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여긴...”

 

눈을 뜨니 초등학교 현관 로비였다.

 

이상하다. 졸업한지 한참은 지났을 텐데. 닫혀있는 현관 유리문에 비친 나는 내가 아는 모습그대로였다. 어쩌다 초등학교에 왔지. 유리문으로 다가가 꽤 낮은 손잡이를 밀어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당겨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포기하고 문에 뺨을 대 밖을 내다보았다. 학교 화단이 보이는 교정은 텅 비어있다. 항상 가방을 메고 신발주머니를 흔드는 학생들이 가득했는데 어쩐지 쓸쓸해보였다.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으니 다른 출구를 찾기로 했다. 뒤를 돌면 정면에 1학년 학생들이 쓰는 교실이 네 개, 왼쪽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내가 1학년 때 몇 반이었더라... 4반이었던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니. 너무 아득했다. 기억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1학년 교실을 둘러보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끼익.

 

아, 그때는 나무 바닥이었지.

 

항상 실내화를 갈아 신고 걸어 다니던 복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려니 어색했다. 결국 나무 바닥에 올렸던 발을 거두고 신발을 하나씩 벗어 손에 들고 천천히 복도를 가로질렀다. 기름칠을 오랫동안 하지 않은 모양인지 나무가 바짝 마른 것 같았다. 걸을 때마다 거슬리는 소리가 텅 빈 학교에 울렸다.

 

아이들 신장에 맞춰 살짝 낮은 창문 너머로 교실 안이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나무와 쇠로 만들어진 책걸상이 나란했다. 4반은 가장 안쪽이다. 2반을 구경하던 고개를 다시 돌리자 저 앞에서 웬 작은 하얀색 다리가 왼쪽으로 사라졌다.

 

“어?”

 

탁탁탁탁.

 

바쁘게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저기, 잠시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지금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걸까? 불러보았지만 가벼운 발자국 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2층으로 올라간 듯 했다. 놓칠세라 황급히 복도를 달렸다. 나무에서 나온 가루인지 먼지인지 알 수 없는 게 풀풀 일어났다. 들여다보려고 했던 4반을 휙 지나쳤다.

 

응?

 

창문 너머로 살짝 보인 4반 가운데에 작고 희끄무레한 것이 얼핏 비쳤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몸은 이미 복도 끝에 다다랐다. 손을 뻗어 계단 난간을 짚었다. 쇠로 만들어진 난간이 차가웠다. 계단 위를 올려다보았지만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조그만 게 빠르기도 하지.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는데 초등학교라 그런지 계단의 높이가 너무 낮았다. 모든 게 어린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는 건물이라니. 학교에 다닐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어 학교에 오니 몸으로 느껴졌다. 당시에는 힘겹게 두 칸씩 올랐던 계단을 지금은 손쉽게 오르며 성큼성큼 2층으로 향했다.

 

 

 

오른쪽에 2학년 교실이 늘어서있는 복도가 있었다. 혹시 그 아이가 있을까 휙 들여다본 복도 저 끝에서 누군가가 막 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만난 모습과 다르게 조금 더 길어진 살색 다리와 하얀 실내화가 보였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깔깔 웃고 있다. 자세히 들어보니 비슷한 높이의 웃음소리가 겹쳐서 울린다. 그 아이보다 앞선 한 명이 더 있는 것 같았다. 어렴풋이 빨리 와. 하는 소리가 실려 온다.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왔으니 이번에는 4반부터 시작한다. 이제 반을 구경할 여유가 없다. 혹시 아이들을 놓치면 어떡하나 걸음이 조급했다. 아무리 아기자기한 초등학교라고 해도 교실이 연달아 네 개가 놓인 복도는 꽤 길었다. 2반 앞을 지나가는데 조금 전 1학년 교실처럼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걸음을 멈추고 복도 창문 안으로 교실을 들여다보았다.

 

“...국화?”

 

국화 꽃 두 송이가 교실 가운데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초등학교에 웬 국화? 보통 죽은 사람 자리에 두는 거 아닌가? 꺼림칙한 나머지 절로 인상이 찡그러졌다. 가운데 자리에 누가 앉았었지. 내 자리였나. 아닌가. 저학년일 때 몇 반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자리는 당연히 알 리가 없었다.

 

빨리!

 

곰곰이 생각을 해보는데 멈춰있는 걸음을 재촉이라도 하듯 복도 저편에서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를 따라 다시 달리다시피 걸어 복도 끝에 다다랐다. 오른쪽을 보니 옆 동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은 복도가 나왔다. 살짝 완만한 오르막인 주황색 고무바닥이었다. 실내화를 신고 걸으면 묘하게 푹신한 느낌이 좋아서 자주 걸어 다녔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양말을 신은 발바닥으로 복도를 타박타박 걸었다. 천장이 낮은 구간이라 발자국 소리가 묘하게 울려 퍼졌다. 시원한 고무 덕분에 발바닥이 서늘해졌다.

 

 

 

복도 왼편에는 컴퓨터실과 도서실이 있었다. 둘 다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안이 잘 들여다보였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역시? 학교에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한 건가? 문득 든 생각에 혼란스러워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도서실을 들여다보고 있자 저 앞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이거 봐라~ 나는 한 번에 두 칸이나 올라갈 수 있다~

 

야아, 나도 올라갈 수 있거든?

 

해봐, 해봐!

 

너 먼저 해봐!

 

복도 끝에 계단이 있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하얀 실내화. 그 아이다. 조금 더 위쪽에 다른 여자아이가 이쪽을 보고 서있었지만 가슴께가 보이는 정도여서 얼굴은 알아볼 수 없었다. 밑에 있는 아이가 계단을 오르기 위해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았다.

 

천천히 도서실을 지나 다가가자 계단에 서서 이쪽으로 몸을 향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민주...?”

 

어릴 적 항상 붙어 다녔던 친구가 3~4학년의 모습을 하고 계단에 서있었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이름을 부르자 휙 쳐다보더니 기억 속 모습 그대로 살며시 웃으면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민주의 맞은편에 있는 아이가 몸을 쑥 밀어 올려 두 계단을 오르는 것과 동시에 민주가 손을 쭉 뻗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가리켰다.

 

학교 앞 동이다. 계단을 올라오지 말라는 뜻인가. 절로 손끝은 따라간 곳에는 4학년 교실이 있는 복도가 이어졌다. 조금 전 있었던 뒤편 동과 다르게 앞 동에는 중앙계단이 있었다. 어? 복도 끝이 아닌 중앙계단을 오르는 슬리퍼 끄트머리가 보였다. 다른 사람이 더 있다.

 

어때? 나도 잘 하지?

 

잘 한다! 그런데 우리 이러다가 늦겠어. 얼른 가자!

 

그래!

 

언니들이 먼저 간 것 같아...!

 

뭐? 아아, 우리가 먼저인데!

 

휙 계단을 다시 보았지만 말을 붙일 새도 없이 민주와 아이는 이미 계단을 다 올라간 뒤였다. 뭐에 늦는다는 걸까. 오랜만에 만나는 민주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른 쪽을 가리켰고 살짝 보인 슬리퍼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결국 망설임 끝에 4학년 복도에 발을 들였다. 이 복도는 특히 자주 지나다녔다. 복도 끝에 계단 뿐 아니라 강당이 있다. 3학년부터 합창부에 다녔기 때문에 연습을 할 일이 생기면 항상 강당에서 모이곤 했다. 오랜만에 온 학교이니만큼 강당에도 들러보고 싶었지만 그 사람이 중앙계단을 올랐기 때문에 놓치지 않으려면 복도 끝까지 갈 여유가 없었다.

 

다시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학교에 울렸다. 4학년 때는 몇 반이었더라.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해보려는데 바로 옆 1반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힐끔 들여다보자 이번에는 복도 창문 바로 곁에 있는 자리에 국화 네 송이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또 국화야...?

 

가까이에서 보니 오래된 것 같지도 않고 방금 누군가가 들렀다 가기라도 한 듯 국화의 상태가 아주 좋았다. 내가 들여다 볼 걸 알고 준비한 것 마냥 싱싱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에 비해 교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적막이 꺼림칙하다. 바로 창문에서 몸을 물렸다.

 

 

 

2반과 3반 사이에 있는 중앙계단 앞에 섰다. 학교에 다닐 때에는 선생님들께서 중앙계단이 아닌 복도 양 끝에 있는 계단으로 다니라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사용하지 못하게 하셨는지 의문이었다.

 

국화를 살펴보는 사이 슬리퍼 주인은 이미 계단을 다 올라간 듯 했다. 복도는 고요했다. 복도와 다른 바닥이라 조심스레 신발을 신고 한 발을 디뎠다.

 

“아, 이래서 다니지 말라고 하신 건가.”

 

지금까지 올라온, 초등학교에서 볼 수 있는 낮은 계단을 예상하고 디뎠건만 흔한 계단이었다. 초등학생에게 맞춘 높이가 아니라 다칠 수 있으니 선생님들이 아예 금지를 시켰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학년 학생들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슬쩍슬쩍 다니긴 했지만 그 정도 신장이면 일반 계단은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자 창문 너머로 뒤편 동이 보였다. 뒤편 동이 조금 더 높은 자리에 지어져서 4층인 앞 동에 비해 한 층이 모자랐다. 학교는 여전히 조용했다. 이 넓은 학교에 나만 있는 것 같았다. 숨죽여도 들리는 소리가 없었다. 하지만 민주 말고도 누군가가 더 있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기 전, 커다란 전신 거울이 나를 반겼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초등학교 건물에 서있는 모습이 꽤 생소했다. 가만히 나를 보고 있자 조금 슬퍼 보이는 눈이 반짝였다. 뭐지? 손을 올려 눈가를 더듬어 봤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불빛이 반사된 걸까.

 

그러고 보니 학교 다닐 때 전신 거울 괴담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이쪽 계단은 올려다보지도 않았던 꼬맹이 시절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제 그런 괴담에 덜덜 떨 나이는 한참 지났지. 잠시 나를 보고 있다가 거울이 나오면 으레 그렇듯 머리를 한 번 정리하고 3층으로 향했다.

 

 

 

5학년 복도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중앙계단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복도 한 가운데였다. 오른쪽으로 가야할지 왼쪽으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다. 꾸물대지 말고 바로 따라갔어야 했나.

 

복도 끝을 번갈아 보았다. 오른쪽 끝은 계단이 있었다. 강당이 2층 높이로 지어진 까닭에 강당이 있는 자리이지만 3층에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없다. 왼쪽 끝에는 마찬가지로 계단과 뒤편 동으로 향하는 통로가 있을 게 분명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통로에 상담실과 보건실이 있는 층이다.

 

어느 쪽이든 계단이 있다. 대체 둘 중 어디일까. 망설이는데 오른쪽에서 조금 더 성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휙 돌아보자 오른쪽 계단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서 하얀 팔이 손을 쭉 뻗고 팔랑팔랑 손짓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보여주지 않으면서 너무 멀어지지 않게 거리를 신경 쓰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지. 망설임 없이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이 층은 또 나무 복도였다. 신발을 벗을 여유도 없었지만 그 편이 나았다. 관리를 하지 않은 나무 바닥은 가시가 올라오곤 했으니까. 이렇게 달리면서 조심할 여유는 없었다.

 

복도 끝 모퉁이를 휙 돌아 계단을 올려다보니 슬리퍼가 휙, 위층으로 사라졌다. 간발의 차이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니, 바로 따라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계단을 몇 칸씩 밟아가며 성큼성큼 올라가자 앞선 발자국 소리가 빨라졌다. 어? 자세히 들어보니 한 명이 아니다. 두 명...? 아니, 그 이상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인기척 없이 다닐 수 있단 말이야? 괜시리 무서워졌다. 당장이라도 따라잡을 것만 같았던 자신 만만한 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4층에 도착했지만 복도에 쉽게 들어서지 못했다. 그 많던 발소리의 주인들은 다 어디로 가고 다시 텅 빈 복도가 나를 반겼다. 벌써 저 반대편으로 갔다고? 조금 망설이긴 했어도 바로 뒤쫓아 갔는데 보이지 않을 만큼 전력질주로 복도를 지나갔다면 4층에 울릴 정도로 큰 발소리가 나야할 텐데 내가 들은 건 가벼운 발소리들과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가 전부였다.

 

슥슥 팔을 쓸었다. 서늘한 느낌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냥 확 계단을 올라가 버리고 싶었지만 초등학교는 4층까지 밖에 없었다. 옥상은 항상 잠겨있었으니 아마 통로를 통해서 뒤편 동으로 넘어갔을지도 몰랐다. 천천히 복도를 밟았다.

 

끼익.

 

내 무게 때문에 나무 소리가 들렸다. 가장 높은 층이라서 6학년이 쓰던 층이다. 이제는 가물거리는 초등학교를 떠올리면 그래도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있는 교실들이다. 6학년은 확실히 기억하지. 1반이었어. 저 멀리 보이는 1반을 보니 담임 선생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졸업한 친구들은 무얼 하면서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터벅터벅 복도를 지나갔다. 초등학생 때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4층으로 올라오는 중앙 계단에 내 그림이 걸려있었는데. 아직 있을까. 복도 한 가운데 멈춰서 몸을 쭉 내밀고 그림이 걸려있던 곳을 확인했다.

 

덜걱.

 

응? 그림이 아직도 있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 저걸 안 내렸네. 움직인 것 같은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그림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중앙 계단으로 내려간 건가? 계단 난간을 잡고 몸을 더 빼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시선을 돌려 그림을 자세히 보니 살짝 비뚤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계단을 들여다 볼 줄 미처 모르고 급하게 걸어놓은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럴 리가 없지. 자의식 과잉이야. 고개를 휙휙 젓고 다시 복도로 돌아왔다.

 

 

 

6학년 2반을 지나 1반 앞에 다다랐다. 6학년 담임 선생님이 화분을 하나씩 들고 오라고 하셔서 창가가 온통 화분으로 가득했었는데. 요즘도 그런가.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자 반대편 운동장 쪽 창가에 화분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흐뭇하게 웃는데 이번에는 맨 뒷자리 책상 하나에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둘 넷 여섯... 여섯 송이네. 설마 6학년이라고 여섯 송이인 거야?

 

부스럭.

 

“헉.”

 

꽃의 개수와 학년의 상관관계를 알아차리고 놀라는 것과 거의 동시에 교실 안에서 소리가 났다. 창문 바로 근처다. 재빠르게 뺨을 창문에 거의 붙이다시피 대고 옆을 확인하자 창문이 있는 벽 바로 곁에 숨을 죽이고 찰싹 붙어있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아주 짧은 정적 사이 시선이 오고 갔다. 커다랗게 뜬 눈동자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응시했다.

 

“뭐, 뭐야!”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거리며 창문에서 물러났는데 시야 오른쪽에 크고 작은 동그란 모양의 이상한 것들이 들어왔다.

 

하하하!

 

드르륵.

 

아하하!

 

들켰다!

 

드르륵, 탁.

 

뛰어!

 

잡힐지도 몰라!

 

하하하!

 

지나온 2, 3, 4반 앞문과 뒷문에서 머리만 내밀고 1반을 들여다보는 나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왔다. 그것들이 벽에 붙어 숨죽이면서 교실을 지나치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 신발장 앞에 주저앉아 둘 씩 짝지어서 달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드르륵.

 

아하하!

 

1반도 앞문과 뒷문이 열리더니 교복을 입은 학생 둘이 뛰쳐나와 옆 교실 학생들을 따라 오른쪽 복도 끝으로 달려갔다.

 

몇 명인지 모를 사람들이 복도 끝을 돌아 내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사라지는 걸 다 보고나서도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았다. 놀란 가슴이 마구 뛰었다. 싸늘하게 피가 식었던 손이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초등학교인데 몇 명은 중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어. 너무 낯익은 복장이라 한 눈에 알아봤다. 대체 여긴 뭐지.

 

 

 

하얗게 질린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보면서 진정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왼쪽 모퉁이 너머 통로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찹. ...찰딱. 착. ...챡.

 

아주 천천히 뭔가가 걷고 있었다. 맨발로 고무를 밟는 것 같은 소리였다. 천천히, 천천히.

 

이쪽으로 온다.

 

허둥지둥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무엇인지 몰라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마주치지 않고 이 학교에서 나가고 싶다. 내가 일어나려는 기척을 눈치 챘는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빨라졌다.

 

...챡. 챱. ...챡챡. 챱챡챡챡챡챡챡챱챡챱챡챡.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온다. 튕겨나가듯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왔던 복도를 되돌아갔다.

 

쿵쿵쿵쿵.

 

달리는 소리 때문에 복도가 시끄럽게 울리는 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뒤에 있는 그것이 모퉁이를 돌았다. 나를 발견했다. 이쪽으로 온다.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리 길지 않았던 복도가 주우우우우우욱 늘어난다. 달려도, 달려도 마치 제자리를 걷는 것 같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데 등 뒤에 그것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나를 잡으려고 손을 뻗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쪽!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과 동시에 아득했던 복도가 순식간에 짧아진다. 계단이 있는 모퉁이에서 누군가가 손을 뻗는다. 하얀 손이 손가락을 쭉 뻗고 기다리고 있었다. 낚아채듯 손을 잡았다. 번쩍 고개를 들어 보니 민주였다. 어릴 적보다 얼굴이 조금 더 달라졌고 처음 보는 교복을 입고 있다.

 

다행이다. 겨우 찾았네.

 

웃는 얼굴은 어릴 때하고 똑같다. 방금 전까지 뒤쫓아 오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어?”

 

보고 싶었어. 이러다가 우리 순서 놓치겠다. 얼른 가자.

 

“뭐? 어디를? 무슨 순서?”

 

보드라운 손이 나를 끌어당겼다. 홀린 듯 위층으로 가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더 올라가도 갈 곳이 없는데.

 

참, 너 지금 몇 살이지?

 

민주가 휙 돌아보며 물었다.

 

“나? 열아홉.”

 

맞게 찾았네. 너를 꼭 만나고 싶었거든.

 

민주가 내 손을 잡고 한 계단을 먼저 통통 튀듯 올라간다. 꽤 즐거워 보였다. 한 손은 난간을 짚고 한 손은 민주에게 잡힌 채로 열심히 달려서 힘이 다 빠진 다리를 애써 움직여 계단을 올랐다. 옥상은 위험하다고 막아놓았을 텐데.

 

“어?”

 

분명 4층까지밖에 없었던 학교인데 처음 보는 5층이 나타났다. 놀라서 걸음을 멈추려고 하자 민주가 다시금 내 팔을 잡아당겼다. 어딘가 들떠있는 표정이 자꾸만 걸음을 재촉했다.

 

“우리 학교에 5층 없었잖아.”

 

마지못해 다음 계단을 오르면서 민주를 보자 그게 뭐가 문제냐는 얼굴을 한다.

 

없었지. 이 5층은 내가 다니는 고등학교 5층이야.

 

이게 무슨 소리지? 너무 태연한 말투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초등학교와는 다른 바닥과 창틀. 다른 건물이 확실했다. 나는 와본 적도 없는 학교였다. 당연했다. 민주는 중학교까지 나와 같은 곳을 다니다가 부모님의 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다. 고등학교도 그쪽에서 진학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 그 뒤로 만난 적이 없다. 지금 내 팔을 잡고 있는 건 아마 나와 같은 열아홉 살의 민주인 것 같았다.

 

복잡한 머리 때문에 인상을 쓰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랐다. 마침내 옥상으로 향하는 커다란 철문 앞에 도착한 민주가 망설임 없이 문고리를 잡았다.

 

“잠겨있지 않아?”

 

무슨 소리야. 잠겨있다니? 여기서 얼마나 재미있는 걸 하는데.

 

힘을 줘서 돌리자 문고리가 스르륵 돌아갔다. 평생 잠겨있는 줄만 알았던 옥상 문이 스르르 열렸다. 녹슨 경첩이 마찰하는 소리가 날 법도 하건만 거슬리는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때문에 손을 들어 가렸다. 살면서 처음 올라와보는 옥상 저 끝에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흐릿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직 안 늦었나봐. 다행이다. 가자!

 

민주도 옥상 저편을 확인하더니 뛸 듯이 기뻐하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뭐 하러 가는 건데?”

 

쨍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밝은 옥상을 나란히 가로지르며 물었지만 민주는 보면 안다면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옥상은 살면서 처음 올라와 봤다. 할머니 댁에 있는 단독주택의 낮은 옥상을 빼고 이런 건물의 옥상은 올라갈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옥상 어디를 둘러봐도 난간은 없었다. 이렇게 높은 건물인데. 바닥에서 아지랑이가 울렁울렁 일어났다. 옥상 끝에 다가가니 웬 나무 널빤지가 걸쳐있었다. 그 옆에는 상담실에 있었던 2인용 소파가 나란히 줄을 서있는 게 꼭 주차를 해둔 것 같은 모양이었다.

 

와아, 딱 우리 차례다.

 

“뭐?”

 

너 설마 몰라? 우리 학교에서 가장 유명한 거잖아.

 

“저 소파가?”

 

아이 참. 소파라니. 저걸 타면 날아다닐 수 있잖아. 정말 몰라?

 

그냥 상담실 소파랑 똑같이 생겼는데 저걸 타면 날 수 있다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으니 우리 앞에 줄을 서있던 학생들이 소파를 하나 골라 등받이를 당겨 널빤지 위로 올렸다. 꼭 다이빙대 같았다. 소파 무게 때문에 흔들거리는 모습이 위험해보였다. 저러다가 널빤지 두 동강 나는 거 아니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주는 다음이 우리 차례라며 신중하게 소파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런 민주를 한 번, 어느새 소파 위에 앉은 학생들을 한 번 쳐다보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휙 뒤를 돌았다.

 

안녕!

 

먼저 갈게! 안녕!

 

“어?”

 

내가 앉아있었다. 내가 맞나? 나와 민주가 나란히 앉아서 나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민주는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내 머리카락은 길었다. 작년 말에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는데. 고등학교 2학년의 나다.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민주도 마찬가지로 나를 향해 잘 지내라며 작별 인사를 한다.

 

“저기...!”

 

뭐라 말을 붙이기도 전에 소파가 출발했다. 민주와 내가 고개를 돌려 앞을 본다. 살면서 처음 보는 내 뒤통수였다. 소파는 어떤 장치도 붙어있지 않았는데 혼자 잘도 움직였다. 그 무게에도 용케 부서지지 않는 널빤지 위를 매끄럽게 달리더니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정말 소파가 날잖아? 하하하! 파란 하늘로 멀어져가는 둘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좋겠다! 좀 도와줘.

 

눈이 부신 것도 잊고 멍하니 바라보는데 민주가 나를 불렀다. 쳐다보자 역시 상담실 소파 같은 것의 등받이를 붙잡고 낑낑거리고 있었다. 다 똑같이 생긴 소파인데 굳이 한 쪽 구석에 있는 걸 끌고 온다. 힘들어 보여서 일단 다가가 소파 등받이를 잡았다.

 

“나는 안 타고 싶은데...”

 

뭐? 왜?

 

소파는 보기보다 쉽게 움직였다. 옥상 바닥에 끼익끼익 소파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무서워서...”

 

아까 애들 타는 거 봤잖아. 재미있을 거야.

 

민주가 나를 달래 듯 등을 두드렸다. 한 손을 놨을 뿐인데 갑자기 소파가 엄청나게 무거워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러다가 우리 순서를 놓칠지도 몰라. 이게 마지막 기회인 걸!

 

민주도 물러날 생각은 없어보였다. 내 등을 두드리던 손을 내리고 다시 등받이를 잡아끌자 소파가 스르르 움직였다. 널빤지 앞에 소파를 가져다 댔다. 민주가 폴짝 뛰어 소파에 앉더니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소파는 꽤 푹신해보였다.

 

자, 가자.

 

여전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리는데 등 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등 뒤를 본 민주의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헉. 우리 순서 놓치면 못 탄다니까? 얼른!

 

민주가 뻗은 손을 애타게 흔들었다.

 

챱... 챱...

 

민주를 만나기 전 들었던 발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목 뒤가 서늘해졌다. 그게 기어코 옥상까지 따라왔구나. 민주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나는 오늘 처음 만난 고등학교 3학년 민주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챱착챱챱착착.

 

뒤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빨라졌다. 민주의 손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쥐고 옆자리에 앉았다. 내내 햇볕 아래 있던 가죽소파인데 하나도 뜨겁지 않았다. 푹신함이 온 몸에 따뜻하게 감겼다.

 

와! 출발한다!

 

민주가 외쳤다. 소파가 널빤지 위로 올라섰다. 이젠 내릴 수 없다. 점점 더 속도를 붙여 널빤지 끝을 향해 달려간다. 맞바람이 얼굴을 마구 때려서 숨 쉬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그건 뭐였을까. 무심코 등 뒤를 바라보았다.

 

안 돼!

 

소리치며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오는 내가 보였다.

 

어?

 

사복을 입고 있다. 머리카락이 어깨 언저리에서 찰랑거린다. 이쪽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길이가 모자랐다. 널빤지 바로 곁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끌어안고 주저앉아 몸을 들썩인다. ...울고 있나?

 

내가 시선을 떼지 못하자 민주가 마주 잡은 손을 살짝 당겼다. 다시 앞을 보았다. 파란 하늘이 눈앞에 가득했다. 긴 널빤지를 달려 소파가 하늘 위로 붕 떠올랐다.

 

“저, 정말 날잖아?!”

 

그렇다니까! 내가 말 했잖아!

 

민주가 잔뜩 신난 얼굴로 마주 잡은 손을 흔들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민주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맨발 너머로 학교 운동장이 보였다. 황토색이어야 하는 운동장에 커다란 꽃이 핀 듯 피가 얼룩덜룩 묻어있다.

작은 아이들부터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피가 엉겨 붙은 소파들과 함께 운동장에 수북하게 쌓여있다.

머리가 터져 뭔가가 쏟아져 나오고 관절들이 절대 돌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기괴하게 꺾인 조각들이 가득했다.

 

“민주야...?”

 

히히히.

 

입이 찢어져라 웃는 민주를 쳐다본 것과 동시에 몸이 뚝 떨어졌다.

 

 

 

✴✴✴

 

 

 

“헉!”

 

이불을 확 걷었다. 땀에 절은 몸이 불편했다. 다리에 엉겨붙어있는 이불을 슥슥 밀어 침대 밑으로 치워버렸다.

 

“휴...”

 

키도 다 컸는데 왜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난리야... 꿈의 여운에 한동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숨을 골랐다. 지금 몇 시지... 주말인데 너무 일찍 일어난 거 아니야? 평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나가니 쉬는 날은 조금이라도 더 자둬야 한다는 보상심리가 만만했다.

 

띵.

 

그때 휴대폰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더듬더듬 손을 뻗어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부고를 전합니다]

[김주형의 자녀상]

[빈소: ○○장례식장]

[발인: 00월 00일]

 

“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살면서 처음 받아보는 문자였다.

 

보고 싶었어.

 

너를 꼭 만나고 싶었거든.

 

이게 마지막 기회인 걸!

 

먼저 갈게! 안녕!

 

꿈속에서 들었던 민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윙윙 울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뺨을 타고 뚝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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