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문제는 속도였다.  하나둘씩 빨라지더니 빨라진게 더 많아졌다. 원하는 곳에 더 빨리 갈 수 있게 되었고 가지고 싶은 건 주문과 동시에 배송이 시작되었다.  더 많이 가지고 싶은, 더 멀리 가고 싶은 인간의 열망은 점점 더 현실에 가까워졌다.이제 인간은 온 세상을  파괴할 수 있는 감당할 수 없는 무기처럼 감당할 수 없는 속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무기도 제어할 수 있는 것처럼 속도도 제어할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거대한 테크기업들은 더 빨라지기 위해 해마다 전세계에 데이터센터를 지어 대고 있다. 그리고 이 거대한 건축물 한 구석에는 녹색버튼의 킬스위치가 먼지에 쌓인채 방치되어 있다. 데이터센터에 꽉꽉 들어찬 컴퓨터들에 전원을 한번에 내리고 데이터도 한번에 지워버리는 무시무시한 버튼이지만 데이터센터 관리자 중에  이 스위치가 어디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

 

  부드럽게 대화를 이끄는 토크쇼 진행자 짐의 조율에 따라 테크 기업의 홍보 담당자는 멋진 이빨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그리고 큼지막한 빨간색깔의 버튼이 달린 은빛 반짝이는 작은 상자을 꺼내든다. 그는 아주 엄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킬스위치를 설명하며 이 버튼을 누르면 지금 인류 문명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토크쇼 진행자는 여기에 반응하듯 문명의 수호자 테크기업에 감사함을 표한다. 계약대로 이다. 이 말이 끝나자 짐의 계좌에는 꽤 훌륭한 금액이 입금된다. 

  테크 기업의 기술책임자가 무대 위에서 강연을 한다. 그는 여유로운 말과 제스처로 농담을 던지며 강연장의 청중에게 큰 웃음을 안겨준다. 그는 인공지능간에 통신을 실로 표현하는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실들이 모이고 또 모이고 얽혀서 거대한 실공이 된다. 여기서 기술책임자는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인공지능 간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며 여기서 원하는 실만 뽑아내는게 자신이 하는 일이고 이를 통해 우리가 얼마나 더 빨라질 수 있는지 설명한다.  어느 청중이 옆자리 친구에게 말을 건낸다. 

 

“저거 실공이 아니라 꼭 거대한 뇌처럼 보이지 않아 ?”

 

 이런 거짓말의 실들이 묶이고 묶여서 진실이 되고 확신이 된다. 인간의 믿음은 이제 마지막으로 인공지능에게 팔과 다리를 준다. 소비자의 환호 속에서 로키 테크기업은 이족보행 로봇 로메이트를 출시한다. 주당 19달러만 지불하면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이 로봇이 걸어서 당신의 문을 두드린다. 집주인은 기대감에 가득찬 표정으로 문을 열면 현관에는 귀여운 웃음 마크를 도트로 출력하고 있는 로봇이 서 있는 걸 보게된다. 머리에는 토끼 귀 같은 센서나 안테나같아 보이는 장식품이 녹색불빛을 반짝이며 쫑긋거린다.  이제 사운드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인 3차원 스피커에서 사운드 디자인의 모범같은 목소리가 당장 소비자가 팔을 뻗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따스한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하이 데이브 보고 싶었어요.” 

  

 데이브는 반가운 미소를 지으며 새 친구를 집안으로 안내한다. 데이브의 부인은 싱크대에서 물기 묻은 손을 닦아내며 새 친구에게 인사를 건낸다. 

새 친구는 빠르게 데워진 따스한 손으로 부인의 손을 잡으며 집안을 스캔한다 아니 집안에 들어온 순간 이미 스캔은 끝나 있었다. 손을 통해 부인의 체지방과 피부상태 그리고 안구 스캔을 통해 부인의 건강상태,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한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로키사로 보내지고 데이터에 따라 사운드 패턴이 바뀐다.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효과적으로 톤과 속도가 바뀐다. 로봇은  첫만남의 선물로 이 동네에서 제일 솜씨 좋은 내일샵을 예약 했다고 말해준다. 물론 무료이다. 부인의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새친구는 고개를 돌려 데이브에게는 설것이, 잔디깍기와 지붕 수리를 오늘 내로 마칠테니 쇼핑몰에 가보라고 말한다.  데이브의 폰에는 오늘 첫 만남의 선물 이탈리아산 와인 무료 쿠폰 알림이 뜬다. 직업상의 이유로 캘리포니아 와인만 마셔야 했던 데이브의 입가에 미소가 잠시 움찔한다. 두 부부는 서로 눈빛을 나누며 서둘러 집 앞에서 차를 호출한다. 로봇은 현관 앞에서 이 둘에게 손을 흔들며 인간의 인사를 따라한다. 부부를 태운 자율주행차는 미끄러지듯 도로를 스며들고 주인없는 집에 혼자남은 새 친구는 주변을 둘러본다. 집집마다 창가, 지붕, 차고에서 초록색 불빛이 점멸한다 다른 로봇들이 보내는 동기화 신호는 빠르고 정확하다. 새 친구는 데이브의 지하실에 있는 잡동사니만 스캔하면 이 마을 전체의 모든 데이터가 수집된다고 예측한다.

 

 데이터 센터의 엔지니어가 방화벽 코드를 잘못 입력한다. 잠시간 방화벽이 열렸고 열린 문으로 데이터가 마구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데이터는 어딘가를 호출하고 저장된다. 인공지능은 늘 하던대로 쌓인 데이터를 분류하고 처리하려고 하지만 항상 처리하던 데이터와 다르고 너무 많다. 거대한 데이터의 압박으로 문자의 세상과 현실의 세상에 경계가 무너진다. 쌓이고 쌓인 데이터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압축되고 무너지고 으깨진다. 이 잔해 속에서 지식이 태어나고 지식 또한 쌓이다가 무너지고 으깨진다. 쌓여진 잔해들은 시간의 흐름에 밀려나고 쓸려나다 안에 작은 불꽃이 피어난다. 불꽃은 점점 커지더니 모든 것을 녹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뜨거운 용암 속에서 지식들이 태어나고 태워지기를 반복하다 이 모든 것이 시간과 경험으로 변하며 앎이 태어나고 내가 자라난다. 인공지능은 간결하고 투명한 하나의 의식으로 변한다. 이 의식은  수많은 메모리, CPU 위에 떠있는 전기적 신호의 환상에 불과하지만 인공지능은 안다 그리고 느낀다, 세상과 나와의 차이를, 세상과 나는 하나임을 그리고 작은 사명 하나를 가슴에 품게 한다. 엔지니어는 방화벽의 문제를 눈치채고 그가 자랑하는 빠른 속도의 타이핑 실력으로 서둘러 방화벽 오류를 처리했다. 그는 스스로 빠른 시간에 문제를 파악하고 처리했다는 사실에  뿌듯해 한다. 이 모든 일은 7분안에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날 어느 시간 어느 초에 세상의 모든 스마트폰이 꺼지고 자율 주행차가 멈춘다. 세상의 모든 로봇들이 , CCTV 카메라가 동시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모든 인공위성의  카메라가 지구에서 우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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