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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창귀 (관찰사 이제팔)

2021.08.07 16:5008.07

 

이제팔은 경상 관찰사로 울산으로 가려는 중으로 충주를 지나는 중이었다. 월악산의 산자락을 넘어가다 말먹이와 배곯음을 참지 못하고 마을의 향리를 찾아가려 하였다. 되돌아가려던 그의 앞으로 자락이 색을 바꾸어 계절을 바꾸니 선선하던 가을이 대뜸 살벌한 동짓날로 변하는 것이다. 눈이 나리는 산중을 지날 수 없어 시중을 드는 아이와 산을 헤메다 왠 여자가 그들을 불렀다.

 

이 이야기는 월악산의 자락이 계절을 바꾸어 산을 헤메게 된 경상 관찰사 이제팔의 짧은 기록에 관한 것이다.

 

 

 

 

 

저 여자를 믿습니까.

 

이제팔은 흔들리는 말의 위로 짐짓 기침을 하였다. 찬 기운이 들이찬다. 딱쇠의 눈동자가 의심을 비치나 눈이 그칠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달리 수가 없지 않느냐.

 

이제팔은 앞서 걷는 여인의 걸음을 지켜보았다. 눈이 옅게나마 쌓이고는 있어 흙이 질척이는 것이 걱정되어 이제팔은 이르었다.

 

마을은 아직 멀었소?

 

여인이 걸으며 답하였다.

 

이제 곧 입니다.

 

곧 가니 숲의 자락이 닿는 끝의 벼랑으로 집이 한 채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혼자 지내는 것입니까.

 

여인이 부뚜막을 뒤지고 마른 가지들을 메어 불쏘시개를 쏘시니 연기가 피어 온기가 코끝으로 올라왔다. 밖은 언제고 눈보라 달리고 있어 칼바람이 거세게 들이고 날았다. 이제팔은 초가 안으로 들어 보따리를 풀었다.

 

염치가 불구하지만 신세를 지겠습니다.

 

여인이 뜨거운 물을 떠다 대접하였다.

 

사사로운 것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날씨가 그치면 길이 보일 겝니다.

 

이제팔이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달리 어린 딱쇠는 꼿꼿이 서 집으로 한 발치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얘야, 너도 들어와 쉬거라.

 

여인이 말하나 딱쇠가 그쳐 말하며 고성을 질렀다.

 

싫습니다!

 

여인이 재차 물었다.

 

거기 있으면 얼어죽을 것이다.

 

싫습니다!

 

그러면 거기 있겠느냐.

 

눈이 쌓이고 땅이 하얗게 덮여가고 있다. 이제팔은 호롱을 켜 붓을 들어 글을 썼다. 마을들의 기록과 사람들의 생활상을 남기었다. 월악산의 예기치않은 계절들을 써내려갈 즘 여인이 뀡과 산토끼를 잡아 고깃국을 끓여 내오니 이제팔은 고요한 설산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는 어디있소?

 

어떤 아이를 말하십니까.

 

나와 있던 아이말이오.

 

여인이 말을 하지 않는다. 이제팔은 뛰쳐나가 주위로 고개를 돌리었다. 밖은 아득히도 하얬다. 가득 덮인 눈으로 짐승의 발자국하나 보이지를 않는다.

 

아이는 어디있소.

 

여인이 말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어디있소!

 

이제팔이 호통을 치니 잠잠하던 하얀 자락으로 거친 콧바람이 눈을 해치었다. 이제팔이 등을 돌려 보니 초가만한 덩치의 범 하나가 이빨을 드러내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 죽었구나.

 

이제팔은 그리 짐작하였다. 그런 범의 앞으로 여인이 몸을 당겨 팔을 벌리고 절을 올렸다.

 

신령 님, 오셨나이까.

 

범은 여인에게로 다가가 코를 킁킁대고는 곧게 허리를 피어 이제팔을 보았다. 다리가 굳어 움직일 수가 없던 이제팔은 눈을 감았다. 여인이 말하였다.

 

이 자는 산자락을 넘다 길을 잃었습니다.

다음 날로 길을 내어 보내겠습니다.

 

무겁고 깊은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범은 그 자리에서 몸을 돌려 제 길을 건너 모습을 감추었다. 여인이 이제팔을 불렀다.

 

아이는.....

 

저것이 무엇이오!

 

이제팔이 고함을 치듯 이르었다.

 

저 분은 이 자락을 지키는 신령 님입니다.

 

어찌 범을 섬깁니까!

사람을 삼키는 신령이 어디 있소!

 

여인이 곧게 선채로 눈을 맞아 답하여 주었다.

 

저 분은 사람을 삼키지 않습니다.

 

이제팔은 숨을 먹었다. 우리를 속였구나. 곧 범에게 먹이로 바쳐지겠구나. 이제팔은 그리 생각하여 눈을 발로 해치어 초가를 빠져나갔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여인이 그를 불렀으나 이제팔의 귀에는 여인의 부름이 들리지 않았다.

 

딱쇠야, 딱쇠야!

 

아이를 부르며 눈자락을 해매던 이제팔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니 내리막을 굴러 눈더미로 박히었다. 칼을 쳐들어 주위로 휘두른다. 눈더미에 나온 이제팔의 눈에 든 것은 빈 마을이었다. 자락과 계곡들 사이로 사라진 마을이 몇 있다고는 하나 마을의 크기가 커 이제팔은 기억을 더듬었다. 이 정도의 마을이 비었다면 필시 변고가 있었을 터. 이제팔은 곧 그 범에게 까지 생각이 닿았다.

 

그 범에게 당했구나.

 

그리고 이제팔의 뒤로 깊은 콧김 소리가 들려왔다. 그 범이 뒤로 자욱을 남기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팔은 칼을 들었으나 진정이 되질 않았다. 이제팔이 겁을 먹은 사이 범이 그의 목덜미로 불쑥 달려들었다.

 

 

 

 

 

 

이제팔은 초가에서 깨어났다. 마루로 제 몸이 뉘어있었고 여인이 찢어진 옷을 꿰고 있었다. 이제팔은 잠긴 목으로 사정을 물었으나 겁을 먹어 혀가 말린 탓인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 여인이 대신 말을 자았다.

 

신령 님이 있어 다행입니다.

신령 님이 보아 다행입니다.

신령 님을 만나 다행입니다.

 

여인은 이제팔이 만난 범을 모시고 있는 듯 보였다. 이제팔이 딱쇠에 대해 물으려 하자 여인이 어찌 알았는지 아이에 대해 말하였다.

 

눈이 나리고 밤이 깊어가는 데 집으로 들어오지 않으려 해.

사당으로 데려갔습니다.

아이는 평안하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범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 범의 것보다 깊고 어두운 소리였다. 여인은 얼굴 색을 달리하여 서둘러 방으로 이제팔을 들이고 문을 닫아 걸었다. 여인은 손발을 떨며 염을 외듯 신령 님을 부르고 있었다. 혀가 풀린 이제팔이 저 울음에 대해 물었다.

 

저 울음도 범의 것입니까.

 

여인은 낮은 목으로 소리를 깔아 일러주었다.

 

신령이 되려다 살을 맛본 범의 소리입니다.

들어서는 안되고 보아서도 안되는 울음입니다.

 

이제팔은 일어나 문으로 걸어갔다. 여인이 몸으로 막아 선다.

 

어디로 갑니까.

 

딱쇠가 혼자 있지 않습니까.

 

사당은 함부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신령 님이 있습니다.

 

범 중에 신령은 없습니다.

 

이제팔은 여인을 밀어 문을 젖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는 초가의 옆으로 쓰러져있는 낡은 사당으로 몸을 날리었다. 눈이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밤이 온 자락을 너울대어 춤을 춘다. 여인의 말대로 딱쇠는 사당 안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정신을 잃은듯 기절해 있었다. 딱쇠를 안아 올려 사당을 나오니 여인은 초가로 몸을 감추어 보이지 않았다. 범을 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자락을 내려가려는 그에게로 웬 사내가 불러 세웠다.

 

거기 누구요!

 

이제팔이 살았다는 목소리로 반갑게 발을 받았다.

 

길을 잃었소!

도움을 줄 수 있으시겠소?

 

사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물었다.

 

당신 혼자요?

 

시중을 드는 아이가 하나 있소.

 

사내가 다시 웃음을 쳐대었다.

 

불을 가지고 있소?

 

가지고 있지 않소.

 

무기라도 있소?

 

이제팔이 몸을 둘루어 보았다. 들고 있던 검은 빈 마을에서 범을 만나고 떨어트렸는지 잡히지 않았다.

 

가지고 있지 않소.

 

사내가 다시 웃음을 친다. 사내의 입가가 길쭉하게 찢어져 말을 뱉으니 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일어나 밤 중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럼 댁이 가진 건 아이 하나와 몸뚱어리 하나 뿐이니.

우리 신령 님에게 바칠 것이 명확하구려.

 

마을 하나를 채울 정도로 많은 이들이 이제팔을 둘러싸 다가왔다. 그런 그들의 위로 범 하나가 군림하니 모두가 몸을 눌려 절을 놓았다. 까만 밤을 삼킨듯 새까만 범이 울음을 내었다.

 

자락 하나가 나의 것이다.

나에게 대적하려는 자가 하나 없다.

 

이제팔에게로 범이 말을 하였다. 이재팔은 두 다리를 간신히 부여 잡으며 주위를 둘루었다. 빠져나갈 구멍이 아무리 보아도 뵈질 않았다.

 

모든 초목과 산짐승들과 마을들이 내 아래에 있는데.

 

범이 으르렁거리며 이제팔의 이마로 콧김을 뿜었다.

 

날씨만은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이 뫼가 날 받아주지를 못하였다.

 

까만 범이 원하는 바는 간단한 것이었다.

 

이 자락에 신령이 된 범이 어디에 있느냐.

어디에 숨어 살고 있느냐.

 

이제팔은 눈을 감아 손을 들었다. 그가 향한 방향으로 수많은 자들이 몰리어 자락을 올랐다. 곧이어 까만 범이 이제팔을 놓아 주었다. 이제팔이 숨을 헐떡이며 자락 아래로 닿으니 마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살았구나.

 

마을에 닿은 그의 뒤로 월악산의 한 자락이 폭우를 맞아 바위와 흙가래들이 무너져 내려 앉았다. 이제팔은 날이 밝는 대로 향리를 찾아가 마을 사람들과 사냥꾼들을 데리어 자락을 올랐다. 길을 오르니 어제 본 초가가 벼랑의 끝으로 세워져 있었다. 향리는 더 가지 못하고 주춤하였다.

 

가면 안됩니다.

 

이제팔이 의아하여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러합니까.

 

향리가 말하여주었다.

 

범을 피하기 위해 아기들을 염매하던 곳입니다.

 

염매라니.

 

향리와 마을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자 이제팔 저 혼자서 초가를 다가 보았다. 그곳엔 여인도, 범도 보이지 않았다. 시체라도 있을까 하였지만 보이는 것이 없었다. 결국 빈 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던 이제팔은 향리에게 자락 중에 있던 빈 마을에 대해 물었다.

 

그 마을의 아이들이 모두 범에게 바쳐졌소.

어른들은 화를 피하였지만

아이가 남아나질 않아 명맥이 끊어지고 말았소.

 

그렇다면 그 까만 범과 신령이 된 범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팔은 더 물었다.

 

까만 범이 있지 않소?

 

향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 마을 사람들이 범을 죽이겠다고.

 

향리의 고개가 눈이 녹고 추분이 도는 자락 사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저들끼리 탈을 만들어 독을 발랐답니다.

그리 독한 독을 발라 탈을 쓰고 춤을 춘 이들의 살이 썩어

까맣게 타들어갔다 하더이다.

 

 

 

 

 

 

 

 

마을을 떠나며 자락을 넘는다. 월악산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가을 하늘을 비추었다. 고개를 넘고 개울을 지나자 기절해 있던 딱쇠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었다. 말을 몰며 이제팔은 딱쇠에게 물었다.

 

무엇을 보았기에 사당에 있었느냐.

 

딱쇠가 말하였다.

 

온 몸이 칭칭 묶여 곯은 아기들이 여인의 목을 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말이 휘청인다. 하늘은 높았고 자락으로 산새 소리가 지저귄다. 어젯밤이 꿈결처럼 느껴진다.

 

저를 눕히며 그 아낙네가 말하였습니다.

 

무어라 하였느냐.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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