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이삿날

2021.02.27 17:3102.27

나는 네 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어쩌다 한 번, 네가 우산을 씌워줬을 때, 그때 우산을 지붕으로 알고 그 아래를 거실로 삼아 너와 함께 붙어 있었더랬다. 그게 집이라면 집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집이 될 수 없다.

집이 되기에 필요한 요소가 충족되지 않은 탓이다.

내게도 내 집은 없었다. 늘 월세, 큰 맘 먹으면 전세였다. 그건 남의 삶을 잠깐 빌려 사는 기분이어서 나는 집이라기보다 눈과 비와 바람이 불지 않는 낯선 무풍지대 한 가운데를 표류하는 기분이었다. 사는 내내. 그래서 이젠 진짜 내 집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근데 그게 쉽지가 않다. 너도 잘 알겠지만.

남자애가 밥을 먹지 않는다. 아니 ‘밥’은 먹는다. 정확히 말해 반찬을 안 먹고 맨 밥만 입에 우걱우걱 쑤셔 넣는다. 그런 지 벌써 보름쯤 되었다.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까, 은희의 계정으로 가입된 맘 카페에 질문 글을 올려보았다. 병원에 가라고 한다. 소아과는 물론이고 상담센터에 가보라고 추천하는 댓글도 많다. 그 전에 먼저 남자애에게 물어보았다. 왜 반찬을 먹지 않니. 남자애는 반찬은 엄마가 주는 거라고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기 전, 평소 밥을 먹으려 들지 않던 남자애에게 내가 갓 지은 잡곡밥을 먹이면 은희가 가시를 살살 발라낸 조기와 김치를 먹이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남자애는 은희가 나와 이혼한 줄 모른다. 또 여느 남자애들처럼 남자애는 나와 은희의 이별을 남몰래 되뇌고 있을 지도 모른다. 잠시 북유럽 어느 나라들을 여행하고 온다며, 왜냐면 엄마는 여행작가니까, 하고 넌지시 암시는 했지만 어린 애들의 상상력과 직감은 감히 추정할 수 없기에 나도 추측을 시도할 뿐이다.

사실 이건 편지도 뭣도 아닌데 점점 말투가 편지 내지 유서, 일기, 고해성사로 비춰질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려면 어떨까. 네가 이 글을 읽으리란 보장은 정말이지 하나도, 단 ‘1도’ 없는데. 그럼에도 네가 읽을까봐 두려운 건 맞다. 아니 두려울 건 또 뭔지,

남자애에게 이사 의사를 물었다. 남자애는 내 물음을 이사 이사, 라고 알아들은 탓에 무슨 뜻이냐고 여러 차례 물었다.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다시 물었다. 남자애는 한참 동안 고민했다. 이 좁고 웃풍이 귀신의 한 마냥 구석마다 서린 집이 좋으냐고, 다그치듯 재차 물었다.

“엄마도 가고 싶대?”

남자애가 물었다. 아빠인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했을까. 그때 난 은희 대신 너를 떠올렸다. 너는 내 아내가 될 수 없고 생의 반려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다. 결혼은 물론이고 해마다 열리는 축제마다 종교와 하나가 된 정치적 세력과 불행히도 그들에 세뇌당한 사람들이 혐오와 반대를 외친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응, 대답했고 그럼 좋아, 남자애는 말했다.

이후 이사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때 너를 만났다.

 

남자애는 그토록 좋아하는 함박스테이크에도 손을 대지 않는다. 여전히 맨밥만 우물거리며 힘겹게 삼킬 뿐이다. 왜냐고 물어봤다. 함박스테이크 내가 다 먹는다고도 으름장을 놓았다. 그럼에도 남자애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내 눈만 빤히 쳐다본다. 마치 거기에 제가 원하는 게 숨어있다는 듯이. 너는 그 이유를 알까. 알 것 같다, 너라면. 왜냐면 너도 그랬으니까. 너는 나와 싸운 날이면 ‘맨밥 투쟁’을 벌였다. 나와 밥을 먹을 때도 물론이고, 아무도, 나도 없는 네 집에서 네 투쟁은 계속 되었다. 수시로 카톡과 문자와 전화로 너의 안부 아닌 안부를 물어도 밥이 목구멍에 걸려 채 넘어가지 않은, 목멘 소리로 너는 대답했다.

나 원래 이래.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아빠가 화나면 맨밥만 줬어.

네 목소리는 저 깊은 곳에서부터 울음으로 예열되었다.

너한테 화난 거 아냐. 지금도 이렇게 나 자신을 주체 못하고 용서 못하면서 맨밥 먹는 걸로 시위하는 나한테 화난 거고. 그때가 언제였더라. 유치원에서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초콜릿 줬다고 했다가, 그래서 나중에 같이 결혼하기로 했다가 그랬지, 아마. 아빠가 말했어. 그건 내가 용납하기 이전에 세상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그날은 집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동네 놀이터 전전하면서 하룻밤을 꼴딱 샜어. 경찰들이 찾아냈지만. 나름 성공한 거지.

그게 화가 난 거야, 화가 난 거라고. 너는 단 한 번도 감정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항상 빙빙 돌고 돌아서 상대의 마음 주변을 기웃거렸다. 그때부터 내 집은 없었어, 궁금해, 너는, 너는 네 집이 있었니? 그런 물음을 떠올리다 국을 남자애의 허벅지에 흘린다. 갓 데워서 나온 거라 뜨거운지 남자애의 눈에 눈물이 어슴푸레 맺힌다. 미안, 불쑥 튀어나온 한 마디에 나는 놀란다. 누군가에 감정을 내보일 땐 단순히 내보이는 게 아니다. 그 사람에게 온전히 자신의 감정을 담보로 맡기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 그것이다. 그걸 몰라 나는 너를 놓쳤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할까. 네게 물었더라면 그때 집을 찾아 전전하는 내게 중개사로 다가왔을 때처럼 대답할 거다. 이미 주인이 팔려고 내놓은 집이라 잠깐 거기서 자셔도 돼요. 웃으면서 말한 너였다. 잠깐 잔다는 게 종일 잠으로 지새울까봐 나는 두려웠다. 남자애는 춥다고, 졸린다고, 배고프다고 칭얼댔다.

“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어.”

나는 네 말과 달리 엄포를 놓듯 남자애에게 말했다.

“아주 좁을 거야. 그렇지만 집 모양은 특이해. 조그만 단지를 닮았거든.”

“엄마가 있어요? 있나요?”

“엄마는 오래 전에 본가로 돌아갔단다. 우리가 가려는 곳엔 없을 거야.”

“거기가 어딘데요? 봉가가 뭐예요?”

내가 주저하자 네가 대신 대답해주었다.

“원래 집, 나고 자란 집, 언젠간 꼭 돌아가야만 하는 집.”

그 설명도 어려웠는지 남자애의 얼굴엔 아리송한 의문만 가득했다. 나는 너를 쳐다보며 화를 내듯 눈에 힘을 주며 깜박였다. 애한테, 그게, 무슨, 짓이냐고. 너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하며 계속 알아보실까요? 말을 이어나갔다.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데려간 곳은 장례식장이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다.

가까워서 편해요. 바로 들렀다가 입주하실 수 있으니까. 찬바람도 덜 쐬고요. 하하.

우리에게 이미 몇 번이나 죽어보지 않았느냐고 되묻는 어조였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느냐고, 뭘 새삼스레 그렇게 발을 들여놓았다 빼느냐고 힐난하는 눈길이었다. 그때 은희가 생각난 건 왜일까.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고 결혼해 이 애, 남자애를 낳았던 지난 삶이 매일 거쳐 간 햇빛에 빛바래지도 않고 여전히 새 페인트처럼 독한 냄새로 폴폴 풍겨왔다. 그래, 네 시선이 내가 그토록 숨겨왔던 진실을 꿰뚫어보았다, 나는 수없이 죽으려고 했다.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기고 결혼한 것, 아내 은희와 아이를 가지고 아이를 낳은 것, 이름은커녕 남자애, 라는 표현이 더 편한 만큼 내가 불편한 것, 끝내 나는 또는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열린 결말로 끝내버리라는 것, 그 모두가 이유이고 원인이고 결과였다. 그런 내게 자신을 사(死)인중개사라고 소개하며 너는 다가왔다.

그게 뭔데요?

은희와 결혼한 이후 수년 만에 기어들어간, 게이바 술번개 자리에서였다.

공인중개사와 같은 건데, 공인은 아니니까 사인중개사라고 해두죠. 말 그대로 집을 찾아드리고 소개하고 그런 직업입니다. 다른 건 이제, 그냥 집은 아니고 죽어서 쉴 묏자리를 알아봐드리는 거지요.

그걸 왜 나한테...... 나한테 소개하는 겁니까?

필요해보여서요. 여기 앉아계시는 모습이 꼭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진탕 놀다 가려는 뭇게이들하고 비슷해보입디다. 그 사람들도 물론 죽었고요. 내가 집을 알아봐주었죠.

전 내놓을 집이 없어요. 길거리를 떠돌 신세라고요.

돈이 없으면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중개비 지불, 그리고 묏자리 값을 치를 수 있죠.

몸으로 때우라는 건가요. 몇 밤, 얼마든 같이 자면 된다, 그런 거?

다른 게 있다면 다른 것도 괜찮습니다.

남자애는 겨우 김치 쪼가리 하나를 먹었다. 이제 곧 나아지겠지, 나는 생각하며 달력을 뒤적거린다. 사인중개사인 네가 알아봐준 원룸에 잠시 얹혀사는 지금, 강박증 환자마냥 달력을 뒤적이며 얼른 그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너는 곧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까지 우리는 네 명의로 된 이 원룸에서 지내기로 했다.

우리는 바깥으로 나왔다. 놀이터에서 노는 남자애를 바라본다. 은희가 보면 얼마나 기뻐할까, 하면서도 얼마나 증오스러울까, 생각이 따라붙는다. 처음부터 속이려고 한 건 아니었다. 너를 처음 만나고 하룻밤을 치르고 점심을 먹을 때 너는 집요하게 그녀에 대해 물었더랬다. 아니 대한민국의 게이가 어떻게 멀쩡한 여자 만나서 아이까지 낳고 살다가 아이하고 버려져서 자기를 만날 만큼 운명이 기구하게 되었느냐면서.

지옥 같은 진실, 천국 같은 거짓.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지옥을 택했네요.

정확히 말하면 천국 갔다가 지옥으로 이사 간 거죠.

아니요, 당신은 처음부터 지옥이었습니다. 천국인줄 착각한 거죠.

은희와 잠자리를 함께 한 날엔 반드시 새벽 몰래 나가 다른 남자와 닮은 듯 다른 잠자리를 가졌다. 그걸 처음 알게 된 건 사소한 이유로 말다툼을 했던 날이었다. 평수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자가를 가지자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나는 이사할 수 없다고 대꾸했다. 번개로 남자들을 만나는 바와 술집이 그녀가 이사 가고 싶은 곳과는 너무 멀었고, 무엇보다 처가댁과 가까웠다. 아주 많이. 자주 가는 처가댁이었지만 언제나처럼 긴장과 불안으로 속을 애태웠다. 한 시간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그 시간이면 그나마 죄책감을 가라앉힐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사라니, 그것도 바로 옆 동네로 말이다.

그러다가 돈으로 대화의 초점이 옮겨갔고, 마침내 은희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듯 게이바 결제내역이 주르르 적힌 영수증 더미를 내밀었다.

너, 뭐야?

그 말을 끝으로 은희에 관한 기억은 더 이상 없다.

전화가 걸려온다. 퍼뜩 놀라 놀이터를 살핀다. 남자애는 흙 묻은 손을 털며 내 무릎께로 달려온다. 결정, 하셨습니까? 네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문득 화가 치민다. 너는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지. 나와 섹스를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스킨쉽을 하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외치면서 배웅할 때의 너는 어디로 간 걸까. 어디 비에 젖어 아무 데나 벗어던진 롱코트 같이 널 내팽개치고 싶지만, 그건 너를 또 다른 은희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안다.

했습니다. 아니 했어....... 언제 올 거야? 빨리, 빨리 와 줘. 불안해.

나는 머뭇거렸다. 우리는 오랫동안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레고로 만든 자동차를 손에 든 남자애와 함께였다. 무덤이냐, 비석이냐, 화장이냐, 납골당이냐, 산이냐, 강이냐, 바다냐,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고 나는 너를 따라 오랫동안 죽음을 준비했다. 남자애는 나보다 너의 손을 잡는 일이 더 많아졌다. 좋은 일이었다. 남자애는 너라는 집으로 이사를 갈 테니, 미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테니.

그러고 보면 웃긴 일이다. 네가 나와 함께 나눈 사랑을 말하는 거다. 너는 사실 사인중개사라는 건 개뿔 없다고, 그저 내가 마음에 들어 대시한 것뿐이라고 네가 말했다. 너는 같이 동거하고 너희들만의 혼인신고서까지 작성해둔 상대방이 있음에도. 네 남자는 아이를 원한다고 했다. 나는 곧 죽을 테니 언제까지고 몸으로 갚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고, 남자애를 떠올렸고, 고맙게도 내가 말하기 전에 네가 먼저 남자애를 원한다고 말을 꺼냈다.

“잘 키울게. 너는 너대로 갈 곳을 찾아줄게.”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거였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배고프다. 짜장면 먹을래? 원래 이사하는 날은 짜장면 먹는 거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잔웃음 인 남자애의 손을 잡는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공고] 2020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명단 mirror 2019.12.31 0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0
2695 단편 우리가 마음이라 부르는 것 히로 2021.03.13 0
2694 단편 카메라 찍기 키미기미 2021.03.12 0
2693 단편 모음(母音) 하밀원 2021.03.09 0
2692 단편 BUSY 온연두콩 2021.03.04 0
2691 중편 레인보우 브릿지 비에러 2021.03.03 0
2690 단편 하룻밤에 학 이천 마리를 접을 수 있다면 작은것들의미밍즈쿠 2021.03.03 1
2689 단편 Planet N 킥더드림 2021.03.02 0
2688 단편 나를 오염시켜줘 두영 2021.02.28 0
2687 단편 카밀라를 위하여 계수 2021.02.28 2
단편 이삿날 김성호 2021.02.27 0
2685 단편 프로포즈 데이 현이랑 2021.02.25 0
2684 단편 직장상사악령퇴치부 이사구 2021.02.22 0
2683 중편 세 배우 이야기 ㄱㅎㅇ 2021.02.19 0
2682 단편 달을 닮은 사나이 차영 2021.02.17 0
2681 단편 지우개와의 담화 차영 2021.02.17 0
2680 단편 적과 흑의 시기 동록개 2021.02.13 0
2679 단편 기묘악마 — 유사 광상곡 최의택 2021.02.12 0
2678 단편 가위바위보 세이브 어스 백곶감 2021.02.11 2
2677 단편 효소의 작용 한때는나도 2021.02.08 0
2676 단편 우주여권 사업의 단기 알바 킥더드림 2021.02.08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36 Next