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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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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가족 이야기다.

텃밭이 딸린 전원주택 생활을 꿈꾸던 부모님은 근교에 싼 부지를 매입해 집을 짓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동산을 등지고,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그곳은 뛰어놀 곳이 많아 나와 동생도 마음에 들었다.

부지 앞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은 가뭄이 들면 건천으로 메마르지만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시기에는 자주 범람해, 하천 정비가 꼭 필수라는 충고를 듣고 부모님은 하천도 함께 복개하기로 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서둘러 공사를 마치기 위해 우리 네 가족은 주말마다 이곳으로 와 각자 바쁜 시간을 보냈다. 엄마아빠는 공사 현장을 지켜보고, 그러면 가끔 어른들끼리 언쟁이 오갔고, 나는 소음을 피해 방안에만 틀어박혀 온종일 게임을 하고, 동생은 새로 이사 올 땅을 탐험하기 위해 집 주변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수달이 있어.”

갑자기 방문을 열고 들어온 동생은 느닷없이 수달 타령을 했다.

“저렇게 얕은 물에 수달이 어떻게 살아? 바보냐?”

몰래 게임하다 엄마아빠에게 들킨 줄 알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퉁명스럽게 핀잔했다.

“아냐. 진짜야. 책에서 본 거랑 똑같이 생겼어.”

동생은 보여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지만, 하천가 동물이나 구경하러 다닐 나이는 이미 지났고 귀찮기도 했다.

“괜히 가까이 가지 마라. 야생동물한테 물리면 광견병 같은 거 옮을지도 모르니까.”

“겁쟁이.”

겁쟁이는 가상 현실에서 괴물들을 물리치는 게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수달을 찾으려 집 밖을 돌아다닐 때에도 신경 쓰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니, 진짜 수달이 있다고 믿지도 않았다. 그때는.

 

2

그날도 아마 수달을 찾으려고 수로 변을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동생을 목격한 마을 사람도 수로관 근처에서 놀고 있는 동생을 지나가는 길에 보았다고 했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동생은 실종되었다.

어쩌면 수달을 쫓아 수로관 안으로 들어갔을지도 몰랐다. 원형 철근콘크리트 관은 어린 아이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고, 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물도 차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의 수색에도 겨우 발견한 것은 동생의 신발 뿐이었다. 그 외에 동생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복개 공사는 중단되었다. 오히려 복개한 부분을 들어내 동생을 찾아봐야 한다는 의견과 잘못하다 제거 작업 중에 동생이 다칠지도 모른다는 의견과 이미 샅샅이 뒤져 봤으니 거기엔 없을 거라는 의견과 어쩌면 살아있는 동생을 찾는다는 희망은 버리고 수색 작전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오고 갔다.

나는 혹시 수달을 발견하지 않았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는 표정의 어른들에게 동생은 분명 수달을 쫓아 갔을 거라고, 수달이 이동하는 길을 찾으면 동생이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있지 않겠냐고 의견을 내보였다. 하지만 그런 내 의견을 귀담아 듣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아마 동생이 내게 수달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내가 바라봤던 시선과 똑같을 무언의 시선만 내던진 채.

장마가 시작되었다. 물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 집 앞 마당까지 잠기었고, 엄마는 매일 그 물 속을 돌아다니며 동생의 이름을 울부짖었다. 사람들은 동생이 이미 장마비에 익사했을 거라고 수근거렸다. 시체가 물길을 따라 곧 떠내려올 테니 기다려 보자는 말도 들렸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고 마른 땅이 드러난 뒤에도 동생은 살아있는 모습으로도, 죽은 모습으로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제 말을 바꿔 부모가 실수로 아이를 죽인 뒤 공사장 토사 아래에 묻은 게 아닐까 라는 뒷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시체가 발견되지 않게끔 공사도 중단시킨 게 아니겠냐고, 시체조차 없이 마을에서 대낮에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느냐고. 안쓰러워 하던 눈빛들은 의심 가득한 눈초리로 바뀌어 우리 가족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말들이 부모님의 귀에도 들어갔는지는 모른다. 항상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갑자기 맨발로 하천으로 내려가 말라붙은 흙을 파헤치곤 하는 엄마도, 밤만 되면 집 뒤쪽 동산으로 올라가 산속을 뒤지고 다니는 아빠도 어느새 우리 집이 아이가 실종된 집이 아닌 아이가 살해된 집으로 불리는 것에 개의치 않아 하는 듯 보였으니까. 그딴 말들과 소문 쯤이야 동생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전부 감내할 수 있다는 듯.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바라보든 상관 않는 엄마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아빠는 내가 어떻게 자라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살인자 집안의 자식이라느니, 너도 네 동생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거 아니냐느니 비아냥대는 아이들과 맞서며, 때론 무기력하게 괴롭힘을 당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서 술과 담배에 빠지고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비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도 나 또한 부모님에게 얘기하지 않았다. 우리는 같은 집에 살면서도 서로를 쳐다보지도, 부르지도 않게 되었다. 집은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이 아닌 사라져 버린 동생의 공간일 뿐이었다.

 

3

오늘은 뭐에 꽂혔는지 과학책을 한가득 사놓고 들여다 보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차원 시공간만이 아니라며, 시간여행도 가능할 수 있다며, 집 근처 어딘가에 시공간의 균열이 일어난 틈을 찾으면 동생이 어느 차원으로 빠졌는지, 과거와 미래로 가버렸는지 알 수 있을 거라고 잔뜩 들떠 있는 엄마 옆에서 아빠는 조용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용한 무당에게서 동생은 귀신에 씌여 정처 없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조상 굿을 크게 치뤄 줘야 한다는 소릴 듣고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민간신앙에서 현대과학으로 방법을 선회한 모양이다. 전국의 납치범들과 연쇄살인마들을 조회하고 추적해봐야 한다며 아빠를 다그치던 때보다는 그나마 덜 시끄럽다.

엄마가 어떤 터무니없는 소리를 해도 아빠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낮 동안 그렇게 두서없는 말을 떠들고 나면 저녁 일찍 잠자리에 드는 엄마를 재운 뒤 아빠는 늦은 밤 혼자 집을 나서 뒷산을 오르곤 했다. 아빠의 그 산행이 예전에는 동생이 이미 죽었음을 받아들이고 몰래 묻혀 있을지 모를 땅을 파헤쳐 보고 다니는 거라고 짐작했었지만, 몇 년 전 몰래 뒤따랐을 때 땅속에서 무언가를 파헤치고 묻고, 다시 또 파헤치고 묻기를 반복하는 아빠의 행동은 수상하기만 했다. 다음 날 그곳을 다시 찾아 땅을 파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게 나았다. 만약 무언가라도 나왔다면, 동생과 관련된 뭔가가 나왔다면 과연 내가 견딜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만약 나까지 잃게 된다면 부모님은 어떨까? 동생 때만큼 슬퍼할까? 아니면 슬픔은 동생의 상실 때 모두 써버려 나까지 슬퍼해 줄 여력은 없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나 같은 망나니 자식이 없어지지 않고 왜 동생이 사라졌는지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수달은 동생이 아니라 내가 찾았어야 했는데 왜 동생 앞에만 나타났을까? 하지만 정말 동생이 본 건 수달이 맞을까? 이 마을에서 수달을 봤다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수달이라면 동생은 도대체 뭘 본 걸까?

 

4

“수달? 어, 본 적 있어. 족제비 같이 생긴 거 아냐? 털색이 흰 게 해달이고, 어두운 게 수달이지? 그럼 내가 본 게 수달이 맞네. 맞아. 봤었어. 우리 마을에서.”

날 놀리려고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천변에서 밤새 술 마시다 만취해서 본 걸 수달로 착각했거나.

“속고만 살았냐? 진짜 수달이었다고.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다니까? 웬 수달이 여기 있지? 하고.”

거기가 정확히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산 아래 하수관 있는 데 있잖아? 거기서 봤어. 근데 너도 봤냐? 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는데?”

녀석들과 헤어진 후 혼자 그곳으로 가봤다. 하지만 그곳에는 수달의 흔적도, 동생의 자취도 없었다. 역시 잘못 본 거겠지. 술 취한 놈들 말을 믿고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야, 너 집이야? 빨리 나와. 여기 수달 있으니까.”

늦은 밤 다짜고짜 전화를 해선 또 수달을 발견했다고, 저희들이 생포해 놓았으니 빨리 와서 확인하라고 녀석들은 재촉했다.

“근데 공짜는 아니다? 이 놈 잡느라 손가락을 물렸다고. 치료비랑 수고금도 챙겨서 와라.”

그냥 술이나 더 퍼마시려고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수달이 존재하는지. 내 동생의 말이 틀린 게 아님을.

“이야, 날아왔냐? 수달 되게 좋아하는 모양이네? 다음엔 우리 동물원에라도 소풍 가야겠다, 야.”

잔말 말고 어서 보여주라는 내 말에 우선 선금을 내놓으라며 손을 내밀었다.

“이게 다야?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래도 친구 사이에 너무 짜게 굴면 안 되겠지? 저기 통 안에 들어있어. 확인해봐.”

종이상자로 대충 덮어놓은 폐드럼통을 가리켰다. 저 정도로는 금방 도망칠 것 같은데, 설마 죽었나?

조심스레 종이상자를 치우고 안을 들여다보자 무언가와 눈이 마주쳤다.

찍찍.

드럼통 밖으로 튀어나와 달아나는 쥐 때문에 놀란 것보다 그 꼴을 보고 낄낄대는 녀석들이 더 짜증 났다.

“저것 보라니까? 쟤 수달이라면 환장해.”

“왜 저래? 지 동생이 수달한테 잡아 먹히기라도 했나?”

달려드는 날 가볍게 제압하며 더욱 비웃었다.

“왜? 내가 잘못 말했냐? 아, 맞다. 그게 아니라 니네 엄마아빠가 죽이고 집 앞에 잘 묻어놨지? 넌 그런 집에서 어떻게 사냐? 집이 아니라 무덤이잖아? 그래서 니네 집식구들은 산송장이나 다름없다며?”

“그럼 네 무덤도 우리 집 앞에 하나 따로 마련해줄까?”

“이 새끼가 불쌍해서 같이 놀아줬더니 어디서 기어들어?”

어차피 이 녀석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해서 무리에 껴준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살인자의 자식, 조용한 마을을 괜히 안 좋은 소문으로 입에 오르내리게 만든 몹쓸 외지인, 그래놓고선 뻔뻔하게 계속 여기 눌러 앉아 사는 저주받은 집안. 그런 말들을 등에 비수처럼 꽂고 다니는 나를 저희들 무리에 끼우면 아이들에게 더 무서운 패거리로 보일 거라고 여겼겠지. 상관 없었다. 나 또한 견딜 수 없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이 무리에 낀 것 뿐이었으니까. 언제든 이렇게 나를 조롱하고, 발로 차고, 밟고, 주먹으로 치고, 신나게 때리다 버릴 거란 건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니네 집 때문에 여기 땅값 떨어진 거 몰라? 재수 없다고, 니네 집안. 원래 여기 살던 것들도 아니면서 왜 남의 땅을 시끄럽게 만드는 거야?”

“솔직히 말해봐. 예전에 살던 데서도 구린 짓 하다 걸려서 여기로 도망쳐 온 거 아냐?”

“맞아. 그러니까 너희도 조심해야 할걸? 오늘 밤에는 니들 엄마아빠가 자식 무덤 자릴 집 앞에 파야 할지도 모르니까.”

“이 새끼, 입만 살아 가지고?”

명치께를 차이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나도 사라져 버린다면 엄마아빠는 슬퍼할까? 여전히 동생을 잃은 슬픔에만 젖어있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진다면 동생이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그때 동생의 말을 믿어줬다면, 그랬다면 동생은 지금쯤 아마....

“저건 또 뭐야? 왜 빤히 쳐다봐, 기분 나쁘게? 갈 길 가세요. 너도 뒤지게 맞고 싶지 않으면?”

잠시나마 구타가 멈춰서 쉴 수 있었다. 애꿎은 행인에겐 미안하지만 애들을 달고 도망쳐서 내가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을 좀 벌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경찰서에 신고라도 해주든가. 아니, 경찰들은 우리 집식구 일에는 관심 없으려나? 예전에 이미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서?

하지만 행인은 모르는 척 지나가지도, 도망치지도, 경찰에 신고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애들에게 맞지도 않았다. 오히려 녀석들이 맞고 있었다.

눈두덩을 얻어맞아 앞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녀석들의 비명과 신음소리는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욕을 퍼붓다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소리까지. 엄마 말이 맞았나? 이 동네에는 연쇄살인마가 있는 걸까? 비행 청소년들만 응징하는? 하지만 그렇다면 내 동생은 왜?

조용해졌다. 물 흐르는 소리만이 어두운 밤 풍경을 채우고 있었다. 또 물이 불어나면 엄마아빠가 걱정하겠네. 하지만 동생은 수영을 잘 하니까 빠져 죽을 일 없다고 곧바로 합리화 하겠지만.

그런데 저 사람은 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서 있는 거지? 이미 피떡이 되어 쓰러져 있으니 공격할 생각도 들지 않나? 다행히 연쇄살인마는 아닌 모양이다. 애들 모자와 옷을 뺏어 입는 걸 보면 그냥 동네 깡패인가?

근데 좀 웃기게 생긴 것 같다. 머리통은 너무 작고, 그에 어울리지 않게 허리는 길쭉하고, 팔다리는 저렇게 짧은데 어떻게 녀석들을 때려눕혔지? 등 뒤에 숨긴 방망이 같은 저걸 휘둘렀나? 누구지? 이 동네 사람이라면 알아볼 텐데, 얼굴이... 얼굴이....

흐릿해지는 정신 속에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찰박거리는 소리만이 또렷하게 들렸다.

 

5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다그치는 부모님과 집단폭행 피해 진술을 들으러 온 경찰들 때문에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똑같은 거짓말을 하고, 똑같이 침묵해야 할 부분에선 입을 닫아야 했으니까.

그래도 어른들은 내 말을 더 신뢰하는 듯했다. 괴물이 갑자기 자신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느니, 그런 괴력은 절대 사람의 힘이 아니라느니, 수달 괴물이 마을에 있다고 주절대는 가해자들의 주장은 귀담아 듣고 싶진 않을 테니까. 나는 술에 취한 녀석들에게 얻어맞고 쓰러진 뒤 바로 정신을 잃어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평소 취객들과 시비가 붙어 자주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경험이 이럴 때는 도움이 되었다.

“그럼 학생은 갈취당했거나 친구들이 당하는 걸 목격하진 않았다는 거지? 그렇다면 혹시 이건 누구 건지 알아? 걔들도 모른다던데. 자기들을 공격한 사람, 아니 괴물이 가지고 있던 게 분명하다고 하던데?”

경찰은 액세서리 고리 하나를 보여주었다. 눈에 익은 만화 캐릭터가 달린.

“아니에요. 그건 제 꺼에요. 우리 집 열쇠고리에요.”

“아까는 없어진 물건 없다고 하지 않았어?”

“도어락으로 바꾸면서 안 쓰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주머니에 넣어두고 잊고 있었나 봐요.”

물론 나도 비슷한 열쇠고리를 가지고 있긴 했었다. 하지만 내 열쇠고리는 저 캐릭터가 아니었다. 동생의 열쇠고리 캐릭터였다.

문득 한동안 집 열쇠를 바꾸지 않으려 고집을 부리던 부모님이 떠올랐다. 동생이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잠긴 문으로 못 들어오면 안 되니 열쇠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도어락 비밀번호도 동생의 생일로 설정해둔 건 줄 알았는데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걸까? 오래 전 중단된 하천 복개 공사를 방치해두는 것도, 엄마가 사람들 앞에서는 정신 나간 듯한 말들만 늘어놔서 다른 이들이 더 이상 우리 집 일에는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게 질리게 만드는 것도, 아빠가 밤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 뒤 언덕을 갔다 오는 것도 말 못 할 이유가 있어서 일까?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바뀐 것은 없었다. 엄마아빠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창밖으로 하천을 바라보곤 했고, 동생의 방도 예전 그대로다. 다만 나는 하천가 동물들에 관해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예전에 놔버렸던 학교 공부도 다시 시작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를 것이다.

하지만 공부할 시간은 많다. 우리에게 시간은 많다. 우리 가족은 계속 이 집에서, 앞으로도 쭈욱 이 마을에서 살 테니까. 장마나 집중호우 때마다 물에 잠기긴 하겠지만 그 정도는 이제 익숙하니까.

 

이것은 우리 가족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나무가 우거진 산 아래 실개천이 흐르는 볕 좋은 곳에서 살고 있다. 엄마와 아빠와 나와 그리고 내 동생과 함께.

 

 

2. 식당

1

아니, 무슨 도로 위를 저희가 다 전세 냈나? 복개도로를 지들 식당 주차장처럼 쓰는 꼴이 눈꼴시려 죽겠네.

솔직히 배 아파서 그런다. 저 집이랑 우리 가게 음식이랑 뭐 특별나게 다르다고 저 집에는 항상 손님들이 바글바글한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네. 남들이랑은 다른 마법 가루라도 음식에 뿌리나? 마법 가루야 우리도 쓰고 안 쓰는 식당이 없는데, 사람 먹는 음식이야 다 똑같고, 조리법도 거기서 거기고, 하늘 아래 새로울 재료랄 것도 없는데, 왜 저 집만 주야장천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냐, 이거다.

“인육이라도 파는 거 아닐까요? 아니면 그렇게 소문을 내죠? 원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일수록 소문은 더 빨리 돌잖아요?”

저런 걸 방법이라고 내놓는 놈을 직원이라고 데리고 있으니 장사가 될 턱이 없지.

“우리도 한창 장사 잘 될 땐 그런 유언비어 많이 들었잖아요? 저기 하천 똥물에서 잡은 생선으로 음식 만들어 판다, 그 식당 요리에선 썩은 내가 난다, 남은 음식 다 재탕해서 내놓는 거다, 이러면서?”

“그런 말이야 무식한 놈들이나 퍼트리고 다니는 거지. 똥물에 무슨 물고기가 산다고 그걸 잡아다 팔아 먹어? 그리고 육고기 파는 식당에서 지가 먹은 게 육고기인지 물고기인지 맛 구분도 못하는 것들이니까 혓바닥이 똥구멍에 붙어서 구린 말이나 나불대는 건데 뭘 또 상대해 줘?”

막말로 맛만 좋으면 무슨 소문이 돌든 무슨 상관이겠나? 타격은커녕 오히려 그런 뒷말이 도는 집이라야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증거지? 파리만 날리는 집은 앞말로조차 언급될 일 없으니까.

그런데 배달 나간 놈은 왜 이렇게 안 와? 아무래도 수상하단 말야? 한 번 배달 나갔다 하면 함흥차사니. 그것도 꼭 주문 밀렸을 때? 요즘은 배달 안 하면 경쟁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고 입 털던 것도 이제 보니 제 놈이 오토바이 몰고 싶어서 그랬던 게지. 아니면 경쟁 식당 쪽에서 영업 방해하려고 심어놓은 스파이일지도 모르고?

“사장님, 또 괜히 같은 식구들끼리 의심하는 눈빛 쏘지 마시고 우리도 새 메뉴나 개발합시다. 이 구역에 식당이 몇 갠데, 똑같은 메뉴만으로는 승부가 안 돼요.”

그 말도 일리는 있다. 뭔가 방도를 내긴 내야 한다. 그리고 네 녀석들은 아직 심증 뿐이니 물증은 천천히 찾아보지. 만약 증거를 찾기만 한다면 어떤 녀석이건 아주 그냥 아작을....

“사장님, 손님이요. 뒷고기 1인분이랑 소주 한 병이요.”

하필 와도 영양가 없이 꼭 1인분만 시키는 객들 뿐이지. 하지만 이젠 1인분 주문에 눈치 줄 입장도 못 된다. 손님 한 분 한 분 모두 정성스레 모셔서 다음에도 방문하고 싶도록 서비스하고, 그러면 입소문도 내줄 거고, 다른 손님들도 끌어와 줄 거고는 개뿔! 자리 하나 차지해서 몇 시간이고 죽치고 앉아 다른 손님들 밥맛 떨어지게 주정이나 부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어떻게 와도 저런 손들만 올까? 굿이라도 해야 하나?

“그래도 이 집은 서비스도 주네. 저기 저 하천 식당은 서비스도 안 줘. 안 줘도 장사 잘 되니까. 다 먹었으면 후딱 나가라고 얼마나 눈치를 주는지? 회전율이 어쩌고저쩌고.”

왜 남의 가게 와서 밥맛 떨어지게 다른 집 얘기야? 누가 물어봤다고? 하지만 그 얘기가 다른 가게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거라면 들어놔서 나쁠 건 없겠지.

“응? 그 집? 맛이야 좋지. 그러니까 이 근방 식당들 중에서 거기만 그렇게 손님들도 발 디딜 틈이 없잖아? 그런데 지금 이 집 고기 먹으면서 비교해보니까 딱히 다를 것도 없어. 그냥 간이 좀 더 세거나 양념이 단 정도?”

서비스 준 보람은 있네.

“아, 딱 하나 다른 건 있네. 보통 고기 한 번 물리게 먹고 나면은 한동안 고기 생각도 안 거든? 자주 먹으면 질리니까. 그런데 말야, 그 집은 그렇지가 않다니까? 아무리 배터지게 먹고 나왔어도 이상하게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우면 또 고기 생각이 난다는 거지. 배는 아직 꺼지지도 않았는데. 요 술처럼 말이야?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요 술맛처럼 거기 고기도 중독성이 있어. 그러면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발길은 절로 그리로 향하고 있다니까? 이렇게 많고 많은 식당 중에서 손님으로 미어터지는 그 집으로만. 꼭 금단 증세처럼 조급해져선.”

흥, 그럼 이번에는 어찌 중독증을 참고 우리 가게로 납셨나?

“나야 고기 중독보단 술 중독이 더 심한 사람이니까. 술은 여기가 싸잖아. 그 집 고기 못 먹는 거보다 하루에 섭취해줘야 할 알콜을 못 맞추면 이렇게 손이 벌벌 떨리거든?”

그거야 네 놈이 알콜 중독이니까 그렇지.

알콜 중독자 놈의 시덥잖은 말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묘하게 중독적인 맛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단순히 마법 가루 같은 화학조미료를 뜻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뭘까? 그 중독적인 맛이라는 게?

 

2

“뭐? 나보고 거기 가서 남은 음식을 몰래 싸 오란 말이야?”

 번에 알아들어 먹고선 되묻는 꼴이 어떻게든 안 갈 핑계를 대려고 또 짱구 굴리는 모양이네.

“알았어. 간다, 가. 그런데 기왕 먹을 거 같이 가서 먹자고. 어차피 맛볼 거 당당하게 가서 먹고 나오면 되지, 왜 몰래 먹으려고 그래? 죄짓는 것도 아닌데?”

자존심 상하게 경쟁 식당에 제 발로 가거나 여기로 배달 시키긴 죽기보다 싫은가 보네? 라는 말까진 그래도 눈치가 있어 삼키는 남편 놈을 보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죽이 안 맞는 양반이랑 어떻게 삼십 년 넘게 살고 있는 거지?

“그 집 음식을 뱃때기에 넣어오면 분석을 어떻게 할 거야? 재료로 뭘 쓰는지, 어떻게 조리했는지 알아내려면 온전한 형태로 가져와야 할 거 아냐?”

“다 똑같은 고기지, 뭐가 다르다고? 장사가 잘 되고 못 되고는 그냥 운이야, 운. 하늘의 뜻이라고. 하필 거기 터가 좋아서 대박 난 걸지도 모르고.”

다 똑같은 하천 위에다 닦아 놓은 터에서 장사하는 건데, 왜 그 집만 명당자리인지는 안 궁금하고?

“혹시, 설마 똑같이 복제하려고? 에이, 그러지 마. 저번에 손님도 그랬잖아? 딱히 맛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며? 그리고 절대 미각도 아니고 어떻게 완전 똑같이 만들 수야 있겠어?”

자기 부인이 자존심 강한 여편네인 건 알아도 자존심 상하게 상대 음식점 요리를 베낄 생각을 할 거라는 짐작은 무슨 논리에서 나오는 건데, 이 답답한 양반아? 내가 절대 미각은 못 돼도 삼십 년 넘게 각종 음식점을 섭렵한 경력을 거저 먹은 게 아니야. 맛을 보고, 냄새 맡고, 만져보고, 따뜻했을 때와 식었을 때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음식에 뭔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뭐, 맛은 평범하네.”

“그게 맞는 거야. 그래야 호불호 없이 누구나 먹을 수 있지. 우리 가게는 양념이 좀 강하잖아?”

저것들이 요즘은 맵고 자극적인 맛이 대세라고 나불댈 땐 언제고, 고 입들로 뻔뻔하게 두말하고 앉아 있네. 맛 평가 하랬더니 접시째 싹싹 긁어 먹어 놨고, 남편 복이 없는데 직원 복이라고 있을까?

“그런데 중독적인 맛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요. 몇 입 먹었을 때는 몰랐는데 다 먹고 나니까 이상하게 자꾸 땡기고 계속 생각나는 맛?”

인정하기 싫지만 그건 맞다.

“설마 마약이라도 넣었나?”

“야, 어떤 멍청한 놈이 음식 팔아 먹겠다고 마약을 사다가 넣냐? 마약 값이 더 비싸겠구만?”

“내가 약쟁이냐? 얼마나 비싼지 어떻게 알아?”

저것들을 다 짤라버릴까?

“늬들은 어디 가서 음식점에서 일한다고 하지 마라. 뭔 맛인지도 모르는 것들이?”

“뒷고기야 아무 부위에서 여기저기 짜투리로 남은 걸 섞었으니까 맛 구분 잘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내가 무슨 부위인지 맞춰보랬어? 이게 무슨 고기인 것 같아?”

“돼지고기 아니에요? 소고기나 닭고기 맛은 아닌데?”

“살짝 생선 맛도 나지 않아?”

“에이, 생선 살이랑은 식감이 완전 다른데요? 뭐, 굳이 따진다면 해산물 맛이 약간 나긴 하는데, 양념에 해산물 육수를 넣었나?”

무슨 맛인지 알아내려 빈 접시를 혀로 핥고 킁킁대는 꼴들이 벌써 중독 증세가 일어나는 모양이네.

내 음식 장사 인생을 걸고 확신하는데, 이건 절대 일반적인 식재료로 만든 요리가 아니다. 원재료가 뭔지 감추기 위해 일부러 평범하게 느끼게끔 양념하고 조리한 거다. 그러면서 자꾸 땡기고, 수륙의 맛이 동시에 느껴지는 미묘한 맛. 친숙함을 가장한 낯선 맛. 도대체 뭘까? 이 음식의 정체는?

 

3

“이 여편네가 자존심도 버리더니 이젠 양심까지 버릴 작정이야? 남의 영업장에는 왜 몰래 들어가려고 그래?”

이 양반이 청개구리도 아니고, 가라고 할 땐 세상 싫은 티는 다 내더니 이젠 내가 갔다 오겠다니까 왜 귀찮게 따라 오려고 난리야?

“마누라가 도둑질로 잡혀갈지도 모르는데 집구석에 가만히 쳐 박혀 있으란 소리야?”

도둑질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냥 그 가게 주방이랑 창고 안만 좀 살펴보고 오겠다는 거지?

“집구석에 왜 쳐 박혀있어! 가게 보고 있어야지. 장사 안 할 거야?”

“지금 장사가 문제야? 무단침입도 죄라고.”

자기 마누라를 범죄자 못 만들어서 안달이네.

“무슨 잔치집 가냐? 가게 식구 죄다 우르르 몰려가면 무단침입이든 도둑질이든 안 걸리고 배겨?”

“그럼 쟤는 왜 데려가?”

“당신 말처럼 들켜서 재빨리 도망치려면 오토바이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럼 배달은 누가 나가?”

“어차피 배달 주문도 안 들어오잖아!”

 

“흥, 오늘은 저 집도 장사가 안 되는 모양이네.”

길 건너편에서 염탐하는 식당은 오늘따라 드나드는 손님도 적고 주변도 조용하다. 이래선 주방 뒤쪽으로 몰래 들어가 뒤져보는 건 힘들겠는데?

“저것 봐. 다 똑같은 식당이라니까? 장사가 잘 될 때가 있으면 안 될 때가 있고, 저 집이라고 평생 장사 잘 되겠어? 더 크고 맛있는 가게가 근처에 들어서면 저 집도 한물가는 건 금방이지?”

“그 소린 우리 집은 이미 한물간 지 오래다?”

“에구구, 다리야. 빨리 돌아가서 저녁 장사 준비나 하자고. 혹시 저 집으로 안 간 손님들이 우리 집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괜히 말꼬리 잡혀 잔소리 들을 새라 남편 놈은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자리를 뜰 것처럼 굴던 양반이 한 곳에 시선이 붙박힌 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저 식당 직원 아냐? 왜 저리로 가지?”

남편의 시선을 따라 어둠 속을 주시하고 있자니 얼핏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가로등도 길도 없는 하천 아래로 누군가 내려가고 있었다.

“음식쓰레기라도 몰래 버리려는 거 아냐? 같은 요식업 종사자로서 가만 두고 볼 수는 없지?”

좋은 꼬투리 거릴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안고 냉큼 뒤를 쫓기 시작했다.

물소리만 가득한 캄캄한 하천가에서 혹시 발소리를 들킬새라 가까이 따라붙을 수는 없었지만 혼자 걷고 있는 사람의 뒤를 놓칠 염려는 없었다.

찰박찰박.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뭔가를 찾기라도 하는 듯 한참 동안 팔을 휘젓고 있었다.

“음식물을 버리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요?”

의심스런 행동에 여차하면 현장을 급습할 태세로 우리 가게 식구들은 매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하지만 기대할 만한 물증은 없었다. 그 식당 직원은 빈손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 가버렸다. 그렇다고 손 씻으러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잖아? 분명 뭔가 있다. 저 물 속에.

첨벙첨벙.

“설마 여기서 물고기나 개구리 잡아다 요리하려고 왔겠어? 허탕이야, 허탕. 잘못 짚었어.”

첨벙첨벙.

“따라붙은 거 눈치 까고 일부러 여기로 끌어들인 거 아닐까요, 사장님?”

첨벙첨벙.

“아유, 이 황소고집 마누라야. 이번에는 진짜 잘못 짚었다고. 그만하고 어서....”

촤악.

“다시 한번 말해보셔. 내가 뭘 잘못 짚어?”

의기양양하게 물속에서 건져 올린 통발을 들어 보이자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는 남편의 낯빛이 달빛 아래에서 만족스럽게 비쳤다.

 

4

“으으... 징그러. 이게 뭐야?”

가게로 돌아올 때까지만 해도 통발 속에 든 건 물고기인 줄 알았다. 못해도 개구리나 미꾸라지 같은 한 눈에 뭔 줄 알아볼 수 있는 하천에 사는 수중생물 말이다. 하지만 상체는 온데간데 없고 하체만 반토막이 난 채 통발 속에 달랑 든 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뭐야? 발이 달린 걸 보면 어류는 아닌데. 파충류인가? 양서류?”

“혹시 도마뱀 아닐까요? 왜, 도마뱀은 위험 상황이면 자기 꼬리를 자르고 도망치잖아요?”

“이건 꼬리를 자른 정도가 아니잖아. 몸통이 완전 반토막 났어. 자기 하체를 뚝 떼놓고 도망치는 생물이 어딨어? 그리고 미세하게 털이 있는 걸 보면 포유류 같은데?”

“수달 아니에요? 길쭉한 게 생김새는 닮았는데.”

“저런 하수구에서 수달이 어떻게 살아?”

“돌연변이일지도 모르죠? 폐수가 흘러나오는 곳에서 살다 보니 거기에 맞춰 진화한 거에요.”

“상체는 사라지고 하체만 남으면 그게 진화냐? 퇴화지?”

“좁은 통발 입구에서 빠져나오려다 잘린 건가?”

“아가리 부분이 그렇게 날카로운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이건 단면이 아주 깨끗하게 잘려 나갔어요.”

“아, 알겠다. 저 식당 사람들이 반만 잘라 가서 요리한 거네. 머리 쪽이 맛있는가 봐요. 꼬리 쪽은 맛없으니까 버리고.”

“그러니까 잘라 가서 요리한 거든, 제가 스스로 떼낸 거든, 뭐든, 도대체 이게 뭐냔 말이야? 무슨 종이냐고.”

아무도 속 시원히 대답하지 못했다. 탁자 위에 놓인 허리 아래로만 남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바라만 볼 뿐.

 

“여기 놔둔 거 누가 치웠어?”

어젯밤 늦게까지 정체불명의 생물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지만 결론을 짓지 못하고 해산했다. 누구도 건드리기 싫어해서 탁자 위에 내버려 뒀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직 살아있었던 건가? 도망친 걸까?

“어? 그거 새 메뉴 구상한다고 사놓은 거 아니었어요? 연습 겸 요리해봤는데?”

전날 먼저 퇴근한 뒤 일어났던 추격전과 난데없던 생물학 논쟁을 알 리 없는 주방 이모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냄비를 들고 주방에서 막 나오던 참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식당에선 딱 이거라고 할 만한 국 요리가 없더라고요. 기본적인 거 말고, 다른 식당에선 나오지 않는 국이나 찌개를 내놓으면 어떨까 싶어서 한 번 끓여 봤죠. 왜 다들 그러고 섰어? 괜찮아, 먹어도. 맛봤는데 나쁘지 않던데? 사장님, 이거 어디서 구한 거에요?”

정작 음식을 조리한 주방 이모는 정체불명의 생물이 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이모, 그게 뭔지는 알고 요리한 거에요? 그거 저기 하천에서 가져온 거에요.”

“그래? 그런데 뭐? 우리 식구 중에 물속에 사는 건 안 먹는 채식주의자라도 있어?”

“무슨 맛이든?”

“무슨 맛인지 백 번 말하면 뭐해요? 직접 맛봐야 알지?”

냄새는 확실히 군침이 돌았다. 까짓것 죽기야 하겠어? 조심히 한 숟갈 떠먹어 보자, 입안에서 육고기와 물고기의 맛이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이거였구나? 확신이 들었다.

“이모, 이거 남은 걸로 양 좀 늘여서 끓일 수 있지? 좋아. 오늘은 새 요리가 있다고 단골들 오면 홍보해. 반응 봐서 괜찮으면 메뉴에 추가하자고.”

“무턱대고 손님상에 내놔도 돼? 그리고 재료는 어떻게 구하려고?”

“어떻게 구하긴? 그쪽에서 알아서 잡아 놓을 테니 우린 남는 거나 주워오면 되지?”

 

5

“사장님, 확실히 입소문이 제대로 났나 봐요. 다른 가게 녀석이 뭐라는 줄 아세요? 음식에 뭔 짓을 했냐는 거에요. 도대체 갑자기 왜 그렇게 배달이 폭주하고 손님들이 몰리냐고요. 혹시 인육이라도 팔아먹고 있는 거 아니냐고까지 물어보는 걸 보면 확실히 대박이 난 것 같습니다.“

대박까지야 오바지. 하지만 새 요리의 오묘한 맛은 저쪽 가게를 찾던 손님들 중 일부를 이리로 발길 옮기게 만드는 데에는 성공했다. 하천탕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선보인 국물 요리는 백반 정식으로도, 술안주로도 인기가 좋았다. 특히나 한번 맛을 본 손님들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다시 발걸음해선 입을 모아 말했다. 정기적으로 먹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중독적인 맛이라고.

“설마 눈치채는 거 아닐까요?”

“눈치야 벌써 챘겠지. 통발에 남아 있어야 할 반토막이 사라졌는데, 설마 허리 아랫부분이 살아서 통발 밖으로 기어나갔다고 믿겠어?”

“그럼 자기네들 음식 배꼈다고 트집 잡으면 어떡해요?”

“뭘 배껴? 지네는 구워서 내고 우리는 끓이는데? 그리고 자기네들이 잡아 놓은 고기를 훔쳐갔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저희들이 잡은 고기가 뭔지 사람들한테 보여줘야 할걸? 구린 놈은 억울해도 입 먼저 놀릴 수 없는 법이야.”

“맞아요. 오히려 우리가 가져가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죠?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사체 처리해주고 있으니까? 불법어획 증거를 우리가 없애주고 있는데 왜 밉겠어? 오히려 고맙지? 그러니까 우리가 매번 가져가도 내버려 두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왜 항상 꼬리 쪽 반만 남겨두는 걸까요? 머리 쪽은 얼마나 맛있길래? 꼬리 쪽도 나쁘지 않은데 머리 쪽만 가져가는 걸 보면 맛이 아주 기가 막힌 모양인데요?”

“뭐가 기가 막혀? 다 똑같은 몸뚱아리에서 나온 거면 맛이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먹어봤잖아? 중독성 있는 것 빼곤 평범한 맛이더구만?”

“어두육미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생선이랑 고기 맛이 동시에 나는 걸 통째로 먹으면 얼마나 더 맛있겠어요?”

솔직히 궁금하긴 하다. 맛도 맛이지만 도대체 안면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인지, 온전한 생김새는 어떤지, 정말 돌연변이일지, 아니면 싱겁게도 흔히 보는 동물일지 말이다. 언제까지고 남이 버리길 기다렸다 주워올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저 치들이 음식 재료 나눔을 관두기로 한다면 낭패니까.

방법은 하나 뿐이지. 직접 사냥에 나설 수밖에.

 

6

또 허탕이다.

통발에는 잘도 기어들어가는 것들이 왜 그물에는 안 잡히는 거야?

무슨 눈치를 챘는지 며칠 전부터 통발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 이젠 아예 나머지 반도 나눠줄 생각 없다? 그럼 내가 포기할 줄 알고? 조만간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을 쪽은 내가 아니라 너희 식당 놈들일걸?

”혹시 다른 데로 떠난 거 아닐까요? 그것들도 머리가 있으면 여기 계속 머물다간 씨가 마를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꼈겠죠.“

정말 그런 생각을 할 머리가 있긴 있다면 말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것들이야? 통통하게 살이 찐 개구리나 뱀장어 따윌 착각한 게 아니고서야, 단체로 망상에 빠진 게 아니고서야, 귀신에게 농락 당하는 게 아니고서야 다 같이 뭐에 홀려서 있지도 않은 정체불명의 생물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면?

“어? 저기 뭔가 있는데요? 벽에 뭔가 붙어있어요.”

복개 하천 구조물 안쪽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벽에 무언가 돋아나 있었다. 우리는 부리나케 그쪽으로 달려갔다.

“뭐야? 버섯이잖아?”

“이야. 콘크리트에도 버섯이 자라네?”

김이 샌 녀석과 달리 버섯이 자라난 광경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직원 녀석이 말했다.

“어쩌면 그 식당에서 음식에 넣은 게 이 버섯이지 않을까요? 버섯 종류 중에 환각 증세를 일으키는 것도 있잖아요?”

“그럼 통발 안에 든 건 뭔데? 그걸로 만든 요리가 저기 식당 음식이랑 똑같은 맛이 났잖아?”

“아니면 그 생물의 주식이 버섯일지도 모르지? 버섯의 환각 물질이 몸에 스며든 거야.”

“그런데 애초에 그건 우리가 추측한 거잖아요. 통발 안에 없던 나머지 부분은 저 가게에서 가져가서 요리한 거라고. 만약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누가 반 토막을 낸 건데? 어쨌든 누가 잘라 놓았으니까 아래 부분만 있는 거 아냐?”

“인위적으로 자른 게 아닐지도 모르죠? 아님 원래 저렇게 생겨 먹은 생물이거나.”

“차라리 외계 생명체라고 해라. 그러면 말이 되네. 머리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생명체라면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서 왔을 테니까. 아니다. 과학자들이 외계인 해부한다고 잘라 놓은 거네. 그럼 유에프오는 어디 있는데? 저기 복개 하천 안에 숨겨뒀나?”

손전등으로 안쪽 벽을 가리키며 어지럽게 휘휘 내젓는 손목을 낚아챘다.

“아이, 사장님. 농담한 거에요, 농담.”

“쉿! 조용히 해. 저기 뭔가 있어.”

어둠 속에서 찰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전등을 천천히 이동해 물 쪽을 비춰보는 순간, 물을 거슬러 올라 도망치는 무언가의 뒷모습이 포착됐다.

“잡아!”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종아리를 치는 물살을 거슬러 뒤쫓기에는 힘에 부쳤다. 하나둘 포기하며 나가떨어지는 젊은것들에게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한참 뒤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젊은 놈은 아예 얼굴이 벙쪄있다.

“봤어요. 얼굴을.”

역시 한 놈 정도는 믿음직스럽네.

“그런데 수달처럼 생겼어요.”

믿음직스럽다고 한 말 취소다. 어째 젊은 것들 중에서 달리기 하나, 시력 하나 좋은 놈이 없어?

“근데 얼굴만 수달이었어요. 몸은 꼭 사람 같은 게....”

“수달이면 수달이고, 사람이면 사람이지. 수달 얼굴에 몸만 사람이면 괴물이잖아? 하천에 괴물이 산다고?”

산에서 내려온 멧돼지나 고라니를 잘못 본 거라는 둥, 경쟁 가게 직원이 우릴 보고 도망친 거라는 둥 설왕설래가 오가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그것의 얼굴을 확인한 직원 녀석은 여전히 자신이 본 것을 믿기 어렵다는 양 넋을 빼고 있었다.

“분명 수달이었는데... 수달이라고 하기엔 너무 크고... 그런데 너무 닮았는데....”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낯색이 어쩐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거기서 뭐 하십니까?”

하필 순찰 중인 순경이 비추는 손전등 불빛에 딱 걸려서.

 

“하천에서 낚시 금지인 거 모르세요?”

어떤 놈인지 밤에 하천에서 그물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신고를 한 모양이다.

“낚시하던 거 아니에요.”

“그럼 뭐 하고 있었습니까? 다들 가족이세요?”

“가족이나 다름없죠. 식당 식구들이니까.”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이 눈치 없는 양반아.

“음식점 하세요? 이 근처에서?”

“식당 하긴 하는데, 우린 고기만 팔아요. 생선 말고. 다 같이 일 마치고 회식하고 돌아오는 길에 휴대폰을 하천에 빠뜨렸지 뭐야? 그래서 휴대폰 찾으려고 내려갔던 거에요. 마침 버려진 그물이 있길래 그걸로 물속을 훑어본 거고. 그러고 보니 그물 말고 여기저기 통발도 많던데, 거기서 누가 정말 물고기 낚으려고 설치해둔 건지도 모르겠네?”

“휴대폰은 어느 지점에서 빠뜨리셨죠? 저쪽은 산이라 식당가와는 반댄데, 회식 후에 다른 볼일이 있어서 가셨던 겁니까? 그런데 손전등은 원래 항상 소지하고 다니세요?”

우리 민중의 지팡이께서 직업 정신 하나는 투철하네. 없는 죄도 토해내게 만들겠어?

“순경 양반, 사실대로 말하면 믿어줄 거야? 이 동네 순찰 다니면서 이상한 거 못 봤어?”

“이상한 거요? 뭘 말씀하시는 거죠? 혹시 사고나 사건 현장이라도 보셨습니까?”

“수달.”

“네?”

“우리 직원이 그러더라고. 배달 나갔다가 하천에서 수달을 본 것 같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지? 이 똥물에 무슨 수달이냐, 잘못 본 거겠지. 하지만 진짜라는 거야.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안 그래도 오늘 회식하러 나갈 참인데 그때 같이 확인하러 가보자면서? 그런데 순경 양반, 이 동네 하천가로는 가로등도 드문드문해서 물속이 잘 안 보이는 거 알죠? 그래서 수달 하나 보겠다고 손전등까지 챙겨 가지고 나온 거야. 물속을 이리저리 잘 비춰보려면.”

“그래서 수달은 발견했습니까?”

“발견이야 했지. 그래서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었고? 그 바람에 깜짝 놀라서 휴대폰을 떨어뜨린 거 아냐?”

“수달 사진이 그렇게 놀라웠습니까?”

“아니. 차라리 수달이었으면 귀엽기라도 했지. 사진에 찍힌 건 수달이 아니었어.”

“수달이 아니면 뭐가 찍혔죠? 설마 혹시....”

“외계인.”

“네?”

황당한 표정을 지어봤자 이미 늦었다, 요 놈아.

“분명 외계인이었어. 털 하나 없는 몸에, 바둑알처럼 크고 까만 눈동자, 그리고 배만 볼록 튀어나와선 팔다리는 가늘고 길쭉한 게 영락없이 외계인이었다니까? 아쉽네. 휴대폰만 안 떨어뜨렸어도 우리 순경님한테 외계인의 존재를 확인시켜드리는 건데. 어? 표정이 왜 그렇지? 농담이 아니야. 진짜라고, 진짜. 나도 내 두 눈으로 확인해보기 전까진 외계인은 믿지도 않았다니까? 그래서 말인데, 꼭 복개천 아래도 확인해봐요. 내가 볼 땐 거기가 그 놈들 본거지야. 우주선을 거기다 숨겨놨을지 모른다고.”

“혹시 사장님 음주도 하셨습니까?”

“당연히 회식하면 술도 마셔줘야지. 사람 상대하는 장사하면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이 많은 줄 알아요? 그걸 술로 안 풀면 뭘로 풀어? 그러고 보니 우리 순경 양반도 똑같은 일을 하네? 사람 상대하다 보면 스트레스 받을 일 많죠? 어쩜 세상에 그리 진상들이 많은 지 몰라? 음식 트집은 기본에, 말 같지도 않은 말들을 주절주절 지껄이면서 어찌나 귀찮게 구는지. 안 그래요, 순경 나으리?”

일부러 우리 식당 이름과 위치까지 친절히 알려주고 다음에 오면 서비스를 톡톡히 주겠다는 일장 홍보까지 듣고 나서야 질린 얼굴의 순경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7

“오늘은 조를 짜서 움직여야 해. 생각보다 보는 눈이 많으니까.”

“네? 사장님, 포기하신 거 아니었어요?”

“포기를 왜 해? 장사 안 할 거야?”

”하지만 하체는커녕 꼬리 구경도 못 한지 며칠째잖아요?”

“하천에 수상한 사람들이 기웃거린다고 신고한 사람이 누구겠어? 우리가 하천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 거지.”

“그런데 신고자가 봤다는 사람이 우리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날 밤에 거기 우리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시끄러! 아직도 수달이니 외계인이니 지껄이는 거야?”

“하지만 진짜 봤다고요. 절대 사람은 아닌데, 수달 같이 생긴... 아무튼 이상한 괴생명체가 있었다고요. 거긴 위험해요. 가면 안 돼요.”

아무래도 저 녀석이 제일 수상하단 말야? 괴생명체고 나발이고를 본 사람도 저 놈 뿐이잖아?

“너 저 가게 배달부 애들이랑 아직도 친하게 지내? 예전에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며? 뭐라고 꼬시든? 들은 말 없어?”

“당신 설마 우리 식구들 중에 프락치라도 있다고 의심하는 거야? 그럴 리야 있겠어? 그랬다면 처음부터 고기 못 가져가게 막았겠지?”

이 인간은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남편이고 자시고 주둥이를 꼬매버릴 수도 없고?

“요리할 재료가 없으면 장사도 없어! 오늘 저녁 장사는 안 한다고 문에다 종이 써 붙여 놔. 오늘 끝장 본다. 산 채로 그것들을 잡든, 진실을 밝히라고 그 가게 쳐들어가든, 어느 쪽이든 결판을 낼 테니까.”

 

호기롭게 나오긴 했지만 딱히 묘책이 있진 않았다. 오늘 밤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정말 그 집으로 찾아가야 하나? 그것들의 본거지가 어디냐고 당장 불라고? 털어놓지 않으면 여태껏 뭘로 요리를 해서 손님들에게 먹였는지 만천하에 공표하겠다고? 우리도 공범이라고 걸고넘어지면 어차피 이판사판이라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죽는 거라고 배수의 진이라도 쳐? 아니면 직원들 몰래 혹시 남는 거 있으면 우리한테 좀 팔라고 거래를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속마음을 바깥양반이 알면 저 여편네가 약이라도 먹었나, 진짜 내 여편네가 맞나, 외계인이 아닌가, 어안이 벙벙하겠지.

나타나라는 놈은 기척도 없고 불청객만 사이렌을 울리며 성가시게 돌아다니고 있다. 저렇게 열심히 업무 수행 중인데 한 번도 그걸 목격하지 못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그래도 어떤 놈이 우릴 꼰질러서 또 귀찮게 엮이면 곤란하니 다시 연기 실력 발휘를 해줘야지.

“다들 휴대폰 들어. UFO 찾는 것처럼 하늘 쪽으로 비추고 있어 봐. 넌 왜 그렇게 뼛대? 두 팔을 쭉 뻗어야 하늘을 향해 기도 올리는 것처럼 보일 거 아냐?”

“사장님. 그 정도까지는 오바 아니에요? 주정뱅이 정도로만 보이면 되지, 무슨 미친 외계인 신도들처럼 보일 필요는 없잖아요?”

이 자식이 누군 좋아서 쌩쇼 하는 줄 아나?

“왜, 딴 가게 녀석들이 보면 쪽팔려서?”

그러고 보니 오늘 따라 다른 가게 오토바이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경찰차 때문에 다들 쫄아서 딴 길로 돌아가나? 그런데 우리 가게 오토바이 조는 왜 빨리 안 오는 거야? 하도 위험하네, 어쩌네 징징대서 선발대에서 빼줬더니 군기가 빠졌어, 아주 그냥?

“전화해서 빨리 오라고 해. 이 자식 영업 차량 타고 애인이랑 신나게 달리고 있는 거 아냐?”

부아아앙.

양반은 못 될 놈일세.

하지만 녀석은 우리를 지나쳐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사장님, 저기 밑이요. 하천 아래요.”

하천 아래에 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와 나란히 달아나고 있는 괴생물체가 보였다. 둘은 경쟁이라도 하듯 평행선을 그리며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영리하게도 그것은 복개천 아래로 숨어 들어가는 대신 도로가 끊기는 산 쪽으로 달아났다. 영악한 놈이야. 영물이야, 아주.

한참 뒤 빈손으로 혼자 터벅터벅 걸어오는 꼬라지가 이번에는 또 어떤 표정으로 생포 기회를 날린 변명을 할지 기대가 되네.

“뭐야? 오토바이는 어쩌고 걸어 와? 설마 사고 났어?”

이번에는 잔뜩 골이 난 표정이다.

“사고야 났죠. 아주 쪽팔리는 사고가. 그게 내 뺨을 때렸다고요.”

산비탈을 타고 도망치는 바람에 더 이상 쫓을 수 없었다고 한다. 아쉬워하며 오토바이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그것이 자신을 덮쳤다고.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뺨따구를 갈기기 시작하는데, 쓰러진 오토바이를 가져올 새도 없이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래서 수달한테 오토바이까지 뺏기셨다?”

“농담이 아니라고요. 전 이제 이 일에서 빠질 거에요. 그때 다른 가게에서 오라고 했을 때 갔었어야 했는데.”

“그럼 그때 왜 갔냐?”

“의리상 안 간 거죠! 근무 외 수당도 안 주면서 정신 나간 일에 부려 먹기나 하고. 더러워서 못  먹겠다고요!”

“너 솔직히 말해봐. 진짜 쫓아간 거 맞아? 어떻게 생겼는데? 또 수달처럼 생겼다는 말 말고 진짜 정체를 말해 봐.”

“지금 제 얼굴 부은 거 안 보이세요? 그럼 쫓지도 않고선 거짓말 하려고 내 손으로 내 얼굴을 갈겼겠어요?”

“마침 딱 뺨 때리기 좋은 신장에, 항상 마지막까지 쫓는 사람은 너고, 얼굴을 확인한 사람도 너 뿐인데, 결정적일 때마다 놓쳐선 이상한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걸 내가 믿어야 하나? 음식 재료한테 뺨 맞은 게 엔간히 치욕스러워 흥분하는 게 아니라면?”

“저기요, 사장님. 지금 저 의심하시는 거에요? 그 괴물이랑 나랑 짜고?”

“괴물이 아니라 사람일 수도 있지? 다른 가게 직원이라든가? 막말로 정말 하천에 괴생명체가 있다면 왜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안 띄어? 우리 눈에만 보이도록 분장하고 쇼를 하는 게 아니면?”

“사장님도 보셨잖아요? 그게 달리던 모습을. 사람이 어떻게 오토바이랑 맞먹게 달려요?”

“달리기 선수 출신인 모양이지.”

“좋아요. 그럼 그 집으로 같이 가봅시다. 제가 그 집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 아닌지 물어보자고요.”

“입이야 미리 맞춰 놨겠지, 서로 모르는 척 하기로. 기왕이면 그 집 창고나 좀 보여달라고 해라. 창고 안에 도대체 뭘 쌓아놓고 팔아먹고 있는지 확인이나 하게. 너희 사장이니까 그 정도 부탁은 들어주겠지?”

“여, 여보.”

“왜! 또, 뭐! 얘는 프락치 아니다, 같은 식구끼리 의심하면 안 된다, 이딴 소리 할 거면 입 닫고 있어라? 당신이 애들 관리 안 하니까 만만하게 보고 기어 오르는 거잖아? 우리 직원들은 다 오랫동안 일해서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자랑하더니, 그 잘난 가족 관계가 다 풍비박산 나게 생겼어?”

“아니, 그게 아니라....”

“시끄러! 당신이랑도 가족관계 확 정리하기 전에 말 더 보태지 마.”

“당신 얼굴!”

내 얼굴이 뭐 어떻다고 저렇게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봐?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손바닥으로 얼굴을 거칠게 훑어내리자 이상한 솜털 같은 게 느껴졌다. 뭐가 묻은 거지? 털 먼지가 날리나? 하지만 손에 묻어 나오는 건 없었다. 오늘따라 손은 부르트고 퉁퉁 부어 손가락마저 짤막해 보이네. 그 곱던 손이 이렇게 될 때까지 음식 장사에만 매달려 온 마누라가 불쌍하지도 않나? 다 늙은 자기 얼굴은 생각도 안 하고 생뚱맞게 왜 남의 얼굴 지적질이야?

“당신 오늘 면도 안 했어? 무슨 수염이 하룻밤 새 덥수룩하게 자랐어?”

얼씨구? 그러고 보니 저것들 입은 왜 다 저렇게 부어올랐어?

“니들은 주둥이 얻어 맞기라도 했냐? 다들 왜 그래? 꽃가루 알레르기야?”

하지만 가로수에는 아직 꽃도 피지 않았다. 하천가 갈대 솜털이 날리고 있다고 하기에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경찰 놈들은 순찰 하다 말고 돌아갔나? 필요 없을 땐 쓸데없이 잘도 돌아다니더니 왜 꼭 중요한 순간에는 현장에 없는 거야? 배달 오토바이들은 경찰차를 피하는 게 아니라 아예 배달을 안 나가고 있는 건가? 다들 장사 접었나? 우리 따라 휴업이라도 한 거야? 아니면 전부 눈치챘나? 이 하천에는 괴생명체가 산다는 걸? 요리로 내면 대박이 보장되는?

우으으으으으음....

“뭐, 뭐야?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는 소리야?”

기분 나쁜 울림과 함께 땅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지진이야? 대피해야 하는 거 아냐?”

지진 정도가 아니라 화산이라도 폭발한 줄 알았다. 땅 울림과 함께 눈부신 섬광이 갑자기 사방에서 퍼져 나왔다. 바로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발아래, 복개 하천 안에서. 대피할 새도 없이 모두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당장이라도 우릴 우주 너머로 날려 버릴 것 같은 굉음과 진동과 섬광에 서로 부둥켜안고 공포에 떨었다.

“끄, 끝났나?”

하지만 이상 현상이 언제 또 시작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앗, 저기!”

복개천 안에서 무언가 튀어나왔다. 거기 숨어있었구나? 이번에는 놓치지 않겠다. 내가 직접 잡아 주지!

“사장님! 안 돼요!”

등 뒤로 직원들이 다급하게 막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이미 하천 아래로 달려 내려간 뒤였다.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그리고 정말 사람이 아니라 괴생명체라면 오늘 밤 우리 식구들 만찬으로 요리해주지. 머리에서 꼬리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언제 이렇게 달리기 실력이 늘었는지 놈을 따라잡을 수 있을 만큼 달릴 수 있었다. 고질적인 무릎 통증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손만 뻗으면 삐죽 튀어나온 꼬리인지 뭔지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눈앞에 놓고도 자꾸만 헛손질을 해댔다. 꼬리가 미끄러워서가 아니었다. 내 손이 꼬리를 움켜쥘 만큼 오므려지지 않았다. 이 중요한 순간에? 손가락이 진짜 짧아지기라도 했나? 아니면 고기의 중독 때문에 마비 증상이 일어나는 건가? 하지만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은 지는 며칠이나 지났잖아? 저 망할 것이 하천 속에 꼭꼭 숨어 얼굴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으니... 어?

몸을 외로 트며 꼬리를 움츠리는 괴생물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뒤쫓던 발을 멈추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버렸다. 왜냐하면 드디어 확인한 괴생물의 얼굴은 너무, 너무나 귀여운 수달의 얼굴이었으니까. 하지만 진짜 수달일 리 없잖아? 저렇게 생긴 게 지구에 있다고?

“사장님! 뒤요, 뒤! 한 마리가 아니에요!”

“빨리 거기서 나와, 이 고집불통 여편네야!”

아니, 틀렸다. 저 생명체는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들과 함께. 그것도 수백, 아니, 수천 마리로 떼를 지어 살고 있었던 것이다. 복개천 아래에서.

 

8

“자, 자, 진정하시고 한 분씩 말씀해 보세요. 그러니까 뭘 봤다고요? 수달이요? 잠깐만요. 며칠 전에 하천에서 휴대폰 분실하신 분 맞죠? 분실 신고하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라고요? 방금 전 흔들림이요? 네, 그건 저희가 알아보고 있으니 가까운 학교나 대피소로... 네? 지진이 아니라고요? 외계인? 수달 외계인이요? 잠시만요. 오늘도 회식하셨습니까? 술은 안 드셨다? 그런데 수달 외계인은 분명히 봤다? 아뇨, 그 정도로는 신고 접수할 수 없죠. 수달 외계인이 지구를 침범하러 온 게 아니라면. 빈정대는 게 아니고요, 명확한 피해 사실이나 사고가 있었던 게 아니라면 단순히 외계인을 목격했다는 정도로는 곤란하다는 거죠. 아, 수달 외계인에게 맞았다? 그것도 뺨을 수 차례. 네에... 그리고 뭐 또 다른 건 없습니까? 떼지어 나와선 털갈이를 하는 것처럼 털 기둥을 하늘 높이 솟구쳤고, 꼬리를 프로펠러처럼 돌려서 허공을 날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상하 분리 할 수 있다, 버섯이 그들 주식이다, 맛이 중독성이 있다, 그런데 맛은 직접 보고 아시는 겁니까? 아뇨, 당연히 버섯을 먹어봤냐고 물어본 거죠. 아무리 외계인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도 외계인을 먹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 맛은 상상하기도 싫네요. 네, 네. 접수됐습니다. 그런데 혹시 아까 땅이 흔들릴 때 다치신 분은 없으시죠? 얼굴이 다들 안 좋으신데?”

 

 

3. 공원

1

“이봐, 학생.”

아, 젠장. 몇 모금 빨지도 않았는데.

하천공원 길을 걸어가는 중에 등 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두컴컴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니 나를 부른 건 틀림없다. 설마 내 뒷모습만 보고 미성년자인 줄 착각했을 리는 없고, 금연 구역인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걸 목격한 모범적인 시민이 잔소리를 늘어놓으려 불러 세우려는 모양이다.

“미안한데 불 좀 빌릴 수 있을까?”

괜히 쫄았네. 같은 흡연자 동지라면 기쁘게 불을 빌려 드려야지. 독특한 담배 냄새다. 외제 담밴가? 불 빌려준 핑계로 한 개비 청해볼까 하다 구질구질해서 관뒀다.

한적한 하천공원 길에 담배 연기 두 줄기가 피어올랐다. 깔따구들은 담배 연기에도 아랑곳 없이 귀찮게 달라붙었다. 그런데 벌레까지 사람 차별하나? 신기하게도 저 사람 곁으로는 얼씬도 않는다. 저 담배 연기 때문인가? 그런데 어디서 맡아본 냄새 같기는 한데.

그러고 보니 불을 빌린 뒤로 계속 한 옆에서 같이 걷고 있다. 이 사람도 집이 나랑 같은 방향인가? 하긴 행색을 보아하니 하천 상류 쪽 아파트에 사는 주민 같아 보이진 않는다. 나처럼 PC방에서 죽치고 앉아 이틀 꼬박 게임을 하고 나오는 백수신세 동지일지도 모르. 밤바람에 슬리퍼 사이로 드러난 맨발이 시려웠다.

어느 쪽이든 상관 없는데, 보폭은 안 맞춰서 걸어줬으면 좋겠네. 어색하니까?

하지만 일부러 속도를 올려 걸으면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있고, 속도를 늦추면 늦추는 대로 또 발을 맞춘다. 그렇다고 대놓고 멈춰 서면 오히려 더 관심을 끌 것 같고, 일부러 다른 길로 빠져서 빙 돌아가기에는 귀찮다. 그럴 기력도 없고 택시 탈 돈도 없으니까. 빨리 집에 가서 잠이나 자고 싶다.

잠깐, 혹시 날 의심해서 따라오고 있는 건가? 밤늦은 시간에 우범지역을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이 수상해서 감시하려고?

어이가 없네. 내가 좀 백수건달처럼 생기긴 했지만 우범자로 보일 정도는 아니잖아? 하류 쪽에 살면 다 잠정 범죄자인가? 범행 대상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줄 알고? 빈정 상하네. 나는 가상 현실 속에서만 범죄를 저지를 뿐이거든요?

 

하천 공원은 옛 물길 복원 사업으로 일부 복개도로를 철거하고 만든 것이다. 부르기야 생태공원이네, 친수공원이네, 어쩌네 그럴싸한 이름을 갖다 붙여 부르고는 있지만, 보행로를 겸한 자전거도로와 운동기구 몇 대를 설치해놓은 게 고작이다. 물론 신축 아파트 단지와 함께 들어선 하천 상류 쪽 은 좀 더 돈을 들인 냄새가 폴폴 풍기기는 하지만 구도심지인 하류 쪽으로 내려올수록 하천길은 악취 냄새만 풍길 뿐이다. 복개 하천을 복원한다는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에도 구도심 주민들은 반대입장이었다. 멀쩡한 도로를 걷어내면 교통난은 볼 보듯 뻔할 테고, 집중호우 때의 저지대 침수 우려, 하수처리, 이주대책, 피해보상 등 서로 내놓는 문제점도 갖가지였다.

결국 제대로 복원을 마치지 못한 하천공원 아랫길은 낮에도 주민들이 지나다니길 꺼리는 곳이 되어 노숙자나 불량청소년들이나 나 같은 백수들만 애용하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사건사고가 빈번한 곳이 으레 그렇듯 하천공원에는 시체가 떠다닌다느니, 귀신이 목격된다느니 하는 괴소문이 무성했다. 하천길로는 발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인 게 뻔하지만. 귀신 목격담 정도야 재미로 들어줄 수 있지만, 아무리 인적이 드문 곳이래도 하천 양옆으로 차들이 지나다니고 가로등 불빛이 비추고 있는 곳으로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시체를 짊어지고 와 유기를 한다고?

그리고 만약 나를 살인범이라고 의심하는 거라면 이렇게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돌아다니진 않을 테니 이젠 좀 제 갈 길 가줬으면 좋겠네. 또 담뱃불 빌릴 생각 아니라면?

내가 눈치를 주거나 말거나 낯선 사람은 우비 주머니에서 새 담배를 꺼내 줄담배를 피운다.

비도 안 오는데 우비는 왜 입고 있는 거지? 눌러쓴 모자 아래로 슬쩍 훔쳐본 옆얼굴은 좀 웃기게 생겼다. 짧은 턱에 낮은 코와 튀어나온 입이 동안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에 비해 목소리는 꽤 허스키했다. 그러고 보니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애매하다. 체격이 커서 막연히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 불명의 사람과 인적도 없는 어두운 밤거리를, 그것도 괴소문이 떠도는 하천길을 함께 걷고 있자니 어쩐지 으스스하다. 설마 이 사람이 연쇄살인마는 아니겠지?

퐁당.

다 피운 담배꽁초를 하천 쪽으로 튕겨 날리자 눈치 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속에 빠진다. 그런데 담배꽁초치고는 너무 요란한 소린데? 고개를 돌려 하천을 바라보자 수면 위에 떠 있는 어떤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하얗고 길쭉한, 설마 시체?

“학생.”

다시 나를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여차하면 도망칠 준비를 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담배꽁초 아무 데나 버리면 안 되지.”

다시 하천 쪽을 확인해봤지만 담배꽁초도, 의문의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봤나?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학생도 이 동네 사나?”

초면에 호구조사는 이른데? 그런데 왜 자꾸 학생이라고 부르지? 내가 비행 청소년일까 봐? 하지만 그랬다면 불을 빌리지 않았겠지. 그리고 내 얼굴은 내가 봐도 미성년으로 착각할 만한 인상은 아니니까. 우범지대를 혼자 걸어가는 사람이 걱정돼서 동행해 주는 오지랖 넓은 동네 자율방범대원이라고 생각하자. 연쇄 살인마보단 나으니까.

“저 학생 아니거든요?”

“아, 그래? 내가 눈이 좀 침침해서.”

그렇게 모자를 눌러 쓰고 있으니 앞이 보일 리 없지.

“그런데 왜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녀? 알바라도 끝나고 오는 길이야?”

“아뇨, 백순데요?”

“그래? 어머님이 걱정이 많으시겠네.”

기분 탓이겠지? 부모님이 아니라 어머니만 언급하는 건 우리 집 가족관계를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닐 테니까.

“취업 서류 넣고 연락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쪽팔리게 왜 모르는 사람한테 변명이야? 취업 고충에 대해 토로라도 할 거냐? 면접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서류에서 맨날 광탈한다고 자랑할 거야?

”여기서 오래 살았어?”

나이 차도 얼마 안 나 보이는구만, 자꾸 반말은?

“요즘 사람들은 예전 하천 풍경이 어땠을지 모르려나? 하천을 덮을 때도 마구잡이더니 옛 물길을 재연한답시고 복원한 꼴도 저희들 입맛대로만 꾸며놨어. 이래선 옛 모습을 되찾았다고 자화자찬하기에는 낯부끄럽지.”

저기요, 안 물어봤거든요? 새 친구라도 사귀고 싶어서 이 늦은 밤에 집 밖으로 나온 거라면 번화가로 가서 찾아보라고요.

오늘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는 것만 같이 밤의 하천가 풍경은 어디든 비슷비슷해 보인다. 출구를 지나쳤나?

“예전에는 가로등도 없어서 밤길이 더 힘들었지. 달빛에만 의지해 걸어야 했으니까. 구불구불한 물길을 옆에 끼고 걸으면 아무리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는 거야. 그렇다고 물가를 벗어나면 아득한 어둠 뿐이니 물소리에 귀를 기울여 걸을 수밖에. 그렇다고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너무 바짝 붙으면 안돼.”

“웃, 차가워!”

언제 길에서 벗어났는지 한쪽 발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렇게 빠질지도 모르거든? 물소리에 홀려 이끌리듯.”

나도 모르게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나? 비뚤게 걷고 있는지도 몰랐네.

“그때에 비하면 세상 좋아졌지. 요즘이야 다리도 놓이고, 도로도 깔리고, 물가도 정비해 놨으니 빠질 염려도 없고 쉽게 건너 다닐 수 있잖아? 예전에 나룻배로만 다녀야 했을 땐 실랑이도 많이 벌였어. 사공 놈들이 제 마음에 드는 뱃삯을 주지 않으면 태워주지도 않고 뻗댔다니까? 그러면 할 수 없이 돌아 돌아 길을 가야 했어. 바로 코앞에 그리운 집을 놔두고 말이야.”

자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지?

“그래도 정 급할 땐 담배 한 개비로도 뱃삯을 대신해주는 마음씨 고운 양반들도 있긴 했. 요즘이야 그런 정이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러니 자신도 담뱃불만으로는 만족 못하니 다른 것도 내놓으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담배는 충분하니 뱃삯 대신 통행료라도 걷으려고? 하지만 강도님이라면 이런 몰골에 뺏을 만한 돈이나 물건이 있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

담배를 너무 많이 폈는지 눈이 맵고 속이 메스꺼웠다. 또 잔소리를 들을까 등 뒤로 슬쩍 담배꽁초를 던지는데,

화악!

수면 위에서 갑자기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섬광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물에 불이 붙는다고?

“그것 봐. 내가 물에 버리지 말랬지?”

확실히 헛것을 본 게 아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저걸 보고도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덤덤하게 말한다.

“유해가스 때문이야. 하천 바닥에 썩은 오물이 내뿜는 가스가 수면 위로 올라와서 불꽃이 인 거야.”

하지만 저건 불꽃 정도가 아니었다. 하천 바닥에 썩고 있는 오물이 얼마나 많길래? 아니, 단순한 오물이 아니라서?

“저걸 보니 또 예전 기억이 떠오르네. 그땐 참 물이 맑아서 반딧불이도 많았거든. 밤에 보면 장관이었는데. 요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지. 뭐, 그렇다고 그 경관이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어. 가끔 도깨비불에 홀려 반딧불이로 착각해선 제 발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익사하는 사고가 종종 있었으니까. 그때는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폭도 넓고 수심도 깊어서 시체를 찾기가 힘들었거든. 가족들은 물가에서 시체가 떠오르길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었지.”

그리고 나도 어디서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도깨비불은 무덤가에서 자주 목격된다고. 시체에서 나오는 인 때문에. 일부러 저런 말을 꺼내는 걸까? 겁주려고?

첨벙.

이번에는 더 묵직한 소리다. 고개를 돌려 하천 여기저기를 훑어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무덤덤한 목소리가 또 뒤를 이었다.

“신경 쓰지 마. 별거 아니니까.”

별거 아닌 줄 어떻게 알지?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물속에 뭐가 있는 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문득 의혹이 들었다. 이 사람은 내가 물 쪽으로 관심이 쏠리지 않게 막고 있는 게 아닐까? 사실 나를 노리고 따라붙은 게 아니라 내가 목격자가 될까 봐 같이 걷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계속 하천 쪽으로 곁눈질을 하며 걸었다.

“뭘 그렇게 흘끔거려? 왜, 물속에 귀신이라도 있을까 봐?”

귀신이 아니라 시체겠지.

“아까 지나오는 길에 뭔가 본 것 같아서요. 하얗고 길쭉한....”

만약 정말 물속에 시체가 있다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면, 내가 유일한 목격자가 될 수도 있다.

“왜가리나 백로일 거야. 가끔 사람들이 착각하거든. 밤중에 허연 거구의 새들이 물고기 사냥하는 걸 보곤 흰 소복 입은 귀신인 줄 알고.”

“새를 귀신으로 착각한 게 아니라 사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 말은, 죽은 새 사체요.”

“정말 봤어?”

너무 용감했나? 지금 하천 공원에는 이 사람과 나 뿐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목격자는 없다.

“사실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벌써 눈치챈 것 같아서 그냥 말해줘야겠네.”

말 안 해줘도 된다고 할까? 그러면 순순히 집으로 보내줄까?

“사실 말이야, 이 하천에는 수달이 살고 있어.”

“네?”

순간 무슨 소리인지 한 번에 알아먹지 못했다.

“여기가 예전엔 수달 서식지였거든.”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런 데서 수달이 산다고?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서식한다면 하천 홍보로 백 번은 써먹었겠지. 이 곳을 수백 번 지나다녔지만 수달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거야 당연하지. 예전에 수달 사냥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학생은 모를 테니. 수달 씨를 말릴 정도의 도륙이었어. 그러니 사람들 눈에 안 띄게 다니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그런데 마침 방금 전에 내가 수달을 목격한 거다? 내가 본 건 수달이다? 하얗고 길쭉한 그게? 누굴 바보로 아나? 자기 눈이 침침하다고 나도 눈먼 줄 아나? 사람 크기의 형체를 누가 수달로 착각한다고? 아니면 제대로 설명해 줄 필요도 없다는 뜻인가? 내가 본 게 뭔지 누구에게도 말 못하게 만들어버릴 테니까?

“움직이지 마.”

뒷걸음질 치는 나를 향해 낯선 이 점점 다가왔다. 뒤돌아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마비라도 된 듯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이지 말라는 저 사람의 말이 주문처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움직일 수 없는 몸 주위로 깔따구들이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곧 시체가 될 몸뚱아리에 미리 달라붙기라도 하려는 듯. 그리고 나에게 달라붙으려는 건 깔따구만이 아니었다.

수면 위에 떠 있던 희고 길쭉한 그것은 꼿꼿하게 상체를 세우더니 물을 헤치고 나에게로 오고 있었다. 시큼한 썩은 내를 풍기며, 물에 불은 발을 철퍽이며, 머리카락이 달라붙은 얼굴을 나에게 고정시킨 채.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저 얼굴은... 시체와도 같은 저 얼굴은....

“수달이야. 수달이라고.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

그제야 나는 낯선 이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수달을 보고도 수달임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천 공원 길을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걷고 있었으면서도. 옆에서 함께.

“계속 걷지? 밤도 늦었고 하니.”

그 말과 동시에 몸의 마비 증세가 풀렸다. 하지만 하천가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동행인도, 귀신도 없었다. 수면 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귀신에게 홀린 기분으로 집까지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 멍했다. 물속에서 내가 본 건 진짜 귀신이었을까? 그리고 귀신에게서 눈을 돌리게 하려고 그 사람은 자신의 얼굴을 내게 보여준 걸까? 아니, 사람이 맞긴 한 걸까? 정체가 뭐든 동네 하천에 귀신이나 연쇄 살인마가 살고 있는 것보다야 낫긴 하겠지만. 귀여운 수달이든, 수달 수호신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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