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2021.08.09 18:5108.09

01.

 

“전우의 시체를 오늘도 넘어야죠. 그럼 또 연락할게요, 선배.”

 

그의 둥글넙적한 얼굴에 순진한 웃음이 퍼져나갔다. 송충이 눈썹이라는 별명을 가진 정우는 덩치는 산만해서 언제나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다녔다. 그의 웃음을 끝으로 영상은 정지되었고 얼마 안 가 화면이 꺼졌다. 에스테는 한숨을 푹 내쉬며 조종대의 의자에 걸터 앉아 생각했다. 녀석과 연락이 끊긴 지 벌써 반나절이 넘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쯤이면 할당량을 마치고 선배들에게 먼저 퇴근하겠다며 익살스러운 메시지를 보낼 때였다.

 

에스테의 우주선 창문 너머로 지구와 국제우주정거장이 발하는 각양각색의 불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격렬히 타오르던 산불이 가까스로 꺼진 뒤, 절망처럼 펼쳐진 잿더미 속에서 동시에 피어난 꽃들처럼. 정우를 향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산만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언제나 넋을 잃게 된다. 하지만 속절없이 감탄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오늘따라 에스테는 그에게 할당된 데브리(debris : 우주에 떠돌아다니는 쓰레기 혹은 폐우주선의 잔해들)의 양을 채우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믿을만한 정보원으로부터 구매한 정보에 따르면, 이 궤도 근방은 십 년 전 우주여객선이 충돌해 승객들 전원이 사망한 곳이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범우주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탑승했던 것도 아니었을뿐더러 저가로 운영되는 우주항공사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에 언론들은 이 안타까운 사건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아무도 이곳까지 와서 데브리 회수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꽤나 값나가는 것들을 독차지할 기회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고철덩어리 하나도 안 보이냐. S급 정보라고 해서 비싸게 산건데.”

 

 

에스테는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태평양 시간 기준으로 복귀까지 고작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데브리 회수 일은 한번 출장을 나가면 기본으로 두 달은 우주 어딘가에서 생활하며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버텨야 한다. 기본급여는 두 달 치로 산정이 되고 거기서 초과되면 수당이 지급되는 형태다. 급여는 보험료나 세금을 빼도 꽤 괜찮은 수준이긴 했다. 그러나 복귀 이후에는 너덜너덜해진 우주선을 반드시 센터에 맡겨 점검해야만 했고 그 비용은 상당했다. 다른 분야의 우주선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데브리 회수 작업은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엔진을 가동하기 때문에 과부하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고용과 동시에 지급되는 싸구려 우주선을 수리하고 개조하는 것과는 별개로 여분의 보조엔진을 구매하는 것도 고려해야만 했다. 카드빚과 할부금에 대한 고민이 없는 데브리 회수 기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에스테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이전 출장에서 손상된 우측 날개를 수리하느라 빚이 껑충 뛴 상태였다. 수당을 더 늘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그 순간, 에스테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자신의 우주선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의 폐우주선 더미였다. 빠르게 굴러가는 에스테의 눈동자만큼 그의 손과 발 역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살았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우주선의 엔진이 최대보다 조금 작은 출력을 내며 빠르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폐우주선은 허리 부분이 두 동강 나 있었다. 손상되기 전의 모습을 가늠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난파된 우주여객선의 잔해로 보이지는 않았다.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우주 여객선은 하단부에 엔진이 달려 있다고 들었다. 눈앞에 놓인 부서진 우주선에는 그 상단부에 작은 엔진이 매달려 있었다.

 

‘음, 어쩌면 이 잔해는….’

에스테는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으로 샛노란 머리카락을 배배 꼬며 생각했다.

 

불행한 운명을 맞이한 동료가 남긴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다. 딱히 슬퍼하거나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한 달 동안 업계 종사자들 중 0.2%가 회수 작업 중 사고로 실종되거나 죽어버리니까. 얼마 안 되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데브리 회수 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약 천만 명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이야기는 좀 더 무거워진다. 그 때문에 데브리 회수 조종사들 사이의 인사는 정우가 에스테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말과 같았다.

 

‘오늘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돌아오자’고.

 

우주라서, 우주이기 때문에 쓰레기나 시체가 서로 모여있지 않고 떠돌아다닌다는 점에 에스테는 안도한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온다며 지구를 나선 여행객들의 죽음이 슬플까, 우주 쓰레기를 치우다 미처 피하지 못한 쓰레기 더미에 부딪쳐 실종된 기사들의 죽음이 슬플까. 여행객들의 죽음이 많을까, 기사들의 죽음이 많을까. 아무래도 죽음은 평등한 쪽에 가깝긴 하려나.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두 종류의 죽음 사이에는 분명 이상한 선이 그어져 있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삶과 죽음이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벤트라고 여겨지는 삶. 에스테는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렇게 죽어나가도 인간은 여전히 많다는 거고. 그래서 요즈음엔 인간의 생명이 가치 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에스테는 두 동강이 나버려 상단의 일부만 떠돌고 있는 폐우주선의 잔해에 가까이 다가가 분석을 시작했다. 오래된 녀석이었다. 자신의 회수용 우주선에 달린 집게발을 이용해 반감기를 살펴보니, 족히 반세기도 전에 박살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에스테는 갑작스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마주치지 않아야 할 것을 본 것만 같아 속이 메슥거렸다. 폐우주선 잔해의 수치는 분명 오십 년의 세월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디자인이나 엔진의 형태가 에스테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최근의 모델과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정확히 에스테와 에스테의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급된 소형 데브리 회수 우주선의 모습과 일치했다. 군데군데 색이 바래고 상단만 절단된 채로 남아있어, 우주선 후미에 적힌 모델명과 조종사의 이니셜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에스테 자신의 우주선과 같은 모델이었다.

 

시체가 조종간에 남아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에스테의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우주선의 잔해를 발견했을 때는 그와 연관된 기록이나 기억은 캐지 않는 것이 데브리 회수 기사들 사이에서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오로지 돈이 되는 고철이나 아직 멀쩡하게 쓸 수 있을 만큼 덜 손상된 엔진, 혹은 인간의 시체에 삽입된 인공 장기, 장신구 등과 같은 것을 입 다물고 모두 쓸어 담아야 했다. 죽은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만약 살았다면 나와는 어떤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회수 기사들로 하여금 쓸데없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었으니까.

 

우주에서 죽은 이상, 살아있던 모든 것들은 그저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으로 남겨질 터였다.

 

에스테는 집게발을 이용해 우주선 하단부에 대롱대롱 매달린 회수용 컨테이너, 일명 ‘쓰레기통’에 폐우주선의 잔해를 담기 시작했다. 굉음을 내는 집게발을 바라보다 에스테는 우주선의 메시지 수신함을 확인했다. 정우에게는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사실 별일 아닐지도 모른다. 정우는 단지 소처럼 일하다가 먼저 제 우주선에서 곯아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속없고 남에게 퍼주기만 하는 스타일 같아도 정우는 성공하려는 욕심과 집념으로 가득 찬 녀석이니까. 내일이면 그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나를 비롯한 선배들에게 깜찍한 이모티콘을 보내며, ‘일찍 일어나는 업자가 시체 더미에서 보물을 더 빨리 캐는 법이지’ 같은 괴랄한 메시지를 보내며 킬킬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에스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폐우주선 데브리를 모두 쓰레기통에 담고 나니 갑자기 긴장이 풀려왔다. 그는 천천히 궤도를 따라 자신의 우주선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을 천천히 유영할 수 있도록 엔진의 시동을 꺼버렸다. 아주 잠깐은 괜찮을 것이다. 적어도 가시거리 안에는 에스테의 우주선을 제외하고 이렇다 할 물체의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다리를 쭉 뻗고 양 손아귀를 꽉 쥔 채, 눈을 감았다. 이름도 모르는 우주선 주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고개를 돌리자 불빛이 잦아든 지구와 여전히 만발한 불꽃들로 뒤덮인 우주 정거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 언젠가, 영원히 손에 닿지도 못할 것처럼 느껴지던 별의 형태로.

 

 

 

 

 

 

 

02.

 

에스테가 일주일 전에, 그러니까 지구 달력으로 7월 26일에 운 좋게 회수했던 폐우주선의 잔해에서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멀쩡한 부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꼬박꼬박 잔고에서 빠져나가는 할부금과 밀린 카드값의 일부를 너끈히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금액이 그 쓰레기 더미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문제는 정우가 실종됐다는 사실이었다.

 

“믿을 수가 없어. 고작 일주일 전만 해도 그 녀석 우주선을 봤단 말이야. 안정적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어. 반가운 마음에 몇 번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렸더니 금세 나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우주정거장 한 귀퉁이에 조성된 데브리 우주선의 기항지에서, 출장을 마친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스케줄이 끝난 기사들 대부분은 술에 취한 것 같았다. 다양한 감정들이 그들 사이에서 파도처럼 너울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정우의 실종에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그런 이들을 위로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제 막 정산을 끝내고 사무실에서 나온 에스테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며 수군거렸다.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지. 기사들 죽어나가는 게 어디 하루이틀이야? 게다가 그 선머슴같이 덩치만 큰 년이 매번 이 구역 데브리들을 싹 쓸어가니까, 우리는 제대로 된 수당도 못 받았잖아. 잘 됐지, 뭐. 눈엣가시 하나 없어졌다고 호들갑 떨 필요 없어.”

 

“이봐, 입 조심해. 그년 마누라 저기서 똥 씹은 표정 하고 있잖아.”

 

에스테는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다 헛소리다. 질투와 시기로 가득 찬 이들의 열등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저런 이들은 무시하면 된다. 반응하지 않으면 관심을 거둘 것이다.

 

“다들 정산하기 전에 각자 쓰레기통 한 번씩 뒤져봐. 그년 시체라도 있으면 제 마누라한테나 던져주게.”

 

“근데 이번에 에스테 크게 한 탕 친 것 같던데. 의심스럽지 않아? 사실 그 선머슴이 실종된 것도, 에스테가 작업한 거 아니냐고. 무섭다, 무서워. 다들 마누라한테 잘 해! 호시탐탐 지 남편 등 처먹을 생각에 기회를 엿보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에스테는 곧장 킬킬거리는 남성 기사들 사이로 뛰어들어가 자신을 ‘마누라’라고 지칭한 기사의 멱살을 왼손으로 잡아채고는 오른손에 쥔 스패너를 그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향해 휘둘렀다.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기우뚱하며 쓰러지자 여타의 기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에스테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에스테는 수없이 많은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정우를 선머슴이라고, 그년이라고 말한 남자들의 관자놀이만을 집요하게 쫓았다.

 

 

 

 

경찰 조사가 끝나고 앰뷸런스가 몇몇 기사들을 태우고 사라졌다. 에스테는 피떡이 된 몰골을 한 채, 한사코 의료진의 권고사항을 거절하며 오직 숙소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만을 표현했다. 저 차에 타서 깨지는 건 내 몸이나 정신뿐만이 아니라 두 달 동안 고생해서 번 돈까지 전부 깨질 것이 분명해. 에스테는 생각했다. 데브리 회수 기사들에게 적용되는 의료보험은 없으니까.

 

에스테는 예전에 정우가 크게 다쳤을 때를 떠올렸다. 오 년 전, 정우가 세 번째 출장을 나섰을 때였다. 아직 모든 것이 새로웠던 정우는 초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 의욕이 넘쳤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 혈안이었다.

 

‘이런 건 초반 기선제압이 중요해요, 선배. 조금 무리해서라도 인간들 기를 죽여놔야 나중에 찍소리를 못한다니까. 아, 물론 우리 에스테 선배한테 뭐라 그러는 건 아니지만.’

 

정우는 정거장 기항지에서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큰 목소리로 떠들었고 이에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는 선배 기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정우는 개의치 않았다. 실제로 정우는 첫 출장부터 쓰레기통을 가득 채워 돌아왔다.

 

기사들은 각자 구한 정보들로 자유롭게 데브리를 찾아 떠나곤 한다. 때로는 서로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구역의 데브리를 회수하다 시비가 붙는 경우도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우는 첫 출장 이후로 언제나 선배들의 타깃이 되곤 했다. 못된 선배들 중 몇몇은 정우가 회수 작업을 하러 가는 곳만을 졸졸 따라다니며, 집게발로 위협을 하거나 정우가 다 해체해놓은 데브리를 훔쳐 꽁무니를 빼곤 했다. 정우는 그러나 그런 악의적인 행동에 맞대응하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의 몫을 빼앗아갔다면 다른 데서 할당량을 채우면 된다며 더 부지런히 움직이곤 했다. 에스테는 그런 정우가 한심했다. 에스테는 반드시 싸워 부당하게 빼앗긴 몫을 되찾아야만 그날 밤에 다리를 뻗고 잠을 자는 타입이었다.

 

정우가 다치게 된 건, 엄밀히 따지고 보면 다른 기사들의 괴롭힘 때문은 아니었다.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동료의식이 강하기에, 어떤 기사가 데브리를 회수하는 와중에 소행성을 비롯한 데브리와 부딪칠 위험이 있으면 서로 연락을 취하며 경고를 해주는 편이다. 그런데 정우는 아무래도 그들의 ‘동료’가 아니었나 보다. 궤도에 오른 작은 쓰레기 파편이 정우의 우주선 하단을 강타할 때까지 아무도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정말로, 아무도 정우에게 다가오는 파편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걸고넘어질 수 있는 건, 엔진에 불이 붙은 채로 궤도를 이탈해 우왕좌왕하는 정우가 보낸 구조 요청을 근방 40만 킬로미터 거리 근처에 있던 기사들 중 아무도 받지 못했다는 거였다. 그동안 매일 같이 정우의 스케줄을 달달 외워가며 그의 꽁무니만을 좇던 인간들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추진장치가 부서진 정우는 어디론가 흘러가던 와중 이름 모를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표류하다 삼주일 만에 구출되었다. 탈수가 심한 상태였고 불안 증세까지 보이고 있었다. 진상조사는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정우에게는 조종 미숙을 이유로 세 번의 출장금지 처분이 내려졌다. 거진 열 달 간 수입이 없는 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정우는 쉬이 병원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보험회사는 부상과 사망 위험이 높은 데브리 회수 기사들이 자사의 보험을 드는 것에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쫓아버리곤 했으니까. 아무런 연고가 없는 정우가 홀로 병원비와 입원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까닭이다.

 

정우가 에스테를 특히 따르며, 가까워지게 된 건 그 무렵부터였다. 에스테는 여전히 그때 자신이 왜 그의 병원비를 내주었는지 의아해했지만, 어쩐지 그러고 싶었다. 그 이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출장이 끝나고 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당연했고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다 함께 잠들기도 했다. 출장 기간이 겹칠 때면 매일 같이 서로에게 연락을 보내곤 했다. 정우에게 이번 출장은 벌써 60번째였고 에스테에게는 125번째였다. 서로의 출장이 겹친 건 이번으로 열 번째였다.

 

 

 

정우, 어디에 있을까.

 

그저 실종일 뿐이다. 우주에서의 실종은 죽음과 동의어라는 걸 에스테 역시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정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사람이 아니었다. 정우는 강했다. 보통의 남성들보다 큰 키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비겁한 녀석들이 떼거리로 몰려와 린치를 가해도 정우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이나 반응을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

 

정우가 마냥 억센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정우는 눈물이 많았고 다정했다. 에스테는 언제나 정우의 곁에 있어주지는 못했지만, 그가 살고 싶지 않아질 때마다 정우는 항상 그의 옆에 있었다. 에스테가 데브리를 회수하며 사람의 흔적을 마주할 때마다, 기도하는 듯 짧게나마 애도의 표현을 하는 것도 정우에게 배운 것이었다.

 

‘그냥 하는 거예요, 선배. 나나 선배도 언제나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섭고 슬퍼져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된다면 그 사람도 나처럼, 나를 위해 기도해 주길 바라요.’

 

에스테의 밝은 갈색 눈동자에 희뿌연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대체. 너 때문에 지금 내 몰골이 이게 뭐야. 네가 어디서 욕을 먹는 걸 듣고 내가 앞뒤 안 보고 성난 짐승처럼 달려나가는 걸 네가 봐줬어야지. 네가 내 상처를 만져줬어야지.

 

에스테는 꺽꺽거리며 모두가 사라진 기항지 한복판에서 울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온몸에 난 상처를 움켜쥔 채,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에스테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회수한 데브리의 값을 매기며 초과수당을 지급하는 사무실 직원인 에디였다.

 

“슬퍼하는 와중에 미안한데 네가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 에스테.”

 

까무잡잡한 피부에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을 지닌 멕시코계 한국인인 에디는, 필터까지 타고 들어간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사무실에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회색 점프슈트를 입은 작달막한 그가 유일하게 정우와 에스테가 일터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남성이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에디는 에스테의 우주선과 분리된 쓰레기통의 해치를 열어, 이미 부품별로 분해를 마친 폐우주선의 잔해를 보여주었다. 옅은 수염으로 뒤덮인 에디의 입꼬리가 계속해서 불안한 듯 씰룩거렸다.

 

“왜, 뭐가 이상한데. 보고서에 올린 내용이랑 목록이 달라?”

 

“그게 아니고, 저길 봐봐.”

 

에디가 검지를 들어 가리킨 곳에는 색이 바랜 아마포에 덮인 무언가가 놓여있었다. 죽은 사람이었다. 아마도 이 우주선을 조종했던 인물일 것이다. 그러나 에스테는 의아했다. 시체라면 하루에도 수천 개를 바라보고 분류하는 에디의 눈에 특별하게 다가왔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였다. 우리들의 동료거나, 신원이 확인된 고위 관료자일 것이 분명했다.

 

에디는 절뚝이는 에스테와 보폭을 맞춰 걸어가며 말을 이었다.

 

“네가 쓰레기통을 열 때부터 이상했어. 이건 우리 회사에서 지급한 보급용 우주선이야. 틀림없어. 게다가 모델도 몇 개월 전에 교체된 최신형이지. 그런데 네가 확인했듯, 반감기를 따져보면 적어도 60년 정도는 전에 파손된 우주선이란 말이야.”

 

에디는 의문의 시체 앞에 섰다. 에스테는 멍하니 에디와 시체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문득 창자가 뒤틀리는 것처럼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토하고 싶었다, 처음 이 폐우주선을 발견했을 때처럼. 에디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에스테는 맞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에스테는 에디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을 택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시간 여행이라도 한 우리 동료란 말이야?”

 

에디는 말을 멈추고 에스테를 지그시 바라보다 아마포 천을 천천히 내려 시체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귀를 덮지 않을 만큼 짧게 쳐낸 흰머리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한 노인이었다. 굉장히 키가 컸지만, 정우만큼은 아니었다. 정우와 비슷한 골격인 것 같았지만 거의 정우의 할머니 뻘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정우야.”

 

늙은이의 시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입만 벌리고 있는 에스테를 향해 에디가 말했다.

 

 

 

 

 

 

 

 

 

 

 

03.

 

정우는 올해로 스물다섯이었다. 누워 있는 시체의 모습은 못해도 육십 세는 훌쩍 넘겨 보였다. 에디의 단호한 말을 듣고도 에스테는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물끄러미 에스테의 눈을 바라보다 에디는 말했다.

 

“나도 믿을 수 없었지. 그런데 묘하게 정우의 얼굴을 이 시체에서 볼 수 있었어. 노파심에 회사에 등록된 기사들의 생체정보랑 이 시체를 대조해보기도 했어. 지문, 홍채, DNA는 물론이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에스테는 가늠할 수 없었다. 실종된 지 고작 일주일 만에 정우가 이렇게 늙어버릴 수가 있을까. 우주에서 생계를 이어가기 전까지, 저 거대한 하늘 위에서는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일어날 거라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결국 우주마저 지독히도 사람 사는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거의 똑같은 나날들이 이어졌다. 몇몇 풍경들은 지구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아름답고 충격적이었지만 125번의 출장과 귀환을 반복하며 에스테에게 쌓인 건, 지구의 노동자가 경험할 수 있는 지루함과 초조함 그리고 흐르는 시간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고독한 시간들도 결국 흘러가고 그 인내의 끝에는 삶이 있었다. 밟을 땅이 있었고 조금은 탁하지만 걱정 없이 마실 수 있는 공기가 있었고 별다른 설명 없이 꽉 잡을 수 있는 정우의 손이 있었다. 굳은살 투성이의 돌덩이처럼 딱딱한 손이었지만 에스테의 작은 손을 전부 감싸 쥘 수 있었던 따뜻한 손. 농담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했어. 감히 우주에서 무언가 다른 일이 일어나길 바라면 안 되는 거였어.

 

에스테는 누워 있는 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주름지고 검버섯이 침범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크고 친절해 보이는 익숙한 다섯 마디의 손가락들. 이자를 내가 아는 정우라고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정우임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에디가 보여준 수치는 전부 정확했다.

 

“… 이제 어떡할 거야?”

 

에디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어떡할 거냐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보통 나는 출장이 끝나면 어떻게 했지. 지구로 돌아갔지. 이번에는 좀 가벼운 발걸음일 거라 생각했어. 매번 지구로 향하는 귀환선에서 들떠 있던 정우에게, 창피하다고, 조금 진정하라고 쏘아붙이던 핀잔도 이번엔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를 다시 볼 수 있을까 노심초사했던 일주일 동안 많은 계획을 세워놨다.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에스테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땅에 떨구었다. 에디는 기름으로 더러워진 장갑을 벗고 에스테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에스테는 그의 손을 잡은 채 얼마 간 생각에 잠긴 듯했다. 메슥거리던 속과 누군가 쥐어짜는 것 같았던 창자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에스테는 고개를 들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한데, 정산 좀 빨리 해줘. 되도록 빨리.”

 

 

 

 

 

 

 

 

04.

 

에스테는 별들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중국의 국제우주정거장인 ‘톈궁’이 그의 고향이었다. 에스테의 부모가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정거장에 상주하며 일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태어났을 수도, 우주 관광을 위해 머무른 잠깐 사이에 누군가 즐긴 여흥의 결과물이 에스테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에스테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에스테에게는 그를 죽지 않게 돌봐준 동료들이 있었다. 정거장에는 언제나 고아와, 지구로 돌아가지 못한 난민들, 신분을 지우고 스스로 드넓은 정거장 어딘가에 자신을 내던진 망명자들로 넘쳐났으니까.

 

에스테라는 이름은 정거장에서 만난 짧은 머리의 어떤 언니가 지어준 이름이다. 에스테의 밝은 갈색 눈을 보며 자신이 탐사를 다녀온 행성과 너무나도 닮았다면서, 그 행성의 이름을 붙여주었다. 우주의 어둠보다 새까만 그의 머리칼은 아이러니하게 인간이 만든 어떤 불빛보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구걸과 소매치기로 살아오던 에스테에게 글을 가르쳐주고, 신분증명서나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에스테를 시스템에 몰래 집어넣어 준 사람이기도 했다.

 

‘너 국적 어디로 할래?’

 

에스테는 지구에 어떤 나라가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에스테는 그저 언니를 닮고 싶어서, 언니와 같은 국적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언니는,

 

‘그래? 그럼 우리나라로 하자. 거긴 지구가 아니거든. 네 눈이랑 똑같은 연갈색의 땅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야.’

 

에스테는 생각했다. 언니의 이름을 알았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내게 스쳐갔고 부모와도 같았던 그 언니의 존재 역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매번 기름때가 가득 묻은 얼굴과 손을 들고, 무너져가는 숙소에서 숨죽이며 에스테에게 돌아온 언니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깨달았던 건 잔인하게도 언니의 사인이 무엇인지 에스테가 깨달았을 때였다.

 

‘…의 유일한 가족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너로구나, 에스테. 네 앞으로 남긴 유산이 꽤 많아. 이것저것 복잡한 행정은 아저씨가 맡아서 도와주마. 명복을 빈다.’

 

언니의 동료인 것 같은 남자가 어느 날, 에스테에게 다가와 비보를 전했다. 언니는 데브리 회수 중, 실종된 지 한 달이 지난 후에 사망처리되었다고 했다. 에스테는 물었다. 언니가 발견한 행성인 ‘에스테’를 알고 있냐고.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언니의 고향은 어디냐고. 그러자 남자는 말했다.

 

‘…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과대망상증이 심한 환자였어. 어린 시절에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미쳐버렸다는 건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야. …는 어엿한 집도, 부모도 있는 사람이었어. 자신이 만든 상상 속에 자신을 가두기 전까지는. 어쨌든 걱정은 마라. 그 이외에 별다른 거짓은 없는 사람이었으니.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짐을 챙기자. 너처럼 어린아이가 무법천지인 우주 정거장에서 굴러다니도록 둘 수는 없으니. 분명 …도 그걸 바랄 거야.’

 

 

 

 

 

새까만 망망대해에 있다 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구나, 라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아무래도 많이 외롭고 불안한가 봐. 적어도 언니가 내 인생에서 사라진 이후로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손에 꼽으니까.

 

에디의 도움으로 길게는 일주일 이상 걸리는 정산을 반나절 만에 마친 에스테는 곧장 우주로 향했다. 두 달간의 급여와 수당을 모두 우주선 수리와 개조, 그리고 여분의 연료를 구매하는 데 사용했다. 에디는 에스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의 결정은 번복시키려 노력했지만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냥 가설일 뿐이야, 가설. 우연히 저 우주선의 항해 로그를 검색해봤을 뿐이라고. 난파된 우주선이 주는 정보에는 오류가 있다는 걸 너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 아냐, 에스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 공교롭게 겹쳤다. 늙은 정우가 타고 있던 우주선의 기록 일지를 살펴보니, 우주선이 마지막으로 운행을 했던 날은 에스테가 그 우주선을 발견한 날, 7월 26일이었다. 게다가 이전의 기록은 전부 소멸되고 없었다. 수상해. 마치 이전까지의 기억을 누군가 억지로 잘라내 버린 듯이. 어찌 됐건 그때까지는 살아 있었다는 뜻이다. 아주 잠시나마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함께 숨을 쉬었다는 말이다. 에스테가 머물렀던 그 시간대와 좌표에서 정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모르는 방사성 물질의 부작용으로 급속도로 나이를 먹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에디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에스테에게 전했다.

 

“그… 장소에서 정말 많은 실종 사건들이 있었어.”

 

에디가 파일 하나를 에스테에게 전송해 주었다. 그가 들렀던 좌표에서 일어난 각종 실종사건과 추돌사고를 에디가 직접 연대별로 정리해놓은 파일이었다. 에스테가 정보를 샀던 십 년 전의 우주여객선 사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비록 실종된 것이 아니고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긴 했으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승객들 중 극히 일부의 시신과 우주선 잔해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주에서 시신을 찾을 수 없는 게 대수겠냐만.

 

“이 끔찍한 일들을 정리해놓은 이유는 단 하나야. 나 역시 정보원으로서 이 장소를 소개해 주고 수수료를 받기 위해서였지. 사고가 많은 곳일수록 치울 쓰레기도 많을 테니까. 그런데 모든 데브리 회수 기사들은 허탕만 치고 돌아왔어. 나는 겁쟁이들이 직접 그곳에 가지도 않고서, 많은 사람들이 죽은 곳이라 께름하니까 거짓말을 치는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웬걸. 모두들 그곳에서 일주일 이상을 머무르며 콩고물을 찾아 헤맸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이 시간만 낭비했던 거야. 그 좌표계에서 뭔갈 발견하고 기항지까지 가져온 건 에스테, 네가 처음이야.”

 

처음.

이런 상황에서 처음이라는 말이 에스테의 가슴에 찌르듯이 다가왔다. 에디가 자신을 우쭐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건넨 것은 아니겠지만, 처음이라는 말은 어쩐지 에스테를 쑥스럽게 했다.

 

 

 

 

 

 

‘우와, 이렇게 많은 양의 데브리를 가져온 사람은 처음 봐요. 선배 진짜 대단한 사람이잖아?’

 

정우는 두 번째 출장이 끝나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정산을 하고 있는 에스테에게 말을 건넸다. 그를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우의 감탄은 호들갑과 곁들여져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늘에 붕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눈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본다느니, 멀리서 봐도 선배의 우주선과 조종간에 앉아 있는 선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느니. 긴 여행 끝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행성을 드디어 발견한 사람의 심정을 알 것 같다느니. 대체 어디서 배워 온 말솜씨인지. 사람의 온기를 못내 그리워하면서도 사람과의 관계나 친밀함을 경계했던 에스테에게, 정우는 갑작스레 그의 코를 간질이는 봄날의 꽃가루 같았다. 감추고 숨기고 싶어도 어쩔 줄 모르게 튀어나오는 눈물처럼.

 

어느 날은 정우에게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에스테는 이미 자신의 어린 시절을 정우에게 털어놓은 뒤였다. 기브 앤 테이크라는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정우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자신을 알기 이전의 정우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하던 차였다. 그러자 정우는 웃으며 이야기했다.

 

‘특별한 얘기는 없어요. 그저 사고로 부모를 잃었을 뿐예요.’

 

우주 여객선 사고였단다. 그놈의 여객선 사고는 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의 행복과 유년기를 빼앗아간 건지. 애초에 인간이 우주를 목표로, 계속해서 꽁무니에서 불을 뿜어대며 날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까 의문이 들었다. 이카루스 같잖아. 바빌론 같고. 그렇지만 이카루스나 바빌론의 사람들도 몰랐겠지. 자신들이 어리석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그 모든 것을 이뤄내기 직전인 자기 자신을 더 믿었을 거야.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 없었어요. 네 살인가, 다섯 살 때라서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게다가 살아남은 이들 중 어린아이는 저밖에 없었고요. 살아남긴 했지만 사실 내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그때 그냥 부모랑 같이 죽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매일 밤 했어요.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 죽지는 못했지만요.’

 

그때 네가 죽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살아갈 용기를 내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고 직접 목소리를 내어 말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저 아무 말 없이 품을 내어 정우를 안아줬을 뿐이다. 에스테는 은은한 샴푸 향이 배어 나오는 머리칼에 코를 대었다가 분내 나는 그의 귓불과 뒷목덜미에 입술을 대며 조금씩 떨리고 있는 정우의 감정들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무런 경계 없이 그저 누군가에게 안겨 있을 수 없는 삶에 대해서 나는 잘 안다고, 그런 삶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와중에 나는 어느새 네게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인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며, 에스테는 정우를 온몸으로 껴안은 채 밤을 보냈다.

 

또다시 주책없이 눈물이 흐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과거가 되었다는 사실이 에스테에게 일그러진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그때, 에디가 통신을 켜 에스테에게 주의를 주었다. 검정 잉크 한 방울이 물 한 잔을 뒤덮듯, 정우와의 추억도 우주의 어둠에 의해 사라지고 있었다. 에스테는 두 손을 펴 양 볼을 찰싹 때린 뒤에 우주선 조종대에 다시 손을 올려놓았다.

 

“어쨌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좌표계의 근방 몇 백만 킬로미터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돼. 그런데 내가 우연히 발견한 게 있어. 어쩌면 이게 실마리가 될지도 몰라.”

 

에디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의 웃음에는 감출 수 없는 불안함이 담겨 있었다. 에디의 초조해하는 눈동자가 에스테의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

 

“회사에서 공유한 정부 내부 문서에서 찾은 건데, 그 좌표에서 닫힌 시간적 곡선이 발견되었어.”

 

-“닫힌 시간적 곡선? 그게 무슨 뜻이야.”

 

에디는 조금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는데 네가 가져온 우주선을 계속 분석해보니까, 양자… 중력이… 해서… 수도 있단 거야…”

 

에디의 목소리가 조금씩 끊기기 시작했다.

 

“에디, 통신이 불안정해. 무슨 말을 하는지 안 들려.”

 

-“…블랙…동시에 존재하는…그러니까…조심…”

 

조심이라는 말을 끝으로 에디와의 통신이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에디에게서 전해 온 불안이 에스테에게도 조용히 싹트기 시작했다. 수십 번이 넘는 출장을 나가며 단 한 번도 통신이 불안했던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이곳이 그렇게 데브리 회수 본부로부터 먼 곳도 아니었다. 에스테는 통신기를 두들겨보기도 하고 재부팅 해보기도 하며 다시금 교신을 시도했지만 헛수고였다. 괴괴한 정적만이 선내를 감돌았다.

 

에스테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있을 때,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에스테의 귀에 일정한 리듬으로 울려펴지는 건조한 기계음이 가득 차고 있었다.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에스테와 그의 우주선을 삼키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거대한 우주 여객선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05.

 

여객선은 운행이 정지된 상태였다.

 

에스테는 데브리 회수 우주선을 여객선 가까이에 바싹 붙였다. 그러고는 미세한 해체 작업을 하기 위해 구비된 유영용 우주복을 입고 여객선을 향해 밖으로 나섰다. 용접기를 이용해 조종석을 강제로 열자, 수없이 많은 물품들이 여객선 바깥으로 빨려나가기 시작했다.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시체만이 안전벨트에 걸려 있었다.

 

죽었다. 한참 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에스테가 억지로 문을 열고 들어온 지 몇 초 만에 시체들은 창백해지고 얼어붙기 시작했지만 잠시 동안은 피부가 변색되지도 않았고 아직 온기가 가득했다. 이 여객선인 듯했다, 비싼 돈을 주고 구매했던 정보의 주인공이. 에스테는 의아했다. 이렇게나 커다란 철골이 다가오는데 그 어떤 기척도 느낄 수가 없었다니. 회수 우주선에서 알리는 경고음도 갑작스럽게 울렸을 뿐이다. 보통은 반경 50km 안에 부딪칠 위험이 있을 때 울리곤 하는 경고음이었다.

 

승객들 중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사고가 났길래, 이렇게 멀쩡한 외형을 가진 채로 운행을 멈춘 것일까. 구매한 정보에는 분명 충돌로 인한 사고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디를 돌아봐도 소행성이나 데브리와 충돌한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승객실로 이어지는 해치를 열고 들어가자 각 좌석마다 이미 산소호흡기와 간이 우주복이 승객들 머리 위에서 튀어나와 대롱거리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를 착용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 있거나 평온하게 잠에 든 것처럼 고루 앉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중력 유지 장치가 고장 났는지, 승객들의 몸이 조금씩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 역시 허리께에 단단히 잠겨진 안전벨트에 의해 억지로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각양각색의 머리칼과 넥타이 혹은 목걸이가 잔잔한 물속에 잠긴 듯 떠오르고 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제는 자유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손뼉를 치며 좋아할 상황이었다. 죽은 이들의 소지품은 전부 정산할 필요 없이 먼저 발견한 기사가 가질 수 있었으니까. 암시장에서 더 값비싸게 팔 수 있는 것들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이렇게 아무런 손상 없는 여객선을 해체해 차곡차곡 담아 간다면 얼마나 짭짤한 수당을 받을지 기대가 될 만했다.

 

맨 뒷좌석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아이를 마주치기 전까지 에스테의 기대는 이어졌다. 아이는 허공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입을 벌린 채 앉아 있는 여자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몸을 들썩거리고 있었다.

 

우는 것 같았다. 너덧살 쯤 되었을까. 작은 몸집, 밤하늘처럼 새까맣고 긴 머리칼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혹은 검게 타오르는 불덩이처럼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 시체들 더미에서 유일하게 의지를 가진 채 아래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이와 에스테뿐이었다. 에스테는 손을 뻗었다. 아이의 등을 토닥이고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기 위해서. 아이의 몸에 에스테의 손이 닿기 직전, 에스테는 또다시 메슥거림을 느꼈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구토가 쏟아져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의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는 처절하고 슬픈 소리였다. 에스테는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목 끝까지 차오르는 구토감을 참으며 아이를 왼쪽 옆구리에 들고 달렸다. 조종석에 이르기 전에 유아용 우주복을 아이에게 입히고는 산소를 가득 채워 넣었다. 아이는 에스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랐는지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참아.”

 

에스테는 자신의 고독한 여정에 아이를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조종실에 들어가자 조종석 뒤편에 사람 한두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만한 구명정의 입구가 보였다. 에스테는 여전히 눈을 똑바로 뜬 채, 겨우 숨을 내쉬고 있는 아이를 조종실 바닥에 눕혀놓고는 구명정으로 들어가 좌표를 입력했다. 지구로. 이 아이를 지구로 보내야 해. 그렇지만 지구라고 해도 어디로? 이 아이를 좋은 사람이 거두어 줄까? 못된 놈들이 이 아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지 않을까? 이 아이를 감히 물건처럼 사고 팔지는 않을까?

 

그때 에스테의 머리에 스친 인물이 있었다. 에디. 그래, 에디에게 보내야겠다. 에디에게는 미안하지만 에디는 분명 이 아이를 잘 챙겨줄 거야. 우주 정거장으로 보내자. 이 아이가 나와 같은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곳엔 고아를 챙겨줄 만한 사람들이 있을 거야. 나도 그렇게 자랐으니까. 괜찮을 거야. 괜찮아. 살아남을 수 있을 거야. 이런 곳에서도 혼자 살아남은 아이인걸.

 

구명정의 설정을 마치자 구명정이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에스테는 아이를 들고 내려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공황에 빠진 아이를 향해 이야기했다.

 

“얘, 정신 차려. 넌 이제 살았어. 네가 언젠가 죽지 않고 내던져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미안해. 하지만 적어도 이건 명심했으면 좋겠어. 네가 살아갈 용기를 낸다면, 누군가는 너로 인해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네가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분명 나타날 거야.”

 

그러자 아이가 눈을 돌려 에스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눈물에 젖은 동그란 눈이 에스테의 눈을 찾아 헤매다 조용히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스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아이는 어쩐지 에스테를 향해 고개를 한번 수줍게 끄덕인 것 같았다. 에스테는 그에 답해 웃음을 지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에 에스테는 아이를 한 번 힘껏 안았다. 두툼한 우주복들 사이에서 온기가 서로에게 전해질 리 만무했지만 어쨌든 에스테는 그렇게 했다. 그러고는 구명정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이윽고 굉음을 내며 구명정이 뒤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에스테는 조용히 작은 구명정이 더 작아져, 후에는 엔진의 불꽃이 아주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엔진이 멈춘 여객선의 조종실을 떠나지 않았다.

 

 

 

 

06.

 

‘미안해요, 선배. 그치만 나 아직 선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정우는 얼마간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에스테의 품에 안겨 나지막이 말했다. 오 년 전, 정우가 이름 없는 행성의 궤도에서 탈수와 불안 증세를 안고 구출된 이후에 에스테는 그의 곁을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다. 병원비와 생활비가 속절없이 에스테의 빈약한 잔고를 휩쓸고 지나가도 에스테는 정우를 따라 두 번의 출장을 고사했다. 돈은 다시 벌면 돼.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쓰라고 돈을 버는 거야. 에스테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정우를 향해 부러 자신만만하게 말하곤 했으나 불안은 손끝과 발끝에서 먼저 느껴지곤 했다. 잠든 정우로부터 등을 돌려, 잔고를 확인하고 대출을 알아보는 밤이 길어지고 있었다.

 

다시금 에스테가 출장을 나갈 수 있었던 건 정우가 털어놓은 속내 때문이었다. 마침 에스테 역시 더 이상 수입이 없는 상태를 견디지 못해서 정우에게 이야기를 건네려던 참이었다.

 

‘제 우주선에 불이 붙어서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점점 떨어지고 있을 때, 솔직히 저는 제가 한심했어요. 큰 소리 뻥뻥 치던 제가 당연히 마주하게 될 결말이 이런 건가 싶기도 했고요.’

 

에스테는 손사래를 치며 그건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입술이 달싹거릴 때, 정우는 단호한 눈빛으로 자신이 계속 말을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아니면 이런 생각도 했어요. 여객선 사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이가 받지 못한 벌을 여기서 받는 건가. 누군가 구해준 값진 목숨을 더 의미 있게 사용하지 못하고, 나를 홀로 남겨둔 부모를 원망하고, 나를 구해준 누군가의 호의조차 원망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닌가 하고요.’

 

정우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그동안의 불안과 공황에 의해서 터져 나오다시피 시작된 이전의 울음과는 달랐다. 에스테가 보기에 정우의 눈물은 그간 정우 자신을 옥죄었던 죄책감과 외로움이 만들어낸 썩은 감정들을 내보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잔여물로 보였다.

 

‘불안은 어떤 행성의 중력에 이끌려 하루하루를 빙빙 돌기만 하던 그 몇 주 동안 자라났어요. 이전까지는 분노와 슬픔밖에 없었는데 그때부터는 기억이 저를 지배했어요. 보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선명해지던 어린 날의 기억이요. 죽은 엄마와 아빠. 도와달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날이 생생했어요. 비좁은 데브리 회수 우주선 안에서 보낸 그 몇 주간은 불안함에 몸을 떨고 있던 어린 날의 저와 단둘뿐이었죠.

 

나를 구해준 그 사람이 희미하게 생각났어요. 우주복을 입고 있어서 이목구비가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를 작은 구조 우주선에 태워주며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요. 조금만 참으라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분명 찾을 거라고요.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단호하고 명확하게 얘기했어요. 몇 살이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말투와 목소리는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에스테는 그 누군가에게 갚지 못할 빚을 진 것만 같았고 동시에 약간의 질투가 났다. 정우로 인해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기에. 정우는 배시시 웃으며 에스테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근데 우주선에 갇혀서 그 사람이 해준 말을 되뇔 때마다, 선배가 생각나는 거예요. 그 사람의 목소리가 마치 선배의 목소리 같았고 그 사람의 단호한 말투가 저를 진정시키는 선배의 말투 같은 거 있죠. 진짜… 평생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난 뒤부터 오로지 선배 생각만 했어요. 정신을 잃기 전까지도 아마 조금 있으면 선배가 나를 깨워주리라는 생각에 빠져 있던 것 같았고요.

 

그리고 전 제 직감을 믿었죠. 눈을 떴을 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에스테 선배를 바라보면서 아, 이렇게 멋없는 재회를 상상한 건 아니었는데 싶었지만요.’

 

 

 

 

 

에스테는 멍하니 끝없는 우주를 바라보았다.

목표로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스테는 자신이 구한 아이를 떠밀고 우주선으로 돌아와 이 근방을 얼마간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정우와 나눴던 대화들이 떠올랐다. 그러고는 이곳저곳에 아무렇지 않게 흩어져 버린 모든 조각들이 조금씩 제 짝을 찾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에스테는 확신했다. 자신은 정우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고. 자신의 삶은 노년기의 정우를 발견하고, 유년기의 정우를 구출하며 결국 자신이 그리워하는, 자신 옆의 정우는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에스테는 또한 떠올렸다. 지난 시간 동안, 미치광이에 의해서 길러졌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인 채, 스스로의 삶을 저주했던 나날들을. 그러자 그가 에스테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건넨 말들이 갑자기 머릿속에서 선명하고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네 이름은 에스테야. 내가 발견한 행성의 이름이거든? 너랑 정말 닮았어.’

 

그리고 그의 말은 자신이 들었던 다른 말과 겹쳐졌다.

 

‘눈이 이렇게 맑고 아름다운 사람은 처음 봐요. 정말 과장이 아니라, 멀리서 봐도 우주선에 앉아 있는 선배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럴 땐, 뭐랄까 그런 느낌이에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지의 행성을 드디어 발견한..? 행성 탐사원들은 모두 이런 느낌을 받을 게 분명해요.’

 

두통이 일었다. 에스테는 모든 걸 쏟아내고 싶었다. 자신의 뇌를 입으로 뱉어내고 싶었다. 희미했던 유년기의 기억이 발광했다 점멸하며 자석처럼 현재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에스테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짚으며 조금씩 선명해지는 과거의 한 시점을 바라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끊임없는 두통이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군 채로 바닥을 응시하는 순간, 에스테의 귀에 어떤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유일한 가족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너로구나, 에스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것저것 복잡한 행정은 아저씨가 맡아서 도와주마. 명복을 빈다.’

 

자신과 함께 살았던 미치광이 언니가 죽은 이후, 복잡하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해결해 주고 홀연히 떠난 아저씨. 에스테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근원을 좇았다. 누군가 에스테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색이 다 바랜 점프슈트, 필터 끝까지 태운 담배를 물고 있는 곱슬머리의 왜소한 노년의 남성.

 

그건, 에디였다.

 

에스테는 소리쳐 에디를 부르려 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 꽉 막힌 듯, 새된 신음소리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안다, 알아. 얼마나 슬프겠니.’

 

그게 아니야, 에디. 나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 에스테는 온 힘을 다해 그를 잡으려고 했지만 그는 너무 멀리 떨어져 에스테를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에디는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듯 말을 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일단 짐을 챙기자. 너처럼 어린아이가 무법천지인 우주 정거장에서 굴러다니도록 둘 수는 없으니.

 

 

분명 정우도 그걸 바랄 거야.

 

 

 

07.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정도의 시간이었다. 태양도, 달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숫자만을 믿고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에 인간은 너무도 감각적인 존재라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어쩌면 정우도 이런 시간들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미치지도 않았고 거짓말쟁이도 아니었다. 언니는, 아니 정우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선배라고 불렀던 그 정우였다. 정우는 실종된 게 아니라 에디가 말한 시간 곡선에 휩쓸린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렸던 나를 만난 것이다.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삶.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널 찾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에스테는 중얼거렸다. 이 거짓말 같은 퍼즐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있었다. 시간은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기어코 정우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연기처럼 정우가 소멸되거나, 자기 자신이 소멸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에스테는 정거장으로 돌아왔다. 식량도 부족했고 연료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기항지에서 에디를 찾았으나 에디는 없었다. 대신에 낯선 얼굴을 한 누군가가 에스테를 맞았다.

 

“에스테..? 그런 이름은 없는데요. 본인 맞아요?”

 

익숙한 사무실에서 에디가 하는 업무를 낯선 얼굴을 한 흑인 여성이 담당하고 있었다. 에스테가 에디의 존재를 묻자, 그는 웃으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했다.

 

“본사가 세워지고 나서 나는 여기서 쭉 일했어요, 에스테. 전임자는 없었어요.”

 

에스테는 직감했다. 시간 곡선에 빨려 들어간 건 정우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리도록 피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아무도 없구나. 정우도, 에디도 없어. 에스테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작게 떨리는 에스테의 어깨를 누군가 토닥이기 시작했다.

 

 

 

 

08.

 

“에이씨, 쪼잔한 혼혈놈.”

 

거구의 백인 남성이 점프슈트를 입은 남성의 멱살을 잡더니, 이내 거칠게 내려놓고는 사무실을 떠나갔다. 잠시 비틀거렸던 에디는 덤덤한 얼굴로 옷을 턴 뒤, 태블릿에 이름을 기록했다. 에디는 불만사항을 기재했다. 지시사항 불이행과 차별금지법에 반하는 모욕적인 언사. 이런 이들은 언제나 있었다. 형편없는 쓰레기들을 가져와 놓고 비싼 값의 수당을 바라는 염치없는 이들. 수없이 많은 불만사항을 기재해봤자 변하는 것 없었지만 그렇다고 에디 혼자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이렇게 형식적일 뿐이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에디는 만족했다. 그럼에도 목덜미까지 벌게진 스스로의 흥분과 분노를 억제하는 데 아직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님에도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내비치는 혐오는 언제나 그의 심신을 갈가리 찢는 것 같았다.

 

“왜 가만히 있어요?”

 

이미 자신의 키까지 훌쩍 커버린 아이가 말했다. 몇 년 전, 기항지로 날아들어온 작은 구명정에서 발견한 아이였다. 당시에 아이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에디는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미아보호소나 보육원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사방에 문의를 넣으며 갑자기 제 손에 맡겨진 혹덩어리를 빠르게 치워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에디는 알고 있었다. 이 어린 동양인 여자아이가 믿을만한 증명서나 자격 없이 내던져질 세상이 얼마나 차갑고 비참하게 다가올지.

 

무엇보다 아이는 정우와 에스테를 생각나게 했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에디 역시 얼추 알고 있었다. 자신보다 더했다면 더할 고통을 느끼며 살아왔을 친구들. 이제는 둘 다 자신 곁에 없다. 실종된 정우와 그를 찾으러 떠난 지 몇 년이 지났음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에스테. 그들은 먼지처럼 사라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누군가 거추장스런 먼지를 털고 불며 우주로 보내버린 것처럼.

 

“긁어 부스럼 만들 바에야 좋을 것 없어. 저 인간 한 명 잘렸다고 달라질 게 있을 것 같니. 결국 똑같은 놈으로 채워져. 매일 같이 실종되고 죽는 게 기사들인데, 또 매일 같이 보충되는 소모품이 바로 기사들이야.”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에디는 답했지만 아이는 잠자코 이 주제에 대해서 대화를 끝내길 원치 않는  듯 했다.

 

“분하잖아요. 저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요. 아저씨가 잘못한 거 없잖아요.”

 

에디는 피식하며 웃음이 나왔다. 에스테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배알도 없는 친구라며 그 자리에서 에디에게 무례한 언사를 행한 기사와 바로 주먹다짐을 하던 녀석. 가끔씩은 에스테를 떠올리게 하는 이 아이에게, 어른답지 않게 기대고 싶기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이미 많은 혼란과 외로움으로 자기만의 짐을 가지고 있을 아이였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아이의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에디에게 주어진 건 고작 회사에서 제공하는 데브리 회수 기사들의 정보뿐이었으니까. 아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내어주고 옷을 입혀주며 아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얼마 간 아이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에디가 제공하는 것을 받기만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렀다. 에디는 에스테와 정우를 찾기 위해 집에 와서도 조사를 계속했다. 웜홀에 대한 조사를 할 만큼 전문적인 지식이 풍부한 것은 아니었으나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이론과 사례를 이용해 에디는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둘은 실종되어 우주 어딘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웜홀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무것도 에디가 밝혀낸 것은 없었다. 그 사실이 에디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정우야.

 

의자에 앉아 기지개를 켜며 에디가 무심코 내뱉은 혼잣말에 반응한 것은 아이였다. 아이는 쪼르르 다가와 그의 곁에 서서 귀를 쫑긋 세웠다. 정우. 두 음절을 말할 때마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아이의 이름은 정우가 되었다. 아이를 정우라고 부르면 부를수록, 그러면서 아이의 키가 한 뼘씩 자랄수록 본래 에디가 알던 정우에 대한 기억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우를 찾아 떠난 에스테의 기억 역시 에디의 안에서는 뽀얗게 먼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요, 아저씨처럼은 살지 않을 거예요. 빡치는 게 있으면 빡친다고 말할 거고, 억울한 게 있으면 얻을 때까지 치고받을 거라고요.”

 

정우는 한껏 에디에게 쏘아붙이고는 먼저 나간 백인 남자와 다를 것 없이 문을 쾅 닫고 나갔다. 에디는 정우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저 또다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 아이가 저렇게 당당하게 커 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낯을 가리는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곧잘 예의 바르게 행동하던 아이였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에디의 일터에 눌러앉아 스스로 무언가를 찾고 공부하기 시작하더니 저렇게 딱 부러지는 아이가 되어주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 정우는 웬만한 어른들은 내려다볼 만큼 키가 컸다. 그에 비해 에디는 하염없이 쪼그라들었다. 정우는 다른 무엇보다 우주로 나아가는 것을 꿈꿨다. 언젠가 에디가 이다음에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었을 때, 운명의 장난인지, 정우는 데브리 회수 기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에디가 이유를 묻자 정우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찾아야 될 사람이 있어요. 난 분명히 기억해요. 나를 구해준 그 우주인을 반드시 찾을 거예요. 그 사람이 얼마나 늙었든, 얼마나 멀리 있든, 설령 죽었다고 해도.’

 

그렇게 정우는 수십 번의 출장을 다녀왔다. 에디가 혹시 몰라서 남겨 놓았던, 어린 시절의 정우가 타고 착륙한 낡은 구명정에 입력된 출발 지점의 좌표계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125번째의 출장을 끝으로.

 

 

 

 

09.

 

“할머니는 또 망루에 나가 계시니?”

 

루디는 자판을 두드리다 안경을 내려놓고 이제 막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손녀에게 물었다. 손녀는 대충 그런 것 같다며 대꾸하고는 제 할 일을 찾아 그의 시야를 벗어났다.

 

이제껏 잊은 채로 잘 살아가는 것 같더니 요새 다시 병이 도진 모양이라고 루디는 생각했다. 루디는 이십 년 전, 오래된 데브리 회수 우주선을 이끌고 돌아온 에스테를 떠올렸다. 약간의 탈수 증세와 불안 증상이 겹쳐져 있던 에스테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잠에서 깨곤 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여자였다. 지문도, 홍채도, 여타의 생체정보도 회사의 기입된 기사들의 정보와 일치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셈이었던 그에게 어쩐지 루디는 마음이 쓰였다. 능숙하게 우주선을 조종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지역에서 데브리 회수 일을 하다 그만 길을 잃은 여성인 것 같았다. 어느새 샛노랬던 머리카락은 세월을 몸소 보여주듯 하얗게 세었고, 형형히 빛나던 밝은 연갈색 눈동자는 흐릿한 안개가 끼었지만 그만큼 에스테의 악몽과 불안도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서로를 의지해가며 오랜 세월을 함께 했건만, 아직도 에스테에게는 루디가 이해할 수 없는 미련이 남아 보였다. 에스테는 기항지 가장 높은 곳에서 아무런 말 없이 하루 종일 우주만을 바라보았다. 루디가 직접 찾아가면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곁으로 돌아오곤 했지만 에스테는 조금씩 이십 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루디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사다리를 타서 망루에 올랐다. 감자수프가 식기 전에 데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망루 끝에 다다른 루디의 눈에 에스테는 없었다. 이이가 또 무슨 변덕이 올랐나 싶었다. 다른 장소를 찾았을까. 우주가 좀 더 잘 보이는 곳으로 간 것일까. 그때 망루 뒤편에 있는 기항지에서 우주선의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작은 소형 데브리 회수 우주선이 미약한 불빛을 뿜으며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루디는 아무 말 없이 데브리 회수 우주선이 기항지를 떠나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정거장을 뒤덮는 불꽃놀이가 조금씩 어둠을 향해 나아가더니 작은 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자그마치 이십 년이 흘렀고 오늘은 7월 26일이었으니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루디를 사랑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손녀인 루시아 역시 그랬다. 하지만 에스테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에스테 이외의 사람들에게는 존재한 적도 없던 사람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러나 에스테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십 년 전, 유일하게 자신의 우주선에 입력되어 있던 좌표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우주는 참을 수없이 고요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에스테의 우주선 창문 너머로 지구를 닮은 행성과 우주정거장이 발하는 각양각색의 불빛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격렬히 몰아치던 파도가 가까스로 잠잠해진 뒤, 길을 잃은 배를 향해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등대의 불빛처럼. 이제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정우를 향한 그리움 때문에 아프지는 않았지만, 이 순간에 이르자 주름진 에스테의 눈두덩이로 눈물이 한두 줄기씩 길을 내기 시작했다. 기대해선 안되는 만남을, 그럼에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에스테는 원망했다.

 

그는 다리를 쭉 뻗고 양 손아귀를 꽉 쥔 채, 눈을 감았다. 그는 천천히 궤도를 따라 자신의 우주선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을 천천히 유영할 수 있도록 엔진의 시동을 꺼버렸다. 아주 잠깐 사이에 죽을 수 있다면. 그리고 나도 너처럼 발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오래 잠에 들었을까.

 

에스테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에스테의 귀에 일정한 리듬으로 건조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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