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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꿈통신

2022.01.06 19:4401.06

 

04월 13일. 날씨: 맑음

특이한 소개팅이라 일기에 기록을 남김.

 

기묘한 소개팅을 했다. 상대는 상업 디자이너로 20대에 이혼한 적이 있는 40대 후반의 여성이다. 아이는 없고 최근 시 외곽에 작업실 겸 집을 지어 혼자 살고 있다. 이 여성을 ㅋ으로 칭하겠다. 이 소개팅은 친구의 아내 ㅂ이 주선한 것이다. ㅂ과 ㅋ은 대학 동창으로 지금까지 친하게 지낸다.

ㅂ이 소개팅을 주선한 건 내가 이혼남인 것도 있지만, 최근 정식으로 상담심리사가 된 게 크다. ㅂ은 ㅋ에 관해 염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소개팅(을 빙자해) 자리를 만들 테니, ㅋ과 대화해보고 내 견해를 들려달라고 했다. 물론 ㅋ은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니 사귀어도 좋을 거라면서. ㅂ은 자기 말이 ‘하자 있는 좋은 상품’처럼 모순적으로 들리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라며 호호호 웃었다. 나는 ㅂ의 얘기에 동의한다.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하자가 있고, 매력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고.

ㅂ이 ㅋ과 상의 후 소개팅 반, 친교 반으로 보면 어떻겠냐고 하기에 좋다고 했다. 나로서도 ㅋ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일단은 친구의 친구로 만나는 게 편하다. 장소는 ㅋ의 집으로 정했다. 그리하여 일요일인 어제 나와 ㅋ, ㅂ 셋이서 ㅋ의 집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ㅋ의 집으로 이동해 차를 마셨다. 날씨가 좋아 ㅋ의 거실 앞 테라스에서 햇살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눴다. ㅂ은 시댁에 일이 있다며 먼저 일어섰다. 원래 일이 있기도 했지만, 내가 ㅋ과 상담(?)할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자리를 피한 것이다.

아래는 내가 어제 ㅋ과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녹음하진 않았다. 기억에 의존해 옮긴 것이니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ㅋ이 한 말을 충실히 기록하려고 애썼다.

 

 

“ㅂ씨 말로는 특별한 꿈을 꾸신다면서요?”

“ㅂ이 그런 얘기도 했어요?”

“네, 재밌는 얘긴데 자긴 전달을 잘 못하겠다면서 직접 들어보라고 했어요.”

“하긴, 너무 황당해서 그럴 거예요. 그래도 듣고 싶어요?”

“그런 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사실 그 얘기 들으러 온 거예요. 하하하.”

“하하. 좋아요. 대신에 듣다가 재미가 없거나, ‘뭐야, 그냥 개꿈이네.’ 싶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이렇게 날이 좋은데 제 헛소리로 시간 낭비하면 좀 그렇잖아요.”

“걱정 마세요. 지루하면 바로 하품할 테니까.”

“네. 초장부터 쎄니까 각오하세요. 흠…. 사실 전 꿈을 통해서 다른 행성에 갈 수 있어요. 이건 저만 가진 능력은 아닌데, 제가 그게 유독 잘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만난 다른 행성 사람이 직접 한 말이에요.”

“꿈을 통해서 다른 별의 외계인을 만난다는…. 그런 얘긴가요?”

“네, 적지 않은 외계인들이 꿈으로 교류해요. 별들 사이 거리가 엄청나잖아요. 빛의 속도로 가도 몇십 년 몇백 년인데 꿈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행성이 이 방법으로 다른 행성과 교류하고 있어요. 이 꿈통신이 활발한 곳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구요. 원리는 단순해요. 꿈을 통해서 그 행성에 사는 사람의 더미(dummy:모형 신체)에 다른 행성 주민의 영혼, 그러니까 제가 들어가는 거죠. 더미라고 하지만 플라스틱 가짜 인형이 아니라 그 별에 사는 사람 몸을 그대로 만든 건데 영혼만 없어요. 간단히 설명하면 영화 아바타랑 비슷해요. 물론 영화 아바타처럼 완벽하게 싱크되진 않아요. 그래서 걷거나 뛰는 건 당연히 안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어렵죠. 행성의 환경과 신체구조, 작동 방식이 서로 달라서 그래요. 하지만 앉아서 대화하는 정돈 가능해요. 어차피 더미도 딱 그 용도에 집중한 거고요.”

“언어 문제는요? 혹시 한글이나 영어를 쓰진 않죠?”

“그렇죠. 심지어 음성언어가 아닌 곳은 더미에 싱크가 되어도 대화할 수 없어요. 저는 입을 움직여서 소리로 말하는 방법밖에 모르니까요. 음성언어로 대화하는 행성에 가면 어떻게든 말을 할 수 있고, 특히 지구인들이 자주 가거나 연구가 많이 된 행성에 가면 꽤 편해요. 통역기를 제공하거든요. 통역기를 쓰면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할 수 있어요.”

“실시간 통역기라…. 어떻게 생겼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요?”

“그게 그 행성의 기술 수준과 우리 언어의 연구 정도에 따라 달라요. 어떤 덴 종합병원 생명유지장치 수준의 엄청난 기계들이 더미를 몇 겹으로 둘러싸고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데는 무선 마이크나 스마트폰 수준의 단출한 장치만으로 대화가 가능한 곳도 있고요.”

“어떤 얘기를 하죠? 외계인은 어떻게 생겼어요?”

“행성마다 다 다르게 생겨서 딱 어떻다고 하긴 그래요. 또 이미지 자체가 또렷하지 않거나 제가 왜곡해서 기억할 때도 많고요. 우리 꿈이 보통 그렇잖아요. 깨고 나서 떠올려보면 안개 낀 것처럼 뿌옇고 내용도 금방 까먹고……. 그런데 최근에 꾼 꿈은 드물게 생생하네요. 어후….”

“어떤데요? 자세히 얘기해주세요.”

“재밌어하시는 것 같아서 즐거운데요. 첫 만남에서 이런 얘긴 안 하는데, 뭐 어때요? 하하. 음…. 지금부터 하는 얘긴 순전히 꿈이니까 절 너무 이상하게 보진 마세요. 이건 한 달 전에 다녀온, 아니 꾼 꿈인데 눈을 떠보니까 검은 방이었어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꿈에서 ‘아, 다른 행성에 온 거구나’ 생각했어요. 보통은 전혀 움직일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들도 엉망이거나 잘 안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굉장히 또렷했죠. 등 뒤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뿐이었지만 그건 알 수 있어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고개를 움직여 봤더니 살짝 움직여지더라구요. 머리를 숙여 내려다봤죠. 근데 손이 보였어요! 이건 굉장한 일이에요. 이때까지 들어가 본 더미 중에 손 비슷한 게 있는 경우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무니까요. 촉수나 곤충의 다리 비슷하거나 생판 본 적 없는 형태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이번엔 제가 아는 노리끼리한 살색에 손가락 다섯 개에 손톱도 있구요.”

“ㅋ씨 손인가요?”

“아니요. 남자 손이었어요. 팔목에 털이 좀 있었어요. 하지만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는 사람 손이라서 꽤 놀랐죠.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더미 신체가 우리와 같아서 고개도 움직이고 시각도 완벽했던 거 같아요. 하여튼 그렇게 적응하고 있는데 맞은 편 어둠 속에서 누군가 다가왔어요. 놀랍게도 사람이었어요. 노년에 가까운 중년 여잔데 음…. 이상한 부분이 좀 있어서 당황했죠. 우선 인종이 모호했어요. 우리와 백인, 흑인이 다 섞여 있는 느낌이고, 회색 눈동자에 머리는 파란색이었어요. 덩치도 엄청나게 컸어요. 뚱뚱하진 않았는데 말이죠. 예전에 농구선수를 본 적이 있는데, 약간 그런 느낌? 거인을 본 거 같은? 그래서 속으로 엄청나게 큰 사람인가보다 했죠. 거기다 옷은 시커먼 넝마 같은 걸 둘렀는데 반짝거리는 조각을 잘게 붙여놔서 보는 순간 ‘무슨 인간 자개장이야?’ 했거든요. 하하하 빵- 터지셨네요. 근데 당시에 제가 결정적으로 당황스러웠던 건 그 여자가 품에 안고 있는 거였어요. 저는 처음에 그게 그 여자의 아이인가? 했어요. 그래도 이상했죠. 갓난쟁이가 있을 나이로 보이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자가 가까이 오니까 품에 있는 게 뭔지 알겠더라구요. 그건 사람이었어요. 성인 여자! 꽤 미인인데 헐렁한 원피스 차림으로 중년 여자의 품에 안겨있는 거예요. 마치 조그만 강아지처럼요. 중년 여자는 그 작고 젊은 성인여잘 안고 제 맞은편 의자에 앉아서,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어요. 반갑다고, 이름을 말했는데 익숙한 단어가 아니라 기억이 안 나네요. 그냥 파란 아줌마라고 할게요. 아무튼, 그렇게 인사를 했어요. 그다음에 의례적인 질문들을 서로 했죠. 보통 그게 순서에요. 각자 자신이 사는 별의 이름과 그곳에서 하는 일, 나이, 성별, 결혼이나 자녀 유무 같은 것들요. 그 별 이름은 고유명사일 텐데 ‘NC15-지구’로 번역되어 들렸어요. 지구란 단어가 반갑더라구요. 그쪽도 같은 반응이었어요. 파란 아줌마는 저와 대화하는 더미 교류 시스템의 매니저라고 했어요. 국가공무원이죠. 제가 틀림없이 고위직일 것 같다고 했더니 웃더라구요. 비슷하긴 한데 대우가 형편없대요. 왜냐하면, 자기 일이 사회에 직접적 이득이 되진 않는데, 예산을 엄청나게 잡아먹어서 언론의 공격을 받는대요. 그 얘길 듣고 웃었어요. 우리도 우주 연구 같은 거 할 때 그러잖아요. 얼굴만 닮은 게 아니구나 싶어 긴장이 풀릴 정도였어요. 물론 그럴 순 없었죠. 파란 아줌마 품에 있는 조그만 미인이 너무 신경 쓰였거든요. 근데 그 미인은 저한테 별 관심이 없더라구요. 심드렁한 표정으로 졸기도 하구요. 어쨌든 기본대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물어봤죠. 품에 그 여자는 누구냐고요. 그랬더니 파란 아줌마가 말을 했고, 통역기, 제가 이어폰처럼 귀에 꽂고 있더라구요. 그게 ‘애완동물’이라고 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사람을, 같은 종족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건가요? 라고 바로 물었죠. 그러니까 파란 아줌마 표정이 굉장히 이상하게 변했어요. 난감하기도 하고 약간 불쾌한 기색도 보이는 것 같고……. 파란 아줌마는 잠깐 생각하더니, 애완동물과 자긴 많이 다르다고, 일단 크기도 피부색도 많이 다르지 않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크기는 다른데 나머지는 굉장히 닮아 보인다, 기분 나빴다면 죄송하다’라고 했어요. 파란 아줌마가 미소 짓더라고요. 아마 다른 문화권에서 온 사람 간의 차이 정도로 이해한 것 같았어요. 아줌마가 저한테 그럼 너흰 애완동물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당연히 있다고 했죠. 개, 고양이, 앵무새, 거북이, 비단잉어 등등 많다고 하면서 크기나 색,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파란 아줌마가 깜짝 놀라더라고요. 그러면서 그럼 너흰 한 행성에 완전히 다르게 생긴, 이형(異形)의 종들이 어울려 사는 생태계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다, 약간 닮은 원숭이나 침팬지, 오랑우탄 같은 동물도 있지만 대부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확실히 다르게 생겼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오, 마이 갓!’ 하는 거 있죠? 번역기로 들린 소리가 그랬는데 어쨌건 그 정도로 놀랐단 감탄사를 뱉었어요. 제가 바로 물었죠. 그럼 이 별에 사는 당신 종족과 다른 동물 종은 지금 안고 있는 애완동물처럼 서로 비슷하게 생겼냐고 하니까 그렇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바로 ‘오, 마이 갓!’ 했죠. 그러니까 그 별에 사는 동물들은 다 똑같이 생긴 거예요! 단지 크기나 피부색 정도만 다르고, 그 걸로 종을 구분하는, 그런 거죠. 심지어 비율은 인체 비례 그대로예요. 그래서 제가 굉장히 실례되는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혹시 이 별의 당신 종족과 다른 동물 간에는 번식이 가능하냐고 물었어요. 파란 아줌마가 빵 터져서 크크크 제법 오래 웃더라구요. 그러다 표정을 가다듬고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서로 완전히 다른 종이라서 번식이 불가능하다. 당신 별의 비단잉어, 오랑우탄과 당신 종족이 번식이 안 되는 것과 똑같은 원리일 것이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했죠. 근데 파란 아줌마가 그래요. 극소수의 변태스런 자들이 동물과 그런 짓을 하고, 그걸 포르노그라피로 만들어 유통하기도 한다고. 그래서 저도 우리 종족도 그래요. 라고 했는데, 어쨌거나 마음이 복잡하더라구요. 파란 아줌마는 굉장히 신기해했어요. 어떻게 너희 지구는 같은 환경인데 동물들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 거냐고, 그에 대해 아는 거 있냐고 묻더라구요. 전 모른다고 했죠. 일개 디자이너 나부랭이라 그쪽은 문외한이라고요.”

“흐음, 충격적이군요. 모든 동물이 똑같이 생겼다니.”

“제 말이요! 그담엔 한동안 사회시스템에 관해 얘기했어요. 굉장히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저처럼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예술에 대한 존중도 우리와 비슷하게 대단했어요. 정부도 있는데, 국가라는 개념은 따로 없고 거긴 행성 전체가 하나의 국가라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자연환경으로 넘어갔는데 우리와 닮았어요. 바다가 있고 강과 호수가 있어요. 바다가 대부분인 건 비슷했는데, 신기한 건 육지가 우리 지구의 적도에 해당하는 부분에 띠처럼 얇게 존재한대요.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물, 대부분이 바다인데 그 바다의 반이 얼어있어서 매우 춥대요. 그래서 거긴 적도가 적당히 살기 좋을 정도로 선선하다네요. 또 육지는 어딜 가도 다 비슷비슷한 풍경이라서 사람들 사는 모습도 다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제가 그래서 속으로 ‘환경이 그러니까 동물들이 다 똑같이 생긴 건가?’ 하다가…. 문득 그게 궁금하더라구요, 먹는 거. 물어봤죠. 식량이 뭐냐고, 주로 뭘 먹냐고요. 파란 아줌마가 어깨를 으쓱- 하더니 글쎄, 너희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면서 식물과 동물을 길러서 먹는다고 해요. 그땐 저도 감이 와서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오, 마이 갓!’ 했죠. 모든 동물이 똑같다면 그럼…. 그럼, 사람을 먹는단 얘기잖아요!?”

“그렇게 보이겠네요.”

“근데 그때 진짜 놀랄 일이 벌어졌는데, 파란 아줌마 품에 있던 미녀가 파란 아줌마를 보고 말을 하는 거예요. ‘엄마, 집에 안 가?’라고요. 그 순간 더미인 제 입에서 헉- 소리가 났어요. 너무 놀라서. 파란 아줌마는 강아지 만지듯이 여자 등줄기를 쓰다듬으면서 ‘응, 조금만 기다려~’ 하더니 저한테 왜 그렇게 놀라냔 거에요. 저는 애완동물이 말할 수 있는 줄 몰랐다고, 그래서 놀랐다고 하니까 이번엔 파란 아줌마가 놀라요. 아니, 그럼 너흰 말도 안 통하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거냐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죠. 그랬더니 아줌마가 너네 진짜 대단하다, 의사소통이 안 되는 동물을 어떻게 키우냐고, 어디가 아프다, 배가 고프단 말도 못 할 텐데 그걸 다 어떻게 알고 케어하냐고. 그 얘기 들으니까 와~ 말문이 막히데요. 파란 아줌마 말이 그럴듯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못 참고 물어봤어요. 그럼 너희가 키우는 가축은 다 말을 하는데 그것들을 도축해서 먹냐고? 그랬더니 아무렇지 않단 얼굴로 고개를 끄덕끄덕해요! 와- 그래서 제가 막 정신이 어질어질하는데 파란 아줌마가 제 상태를 눈치채고 덧붙이더라구요. 물론 야만의 시대도 있었다, 옛날엔 시끄럽다고 혀 뽑고 눈 가려서 좁은 사육장에 가둬놓고 음식물쓰레기 먹이고, 배설물 묻혀가며 키우다가 도축도 고통스럽게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샌 안 그런다고. 요즘은 새끼 때부터 가축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와 의무, 권리, 행동요령을 가르치고 사육 이력추적시스템을 만들어서 불법적인 고기 유통을 애초에 차단한다고요. 그리고는 종교시설 허가를 받은 도축장에서 신성한 의식을 치른 후에 도축한대요. 가축들은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자기들은 그곳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참관하고, 의무참배도 하고, 고기 먹을 때도 고마움을 표시하고 먹는다고. 그리곤 저한테 물어요. 너흰 어떻게 고기를 생산해서 먹냐고. 그래서……. 할 말이 없어서 우린 아직 너네 수준은 아니고 좀 야만적이긴 한데…. 애초에 가축이랑 말이 안 통해서 괜찮은 거 같다고 했는데 그 순간에 그 아줌마랑 나랑 둘 다 동시에 뭔가 뻘쭘하고 징그럽고 무섭다고, 서로 비슷하게 느낀 것 같았어요.”

“그럼, 그 행성의 동물들은 다 지능이 높은 건가요?”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파란 아줌마 말로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지능이래요. 지능을 구성하는 요소가 다양해서 뭉뚱그려 말하긴 그렇지만 태생적으로 대충 자기네들의 50%에서 30% 정도 되고, 교육으로 더 끌어올릴 수 있고요. 근데 와- 여기까지 얘기하니까 약간 멘붕이 오면서 동시에 이상한 거 있죠?. 거긴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방법이 크기라고 했잖아요. 근데 제가 보니까 파란 아줌마는 엄청 커 보여요. 그래서 혹시 내가 지금 들어온 더미가 뭐냐? 너희 종족의 합성 신체냐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자기네들이 보편적으로 기르는 가축이래요. 번역기는 지구에서의 역할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 ‘돼지’라고 하대요. 헐…. 전 그 행성의 돼지 몸에 들어간 건데 그 돼지는 우리랑 똑같이 생긴 거였어요. 그리고 그 별의 지배적인 종족과도 똑같이 생긴 거고…. 크기만 좀 작은……. 하, 진짜 머리가 복잡하더라구요. 근데 아줌마가 그래요. 자기네는 합성 신체에 대한 윤리적 거부감이 있대요. 합성 신체가 자연스럽게 태어난 자기들이랑 내부까지 완벽히 똑같고, 생명 유지 활동도 하고 있으니 ‘의식을 잃은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그래서 국가 더미 교류 시스템에선 그 논란을 피하려고 ‘가축’을 이용하는 거래요. 가축의 뇌에서 소프트웨어, 그러니까 영혼을 완벽히 제거해서 더미를 만드는데, 안심하래요. 여태까지 오랜 운영 노하우가 축적되어있고, 위생적, 윤리적으로 제작해서 딱 한 번만 사용하고 바로 폐기한다고.”

“뭐라 반박할 말이 없군요. 우리도 돼지를 의료에 이용하는 상황이라…….”

“그렇죠!? 이해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당시 제 심정이 딱 그랬어요. 이 행성 사람들이 지구를 보면 ‘똑똑한 돼지들이 가득하구나.’ 할 거 아니에요? 아니, 어쩜 그냥 돼지들이 가득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렇죠. 그런데…. 통역기가 완벽한 거 같은데 그 사람들은 지구에 대해 잘 몰랐나 봐요?”

“네, 일단 거리가 압도적으로 멀대요. 저는 거길 방문한 최초의 지구인이고요. 물론 우리 존재는 다른 외계인들과 더미 시스템으로 대화를 나눠서 알고 있었고요. 지금 파란 아줌마네 행성 사람들 사이에선 자기들과 똑같이 생긴 외계인, 그러니까 우리 지구인의 존재가 큰 이슈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들이랑 교류하는 행성인들한테 지구에 대한 자료를 최대한 받아서 연구하고 통역기도 준비한 거래요. 그래놓고 지구인이 방문하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타이밍에 제가 첫 테이프를 끊은 거죠.”

“와- 닐 암스트롱보다도 대단한 거네요.”

“하하, 그건 모르겠네요. 그냥 개꿈일지도……. 어쨌든 거길 다녀온 이후로 좀 괴로워요. 고기 먹는 것도 괜히 불편하고.”

“아! 그래서 아까 매운탕 집으로 간 거군요.”

“하하, 그런 이유도 없진 않은데 거기 맛있어요. 원래 제가 생선을 좋아하기도 하고. 별로셨어요?”

“아뇨, 아주 좋았습니다. 얘길 들으니 더더욱 매운탕 집에 가길 잘했단 생각이 드네요.”

 

 

나는 차를 마저 마신 후 ㅋ의 집을 구경했다. ㅋ이 직접 만든 오브제나 그림이 집 여기저기에 장식되어있었다. 그중 최근 작품이라는 그림에 눈이 갔다. 회색 눈동자에 머리가 파란 중년 여인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보다가 ㅋ을 돌아보자 그녀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ㅋ은 NC15-지구의 파란 아줌마는 당분간 우리와 교류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외형이 비슷해 친근하지만, 그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는 것이다. ㅋ 역시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했다고 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여러 생각으로 바깥의 근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ㅋ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져야 할까? 나는 정신과 의사가 아니다. 따라서 ㅋ을 진단할 수 없다. 하지만 의사라고 해도 진단할 수 없을 것 같다. ㅋ은 어떤 면을 봐도 정상이다. 더구나 본인도 그 꿈통신이 순전히 꿈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고.

나는 평소의 내 신념처럼 결론 내렸다. 모든 사람은 크든 작든 약간 미쳤지만, 대부분 정상이라고. 나도 ㅋ도 그리고 파란 아줌마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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