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가장 효과적인 방법

2021.09.12 22:2809.12

오늘따라 하늘이 어두웠다. 이제 막 7시를 지나고 있으니 평소 같으면 겨우 산을 넘어간 해의 잔 빛이 남아 하늘을 밝게 비추고 있을 테지만 이상하게 무슨 구름이 이렇게 잔뜩 끼었는지 하늘은 텁텁하게 가라앉아 있기만 했다. 샛노란 달이 형형하게 빛을 내며 존재를 알리고 있었지만 두꺼운 구름에 가려 어지러운 달무리만 만들어낼 뿐 통 맨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비가 온다고 했었나...”

 

 

서울 구석 어딘가. 빽빽한 원룸 촌 한 골목은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자동차의 소리와는 대비되게 조용하고 한산했다. 원룸 창문들마다 불이 켜져 있지만 그 안에 사람이 사는 것 같은 기척이 없는 건 괜히 소름끼쳤다. 직장인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저녁시간이면 퇴근 이후라 생활감이 느껴질 텐데 다들 쥐죽은 듯 방구석에 웅크리고 무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새끼들은 일곱 시까지 온다더니 왜 이렇게 느려 터졌어.”

 

 

현수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진 뒤 신경질 적으로 비벼 껐다. 귀한 금요일 저녁 회사에서 잘 되어가던 여직원과 밥이나 한 끼 하려고 했는데 꼭 거지같은 타이밍에 도움도 안 되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야, 현수야. 잘 지내냐!’

 

‘우리 오늘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좀 와라! 오랜만에 얼굴 좀 보자.’

 

 

둘이 같이 있었던 건지 통화 음질이 살짝 떨어지는 너머에서 목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아, 뭔 소리 하는 거야. 안 돼. 나 오늘 저녁 약속 잡았어.’

 

‘아이, 친구들이 오랜만에 좀 보자는데. 나중에 먹어, 나중에!’

 

‘그래 새끼야. 가만 보면 이 새끼 존나 비싸게 굴어.’

 

‘너, 어? 잘 나간다고 그러는 거 아니다?’

 

‘아, 진짜... 알았어, 알았어. 나간다고! 어디로 가면 되는데?’

 

 

저녁 약속으로 딱 적당했던 타이밍을 걷어 차버리고 시커먼 남자들이나 만나는 게 썩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들이 고등학고 동창들에다 이렇게 먼저 보자고 하는 거면 무슨 일이 있겠거니 하며 마지못해 긍정을 답했다. 무심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기에는 미안한 구석이 있었다.

 

 

셋은 얼핏 보면 하나도 맞는 구석이 없어보였다. 같은 남고를 나왔지만 접점은 그게 다였다. 하고 많은 학생 중 어쩌다가 세 명이 친구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 서로가 곁에 있었고 그냥 그렇게 늘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이현수는 학교 시험과 모의고사를 막론하고 전교에서 놀던 학생이었다. 선생님들과 교장, 교감 선생님까지 나서서 이런 학생이 우리 학교에 들어와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 했다. 교복은 항상 단정했고 교칙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선생님 눈을 피해 일탈이란 일탈은 전부 해본 간 큰 놈이다.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쉬는 시간에도 항상 문제집을 끼고 있었고 말을 걸면 까탈스럽게 받아치는 바람에 처음에는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던 친구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편해 보였다.

 

 

김건우는 삼 년 내내 반장을 맡았다. 공부는 뒤처지지 않을 만큼 적당히 했지만 학교에서 건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발이 넓고 모두에게 친절했다. 반듯하게 생긴 외모도 그 인기에 한 몫 했을 것이다. 살가운 성격으로 교직원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친구들도 일이 생기면 모두 선생님보다 그를 먼저 찾았다.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반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다가가 불러주는 건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난한 집의 장남이지만 구김살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배려와 섬세함을 모아서 만든 인간 같았다.

 

 

삼총사 중 마지막은 박민재였다. 이미 졸업을 하고난 지 12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같은 반이었던 학생들에게 너 혹시 민재 기억 나냐? 박민재. 라고 물으면 기억난다고 하는 사람이 아마 반 정도 있을 것이다. 반도 많을까? 그는 그만큼 수업은 적당히 듣고 쉬는 시간에는 시끄러웠던 여느 학생들과 비슷했다. 점심시간에 틈만 나면 축구를 하러 나가고 공부에는 썩 흥미가 없어서 내신 등급이 꽤 낮았지만 어찌저찌 대학에는 진학 한. 그런 무던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연락 없으면 어딘가에서 적당히 잘 살고 있겠지. 하던 놈들이 무슨 영문에 차까지 끌고 여길 오겠다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을 때 민재는 본가에 있다고 했었는데 그럼 충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는 말이다.

 

 

입추도 처서도 지났다더니 밤이 되니 푹푹 찌던 열대야가 어딜 간 건지 바람이 서늘했다. 오늘만 유독 그런 건지 어두운 하늘과 더해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괜히 뒷목을 손으로 슥슥 쓸어보는데 멀리서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까딱까딱 흔들리면서 다가왔다. 목적지가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서 슬금슬금 기어오던 자동차가 현수 앞에 딱 멈춰 섰다.

 

 

어둠에 익숙해져있던 눈이 갑자기 밝을 빛을 만나자 절로 감겼다. 인상을 팍 쓰고 손으로 빛을 가리자 조수석 창문에서 목을 쭉 빼고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퍽 반가웠다.

 

 

“야! 이현수! 살아있었냐!”

 

 

낯익은 목소리에 웃음부터 나왔다.

 

 

“미친놈들아, 뭐 다짜고짜 나오래?”

 

“일단 타고 이야기해!”

 

 

얇은 은테 안경을 한 번 고쳐 쓴 현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고 슬리퍼를 직직 끌면서 자동차로 다가갔다.

 

 

뒷문을 열고 털썩 시트에 몸을 맡기나 싶더니 그가 앞으로 튕겨져 나오듯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로 몸을 내밀었다. 차에서는 나면 안 되는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 나오고 있었다.

 

 

“뭐야, 술 마셨냐?”

 

 

기겁 하면서 다시 차 문을 열려고 하는 현수의 움직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차는 빠르게 자리를 박차며 출발했다. 문이 덜컥 잠겼다.

 

 

“술 마셨냐고!”

 

 

손을 뻗어서 조수석 등받이 쪽을 꽉 틀어잡는다. 당장이라도 헤드레스트를 뽑아버릴 기세였다. 다급한 목소리에 진정하라는 듯 운전석에 앉은 건우가 힐끔 백미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어, 나 말고 민재가 마시고 왔어.”

 

“저 봐, 지랄 맞은 성격 여전하네.”

 

 

그제서야 현수는 손에 힘을 풀면서 등을 푹 기대고 민재의 옆모습을 노려보았다.

 

 

“술 처먹고 서울까지 온 거냐? 너 충주에 있는 거 아니었어?”

 

“...술 먹으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왔지. 너네 잘 사나 궁금하기도 하고. 필요할 때 아니면 먼저 연락은 죽어도 안 하지?”

 

 

너한테 뭘 바라냐. 하는 민재를 보고 건우가 웃으면서 큰 도로로 진입했다. 차가 좀 막히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자동차를 구름에 반 이상 가려진 달이 계속해서 놓칠세라 비척비척 뒤따라간다.

 

 

“어디 가는데?”

 

 

목적지도 듣지 못한 현수가 흘러가는 창 밖 풍경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 주변에 이놈들하고 술 한 잔 할 데가 어디 있더라. 회식하면서 갔던 음식점들을 머릿속에 나열하는데 건우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있어. 내가 길 잘 아니까 걱정 마.”

 

 

건우도 현수와는 거리가 좀 있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적당히 괜찮은 곳으로 안내할 생각인 듯 보였다. 금요일 저녁시간 서울은 말할 것도 없이 차가 꽤 막혔다. 그래도 서로의 근황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조용할 틈은 없었다.

 

 

민재는 역시 충주에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지낸다고 했다. 끊임없이 이력서를 넣고 있지만 워낙 취업하기 어려운 시기라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부자라서 인생 걱정 없겠다 싶었지만 부모님은 집에서만 빈둥거린다면 유산은 눈곱만큼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고 머리를 부여잡으면서 말했다. 서른이 넘어가고부터는 이제 아무런 기대 없이 그를 쳐다보는 부모님의 눈에 한심함이 더해 묻어나고 있다고 한다.

 

 

“노인네들 돈이 그렇게 차고 넘치면서 지난번에 그 돈 이후로 지원이 뚝 끊겼다니까!”

 

 

열불이 터진다는 듯 큰 소리를 친다.

 

 

“그야 그 돈을 네가 어디에 썼는지 하나도 모르시니까 그렇지.”

 

 

진정하라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건우가 말했다. 건우는 현수보다 민재 상황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인다. 둘은 자주 연락을 하고 지냈던 게 분명했다.

 

 

“건우 너도 알 거 아니야. 착실하게 새끼 쳐서 불어나고 있다고. 그치? 현수야.”

 

“어어, 그렇지. 조금만 더 기다려봐.”

 

“그리고 그렇게 취업도 계속 준비하면 곧 하겠지. 인생 길다고 했어.”

 

 

운전하면서 민재를 다독이는 건우의 목소리가 퍽 다정했다. 조금은 얌전해진 민재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는 너는 직장생활 괜찮냐? 대리 달았다면서.”

 

“나야 뭐, 다른 직장인들하고 똑같지.”

 

 

건우가 어깨를 으쓱하면서 답한다. 그는 적당한 중소기업에서 대리를 달고 한다. 적성에 맞는 과를 가서 그런지 대학 학점관리와 관련 자격증을 착실히 쌓았고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했는데 꽤 잘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있는 회사에서 경력을 조금 쌓고 대기업을 노린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상사가 좀 거지같은 거 빼고 괜찮아.”

 

 

뒤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현수가 동의한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면서 입을 연다.

 

 

“상사 받고 고객도. 가끔 진상 만나면 그 날은 진짜 좆같아. 술이 계속 는다니까.”

 

“맞네. 현수 너는 고객들도 만나니까 두 배로 힘들겠다, 야.”

 

 

현수는 펀드 회사에서 펀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그도 졸업을 하자마자 마로 잡은 번듯한 직장에서 이미 몇 년을 잘 버텨나가며 일하고 있지만 경력이 쌓인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닌 듯 했다.

 

 

“번듯한 직업 있는 새끼들이 말이 많아.”

 

 

민재가 픽 웃으면서 뒤통수에 양손을 깍지 껴 대고 등받이에 푹 눕듯 기대자 건우가 힐끔 눈치를 살핀다. 순식간에 얼어붙으려는 분위기를 현수가 툭 흔들었다.

 

 

“뭐라는 거야. 집에 돈 많은 새끼가 말이 많아.”

 

“맞네. 김 대리님, 이 매니저님 파이팅입니다?”

 

 

얄궂지만 밉지는 않게 들리는 말에 웃음이 피식 피식 터졌다.

 

 

저녁시간이다 보니 대로에는 쏟아져 나온 차가 가득했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자동차 안에는 한참 전부터 틀어져 있던 라디오의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고가 나서 어느 구간이 수습하는 동안 막히고 있고 어떤 정치인이 구설구에 휘말렸으며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다는, 평소하고 다를 게 하나 없는 내용들은 그들의 흥미를 끌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내 달리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변이 자동차 꽁무니에서 나오는 붉은 빛으로 가득 찼다. 술렁거리는 빛 때문에 얼굴이 붉게 변해보이는 민재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야, 너네는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할 거냐?”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모두가 아무 말도 없었다. 저 앞에서 신호가 바뀐 건지 자동차가 슬금슬금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민재는 학창시절부터 항상 뜬금없는 타이밍에 엉뚱한 대화주제를 던지곤 했다. 고등학교 야자가 시작하기 직전에 갑자기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 때문에 야자 시간 내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현수와 건우도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그 질문에 진지하게 맞장구를 치며 시간을 흘려보내긴 했지만. 그래서 접점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드디어 누구 죽인 거냐?”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현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말하자 민재가 힐끔 고개를 돌려 건우와 현수를 쳐다보았다. 얼굴뿐만 아니라 눈도 사방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 벌겋게 번뜩인다.

 

 

“그냥, 아까 라디오에서 또 살인사건이 났다 길래. 요즘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거의 매일 저런 뉴스 보는 것 같고. 어쨌든, 사람을 죽이면 시체가 남잖아. 그걸 들키면 바로 잡혀가는데 어떻게 처리하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 싶어서.”

 

“저 새끼 생각하는 거 봐. 아직도 그런 영화 보냐? 이상한 영화 좀 그만 봐, 미친놈아.”

 

 

민재는 고등학교에 다니기 전부터 스릴러를 비롯해 고어, 호러, 공포를 가리지 않고 섬뜩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를 보는 걸 즐겼다. 동아리도 호러 동아리에 들었으면 할 말 다 했다.

 

 

“왜, 이게 얼마나 어려운 문젠데.”

 

“하긴, 그렇겠다. 시체가 발견되면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잖아.”

 

 

가만히 있던 건우가 민재의 말에 동조하면서 조용했던 차 안이 새로운 주제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음... 나는 일단 산 같은 곳에 묻지 않을까 싶은데.”

 

 

잠시 고민하던 건우가 입을 열었다.

 

 

“산?”

 

 

현수도 이 주제에 흥미가 생겼는지 휴대폰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되묻는다.

 

 

“응. 일단 급하게 숨겨야 하잖아? 그럼 사람들이 잘 안 가는 깊은 산에 시체를 가지고 가서 땅을 깊게 팔 것 같은데.”

 

“급하게 숨기는 거면 우발적인 살인이겠네. 그러고 나서?”

 

“땅 속에 시체를 넣어야지. 아, 그렇게 하려면 겨울은 좀 힘들겠다. 땅이 얼면 잘 안 파질 테니까.”

 

“그런데 산이면 비가오거나 했을 때 이미 한 번 팠던 흙이 쓸려가서 시체가 밖으로 나오지 않겠냐?”

 

 

민재가 의문점을 던졌다. 왜 이렇게 정체가 길어지나 했더니 앞쪽에 자동차 사고가 있었던 건지 뒤에서 렉카차가 정신없이 번쩍이는 불을 켜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리 빠지라고 울리는 사이렌이 시끄러웠다.

 

 

“그렇네... 그럼 땅을 좀 깊게 파서 맨 밑에 시체를 넣고 흙을 좀 쌓은 다음에 다시 그 위를 돌로 가득 메우고 흙을 쌓고. 흔적이 안 보이게 적당히 돌하고 풀 같은 걸로 덮어 둘래.”

 

“땅 존나 깊게 파야겠네. 혼자 하면 팔 떨어지겠다.”

 

 

군대 생각난다며 몸서리치던 민재가 다음은 네 차례라는 듯 현수를 보았다. 눈길을 받은 현수가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나는... 역시 물에 담그는 게 좋을 것 같은데.”

 

“한 놈은 산이고 한 놈은 물이야? 어디. 바다?”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게?”

 

 

민재 말이 웃긴지 웃던 건우가 백미러를 봤다.

 

 

“바다는 아니고. 저수지? 큰 댐 같은 거 있는 곳.”

 

“충주 출신 티 내냐?”

 

 

충주에는 커다란 댐이 엄청난 물을 가둬두고 있다. 댐 주변에 아름드리 커다란 벚나무가 쭉 줄지어 있어서 학창 시절 내내 봄 벚꽃은 그 주변에서 구경했던 추억들을 저마다 여러 개 가지고 있다.

 

 

“아니, 좀 닥치고 들어봐. 그걸 어디 가서 묻으면 발견되기 쉽잖아. 목격자가 없으면 몸에 돌 같은 걸 안 풀리게 같이 묶어서 물에 가라앉혀야지.”

 

“하긴, 그렇네. 바다면 파도에 쓸려서 바닷가로 밀려올 수도 있겠다. 돌 몇 개로는 불안하네.”

 

 

산에 묻는 것보다 나은 것 같기도 하다며 건우가 끄덕였다.

 

 

“영화 보면 캐리어에 넣고 던지기도 하던데 요즘 캐리어는 방수 개쩔어서 돌하고 시체 넣은 다음에 가라앉혀도 물이 안 들어갈 걸. 그럼 시체 썩으면서 나오는 가스가 가방에 가득 차서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어디 넣지 말고 그냥 시체 자체에 돌을 묶어야지.”

 

 

민재도 조용히 현수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무런 태클이 날아오지 않는 걸 보면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의기양양해진 현수가 덧붙였다.

 

 

“빠트리기 전에 옷은 다 벗겨야 하고. 어짜피 다 불어터질 테지만 혹시라도 발견되면 신원 확인이 늦어지는 게 좋을 테니까.”

 

“와... 저래서 머리 좋은 새끼들이 무섭다니까.”

 

“왜, 아예 머리도 우리 고등학교 때보다 짧게 다 밀지 그러냐?”

 

 

현수가 손뼉을 딱 쳤다.

 

 

“어? 그것도 좋은데?”

 

“어흐, 미친놈이야 진짜. 소름끼쳐.”

 

 

민재가 키득키득 웃으며 양 팔을 슥슥 문지르자 건우가 힐끔 보고 찬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에어컨 바람세기를 줄였다.

 

 

“저 새끼는 물어보길래 대답 해줘도 지랄이야. 너는 어쩔 건데?”

 

 

다시 시트에 등을 푹 기대앉은 현수가 휴대폰으로 힐끔 시계를 확인하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7시 4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뭔 놈의 차가 이렇게 막혀. 중얼거리는 소리가 앞좌석에는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나는... 음.”

 

 

예전부터 이런 쪽에 빠삭한 느낌이던 민재가 입을 열자 다들 아닌 척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창문 밖에서 나고 있는 사이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게 더욱 잘 들려왔다. 중형차를 소형차와 중형차가 뒤에서 들이받았는지 구급차와 경찰차에 렉카차까지 모여 도로가 어지러웠다. 사고 현장을 통제하는 바람에 사차선 도로의 반이 막혀있었다. 여러 불빛이 경고등처럼 번쩍거리는 게 세 명의 시선을 전부 빼앗았다.

 

 

“사고 좀 크게 났나본데?”

 

“그러게...”

 

“누가 죽었나? 구급차에 경찰들도 왔는데.”

 

“이런 이야기 하는데 사고현장 보니까 기분이 좀 묘하다. 그치?”

 

 

건우의 말에 현수가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건우가 슬금슬금 사고 현장 옆을 지나가는 동안 붉게 변한 바닥이 건우의 뒷좌석에 앉아 밖을 뚫어져라 보고 있던 현수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진득한 질감이 눈으로만 봐도 느껴졌다.

 

 

“뭐 어때. 따지고 보면 하루에도 수십 명 씩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대수롭지 않은 민재의 말에 하긴 그건 또 그렇네. 하면서도 현수는 괜히 어깨를 한껏 끌어올렸다가 툭 떨궜다. 무언가를 털어내듯 고개도 부르르 한 번 털고 나서야 창 밖에서 시선을 거둘 수 있었다.

 

통제 지점을 지나자 차가 다시 속도를 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여전히 생각에 잠겨있던 민재가 무릎을 탁 지면서 그게 좋겠다. 하고 입을 열었다.

 

 

“내가 시체를 처리하려면 일단 우리 본가라는 가정을 하고 들어가야 해.”

 

“왜? 단독주택에서만 할 수 있는 거야?”

 

 

고등학생 때 민재의 집에 스스럼없이 놀러 다니던 건우가 물었다. 민재의 부모님은 충주 중심부 아닌 산과 가까운 외곽 쪽 단독 주택이 모여 있는 부촌에 살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부모님 집이지만 민재는 그 집도 곧 자신의 집이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꼭 그런 건 아닌데 그 편이 훨씬 안전하니까.”

 

 

세 명이 살기에 좀 커다란 이층 단독 주택은 멋들어진 정원이 그 주변을 둘러싸듯 자리 잡고 있었다. 울타리 안쪽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나무들이 민재 어머니의 손길을 받아 무럭무럭 크기를 더해가는 중이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할 건데?”

 

 

현수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를 들여다보면서 뒷이야기를 재촉했다.

 

 

“일단 마당을 깊게 파고 시체를 묻을 거야.”

 

“그렇겠지.”

 

 

건우가 오른쪽으로 빠지기 위해 깜빡이를 넣고 차선을 바꾸면서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 위를 흙으로 적당히 덮고 난 다음에 준비물이 필요해.”

 

“무슨 준비물?”

 

“동물 시체. 특히 애완동물로 키울 수 있는 동물.”

 

“왜?”

 

 

건우와 현수가 동시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민재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읽을 수 없는 옆얼굴을 보던 두 사람 중 현수가 먼저 눈치를 챈 건지 미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민재를 보면서 멀리 떨어지기라도 하듯 몸을 피했다.

 

 

“그 위에 묻을 거야. 그리고 묘비를 만들어야지. 사랑하는 우리 뽀삐 여기 잠들다. 어때? 이러면 땅을 판 흔적이 있어도 그러려니 할 거 아니야.”

 

“너 진짜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좀 위험한데?”

 

“왜? 머리 잘 굴린 거 아니냐? 이 정도면 인정이지.”

 

“너는 나보고 미쳤다고 할 처지가 아니야. 이 미친놈아.”

 

“내가 보기엔 쌍으로 미쳤어. 어떻게 정상이 없냐. 아이고. 내 친구 농사 다 망했네.”

 

 

건우가 웃음 섞인 푸념을 장난처럼 늘어놓으면서 톨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그걸 알리는 내비게이션 소리에 민재의 말을 상상해보고 있던 현수가 고개를 번쩍 들어 창밖을 보았다. 해가 완전히 져 검게 물든 풍경 속 간신히 보이는 나무들이 빠르게 옆을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뭐야? 어디 가? 나 슬리퍼 신고 나왔는데 고속도로를 탄다고?”

 

“슬리퍼가 무슨 상관이야. 걸어 가냐?”

 

 

민재는 목적지를 알고 있는 건지 놀란 기색 없이 태연했다.

 

 

“아니, 멀리 가면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대책 없는 새끼들이네?”

 

“하루 이틀이냐. 원래 맛 집은 멀리 있는 거야. 안전하게 모실 테니까 걱정 말지?”

 

 

내가 언제 위험한 행동 하는 거 봤어? 하는 건우의 눈이 백미러 너머로 현수와 마주쳤다. 학창시절 내내 봐왔던 눈에 거짓은 요만큼도 비치지 않았다. 미심쩍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현수를 확인하고서 건우는 다시 쭉 뻗은 도로를 응시했다. 서울 안에 있는 도로보다는 차가 적었지만 아직 서울 주변이라 그런지 달리고 있는 차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나 또 생각났어.”

 

 

산에 묻는 건 역시 위험하다면서 건우가 입을 열었다.

 

 

“박민재 네가 단독주택 이야기해서 생각난 거야.”

 

“역시 단독주택이 시체 숨기기엔 딱 좋지? 뭔데?”

 

“아니 이 새끼들은 살인을 안 할 생각을 해야지. 이미 글러먹었네.”

 

 

현수가 웃으면서 고개를 젓고 이번에는 끄트머리만 보이는 건우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운전을 하느라 앞과 가끔씩 사이드 미러를 보던 건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단독주택 보수를 해야 해.”

 

“보수? 그건 혼자 못 하잖아.”

 

 

민재가 바로 문제점을 제기 했다. 건우가 그건 생각을 못 했다는 듯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일단 무슨 생각인지 들어나 보자.”

 

“하긴. 상상인데 뭐.”

 

“그럼 계속 이야기 한다? 흠, 단독주택 보수할 때 벽에 시체를 넣는 거야.”

 

“그러니까 시체를 넣고 벽을 시멘트로 발라버린다고?”

 

 

민재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거지.”

 

“그건 혼자하기 진짜 힘들겠다. 전문가도 애먹겠는데?”

 

“좀 그렇지? 시멘트는 좋은 소재 같아서 버리기 아까운데... 음, 옳지. 그럼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통을 준비하자.”

 

 

시멘트를 쓰지 않는 건 아쉬운지 곰곰이 생각하던 건우가 오른손바닥으로 핸들을 가볍게 탁 두드렸다. 다른 방법이 있다며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간다.

 

 

“시멘트를 깔고 시체를 넣은 다음에 다시 시멘트를 빈틈없이 붓는 거야.”

 

“사람 신장 생각하면 구겨서 넣어도 그 통이 꽤 커야 할 텐데 어떻게 옮기려고?”

 

 

이번에는 현수가 살짝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리며 의문을 제기했다. 학창시절부터 무언가를 따지고 들 때 나오는 오랜 습관이다.

 

 

“음... 그렇네. 평소에 이런 건 생각해본 적이 너무 없어서 너무 어렵다.”

 

 

건우가 머쓱한지 웃으면서 차선을 바꾼다.

 

 

“옮길 일이 없는 곳에서 작업을 해야겠네. 아, 아까 단독주택이라고 했으니까 주택 뒤쪽 물탱크 옆이라던가. 물탱크 통하고 똑같이 생긴 통이면 의심 덜 받고 좋겠다.”

 

 

자기가 꺼낸 의견을 마무리 지어서 만족스러운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좀 흔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해도 나쁘지 않은 것 같네.”

 

 

현수가 뒷자리에서 동의를 표했다. 민재도 대충 고개를 끄덕인다.

 

 

“중간에 들키지만 않으면. 내가 죽고 나서 발견 되는 건 상관없으니까. 잘 가지고 있어야겠네.”

 

 

그 말을 들은 현수가 다시 몸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그럼 진짜 간단하게 냉동고에서 시체를 얼린 다음 토막 내고 비닐봉투에 밀봉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겠다.”

 

“왜 굳이 얼리고 잘라? 딱딱해서 힘들지 않겠어?”

 

 

건우가 의아한 듯 묻자 민재가 대신 설명을 덧붙였다.

 

 

“피가 덜 나오게 하려고 그렇겠지. 피가 나오면 청소하기 어렵잖아. 맞지?”

 

“어. 피가 덜 나올지 어떨지는 안 해봐서 모르지만. 그렇게 밀봉한 걸 김치냉장고 밑바닥이나 깊숙한 곳에 넣어두는 거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못 열어보게 하는 게 어렵겠지만 내가 죽고 나서 물건 정리할 때 발견되면 그건 알 바 아니지.”

 

“저 새끼 말하는 거 봐. 존나 매정해.”

 

“아니, 그럼 물어보지 말던가. 지가 먼저 처 물어봐놓고 대답해줘도 지랄이야.”

 

 

그 틈을 못 참고 또 티격 거리는 걸 보던 건우가 못 말린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니들은 어떻게 학교 다닐 때랑 똑같냐.”

 

“이현수 성격이 어디 가겠냐.”

 

“너도 곱진 않은 거 알고 씨부리는 거지? 너는 뭐 더 없냐? 우리 다 두 개씩 말했잖아.”

 

 

민재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생각나는 게 하나 있긴 한데. 이것도 전제가 좀 필요해.”

 

“또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려고.”

 

“들어나 보자.”

 

“일단 잡식성 동물을 키워야 해. 예를 들어서 커다란 개 같은 거.”

 

“뭐?”

 

“너는 동물 없으면 못 숨기냐?”

 

“아, 좀 끝까지 들어봐.”

 

 

말을 끊은 게 불만인지 민재가 툴툴거렸다. 그 사이 셋을 실은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끊임없이 달려 나갔다. 처음에는 주변에 자동차들이 많았는데 다들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지금은 자동차보다 도로 양 옆으로 올라와있는 시커먼 산들과 거기 박혀있는 나무들만이 계속해서 수를 늘려나갔다. 같이 달리는 자동차 두 대 정도가 도로에 빛을 그어나갔다.

 

이미 해가 넘어가고 한참이 지나서 그런 건지 자동차에서 나오는 빛이 닿은 나무 몸통들만 그게 거기 있음을 간신히 알렸다. 나무 몸통 사이사이로 더 깊은 숲이 보일 것도 같은데 시커먼 구멍만 뻥 뚫려있다.

 

 

“시체에서 살을 발라낸 다음에 동물한테 먹이는 거야. 장기 같은 것도 다. 한 번에 다 먹기 힘들면 냉장고나 냉동실에 소분해 놓고 밥처럼 먹여서 없애는 거지.”

 

“넌 진짜 내 친구지만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 동물은 무슨 죄야.”

 

 

건우가 질린다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가 직접 먹어서 없앤다고 하면 너네가 바로 손절 때릴 것 같아서 좀 순화한 거거든?”

 

“뭐? 직접 먹어?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야, 김건우. 차 좀 세워봐. 버리고 가자.”

 

“아씨, 미친놈아 고속도로에서 뭘 버려 그냥 상상이지 상상!”

 

 

민재가 절대 못 내린다면서 안전벨트를 양 손으로 꽉 부여잡았다. 그걸 보는 현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럼 뼈는? 사람 뼈는 동물 뼈하고 한 눈에 봐도 다르게 생겼다던데.”

 

“그게 문제긴 한데... 깨끗하게 발라서 개한테 한 번 더 먹으라고 던져준 다음에 모아서 갈거나 빻거나 해야지. 두개골 부수는 게 좀 빡셀 것 같다.”

 

“해서 어디 강이나 바다에 뿌리게?”

 

“어. 무슨 사연 있는 것처럼 함에 담아서 뿌리면 누가 봐도 감쪽같지 않겠냐?”

 

“너는 그게 문제야. 음침한 새끼.”

 

“아, 뭐!”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기왕 하는 거 목격자가 있어도 모르고 넘어가게 움직여야지!”

 

“그래, 잘 들었고 우리 이제 전화로만 안부 전하자.”

 

“이봐. 손절은 또 존나게 빨라요.”

 

“아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까 전화도 하지 마. 그냥 알아서 잘 살자. 나는 김건우하고만 적당히 연락하면서 지낼게. 너도 건우 쪽으로 안부 전해.”

 

“아니, 어이없네. 나는 가운데에서 무슨 고생인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건우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다들 실없는 웃음을 실실 따라지었다. 현수가 웃으면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아, 나 박민재한테 옮았나봐. 존나 이상한 생각났어.”

 

“뭔데?”

 

“옮긴 뭘 옮아. 그게 니 평소 생각이지. 그래서 뭔데?”

 

 

설명하기 좀 그런지 망설이던 현수가 입을 열었다.

 

 

“시체를 토막 낸 다음 약간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조진 다음에 핏물 빼고 담그는 거.”

 

 

왼쪽으로 빠지는 깜빡이를 넣더니 건우가 의아한 듯 되물었다.

 

 

“담근다고? 아까처럼 저수지에? 물고기 밥?”

 

“이 새끼가 담근다는 거 그 뜻 아닌 것 같은데.”

 

 

민재가 인상을 찌푸렸다가 몸을 휙 돌려서 뒷좌석에 앉은 현수를 쳐다보았다. 표정에 확신이 있었다.

 

 

“맞지?”

 

“하여간. 얘는 옛날부터 다른 건 몰라도 눈치 하나는 오지게 빠르네.”

 

“엥. 그럼 어디 담근다는 거야? 나만 뭔 소린지 모르고 있는 거?”

 

 

무슨 소리냐면서 연신 백미러를 힐끔거리는 건우는 현수가 입을 여는 것과 거의 동시에 톨게이트를 물 흐르듯 통과했다.

 

 

“그, 왜. 원액이나 담금 주 담그는 것처럼 담아버리겠다고.”

 

 

본인이 말해놓고 비위가 상하는지 그가 인상을 찌푸리고 명치 언저리를 문지른다. 다른 두 명도 더 이상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고깃덩어리가 통에 담겨 쭈글쭈글하게 오그라진 상상을 했는지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야, 너나 김민재나 똑같아. 둘 다 내려. 어우... 토 쏠리네.”

 

“나도 내가 말했지만 진짜 더럽다. 그래도 이것도 내가 죽기 전까지 발견만 안 된다면 상관없잖아. 괜찮지 않아?”

 

“뭐가 괜찮아. 정신건강에 존나 안 괜찮아.”

 

“야, 그렇게 따지면 이 대화 주제 자체부터 글러먹었어.”

 

 

건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차를 몰았다. 셋을 실은 차는 어느새 국도 위를 달리고 있었다. 드문드문 이제는 문을 닫은 휴게식당들이 지나갔다. 한참 대화에 빠져있던 현수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 사이에 다른 자동차는 찾아볼 수 없었다.

 

 

텅 비어있는 이차선 도로 위에 세 명이 타고 있는 자동차 불빛만 덩그러니 놓였다. 그들이 이동하는 내내 뒤를 따라온 달이 구름 속에서 나왔다. 하늘이 온통 검은색이라 그런지 형형한 주황색 달이 더욱 밝게 보였다.

 

목적지를 설정하고 달리는 것도 아니라서 도무지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도를 켜서 현 위치를 알아보려고 휴대폰을 집어든 현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벌써 시간이 11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예상보다는 멀리 왔지만 그렇게 시간이 오래 지났을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야, 야... 지금 시간 좀 봐.”

 

 

현수가 휴대폰 화면을 켜기 위해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데 민재가 그를 힐끔 보며 불쑥 입을 열었다.

 

 

“야, 근데 너는 그렇게 시체 처리하고 남한테 안 들키는 것까지 신경 쓸 정도면 평소에 생각 좀 해봤던 거 아니냐?”

 

“뭐? 내가 미쳤다고 그런 생각을 하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몸을 앞으로 내민다.

 

 

“물어보니까 최대한 현실성 있게 대답해준 거지. 왜 생사람을 잡고 지랄이야.”

 

“진짜 없다고? 아까 직장 이야기 하던 거 보면 한 번 쯤은 생각 해봤을 것 같은데.”

 

 

현수가 운전에 집중하는 건우를 쳐다보며 일러바치듯 말했다.

 

 

“야, 이 새끼 왜 또 시비냐.”

 

“하루 이틀이냐. 너도 별 다를 거 없어 인마.”

 

 

시선도 주지 않고 하는 말에 다시 민재를 돌아본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앞을 보고 있던 민재가 입을 열었다.

 

 

“하긴, 이현수 너는 뭐. 걱정이 어디 있겠냐. 이런 생각 진지하게 안 해봤겠지.”

 

 

적당히 비꼬는 말에 현수가 눈을 치켜뜨고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을까. 문득 그 뒤로 흐르듯 지나가는 풍경들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조금 전만 해도 한참 멀리 있던 나무들이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건지 자동차 바로 옆을 스치듯 서있었다. 다 큰 어른이지만 이렇게 한 밤중에 처음 와보는 산 속에 들어와 있으려니 등 뒤가 서늘했다.

 

 

“야, 야. 건우야. 에어컨 좀 끄자. 나만 춥냐?”

 

 

차 시트에 등을 파묻듯 기대고는 힐끔 앞좌석을 쳐다본다. 이렇게 깊은 산 속에 이 시간까지 여는 가게가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기껏 차를 끌고 왔는데 대리를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백미러로 힐끔 현수를 확인한 건우가 에어컨을 끄는지 뭔가를 만졌다.

 

 

“미안. 많이 춥냐? 이제 껐어.”

 

“어어, 고맙다. 근데 여기 무슨 가게가 있다고? 대체 무슨 맛 집인데 이렇게까지 오냐.”

 

“아, 그게...”

 

 

건우가 설명을 위해 입을 여는데 가만히 있던 민재가 다시 입을 열어 가로챘다.

 

 

“근데 우리가 아까 했던 이야기들은 요즘 같은 때에는 실행하기 힘들겠다.”

 

“갑자기 또 뭔 소리야.”

 

 

평소에도 자기 할 말만 하던 놈이지만 아직도 셋이서 만나기 전부터 어설프게 취해있던 술이 덜 깬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건우와 현수 모두 민재를 쳐다보았다.

 

 

“생각해봐. 한국에 CCTV 없는 곳이 어디 있냐? 차에도 웬만하면 다 블랙박스가 달려있고...”

 

 

쿵. 덜컹.

 

 

민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차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포장도로가 끝난 건지 비포장도로가 쭉 이어지면서 덜컹거림이 끊어지질 않았다. 현수가 뒷좌석에서 손잡이를 꽉 부여잡았다.

 

 

“뭐야. 길 왜이래? 야, 여기 이상하지 않냐? 찾아보고 가, 좀!”

 

 

덜컹 덜컹.

 

 

포장이 없는데다가 돌도 여기저기 박혀있는 건지 차가 정신없이 흔들렸지만 건우의 운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몸을 앞으로 내민 건지 숙인 건지 핸들에 착 달라붙어있다시피 차를 몰며 정면만을 응시한다. 앞에 펼쳐진 길 위에는 장애물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오히려 가속을 붙이는지 속도가 계속해서 빨라진다. 주변에 있는 나무들이 그들을 구경하면서도 길을 터주느라 바쁘게 옆으로 빗겨나갔다. 딱딱 부딪히는 나뭇가지와 이파리들이 이 문 좀 열어보라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있어.”

 

 

민재가 나직하고도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이 너무 태연해서 손잡이를 양손으로 붙잡고 자리에 딱 붙어 있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현수와는 다른 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뭐? 지금 뭐라고 했어?”

 

 

워낙 흔들림과 소음이 심해서 들리지 않았는지 인상을 쓰면서 되묻는다. 민재가 자리에 앉아 고개만 훽 돌렸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돌아간 목에도 현수를 쳐다보는 눈에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있다고. 그런 생각 한 적.”

 

 

갑자기 건우가 브레이크를 콱 밟았다. 드드득, 득득, 드득. 멈추려는 자동차와 계속해서 나아가려던 힘이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가 자동차 전체에 울렸다. 있는 힘껏 밟고 있는지 이를 꽉 물고 잔뜩 인상을 쓴 표정이다. 바퀴 아래 흙과 돌들을 밀어내면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간 자동차가 뚝 멈춰 섰다. 세 명의 몸도 앞으로 쏠렸다가 차가 멈추는 것과 동시에 뒤로 훅 밀렸다. 시트는 푹신했지만 머리가 부딪히자마자 튕겨 나오면서 어지러웠다.

 

 

어둠이 내려앉은 산 속에 자동차 한 대가 덩그러니 멈췄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앞에 있는 나무 기둥을 비추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표면에 그림자가 지니 지나치게 선명한 나머지 징그럽기 짝이 없었다. 나무에 막히지 않고 나아가는 빛은 어둠에 먹혀 얼마 뻗어나가지 못했다.

 

 

“...야, 김건우. 여기 어디야.”

 

 

질주의 여운이 가시고 다시 쥐죽은 듯 조용해진 창밖을 살피던 현수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운전석 등받이를 움켜잡았다.

 

 

“대답해, 어디냐고!”

 

 

비포장도로라고도 할 수 없는 길을 달려와 그 끝에 멈춰서있을 뿐이었다.

 

 

“다 왔어.”

 

 

핸들에서 손을 천천히 거두며 건우가 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다 왔다니까? 여기야.”

 

“뭔 개소리야. 아무 것도 없잖아!”

 

“아니, 글쎄. 여기라니까.”

 

 

답답하다는 듯 대답한 건우가 차 시동을 껐다. 그나마 남아있던 엔진 소리마저 사라진 적막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무거웠다. 운전을 해서 그런지 뒷목을 주무르는 그를 현수가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안경에도 가려지지 못한 날카로운 눈매가 사나웠다.

 

 

“나는 수십 번도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했어.”

 

 

급정거에도 아랑곳 않고 뒤로 돌아가 있던 고개를 스으윽 돌려서 앞을 본 민재가 조금 전 자기가 한 말에 설명을 덧붙였다. 현수는 지금 친구들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야... 너네 지금 나 놀리는 거면 그만 해. 충분히 놀랐어.”

 

 

등받이에 찰싹 붙은 현수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보자고 하더니 이렇게 사람을 놀려먹을 줄은 몰랐다. 전혀 예상도 못 하고 순순히 당한 건 쪽팔렸지만 이런 장소에 덩그러니 놓이니 화를 낼 기세도 힘없이 꺾여버렸다.

 

 

“너. 내 투자금 어쨌어.”

 

 

민재가 억양이 전혀 없는 말투로 물었다. 물었다기 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무런 설명이 없었지만 그 말을 바로 알아들은 듯 현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 창문에 서리라도 끼듯 유리가 현수의 얼굴처럼 허옇게 굳어갔다. 몸이 떨리는 걸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차내 온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었다. 바싹 말라 얼어붙은 것만 같은 입술에 침을 적신 현수가 급하게 대답했다.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번에 소개시켜준 상품에 잘 투자해서 지금 착실하게 수익 내고 있는 중이지.”

 

“정말?”

 

“그렇다니까! 야, 너는 친구도 못 믿냐?”

 

“...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어떻게 죽여야 들키지 않을까 궁리했어.”

 

 

높아진 현수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여전히 억양 없는 목소리가 조용히 중얼거린다. 그걸 들은 현수가 떨리는 손을 뻗어서 재촉하듯 운전석 등받이를 쥐어 잡고 흔들었다.

 

 

“야, 야. 건우야. 이 새끼 미쳤나봐. 좀 닥치게 해 봐.”

 

 

등받이가 흔들리는 것에 따라 움직이던 건우가 백미러로 현수를 똑바로 쳐다봤다. 눈빛이 형형하다.

 

 

“너. 내 돈은 어쨌는데?”

 

“어...?”

 

“네 말 믿고 투자한 내 돈. 어쨌냐고.”

 

 

현수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목구멍에 커다란 공이 콱 들어찬 것처럼 숨이 막혔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들킬 수밖에 없더라. 아까 나눴던 방법들도.”

 

 

현수가 소리 없이 문손잡이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손잡이가 손바닥에 슥 감겨왔다. 힘을 줘서 당기면 당장이라도 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듬더듬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가만히 눈동자만 굴리면서 눈치를 살피던 그가 손잡이를 당기려는 순간.

 

 

“그래서 내가 포기했어.”

 

 

민재가 다시 현수를 돌아보며 텅 빈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 뭐를.”

 

 

두 쌍의 눈동자가 깜빡임 없이 그를 응시하고 있다.

 

 

“아, 새끼들. 날 잡고 놀려먹으려고 작정했네. 알겠다고. 돌아가면 다 보여줄게. 진짜로! 건우 네 돈 1억에 박민재 돈 4억 합쳐서 5억 잘 있다니까!”

 

“거짓말 하지 마. 망해가니까 남은 돈이라도 다 빼서 네 뒷주머니로 들어간 거 우리가 평생 모를 것 같았어?”

 

 

언제까지 입 다물고 있으려고 했는데? 하는 건우의 표정에 허탈한 웃음이 가득했다. 고개만 돌리고 있던 민재가 팔을 확 뻗어 현수의 멱살을 낚아채려 했다. 내내 동아줄이라도 잡고 있듯 부여잡고 있던 문손잡이를 힘껏 잡아 당겼다.

 

 

턱.

 

 

달리면서 일정한 속도가 넘어가면 저절로 문이 잠기는 요즘 자동차에서 문이 열려있을 리가 없었다. 출발 초반에 잠긴 문이 그의 속처럼 턱 하고 막혔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자꾸만 헛손질로 미끄러지는 오른손에 힘을 주고 잠금장치를 풀었다. 쏟아지듯 문을 열고 엉금엉금 손으로 바닥을 짚으면서 차를 벗어난 현수가 부리나케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자동차 앞좌석 문이 열렸다.

 

 

“어디 가, 현수야.”

 

“친구 등쳐먹고 혼자 잘 살려고?”

 

 

비척비척 현수의 앞으로 두 명이 걸어간다.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뒷걸음질 치는 발에 나뭇가지가 밟혀 뚝, 뚜둑. 끊어지는 비명을 질러댄다.

 

 

“너네 그, 그거 알지?! 방금 박민재가 말한 것처럼 여기까지 온 길 사방이 다 CCTV야. 잘 생각해. 일단 다시 나가서 이야기 하자. 내가 진짜 사실대로 다 말해줄게. 어?”

 

 

다급하게 입을 연 현수가 다가오지 말라는 듯 손을 앞으로 뻗고 힐끔힐끔 등 뒤를 확인하며 계속해서 뒷걸음질 친다. 낭떠러지는 없지만 나무에 움직임이 막혔다가는 오도가도 못 할 것 같았다.

 

 

“너, 그거 우리가 빚내서 마련한 돈인 거 알잖아. 내가 그렇게 투자를 했는데 손 놓고 아무것도 안 찾아봤겠어?”

 

“건우가 말 안 해줬으면 나는 의심은 했어도 평생 몰랐겠지. 연락도 잘 안 받더니. 너 그거 어떤 돈인지 알잖아.”

 

“내, 내가 빼놓고 그... 다시 오르면 넣어서 원금 회복하고 수익 올려서! 그래, 그렇게 주려고 했지...! 왜 생사람을 잡아!”

 

“너 도박하더라?”

 

 

다 알고 있다는 듯 건우의 말투에 현수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방금 전까지 두려움에 차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손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주머니에 들어갔다. 턱이 미묘하게 들린다.

 

 

“아... 거기까지 알아보고 왔어?”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둘을 번갈아본다.

 

 

“그래서? 여기까지 끌고 와서 뭘 어쩔 건데? 멍청하게 고속도로를 타고 왔으니 찍힌 게 한 두 개가 아니겠네. 건우 너같이 겁 많은 새끼가 잡혀갈까봐 무서워서 어떻게 돌아가게?”

 

“그래서 말 했잖아. 멍청한 새끼야. 포기 했다고. 인성이 썩었으면 눈치라도 있던가.”

 

 

민재가 한 발자국 다가가면서 말했다. 현수가 오른손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그럼 귀찮게 여기까진 또 왜 처 왔어. 뭐, 협박이라도 하시게?”

 

“현수야.”

 

 

건우가 나직하게 말했다. 서늘한 바람이 현수의 목덜미를 척척하게 훑고 지나갔다.

 

 

“여기는 너 혼자 왔어.”

 

“...뭐?”

 

 

현수의 눈썹이 찌푸러졌다.

 

 

“뭔 개소리야.”

 

“나는 내 방에 있지. 목뼈가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

 

“나는 지금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알아보기 힘들게 생겨있긴 하겠네. 하필 금요일 저녁에 뛰어내려서 목격자가 좀 있을 거야.”

 

 

말뜻을 알아들은 현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길동무는 너로 정했어. 상의 할 필요도 없더라.”

 

 

자박. 민재와 건우가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내가 니 새끼 잘 먹고 잘 사는 걸 뻔히 아는데 도무지 혼자는 못 가겠더라고. 안 그래?”

 

 

서늘한 바람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산을 뒤덮고 있는 나무들이 바람에 따라 마치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보이는 나무 끄트머리가 사납게 흔들리고 있었다.

 

현수의 뒤에서 우르르 흙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황해서 돌아본 발 뒤에 시커멓게 뻥 뚫린 바닥이 현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깊숙한 안쪽에서 거대한 바람이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 흙들이 구멍 안으로 깊이를 모르고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헛디디면 빨려 들어갈 것 같아 허겁지겁 몸을 앞으로 피했다.

 

 

“다, 다 꾸며낸 거야. 신고하겠어. 니들 변호사 선임할 준비나 해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드는 걸 보고도 둘은 움직임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비상통화를 켜고 112를 누른 뒤 허겁지겁 귀에 가져다 댄다.

 

 

 

고오오오오...

 

 

 

너머에서 바람소리가 현수를 기다린다.

 

 

“뭐야...?”

 

 

화면을 확인한 현수가 다시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댄다.

 

 

사허가우지도버나부둘마두며담저두려아너륌자루마느루둘마룸자뎌루저루마뎌마름더두너잗루자뒤냐어둬런운러미자더기룸냐지더렂울몆기누리거미갈기히르냐작자드리지덜지두러기리기어니얼니러지럼니오직덜걎히리로댜러아름화래겋디르밎고햦거히……

 

 

“으아악!”

 

 

귀를 파고드는 소리에 휴대폰을 집어던지는 현수에게 건우와 민재가 다가간다.

 

 

“이제 가자.”

 

“시간 존나게 잡아먹네.”

 

“오, 오지 마! 미친 새끼들아 저리 꺼져!”

 

 

반사적으로 뒷걸음지는 바람에 한쪽 발이 허공을 밟고 휘청거린다.

 

 

“어?!”

 

 

그걸 기다렸다는 듯 구멍 속에서 검게 그을린 손 수십 개가 쑤욱 뻗어 나와 그의 팔다리와 허리, 목과 얼굴을 휘감았다. 놀라서 크게 뜨인 오른쪽 눈동자가 건우와 민재를 보고 손을 뻗는 걸 마지막으로 현수가 구덩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아악!”

 

 

미처 따라가지 못한 비명이 산에 울렸다. 그걸 빠짐없이 눈에 담던 둘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고생했어.”

 

“뭘. 가자.”

 

 

둘이 현수가 사라진 뒤를 따라 땅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 모습이 사라지고 벌어진 구멍만 거기 남아 있다가 구물구물 쩍 벌어진 아가리를 닫았다.

 

 

바람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가만히 숨죽이고 있던 주변을 풀벌레 소리와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채웠다.

 

 

산 속에 우두커니 자동차가 남았다. 높게 뜬 달만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경위님. 현장에 있던 차량 블랙박스 영상 나왔습니다.”

 

 

책상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CCTV 영상이 인쇄된 사진을 보고 있던 남자가 부름에 노트북을 받아들었다. 어딘가로 달려가는 차 안에서는 한 남자가 영문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하고 있는 거야?”

 

“시체를 숨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꼭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

 

 

둘의 시선이 사진으로 옮겨갔다. CCTV영상을 캡쳐한 화질이 썩 좋지 않은 회색 사진에는 텅 빈 앞좌석 두 개와 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현수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이게...이럴 수 있습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영상이 마지막까지 흘러갔지만 태풍이라도 불 듯 흔들리는 나무가 헤드라이트 불빛에 비쳐 보일 뿐 다른 건 어떤 것도 담기지 않고 뚝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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