 언성이 높아지며 이야기했다.

 “네? 비물체요? 촉감이라는 의미를 모르세요?”

 이미 예상한 질문인 듯 강찬은 헛기침을 하며 더 여유롭게 말했다.

“맞습니다 물체를 만져서 느끼는 것이 촉감입니다. 그렇다면 만져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뭘까요? 다들 아시다시피 인간의 감정은 서로를 만져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요점은 인간의 감정을 사람이라는 형체를 통해 느낀다면 이제는 우리는 더 이상 숨길 것도 없고 사회는 투명해질 것입니다”

 보고실 안에는 모든 것이 멈춘 듯 각자의 생각 속에 빠져있었다. 누구도 선뜻 말하지 않고, 누구도 그 의견의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적을 유지하는 것은 그리 길지 않았다. 보고실에는 한효승 팀장이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감탄을 하지만 그의 신음 소리는 불편함을 면치 못했다.

 “대단하네요, 감정을 촉감으로 느낀다라 충분히 매력적인 연구라고 생각이 드네요”

 다른 팀장들도 약간의 옹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속에서 이지아 팀장의 한마디가 연구 통합부를 오면서 나를 꾸길 듯이 누를 압박감을 한순간에 벗어던지게 하였다.

 “비물체 연구는 스펙트럼 연구에서 먼저 하고 있는 거 아닌가요? 온도로 대화하고 감정을 느낀다, 다른게 없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형식 팀장님?”

 당황했다 하지만 당당했다.

 “네, 제가 소개할 보고는 아직은 뚜렷하지는 않지만 경험하는 순간 9년이란 시간을 허투루 소비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처음으로 각 사람의 냄새가 나를 향해 강하게 찌르고 있었다. 무중력에 내 육체는 주체 없이 떠다니는 듯 내 몸이 아니었다. 내가 집중할 오직 한 가지는 구의 본연의 향기를 보고실을 터질 정도로 채우는 것이다. 작은 가방에 들어있는 서로 약간의 온도 차이가 있는 두 구를 손에 쥐고 서로를 맞대어 비비고, 긁고, 두드리고, 반복한다. 신문명의 첫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내 뇌 속에서 강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내 손을 팽창할 듯이 세게 잡으며 이야기했다.

“거기까지만 하세요. 형식 팀장”

냄새도, 온도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마치 투명 인간이 내 손을 잡은 기분이었지만, 나를 막아 세운 거는 총장님이었다. 벗어던졌던 압박감은 이제 나의 숨통까지 조이게 하고 있었다.

 “네?  총장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죠?  이제 시작입니다"

 “나가세요 당장, 당신은 연구팀 팀장 자리도 아깝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은 중력에 떠 있던 나를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밀어냈다. 쫓겨났다 아니 버려졌다. 9년을 쓰레기처럼 말한 총장의 대답의 분노는 결국 지금 총장의 방 앞까지 인도했다. 나의 9년을 쓰레기처럼 말한 것이 화가 났을까 아님 자괴감의 끝을 내가 본 것인가. 어떤 이유여도 상관없이 총장의 방에 들어갔다.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는 발자국 소리까지 듣고 있다. 다만 어떤 온도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방안은 오싹했다. 당황한 나머지 구를 만지기 위해 벽에 손을 댔지만, 매끄러웠다. 어떠한 굴곡의 변화도, 불규칙한 느낌도 없었다. 숨은 점점 가빠지고 있다. 9년 전 동생이 실종되는 그날이랑 똑같은 기분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이곳은 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점점 나의 자아를 잃어버린다고 생각할 때, 아까 보고회 때 사용한 두 구를 주머니에서 꺼내 미친 듯이 비비고, 깨 부시고, 도망치고 싶었다 동생을 잃어버린 그날의 기억은 다시 떠오르고 싶지 않았다. 구는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가고 방안에는 손과 손의 뼈마디만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차가웠다, 9년 전 얼굴에서 물이 흘렀을 때랑 똑같았다. 세상이 점점 밝아지고, 흐릿하지만 9년전 내 가슴을 꿰뚫던 빛이 다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뭐야 이게 뭐냐고 도대체!”

 걷잡을 수 없이 내 주변은 밝아지고, 뜨거운 무언가가 나를 집어삼킬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흐릿한 무언가가 정확해질 때까지, 누군가 앉아있는 형태를 볼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밝은 빛 사이에 총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은 볼 줄 알았어 세상을”

 믿을 수 없었다. 내 앞에는 9년전 없어졌던 동생이 있었다. 총장이라는 이름으로.

 “이거 뭐야, 너 내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야?”

 “신기하지 누군가 육안을 열어주기를 10년 넘게 기다렸는데 그게 형이라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내 머릿속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얘기해 봐!”

 동생의 형체가 뚜렷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9년 전 나는 이 빛을 경험했어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나갔어 모든 사람이 이 빛을 보게 해주고 싶었어”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뇌 속에서 거치지 않고 입으로 다양한 질문들이 튀어나와 도망치고 있었다.

 "너가 본다는 게 이거였어? 그럼 나는 뭐로 보고 있는 거야? 이 화려함은 또 뭐야 그리고 왜 너는 나를 보고 있어, 왜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어 도대체 이 상황은 뭐냐고!”

 동생은 웃으면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이미 자기도 이러한 일들을 겪은 것처럼.

 “어쩌면 우리의 운명이었을지도 몰라 우리 형제가 지금 느끼고 있는 거는 육안이라고 부르고, 육안으로 보는 화려함을 색감이라고 불러 초록색, 빨간색, 검은색 그리고 이 지구에서 육안으로 직접 보는 사람은 형이랑 나밖에 없어”

흥분은 조금씩 터져 나와 작은 화로 바뀌고 있었다.

 “말도 없이 사라지냐?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말해줘야 할거 아니야 그리고 총장 자리에 네가 왜 있어 9년 동안 너는 왜 나에게 한 번의 연락도 없었어! 널 위해서 지금까지 9년을 연구에만 목 매달았는데!"

 “알아 형이 무슨 기분이었는지 다 말해줄게”

 동생은 침울한 표정과 육안에서 흐르는 물이 조금씩 고여있었다.

 “9년 전 빛을 경험하고 대한 통합부에서 총장이 직접 나를 보고 싶다고 연락을 했어, 내가 바라보는 것들은 너무나 신기했어 구라는 존재 없이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빨리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 기대감으로 총장에게 갔지만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어 총장은 나에게 육안, 색감, 시선 다양한 개념들을 나에게 알려주고 사라졌어 바람과 같이 하지만 나는 총장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볼 수 없었어, 직접 나가서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했어 제발 보라고 당신의 육안을 열라고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했어 반대로 나는 그전에 느꼈던 냄새와 소리, 촉감도 느끼지 못했어 서로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불편했지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직접 대한 통합부의 총장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학자에게도 설명했지만 똑같은 반응이었어 미쳤다, 정신병자라고 포기하면 안 되는 거지만 나는 아름다운을 머금고 있는 세상보다 이전 구를 지닌 세상이 더 행복하게 느껴졌어 그때 처음으로 구에 대해서 연구를 시작했어 정말 소름 끼치는 거는 구라는 것 자체는 인간의 육체 중 일부분이었어 형도 9년 전 잠깐 봤듯이 그 빛을 보기 위해서는 구가 필요 없어, 구는 육안이라는 이야기야 누군가 실체를 볼 수 없게 육안을 구라는 돌멩이 안에다가 꽁꽁 숨겨놨던 거야, 나는 당신 희망을 가졌어 증거가 있었거든 근데 10년이 넘게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나를 정상인 취급하지 않았어, 나는 점점 죽을 만큼 후회했어 내가 왜 봤을까, 내가 왜 육안을 떴을까 그래서 찾아다녔어 누군가 육안을 떠주기를, 누군가 내 뒤를 이어주기를, 진짜 신의 장난인가봐 그게 형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동생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얼굴에서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말하고 싶었던 현실을 나랑 같이 말하면 되잖아”

 동생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말을 이어갔다.

 “형 사실 나는 더 이상 이 힘든 싸움을 이어나가고 싶지 않아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 누구나 즐기는 생활을 나는 느끼지 못했어 다시 눈을 감고 싶었지만 혼자서는 가능하지 않았어 알고 보니 정말 신이 나를 싫어했나 보지? 내가 육안을 느낀 거는 내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이유였어, 맞아 사람들은 의지가 없이 억제당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지만 그게 지금은 너무 아름다워 보여, 자유는 아름답지만 나를 끝까지 옭아매는 밧줄일 뿐이야, 솔직히 이제는 자유가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결국은 누군가 내 자유의지를 아니 누군가 자유의지를 열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의지를 죽일 수 있게 되더라고”

 동생의 두 손에는 두 개의 구가 보였다. 두 개의 구를 자신의 육안에 올려놓고 천장을 보기 위해 고개를 서서히 올렸다. 그 순간 동생의 얼굴에서 물이 한 방울씩 흐르고 있었고, 흐느끼고, 좋아했다. 정확히는 자유로워 보였다. 빈 방은 조용했다. 햇살은 내 눈을 관통하고 있었고, 수많은 색감들은 나를 흥분시켰다. 동생의 냄새는 서서히 지워져갔다. 9년 전 그때처럼.

 

 세상은 밝아졌다 그리고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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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5 단편 랜덤, 박스 우주안에책 2022.01.16 0
2684 단편 붕어빵 마음 우주안에책 2022.01.16 0
2683 단편 버틀러의 추억 - 하이 데이브 Regzmk2 2022.01.08 0
2682 단편 꿈통신1 희야아범 2022.01.06 2
2681 단편 x가 보낸 편지 단팥방맛이없어 2022.01.04 0
2680 단편 그것의 용도 희야아범 2021.12.28 0
2679 단편 작은뿔 의심주의자 2021.12.22 0
2678 중편 얼음뿔 의심주의자 2021.12.22 0
2677 단편 떠오르는 얼굴 김오롯 2021.12.2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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